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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모(國母)의 품격-대통령을 지배하는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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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대 영부인들(상단 왼쪽부터), 프란체스카 도너, 공덕귀, 육영수, 홍기, 이순자, 김옥숙, 손명순, 이희호, 권양숙, 김윤옥, 김정숙

 

 대통령의 아내를 흔히 영부인(令夫人)이라 부른다. 원래 영부인의 사전적 의미는 사회적 신분이 높은 사람의 아내를 이르는 말인데, 지금은 흔히 대통령의 부인을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영어로는 퍼스트 레이디(First Lady)를 쓴다.

 

 대통령의 부인은 남편이 이끄는 정부의 성공 여부를 좌우하기도 한다. 가장 가까이서 대통령의 특별 조언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부인을 한층 더 높이면 국모(國母)가 된다. 문자 그대로 한 국가의 어머니란 뜻이다. 그만큼 세인들의 존경을 받아야 함은 물론이다. 그런데 이 말은 너무 권위적이어서 요즘엔 잘 안쓴다. 구한말 명성황후가 일본 낭인의 칼을 맞고 죽기 직전 “나는 조선의 국모다”라고 외쳤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한국에서는 지금까지 모두 12명의 대통령이 있었고 그 중 독신인 박근혜를 제외하면 모두 11명의 영부인이 있었다. 그들은 나름대로 남편을 보좌해 어떻게든 나라를 잘 경영할 수 있도록 일조한 것이 사실이다.

 

 역대 11명의 영부인 가운데 눈에 띄는 몇 사람이 있다. 우선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부인 프란체스카 도너 여사. 당시만 해도 외국출신(오스트리아)의 부인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이 많았음에도 그녀는 유려한 영어실력을 바탕으로 6·25 전후 세계 각지에 구호를 요청하는 등 남편의 손발이 되어 민간외교관 역할을 수행했다. 이승만은 그를 가리켜 “아내의 지혜와 용기, 인내와 슬픔, 노력이 나로 하여금 오늘을 맞게 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이어 윤보선 대통령의 부인 공덕귀 여사는 한국 최초의 여성 신학자로 인텔리 선각자였으나 당시 정치 상황이 그녀의 역동적인 역할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그녀는 정치에는 참견하지 않았고, 1년 8개월의 짧은 청와대 생활을 청산하고 일상으로 돌아온 뒤 오히려 여성 지도자로 나서 민주화운동과 인권운동에 몸을 살랐다.

 

 공 여사의 바통을 이어받은 육영수 여사. 한국 현대사에서 그 이름 석자는 빠질 수 없을 것이다. 아마 역대 영부인 가운데 국모의 반열에 오른 사람은 육 여사와 이희호 여사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남편을 조용한 카리스마로 다스린 육영수야말로 ‘세상을 지배한 남자를 지배한 여자’라 할 수 있다. 비명(非命)에 가기 전까지 11년의 세월을 청와대에서 지낸 육 여사는 퍼스트레이디의 역할 모델을 정립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민의를 듣기 위해 많은 사람을 만나고 자신 앞으로 온 편지는 직접 읽고 답장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직접 나서 해결하는 등 민원 해결에 열정적으로 임했다. 또 재임기간 동안 나환자의 손을 잡고 그들이 건넨 음식을 같이 나눠 먹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타계한지 47년이 지난 지금도 그녀가 이권이나 정실 인사에 개입했다거나 사리사욕을 챙겼다는 비난은 나오지 않는다. 육 여사는 한국의 영부인 가운데 가장 비정치적이면서도 가장 정치적인 영부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박정희는 훗날 아내를 생각하며 “그곳은 나의 유일한 낙원이요, 태평양보다 더 넓은 마음의 안식처다”라고 회고했다.

 

 박정희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어느날 갑자기 대통령이 된 남편(최규하)을 따라 영부인이 된 홍기 여사는 250여일 동안 청와대 생활을 하면서 마음고생만 하다 떠났다. 전두환 등 신군부가 신변을 압박해 들어오는 불안한 정치상황 때문에 부부가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숱한 사람들을 죽이고 무력으로 권좌에 오른 남편(전두환) 덕에 졸지에 영부인이 된 이순자는 주변에서 진정한 영부인으로 생각한 사람이 거의 없었고, 뒤이은 노태우의 부인 김옥숙은 그나마 자신을 숨기고 그림자처럼 남편을 내조함으로써 신비감을 자아냈다.

 

 한국 현대사의 거목 김대중(DJ)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는 단순한 아내를 떠나 DJ의 정치적 동지요, 남편을 대통령으로 만든 사람이다. 이 여사는 마흔 한 살의 나이에 DJ와 부부의 연을 맺었다. 당시 DJ는 박정희 군사독재에 맞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운명이었다. 이 여사는 수년간 감옥살이를 했던 남편을 대신해 자식을 키우며 남편 뒷바라지를 했다.

 

 DJ의 야인시절부터 검소한 것으로 유명했던 이 여사는 청와대 안주인이 되어서도 살림을 검소하게 운영했다. 특히 당시 IMF로 구제금융을 받는 상황을 감안해 대부분의 집기를 전임자가 사용하던 것을 그대로 썼다.

 

 민주화 및 인권운동, 여성운동 등에 활발히 앞장섰던 이 여사는 DJ의 평생동지로 곁을 지키며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모범적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진정한 국모라 할 수 있다.

 

0…현대의 대통령 부인은 남편 일을 도와준다는 조력자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국정운영에 대해 공동책임의식을 갖고 남편과 정치적 동반자로서 역할과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한국의 유력 대선후보 부인을 둘러싼 여러 추잡한 의혹들은 당혹스럽기 짝이 없다. 외모(성형) 논란에서부터 학력, 경력 등 제대로 밝혀진 것이 하나도 없는 가운데 각종 비리사건에도 연루돼 있다. 한때 유흥업소에 종사했다는 말까지 돌고 있다.

 

 이런 사람이 일국의 영부인이 되겠다고 나서는 자체가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이제까지 한국의 영부인 가운데 이렇게 천박하고 저질스런 사람은 없었다. 만에 하나라도 이런 사람이 영부인이 돼 국제무대에 나간다면 그야말로 국제적인 망신거리가 될 것이다. 믿는 것은 하나, 국민들의 추상(秋霜)같은 판단력뿐이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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