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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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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2
오만과 편견 -한국사회의 금기어

 

 사람은 어려서부터 성장 환경에 따라 자연스럽게 성격이 형성돼간다. 성격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는 집안 분위기가 가장 클 것이고, 주거 배경이 시골이냐 도시냐에 따라서도 많이 달라질 것이다.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은 성격이 대체로 원만할 것이고 포악(暴惡)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사람은 본인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 또한 시골의 대자연 속에서 자란 사람은 (나처럼) 감성이  풍부하고 도시에서 성장한 사람은 계산이 빠를 것이다.

 

 그런데 한번 굳어진 사람의 심성은 좀처럼 바뀌지가 않는다. 타인이나 사물에 대한 시각도 그렇다. 어려서 첫 인상을 통해 마음 속에 고착된 관념은 변하질 않는다. 그것은 좋은 말로 표현하면 자기의  주관(主觀)이요, 다른 말로 표현하면 편견(偏見)에 다름 아니다. 문제는 어느 쪽이든 도가 지나치면 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판단하는 능력을 그르치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자기 의지와는 무관하게 안고 태어난 출신 배경이란 것이 사람의 평생을 좌우하는 꼬리표로 따라 다니는 현실을 생각할 때 인간의 행, 불행(幸, 不幸)은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진 것이 아닌가 한다. 자기도 모르게 고착된 자신에 대한 편견, 이를테면 어떤 가정에서 태어났고 고향이 어디며 학교는 어디를 다녔느냐 등에 따라 ‘나’라는 존재 이미지는 굳어지는 것이다.     
   


0…*리지(Elizabeth Bennet): “당신의 당당함은 결함일까요, 미덕일까요?”

*다아시(Fitzwilliam Darcy): “모르겠소”

*리지: “결함이 없는 분 아닌가요?”

*다아시: “남의 결함과 무례를 잘 못 참긴 하죠. 한번 싫은 끝이요.”

 

 영국 소설가 제인 오스틴(Jane Austen, 1775~1817)의 걸작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에서 여주인공 리지(엘리자베스 베넷)는 "깊은 사랑 없인 나도 결혼 안 해"라며 외적 조건이 좋은 남자보다는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겠다는 결심을 되새긴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돈 많고 잘 생긴 상류층 남자 다아시(피츠윌리엄 다아시)와 결혼하게 된다.

 

 소설의 기본 스토리는 상류계급 출신의 (시쳇말로) ‘재수 없는’ 신사(다아시)와 평범한 집안 출신의 명랑하고 똑똑한 숙녀(리지)가 만나 서로 오만과 편견을 극복하고 난관을 이겨내 마침내 결혼에 골인한다는 내용이다.(내가 영문과 1학년 시절에 읽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작품의 시대 배경인 18세기 당시 유럽사람들의 결혼은 철저히 가문과 가문의 결합이었고 개인이 끼여들 여지가 극히 적었다. 결혼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혼인 대상자들의 재산, 명성, 외모 같은 외적 조건들이었다. 반면 상호 호감 같은 내적 조건은 외적 조건이 받쳐주면 자동적으로 따라오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배우자의 외면적 가치보다 애정과 상호존중의 감정을 중시하는 캐릭터들의 개성이 돋보였기에 작품성과 함께 호평을 받았던 것이다.

 

 리지는 자신이 다아시를 사랑하게 된 이유가 그의 재산 때문이라는 것을 굳이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오만함이 넘치는 다아시에게 직접적으로 그의 오만함을 걸고 넘어지는 리지. 다아시 자신이 과연 결함이 없을 정도로 완벽한 사람인지 은근히 비꼬는 리지에게 다아시는 “한번 싫은 건 끝”이라고 매몰차게 답한다. 상류층의 몸에 밴 오만과 편견은 한번 싫으면 그것으로 끝인 것이다.  

 

0…인간의 몸에 밴 편견에 대해 영국의 경험주의 정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1561-1626)은 우상(偶像, idola)이란 말로 설명했다. 이는 인간이 올바른 지식을 얻을 때 장애가 되는 편견(편중된 견해), 그릇되어 있는 선입관을 말한다. 바로 4가지 우상(Four Idols)이 그것이다.

 

-종족(Tribe)의 우상: 인간의 입장에서 자연이나 세상을 보게 됨으로써 오는 편견.

-동굴(Cave)의 우상: 자기의 경험에 비추어 세상을 판단하려는 편견.

-시장(Marketplace)의 우상: 직접적 관찰이나 경험 없이 다른 사람 말만 듣고 그럴 것이라고 착각하는 편견.

-극장(Theater)의 우상: 자신의 소신 없이 권위나 전통을 아무런 비판없이 받아들이는 맹신에서 생기는 편견.

 

 나는 이중에도 한국사회에 팽배해있는 시장의 우상과 극장의 우상에서 비롯되는 편견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성찰이나 경험에 따라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고 일부 지배계층의 오만하고 비뚤어진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그것에 의지하려 하는 것이다.

 

0…고정관념(편견)이란 것이 얼마나 무서운가. 한번 뇌리에 박힌 그릇된 관념은 개인은 물론, 국가와 사회 공동체 전체를 병들게 만든다. 한국에서는 이 비뚤어진 편견이 정치-사회적으로 무수히 남용돼왔다. 왜곡된 편견이 극도에 치우친 이념으로 변질되고 집단화되어 개인과 사회를 분열시키고 있다.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과 집단에 대해 “좌파” “빨00” “00도 출신”이라는 단어만 갖다 붙이면 그 대상은 하루아침에 생매장된다.  

               

 “좌파” “빨00” “00도 출신”이라는 한국의 대표적 금기어(禁忌語)는 상대방 정적(政敵)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잔혹하게 악용돼왔다. 한국에서 이들 악질용어가 사라지는 날이 바로 편견으로부터 해방되는 날이 될 것이다. 가진자들의 오만과 철학적 성찰이 빈약한 집단의 사상 편견이 사라지고 상대를 존중하는 풍토가 조성돼야 한국사회엔 비로소 희망이 싹틀 것이다.    

           

 “Prejudice disabled me from falling in love with others and pride shuns others away from me.”(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게 하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못하게 한다.”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중.      (사장)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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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6
원판불변의 법칙- 이민살이 20년의 회한

 ‘O Canada! Our home and native land! True patriot love…’ 한인 행사에서 애국가와 캐나다 국가를 부를 때 나는 가끔 정체성에 혼란을 느낀다. 애국가를 부를 때 나는 한국인이란 사실을 재확인하는 한편, 평소에도 한국인이라는 생각을 한번도 잊은 적 없이 간직하고 산다. 그러나 ‘오 캐나다’를 부를 땐 묘한 생각이 든다. ‘나의 조국 캐나다~’. 캐나다는 과연 나의 조국인가.

 

 캐나다시민권을 취득했으니 나는 국적상 캐나다 시민이다. 외국에 나가 무슨 불의의 일을 당할 경우 나를 구해줄 국가는 캐나다이다. 태어난 조국은 한국이지만 내가 캐나다 밖에서 무슨 일을 당하면 현실적인 도움을 줄 나라는 조국 한국이 아니라 ‘양부모’격인 캐나다이다. 이를 테면 나의 신분은 ‘한국계 캐나다인’이다.

 

0…“못난 조국이 싫었다. 끝없이 부패하고 모든 가치관이 뒤죽박죽된 한국사회에서 나는 더 이상 희망을 찾을 수 없었다. 이런 나라를 사랑하라고 자식들에게 강요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모든 것 뿌리치고 도피하듯 이민 보따리를 쌌다. 앞으로 어떤 고난이 닥칠지라도 새 세상에 다시 태어난 기분으로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십 수 년 후 나의 이민일기에는 어떤 내용들이 담길까. 나 스스로 선택한 길이기에 후회하는 일은 없으리라. ”      

 

 위 글은 지금부터 20년 전인 2000년 7월 5일, 캐나다 땅에 이민봇짐을 푼 후 한달 정도가 지난 어느 날 한인언론에 썼던 글이다. ‘제5계절’이라는 칼럼이었는데, 지금 다시 읽어보니 스스로 무안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그때의 각오와 정신이 오늘날 별로 실천되지 않고 있음에 입맛이 씁쓸해지기도 한다.

 

 이민초기만 해도 나는 의욕과 투지에 불 타 있었다. 모든 정착업무를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겠다며 서류봉투를 들고 관공서를 들락거렸다. 정착할 곳을 찾을 때는, 한국이 싫어 떠나왔는데 외국에 와서까지 한국인과 부딪치기는 싫다며 일부러 한국인이 없는 시골 외곽을 찾아 들었다.

 

 24시간 문을 여는 주유소에서 야간근무도 해보고, 대형 화훼단지에서 하루종일 선 채 꽃다발을 만들어보기도 했으며, 가게나 직장을 찾겠다고 이곳저곳 들개처럼 쏘다니기도 했다. 그런 나를 보고 어느 한인 어르신께서 “한국에서 잘 살던 사람이 왜 외국에 와서 이 고생이냐”며 혀를 차던 모습이 선하다.

 

0…강산도 변한다는 10년 세월을 두 번씩이나 흘려보내고 이제와 뒤를 돌아보니 모든 게 그저 회한 뿐이다. 이민 결행의 가장 큰 동기였던 자식들 교육은 자연스럽게 해결됐으나 그에 따른 대가도 만만찮았다. 한국에서는 꽤 인정받던 영어실력(명색이 영문과 출신이다!)이 이민초기의 절반 이하로 추락해갔다. 20년 가까이 한국신문 만드는 일에 종사하다보니 영어 쓸 일이 별로 없었다. 영어를 정복해보자던 초창기 다짐은 흘러가는 세월 따라 푸시시 사라져 버렸다.

 

 사실, 영어를 사용하는 국가에서 영어적응에 소홀했다는 점이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우선 당장 편하다고 한국말로 해버릇 한 것이 실수였다. 살아가는데 불편은 없으나 가장 큰 이민목표가 무너져버렸으니 뼈아픈 실책이 아닐 수 없다. 처음엔 이민 온지 수십년 됐다는 선배들이 영어를 못하는 모습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이제 내가 그런 모양이 됐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민 실패작이라는 자괴감이 든다.             

 

 웬만하면 한국인과 거리를 두고 살자던 다짐도 이제서 돌이켜보면 얼마나 허황된 생각이었는지 쓴웃음이 난다. 된장국에 열무김치 등 순한국식 음식을 먹고 한인성당에 다니며 골프도 한인들과 어울려 쳐야 마음이 편한 나같은 토종 한국인이 동족사회를 멀리하겠다고 다짐했었으니 얼마나 우스운가. 세월이 흐를수록 나의 생활은 한국보다 더 한국적으로 고착화돼가는 느낌이다.      

 

 요즘 저녁시간엔 ‘6시 내고향’이라는 한국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식사를 한다. 정겨운 고향산천 풍광들이 그림처럼 펼쳐지고 먹을거리도 풍성하며 무엇보다 사람들의 인정이 넘친다. 그런 모습을 보노라면 마음이 참 편안해진다. 그러면서 아내에게 “언젠가는 고향에 돌아가 채소 가꾸며 살고 싶다”고 타령한다. 현실성 없는 소리를 자꾸 하니 아내는 이젠 대꾸도 안한다. “꿈 좀 깨시고 가끔 한국에 나가 향수나 달래다 오세요.” 한다.

 

 나의 향수병은 지난해 가족들과 함께 갔던 고국의 인상들이 너무 좋았기에 더욱 도지게 된 것 같다. 짧은 일정 속에 아쉬움만 잔뜩 안고 왔기에 더더욱 그런 것 같다. 그래서 몸은 타국에 있으나 마음은 언제나 고향 언덕을 헤매고 있다.

 

0…대개 이민생활의 성공기준은 경제적으로 얼마나 안정된 기반을 갖추었고 자식들 교육은 제대로 시켰느냐로 모아질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절반의 성공은 거두었다고 자평한다. 비즈니스 대신 직장생활을 택한 탓에 큰 굴곡은 없었으나 필요한 곳에 팍팍 쓸 수 없어 경제적으로는 풍족하질 않다. 하지만 가족들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자식들도 제 갈길 잘 가고 있으니 이것으로 자족할 일 아닌가 한다.

 

 세월은 덧없이 흐르고 나도 이제 서서히 ‘구포(구시대 동포)’ 대열에 들어서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나의 원판은 변함없는 한국인. 이게 바로 원판불변의 법칙이 아닐까.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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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25
“늙기도 서럽거늘…” - 무궁화요양원 꼭 한인들 손으로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풀어 나를 주오/나는 젊었거늘 돌이라도 무거울까/늙기도 서럽거늘 짐조차 어이 지실까.”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훈민가(訓民歌).

 

 예나 지금이나 늙는 것은 서러운 일이다. 젊어서 죽도록 일해 자식들 다 키워 밖으로 보내고 나니 어느덧 머리엔 하얀 서리가 내리고 육신도 쇠약해져 몸이 마음 같지가 않다. 늙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니 그 자체를 서러워하는 것이 아니다. 근력이 떨어지고 육신이 아파오지만 기댈 곳 없고 말벗도 없으니 인생 말년이 비참해지는 것이다.

 

 늙어서도 스스로 운신하고 독립해 살아갈 수 있다면 무슨 걱정일까만, 현실은 그렇질 못해 누군가 곁에서 지켜주어야만 한다. 돌보아줄 사람이 자식이나 피붙이라면 좋겠지만 그 또한 그럴 수가 없으니 천상 남의 손에 자신의 몸을 기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돌보는 사람이 말이라도 통하는 동족(同族)이고 해주는 식사라도 입에 맞는다면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거동이 불편할 때 부축해주는 일도 내 부모인냥 정성껏 해주면 얼마나 고맙겠는가.

 

 요즘 세상에 노부모 곁만 지키며 돌보아줄 자식을 기대할 수는 없기에 어쩔 수 없이 직업적으로 운영되는 양로원에 부모를 맡길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인데, 돈을 받고 기계적으로 노인들을 수발드는 사람들이라곤 하지만 이들이 노인들을 대하는, 아니 ‘짐짝처럼 다루는’ 실상을 알고 보면 가히  충격적이다.   

 

 바퀴벌레와 빈대가 기어다니는 너절한 침대에 노인들을 방치하고, 대소변을 못 가리는 노인들의 기저귀를 갈아주지 않아 악취가 진동하는가 하면, 밥먹는 시간이 지나면 아예 굶기고, 아프다고 약 좀 달라고 해도 무시해버리기 일쑤다. 치매 걸린 노인을 걸핏하면 육체적으로 학대해 피멍이 들게 하고 심지어 침대에 묶어놓고 몇시간씩 꼼짝 못하게 하는 악질 요양원 직원도 있다.

 

 이건 말이 좋아 장기요양원(Long Term Care)이지 ‘노인 방치 및 학대시설’에 다름 아니다. 한국말로 양로원이라 하면 어감이 좋지 않아 요양원이라는 말을 쓰지만 그게 그거다. 실상이 이렇다 보니 시설에 갇힌 노인들은 ‘여기서 나가려면 죽는 길밖에는 없다’고 탄식한다. 양로원을 운영하는 영리단체(기업)는 이러고도 버젓이 정부의 각종 재정지원을 받아낸다. 온타리오주의 경우 요양원 건립 비용에 더해 침상 1개당 매년 5만여 달러의 운영비를 대주니 그야말로 돈이 되는 장사다.

 

 이런 영리단체는 대개 여러 개의 양로원 시설을 기업 형식으로 거느리고 있는데,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수발드는 직원을 최소한으로 고용하기 때문에 직원 한 명이 많게는 노인 환자 15명 이상을 맡는 경우도 있다. 이런 현실에서 제대로 된 돌봄을 기대하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인 것이다.   

 

 지난해 무궁화한인양로원을 낙찰받은 리카케어(Rykka Care)라는 회사는 온타리오주의 총 626개 요양원 가운데 11개 양로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모기업인 리스판시브(Responsive)그룹은 14개의 요양원과 18개의 은퇴시설을 갖고 있다. 이들은 양로원 운영의 노하우를 갖고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은 진정 노인들을 보살피기 위한 차원의 노하우라기보다는 돈을 버는 쪽에만 물리(物理)가 트인 기업이다. 이런 악덕업체가 노후생명들을 돌보는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겠는가.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양로원의 일부 민낯이 드러나긴 했지만 외부로 밝혀지지 않은 비참한 사실도 수두룩할 것이다. 열악하기 짝없는 수용소 같은 시설에서 심신이 쇠약한 노인들이 호흡기 질환에 걸려 하루에도 수백 명씩 죽어나가는 실상은 별로 이상할 것도 없는 현실이다. 오죽하면 수북히 쌓여가는 시신을 처리하기 위해 군대 병력까지 투입했을까.         

 

 리카케어가 운영해온 양로원들에서는 하루에도 수십 명의 노인들이 목숨을 잃고 나갔다. 그러나 가족들은 면회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발만 굴러야 했다. 이 회사의 여러 양로원이 온주정부에 의해 운영권이 박탈됐고, 부모들이 집단사망에 이르도록 방치한데 분노한 가족들로부터 집단소송을 당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회사가 한인노인들이 입주해있는 무궁화양로원을 인수한다고 생각해보자. 여러분 같으면 이런 회사가 운영하는 시설에 부모들을 보낼 수 있을까.    

 

 지금 한인사회에서는 무궁화양로원을 재탈환하자는 캠페인이 거세게 일고 있다. 지난해 입찰에서는 ‘돈의 논리’에 밀려 지고 말았지만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부도덕한 영리기업이 양로원을 경영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만큼 우리는 이제 다시 일어서야 한다.

 

 무궁화양로원이 어떻게 세워진 시설인가. 동포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합쳐져 이룬 감동적인 결실이다. 이것을 가만히 앉아 빼앗길 것인가. 어떤 경우든 리카케어 같은 기업에 넘겨줄 수는 없다. 전 한인사회가 합심해 대대적인 반대운동을 펼쳐야 한다.

 

 그동안 무궁화 요양원 살리기에 앞장서온 한인사회 인사들이 주류사회를 상대로 다방면으로 움직이고 있다. 우리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도와야 한다. 그중 하나가 현재 진행중인 ‘무궁화의 영리법인 인수를 저지하기 위한 영문편지’ 보내기 캠페인이다. 한인사회 모두의 염원이 전해질 수 있도록 이에 적극 동참하자.

 

 나이를 불문하고 양로원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언젠가 내가 맞이할 일이다. 그러니 내가 들어갈 집 내가 살린다는 각오로 참여하자.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 쥐고/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우탁(禹倬)의 ‘탄로가(嘆老歌)'-    (사장)     *신문지상에 탄로가의 한자가 잘못 표기되어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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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18
나도 당할 수 있다 - 인종, 그 불편한 진실

▲최근 전 세계에서 벌어진 인종차별 반대 시위 

 

 지난 주, 퇴근하고 집에 오니 작은딸이 풀이 죽어 시무룩한 표정으로 있었다. 연방공무원인 딸은 코로나 사태 이후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중이다. “왜 그러니? 무슨 일이라도 있어?” 물으니 대답을 안하고 자기 방으로 갔다. 이에 아내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한숨을 쉬며 다음과 같은 얘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딸의 직장 동료(30대 후반의 미혼 흑인 남성)가 현재 웰세를 살고 있는데 거처를 옮기고 싶다며 딸에게 엄마가 부동산중개인으로 일하고 있으니 토론토 다운타운의 콘도 렌트 좀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특히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토론토 다운타운 지역의 콘도를 찾아서 보내며 꼭 그곳에 살고 싶다고 했다. 이에 아내는 딸의 직장동료라니 더욱 신경써서 일해주기로 하고 우선 MLS상의 렌트내역을 살펴 보았다. 그랬더니 콘도 주인도 한국인이고 중개인 역시 한인(여성)으로 보였다. 

 

 이에 아내는 의뢰인에게 필요한 사항을 질의하고, 가장 중요한 사항인 렌트비는 얼마까지 낼 수 있는지 물었더니 요청금액보다 조금 더 올려서라도 들어가고 싶다고 했다. 또한 입주날짜도 콘도 주인이 원하는대로 최대한 당겨서 맞출 수 있다고 했다. 이에 아내는 상대편 중개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 한국분이세요?” “Yes, I am~ ” “그럼 편하게 한국말로 할까요?” “No~ ” 젊은 한인여성 중개인은 한국말을 모두 이해하는 것 같았으나 굳이 영어로만 말했다.(이런 젊은이들이 수두룩하다!). 아내는 렌트 의뢰인이 콘도 주인이 요청하는 모든 사항(가격, 입주날짜 등)을 충족하겠다는 뜻을 전했더니 상대방 중개인은 “Sounds good!”이라며 흔쾌히 수락의 뜻을 비쳤다.

 

 특히, 다른 오퍼가 들어왔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그렇긴 하지만 이쪽 오퍼가 더 유리한 듯한 인상을 짙게 풍겼다. 이에 아내는 의심의 여지도 없이 일이 성사될 것으로 믿으며 밤늦게 오퍼를 작성해서 보냈다. 그러면서 즉각 수락 답신이 오기를 기다렸으나 밤이 늦어서 그런지 답이 오질 않았다. 오퍼 유효 날짜는 다음날까지이니 기다리는 수밖에…

 

 그런데, 기다리는 수락 답신은 다음날 오퍼유효시간을 넘기고도 오질 않았다. 이에 아내가 무슨 문제라도 있는지 궁금해서 상대편 중개인에게 이메일을 보냈으나 묵묵부답… 답답해서 전화를 걸었더니 상대 중개인은 “이미 다른 오퍼를 받았다”는 짤막한 답만 했다. 아내는 어이가 없어 무슨 대꾸를 하려다 말고 그냥 “알았다”며 전화를 끊었다. 철석같이 믿고 오퍼를 넣었고 의뢰인도 당연히 수락이 된 줄 알고 있을텐데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왜 콘도 주인은 이쪽의 유리한 오퍼를 받을 것처럼 하다가 갑자기 마음을 바꾸었을까. 요구보다 더 많은 금액에 입주일도 빠르며, 신분도 확실하고(연방공무원), 크레딧 점수도 괜찮으며, 필요하다면 전 주인의 추천서(referral)까지 제출할 수 있는 등 무엇 하나 손색이 없는데 왜 거절을 당했을까.           

 

 모든 정황으로 미루어 이유는 단 한가지, 의뢰인의 피부색때문이었다. 신분증(ID)에 나타난 검은색 피부 외에는 달리 설명할 이유가 없었다. 아내와 딸은 어이가 없었지만 하는 수 없어 의뢰인에게 사실을 통보했다. 그는 씁쓸해했으나 더 이상 이유는 묻지 않았고 이번엔 같은 지역에 있는 다른 콘도를 보내며 렌트를 부탁했다. 그런데 그 콘도는 임대료가 더 비쌌다. 아내는 그와 또 교신하며 가격이 그렇게 비싼데 괜찮겠느냐고 확인했고 그는 꼭 그곳에 살고 싶으니 주선해달라고 했다.

 

 이에 아내는 다시 전과 같은 방식으로 일을 진행해 오퍼를 넣었다. 이번 콘도의 주인은 중국계였고 중개인 역시 중국계였다. 그 중개인 역시 처음엔 매력적인 오퍼라며 수락할 것처럼 반가워하더니 다음날 유효시간이 지나도록 답변은커녕, 이번엔 아예 전화도 받질 않았다.

 

 두번에 걸쳐 똑같은 일이   반복되자 딸은 자기일처럼 가슴 아파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오, 불쌍한 000!. 피부색깔이 무슨 죄가 있다고…”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건가요?”

 

 그런데 더욱 괘씸한 일이 며칠 후 다시 일어났다. 첫번째 오퍼를 거절했던 한인 콘도 주인과 젊은 한인여성 중개인은 무엇이 두려웠는지 MLS에서 리스팅을 아예 Terminate(계약종료)시켜 버렸다. 수락한 오퍼의 조건이 흑인남성보다 좋지 않을 경우 인종차별에 의한 처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후에 그는 다른 사람을 시켜 내 아내에게 전화를 거는 등 눈치를 보고 있다…). 그 흑인 남성은 지금도 계속해서 살 집을 찾고 있다.      

 

 지금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인종차별을 타파하자는 거센 물결이 일고 있다. 그런데, 냉정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내가 위와 같은 콘도 주인일 경우, 세입자를 고를 때 과연 인종의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아마 이 질문에 당당하게 그렇다고 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보자. 우리 한국인도 이 나라에서는 소수 유색인종의 하나에 불과하다. 따라서 나도, 우리가족도 언제 어디서 이런 수난을 당할지 모른다. 그러니 명심하자. 우리 스스로 인간을 평등하게 대하는 시각을 가질 때 우리 자신도 대우받을 수 있음을. 어느 상황이든 피부색이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문제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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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11
방학을 끝내며-코로나 휴식이 준 교훈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저는 이 시간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보낸 시간이 너무 좋았고, 조용히 저 자신을 돌아볼 기회도 가졌습니다. 솔직히, 좀 더 쉬고 싶은데 일을 시작하라니 오히려 아쉽네요…”

 

 최근 한 친지가 전화로 들려준 이야기다. 코로나로 인해 일을 못하면서 집에서 쉬는 소감을 이렇게 표현했다. 어떤 후배도 “저희는 불편한 점을 거의 못 느꼈습니다. 집에서 푹 쉬면서 그동안 돌보지 못한 집안일도 하고 책도 읽고 낮잠도 자고. 정부에서 지원금까지 주니 이렇게 편하고 고마울 수가 없네요…”  

 

 요즘 주변에서 이런 이야기를 심심찮게 듣는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봉쇄조치가 4개월 가까이 계속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일상으로’ 돌아가면 좋겠다고 하는 반면에 이 봉쇄기간이 무척 소중히 여겨졌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0…우선 많은 직장과 가게들이 문을 닫으니 거리에 차가 줄어 통행에 한결 여유가 있고, 사람들간에 부딪칠 일이 없어지니 마음도 훨씬 편안하다.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은 싫어도 끼여야 하는 모임과 회식자리 등이 있기 마련인데 식당들이 문을 닫아 그럴 일이 없어지니 얼마나 편한지 모르겠다는 소리도 들린다. 나 스스로도 별로 내키지 않는 모임에 나가 헛웃음 웃을 일이 없어 너무 좋다.   

 

 집에 있으면서 그동안 손보지 못한 곳을 고치고 가족들끼리 오손도손 정을 나누니 미쳐 몰랐던 가정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됐다. 따스한 집밥을 먹고 차분히 자신을 되돌아볼 기회도 많았다. 일을 안해도 다같이 안하니 일단 각박한 경쟁에서는 한숨 돌리게도 됐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인지라, 어느새 새로운 일상에 익숙해져 있는 듯하다. 강제된 휴식이긴 하지만 전혀 다른 세계에 눈을 돌리게 된 게 사실이다. 사람들 만나느라 항상 붕 떠있는 듯한 삶을 청산할 기회도 됐다.

 

 책도 많이 보게 됐고 자신과 대화하면서 내 스스로를 알아보는 시간도 됐다. 사교적인 줄만 알았던 내가 이처럼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다니!... 이런 뜻밖의 발견을 하게 됐다.     
 


 타의에 의한 쉼이었지만 코로나는 분명 인간세상에 긍정적인 측면을 가져다 주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 강요된 휴식시간을 그리워할 날이 있을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식당, 미용실 등 많은 자영업자들이 큰 피해를 당해 미안한 말이지만, 정부에서 긴급재난지원금(CERB)이라며 통장으로 적지 않은 금액을 입금해주지, 어린 자녀 우윳값에, 65세 이상 노인 우대금, 자영업자에겐 종업원 임금을 지원해주는 등 여러 도움을 주기 때문에 그야말로 밥 굶어 죽을 일은 없다.

 

 0…그런데 이제 서서히 경제 문을 연다니 4개월 여의 느긋한 휴가를 마치고 다시 복잡한 일상으로 복귀하는 느낌이다. 어찌 보면 달콤한 방학을 마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기 싫어하는 어린시절 학생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런 탓에 코로나 휴식시간을 아쉬워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

 

 그동안은 개스값도 싼데다 먼거리를 이동할 일도 없어 교통비가 거의 들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서서히 국제유가가 오르더니 마침내 토론토의 개스값도 1달러선을 넘어섰다. 그러니까 음지가 있으면 양지도 있는 법이다.

 

 사회적 봉쇄기간 중 불편했던 것은 머리를 제때 손질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거리에는 머리가 긴 사람들이 넘쳐났고 나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보면 괜히 웃음이 나왔다. 이발소(미용실)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하게 된 것도 이때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사람들은 식당 등 세입 자영업자들인데 이들의 생존 몸부림은 안쓰럽다. 이런 상황에선 건물주들이 월세를 안받거나 깎아주면 좋겠건만 정부에서 주는 지원마져 외면한 채 끝없는 탐욕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코로나 휴식기간에도 교훈을 못 본 것이다.           

 

 0…“무리지어 다니면서 성공한 사람은 없다. 혼자 있는 시간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고, 혼자일 수 없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일본 메이지대 교수 사이토 다카시는 베스트셀러 ‘혼자 있는 시간의 힘’에서 때론 '나'에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항상 누군가와 연결돼 있거나 누군가와 잘 지내는 것이 꼭 유익한 게 아니란 것이다.

 

 나도 혼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지난날을 회상해보았다. 돌아 보건데, 내 머리 속에는 좋은 사람보다 싫어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그래서 인간관계가 늘 피곤하게 여겨졌다. 모임엘 가도, 성당엘 가도 꼭 보기 싫은 사람이 눈에 띄었다. 이젠 좀 가슴을 넓게 펴고 모두를 포용하는 자세를 가져보자고 다짐한다.               

 

 내 스스로 남의 평가와 기준에 휘둘리지 않고 자존(自存)할 수 있을 때 남과도 잘 지낼 수 있다. 바쁜 삶을 살더라도 잠시나마 자신에게 집중할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좋으며, 그 시간들을 통해 자존할 여력을 갖출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코로나 휴가는 나름 값진 시간이었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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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4
거꾸로 가는 미국사(史) -시대착오적 인종차별주의


▲한 백인 여성이 흑인 남성이 자신을 위협한다며 경찰에 신고하는 모습(왼쪽). 백인경찰에 의해 무릎으로 목을 눌린 채 괴로워하는 흑인 남성.

 

 1991년 3월 3일 로스앤젤레스에서 일단의 백인 경찰관들이 과속으로 질주하는 흑인 운전자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무차별 집단구타를 자행했다. 이 폭행사건은 피해자인 로드니 킹(당시 25세)이 평생 청각장애인이 될만큼 심각한 사건이었는데도 관련 경찰들은 이듬해 법정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경찰이 킹을 집단폭행해 피투성이가 된 모습이 공개되면서 흑인사회의 분노가 폭발, 시위가 벌어졌고 급기야 6일간의 대규모 폭동으로 비화됐다. 이 사건으로 53명이 사망했고 수천 명이 부상당했으며 재산 피해액만 10억 달러를 넘었다. 당시 약탈과 방화로 LA 한인사회도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

 

0…지난 5월 25일 오후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경찰이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46)를 위조지폐 사용혐의로 체포하던 중 과잉진압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주위에 있던 시민들의 항의가 있었음에도 경찰은 플로이드의 목을 무릎으로 짓눌렀고 이 모습이 담긴 영상이 삽시간에 퍼져 미국 전역은 난리가 났다.

 

 미니애폴리스의 식당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는 플로이드가 편의점에서 물건을 구입한 후 지불한 20달러 지폐를 위조지폐로 의심한 가게주인이 신고를 해 경찰 4명이 출동했다. 체포 과정에서 경찰은 수갑을 채운 플로이드의 목을 무릎으로 짓눌렀다. 그는 숨을 못 쉬겠다며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경찰은 무시했다.

 

 경찰은 8분 46초간 플로이드의 목을 짓이기듯 눌렀고, 그가 의식을 잃은 뒤에도 2분 53초간 무릎을 떼지 않았다. 고통을 호소하던 그는 코피를 흘리며 미동도 하지 않게 됐고 병원으로 옮겼지만 숨졌다. 경찰이 목을 짓이기는 장면은 흡사 닭을 잡을 때 목을 비트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인간이 이렇게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지 몸서리가 쳐진다.    

 그나마 현장 모습이 행인들의 동영상으로 찍혀 인터넷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논란이 가열되자 경찰은 플로이드가 물리적으로 저항했다고 했지만 CCTV 영상에서는 그가 어떠한 저항도 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또 “위조지폐 용의자로 의심되는 남성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의료사고가 발생한 것”이라고 거짓말까지 했다.

 

0…플로이드 사건이 일어난 같은 날 아침, 뉴욕 센트럴 파크. 한 백인 여성(에이미 쿠퍼)이 개와 함께 산책을 나왔다. 개에 목줄을 채우지 않은 채였다. 공교롭게 같은 성(姓)을 가진 흑인 남성(크리스찬 쿠퍼)이 이를 목격하고 (공원의 규정대로)개에 목줄을 채우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를 묵살했고, 크리스찬이 규정위반 현장을 휴대전화로 촬영하면서 두 사람 사이에 언쟁이 붙었다.

 

 백인여성은 크리스찬의 촬영이 계속되자 911에 거짓신고를 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African-American’) 남성이 나와 개를 위협한다. 경찰을 보내달라."면서 위기에 처한 듯 울부짖었다. 그녀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남성'이란 말을 반복하면서 그의 인종을 강조했다. 그는 이때 그녀에게 다가가지도 않은 상태였다.

 

 이 사건은 크리스찬의 가족이 영상을 인터넷에 올리면서 큰 파문으로 이어졌다. 그가 단지 새를 보기 위해 공원에 나선 작가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백인여성의 인종차별 행동은 거센 비난을 받았다. 그녀는 자산운용사의 고위직으로 근무 중인 중산층 여성. 네티즌들은 “경찰에 신고당한 크리스찬은 자칫 (경찰에 의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며 분노했다.

 

0…같은 날 연이어 발생한 두 사건은 미국사회의 뿌리깊은 인종차별 의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국제적 논란을 재점화했다. 특히 조지 플로이드의 (개)죽음을 기폭제로 미 흑인사회는 분노의 화염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미니애폴리스에서 시작된 시위는 미 전역으로,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분노로 들끓는 흑인시위에 기름을 부은 자가 도널드 트럼프다. 그는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에 애도를 표한다면서도 시위대를 향해서는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퍼붓고 비난했다. 폭력배, 급진좌파, 군대를 동원해 발포하겠다는 등 군사독재자나 다를 바 없는 폭언을 쏟아냈다. 시위대 배후에 자신의 안티세력이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주지사들에게 강경진압을 선동하고 말을 듣지 않으면 자기가 직접 나서겠다고 엄포를 놓는가 하면 평화적인 시위대를 최루탄으로 밀어붙이고 그 자리에서 성경책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기까지 했다. 이건 인간이 할 짓이 아니다.

 

0…미국의 인종차별 사건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가깝게는 1991년 로드니 킹 사건, 1995년 에밋 틸 사건, 2012년 트레이본 마틴 사건, 2014년 마이클 브라운 사건 등 즐비하다. 여기에 미국은 현재 코로나로 엄청난 피해를 입고 있다. 지금까지 확진자는 190만명, 사망자는 11만 명에 육박한다. 특히 흑인지역일수록 더 취약함을 보이고 있다.

 

 사상 최악의 실업률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이 폭증하는 중에 인종차별까지 가해진 이번 사건으로 흑인사회가 마침내 폭발했다. 트럼프 집권 후 갈수록 노골화되는 백인우월주의도 큰 영향을 주었다. CNN은 "흑인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녹화된 영상에 의존해야 한다. 영상이 없었다면 정의의 바퀴는 돌아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피부가 희여멀건한 것 외에는 아무 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백인우월주의자들. 국가가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와중에도 뉴욕 증시는 여전히 달아 오르고 있다. 옆에서 이웃이 죽든 말든 천민자본주의는 여전히 불타고 있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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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31
개근상의 추억 -코로나가 바꾼 직장 풍속

 

 한국에서부터 30년 이상 직장생활을 해온 나는 이민 와서 일거리를 찾느라 몇 개월을 보낸 것 외에는 집에서 쉬어본 일이 없다. (그러니 인생이 얼마나 피곤하겠나…). 자고로 한국 남자들은 아침에 해가 뜨면 어떤 일을 하든 밖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 마치 불문율처럼 인식돼왔다. 허긴 누군 집에 있고 싶어 있겠는가. 본의 아니게 직장을 잃었거나 자영업이라도 할일이 없으면 집안에 머물 수 밖에.  

 

 그런데 나는 한국에서나 이민 와서나 원거리 통근을 많이 해왔다. 그래서 직장이 집에서 가깝거나, 아니면 아예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특히 눈이 수북히 쌓인 겨울날 아침엔 정말이지 미끄러운 고속도로를 운전해서 갈 생각을 하면 죽을 지경이다. 그럴 땐 집에서 일하는 사람은 얼마나 좋을까 라고 한숨 지을 때가 많다.          

 

 이래서 재택(在宅)근무, 즉 집에서 일하는 직업은 나의 드림이었다. 재택근무는 무엇보다 일정한 시간에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니 육체적으로 자유롭고, 직장사람들과 부딪칠 일 없이 자기 일만 하면 되니 얼마나 속이 편한가. 복장도 간편하게 입고 간식 같은 것도 마음대로 먹고… 그러나 아무리 다른 일거리를 찾아봐도 별다른 기술이 없는 나는 천상 직장에 나가 직원들과 복작대며 일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0…재택근무는 첨단 정보통신기술(IT)이 발전하면서 젊은층을 중심으로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를 보여왔다. 그러다 최근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바이러스 전파를 막기 위해 여러 직장들이 잇달아 문을 닫고 직원들이 집에서 일하도록 하면서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코로나를 계기로 재택근무가 ‘뉴 노멀'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특히 IT 산업의 본거지라 할 미국 실리콘밸리에 재택근무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는 앞으로 회사 직원의 절반 이상이 재택근무를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업무 생산성을 보니 우리가 기대했던 이상으로 잘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재택근무를 높이 평가했다.

 

 소셜미디어 트위터는 직무 성격이나 여건상 재택근무가 가능한 직원이 영구히 재택근무를 원할 경우 그렇게 하기로 했다. 트위터의 잭 도시 CEO가 창업한 모바일 결제 업체 스퀘어도 직원들의 재택근무를 무기한 허용키로 했다. 구글도 3월부터 재택근무를 시행하고 있으며 최소한 올해 말까지 이 상태를 유지할 방침이다.    

 

 캐나다의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쇼피파이의 토비 루트케 CEO는 "사무실 중심주의는 끝났다"고 선언하며 내년까지 사무실을 폐쇄하고 이후에도 대부분 직원이 원격근무를 하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캐나다의 IT 기업 오픈텍스트는 전 세계 120개에 달하는 사무실 중 절반 이상을 없애겠다고 했다.

 

 0…각 기업들이 잇달아 재택근무를 시행하는 이유는 뭘까. 우선 회사로 보아서는 비용절감을 들 수 있다. 직원들이 사무실에 덜 나오면 그만큼 사무실 공간과 부대비용을 줄일 수 있다. 또한 직원들은 출퇴근에 드는 시간과 교통비용, 정신적 스트레스가 없어지고 직장 상사의 간섭 없이 자유롭게 일할 수 있어 좋다.   

 

 코로나라는 돌발 상황으로 인해 억지로 하게 된 실험이지만 재택근무의 성과는 합격점인 듯하다. 이로써 코로나 사태는 전 세계적으로 재택근무를 확산시킨 도화선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재택근무로 인해 홈오피스(home office) 관련 제품의 수요도 크게 늘었다. 웹캠, 캠코더, 마이크, 노트북, 태블릿PC 등의 매출이 급증했다. 이래서 인간사엔 음지가 있으면 양지도 있는 법이다.    

 

 0…하지만 재택근무를 모두가 반기는 것만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재택근무의 가장 큰 맹점으로 혁신을 위한 아이디어 교류의 부재를 꼽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집에서 일하더라도 혁신과 제품 개발을 가능하게 하는 수준의 의사소통과 동료애를 유지하는 것이 기업에 도전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직원들도 재택근무가 마냥 지상천국만은 아닐 수 있다. 전에는 회사를 마치면 업무가 끝이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재택근무를 하니 컴퓨터 앞에 계속 앉아 있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든다. 공사(公私) 구별이 안 되는 것이다. 행동이 자유롭긴 하지만 규칙적인 생활이나 업무이행이 잘 안되는 점도 있다. 이에 따라 완전한 재택근무보다는 페이스북처럼 '재택+사무실 근무'의 하이브리드형 모델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도 있다.

 

 0…코로나는 우리의 일상을 많이도 변화시켰다. 나 같은 세대만 해도 웬만큼 아파서는 학교나 직장에 빠진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웠다. 초중고 시절 개근상(皆勤賞), 정근상(精勤賞)이라는 상까지 있었으니 쉴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러나 이젠 세상이 달라졌다. 몸이 조금만 아파도 집에서 쉬는 것이 자연스런 현실이 됐다.

 

 전에는 몸이 아파도 출근하는 것이 직장에 대한 충성의 상징이었지만 지금은 무모한 짓이라고 눈총받는 세상이 됐다. 조금이라도 아픈 기미가 보이면 무조건 쉬는 것이 본인을 위해서나 주변에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캐나다정부도 직장 근로자들에게 연간 열흘간 유급 병가(病暇)를 주도록 의무화할 방침이다.

 

 어찌보면 그동안 부조리와 불합리 투성이었던 인간세상을 코로나가 합리적으로 바꿔주고 있는 느낌이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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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4
다시 보는 막스 베버 -코로나 심판대에 선 자본주의

 

    ▲코로나 사태 와중에 조속한 경제개방을 촉구하는 미국 시위대. 원내는 막스 베버

 

 “미국처럼 영리추구에서 종교적 의미가 사라진 곳에서 기업활동은 경쟁욕과 결부된 스포츠나 다름없다. 미래에 누가 이 쇠창살 안에 살아가게 될 것인지, 끔찍하고 소름끼치는 발전이 끝나갈 무렵, 새로운 예언자가 출현할 것인지, 자포자기 상태에서 기계적이고 화석화된 인류가 출현할 것인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막스 베버(Max Weber, 1864~ 1920)가 타계한지 올해로 100년이 흘렀다. 그럼에도 “무제한적으로 영리만 추구하는 것은 자본주의와 관계가 없다”는 그의 역설은 여전히 유효하다. 베버는 불후의 명저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Die protestantische Ethik und der Geist des Kapitalismus, 1905)’에서 자본주의는 비합리적 충동의 억제, 또는 적어도 합리적 조절과 동일하며, 근면한 노동, 금욕적 절제, 철저한 시간관리, 재산 증식, 소명의식으로 무장된 태도야말로 자본주의의 정신이라고 규정했다.

 

 베버에 따르면 근대 서구의 합리적 자본주의는 프로테스탄티즘의 건전한 덕목과 윤리를 기반으로 발전했다. 그것이 탐욕적 의사(擬似) 자본주의와 구별되는 점이다. 그러나 운명은 그 얇은 외투를 점점 무거운 쇠우리(iron cage)로 바꿔버렸다. 외적인 재화가 차츰 인간을 지배하자 종교적 열정은 증발되고 재화에 대한 관심만 남게 되었다. 이에 베버는 자본주의의 미래를 우울하게 전망했다.

 

 베버의 우려대로 오늘날 우리는 무거운 쇠우리에 갇혀 영혼 없는 재화의 포로가 되었다. 이럴 때야말로 초기 프로테스탄트들이 부(富)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가졌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0…베버의 자본주의 정신은 ‘돈욕심’과는 구분된다. 자본주의 정신에 충실한 기업가는 독점과 특권을 통해 이윤을 남긴 봉건귀족과 대자본에 대항하면서 성장했다. 이들은 도시로 몰려든 유랑민들을 노동자로 받아들여 기업을 창설하고, 벌어들인 이윤을 낭비하지 않고 재투자하면서 많은 노동자를 기업에 결합시킴으로써 자본주의 발달의 주역이 됐다.

 

 여기서 베버는 “자본주의 정신은 평화로운 방식으로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지 않았다. 기업가들이 혁명적 변화를 이루어내는 과정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은 고객과 노동자들의 신뢰를 얻어내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0…자본주의 종주국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현상들은 불행하게도 베버가 우려했던 예언이 적중했음을 증명하고 있다. 감영병으로 하루에도 수백, 수천 명이 죽어 나가고 무수한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떠도는 현실에서 ‘지금은 사람 목숨보다 돈벌이가 우선’이라는 섬찟한 구호가 난무한다.   

 

 코로나는 현재까지 10만 명에 가까운 미국인의 목숨을 앗아갔고 실업률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가장 높은 수준(20%)이다. 그러나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나라를 통합해 공중보건체계를 가속화하고 경제적 구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이를 제공하는 대신, 거짓말을 식은 죽 먹듯 하고 자신에 대한 비난을 회피하며 미국사회를 분열시키는 전략으로 재미를 보고 있다.

 

 전문가들의 조언은 안중에도 없고 인명피해가 아무리 커도 어서 경제 문을 열라고 주지사들을 닥달하고 있다.

 

 ‘탈진실(post-truth)’이라는 그럴싸한 신조어는 이 시대의 화두가 되었다. 우연인지, 트럼프가 정계에 등장한 2016년 11월 옥스퍼드 영어사전이 ‘post-truth’를 올해의 단어로 선정함으로써 탈진실 현상은 우리 세계의 일부가 되었다. 사전은 “여론을 형성할 때 객관적 사실보다 개인적 신념과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현상”이라고 탈진실을 정의한다. 트럼프 현상과 탈진실만큼 잘 들어맞는 낱말의 조합도 흔치 않을 것이다.

 

 명백한 사실을 부정하고 기만하는 주장, 감정섞인 주장이 탈진실로 승화되는 현상, 스스로가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다고 느끼는 백인 노동자층은 트럼프가 아무리 거짓말과 미친 짓을 해도 여전히 열광한다.

 

 트럼프가 코로나를 예방하기 위해 말라리아 치료제를 매일 복용하고 있다는 폭탄 발언을 내놓자 주가가 껑충 뛰었다. 전혀 입증되지 않은 허위주장을 쏟아내도 대중들은 좋아라 미쳐 날뛴다. 이런 상황에서 신중하게 행동하다간 반역주의자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합리적, 객관적 지표로 따지면 올 11월 미 대선에서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하지만 진실이 무엇인지, 진실이란 게 과연 존재나 하는지 의심받는 시대에 트럼프의 탈진실 선거 운동은 콘크리트 지지층을 다시 한번 불러 모을 폭발적 잠재력을 여전히 갖고 있다.

 

 코로나는 머잖아 통제될 수 있겠지만, 탈진실의 시대는 쉽게 물러가지 않을 것이다. 대중의 탈진실 정치에 대한 열정은 쉽게 식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중은 조 바이든 식의 고답적이고 점잖은 선거운동은 활기가 없다며 외면한다.    

 

 0…미국은 지금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돈을 풀고 있다. 돈을 풀 때마다 주가는 폭등한다. 실물경제는 빈껍데기인데 주가만 치솟으면 경제가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일반 개미들은 미래에 희망이 없다. 이러다 보니 점점 극우 세력이 확장된다. 트럼프 같은 인간이 우연히 나온 게 아니다.

 

 “코로나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불거진 문제점의 트리거(방아쇠)가 돼 자본주의 개념을 바꿔놓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해야 했을 일에 플러스로 더 해야 할 일을 우리에게 남겼다” (장하준 영국 캠브리지대학 교수)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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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w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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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4
내 마음의 산사(山寺)- 아련한 봄날의 추억들

 

 시골이 고향인 나는 학창시절부터 충남 계룡산 자락에 있는 동학사(東鶴寺)를 자주 찾곤 했다. 꼭 부처님을 만나러 간다기보다는 산사(山寺)의 고즈넉하고 청초한 분위기가 좋아서였다. 은은한 목탁 소리에 향불 냄새를 맡으며 사찰 주위를 한바퀴 돌고 나면 정신이 쇄락(灑落)해지고 모든 잡념이 말끔히 사라졌다. 발길을 옮겨 산자락 위로 올라가 남매탑까지 이르면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히면서 기분이 날아갈듯 상쾌해졌다.

 

 사찰은 사계절 나름대로 풍광이 달라 언제 가도 운치가 있다. 특히 지금같은 봄날에 흐드러지게 피어나던 동학사 입구의 벚꽃터널은 꿈결에도 마냥 그립기만 하다. 그러나 올해 캐나다(토론토)는 아예 봄날씨가 실종돼 5월 중순에도 눈이 내리면서 꽃구경 하기가 더 어렵게 됐다. 이런 탓에 산사에 피어나던 벚꽃과 개나리, 목련, 진달래 등 봄꽃들이 더욱 보고 싶은 요즘이다.     

 

‘선운사 고랑으로/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작년 것만 시방도 남았습니다./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니다.’ (서정주의 선운사 동구(洞口))

 

 

0…산사는 특히 기분이 가라앉고 우울할 때 찾아가면 언제나 아늑하고 포근히 맞아주어 어머니의 품속 같았다. 조용히 법당에 무릎 꿇고 앉아 합장(合掌)하면 잡다한 번뇌가 말끔히 씻겨나갔다. 한동안 무념무상(無念無想)의 세계에 잠기면 정신도 한결 맑아진다.

 

 8년 만에 고국을 방문한 지난해 10월 중순엔 형님과 함께 계룡산 동학사 너머 서쪽에 자리잡은  갑사(甲寺)를 찾았다. 그때는 가을이었는데, 단풍진 사찰의 풍경(風磬) 소리가 타국에서 온 나를 변함없이 포근히 반겨주는 듯했다. 천년 고찰은 언제 찾아가도 그렇게 묵묵히 외로운 나그네를 안아준다. 절 입구에 달려있던 빨간 홍시감은 까치가 다 먹었겠지…     

 

 이민 와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개종(改宗)하긴 했지만 아직도 산사의 적막한 바람 소리, 새 소리가 그리울 때가 많다. 신봉하는 종교 여부를 떠나 산사는 속세에 찌든 인간의 심신을 씻어주는 청량제 역할을 해준다.

 

 요즘 특히 산사가 그리워지는 것은 시절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벌써 석달 이상 계속되고 있는 코로나 사태로 마땅히 어디 바람쐬러 갈 곳도 없고 마음이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이럴 때 가까운 곳에 산사라도 있다면 며칠 푹 쉬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고 싶다. 산사에 묵으면서 청정한 달 아래 서늘한 밤공기를 마시면서 경내를 거닐고 싶다.

 

 그러나 그런 것이 어려우니 나는 가끔 한국의 인터넷을 통해 여행지 둘러보길 좋아한다. 예전에 다녔던 산과 사찰 등을 감상하면서 혼자 향수에 젖어들 때가 있다. 그중 요즘같은 철에 가장 마음을 잡아당기는 것은 역시 푸른 산과 사찰이다.

 

 엊그제는 외국 기자의 눈으로 본 순천 송광사(松廣寺) 기사를 읽으면서 잠시 무욕의 세계에 빠져 보았다. 기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산사의 고요한 풍경을 Shangri-la(지상낙원)라 표현했다. 서양기자의 눈에도 그것이 지상의 낙원으로 비쳐졌던 모양이다. 텅 빈 승방(僧房)에 이불 한 채만 덜렁 개어있는 모습에서 오히려 꽉 찬 느낌이 드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0…짤디짧은 토론토의 봄이 어느새 낙화(落花)되어 지고 있다. 봄은 오는 듯 마는 듯, 존재하는 듯 마는 듯하다 가버리기에 더욱 아쉽다. 순간처럼 왔다 속절없이 지고 마는 짧은 생명이 인간사 모습과 닮았다.

 

 우리는 근심걱정 없이 행복했던 시절을 회상하며 “그때가 봄날이었다”고 한다. 봄날은 그렇게 포근하고 감미롭고 근심 걱정이 없는 계절이다. 내 인생의 봄날은 언제였을까. 혼자 있을 때 가만히 옛날을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아련한 봄날처럼 느껴진다. 밭일 하시는 어머니를 따라가 시냇가에서 개울 치고 가재 잡던 어린시절, 이상과 꿈도 많던 사춘기 시절, 청춘이 만개(滿開)했던 대학시절, 예쁜 아내를 만나 달콤한 사랑에 빠져 지낸 신혼시절…

 

 이제 그런 날들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비록 물질적으론 빈한했지만 그것이 별로 불편하거나 심리적으로 위축되지 않았고 마음이 평화로웠던 시절. 지금은 그 시절에 비하면 부족할게 별로 없건만 끝없이 욕심을 내면서 스스로를 불만족 속으로 몰아넣는다.   

 

 그리 특별하지도 않은 추억들이 가슴 아리게 그리운 것은 그런 날들이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내 인생의 봄날은 언제나 지금이다. 힘들고 어려운 지금 이 순간도 세월이 흐르고 나면 모든게 그립고 ‘그때가 봄날이었다’고 회상하게 될 것이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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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7
네가 알면 얼마나 아느냐 -몸을 낮출수록 올라가는 인격

                                   ▲탈북자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태영호(왼쪽), 지성호씨

 

 “내가 그 회사에 근무해봐서 아는데…”, “나와 00 중앙부처 아무개는 절친한 사이라 그쪽 사정을 훤히 알지…” “군시절 해군에서(혹은 공군에서, 헤병대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군함(혹은 전투기, 상륙작전…)에 대해 잘 알지…”

 

 사람은 누구나 자기 과시욕이 조금은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자신의 과거경력을 부풀려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남자 세계에서 이런 특징이 잘 나타난다. 흔히 술자리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군시절 경험담인데 나도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할 수 없다. 해병대, 그것도 장교, 그중에도 장성의 부관(副官) 출신이니 왜 할말이 많지 않겠는가. 술 한잔 들어가면 군시절 무용담을 신나게 늘어놓곤 한다. 그러면 스트레스도 풀린다.  

 

 그런데 가관인 것은, 일반 병사 출신으로 군사기밀이나 특수조직 등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부서에서 근무한 사람이 마치 3군의 작전구조를 다 아는 것처럼 떠벌이는 것이다. 병사들 일상을 어느정도 이해하는 나같은 사람은 그럴 때 그냥 빙긋이 웃고 만다. 속으로는 “네가 뭘 안다고…” 하면서 말이다.       

 

 대기업에 잠시 근무했던 사람이 그 회사의 지배구조를 훤히 아는 듯 큰소리 치질 않나, 국회의원 한두명 아는 걸 가지고 한국의  정.재계 인사들과 큰 교분이 있는 것처럼 으스대는 사람도 많다. 누군가는 내가 잘 아는 사람에 대해 열을 올려 이야기하는데, 듣자하니 정작 그 상대방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가 더 많다. 참 씁쓸한 광경이다.

 

0…최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여일간이나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서 한바탕 신변이상설이 퍼져 전 세계가 들썩였다. 특히 미국의 뉴스전문채널 CNN이 김정은 사망 내지 심각한 수술설을 보도하면서 세계 언론이 일제히 이를 받아 썼고 의혹은 기정사실처럼 굳어졌다.

 

 그런데 한참 소문이 확산되고 있을 즈음, 김정은 이상설에 기름을 부은 사람이 바로 탈북자 출신의 야당 국회의원 당선인 2명이었다. 김정은 유고설 보도가 나오자 한국 정부당국은 일관되게 이를 부인하면서 김정은 신변에 아무 이상이 감지되지 않고 있다고 발표했고, 미국 트럼프도 언론보도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탈북자 출신의 두 예비 의원은 마치 북한 내부의 중요한 정보사항을 알고 있는 것처럼 확신적으로 김정은 건강에 이상이 있다고 발언했다. 이중 태영호씨는 “김정은 일가의 동선은 극비사항”이라며 자기가 그쪽 소식에 정통한 듯 “분명한 것은 김정은이 스스로 일어서거나 제대로 걷지 못하는 상태라는 것”이라 했고, 지성호씨는 한술 더 떠 “김정은 사망을 99% 확신한다. 심혈관 수술 후 쇼크 상태에서 사망했다”며 사망 시점까지 단정적으로 밝혔다.

 

 김정은 신변에 특이 동향이 없다고 청와대와 정부가 거듭 확인했지만, 이들은 북한에서 나고 살았으니 북한사정을 잘 알고 있다는 듯 단정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더욱이 이들의 말이 나오기 무섭게 한국의 보수언론들은 기다렸다는 듯 이를 대대적으로 인용해 김정은 건강 이상, 나아가 사망했다고까지 보도했다.

 

 그러나 자신의 신변이상설을 비웃기라도 하듯 김정은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나타나자 탈북민 출신 예비 의원들의 ‘가벼운 입놀림’에 여론의 뭇매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과연 이들의 말이 어디까지 믿을 만하며, 특히 그들이 말하는 북한의 내부정보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기나 하느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태씨의 경우 4년 전 주영국 북한대사관 공사로 있다가 탈북했는데, 한국 정부에 따르면 그의 위치가 그렇게 고위직이 아니다. 즉, 북한의 최고위급 정보를 알만한 위치가 아니란 것이다. 더욱이 지씨의 경우는 14년 전인 2006년에 탈북했는데 북한 거주 당시 ‘꽃제비’(먹을 것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북한 아이들) 출신으로 잘 알려져 있다. 다시 말해 이들은 결코 북한 최고위급 정보에 접근할만한 인물이 아니란 사실이다.   

 

 북한을 떠난 시점이나 북한에 있던 시절의 사회적 위치로 보아 이들이 지금 북한의 고급정보를 갖고 있을 확률은 거의 없다. 만약 고급정보를 갖고 있다면 북한과 모종의 거래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밖에 안된다. 그렇다면 이들의 진짜신분은 무엇이냐는 질문까지도 제기될 수 있다.

 

0…문제는 이들이 단순히 탈북자라는 이유만으로 북한 내부사정을 잘 알고 있으리라는 지나친 기대감을 갖고 이들에게 기대거나, 나아가 보수진영에서 이들을 이용까지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이들은 이제 단순한 대한민국 시민이 아니라 국가의 공인이 되었기에 더 큰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 국회의원이라는 면책 신분을 이용해 미확인 정보를 쏟아낼 경우 남북관계에 걸림돌이 될 우려가 커진 것이다.

 

 이들은 탈북자라는 신분 때문에 무언가 중요한 정보를 알고 있는 듯 처신해야 하고, 그에 따라 보수진영을 대변해 존재감을 나타내고 싶어할지 모른다. 그러나 자신들 스스로 말했듯 인간답게 살고자 탈북했다면 제발 겸손해지고 인간답게 사는 것이 도리가 아닐지.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보수진영 역시 그들을 자유롭게 풀어줘야 할 것이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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