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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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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30
When in Rome- 이민지에선 현지 사정에 맞게

 

-언어.관습 적응되도록 노력해야

  

 

 보통사람들에게도 친숙한 영어 속담이 있다. ‘When in Rome, do as the Romans do’. 로마에 가면 로마사람들처럼 행동하라는 것. 한국에서는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식으로 표기되기도 한다.

 

 이 말의 유래는 다음과 같이 전해온다. 유명한 ‘고백록(Confessions)’의 저자 성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e)와 그의 어머니 성 모니카(St. Monica)는 밀라노에서 살다 로마를 방문하게 됐다. 그런데 로마에서는 밀라노와 달리 토요일이 금식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나중에 밀라노에 돌아온 아우구스티누스는 대주교 성 암브로스(St. Ambrose)에게 말한다. "When I am here (in Milan) I do not fast on Saturday, when in Rome I do fast on Saturday."(내가 밀라노에 있을 때는 토요일에 금식을 하지 않았는데 로마에서는 토요일에 금식을 했습니다.)

 

0…그 후 사람들 입에서 ‘When in Rome, do as the Romans do’라는 표현이 생겨났다. 이는 현지의 관습과 예의를 따르다, 혹은 법을 지킨다, 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국에선 이 말이 다소 앞서 나가 특정집단, 가령 군에 입대했으면 그에 맞게 (고개를 숙이고) 행동하라는 식으로 다소 강압적으로 쓰이기도 한다.

 

 어원이야 어찌됐든 이는 어떤 상황에 처할 경우 그에 걸맞게 행동하는 것이 순리라는 뜻이다. 가령 외국에 와서 살면 그 나라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0…우리 이민자 입장에서 보면, 캐나다라는 나라에 와서 수십 년을 살고 있으면서 아직도 여전히 한국식으로 살아가는 동포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우선 나부터도 언어도, 먹는 것도, 어울리는 사람도, 취미활동도 대체로 한국식이다.

 

 어떤 점에선 더 (예전의) 한국적 방식으로 살고 있다. 그것을 굳이 좋다 그르다 평가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외국에 살면 현지의 생활방식을 어느정도 따라갈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우리가 이민을 올 때는 나름대로 이유와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낯선 세상에 적응해 새로운 삶을 살아보자는 다짐이 그 첫번째 아닐까. 그렇다면 여기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순리가 아닐지.

 

0…최근 어느 친지들 모임에서 직장내 여성과의 불륜 스캔들로 사임한 전 토론토시장에 관해 얘기를 꺼냈는데 아무도 그 얘기를 알지도 못하거니와 별 관심도 없어 하는 모습을 보고 무척 놀랐다.

 

 아니 이처럼 흥미진진한 술자리 안주감을 그냥 지나쳐 버리다니. 한인들이 얼마나 캐나다 사회에 무관심한지 새삼 실감했다. 이것이 한국의 얘기라면 아마 열변들을 토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화제가 한국의 연속극 쪽으로 바뀌자 갑자기 대화자리가 시끌벅적해지고 활기가 돌았다. 속속들이 아는 것도 어쩌면 그리도 많은지, 나는 그저 묵묵히 듣고 있어야 했다.

 

0…요즘 우리 부부는 손자 자라는 모습에 인생의 큰 즐거움을 본다. 그런데 아기가 크면서 눈을 맞추고 옹아리를 하는데 우리는 앞으로 과연 어떤 말로 손자와 대화를 해야 할지 헷갈린다.  

 

 우리 가족은 그야말로 다국적이라 손자가 3중언어를 배우기에 적합하다. 홍콩출신인 친할아버지 댁에 가면 중국어와 친하게 될 가능성이 크고, 우리집에 오면 한국말을 알아듣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집에서 나와 아내는 한국어로 말해야 할 것이다. 즉 딸들이 한국말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랬던 것처럼 손자도 한국말로 대화를 해야 한다. 이러니 어느 세월에 영어를 쓰겠나.

 

 이래서 이민 1세는 영어가 늘 수가 없나 보다. 캐나다시민권자라는 나는 과연 누구인가. 외로운 섬이라는 생각을 가끔 한다.   

 

0…동네공원을 산책하다 보면 흠칫 놀라는 경우가 있다. 어둑한 숲길에서 온몸을 검은 천으로 감고 눈만 빼꼼히 드러낸 여성을 마주치는 때다. 개중에는 눈마저 망사로 가려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이들도 있다.

 

 그럴 때는 “자기네 종교도 중요하지만 남을 놀라게 하면 되나. 이곳까지 와서 꼭 저렇게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한여름 골프장에서도 비슷한 광경을 본다. 이곳 골퍼들이 맨살을 드러낸 채 햇볕을 즐기는데 한옆에서 큼지막한 모자를 쓰고 햇볕에 노출될새라 신경을 쓰는 동양인들을 보면 저러려면 뭐하러 밖에 나오나 싶다.

 

0…우리 같은 이민자들이 명심할 것이 있다. 이곳은 어디까지나 남의 나라라는 것이다. 문화와 언어가 다른 이민자들은 나름 노력하지 않으면 자칫 현지사회로부터 소외되기 쉽다.

 

 소수민족에게 보내는 현지인의 박수 속에는 독특한 문화에 대한 찬사의 의미도 있지만 이질적인 외지문화에 대한 경계심리도 깔려 있다.

 

 따라서 고유의 전통을 지켜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능한 현지인과 어울리고 교류해야 고립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오! 캐나다를 진정으로 받아들이려면 이 나라를 이해하고 그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0…나는 한인사회에 캐나다뉴스를 전하기 위한 소셜미디어를 운영하고 있다. 그것은 이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살자는 취지에서 만든 것이다. 많은 한인들이 현지 소식에 어둡고 관심도 적은 것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국땅에 사는 우리는 현지에 단단히 뿌리 내리고 살면 그것으로 애국하는 것이다. 캐나다에 살면 이곳 소식도 좀 듣고 보고 관심도 가지면서 살아갈 일이다.   (사장)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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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23
‘코다’(CODA)를 보셨나요- 소중한 사람들과의 만남

 

-평생 함께 갈 수 있다면 큰 행복  

 

 

 지난 일요일 오후 감명깊은 영화를 한편 보았다. ‘코다’(CODA)라는 제목의 가족 휴먼 드라마인데 시종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었다.

 

 CODA는 Child of Deaf Adults의 약어로 ‘농아(聾啞)의 자녀’란 뜻이다. 즉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녀를 말한다. 영화에서는 아버지와 어머니, 오빠까지 온가족이 농아인데 막내인 주인공 딸만 정상인이다.     

 

0…주인공 루비(에밀리아 존스 분)는 농인(聾人)어부(漁夫)인 부모.오빠와 함께 살면서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가족을 세상과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고교생인 그녀는 가족의 생계인 고기잡는 일과 학업을 병행하며 힘들게 살아간다.

 

 그런데 평소 노래를 좋아하는 루비는 우연히 학교 합창단에서 음악의 기쁨을 알게 되고 합창지도 교사와의 소중한 만남을 통해 숨겨진 재능을 발견한다. 그녀를 알아본 교사는 루비에게 자신의 모교이기도 한 버클리 음대 진학을 추천한다.

 

 하지만 루비가 떠나면 가족은 세상과 소통이 단절된다. 루비가 없으면 곧 가족의 생계 길이 막히는 것이다. 고민을 거듭하는 루비.

 

0…그녀는 버클리 음대에 합격하지만 가족을 위해 진학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오빠의 적극적인 권유에 용기를 내어 새로운 세상을 향해 떠난다…

 

 시종일관 진지하면서도 밝고 또한 힐링을 주는 영화다. 실제 농인 배우를 캐스팅한 것과 주연인 에밀리아 존스는 실제 루비인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완벽한, 특히 수어(手語) 연기를 보여줬다.

 

 루비가 버클리 음대 오디션에서 부른 음악이 가슴에 진한 여운으로 남는다. ‘인생의 어느 한쪽만 보지 말고 양면을 다 보자. 그래도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Well something's lost, but something's gained / In living every day / I've looked at life from both sides now / From win and lose and still somehow / It's life's illusions I recall / I really don't know life at all…’ (주디 콜린스의 ‘Both Sides Now’)

 

0…이 글의 주제가 영화는 아니다. 이런 따스한 영화를 감상하게 만들어준 분과, 또한 다함께 좋은 작품 앞에서 공감할 수 있는 분들이 계시다는 사실이 너무도 소중하고 감사하다는 뜻을 표하고 싶은 것이다.    

 

 이날 아홉 분이 모여 함께 영화를 감상할 수 있도록 준비하신 분은 S선생. 그는 프로 영화평론가 못지 않은 해박한 영화지식을 갖고 계시다. 우리 부동산 신문에도 매주 영화칼럼을 쓰고 계시는데 열독자가 무척 많다.

 

 이 분은 특히 수년 전 인격과 소양이 고매하신 분들이 함께 만나 담소와 식사를 나누는 모임을 만드셨는데, 어떻게 운이 좋게도 우리 부부도 자리에 끼게 됐다.

 

0…모임의 참석자 면면을 보면 우리가 왜 행운이라고 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한국의) 대기업 사장을 지내시고 사학자 못지 않은 역사지식을 갖고 계신 원로 문인 부부, 전직 교수(지구물리학), 조각가, 영화칼럼니스트, 시인 등 두루 박식한 분들이다.  

 

 이날 모임에서도 영화감상에 앞서 지구물리학자 M교수님의 화산(火山) 특강이 있었다. 돈을 주고도 듣기 어려운 소중한 강의를 공짜로 듣다니, 얼마나 황공한 일인지.

 

0…이 분들은 지식만 풍부한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사람됨이 겸손하고 예의가 바르시다. 대화에서  남이 말을 할 때는 끝까지 경청하고 도중에 끼여들지 않으며 반박을 하지 않으신다.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되 주장을 고집하지 않는다. 

 

 우리 부부는 모임의 막내인지라 조심스럽기도 하지만 이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평소 각 분야 공부를 부지런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래서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무언가 한아름 선물을 받고 오는 기분이다.         

 

 학식이 높다고 인격도 높은 것은 아니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격려하는 자세야말로 모임이 오래 가는 비결이라 생각한다.

 

0…인간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런저런 사람을 만나 인연을 쌓고 살아간다. 특히 외로운 이민생활 가운데 뜻맞는 좋은 사람을 만나 교제할 수 있다면 행운이요, 행복이다.  

 

 다만 만남과 모임이 오래 가려면 몇가지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고 본다. 이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첫째, 타인을 배려하고 겸손할 것, 둘째, 자기 주장을 내세우지 말고 전체 분위기에 따를 것, 셋째, 상대가 말을 마칠 때까지 경청할 것, 넷째, 상대의 자존심에 관한 말은 절대 삼갈 것. 다섯째, 궂은 일에 먼저 발벗고 나설 것.

 

0…‘사람은 원래 깨끗한 것이지만 인연에 따라 죄와 복을 부른다. 저 종이는 향(香)을 가까이 하여 향기가 나고, 저 새끼줄은 생선을 꿰어 비린내가 나는 것과 같다. 사람은 조금씩 물들어 그것을 익히지만 스스로 그렇게 되는 줄을 모를 뿐이다’.

 

 법구경(法句經)의 이 말은 인연과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잘 나타내준다. 세상은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로 인해 형성되며, 누구를 만나고 가깝게 지내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는 것이다.

 

 가능한 품성 좋은 사람과 교류해야 좋은 점을 배울 수 있다. 좋은 사람을 만나 오래토록 함께 갈 수 있다면 그 삶은 행복하다 하겠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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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6
황혼이 아름다운 사람들- 노부부의 감명깊은 출판기념회



-연세들어서도 쉼없는 열정에 숙연  

 


출판기념회장에서 윤경남.민석홍 부부
 


 지난 주말(3월 11일) 매우 뜻깊은 행사를 다녀왔다. 토론토의 원로 문인이신 윤경남(Yunice) 님과 우사(友史) 민석홍 선생 부부의 회혼례(回婚禮: 결혼 60주년)를 기념해 두 부부가 공동으로 펴낸 <새롭게 읽는 풍운아 윤치호의 우순소리> 출판기념회가 열린 것이다.


 행사는 이토비코의 고색창연한 센자일스 킹스웨이(St. Giles Kingsway)장로교회에서 열렸다. 80여 명의 축하객이 참석한 이날 출판기념회는 올해 88세이신 노부부가 해로(偕老)하며 어떻게 하면 인생을 이처럼 우아하게 보낼 수 있는지를 몸소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한인 인사들과 캐네디언이 적당히 섞인 이 행사야말로 근래들어 가장 기품있는 이벤트였다고 생각한다. 

 유영식 교수의 해박한 윤치호 선생 소개는 참석자의 이해를 도왔고 조성준 장관, 강신봉 전 토론토한인회장 등도 일목요연하게 축사와 독후감을 전하는 등 전체적인 진행이 물흐르듯 매끄러웠다.      

0…윤-민 부부가 펴낸 <우순소리> 책은 구한말의 선각자 좌옹(佐翁) 윤치호(尹致昊, 1865∼1945) 선생의 생애를 재조명하고 후손에게 조국사랑의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현대문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대한제국의 국권이 상실되었을 때 좌옹 선생은 일본 통감부의 횡포를 통렬히 비판하고 대한제국 위정자들의 무능과 위선, 부패상을 개탄하며 백성들의 각성을 촉구하기 위해 이솝 우화를 인용, 한글로 책을 출간했다(1908년). 

 특히 일본을 노골적으로 비판한 제12화(보호국)로 인해 통감부는 책을 몰수했고 합방 후 좌옹을 ‘105인 사건’ 주모자로 누명씌워 감옥에 보냈다. 이에 좌옹의 종손녀인 윤경남 선생이 <윤치호 일기>를 인용해 현대어로 고치고 재편집했다.

0…제2부 <윤치호 어록>은 구한말에서 국권 상실과 식민통치기까지 60년 동안 좌옹이 꾸준히 쓴 일기(한문, 한글, 영어)로 약 6천 여 페이지의 방대한 기록이며 내용이 다소 어렵다. 이에 민석홍 선생이 일기 중에서 중요한 부분을 발췌, 번역했다.

 영문일기 친필 원본은 좌옹의 미국 유학 당시 모교인 에모리(Emory) 대학교가 소장하고 있으며 윤경남 선생은 이를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되도록 추진중이다.
 <우순소리>는 115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사회를 향한 통렬한 경고요 교훈이라 하겠다.  

0…민석홍 선생은 출판기념회에서 “우리는 2년 전에 결혼 60주년을 맞아 가족모임과 잔치를 생략하고 감사의 뜻으로 <윤치호의 우순소리>를 아내와 공동으로 출판했다.”고 밝혔다. 

 놀라운 점은 민 선생이 그 연세라고는 믿어지지 않을만큼 명석한 기억력으로 참석자들을 놀라게 했다는 것이다. 인사말에서 책 출판에 도움을 준 분들을 일일이 거명하는데 전혀 막힘이 없었다. 

 특히 행사장을 제공해준 캐네디언 교회 관계자들에게 영어로 인사를 표하는데 아주 유창했다. 대부분의 한인들이 영어연설에 어색한데 비해 민 장로님의 연설은 매우 자연스러웠다. 
       
 미국에 사는 아들(텍사스 오스틴 대학 교수)은 감사인사를 전하며 연세드신 부모님이 느지막이  이민을 오신다기에 걱정도 됐고 특히 언어도 불편하실텐데 현지교회에 등록을 하셔서 염려했지만 이제까지 아무 문제 없이 잘 적응해가시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0…윤-민 부부는 기품있는 가문에 한국 최고의 학력 등, 모든 배경이 화려하지만 평소 그런 내색을 전혀 않는다. 2남 1녀 자녀들도 훌륭하게 성장해서 캐나다(토론토)와 미국의 명문대학 교수가 둘이나 배출됐다. 무엇 하나 아쉽거나 부러울 것 없는 행복한 부부다. 

 어린아이처럼 해맑으신 이 분들은 항상 겸손하고 남을 배려하는 따스한 마음씨를 가지셨다. 특히 학구열이 대단하다. 유니스 선생은 윤치호 관련 저서를 5권이나 펴냈고 국.영문 교양서도 3권이나 출판했다. 지금도 본보 등 한인언론에 꾸준히 글을 연재하고 있다. 

 연세 들어서도 무언가 값지고 의미있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이 분들을 보면 나도 저렇게 나이들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런 분들과 교류하며 지내는 나와 아내는 행복하다.

0…사실 윤치호 선생은 종손녀(윤경남)가 아니었으면 지금도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친일파로 매장돼 있었을 것이다.   

 좌옹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쟁이 계속되고 있어 무어라 단언하기가 어렵다. 한쪽에서는 ‘애국가’를 작사한 구한말 최고의 선각자, 학자, 교육자, 사회운동가로 존경받는가 하면 한쪽에서는 여전히 친일시비가 끊이질 않고 있다. 

 나는 누구를 두둔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한국의 근대사에서 일제 강점기를 살다간 사람들은 ‘양자택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은 인정한다. 일제에 저항하다 깨끗하게 죽느냐, 일단 협력해서 살고 난 후 그 후를 도모할 것이냐… 

 그 중 후자는 자의든 타의든 후세에 의해 ‘친일파’로 분류됐고, 다른 업적이 아무리 뛰어나도 모든 것이 매도돼온 것이 한국적 현실이다.  

0…‘동해물과 백두산이…’ 한국인이라면 늘상 부르는 애국가. 이 애국가의 작사자 논란도 그렇다. 여러 사료(史料)상 애국가 작사자는 윤치호인 것이 사실쪽에 가까움에도 우리는 여전히 ‘작사자 미상(未詳)’의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나는 다만 다음 말에 공감하는 것으로 나의 의견을 대신한다. 
 “우리는 애국가 작곡가인 안익태와 작사자인 윤치호 두 사람 모두 친일파로 규정한 나라의 국민으로 살고 있다. 독립선언문을 쓴 최남선도 마찬가지다. 무언가 이상하고 참담하지 않은가. 한참 뒤 우리 시대를 평가할 때 친미파•친북파라 낙인 찍으면 당사자는 당황할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고는 모른다.”(소설가 조성기)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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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9
“저는 아니겠지요?”- 철석같이 믿었던 사람의 배신

 

-한번 인연 맺으면 끝까지 가야

 

 

 예수는 제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배반할 것이다.” 제자들은 깜짝 놀라며 의혹의 눈초리로 서로를 쳐다본다. 그리고 속으로 말한다. “누구야? 어떤 녀석이야? 감히 스승님을 배반하다니.”

 

 그러면서도 혹시라도 자신이 그런 운명에 처할 것은 아닌지 노심초사하며 다들 예수를 향해 외친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0…오래 전부터 제자직을 떠나 있던 유다. 그래서 겉으로만 제자였던 유다 역시 시치미를 떼고, 그러나 차마 스승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보지 못한 채 주눅 든 목소리로 말한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음에도 끝까지 속이고 끝까지 딴 길을 가는 유다의 인생이 불쌍했던 예수는 슬픈 눈동자로, 다시 한번 돌아왔으면 하는 간절한 심정으로 유다를 바라본다.

 

 그러나 유다는 끝내 예수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고 만다. 은화 30세겔에 스승을 팔아넘긴 가룟 유다는 양심의 가책을 받아 자살을 택한다.(마 27:1-10)

 

0…배신의 죄책감에 스스로 비참한 최후를 맞는 유다의 자살은 누군가로부터 선택받은 자의 죽음이라는 점에서 오늘날 우리 세상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도 살다보면 유다와 베드로가 걸었던 그 배신의 세월을 수시로 체험한다.

 

 중국 역사에서 두고두고 훌륭한 재상이요 충성스런 신하의 모범으로 꼽히는 제갈량. 그가 당대는 물론 후세인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는 것은 자신을 발탁해준 주군을 위해 대를 이어 죽을 때까지 변함없이 사심없이 충성을 다했기 때문이다. 

 

 초야에 묻혀 살던 제갈량을 점찍은 유비의 사람 보는 눈도 그렇지만, 자신을 알아준 주군을 위해 끝까지 배신하지  않고 그에 보답한 충신이었기에 그 이름은 영원히 빛난다.

 

0…인간사 고통 중 가장 큰 하나는 누군가에게 배신을 당했을 때다. 영원히 충성하고 함께 하겠노라 다짐했던 사람이 어느 순간 흑심을 품거나 딴짓을 하고 있음이 들통났을 때, 당하는  사람의 가슴은 미어 터지는 충격을 받는다.

 

 이래서 이병철 같은 사람은 신입사원 면접을 할 때 관상을 보게 한 뒤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단했다 한다. 장차 회사를 배신할 사람인지 아닌지를 중요한 항목으로 판단해 인물을 뽑았기에 삼성에서는 배신한 간부들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한치도 모를 인간의 속마음. 어찌 한번 인상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사람이란 오랜 세월을 두고 보아야 올바른 판단이 서지 않을까.    

 

0…한국 제1 야당 대표의 수난 시리즈를 보면서 새삼 인간의 속마음을 헤아려 본다. 자신에 대한 국회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무더기로 반란표가 나오는 장면을 목격할 때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미운 법. 압도적 부결이 나와도 시원찮을 판에 보란듯이  거침없는 배신행위가 자행되는 상황에 심약한 사람은 자진(自盡)하고 말지도 모른다.

 

 명분이 옳든 그르든, 같은 정치적 지향점을 갖고 모였다는 사람들이 이럴 수는 없다. 더욱이 지금은 한국 민주주의의 누란(累卵) 위기 아닌가. 이런 판국에 리더의 등에 칼을 꽂다니.

 

 적전분열 이적(利敵)행위를 저지른 집단에 무슨 희망이 있을까. 이런 식으로 가면 내년 총선에서 의회권력까지 다 넘겨줄 판이다. 지금 대일(對日) 굴욕외교로 민심이 들끓고 있는 매판(買辦) 집권세력을 어떻게 견제할 수 있을까.  

 

0…이재명의 최측근으로 꼽히던 사람들도 잇달아 등을 돌렸다. 확실하지도 않은 사실까지 더 보태 검찰 앞에서 술술 불어댔다. 이재명의 '넘버3'로 통했던 한 사람은 "(이재명을) 천천히 말려 죽일 것"이라는 섬뜩한 예고까지 했다.

 

 과거에도 전직 대통령 등이 측근 관리 실패로 발목이 잡힌 예가 수두룩하다. 이명박의 '영원한 비서관'으로 불렸던 전 청와대 부속실장, '집사'와 '금고지기'를 자청했던 이들이 줄줄이 주인에게 등을 돌렸다.   

 

 노태우의 (육사)후배이자 하나회 회원인 전 청와대 경호실장은 검찰에 자진출석해 "노태우가 재임 중 조성해 사용하다 남은 통치자금"이라며 비자금의 실체를 폭로했다.

 

0…일개 검사에서 일약 한국의 대통령 자리를 거머쥔 윤석열. 한때 한직(閑職)을 떠돌던 그를 발탁한 사람이 바로 문재인이다. 文이 아니었다면 尹은 그때 검찰을 떠났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뇌어린 배려는 칼이 되어 되돌아왔다. 文은 사람을 잘못 보았다. 그는 처절한 배신감에 치를 떨며 밤잠을 설칠 것이다. 돌고 도는 수레바퀴 같은 인생사, 이래서 사람 보는 눈이 중요하다.

 

 한번 인연을 맺고 동지를 맹세했으면 끝까지 함께 가야 한다. 그것이 인간적 도리요 본분이다. 배신하려면 애초부터 나쁜 일에 가담하지 말았어야 한다.

 

0…백범 김구 선생은 배신행위가 얼마나 뼈에 사무쳤으면 이런 말을 남겼을까. “나에게 한 발의 총알이 남아 있다면, 왜놈보다 나라와 민주주의를 배신한 매국노 변절자를 백번 천번 먼저 처단할 것이다. 왜? 왜놈보다 더 무서운 적이니까.”  

 

 사람을 신뢰하기 위해선 그의 행동을 꾸준히 관찰해야 한다. 그리하여 함부로 정 주지 말되 한번 맺은 인연은 끝까지 간직해야 한다. 나 역시 행여 누군가에게 상처주는 일은 없었는지 스스로 자문도 해본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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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2
시여, 침을 뱉어라-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시대

 

-인간의 설자리 점점 사라져가  


글을 쓰고 있는 인공지능(AI) 로봇


 “앞으로는 인간이 할 일을 로봇이 다 한다는데 미용도 그럴까요? 아마 그렇진 않겠지요? 손님들 취향이 다 다르니까요…” 지난주 단골 미용실에 들러 머리를 깎는 중에 원장이 건네는 말이었다. 때마침 TV에서 요즘 한창 유행하는 인공지능(AI) 로봇에 관한 보도가 나오고 있던 차였다.

 

 그러면서 그녀는 “하긴 뭐, 로봇이 다 알아서 한다니 우리도 곧 손을 놓아야 할 때가 오겠지요.” 라면서 “그래도 사람이 할 일은 좀 남겨두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우리같은 사람은 어떻게 살라고.” 라며 한숨을 쉬었다.

 

0…로봇에 키워드만 넣으면 수십 초 만에 시를 써내고 스스로 낭독도 하고 그림도 뚝딱 그려낸다. 신문기사도 능숙하게 써낸다. 인공지능 AI(Artificial Intelligence)에 의한 문학과 창작예술이 속속 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AI는 급속도로 진화해 인간의 최후영역인 줄로만 알았던 창작 분야로까지 활동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AI가 음악 작곡을 한 지도 오래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는 세상. 더이상  공상과학소설(SF: Science Fiction) 이야기가 아니다.

 

 과학이 급속도로 발전하는 데 반비례해 인간은 점점 쓸모가 없어지고 있다. 인간이 할 일을 기계와 로봇이 대신 하고 있기 때문이다.   

 

0…4차 산업혁명의 총아로 불리는 AI 로봇은 인간의 모든 영역에 침투해 사람들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 과연 인간의 일자리는 로봇에게 얼마나 빼앗길까?

 

 세계경제포럼(WEF)에 따르면, 2023년까지 세계적으로 약 8천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가까운 2025년에는 AI 로봇이 전체 업무의 60% 이상을 맡을 것으로 전망된다.

 

 오심(誤審) 논란이  끊이지 않는 스포츠 경기 심판에서부터 한때 ‘신의 직장’이라 불리던 은행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인간의 일자리가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각종 표를 판매하는 매표소 직원이 안보이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고 대부분의 텔레마케팅도 로봇이 하고 있다. 마트나 편의점에서도 아르바이트 학생들의 일자리가 사라져가고 있다.

 

0…로봇이 가장 많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 분야는 제조업이다. 분야를 막론하고 제조업 현장에는 속속 로봇이 투입되고 있다. 이밖에 패스트푸드 음식점원이 사라지고 건설노동자도 곧 없어질 직업으로 꼽힌다. 

 

 전문직으로 각광받아온 의사, 변호사, 회계사, 금융 애널리스트, 건축사도 예외가 아니다. 로봇이 수술을 하고 소송서류를 작성하며 주식전망도 분석해 알려준다. 부동산중개인도 온라인 거래 활성화로 점차 사라져갈 것이다.

 

 영화산업 역시 컴퓨터그래픽(CG) 기술의 발전에 따라 비싼 출연료를 지불해야 하는 배우를 고용할 필요 없이 배우들이 CG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

 

 나같은 기자도 예외가 아니다. AI가 사건과 상황을 분석해 단시간에 기사를 작성할 수 있다. 이미 전 세계 60% 이상의 언론사가 AI를 활용해 기사를 제작하고 있다.

 

0…로봇은 특히 사회적 취약계층에 더욱 가혹하게 침투하고 있다. 산업현장 노동자들과 경비원, 식당 종업원, 운전기사, 아르바이트 학생들이 로봇에게 쫓겨나 하루 한끼를 걱정해야 할 처지에 내몰리고 있다.

 

 그러잖아도 춥고 배고픈 예술인들은 인간 최후의 영역인 창작활동에까지 AI가 침투하면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막막하다.       

 

 인간의 행복을 위해 끝없이 발전해가는 과학기술이 역설적으로 인간의 행복을 빼앗고 궁극적으로 인간세계를 파멸로 몰아가고 있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거리를 헤매고 희망 없는 젊은이들은 결혼과 출산을 포기해 인간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대신 그 자리를 로봇이 채울 것이다.

 

0…로봇에 기대어 한없이 게을러지는 인간들은 지금보다 더 비인간화할 우려가 크다. 과학의 발전도 좋지만 인간성을 말살시키는 이런 기계를 왜 만드는지. 인간은 스스로 만든 기계에 의해 스스로 속박 당하고 종국엔 파멸의 위기를 맞게될 수도 있다.       

 

 인간의 생존권을 앗아가는 이런 일에 피나게 경쟁할 것이 아니라 전쟁과 지진으로 수십만 명이 떼죽음을 당하는 참사부터 방지하고 해결해야 하는 것 아닐까. 달나라 여행도 그 후의 일이다.  

 

 구태여 AI 로봇을 만들려면 차라리 (한국의) 정치인과 법조인 등 무소불위 권력층을 대체할 로봇이나 생산할 일이다. 멍청한 그들보다 로봇은 훨씬 현명하게 일을 해낼 수 있을 테니까. 국회의사당도 로봇 의원들이 앉아 토론을 하면 좀 더 건설적인 의견들이 나오지 않을까.  

 

 ”서민들 일자리 빼앗을 생각 말고 판.검사도 모두 로봇이 하면 좋겠어요. 한국에서 죄짓고 판결나는 걸 보면 순엉터리에요. 이게 나라인가 싶어요. 차라리 로봇이 수사하고 판결하면 공평할 것 같아요.” 미용실 원장의 한마디가 귓가에 아른거린다.

 

0…분, 초 단위로 변해가는 혼돈의 시대에 인륜이니 정의니 문학이니 철학이니 자연이니 따위를 늘어놓는 나같은 사람은 과연 어디에 서야 하는가.

 

 시를 써내는 로봇에게 진짜 시인은 말한다.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림자를 의식하지 않는다. 그림자에조차도 의지하지 않는다. 시의 형식은 내용에 의지하지 않고 그 내용은 형식에 의지하지 않는다…/ 시는 문화와 민족과 인류에 공헌하고 평화에 공헌한다. 바로 그처럼 형식은 내용이 되고 내용이 형식이 된다…” (김수영 ‘시여, 침을 뱉어라’)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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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3
"My treat"- 일상에서 영어 쓰는 습관을

 

-타성에 젖으면 점점 더 멀어져    

 

 

 이민 초기, 봄이 되면 집 앞뒤로 노란 민들레꽃이 만발해 무척 아름답고 황홀할 지경이었다. 그 앞에서 아이들과 사진도 찍고 꽃을 따서 머리에 꽂아보기도 했다.

 

 헌데 이 민들레가 캐나다에서는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걸 곧 알게 됐다. 민초(民草)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강한 생명력과 번식력이 좋아 사방으로 번지면서 다른 화초들이 자라지 못하게 방해물이 되는 것이다. 이웃들이 왜 그렇게 민들레를 뽑아내는지 그제야 이해가 됐다.

 

 마침내 나도 민들레 뽑는 기구를 사기 위해 캐네디언 타이어에 들렀다. 민들레가 영어로 Dandelion이란 것을 알고 있던 나는 직원에게 자신있게 ‘댄덜리언’  뽑는 도구가 필요해서 왔다고 했다.

 

0…그런데, 직원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처음 듣는 말이란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봄에 이곳저곳에 피어나는 노란 꽃이 있지 않느냐, 그것을 뽑으려고 그런다고 했더니 그는 “아, 댄덜라이언!”이라며 바로 내가 원하는 도구를 들고 왔다.

 

 아뿔사! 민들레가 영어로 ‘댄덜라이언’이구나. 나는 스펠링만 알았지 발음은 별로 안 해보았던 것이다.

 

 이는 단순한 예에 불과하다. 현지인과 대화하면서 나름 열심히 설명을 해도 그들은 알아듣지를 못해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아니, 나는 이래봬도 한국에선 영문학을 전공했고 영어라면 자신감이 충만해 있었는데 이런 수모를 당할 줄이야! 시사영어 출판사에서도 일했고 토익(TOEIC) 시험도 최상위권이었다. 그런데… 

 

 그후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현지인과 대화를 할라치면 주눅부터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더욱이 한국보다 더 한국적인 생활패턴이 지속되면서 영어를 할 기회는 점점 더 줄어드니 무슨 수로 영어를 늘릴 것인가.        

 

0…최근 재미있는 기사를 읽었다. 한국의 60대 여성이 토익 시험에서 만점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녀가 영어공부에 몰입하게 된 동기가 흥미로웠다.

 

 그녀는 40세였을 때 미국의 대학에 교환교수로 간 남편을 따라 미국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문법 위주의 암기식 교육이 전부였던 그녀에게 언어장벽은 높았다. 남편이 없으면 미국인과 대화를 나누기 힘들었다.

 

 한국식 발음으로 '밀크'와 '레투스(양상추)'를 말했는데 마트 직원이 알아듣지 못해 애를 먹었다. 남편이 출근하고 자녀들이 학교에 가면 집에서 하루종일 혼자 있어야 했다. 영어를 체험할 기회가 없었다.

 

0…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는 도전의식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그녀는 영어를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은 간절한 심정으로 실전 영어에 매진했다. 남편이 공부했던 토플(TOEFL) 교재의 단어와 표현, 문법을 통째로 외우며 기본기를 다졌다.

 

 토익과의 인연은 우연찮은 기회에 찾아왔다. 미국 도서관에서 접한 토익 교재 내용이 실생활과 직결돼 있어 본격적으로 토익 공부에 전념하게 된 것이다.

 

 8년간 미국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그녀는 지난해 치른 토익 시험에서 만점(990점)을 받았다. 그녀는 "남녀노소 모두 영어공부가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언어를 배우는 게 새로운 뇌의 영역을 자극해 치매 등 노인성 질환을 막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강조한다.

 

0…그녀는 그동안 갈고닦은 영어실력으로 나눔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역 문화센터 등에서 어린이와 노약자 등을 대상으로 영어강의를 하고 있다. 미국생활 중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던 쓰린 경험이 영어공부에 불을 지핀 것이다.

 

 이 여성처럼 언어 불통의 뼈아픈 체험이 강인한 결심으로 승화되면 좋으련만 많은 분들이 그렇질 못한 것이 사실이다. 보통은 현실에 안주해 살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의욕이나 동기부여가 퇴보하는 것이다.

 

0…지난주엔 조성훈(Stan Cho) 온주의원(MPP)을 위한 작은 후원모임(fundraising)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조의원이 간략하게 인사말을 하는데, 역시 그의 스피치 실력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정치경력도 길지 않은 그가 왜 벌써 토론토시장 후보로 거론되는지 이해가 된다.

 

 그의 스피치를 들으면 속으로 부럽기도 하거니와, 한편으론 정신도 번쩍 든다. 이제라도 제발 영어공부 좀 해야겠다는 다짐 말이다.

 

 우리 동포들도 허구한날 한국 정치 기사만 들여다 보지 말고 이곳 뉴스에 관심 좀 갖자. 레스토랑에 가서 3류 손님 취급 당하지 않으려면 영어 좀 익히자. 요즘은 유튜브 등을 통해 얼마든지 실용영어를 배울 수가 있다.

 

0…말이 나온 김에…

 식당에 가면 밥값을 내는데 인색하지 말자는 뜻에서 꼭 알아야 할 영어단어를 익혀두자. 즉 “이번 밥값은 제가 내겠습니다.” 는 뜻으로 This is (또는It's) my treat, 또는 그냥 My treat이라고 하면 된다.

 

 이밖에 It's (또는 This is) on me, I got it, I'll pay the bill, I'll pick up the bill, I'll pick up the tab, I'm buying, Let me get this 등 다양하다. 이중에 편한 것을 하나 골라 입에 달고 살자. The sky is the limit(얼마든지 맛있는 것 들어)라면 금상첨화겠다.

 

 이는 곧 밥값 갖고 치사하게 굴지 말자는 뜻이기도 하다. 밥값 갖고 짜게 구는 사람 주변엔 친구도 없다. 아껴도 다른 것을 아끼고 밥값은 후하게 내면 좋겠다.

 

 한번 얻어먹었으면 Next round is on me!(다음은 내가 살게) 정도는 해두는게 어떨까.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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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16
사랑은 인내하는 것- 존 토리의 사임을 보며

 

-아무리 사회적으로 성공해도 

가정이 행복하지 않으면 뜬구름

 


한때 다정했던 존 토리 부부

 

 지난 금요일 저녁, 아주 쇼킹한 뉴스가 흘러나왔다. 클린 정치인으로 알려진 존 토리 토론토시장이 전격 사임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깨끗하고 신사적인 이미지의 그가 왜 갑자기?

 

 토리는 시장실에 근무해온 31세 여직원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인정하고 즉각 사임을 밝혔다. 이에 앞서 수일 전부터 토리의 불륜 문제가 언론에 올랐으며 토론토스타가 이와 관련해 결정적인 질의를 해오자 그는 1시간 만에 "a serious error in judgement"를 인정한 후 사임을 발표했다.

 

0…토리 시장의 결정적인 사임 이유는 공직자로서 적절히 처신하지 못한 점이 꼽힌다. 엄격한 공적(公的) 공간인 시장실에서 외도를 했다는 사실은 어떠한 이유로도 변명이 되지 못한다.

 

 그런 한편으로, 토리는 개인적으로 가정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올해 68세인 토리는 아내(66세)와 욕대학 시절 만나 결혼했다. 둘 다 법을 전공했고 아내는 비즈니스도 공부했다. 그녀는 주택관련 비즈니스(renovator and homebuilder) 일을 해왔다.

 

 아버지가 변호사였던 토리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변호사, 로저스 미디어 CEO, 3선 토론토 시장 등 꽃길을 걸어왔다. 이들 부부는 45년간 결혼생활에서 네 자녀와 다섯 손주를 두는 등 겉으로는 남부럽지 않은 가정을 꾸려왔다.

 

0…한동안 토리 부부는 ‘파워 커플’로 세간의 부러움을 샀다. 하지만 부부 관계는 둘만이 아는 것. 이들은 사는 동안 애틋한 정은 없었던 듯하다. 공식자리에 두 사람이 함께 나타난 적이 별로 없다.

 

 지난해 시장선거 캠페인에도 아내와 가족들은 보이지 않았다. 특히 팬데믹 기간에 토리가 격무에 시달리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와중에 아내는 플로리다에 머물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부터 시장실에서 31세 여직원과 부적절한 관계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달변가인 토리는 평소 미디어 질문에 친절하게 대했다. 하지만 최근 발렌타인스데이를 앞두고 가정문제에 대한 질문(“시장과 아내 중 누가 더 로맨틱한가?”)이 나오자 평소답지 않게 머뭇거리며 “그게 참 알기가 어렵다. 노력은 하지만 잘 모르겠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우리같은 세대에게는 그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것 같다”고 말해 결혼생활이 순탄치 못함을 시사했다.

 

0…토리와 여직원은 올해 초 서로 합의하에 헤어지기로 했다. 여성은 시장실에서 퇴직한 뒤 메이플립스포츠(MLSE)에 취직했다. 토리가 그녀의 취직을 도와줬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회사에서는 그녀의 능력과 자질을 보고 채용했다고 밝혔다.

 

 존 토리가 수십년간 쌓아온 명예는 한순간에 무너져내렸다. 그의 주변에서는 “철석같이 믿었던 그가 이럴 수 있나. 배신당한 기분”이라는 반응이 많다.

 

 하지만 한편에선 “인간적으로 안됐다”는 동정론도 적지 않다. 토론토시청 주변에선 “그 정도 사과했으면 됐다. 사임만은 철회해달라. 그동안 시장직을 잘 수행해왔다”는 목소리도 꽤 있다.

 

 쟁점은 직장 상사로서의 위력(威力)에 의한 #MeToo 여부다. 이와 관련, 직장내 로맨스의 범위에 대해, 상사로서의 위력을 사용하지 않은, 즉 남녀가 합의하에(consensual) 이루어진 일은 처벌하기 어렵다는게 유권해석이다.

 

 이에 시민들도 “스캔들을 일으켰으니 물러나는게 마땅하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일각에선 “이는 개인문제일 뿐이다. 사임은 지나치다”는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0…5천만불의 자산을 소유하고 가정도 넉넉한 토리는 겉보기엔 무엇 하나 부족함 없이 행복해 보였으나 가정생활이 원만치 못해 모든 명예를 잃어버릴 처지에 몰렸다.

 

 어찌 토리 뿐이랴.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도 그랬고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도 그랬다. 천문학적 부(富)를 일구며 자선사업을 통해 천사 이미지를 구축해온 그들도 가정생활이 원만치 못해 결국 파경을 맞았다. 이들을 보면서 새삼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의 교훈을 되새기게 된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미셸이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결혼생활에 대해 그녀는 "남편을 창밖으로 밀어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다. 결혼생활을 하다 보면 서로 참기 어려운 시기가 있을 수 있다. 화가 치밀어 오를 때도 있고, 이게 몇 년 동안 지속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이게 이혼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우리는 끝났어' 라고 포기하면 안된다. 그렇게 해서 끝날 것이라면 내 남편과 나는 몇번이고 헤어졌을 것이다. 그때마다 뛰쳐나가고 포기했다면 결혼생활의 아름다움을 놓쳤을 것이다.”

 

0…아무리 금슬좋은 부부라도 가끔은 틈이 벌어질 경우가 생길 수 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인내다.

 죽을 것처럼 사랑하던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서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눈에 들어오고 결국 갈등의 골이 깊어지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 따라서 결혼은 인내가 가장 중요하다. ‘님’ 글자에 점 하나만 잘못 찍으면 바로 ‘남’이 되어버리는 것이 부부관계다. 그러니 참고 또 참아야 한다.

 

0…지난 주일엔 성당에서 혼인주일을 맞은 분들을 축하해주는 행사가 있었다. 결혼 40주년, 50주년, 60주년을 맞은 분들의 말씀은 공통점이 있다. 결혼생활이 오래 가려면 참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분들의 말씀이 나이 들수록, 결혼 연조가 깊어질수록 실감난다.     

 

 사랑과 인내는 동의어다. 성경에도 일렀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고린도전서 13:4-8)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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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9
종이신문의 추락- 스마트폰 뉴스 등에 밀려나

-세상 소식 전해주던 종이신문

-시대 변천 따라 유물로 뒤처져가 

 


예전의 신문배달 소년들과 요즘의 스마트폰 뉴스  

     

 호모나랜스(HomoNarrans)라는 말이 있다. ‘이야기하는 인간’이란 뜻이다. 인간은 누구나 이야기 본능을 가진 존재다. 다른 사람의 소식을 듣고 나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 마음. 이는 어쩌면 생존을 위한 본능이기도 하고 인간의 원초적 욕망 중 하나다.

 

 이러한 욕망을 충족하기 위하여 고대의 파발(擺撥), 봉수대(烽燧臺) 등을 거쳐 근.현대의 종이신문, 라디오, TV, 컴퓨터, 그리고 스마트폰까지 우리의 정보전달 수단은 쉴새 없이 발전해왔다.

 

0…나의 경우 신문을 만들어 밥을 먹고 산지 35년이 넘었다. 그동안 고국의 숱한 격변기를 거치면서 마음고생도 많았다. 왜 한국은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느냐며 울분을 토했고, 억울한 처지에 놓인 사람을 보면 그들을 마음껏 도울 수 없는 무력함에 주저 앉기도 했다.   

 

 전통적 신문기자는 지사(志士)적 기질이 조금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회 부조리와 모순에 문제의식을 갖고 올바른 글을 쓸 수가 있다. 따라서 늘 무언가를 고민하고 사는게 기자다. 그렇게 거쳐온 세월 속에 신문도 시류(時流)에 따라 변천해가고 있다.

 

 을씨년스런 겨울 거리를 걷는데, 눈이 녹아 생긴 작은 웅덩이에 한글신문이 물에 잠겨 젖어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때 종이신문의 현실을 보는 듯해 가슴이 시려왔다. 저게 어떻게 만들어진 신문인데 저런 몰골로 버려질 수가 있나…        

 

0…신새벽 골목을 누비며 “신문요!” “호외요!”를 외치던 배달소년. 세계대전의 전황(戰況) 소식을 담은 신문을 들고 거리에 나와 팔던 전쟁 고아들. 아침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펼쳐 보는 직장인들. 파고다공원에서 신문을 펴들고 열심히 읽는 어르신들…

 

 종이신문은 이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뉴스를 접하기 위한 수단이었고 우리의 일상과 함께 해왔다.  하지만 요즘은 어떤가. 종이신문을 펼쳐 읽고 있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든 시대가 됐다. 젊은 사람이 종이신문을 읽는 모습은 더더욱 보기가 어렵다. 열명이면 아홉명이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고 있다.

 

 종이신문이 사라졌다고 할 수는 없지만 신문을 읽는 사람은 매년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종이신문은 80%가 넘는 열독률을 보였다. 하지만 그후 급격히 하락해 현재 종이신문 열독률은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0…하루 평균 신문열독 시간도 2.8분에 불과하다. 기자들이 죽을 고생을 해가며 취재하고 심혈을 기울여 작성한 기사가 어느 것은 독자들의 눈길 한번도 못받고 쓰레기통으로 직행한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아리다.      

 

 종이신문은 뉴스 이용률 1위에서 밀려난지 오래이고 텔레비전이 그동안 강세를 이어왔다. 하지만 텔레비전의 왕좌는 오래 가지 않았다. 모바일이라는 강타자가 나타나면서 뉴스 메신저 판도는 완전히 역전됐다.

 

스마트폰이 일상화된 후 우리 삶의 모습은 180도 바뀌었다. 뉴스를 접하는 수단도 그중 하나다. 길거리나 지하철 등 어느 공간에서든 많은 이들이 스마트폰을 통해 뉴스를 접한다.

 모바일 뉴스는 단기간에 급성장하여 열독률 90% 이상을 기록중이다. 종이신문은 존재가치가 갈수록 희박해지고 있다.

 

0…실시간 포털사이트에 뜨는 뉴스와 검색어를 통해 뉴스를 접하는 모습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모바일을 통한 뉴스 소비가 늘어남에 따라 포털사이트의 영향력도 급격히 높아졌다. 미디어의 개념이 혁명적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종이신문의 구독 파워가 약해지면서 신문사의 생명줄인 광고 매출액도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재정은 갈수록 바닥이 나고 세계의 메이저급 미디어들까지 줄줄이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신문 발행부수를 대폭 줄이고 기자를 감원하며 온라인 매체를 강화하는 쪽으로 급선회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캐나다도 마찬가지. 대형 매체들이 신문사 규모를 줄이고 웹사이트 위주로 가고 있다, 길거리에서 흔히 보던 생활정보지마저 자취를 감추고 있다. 모든 정보가 손에 든 스마트폰 안에서 해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0…이런 추세를 절감해온 나도 수년 전부터 스마트폰을 통해 캐나다와 토론토 한인사회의 주요 뉴스를 전달하는 ‘실험’을 해오고 있다. 이는 당초 6년여 전에 조성훈 온주의원 후보 캠페인을 돕기 위한 소셜미디어(한국인들은 SNS라는 말을 쓰는데 소셜미디어가 옳은 표기다) 사이트가 계기가 됐다.

 

 조 후보가 당선이 되고 나서 그 사이트를 없앨까 하다가 600명 이상이 지켜보는 사이트를 그냥 포기하기가 아까워(?), 이후 한인들에게 필요하다 싶은 캐나다의 뉴스(속보)를 올리기 시작했는데 그 반응이 꽤 컸다.  

 

 지금 필자가 운영하는 <한인뉴스속보> 사이트에는 무려 1천 명 이상이 참여하고 있다.

 이 사이트를 운영하는데는 나름의 이유와 원칙이 있다. 무엇보다 캐나다에 사는 한인들이지만, 특히 어르신들은 이곳 뉴스와 거의 단절되다시피 살고 있다. 이러니 언제나 물 위의 기름 격이다. 한인들에게 캐나다 뉴스를 전달하는 것이 이 사이트의 주목적이다. 

 

0…음식과 생필품도 문앞까지 배달해주는 시대에 사람들은 가장 가까이서 편리하게 접할 수 있는 메뉴를 선호하게 돼있다. 뉴스도 마찬가지. 추운날 거리에 나가 집어와야 하는 종이신문은 말할 것도 없고, 미디어 웹사이트 열어보는 것도 귀찮은 것이 요즘 세대다. 

 

 쉽게 말해 사람들은 손 안으로 직접 제공되는 정보를 선호한다. 앞으로 이 사이트를 잘 발전시켜서 한인사회의 새로운 미디어로 만들어보려 한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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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w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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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2
닮고 싶은 사람- 은퇴하는 한약업사의 감동 스토리

 

-세상은 이런 사람이 만들어가는

  


▲경남 진주의 ‘어른’ 김장하 선생

 

 우리는 모범적인 삶을 사는 분을 보며 ‘나도 저런 분을 닮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나도 저런 위치에 오르면 꼭 저렇게 살겠다”고 다짐도 한다. 하지만 막상 그런 위치(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에 오르면 세상 모든 것이 내 아래 있는 듯 교만해지기 쉽다.     

 

 새해 들어 내 생에서 꼭 닮고 싶은 사람을 만났다. 직접 뵌 것은 아니고 TV를 통해서였지만 잔잔하면서도 진한 여운이 오래토록 가슴에 남아 있다.  

 

 0…지난해 5월 31일, 경남 진주의 낡고 오래된 한약방 ‘남성당’ 주인이 은퇴와 함께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인구 35만명 도시 전체가 술렁이는 듯했다. 소식을 접한 시민들은 마지막으로 약을 짓겠다며, 인사를 올리겠다며, 찾아와 약방은 여러 날 문전성시를 이뤘다.

 

 시골 한약방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소년 김장하(올해 79세). 그는 18살에 한약사 시험에 합격해 이듬해 경남 사천에 처음 한약방을 열었다. 다른 약국보다 싸면서도 좋은 약재를 써 효험이 좋았던 이 한약방 약은 전국에 소문이 나 새벽부터 문앞에 긴 줄이 섰다.

 

 선생은 많을 때는 직원 스무 명과 함께 매일 새벽까지 약을 지어 큰 돈을 벌었다. 그는 이렇게 번 돈을 어려운 사람과 사회를 위한 선행(善行)에 아낌없이 바쳤다. 평생 자가용 없이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다녔다. 대신 지역사회를 위해 흔쾌히 지원했다.

 

 20대에 장학사업을 시작해 40살에 사학재단을 설립하고 48살에는 당시 자산가치로 100억원이 넘는 학교를 국가에 헌납했다.

 

0…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등록금, 하숙비, 생활비 등 셀 수 없이 많은 장학금을 지원했지만 어떠한 전달식도 열지 않아 장학생 규모는 아직도 확인되지 않는다.

 

 누구를 도와도 일체 외부에 알리지 않고 언론사 인터뷰도 응하지 않아 기사자료도 없다.

 

 선생의 손길로 숨통이 트인 사람들의 증언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그의 도움으로 수많은 학생이 학교를 마칠 수 있었고,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여성과 아이들을 위한 쉼터가 세워졌으며, 길거리에 나앉아야 할 극단(劇團)이 공연장을 갖게 됐고, 민족문제연구소도 활동을 계속 할 수 있었다.

 

 또 “권력이 무서워해야 할 하나는 있어야 한다”며 지역언론 운영비와 오갈 데 없는 여성을 위한 피난시설 비용을 대는 등 문화예술, 출판학술, 환경, 노동 등 지역사회 구석구석에서 기꺼이 ‘물주’로 나섰다.

 

0…주민들은 “동네사람들이 ‘김약국’ 없으면 못 살았지. 돈 없을 때마다 금고처럼 갖다 썼으니까”라고 기억한다. 그가 준 장학금으로 공부를 할 수 있었던 한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김 선생의 깜짝 생일잔치에서 선생을 회고하다 끝내 목이 메었다.

 

 돈의 사회환원 이유에 대해 선생은 “아프고 괴로운 사람들을 상대로 번 돈인데, 그 소중한 돈을 함부로 쓸 수 있나”라고 한다.

 

 “돈은 똥과 같다. 쌓아두면 구린내가 나지만 흩뿌리면 거름이 돼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는다.”는 그의 말은 돈에 관한 철학으로 포개진다.

 

0…선생은  특히 ‘새로운 차별’에 맞서 수많은 사람을 키워냈고 건강한 지역사회를 위해 씨앗을 심고 물을 주었다. 없는 이에게 기회를 줬고 소외된 곳과 아낌없이 연대했다. ‘김장하식’ 차별철폐였고 권력에 대한 저항이었다.

 

 이 같은 그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있다. ‘형평운동’을 적극 지원한 것이다. 이는 1923년 경남 진주에서 백정(白丁) 출신과 양반 출신이 합심해 결성한 형평사(衡平社)란 조직활동을 뜻한다.

 

 형평사 창립문 첫 머리에는 ‘공평은 사회의 근본이요, 애정은 인류의 본량이라’고 쓰여져 있다. 되짚어 보면 지난 세월 형평운동은 한약업사 김장하에게로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올해는 백정들의 신분해방과 인권을 주창한 형평운동이 일어난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이와 관련해 선생은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해간다”고 강조한다. 

 

0…선생은 60년간 운영해온 한약방의 문을 닫으면서, 30년 전 자신이 세운 문화재단도 마지막으로 경상국립대에 기증하는 것으로 삶의 궤적을 마무리한다.

 

 “아무도 칭찬하지도 말고 나무라지도 말고 그대로 봐주기만 해달라.”

 훈계는 넘쳐나지만 존경은 희미해지고 있는 이 세상에서 진짜 어른이 무엇인지 곱씹게 하는 ‘어른 김장하’의 다큐 속 마지막 말이다.

 

0…’어른 김장하’가 세상이 알려지기까지 많은 이들의 노력이 있었다. 한 사람의 생애를 취재하기 위해 100여 명의 주변 인물들을 만난 기자와 PD들이 있다. 그들의 노력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우리는 이런 어른을 멋있다고 하지만, 사실 선생이 하셨던 일들은 다 사회가 책임졌어야 하는 문제이다. 사회가 제대로 역할을 못하니까 선생이 메꿔주신 부분이다. 환경도, 여성도, 교육도, 우리가 한 사람한테 너무 많은 짐을 지워놓고 그냥 존경이라는 말로 퉁 치는 건 아닐까. 어려서부터 ‘어른’으로 너무 외로웠겠다고 생각했다.” 담당 PD의 말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선행과 자선을 하는 사람은 그럴만한 여유가 되니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맞는 말이긴 하다. 하지만 경제적 여유가 있다고 누구나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주변에서 흔히 보고 있다.

 

 ‘어른’ 김장하는 말한다.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이 사회에 갚아라”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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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26
김구 vs. 이승만- 만약 김구가 대권을 잡았더라면

 

-때론 역사도 시대를 잘못 판단하는 듯  

 


1946년 미군정 자문기관인 민주회의 창덕궁 회의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한 이승만과 김구.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우리의 부력(富力)이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만하고 우리가 강력히 남의 침략을 막을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백범 김구 <나의 소원>

 

 옛날 서당(書堂)에서 한문을 배우고 과거(科擧)시험 공부를 했을지언정 신식 제도권 교육이라곤 받아본 적이 없는 백범(白凡) 김구 선생. 그가 요즘 식자층도 선뜻 언급하기 어려운 저런 명언을 남겼다는 사실이 놀랍다. 배고픔도 해결하기 어려운 그 시기에 문화니 행복을 거론하다니, 그 앞선 선견지명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0…한국 현대 정치사의 상징 같은 존재 김대중-김영삼. 두 사람은 평생 정치적 동지이자 라이벌이었다. 때론 협력을, 때론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민주화를 이끌었다. 이들에 대한 공과(功過) 평가는 아직 진행 중이지만 그들이 칠흑같이 어두운 시대에 조국 민주화에 기여한 것만은 분명하다. 두 사람이 없었다면 한국의 민주화는 더 늦춰졌을지 모른다.

 

 인간사회에는 어디나 라이벌 관계가 있게 마련이다. 멀리는 신라의 김춘추와 김유신, 고려의 정몽주와 정도전, 조선의 이순신과 원균, 근대 들어서는 삼성 이병철과 현대 정주영, 외국에선 미국의 케네디와 닉슨, 맥아더와 트루먼, 중국의 항우와 유방, 조조와 유비, 제갈량과 사마의 등이 유명 사례로 꼽힌다.

 

 이 관계는 건강하게 선의의 경쟁만 벌인다면 쌍방 간에 서로를 발전시키는 동력(動力)이 된다. 무릇 매사에는 건전한 경쟁관계가 있어야 발전하는 법이다. 어떤 경우든 일방이 독주하면 오만해지기 쉽고 현실에 안주해 발전도 없다.

 

0…한국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두 인물, 김구와 이승만. 이들 역시 동지요 라이벌로 한 시대를 풍미한 특별한 관계였다. 나라를 잃고 헤매던 시절, 한 사람은 중국에서, 또 한 사람은 미국에서 조국광복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힘을 합쳤다.

 

 하지만 두 사람은 정작 그토록 염원하던 조국이 해방되면서 갈라지게 됐다. 이승만은 남한 단독정부 수립과 함께 초대대통령 자리에 올랐고 통일정부를 주장하던 김구는 이듬해 육군소위의 흉탄에 쓰러짐으로써 경쟁관계는 끝이 난다.

 

 해방 후 만약 이승만이 아니라 김구가 대통령이 되었더라면 지금 대한민국은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컨대, 일제 앞잡이들을 깨끗이 처단하고 한미-한일 관계도 떳떳한 민족자주국가로 나아가지 않았을까. 특히 통한(痛恨)의 남북분단의 비극을 피하고 한민족 대동단결의 시기가 앞당겨졌을지 모른다.

 

0…대한민국이 해방공간에서 제1공화국까지의 핵심적 과제였던 민족통일정부 수립과 일제 잔재 청산에 실패한 것은 국내 지지 기반이 없던 이승만이 친일 잔존 세력을 자신의 정치적 기반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지난날에 구애되어 앞날에 장애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논리로 친일보수세력의 이익을 보장하고 합리화했을 뿐 아니라 반공을 정적 제거의 만능 이데올로기로 악용했다. 그 악폐는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일제잔재 청산이 좌절된 1차적 책임은 미국의 남한점령정책에 있지만 이를 더욱 공고화한 책임은 이승만에게 있다. 이 사람은 일각에서 아직도 국부(國父)로 추앙받고 있다. 

 

0…이승만의 과오는 너무나 많다. 12년 집권기간 헤아릴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보도연맹 학살사건, 거창양민 학살사건, 부산 정치파동과 발췌개헌, 사사오입(四捨五入) 개헌, 조봉암 사형, 3?15부정선거와 경찰 발포…

 

 6.25때는 북한군이 몰려오자 부랴부랴 야반도주하며 방송을 통해 “우리 국군이 적군을 격퇴하고 있으니 걱정말라”고 국민들을 안심시킨 뒤 자기는 이미 건너간 한강교 폭파를 지시해 다리를 건너던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게 했고 강을 건너지 못한 시민들은 인민군 치하에서 큰 고생을 했다. 이건 살인행위에 다름 아니다.

 

 그중에도 자신의 집권을 위해 단독정부를 서두름으로써 남북분단을 고착화시킨 점은 역사의 최대 치욕으로 남아있다.

 

0…이에 반해 백범은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의 구차한 안일을 위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데는 협력하지 않겠다”며 1948년 4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지도자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38선을 넘어 간다. 그리고 돌아와 1년 뒤 총탄에 쓰러진다. 암살범 안두희 배후에는 누가 있었을까.

 

 역사에서 가정(假定)은 부질없지만 남북관계가 지금 같은 위기에 빠져있을 때 백범이 살아 있다면 어떻게 했을까? “내가 가서 담판을 짓고 오겠다”며 회색 두루마기를 휘날리며 판문점을 향해 달려가지 않았을까.

 

 한국사회에 정의가 정착되고 일본에게 저자세로 굽신대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처럼 역사가 왜곡되고 뒤엉키고 정의와 불의가 혼동되는 사태도 없었을 것이다.

 

 이승만 시대가 다시 도래한 것 같은 현 한국사회를 보면서 역사는 반복된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한다.

 

0…남북관계가 금방 전쟁이라도 터질듯 험악하고 주변 강대국들은 서로 한반도를 지배하려 감 놔라 대추 놔라 간섭하는 현 상황은 어쩜 그리도 70년 전이나 달라진 것이 없을까.  

 

 이승만은 현실정치에서는 이겼지만 역사에서는 졌고 김구는 현실정치에서는 졌지만 역사에서는 승자가 되었다. 지금 백범을 추앙하는 수많은 국민들의 진심이 그것을 말해준다.

 

 “나에게 한 발의 총알이 남아 있다면, 왜놈보다 나라와 민주주의를 배신한 매국노 변절자를 백번 천번 먼저 처단할 것이다. 왜? 왜놈보다 더 무서운 적이니까.”(백범 김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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