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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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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29
홀로서기 연습 -위기의 시간, 성숙의 계기로

 

(요즘 코로나 사태로 세상이 뒤숭숭합니다. 특히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하고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니 사람들의 삶의 모습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아래 글은 꼭 필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주변 친지들이 체험한 상황들을 들어보고 느낀 점을 함께 엮어서 쓴 것입니다.)

 

 

 

 


 “당신 무척 착실해졌어요. 학창시절 모범생 같아요. 집안일도 잘 도와주고, 안보던 책도 꺼내 읽고… 진작에 그렇게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요즘 아내에게 자주 듣는 말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자 외출하지 말고 집에서 일하라는 직장이 많아지면서 많은 분들이 집안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실 한국남자들은 집안에만 있기가 어려운 분들이 많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주로 밖에서 일하고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집에만 콕 박혀 사는데는 익숙하지가 않지요. 그런데 코로나 사태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집안에 머물러야 하는 시간이 늘면서 일상의 풍속도 달라진 것입니다.            

     
 처음엔 집에만 있으니 너무나 답답했습니다. 도무지 할 일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정말 세상 사는 재미가 없었습니다. 하루종일 소파에 누워 빈둥거리며 드라마 보는 것도 지겹고, 별로 웃기지도 않는 코미디를 보며 억지로 웃는 것도 왠지 허탈하기만 했습니다. 주일에 성당에도 못 가고 셀폰을 들여다 보며 신부님의 말씀에 따라 미사를 드리는 희한한 경험도 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집에서 아내와 함께 온라인으로 미사를 드리는데 왠지 어색했습니다.    


 멀쩡한 남자가 대낮에 집안에 있자니 좀이 쑤십니다. 처음엔 한낮에 부부가 함께 있으니 신선하고 좋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내 시큰둥해지고 서로의 흠집만 보이니 사소한 일로 티격댑니다. 이럴 때 친구라도 불러내 술 한잔 하고 싶어도 식당들이 문을 닫았으니 나갈 수도 없습니다.


 창밖은 봄볕이 화창한데 동네로 산책을 나가도 지나치는 사람들이 서로 괴물을 보듯 몸을 피하니 기분이 별로입니다. 특히 백인치들은 멀찍이서도 동양사람을 보면 슬금슬금 피합니다. 그들이 어느 종족인지는 모르나 이젠 유럽이 더 난리인데, 마치 동양인들이 전염병을 퍼트린 듯이 눈을 내리깝니다. 


 솔직히 코로나 초기에 백인들이 중국인들을 조롱하고 비하하는 모습을 보며 같은 동양인으로서 공분(公憤)을 느꼈습니다. 지금 미국과 유럽에서 코로나가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가는 모습을 보며 묘한 생각도 듭니다. 신은 이 와중에도 인종을 불문하고 모두에게 공평하게 매서운 회초리를 드시는구나. 각자 반성의 시간을 갖고 좀 더 겸손해지라고. 만물의 영장이라고 그동안 너무 우쭐대고 으스댄 것은 아닌지.        

         
0…이제 코로나 사태가 거의 석달 째로 접어들면서 세상이 너무도 달라졌습니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일상화돼가고 있습니다. 출퇴근 시간이면 차량들 정체로 짜증이 나던 거리가 마치 유령도시처럼 텅 비고 썰렁합니다. 차가 잘 빠져 좋긴 한데 왠지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고 시려옵니다.   


 평소 일에 치여 사느라 별다른 취미가 없던 사람들은 이럴 때 아무런 할일이 없습니다. 특히 평소 사람을 좋아하는 이들은 더욱이나 심심해서 죽을 지경입니다. 또한 평소에 공유(公有)할 일이나 취미가 없는 부부들은 대낮에 함께 있는 시간이 오히려 머쓱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아기자기하게 대화를 나누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책이라도 보는 습성이 있다면 이럴 때 독서라도 많이 해두면 좋겠지만 그런 습관도 없다면 책 내용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을 겁니다.   


 이럴 때 우리는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이런 시간이 자주 오지는 않습니다. 이 기회를 소중하게 활용해야 합니다. 어쩔 수 없다면 즐기라고 했습니다. 나는 이참에 노후를 대비해 무언가 생산적이고 보람있는 취미활동을 개발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특히 부부가 함께 할 수 있는 활동을. 저희는 사실 노후가 그리 멀지 않았습니다.   


0…저는 이번에 집에 많이 머물며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절감했습니다. 아내가 별로 표도 나지 않는 소소한 집안일을 하느라 얼마나 고생하는지. 또한 느긋하게 동네길을 산책할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돌아보게 됩니다. 외식이 아닌 따스한 집밥을 먹으며 또한 행복에 잠깁니다.       


 그동안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네 인생. 신은 우리에게 잠시 휴식 좀 하면서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주셨는지 모릅니다. 조물주가 주신 이 소중한 안식(安息)기간을 우리는 감사히 받아 섬겨야 하겠습니다. 한발짝 물러서서 자신과 주변을 찬찬히 되돌아 보는 기회로 삼아야겠습니다. 그동안 보이지 않던 모습들이 하나씩 둘씩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내가 콘트롤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차라리 감사한 마음으로 즐기는 것이 현명하겠습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입니다. 또한 홀로 있는 시간은 인간을 성숙하게 만듭니다.

이 고난의 시간들도 점차 우리에게 익숙해지고 훗날엔 아름다운 추억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그동안 뭍한 인간들에 치여 정작 자신은 잊어버린 채 살아온 우리, 이제 홀로서기를 통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보도록 하면 어떨까요. 


 홀로 있으니 외롭습니까? 그러나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머지않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즐겁고 긍정적인 생각들만 하면서 모처럼 맞은 안식기간을 감사히 보내도록 합시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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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20
사회적 거리 두기 -코로나가 일깨운 인간 관계

 

▲코로나 감염을 우려한 중년부부가 각각 열차의 좌석에 떨어져 앉아 손 소독제를 건네고 있다.

 

 

 

 요즘들어 ‘인간(人間)'이란 한자의 오묘함을 새삼 돌아보게 된다. 먼저, 사회적 동물인 사람은 서로 기대어 살 수밖에 없게 돼있다. 둘이 서로 기대야 비로소 한 사람(人)이 되니 혼자서는 존립이 어렵다. 인간사회는 어차피 둘 이상이 있어야 무슨 일이든 이루어질 수가 있다.  


 반면, 뒤에 붙는 사이 간(間)은 인간의 개체 혹은 주체성을 표현한다. 즉, 둘이 합쳐져야 한 인간이 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역설적이게도 두 사람은 결코 하나가 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사람 사이에는 반드시 간격이 있으며, 또한 그렇게 간격을 두는 것이 순리라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이 말을 실감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인간이란 말의 의미가 요즘처럼 실감나는 때도 없었다. 사람이 혼자만으로는 살 수 없고 긴밀하게 서로 돕고 교류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 맞지만, 어느 땐 사람 간에 적당한 거리를 둘 필요도 있다는 선현(先賢)들의 말씀이 새삼 진리로 다가오는 것이다.


0…나는 지난해 ‘적당히 거리두기’란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사돈이 외국계 분들이고 그래서 적당히 거리감이 있어 오히려 편하다는 취지의 글을 썼다. 즉, 사돈끼리 만나도 언어가 잘 안통하는데 이상하게 그게 오히려 편한 것이다. 만나서 반갑고 좋으면 그냥 활짝 웃기만 하면 된다. 한국사람 같으면 얼굴 표정만 봐도 속마음을 훤히 알지만 이분들은 그렇지가 않다. 구태여 속마음을 헤아리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사돈이 같은 한국사람이었더라면 어땠을까. 아마 결혼식 절차와 신혼집을 정하는 문제 등에서 사돈끼리 다소간 실랑이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난해 한국에 나가 듣자 하니, 누구네는 결혼을 앞두고 혼수(婚需)와 신혼집 문제로 사돈 간에 티격대다 결혼식 직전에 혼사 자체가 깨져버렸다고 한다. 우리는 그런 일이 전혀 없었으니 참 행복하다. 그저 양가(兩家)가 최선을 다해 서로를 존중하면 그것으로 족했다.   


 외국 사돈을 대할 때마다 우리는 인간관계에서 적당한 거리가 유지된다는 사실이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지 새삼 감사한 생각을 한다. 섬세한 감정까지는 모르겠으되 속내는 적당히 모른체 하니 오히려 좋은 것이다. 


0…인간관계는 적당히 거리를 둘 때 원만히, 오래 유지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친한 사이라도 해외여행, 특히 옵션 투어는 가능한 함께 가지 말라고 권한다. 평소에는 잘 모르던 서로의 습성이 여러날을 함께 지내면서 속속들이 나타나 실망하는가 하면, 취향도 서로 달라 사소한 일로 언쟁을 벌이다가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내 관계가 소원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작년에 우리 가족이 한국에 나갔을 때 형제자매들로부터 후한 대접을 받고 돌아오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우리가 이민 오지 않고 계속 한국에 살았더라도 그렇게 반가워하고 애틋해 했을까. 아마 가까이 살았더라면 가끔은 토닥대는 일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처럼 어쩌다 한번씩 보니 반갑고 살가운 것이 아닐까. 


 촌수(寸數)가 없다는 부부관계도 마찬가지. 아무리 살뜰하게 사랑하는 사이라도 서로를 훤히 알다보면 상대방의 허물이 눈에 띄고 그러다보면 가끔은 티격대는 일도 생기는 법이다. 남편이 어디 출장이라도 갔다 오면 아내를 더 사랑하게 되는 것도 가끔은 서로 떨어져 있는 시간이 필요함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0…우리가 흔히 쓰는 말 가운데 ‘사이가 좋다’는 말이 있다. 가정이나 사회생활 등에서 ‘관계가 좋다’는 뜻이다. ‘사이’는 한자로 ‘간(間)’이다. 그러니까 사이가 좋다는 것은, 서로가 빈 틈 없이 딱 붙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너무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닌,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의미다.


 원만한 인간관계의 비결은 바로 ‘사이’에 있다. 서로 간에 적절한 거리를 유지해야 관계가 오래, 아름답게 지속될 수 있다. 일상에서 많이 쓰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즉 ‘너무 가까이도, 너무 멀리도 하지 마라’는 말을 철칙으로 삼을 때 좋은 인간관계를 지속할 수 있다. 


 자연의 풍경도 그렇고 사람의 마음도 그렇다. 장엄한 산(山)의 위대함은 거리를 두고 보아야 제대로 보이는 법이다.   


0…이번 코로나 사태로 깨닫게 된 것 중에는 세상의 모든 사단(事端)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좁아지면서 생긴 현상이라는 점도 있다.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이 전염병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마구 누비면서 치명적인 씨를 뿌리고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사람간 간격이 떨어져 있으면 전염이 안된다. 따라서 지금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은 사람 사이를 떼어놓는 것이다.


 어찌보면 이 단순해 보이는 조치가 처음엔 쉬워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인간생활 전반을 위축시키고 마비시키고 비정상적인 상태에 빠져들게 하고 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인간은 저마다 자신을 격리한 채 무기력하게 견디며 병이 사라지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우리는 이참에 인간관계에서 적절한 거리두기라는 교훈을 받아들이고 힘들더라도 인내해야겠다. 시련의 시간이 지난 후에 만나는 사람들은 훨씬 더 관계의 소중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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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7
봄날은 온다 - 어떤 현실에도 긍정하기

 

 

 

 

‘이별은 쉽게 허락되지 않는 것/ 겨울 끝자락의 꽃샘추위를 보라/ 봄기운에 떠밀려 총총히 떠나가면서도/ 겨울은 아련히 여운을 남긴다/ 어디 겨울 뿐이랴/ 지금 너의 마음을 고요히 들여다 보라/ 바람 같은 세월에 수많은 계절이 흘렀어도/ 언젠가 네 곁을 떠난 옛 사랑의 추억이/ 숨결처럼 맴돌고 있으리’ (정연복 ‘꽃샘추위')

 


 햇살 따사로운 지난 주일, 온가족이 가벼운 산책길에 나섰다. 고색창연한 건물들이 운치있게 늘어선 유니온빌 거리는 인파로 붐비고, 오가는 사람들은 한껏 여유가 있어 보였다. 거리엔 활기가 넘치고 봄볕이 황홀할만큼 좋았다. 


 루즈리버 강엔 아직 잔설이 남아 있지만 강물은 힘차게 흐르고 강기슭에 늘어선 버드나무 가지마다 파릇파릇한 색깔이 올라오고 있었다. 물새들은 모래톱에서 한가롭게 일광욕을 즐기고 사람들은 그런 평화로운 모습들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았다. 


 길거리 벤취에 앉아 즐기는 한잔의 커피는 꽤나 낭만적이고, 거리의 악사는 흥겹게 기타를 치며 새봄을 노래한다. 아, 정녕 봄이런가. 이런 곳에서는 요즘 한창 창궐하는 코로나 바이러스 걱정 따위는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마스크를 쓴 사람은 어쩌다 한 두명뿐, 사람들은 대자연이 가져다준 봄의 축복을 만끽하고 있었다. 우리 가족도 느긋한 런치를 즐기며 감미로운 행복감에 잠겼다.   


0…이른 봄에 태어난 나는 사계절 중에 특히 봄날을 좋아한다. 흙냄새 맡으며 학창시절을 보낸 탓에 새봄만 되면 그때 그 시절이 너무도 그립다. 청운의 꿈에 부풀어 장차 무슨 일이든 해낼 것 같은 자신감에 차있던 시절. 지금도 삶이 풋풋해질 땐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며 마음을 정화시켜본다.


 봄의 전령사 매화와 벗꽃 등은 만개(滿開)하기 직전의 파르스름한 연둣빛 순이 더 청초하고 순수하다. 그래서 봄날은 생명의 기지개이며 인생의 시작과 같다. 나는 새봄만 돌아오면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다. 집 앞뒤 뜰에도, 공원에도, 들녘에도, 강변에도, 봄은 살포시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기다리는 것은 느리게 오는 법. 봄은 더디게 오기에 많은 시인 묵객(墨客)들의 소재가 되곤 한다. 조선시대 평양기생 매화가 나이 들어 시들어 감을 서러워하며 지었다는 시조 한 구절도 그중 하나다. ‘매화 옛 등걸에 춘절(春節)이 돌아오니/ 옛 피던 가지에 피엄 즉도 하다마는/ 춘설(春雪)이 난분분(亂紛紛)하니 필동말동 하여라.’ 


0…꿈과 희망의 계절인 봄날이 올해는 특히나 을씨년스럽다. 봄은 봄이로되 진정한 봄을 느낄 수가 없다. 이맘때 흔히 쓰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말이 이처럼 실감날 수 없다. 계절이 가는지 오는지, 코로나 바람에 사람들의 인정마져 말라가고 있다.   


 고국의 남녘엔 매화가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했다는 소식이지만, 상춘객(賞春客)들로 북적여야 할 매화마을이 올해는 코로나에 막혀 손님들을 돌려보내야 할 처지다. 마을 입구엔 “건강을 위해 매화마을에 오지 마세요"란 플래카드가 붙었다. 이런 이색적인 현수막이 나붙기는 동네가 생긴 이래 처음이란다.  


 요즘같은 때는 자칫 우울증에 걸리기 쉽다. 따라서 이럴 때일수록 매사를 밝고 긍정적으로 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어느 책에서 읽은 ‘불안감을 관리하는 마음챙김 훈련’을 소개한다. 이는 긍정적인 문장을 반복해서 떠올리면 불가능하다고 생각됐던 것도 가능하다고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긍정적인 문구를 반복적으로 떠올리면서 그렇게 되도록 뇌를 훈련시키는 것이다.


0…우선 무엇보다 ‘나는 내 꿈을 믿는다’고 스스로 다짐한다. 그리고 나와 관련된 모든 것을 믿는다. 마음이 믿으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또한 원하는 것은 뭐든지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길 것이다. 


 둘째 ‘나는 매일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무엇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 그 일이 얼마나 크거나 작은지는 상관없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성공은 한 번에 일어나는 그 무엇이 아니다. 작은 노력들이 모인 것이다. 


 셋째,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자. 거울을 보며 거울에 비친 내 눈을 보며 “사랑해” 라고 말하자. 있는 그대로의 나, 결점이 있어도 그대로의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자.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이 사랑해주길 바라면 안 된다. 모든 것은 나에게서 시작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다.


 넷째, 나는 내 자신의 행복을 책임지고 있다. 지금처럼 고난을 느끼는 시간에서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다. 더 강해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스스로 만족스럽고, 더 긍정적인 사람이 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은 자신 뿐이다. 진정한 행복은 내 자신에게 있다. 


 다섯째, 가장 좋은 일은 아직 생기지 않았다. 그러니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가져야 한다. 미래는 더 밝아질 것이다. 이렇게 믿으면 스스로에게 최선을 다해야 할 이유가 생기고 내일은 분명 더 나은 기회가 있을 것이다.


 끝으로, 매일 나의 삶에 감사하자.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내 삶에 감사하자. 때로는 힘들고 지쳐 현실을 원망하고 도피하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든 마음을 바꾸어 좋든 싫든 어떤 것에든 긍정하고 감사하자. 시련도 배움의 기회임을 기억하자. 봄날은 꼭 온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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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0
일상의 행복 -세상을 바꿔놓은 코로나

 

 

 

 “햇볕 따사로운 주말 아침, 창가에 앉아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향긋한 커피 한잔을 마시고 싶다. 오후엔 시내에 나가 정다운 친구들과 만나 식사를 하며 수다를 떨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나누고 싶다. 그 행복한 시간들이 얼마나 감사하고 소중한지 이제야 새삼 실감이 난다…” 


 지난 주말 한국의 누님이 보내준 ‘일상의 행복’이라는 동영상을 보고 있노라니 코끝이 찡해졌다. 최근 심각한 코로나 사태를 겪고 있는 고국 상황을 전하며, 전에는 미쳐 몰랐던 일상의 평범한  생활들이 요즘처럼 간절히 그리워진 적이 없었다고 했다. 


 한 주일 열심히 일한 후 주말이면 가족들이 함께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고 외식도 하고, 남자들은 친구들과 만나 소주 한잔 하며 정담을 나누는 일들이 그렇게도 그리울 수 없다. 그때가 행복이었던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지금은 주말이 돼도 온가족이 집에만 머물러 있어야 하니 답답하기 짝없고, 뉴스에선 날마다 늘어나는 코로나 환자 수 전하기에 바쁘다. 누님네는 다행히 자녀들이 다 성장해 학교 갈 걱정은 없지만 학생을 둔 가정은 개학도 몇 주나 연기돼 집안에서 자녀들이 빈둥거리는 모양이 보기에도 갑갑해 죽을 지경이다. 공원에는 아이들 뛰노는 모습이 사라졌고, 어린이가 있는 집에서는 아이들이 온종일 무엇을 하게 하고 무엇을 먹이느냐가 큰 고민거리가 됐다.


0…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두달 째에 접어든 고국에선 참으로 많은 사람들의 일상이 바뀌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마스크를 쓰고, 이미 동이 난 마스크와 손 세정제 구하기 전쟁이 일상이 된 것은 물론 식생활, 여가생활, 아이돌봄 등에서 큰 변화가 일어났다. 전에는 대충 넘어갔던 사람들도 이젠 수시로 손을 씻고, 사람간 인사도 악수는 생략하고 손을 들거나 팔꿈치를 갖다 대는 등 신체 접촉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 


 매일 아침 스마트폰으로 코로나 상황을 체크하고, 확진자의 동선(動線) 정보가 뜨면 혹시 나도 그 장소에 가지 않았는지 기억을 더듬기 바쁘다. 인파로 넘치던 시장과 거리는 유령도시처럼 인적이 뜸하고 공공기관이나 마트 등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출입이 어렵다. 


 대중교통 이용도 최대한 자제한다. 밀폐된 공간에서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다 보니 시민들의 불안감은 클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가까운 거리는 웬만하면 도보로 이동하거나 승용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극장이나 공연장 등 다중이 모이는 문화시설 이용은 줄어든 반면, 집에서 온라인 동영상을 주로 이용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사람간 접촉보다 개인주의 성향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우울증과 무력감을 호소하는 사람도 늘었다. SNS에는 외부활동을 자제하는 일상에 코로나로 인한 불안, 우울 등 심리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글이 오른다. 전문가들은 “이럴 때일수록 혼자 있으면 우울해지고 불안한 상상을 하게 되니 안전수칙을 지키면서 가족이나 친구끼리 서로 안심시키고 다독이는 일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0…이번 사태는 빗나간 사이비 종교의 일탈행위가 어떤 참상을 초래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요즘같은 개명천지(開明天地)에 비상식적 교리에 빠져드는 사람이 그렇게도 많다는 사실이 또한 충격이다. 이런 사이비 종교가 창궐한다는 것은 사회적 모순과 양극화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 와중에 정치권은 정부의 책임문제를 들고 나오는데 이건 아니다. 치열한 전쟁 중에 이는   적전분열(敵前分裂) 행위와 다름없다. 지금은 일치단결해 우선 적부터 치고 봐야 한다. 책임 규명은 다음 문제다. 해외에서는 한국의 대응을 주의깊게 보면서 잘 대처하고 있다는데 정작 한국 내부에서 불협화음이 나와선 안되겠다. 


0…‘소확행(小確幸)’이라는 말이 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축약어로,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랑게르한스 섬의 오후’(1986)에서 쓰인 말이다. 즉,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하게 실현할 수 있는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뜻한다. 작가가 말하는 소확행은 이를테면 갓 구워낸 빵을 손으로 찢어서 먹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돌돌 말은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 새로 산 정결한 면 냄새가 퐁퐁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 쓸 때의 기분, 겨울밤 부스럭 소리를 내며 이불 속으로 들어오는 고양이의 감촉 등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소확행을 무수히 만나지만 실제론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아이러니하게도 소확행은 대개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겪고 나서야 깨닫는 경우가 많다. 몸이 아파 누워있을 땐 이 병만 나으면 작은 일에 감사하고 선행을 베풀며 행복하게 살 것 같은데 막상 낫고 나면 또다시 작은 일에도 투덜대고 불평하며 산다. 지금이 바로 그런 시점일 것이다.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평범한 일상의 행복. 그것은 어쩌면 코로나가 가져다준 소중한 교훈일 것이다. 


0…코로나는 인간의 오만함에 대한 준엄한 경종인지도 모른다. 인류의 지능을 로보트가 대신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현실, 코로나는 그런 첨단기술을 마음껏 조롱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인간은 겸허해져야 한다.      


 이젠 봄이 멀지 않다. 고국에 어서 빨리 따스한 봄이 찾아와 소소한 일상으로 복귀할 날을 간절히 기대한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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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8
이 또한 지나가리라 -고난의 시기, 평정심 잃지 말기

 



 
슬픔이 그대의 삶으로 밀려와 마음을 흔들고/소중한 것들을 쓸어가 버릴 때면/그대 가슴에 대고 다만 말하라/‘이것 또한 지나가리라’(This, too, shall pass away). /행운이 그대에게 미소 짓고 기쁨과 환희로 가득할 때/근심 없는 날들이 스쳐갈 때면/세속적인 것들에만 의지하지 않도록/이 진실을 조용히 가슴에 새기라/‘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랜터 윌슨 스미스)

 


 “이 또한 지나가리라. ” 누구나 한번쯤 들어보았을 문장이다. 이 말의 유래는 성경 강론을 뜻하는 미드라쉬(Midrash)라는 설이 유력하다. 이는 랍비(유대교 현인)들의 성경 주석에서 출발한 유대인들의 지혜서로 이야기의 줄거리는 대략 다음과 같다. 


 고대 이스라엘의 왕 다윗이 궁중의 보석 세공인을 불러 명령했다. “나를 위하여 반지 하나를 만들되, 거기엔 내가 큰 승리를 거둬 기쁨을 억제하지 못할 때 그것을 조절할 수 있는 글귀를 새겨 넣어라. 그러나 동시에 그 글귀는 내가 절망에 빠졌을 때 용기를 불어넣어 줄 수도 있어야 하느니라.” 


 보석 세공인은 다윗의 명령대로 아름다운 반지 하나를 만들었다. 그러나 반지에 새겨 넣을 적당한 글귀가 생각나지 않아 걱정이었다. 궁리 끝에 그는 지혜롭기로 유명한 솔로몬 왕자를 찾아갔다. “왕이 황홀한 기쁨에 젖어 있을 때 그것을 절제하게 하고, 동시에 그가 낙담했을 때는 힘을 북돋워 드리기 위해 어떤 말을 써넣어야 할까요?” 


 이에 솔로몬은 글귀를 하나 알려주며 “왕이 승리의 순간에 이것을 보면 이내 자만심이 가라앉게 될 것이고, 그가 낙심 중에 이것을 보면 곧 표정이 밝아질 것”이라 했다. 과연 다윗은 반지에 적힌 글귀를 읽고는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만족해했다. 반지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미국에서 감리교 목사의 딸로 태어나 목회자의 아내로 살았던 찬송가 작사가이자 시인인 랜터 윌슨 스미스는 이 문장을 주제로 위와 같은 시를 썼다.


0…‘이 또한…’은 세상만사 너무 현실에 집착하거나 욕심내지 말고 살아가라는 경구다. 기쁘다고 날뛸 것도 없고 나쁜 일이 계속된다고 낙담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특히 절망의 시간에 이 문구를 되새겨 보면 그런대로 견딜 힘이 난다. 누구나 한때는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던 고난과 시련도 세월이 흐르고 난 후 돌이켜보면 아련한 추억으로 남게 된다. 


 생각해보면 환희도 슬픔도 한갓 찰나에 불과하다. 학교 입학시험에 합격했을 때의 기쁨도 잠시,  시간이 지나고 나면 사회진출이라는 과제 앞에 다시 고뇌해야 한다. 반면, 군대 입영이라는 청춘시절의 막막한 상황도 순식간에 시간이 흐르고 나면 풋풋한 추억담으로 남게 된다. 모든게 그저 지나가게 돼있다. 그러니 너무 현실에 매달려 안달할 일이 아니다. 


 언젠가 서울로 발령 나 토론토를 떠나는 어느 기관장과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였다. 캐나다를 떠나는 소회를 물으니 그는 ‘희기동소’(喜忌同所)라는 말로 대신하겠다고 했다. 이는 곧 즐거운 일과 나쁜 일은 한 곳에서 일어난다는 뜻이니 좋은 일도 있었고 좋지 않은 일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언제나 이런 자세로 살겠노라 했다. 기쁠 때일수록 자중하고 난관이 닥치더라도 곧 지나가리라는 자세로 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했다. 소탈하고 겸손했던 그다운 마음가짐이라 생각됐다. 


0…요즘 코로나 바이러스로 나라 안팎이 몹시 어수선하다. 한국은 처음엔 그런대로 잘 버티어 내는가 싶어 저으기 안심했었다. 그러나 한 종교단체를 중심으로 바이러스가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사태가 일파만파로 확대되고 있다. 대통령도 코로나 바이러스 종식이 눈앞에 보인다고까지 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자 최고 경계경보 단계를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사람들로 넘쳐나던 도시는 졸지에 텅 빈 유령거리로 변해버렸고 사람들은 외출은 물론, 대인접촉까지 꺼리게 됐다. 


 토론토 동포사회도 모국의 영향 탓인지 지난 주일부터 교회 등에 출석신자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지난 주일 미사에 참석한 우리는 평소 같으면 비집고 들어가야 할 좌석이 군데군데 비어 있어 사태의 심각성을 실감했다. 이스라엘 등지로 성지순례를 다녀온 형제자매들은 자진해서 자가격리에 들어갔고 한인 행사도 잇달아 취소되고 있다. 


 전염병의 피해는 외적인 고통도 그렇지만 인간관계도 멀어지게 만드는 심각성을 갖고 있다. 누가 기침만 해도 의심의 눈으로 돌아보는 것이 인간이다. 사태의 긴박감이 코앞에 닥치자 남의 나라 국민들 아픔까지 돌아볼 여유도 없어졌다. 


 코로나가 처음 발병한 중국 우한 지역은 초기만 해도 세계의 동정을 받고 미디어의 초점이 됐으나 지금은 모두 자기 발등에 떨어진 불만 보일 뿐 감옥처럼 갇혀 죽어가는 이들은 관심 밖이 되고 말았다. 


0…최첨단 시대에 이런 아비규환(阿鼻叫喚)이 있을 수 있나. 지금은 온통 캄캄한 밤과 절벽 같은 느낌 뿐이다. 하지만 이런 것도 언젠가는 옛날 이야기처럼 할 날이 분명히 올 것이다. 그때를 생각하고 희망을 놓지 말아야겠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무수히 이런 일을 겪는다.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은 절망과 비극도 시간이 지나면 해결이 되는 법이다. 아직은 춥고 을씨년스런 겨울의 막바지이지만 머지 않아 모든 시련과 고통도 지나가고 새봄이 찾아오리라.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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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1
숫자의 두 얼굴-공포감 부추기는 코로나 집계

 
  

▲코로나바이러스19 세계 각국별 발생 현황표  

 

 


 “일본 크루즈선 코로나19 감염 88명 또 확인…총 542명, 승선자 14.6% 감염…미검자 1,307명 중 추가환자 발생 가능성…” “중국은 17일 하루에만 1,800여명이 신규 확진 판정. 누적 환자 7만2,400명. 어제 하루 숨진 사람만 98명, 지금까지 모두 1,800명이 넘게 사망…”


 요즘 국내외에서 코로나 19 와 관련, 연일 새로운 숫자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어느 나라에서 몇 명이 새로 확진되고 몇 명이 사망했으며 00번 환자의 동선(動線)이 아리송하다는 등. 개중에는 완치 판정을 받아 집으로 돌아갔다는 반가운 소식도 있긴 하다. 


 하지만 코로나 기세가 수그러들 기미가 보여도 당국에서는 무척 조심스럽게 반응하고 있다. 자칫 낙관적인 발표를 했다간 너무 안일하게 대처한다는 비난을 살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호들갑을 떨더라도 철저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정부당국으로서는 나은 선택일 것이다.      


0…중국의 예에서 보듯, 작금의 코로나 사태는 국가 전체의 공포 분위기는 물론, 대응방식에 문제가 있는 정권의 뿌리까지 뒤흔들고 있다. 이번 사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무능한 정부 소리를 듣기 딱 알맞으며 정권퇴진 위기에까지 몰릴 상황이다.  


 그런데 숫자란 것이 그렇다. 다분히 양면적 성격을 띠고 있다. 숫자는 우선 신뢰를 상징한다. 복잡다단한 상황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보다 명확한 숫자를 들이대면 대번에 설득력을 갖게 된다. 가령 전쟁의 참상을 알릴 때 1, 2차 세계대전과 6.25 한국전쟁으로 몆 명이 사망했다고 하면 금방 참혹함을 이해하게 된다.  


 반면에 숫자는 어떤 상황을 강조하거나 부풀릴 때 이용되기도 한다. 이는 흔히 정치 권력자들이 사용하는 수법이다. 현 정부가 집권하고 나서 이렇게 달라졌다고 숫자를 제시하면 국민들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한편, 숫자는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특히 나쁜 상황에서 숫자가 늘어나는 경우 사람들은 숫자만 보아도 겁에 질리게 된다. 지금의 코로나19 사태 현실이 그렇다. 다소 진정기미가 보이는 것도 같지만 아직은 계속해서 희생자 숫자가 늘어가고 있다.            

       
0…그런데 코로나19 희생자 숫자를 연일 누적해 발표하는 것이 과연 사람들에게 어떤 심리적 효과를 주는지 생각하면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비유가 옳은지를 떠나, 전 세계에서는 하루에도 수만 명이 자살이나 교통사고로 죽는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한국은 2018년 기준 하루에 36명, 1년에 1만 3천여 명이 자살로 죽었다. 중국에서는 교통사고로  하루 평균 300여 명, 매년 10만 명 이상이 죽는다. 


 의료 최선진국이라는 미국에서는 2년 전 독감으로 인해 무려 7만 명이 사망했다. 이번 겨울에만 사망자가 1만 4천명을 돌파했다. 이에 뉴욕대학의 의학박사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문제가 아니라 미국 독감이 문제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미국에서는 이제 11번째 확진자가 나온 코로나19에 대한 공포가 독감에 대한 공포를 압도하고 있다.


 이런 예는 부지기수다. 사람들이 크게 주목하지 않는 질병으로 죽어가는 숫자에 비하면 코로나는 조족지혈(鳥足之血)에 불과하다. 아프리카에서 풍토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만 매일 수백 명에 달한다. 하지만 매스컴과 사람들은 그런 것엔 관심이 없다. 


 지금 전 세계 언론에서 연일 집계되고 있는 코로나19 희생자 현황 숫자는 이제 자중할 필요가 있다. 사태에 차분하게 대응하면서 백신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전염병 자체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사회적 공포 분위기다. 질병 환자는 가시적(可視的) 숫자이지만 공포에 짓눌려 떠는 사람은 그보다 수백 수천 배 더 많으며, 그로 인한 사회적 기회비용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0…우리는 차에 치여 죽을까 두려워하면서 거리를 다니지는 않는다. 이번 겨울 미국에서 독감으로 인한 사망자가 거의 2만 명에 달한다고 해서 미국인의 입국을 금지하자는 이야기를 하지도 않는다. 만약 이번 코로나 사태가 미국이나 일본에서 발생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래도 전 세계가 이렇게 한 지역을 통째로 봉쇄하고 감옥처럼 갇힌 사람들의 안위(安危) 따위는 염두에도 두지 않는 잔인성을 발휘했을까.  


 자고로 숫자는 정확성과 신뢰를 주기 위한 자료로서 유효한 수단인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이 자칫 잘못 남용되면 공포의 무기로 사용되기도 한다. 지금의 현실은 다분히 그런 측면이 있다. 날마다 누적돼가는 희생자 집계를 보면서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움츠러들기 마련이고 사람을 만나거나 외출하는 것을 꺼리며 이는 결과적으로 모든 사회, 경제활동을 위축시키고 있다.    

 
 그나마 우리가 사는 캐나다는 이번 사태에 비교적 차분히 대처하고 있다. 2003년 사스(SARS) 폭풍의 혹독한 대가를 치른 탓인지 정부도 대응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0…구한말 조선에서 헌신적인 의료선교를 펼친 토론토 출신의 윌리엄 제임스 홀과 아들 셔우드 홀 일가(一家). 그들은 당시 무서운 전염병으로 알려진 폐결핵 환자들을 자신의 몸처럼 치료하면서도 사회적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진 않았다. 이들이야말로 현재 코로나에 대처하고 있는 각국 관계자들이 본받아야 할 표상(表象)이라 하겠다.  


 프랑스의 법학자 알랭 쉬피오(70) 교수가 지적했듯이 이제는 코로나 사태도 ‘숫자놀음'에서 해방됐으면 한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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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6
‘기생충’이 남긴것- 욕망과 이기심의 샘터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영화 ‘기생충’에서 기우(최우식 분)가 가정교사 면접을 보기 위해 찾아간 저택

 

 

 영화 한 편의 위력이 이처럼 대단한지 새삼 돌아보게 된다. 백인들만의 잔치라는 비판을 받아온 할리우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사상 처음으로 비영어권인 한국영화가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등 주요 4개 부문을 휩쓸었다. 이는 봉준호 감독을 비롯한 출연 배우, 스탭들의 개인적인 영광은 물론, 한국인 전체의 커다란 영예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전 세계가 공포와 실의에 잠겨있는 시점에서 국제 영화계의 비주류인 한국영화가 당당히 최고 위치에 오른 것은 풀이 죽어 있는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아름다운 꿈을 선사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하겠다. 만약 올해도 미국 영화가 오스카상을 석권했다면 이렇게 큰 반향은 없었을 지도 모른다. 


 자금 동원 면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미국 등 세계 영화업계의 치열한 로비를 물리치고 당당히 최정상에 올라선 한국영화 기생충(Parasite). 


0…지난해와 올해 초에 걸쳐 권위있는 국제 영화상은 모조리 휩쓸며 세계 최고의 화제작으로 떠오른 ‘기생충’은 명예와 흥행 모두 대성공을 거두면서 그 인기 비결이 무엇인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많은 이들이 기생충을 보고 나서 어쩌면 평범한 코미디 같은 영화가 이렇게 큰 상을 잇달아 수상한 배경이 무언지 모르겠다는 반응들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봉준호 감독의 일곱 번째 장편 영화 '기생충'은 양극화와 빈부격차라는 사회 현상을 블랙 코미디 방식으로 전달한다. 가난한 가족과 부유한 가족, 두 가족의 미시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하지만, 한국은 물론 전 세계의 공통 담론인 빈부격차 문제를 아우른다. 


 전 가족이 모두 백수인 기택(송강호 분)네 장남 기우(최우식)는 친구가 소개해준 고액과외 면접을 위해 박 사장(이선균)네 집에 발을 들인다. 이후 기우를 시작으로 딸, 아버지 기택, 아내까지 차례로 박 사장네 집 입성에 성공한다.


 박 사장네 가족은 똑똑한 척하지만 실제로는 바보 같다. 치밀하지도 않은 기택네 계략에 쉽게 속아 넘어간다. 박 사장의 아내 연교(조여정)는 영어를 섞어 써가며 우아한 척하지만 사실은 단순하고 순진하기 짝없다. 기택네 가족이 완벽하게 박 사장네 집 기생(寄生)에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생각하지 못한 사건들이 발생한다.


0…영화의 주제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한국을 넘어 전 세계적 문제로 떠오른 계층간 빈부격차라는데 이의가 없다. 계층간 격차야말로 지구촌 사람들의 공통 화두가 된지 오래다. 이에 봉준호 감독은 "여러 나라 사람들이 와서 다 자국 이야기라고 했다"며 "가난한 자와 부자의 이야기니까 어느 나라든지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구체적으로 들으니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기생충’은 자칫 묵직한 부담감으로 다가올 수 있는 주제를 관객들로 하여금 마음의 부담 없이 그저 웃으며 즐기고 각자 나름의 결말을 생각하게 해준 것이 특징이다. 과외교사 기우를 보면서 가난한 시골 대학생이었던 나도 한때 부잣집 가정교사를 지낸 시절이 떠올라 아련한 향수를 느끼기도 했다. 그때 가졌던 서울 부잣집들에 대한 이질감 같은 것은 지금도 생생하다. 


 ‘기생충’은 반지하방에서 네 식구가 밑바닥 삶을 사는 극빈가정과 호화저택에서 여유롭게 사는 기업체 사장이라는 극단에 놓인 두 집을 설정했는데, 특이점은 선과 악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통상 ‘부자는 억압하는 자, 가난한 자는 핍박받는 자’라는 이분법적 구도가 아니라, 오히려 부자인 박 사장네는 순진하고 착해서 이용을 당하고, 가난한 기택네는 이들을 속이는 것으로 나온다. 즉, 선한 자와 악한 자가 뒤섞이는 구도로 관객들도 어느 한 편에만 감정몰입을 하지 않게 된다.


0…가난한 기택이네는 부잣집에 빌붙어 살고, 또 박 사장네는 다른 이들의 도움 없이는 집안살림이  작동되지 않으니 서로가 필요한 존재들이다. 즉 인간은 서로가 필요에 의해 상대를 이용하고 그에 빌붙어 살아가는 기생충 같은 존재들이라는 인식을 심어준다. 정작 문제는 이기심과 욕망이 우리 안의 기생충이며 타인은 배척 아닌 공생하는 존재인 것이다. 


 기택네가 박 사장네에 기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사도우미가 없으면 집안이 엉망이 되고 스스로 살아갈 능력이 없는 박 사장네를 생각하면, 도리어 누가 의존하는 기생충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결국 인간사회는 필연적으로 상호의존적이며, 모두가 서로 빌붙어 사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어차피 한데 섞여 살아갈 양이면 타인을 기생충으로 보기 보다 공생하고 상생(相生)해야 할 존재로 봐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진짜 기생충은 타자(他者)가 아니라 도리어 우리 안에 있는 이기심과 욕망일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권력과 재력에 빌붙어 호가호위(狐假虎威)하며 민초들의 고혈을 빨아먹고 있는 진짜 기생충 같은 인간들만 없다면 말이다.   


0…‘기생충’은 기억에 남을 대사를 많이 남겼다. “이거 정말 상징적이다”, “가장 완벽한 계획은 무계획이다”, “냄새가 선을 넘는다”, “반지하 냄새야. 이사 가야 없어져", “아버지는 계단만 올라오시면 돼요.", "경찰 같지 않은 경찰, 의사 같지 않은 의사”, "착해서 돈이 많은 게 아니라, 돈이 많으니까 착한거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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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1
중국의 눈물-따스한 인류애로 보듬어야

 
 

▲도시 봉쇄령이 내려진 우한(武漢)시에서 한 어머니가 백혈병에 걸린 딸이 검문소를 통과해 병원으로 갈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질병이 가져오는 비참함과 고통을 볼 때 페스트에 대해 체념한다는 것은 미친 사람이거나 눈먼 사람이거나 비겁한 사람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알베르 카뮈의 장편소설 ‘페스트’(La Peste, 1947)에서는 중세에나 횡행했고 근대에는 사라진 줄 알았던 역병(疫病)이 20세기 한 도시를 덮친 상황과 그에 대응하는 인간 군상(群像)들의 처절한 모습을 세심하게 그려냈다.    


 북아프리카 알제리의 한 도시에 치명적 전염병인 페스트가 발생하자 주인공인 의사(뤼)는 도시 곳곳을 돌며 환자들을 치유하는데 헌신의 노력을 다한다. 여기엔 친구(타르)의 협력이 큰힘이 됐다. 처음엔 비협조적이었던 (파느르) 신부와 (신문기자) 랑베르도 뤼의 인간적인 행동에 끌려 점차 구호활동에 참가하게 된다. 마침내 페스트가 종식하는 날도 가까운 듯했다.


 그러나 기민하게 구호활동의 기둥이 되어왔던 타르가 도시봉쇄 해제의 날을 기다리지 못하고 역병에 걸린다. 뤼는 병마와 싸운 사람들의 기록을 남기기로 결심한다. 페스트균은 멸망하지 않고 항상 어딘가에서 인간의 행복을 위협하고 있음을 감지하면서… 


 그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신의 도움 없이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는가?”


0…소설은 페스트 창궐과 떼죽음이라는 극한상황에서 나타나는 ‘비인간성’에 대한 집단적 반항과 인간의 연대성을 역설한다. 병의 재앙에 대한 사람들의 대응은 각양각색이다. 의사인 뤼는 묵묵히 직업상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전직 정치활동가 타루는 민간구호단을 조직해 뤼를 돕는다. 취재하러 왔다 도시에 갇힌 신문기자 랑베르는 연인을 보고 싶다는 일념에 도시탈출에 골몰한다.


 의료진과 구호단의 사투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사망자 수가 급격하게 늘면서 인간에 대한 마지막 예의라고 할 장례절차가 점점 간단해지더니 급기야는 크게 판 구덩이에 ‘벌거벗고 약간씩 뒤틀린 시신들’을 쏟아붓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이에 뤼는 타루에게 페스트와의 전쟁은 끊임없는 패배라고 고백한다. 


 하지만 이같은 패배에도 불구하고 역병 종식을 위한 투쟁은 계속된다. 카뮈는 소설에서 신문기자 랑베르를 통해 사랑에 대한 신뢰를 피력한다. 탈출을 모색하는 랑베르는 뤼와 타루가 아무 비난도 하지 않는데 그들을 계속 의식한다. 그는 “나는 영웅주의를 믿지 않아요. 내 관심은 오로지 사랑을 위해 살고 죽는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마침내 탈출할 수 있게 된 날 랑베르는 도시에 남아 구호단 일을 하기로 결심한다. 영웅주의로 돌아선 것이 아니라 의료진과 시민들에 대한 애정에서였다. 


0…지금 카뮈의 ‘페스트’가 새삼 회자(膾炙)되고 있다. 작품의 전개 내용이 오늘의 코로나 바이러스 대처상황과 아주 흡사한 탓이다. 그러나 카뮈의 페스트는 결국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소설 속에서 페스트라는 역병을 극복한 힘은 바로 극심한 고통을 겪으면서 돈독해진 공동체의 연대였던 것이다. 


 예로부터 역병이 돌면 민심은 흉흉해지고 인간의 적나라한 본성이 나타난다. 누가 어찌됐든 나만은 꼭 살아남겠다는 생각으로 남의 고통이나 절박한 상황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역사상 수천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전염병이 무수히 있었지만, 그에 비하면 의학이 고도로 발달한 지금의 코로나는 사람들끼리 서로 협력만 잘 하면 (단기간에) 극복할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그럼에도 전 세계가 패닉상태다. 과거엔 질병 자체가 무서웠지만 지금은 한술 더 떠 인간세계도 두려움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함께 중국인, 나아가 아시아인 전반에 대한 인종차별이라는 반인륜적 상황으로 번지고 있다. ‘지저분한 중국인’, ‘박쥐같은 야생동물을 잡아먹는 야만인’, ‘우리 모두를 감염시키려 드는 너희들은 우리가 환영하지 않는다’ 등 혐오와 경멸로 가득찬 말들이 거침없이 튀어나오고 있다. 


 아시아인이 운영하는 가게들은 손님이 뚝 끊겨 텅텅 비고 아시아 학생들은 학교에서 기침만 해도 친구들로부터 눈총을 받는 상황까지 왔다.


 서구인들 눈에는 중국인이나 한국인, 일본인, 동남아시아 사람이 다 비슷하게 보이기 때문에 우리 한국인도 이같은 혐오대상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다. 화살은 한국인에게도 날아오고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프랑스의 한 지역신문엔 ‘황색 경계령’(Yellow Alert)이라는 제목까지 내걸렸다. 이민자 천국으로 통하는 캐나다도 예외가 아니다. 


0…현재 확산 중인 전염병이 중국 우한(武漢)에서 발병하고 사망자와 감염자 대부분이 중국에서 나온 건 맞다. 중국에서 전 세계로 퍼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원인은 신종 코로나 라는  바이러스이지 중국인이나 아시아인 같은 인종이 아니다. 


 중국은 코로나바이러스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국가로 현재 가장 치열하게 이 병원체와 싸우고 있다. 전염병의 확산을 막으려면 그런 중국을 돕는 게 맞다. 


 전염병은 인류의 재해다. 전염병 대응에는 국가나 민족 간의 감정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그런 것은 다함께 힘을 합쳐 전염병을 물리친 다음에나 따질 일이다. 


 우리는 가까이는 2003년 사스 사태와 2015년 메르스 사태를 슬기롭게 극복한 바 있다. 이번 코로나 또한 머지 않아 잡힐 것이다. 지금 가장 무서운 적은 바이러스보다도 어쩌면 인간에 대한 불신과 혐오, 차별이 아닐까. 바이러스는 정복하면 곧바로 치유될 수 있지만 인간에 대한 불신은 쉽사리 회복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함부로 퍼뜨리는 헛소문 한마디가 바이러스보다 더 위험하다. 행여 우리부터라도 말조심해야겠다.(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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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04
전염병의 흑역사 -되풀이되는 인류와의 전쟁

 


<역사 속의 대형 전염병들>


165~180년 : 로마제국 천연두 유행, 500만명 사망
541~750년 : 비잔틴제국 선(線)페스트 대유행
14세기 : 선페스트(흑사병) 대유행, 유럽 인구 3분의 1 인 7,500만명 사망
1618~1648년 : ‘30년 전쟁’ 중 독일군 선페스트, 티푸스로 800만명 사망
1665년 : 런던 대역병으로 영국에서 10만명 사망
1812년 : 나폴레옹군 러시아 공격 중 티푸스로 수십만 명 사망
1816~1826년 : 아시아 대역병(콜레라)으로 인도•중국 등지에서 1,500만명 사망
1852~1860년 : 중국, 일본, 필리핀, 한국, 중동 등 2차 아시아 대역병
1881~1896년 : 유럽•러시아 콜레라로 80만명 사망
1865~1917년 : 3차 아시아 대역병으로 200만명 사망
1889~1890년 : 중앙아시아에서 시작된 아시아 독감으로 100만명 사망
1899~1923년 : 러시아 콜레라 유행, 50만명 사망
1902~1904년 : 4차 아시아 대역병, 인도•필리핀 100만명 사망
1918~1922년 : 러시아 티푸스 대유행, 300만명 사망
1918~1919년 : 스페인 독감으로 2000만~5000만명 사망
1957~1958년 : ‘아시아 독감’으로 세계에서 200만명 사망
1968~1969년 : ‘홍콩 독감’으로 세계에서 100만명 사망
2003년 : 사스(SARS)로 세계에서 810명 사망(토론토 44명)


 
 인류는 고대문명 초창기부터 전염병과 기나긴 전쟁을 벌여왔다. 엄청난 사람을 죽이며 급속도로 퍼져나가는 전염병은 사회구조 자체를 근본적으로 뒤흔들기까지 했다. 과거 여러 문명을 강타한 전염병이 오늘날 재차 닥친다면 지구의 종말이 온 것처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의학용어로 원충•진균•세균•바이러스 등의 병원체가 인간이나 동물에 침입해 증식하는 것을 감염이라고 하며, 전염병은 감염증 중에서도 전염력이 강해 소수의 병원체로도 쉽게 감염되는 질병을 말한다. 그 중에도 바이러스는 인류가 가축을 키우기 시작한 이래 종종 인간과 동물 사이를 오가며 인류의 면역력을 시험에 빠뜨리곤 했다. 


 그리스의 도시국가 아테네에서는 기원전 430년부터 4년간 티푸스가 유행해 인구의 4분의 1이 숨졌다. 이에 앞서 기원전 412년 그리스 의사 히포크라테스는 오늘날 ‘인플루엔자’로 알려진 병의 증상을 처음으로 기록에 남겼다. 유럽에는 1580년 인플루엔자가 대유행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의사들은 이 전염병이 10~30년의 주기를 갖고 유행한다는 관찰 결과를 남기기도 했다.


0…한 지역에 국한하지 않은 ‘국제화된 전염병’의 첫 사례는 서기 165~180년 로마제국의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황제 시절 유행한 전염병으로, 근동지역(시리아•레바논•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 파병됐던 로마 군인들이 병에 걸려 귀국하면서 이탈리아 반도 전역으로 퍼졌다. ‘안토니우스 역병’이라 불리는 이 병으로 500만 명 이상이 숨졌다. 


 541~750년 비잔틴 제국에서 유행한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은 14세기 흑사병 같은 선(腺)페스트로, 북아프리카 에티오피아와 이집트에서 유럽으로 옮아갔다. 전염병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는 한 도시에서만 하루에 1만명씩 숨졌다는 기록이 있다. 선페스트는 14세기 유럽 전역을 초토화시켰고, 17세기까지 수시로 재발해 유럽인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19세기는 ‘콜레라의 시대’였다. 아시아를 강타한 수차례의 대역병(大疫病)이 중국•인도 등에서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유럽과 미주 등지로 전파됐다. 20세기에는 두 차례 세계대전을 거치는 동안 수많은 군인들과 빈곤층 사람들이 전염병에 희생됐다. 


 20세기의 가장 무서운 전염병으로는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를 들 수 있다.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 의해 전염되는 에이즈는 현대의 대표적인 팬데믹(Pandemic.세계적 전염병)이다. 지금도 세계에서 3,320만명이 이 병에 감염된 채 살고 있고 연간 200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는다.

 

0…현대에 들어서도 전염병은 계속된다. 한때 신종인플루엔자 A(H1N1) 공포가 세계를 휩쓸었고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과 조류 인플루엔자(AI)에 이어 돼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변종이 지구촌을 공포로 몰아 넣은게 바로 몇 년 전이다. ‘스페인 독감’, ‘아시아 독감’, ‘홍콩 독감’ 등의 인플루엔자가 세계를 휩쓸었다. 


 기억에도 생생한 지난 2003년 아시아를 강타한 사스는 처음에 병원체가 규명되지 않아 ‘괴질’로 불렸다. 뒤에 신종 바이러스가 규명돼 ‘사스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중국 남부 광둥성, 홍콩 등지에서 발생해 ‘모든 것을 다 먹는 중국인의 식생활’이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특히 사스는 중국 당국의 불투명하고 비협조적인 대응이 사태를 악화시킨 측면이 있어 보건의료 시스템의 투명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했다. 캐나다에서는 사스 사태 당시 의료기관에 대한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됐고, 이를 통해 국민들이 안심할 수 있었다.


 미국 시카고대학의 역사학자 윌리엄 맥닐 교수는 <전염병의 세계사>(1975)라는 저서에서 “전염병은 한 사회 내에서 인구 구조와 노동 조건, 정치적 역학관계를 바꿀 뿐 아니라 지구적인 차원에서 문명의 형성•전파와 인간의 대규모 이주에도 영향을 미친다. 미시적, 거시적 양 측면에서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다”고 지적했다. 


0…최근의 ‘글로벌 전염병’들은 여행, 항공기, 이주, 지역간 식량교환(식품류 수출•입)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다만 과거에 비해 예방시스템과 치료제가 발달해 대규모 희생자를 내는 전염병이 줄어들었을 뿐이다. 


 전염병은 사람끼리 서로 피하게 만들고 왕래를 꺼림에 따라 사람 사이도 멀어지게 만든다. 당연히 경제도 위축된다. 질병으로 인해 사회구조까지 바뀌는 것이다. 


 인류(人類)는 전염병과의 전쟁에서 일시적으로 우위를 얻은 것처럼 보이지만 둘 간의 시소게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최첨단 인공지능(AI) 시대라곤 하지만 아직은 수천년 전부터 이어져 오는 전염병까지는 이겨내질 못하고 있다.(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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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wlee
yw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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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6
21세기와 군주제-영국 왕실의 존폐 논란

  
  

▲2011년 윌리엄 왕세손의 결혼식 후 한자리에 모인 왕실 사람들.  

 

 

 의회 민주주의의 시초로 꼽히는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 대헌장, 1215- 국왕의 권리를 문서로 명시)를 계기로 영국 왕의 권위는 점차 무너지기 시작한다. 이후 최초의 의회 제정법인 권리장전(Bill of Rights, 1689)과 입헌군주제(1721) 도입 등을 거치면서 영국 왕실은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으며 오랜 세월 존속해왔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이런 방식도 한계에 다다랐다는 분석이 높다. 고리타분한 왕실은 언제까지 존속할 것인가. 


 영국을 비롯해 아직도 왕실을 유지하는 나라는 많지만 일부 국가의 왕실은 권위보다는 세인들의 조롱 대상이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영국의 경우 언론의 가십성 기사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들이 왕실 사람들이다. 왕실을 없애지 않는 이유가 황색언론에 가십과 조롱거리를 제공하기 위해서라는 우스갯소리마져 있다.


 많은 이들이 영국 왕실의 존재 이유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그들이 국민의 막대한 세금을 써가며 특별히 하는 일도 없이 스캔들이나 일으키는 사람들이란 인식이 크기 때문이다. 지난 97년 찰스 왕세자와 이혼한 다이애나비가 교통사고로 숨질 당시 왕실이 연루됐다는 의혹이 대두되면서 왕실 폐지론이 비등했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이 큰 영국 왕실이지만 1, 2차 세계대전 등 역사의 큰 고비마다 영국을 움직인 건 왕실이 아니라 의회와 유능한 수상들이었다. 영국에서는 일찍부터 의회가 발달해 수상 중심으로 국력을 키워나갔던 것이다.


0…영국인들 사이에 왕실을 폐지하자는 의견이 또 다시 높게 일고 있다. 이번에도 도화선은 왕실 인사의 부적절한 태도 때문이다. 주인공은 왕실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한 해리 왕손과 메건 마클 왕손비 부부. 이들은 최근 왕실의 구성원 역할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삶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할머니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가족회의를 연 뒤 이들의 뜻을 존중하겠다며 왕손 부부의 독립을 인정했다. 이를 두고 영국 언론들은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에 빗대 메건 마클 왕손비의 왕실 독립선언을 뜻하는 ‘메그시트’(Megxit)라며 왕실의 분란을 이슈화하고 있다.


 해리 부부가 독립을 선언한 이유는 마클 왕손비에 대한 보수 신문들의 지속적인 공격이 가장 큰 이유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마클 왕손비는 아프리카계 혼혈 미국인으로, 2018년 5월 해리와 결혼 당시 두 살 연상에 이혼 경력까지 있어 화제가 됐고 이는 언론의 공격대상이었다. 따라서 해리 부부의 독립 선언은 왕실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의도를 나타낸 것이다.


 해리 부부는 독립을 선언한 뒤 영국과 캐나다를 오가며 생활하고 자선단체를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를 실행할 돈인데, 이 때문에 또 다른 논란이 생겼다. 해리 부부가 왕실을 배경으로 돈을 만들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영국 정부가 왕실에 지급한 지원금은 8220만파운드(약 1230억원). 여왕이 소유한 부동산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의 4배에 달하는 액수다. 해리 부부가 노리는 돈도 이 정부 지원금의 일부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안 그래도 왕실을 지탱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에 불만이 많은 여론을 감안할 때 이는 부적절한 태도임이 분명하다.


 해리 부부의 독립 선언을 통해 다시 불거진 영국 왕실의 추문이 왕실 폐지론까지 이어지는 건 자연스런 시대적 여망이다. 왕실 폐지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될 것인지 와는 별도로 시대 변화에 따라 왕실에 대한 새로운 평가와 역할 축소는 불가피해 보인다.


0…왕실 인사들의 모범적인 자선행위가 세인들의 칭송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들은 각자 자신들의 관심 분야에서 다양한 자선활동을 펴고 있다. 왕실재단은 정신건강 문제에 대한 차별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특히 직장 내 정신건강 문제에 관심이 많은 윌리엄 왕세손은 '직장 정신건강'이란 웹사이트도 개설했다. 부인인 미들턴 왕세손비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정신건강 문제를 중심으로 여러 어린이 단체를 후원 중이다. 윌리엄과 해리로 이어진 자선활동은 어머니인 고 다이애나비에게서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이들의 일탈행동도 많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3남 1녀 중 막내인 에드워드 왕자를 제외한 나머지 셋은 모두 첫 결혼에 실패했다. 각각의 이혼 과정도 순탄치 않아 황색언론의 단골 먹잇감이 됐다. 특히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의 이혼, 잇따른 그녀의 비극적 죽음 등은 군주제 폐지론에 불을 댕겼다.


0…해리 왕자 부부가 왕실 공무를 중단하고 영국과 캐나다를 오가며 지낼 예정이다. 그러면 특별한 직업이 없는 이들은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 해리는 어머니인 고(故) 다이애나비와 증조모로부터 3천만 파운드(약 450억원)의 재산을 물려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할리우드 배우 출신인 메건 마클의 재산은 400만 파운드(약 60억원) 정도. 그러나 이들 부부는 개인재산 외에도 당분간은 찰스 왕세자가 개인 영지(領地)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의 일부를 지원받을 것으로 보인다.


 캐나다로서는 해리 가족의 경호가 골칫거리다.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이들의 경호비용을 캐나다 정부가 대서는 안 된다는 반발 여론이 높다.


 영국의 군주제 폐지 논란은 엘리자베스 2세의 사후(死後)에 지금보다 더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평등사회를 지향하는 민주국가에서 계층간 위화감을 조장하는 왕실은 아무래도 격에 맞지 않은 것 같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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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식(김치맨)
2020-01-25
Her Majesty 영국여왕 겸 캐나다 여왕에게 충성맹세를 하고서 캐나다시민권을 취득한 우리들! 왕실제도를 없애버리자고 주장/동조하다간 자칫 역모죄(Treason) 로 몰릴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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