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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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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및 시사문예 종합지 <한인뉴스 부동산캐나다>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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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29
적당히 거리 두며 살기

 

Editor’s Note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지혜 

 

 

 우리 (큰)사돈댁은 홍콩 출신이다. 그래서 우리 부부와 말이 매끄럽게 잘 통하는 편은 아니다. 
 두 분이 모두 어느정도 영어를 하긴 하지만 우리와 속내까지 털어놓을 정도는 아니다. 따라서 우리와 영어로 대화할 때는 대충 몸짓 눈짓으로 의사를 주고 받는 식이다.
 외식(外食)에 익숙한 사돈댁은 우리를 종종 중국식당에 초대하는데, 식당에선 주로 바깥사돈이 메뉴를 정하고 우리는 그냥 지켜보고 있으면 알아서 맛있는 종류를 시켜준다. 
 우리 입맛을 어떻게 그리 잘 아는지 모두가 만족스럽다. 

 

0…외국 사돈댁을 보면서 우리는 참 행복하다는 생각을 한다. 
 즉, 인간관계에서 적당한 거리가 유지된다는 사실이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편하게 하는지 새삼 감사한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한국사람들끼리는 얼굴 표정만 봐도 속마음을 훤히 알지만 이 분들은 그렇지가 않다.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속속들이 알 수는 없다. 웃으면 그냥 좋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섬세한 감정까지는 모르겠으되 적당히 모른체 하니 오히려 좋다. 이래서 사돈댁과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 

 

0…사돈이 같은 한국사람이었더라도 그랬을까. 아마 결혼식 절차와 신혼집을 정하는 문제 등에서부터 사돈끼리 다소간 실랑이가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한국의 누구네는 결혼을 앞두고 혼수(婚需)와 신혼집 문제로 사돈 간에 티격대다 결혼식 직전에 혼사 자체가 깨져버렸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 비추어보면 우리는 참 다행이다. 
 딸과 사위는 오래 사귄 끝에 결혼을 했기에 시부모님과도 친근하고 사이가 좋다. 그런데 이런 원만한 관계도 외국 시부모들이기에 더욱 그런 측면이 있다.  언어과 관습 등의 차이에서 적당히 거리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0…이처럼 인간관계는 적당히 거리를 두고 있을 때 원만히, 오래 유지될 수 있다. 
 다소 생뚱맞은 말이지만, 나는 친밀한 사이라도 해외여행, 특히 옵션 투어는 가능한 함께 가지 말라고 권한다. 
 평소엔 잘 모르던 서로의 습성이 여러날을 함께 지내면서 속속들이 나타나 실망하는가 하면, 취향도 서로 달라 사소한 일로 언쟁을 벌이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내 관계가 소원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0…수년 전 우리 가족이 한국에 나갔을 때 가족과 친지들로부터 후한 대접을 받고 돌아오면서도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우리가 이민 오지 않고 계속해서 한국에 살았더라도 이렇게 서로가 반가워하고 애틋해 했을까. 아마 가까이 살았더라면 가끔은 토닥대는 일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처럼 어쩌다 한번씩 보니 반갑고 살가운 것이 아닐까.
 촌수(寸數)가 없다는 부부 관계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살뜰하게 사랑하는 사이라도 서로를 너무 가까이 훤히 알다보면 상대방의 허물이 눈에 띄고 그러다보면 가끔은 티격대는 일도 생기는 법이다. 
 남편이 어디 출장이라도 갔다 돌아오면 아내를 더 사랑하게 되는 것도 가끔은 서로 떨어져 쉬는 시간이 필요함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0…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우화 가운데 ‘고슴도치 딜레마(Hedgehog Dilemma)' 라는 것이 있다. 
 내용은 대충 이렇다. 
 고슴도치들은 날이 추워지면 추위를 막기 위해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의 가시에 찔려 깜짝 놀라며 황급히 멀리 떨어진다. 
 그러다 곧 추위를 느끼고 다시 가까이 다가가지만 이내 서로의 가시에 찔려 아픔을 피하려 다시금 멀어진다.
 그들은 추위와 아픔 사이를 반복하다 마침내 서로 적절한 거리를 찾게 된다. 즉,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도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절묘한 거리를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통해 가장 편안하면서도 따뜻한, 상처입지 않을만한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며 행복해한다.
 이 이야기는 모든 관계에 있어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각하게 한다. 동물의 세계가 그러하거늘 만물의 영장인 인간관계는 말할 것도 없다.

 

0…우리가 흔히 쓰는 ‘사이가 좋다’는 말이 있다. 가정이나 사회생활 등에서 ‘관계가 좋다’는 뜻이다. 
그러면 ‘사이가 좋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사이’라는 것은 한자로 ‘간(間)’이다. 그러니까 사이가 좋다는 것은, 서로가 빈틈 없이 딱 붙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너무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닌,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의미다.
 원만한 인간관계의 비결은 바로 이 ‘사이’에 있다. 

 

0…서로 간에 적절한 거리,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관계가 오래, 아름답게 지속될 수 있다. 
 일상에서 많이 쓰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즉 ‘너무 가까이 하지도 말고 너무 멀리 하지도 마라’는 말을 철칙으로 삼을 때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바라볼 때 아름다웠던 것이 너무 가까이서 보니 실망감을 안겨주는 것들이 우리 인생에 얼마나 많던가? 
 ‘헤어지면 그리웁고 만나보면 시들하고…’란 옛노래도 있듯이 차라리 그리워하면서 (떨어져) 지내는 것이 아름다운 정을 오래 간직하는 길일지도 모른다.  

 

0…자고로 인간관계는 난로불 대하듯 할 일이다. 너무 다가가면 뜨거워 데이고 너무 떨어지면 추워진다. 
 “오냐 오냐 하면 머리 꼭대기까지 기어오른다는 점에서 인간은 모두 어린아이와 같다. 따라서 타인에 대해 너무 관대해도, 너무 부드러워서도 안 된다.” (쇼펜하우어)  (사장)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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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18
의사, 변호사

“나는 인류에 봉사하는 데 일생을 바칠 것을 엄숙히 맹세한다”, “나는 양심과 위엄을 가지고 의료직을 수행한다”, “나는 환자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고려할 것이다”…

위는 의학도들이 의사로서 첫걸음을 내디딜 때 외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Hippocratic Oath)의 일부다.

무엇보다 의사는 생명을 존중하고 인류사회에 봉사하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예로부터 의술(醫術)은 인술(仁術)이라 함은 이런 연유에서다.

0…의사들이 지녀야 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은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사랑이다.

그들에게 이런 심성이 없다면 수술대에 오른 인체를 마치 나무토막 다루듯 할 것이다.

돈은 그 다음이다. 자기 몸을 고쳐주면 그러지 말라고 해도 보답을 하려고 있는 것 없는 것 다 갖다 바치는 것이 사람의 인지상정이다.

의사가 예전부터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것은 이래서다.    

의사들이 평생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할 때의 정신만 간직한다면 세상은 훨씬 건강해질 것이다.

0…그런데 지금 한국의 의료계 현실을 보면 안타깝고 참담하기 그지 없다.

의사가 부족해 환자들이 병원을 전전하며 ‘뺑뺑이’를 돌고 있는데, 현직 의사들은 그 수가 충분하다며 의대 증원에 죽기살기로 반대하고 있다. 

그 명분이 가관이다. 의사 수가 늘어나면 의료 질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자기들만이 최고의 두뇌를 갖고 최고의 의술을 펴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머리는 2류로서 이런 사람들이 의대에 진학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서천의 소가 웃을 일이다.   

0…우리가 살고 있는 캐나다는 공공의료 시스템인 탓에 의사 수를 늘리는 것이 정부의 재량이며 국가재정에 부담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의사들이 앞장서 의사 증원을 결사반대하는 일은 상상도 못한다.

오히려 그들은 제발 정부 차원에서 의료인력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이는 주요 선진국 모두 마찬가지다.

의사단체의 결사 반대로 18년째 의대 정원을 단 한명도 늘리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과 너무도 대비된다.

0…의사가 절대 부족한 것은 국제적으로 비교한 수치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2021년 기준 한국의 의사 수는 인구 1천명당 2.2명으로 30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적다.

이런데도 한국의 현직 의사들은 지금도 의사 수가 충분하다고 생떼를 쓰고 있다.  

그들이 의대 입학정원 증원에 결사반대하는 진짜 이유는 뻔하다.

의사가 적을수록 현재 기득권을 갖고 있는 의사들이 돈을 많이 벌 수 있기 때문이다.

0…환자의 아픈 몸을 보듬고 싸매줘야 할 의사들이 병상을 걷어차고 나와 머리띠를 둘러맨 채 증원 결사반대를 외치는 모습은 국민들의 혀를 차게 한다.

이런 사람들이 과연 환자를 자기 몸처럼 최선을 다해 돌볼 수 있을까.

사람의 몸에 칼을 대면서도 속으론 돈 계산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섬뜩한 일이다.

0…의사들은 인명사고를 내도 수개월의 면허 정지 등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곧바로 돈벌이에 나선다.          

기고만장한 특권의식과 이기주의에 찌든 사이비 의사들은 다음과 같은 성현의 말을 되새겨 볼 일이다.

"진정한 의사는 당신의 마음 속에 있다."-히포크라테스

"환자는 몸 안에 자연치유력이라는 의사를 갖고 있다. 환자의 내부에 존재하는 그 의사에게 일할 기회를 부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의사가 수행해야 할 최상의 임무다." -알버트 슈바이처

0…의사와 함께 돈을 많이 버는 대표적인 직업이 변호사다.

하지만 변호사 역시 세인들의 존경과 손가락질을 동시에 받을 수 있는 이중적인 직업이다.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도와주는 구세주일 수도 있지만 때론 돈만 밝히는 돈벌레란 욕을 먹을 수도 있다.

한국에선 판.검사를 하다 그만두고 변호사로 개업하면 일반서민들이 평생을 죽도록 일해도 상상도 못할 거액을 단 2, 3년 안에 벌어들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사람들 뇌리에 서민들을 위한 진실된 변호 의지가 있을 리 없다.   

0…돈벌레 변호사들에게 짧고 굵게 살다간 한 인권변호사의 인생역정을 조금이라도 들여다보길 권한다.

노무현과 더불어 한국의 대표적인 인권변호사였던 조영래. 그도 여느 법조인처럼 안락하고 부유한 삶을 누리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불합리한 사회 현실에 눈뜨면서 험난한 가시밭길을 자초했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길지 않은 생을 일관했다.

0…그의 마흔넷 인생 역정은 약하고 그늘진 인간에 대한 사랑, 아무도 돌보려 하지 않는 현실을 온몸으로 보듬고 고민하며 살다 간 경전(經典)이었다.

조영래는 세속적 부귀영화가 최고의 가치기준인 세상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 올바른 삶인가를 가르쳐줬다.

0…의사와 변호사는 약자를 도와주는 것이 기본 소명이다.

아무리 부와 권력이 막강한 사람도 병상에 눕거나 법정에 서면 한없이 약해진다.

몸이 아픈 환자를 치유해주고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그들의 존재 이유다.

그런데 현실은 그 반대로 가고 있다.  

0…이런 판에 인간사랑이니 정의니 외치는 것은 순진할지 모른다.

하지만 의사와 변호사들부터 그 지독한 특권의식을 내려놓고 인간 본성으로 돌아와야 혼돈의 이 세상은 비로소 질서를 찾아갈 것이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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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14
처음처럼

                      ▲신영복 교수의 글씨 ‘처음처럼’

 

 

Editor’s Note

 

-초심만 유지할 있다면

-어떤 고난도 이겨낼 있으리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서는 새싹처럼/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저녁 무렵에도/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다시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신영복 교수 ‘처음처럼’)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가 ‘처음처럼’이다.

 한국에서 같은 이름의 소주가 출시된게 2006년 초.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저자 신영복 교수(2016년 1월 작고)의 시 제목과 글씨가 소줏병의 로고로 사용됐다.

 

0…한국사회의 대표적 지성 중 한 분인 신 교수가 어떻게 술 이름에 자신의 글씨를 쓰도록 허용했는지 처음엔 의아했다.

 당시 소주회사 관계자도 "신 교수님이 존경받는 학자이신데, 과연 술 이름에 자신의 글을 사용하도록 허용할지 확신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이런 제의를 들은 신 교수는 의외로 흔쾌히 '처음처럼'의 문구와 글씨체 사용을 허락했다. 그는 "서민들이 즐기는 대중주(大衆酒)에 내 글이 들어간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허락한 것이다.

 이에 따라 마침내 신 교수의 '처음처럼'이 그의 저서 '감옥으로부터…' 속 새 그림과 함께 소줏병에 찍혀 세상에 나왔다.

 

0…신 교수는 저작권료도 받지 않았다. 소주회사(당시 두산)가 여러 차례 지불을 시도했으나 "나는 돈이 필요치 않다"며 사양했고 결국 회사는 저작권료 대신 신 교수가 몸 담고 있는 성공회대학교에 1억 원을 장학금 형식으로 기부했다.

 갓 출시된 소주 '처음처럼'의 인기는 돌풍을 일으켰고 그 덕에 이 소주는 시장점유율이 껑충 뛰었다.

 회사 관계자는 "처음처럼이 이처럼 대중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은 것은 글씨에 담긴 교수님의 깊은 가르침과 친근한 이미지 등이 결정적 역할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0…‘처음처럼’ 소주가 내 눈에 띈 것은 수년 전 토론토의 어느 한식당에서였다. 벽에 예쁜 여자탤런트 사진과 함께 붙어있는 글귀를 보니 무척 반가웠다.

나는 그 후로 소주를 시킬 때면 으레 ‘처음처럼’만 찾곤 했다. 지금도 이 글씨를 볼 때마다 오래된 친구처럼 반갑다.

 

0…그러나 한국에서는 한때 이 글씨가 수난을 당한 적이 있다.

 한번은 어느 경찰서장이 신 교수의 서예작품 ‘처음처럼’을 서각(書刻, 글씨를 나무에 새기는 것)으로 제작해 관할 파출소 등에 내걸 계획이었으나 돌연 취소됐다. 이 작품이 과거 시국사건에 관련된 인사의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당초 그 서장은 "초심을 잃지 말고 경찰의 본분을 지키자"는 의미로 신 교수의 허락을 받아 작업을 추진했다.

 ‘처음처럼’ 제목과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으로 시작되는 시 구절이 새겨졌으며 미술에 조예있는 한 경찰간부가 제작을 맡았다.

 

0…그러나 경찰은 내부검토 과정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의 작품을 경찰관서에 게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판단, 계획을 취소했다. 신 교수는 이른바 통혁당 사건에 연루돼 무기형을 선고받고 20년을 복역한 뒤 출소한 경력이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은 “과거 간첩사건 연루자가 썼기 때문에 대한민국 정체성이 훼손된다”는 보수단체의 민원을 이유로 신 교수가 쓴 정문 현판을 교체했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정부의 편협한 사고를 질타하는 비판여론이 이어졌다.

 

0…‘민체’ 또는 ‘유배체’로 불리는 개성 강한 서체인 ‘처음처럼’은 문장과 서예가 뛰어난 신 교수가 개인전에 출품한 작품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격조높은 서예작품마저 순수하게 받아들일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 

0…‘처음처럼’은 곧 초심(初心)을 유지하자는 다짐이다. 매사를 처음의 자세로 대하고 겸허하게 살아간다면 이 세상엔 욕심을 내거나 서로 다투고 미워할 일이 없을 것이다.

 부부가 처음 만나 맺은 사랑의 맹약을 잊지 않는다면 평생을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을 터이다. 새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첫 직장에 출근할 때의 철석같은 다짐과 각오만 끝까지 간직한다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0…친구와의 우정도 처음 만났을 때의 굳은 결의만 유지된다면 도중에 갈라서는 일이 없을 것이다. 맹약(盟約)과 배신이 수시로 반복되는 것은 처음의 다짐이 시간이 흐르면서 퇴색하기 때문이다.   

 살아가면서 모든게 생각같지 않게 뒤틀려 보이는 것은 처음의 다짐과 각오를 잊은 채 너무 큰 기대치에 목을 매기 때문이다.

0…이민생활에서도 가장 중요한 마음자세가 바로 이 ‘처음처럼’이 아닌가 한다. 아무리 험한 일이 닥치더라도 꿋꿋하게 견뎌낼 것이라며 이민봇짐을 쌀 때의 각오만 끝까지 간직할 수 있다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실망하거나 낙담할 일이 없을 터이니 말이다.

 하지만 ‘처음처럼’의 자세가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나만 해도 이민 초기의 소박했던 다짐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모든 것이 성에 안차고 불만투성이다.

 웬만하면 그런대로 만족하며 살아갈 법도 하건만 계속해서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욕심을 부리고 마음이 늘 허기져 있다.    

 

0…현실이 고달프다고 생각되면 이 땅에 첫 발을 내디딜 때의 결심으로 돌아가 ‘처음처럼’을 되새기자. 신영복 교수 말대로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이다.

 또 한해를 맞이한다. 매양 가고 오는 세월 속에 새해가 뭐 그리 대단하랴만 그래도 또 다시 다짐이란 것을 하는 것은 언제나 새로운 마음으로 살아가자는 뜻이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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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w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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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8
책을 치우며

 

Editor’s Note

-손때 묻은 소중한 물건들
-버려야 채워지는 세상 이치 
 

 

사람의 ‘직장 성격’엔 두가지 타입이 있다. 사무실을 깨끗하게 정리정돈하고 일을 하는 타입과 비품들을 어수선하게 너질러놓고 일하는 스타일.
 일반적으론, 누가 보아도 깔끔한 분위기에서 일하는 것이 훨씬 정신집중도 잘되고 일에도 능률이 오를 것으로 생각될 것이다. 실제로 그런 사람이 매사에 반듯한 언행을 하는 예가 많다.           

0…하지만 이와 반대되는 연구 결과도 있다. 즉 사무실의 너저분한 분위기가 실제로는 생각을 더 깊고 명확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네덜란드 흐로닝언 대학의 지아 리우 박사에 따르면 “많은 사람이 업무효율과 생산성 증가를 위해 깨끗한 사무실을 선호하지만 이는 지저분한 환경이 판단을 복잡하게 만든다는 전통적 관습에 따른 것”이라며 “너저분한 환경과 마음 사이에는 관련성이 없다”고 밝혔다. 
 실제로 물리학자 아인슈타인과 영국의 아동문학작가 로알드 달(Roald Dahl)은 어수선한 책상으로 악명이 높았다. 

 

0…평생 기사 쓰는 일이 직업인 나는 예전부터 책상 위에 원고지가 수북히 쌓이고 각종 신문들이 사무실을 온통 뒤덮고 있어야 정신이 집중되고 일도 능률이 올랐다.
 이민 온 후에도 계속해서 언론에 종사하다 보니 상황은 비슷했다. 토론토의 내 사무실을 한번이라도 방문했던 분들은 쓰레기 하치장같은 사무실 분위기를 보고 혀를 차는 분들이 많았다. 
 “이게 뭐야. 정리 좀 하고 살지…” 하지만 이래야 마음이 편안하고 정신도 집중되는걸 어쩌나. 

 

0…그런데 최근 신문사 사무실을 옆방으로 옮기면서 어쩔수 없이 비품정리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하루 날을 잡아 사무실에 온통 널려있는 신문지와 각종 서류뭉치들을 치우는데, 버리고 또 버려도 끝이 없었다. 
 마침 대형 쓰레기수거박스(Bin)가 있어서 처리할 수 있었지 그게 없었다면 큰 애를 먹었을 것이다. 

 

0…그런데 다른 허접한 것들은 그냥 버려도 아깝지가 않았으나 그동안 쌓아둔 수 많은 책들은 느낌이 달랐다.   
 특히 지금 갖고 있는 책들은 내가 이민 온 이후 동포 문인과 저자들로부터 건네받은 것들이 많은데 15년 정도를 모으다 보니 분량이 엄청 많았다.  
 이 책들을 쓰느라 고생한 분들을 생각하면 쉽사리 함부로 버릴 수가 없다. 한권의 책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이 들어갔겠는가. 

 

0…더욱이 이민사회에서 작품을 쓰고 책을 만드는 것은 더욱이나 어렵다. 
 그런데 책이란 것이 그렇다. 
 책은 인생에서 삶의 좌표를 잃고 어디로 가야할지 모를 때 멈춰 서서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마음을 안정시키며 치유해준다. 
 하지만 책은 이사할 때 가장 큰 두통거리 중 하나이기도 하다. 버리자니 아깝고 갖고 다니자니 무게가 보통이 아니다. 읽지도 않을 책이면서 그냥 버리기도 아깝다.

 

0…나도 그동안 모아놓은 책들은 좀처럼 버리기가 아까워서 서너번 이사를 하면서도 죽어라고 싸들고 다녔다. 
 이민 올 때도 예외가 아니어서 그 무거운 책들을 박스에 채곡채곡 챙겨왔다.     
 그러다가 가끔 집수리를 하면서 그동안 별로 읽지 않았던 책들은 과감히 버리기로 했다. 주섬주섬 헌책들을 보아보니 사과상자로 10개 정도가 됐다. 
 책 중에는 대학시절의 영문시선집(anthology)에서부터 ‘창비’(창작과 비평) 전집, 대하소설류, 각종 문학전집 등이 있었다. 또한 ‘운동권 서적’도 꽤 남아있었다. 
 중국 근대사, 러시아 혁명사, 제3세계론, 교육철학 같이 주제가 무겁고 거창한 것도 있고, 변증법적 유물론 따위의 머리 아픈 것들도 섞여 있다. 
 이런 책들은 평소 손에 들기가 어렵지만 그렇다고 버리기는 아까운 것들이다. 나의 청춘시절 고뇌가 고스란히 묻어있기 때문이다.      

 

0…언젠가 헌책들을 버리다 보니 문득 장왕록 교수님께서 친필 사인을 해주신 수필집도 있고 그의 따님인 장영희 교수가 생전에 한국에서 친히 보내준 ‘문학의 숲을 거닐다’도 눈에 띄었다. 
 이런 책들을 보니 코끝이 시큰해졌다. 이들 부녀(父女) 학자는 비록 이 세상에 안계시지만 그들이 남긴 따스한 문향(文香)들은 두고두고 세인들 마음을 따스하게 해줄 것이다.          
 이민 후엔 토론토에서 만난 문인들이 책을 출판해 친필사인을 해주신 것들이 많아졌고 지금 내 책상 위엔 이런 책이 적잖이 쌓여있다. 
 (그 중 ‘출판의 달인’ 이동렬 교수님의 수필집은 예닐곱 권이나 된다.)       

 

0…사실 나는 35년째 언론에 종사하면서 나름 글 좀 쓰려고 노력해왔기에 그 분량이 적지 않다. 이래서 나를 아끼는 분들은 그것들을 모아 책을 내라고 권유하신다. 
 책을 낸다면 아마 10여 권은 족히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별로 없다. 책이라고 낼만한 수준도 안되지만 고생해가며 책을 낸들 그것이 타인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요즘엔 특히 온갖 지식과 정보가 인터넷에 넘쳐나기에 책장을 넘기며 사색에 잠길 여유를 점점 더 잃어가고 있다. 
 머리엔 그야말로 잡식(雜識)만 가득하고 책의 진정한 가치는 추락하고 있다. 

 

0…아무튼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리는 것이 좋겠다. 버려야 채워지는 것이 세상 이치 아닌가. 아깝지만 책도 그 중 하나다.   
 ‘채우려 하지 말기/있는 것 중 덜어내기/다 비운다는 것은 거짓말/애써 덜어내 가벼워지기/쌓을 때마다 무거워지는 높이/높이만큼 쌓이는 고통/’ (이무원 시인 ‘가벼워지기’)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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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1
메뉴판의 왼쪽

 

Editor’s Note  

 

-음식보다 가격에 더 눈길이

-남을 위해선 왼쪽에 더 신경을  

 

서민들이 외식을 하러 식당에 가서 음식을 주문할 때 선뜻 메뉴판의 왼쪽(음식 종류)만 보고 고르는 경우가 있을까. 대개는 왼편과 오른편(가격)을 번갈아 본 뒤 주문을 하게 될 것이다.

 음식값이 비싸면 선뜻 주문하기가 어려운 것이 서민들의 마음이다.

 특히 요즘같이 음식값이 비싸고 주머니 사정도 좋지 않을 땐 자연히 값을 먼저 본 뒤 저렴한 음식을 찾게 될 터이다.

 

0…부끄러운 고백 좀 하면, 한국에서 기자생활을 할 땐 아무리 그러지 않으려 해도 출입처 인사들로부터 대접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기자단이 단체로 회식을 하는데 혼자서 빠지기도 무엇하고 해서 참석하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럴 땐 내 돈을 내지 않으니 별다른 부담 없이 먹고싶은 음식을 주문하고 반주(飯酒)도 한잔 곁들이게 된다.

 

0…이런 생활이 반복되다 보면 막상 식당에 가도 음식값을 모르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진다.

 그러다 이따금 가족들과 함께 외식을 하게 되면 자연히 음식값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선뜻 비싼 음식을 시키기가 쉽지 않다.

 그럴 땐 대개 가족들에겐 좋은 음식을 시키라 하고 나는 슬그머니 메뉴의 오른편을 본 뒤 값이 적당한 음식을 시키게 된다.

 

0…언젠가 한국 언론에 소개된 어느 90객 사업가의 자린고비 스토리를 읽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당시 91세였던 이 분은 사재(私財) 3천억 원으로 자신의 아호를 딴 장학재단을 만들고, 20여년간 무려 1조 7천억 원을 쏟아부었다. 개인이 세운 장학재단으로선 아시아 최대 규모였다.

 재단에선 매년 국외·국내 장학생 수백명을 선발해 지원해왔다. 이에 장학생 수는 지난 23년간 1만2천여 명에 이르고 박사학위 수여자도 750명에 달한다.

 이 분이 하시던 말씀. "쑥스러운 얘기지만 나는 평생 한번도 식당에 가서 메뉴판 왼쪽을 보고 시켜보지 못했어요. 주머니에 돈이 있어도 가격이 적힌 오른쪽에 먼저 눈이 가더라고. 이게 다 어려운 나라에 태어난 업보요.”

 

0…시골에서 태어난 이 분은 화학공장을 차려 큰 돈을 벌었다. 하지만 부자가 된 뒤에도 그는 '점심은 짜장면, 특식은 삼계탕'을 고수했다.

 직원들은 "식당에 가면 사장님이 ‘맛있는 거 맘껏 시켜. 나는 짜장면!’ 하기 때문에 우리도 감히 짜장면 이상은 못 시킨다"고 했다.

 그러나 장학금은 통크게 지급했다. 우수 대학생을 선발해 국내 대학은 연 2천만 원, 해외 대학원 석,박사 과정은 연 4만~6만달러씩 지원했다. 

 그 분의 말. “코 묻은 돈 모아 어렵게 만들어 장학금 주는데, 개중엔 하늘에서 뚝 떨어진 돈으로 아는 학생도 있지요. 하지만 그런 일로 한번도 배신감 느낀 적 없어요. 앞으로 계속 베풀 겁니다.”

 

0…어렵게 자수성가한 사람 중에는 두가지 유형이 있다.

 재산을 힘들게 모았기에 어려운 이웃을 봐도 외면하는 ‘수전노’ 타입과, 자신에게는 엄격하지만 명분이 뚜렷한 좋은 일에는 과감히 베푸는 ‘자린고비’ 타입이 그것이다.

 흔히 ‘자린고비’라면 금전에 지독한 사람을 연상하지만 실은 좋은 말이다. 이 말은 조선 인조 때 충북 음성에서 검소한 생활로 유명했던 조륵이란 양반으로부터 유래했다.

 

0…이 분은 평생 부지런히 일하고 절약해 구두쇠라는 말을 들으며 만석군의 재산을 모았다.

 얼마나 검소했는지, 신발이 닳을까봐 신을 들고 다니고 아들이 조기 반찬이 먹고 싶다고 하자 조기를 사다 천장에 매달아 놓고 밥 한숟가락 먹고 한번씩 쳐다보라 했다.

 하루는 아들이 밥 한숟가락에 조기를 두번 쳐다보았다고 야단을 쳤다고 할 정도였다.

 

0…그러나 그는 돈을 제대로 쓸 줄 아는 사람이었다. 선생이 회갑을 맞았을 때 인근지역에 심한 가뭄으로 서민들이 고통을 받게 됐다. 그때 선생은 기근민들에게 그동안 모은 재산을 아낌없이 풀어 큰 도움을 주었다.

 그래서 선생의 도움을 받은 기근민들이 고마운 뜻으로 공을 기리고자 ‘자인고비(慈仁考碑)’라는 송덕비를 세웠다.

 여기서 ‘고(考)’자는 나를 낳아준 사람도 부모이지만 내가 죽게 되었을 때 도와준 것 또한 부모라 하여, 조륵 선생이 어려운 이웃을 도와 살게 해주었기에 사랑스럽고 어질기가 부모 같다는 뜻으로 명명한 것이다.

 

0…어렵게 돈을 모은 사람 중에는 평소 지독할 정도로 검약스런 생활을 하지만 좋은 일에는 과감히 거액을 기부하는 미담사례가 많다. 그것은 가난한 이들의 사정을 헤아릴 줄 알기에 그럴 수 있는 것이다.

 ‘콩나물 할머니’의 감동적인 장학금 기부 소식이 심심찮게 들리는 것도 그런 인간적인 순수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네 이민사회에도 힘들고 억척스럽게 모은 재산을 동포사회를 위해 또는 장학금으로 희사하는 분이 많다.

 어렵게 모은 재산이 남을 위해 값지게 쓰여질 때 쓰라린 옛 사연은 더욱 빛을 발한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면 관인엄기(寬人嚴己)가 될 것이다. 즉 남에겐 관대하고 자신에겐 엄격하라는 뜻이다.

 지금은 이것이 뒤바뀌어, 남에겐 한없이 엄격하고 자신에겐 지나치게 관대한 세상이 되어가니 안타깝다.       

 

0…식당에서 자신의 음식을 주문할 땐 메뉴판의 오른쪽만 볼지라도 남을 위해서는 왼쪽을 보는 사람이 돼야겠다.

 타인에겐 고량진미(膏粱珍味)를 시켜주고 나는 기꺼이 단사표음(簞食瓢飮)에 만족하는 사람이 많길 바래본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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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18
Winter blues

Editor’s Note

 

-겨울철의 불청객 우울증
 

-스스로 건강대안 마련해야  

 

 

 겨울은 왠지 슬프고 우울한 계절이다. 정신의학적으로도 SAD(Seasonal Affective Disorder)란 말이 쓰인다. 전문용어로 계절성 정동장애(情動障碍)라 하는데, 북미에서는 윈터 블루스(winter blues)라 한다. 
 겨울 우울증에 걸리면 늘 심신이 피곤하고 불안 초조하다. 아무리 잠을 자도 무기력하고 일이 손에 안 잡힌다. 
 이는 햇볕이 부족한 이유가 가장 크다. 낮이 짧아 생체 시계바늘을 조절하는 태양빛이 적어지고 감정을 전달하는 신경물질도 감소한다. 

 

 

0…우울함은 추운 북쪽일수록 더하다. 미국 뉴욕의 겨울철 우울증 환자가 플로리다보다 10배나 많다는 통계도 있다. 남유럽에 비해 북유럽인들이 말수가 적고 침울해 보이는 것도 일조량이 적고 날씨가 춥기 때문이다. 
 복지제도가 잘 돼있는 북유럽 국가들에서 자살율이 오히려 높은 것도 음산한 겨울날씨 영향이 크다. 
 예술가 중에는 여름철에 메시아를 작곡한 헨델과 여름 햇살 아래 농부를 그린 반 고흐 등이 심한 겨울 우울증으로 고생했다. 
 반면, 카리브해 국민들이 빈곤하긴 하지만 행복지수가 높은 것은 대체로 온화한 날씨 덕분이다.  

 

0…새해 첫달인 1월. 꿈과 희망이 깃들어야 할텐데 현실은 그렇질 못하다. 계절은 겨울의 한복판에 지난 연말 들떴던 기분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고 새해 소망이나 다짐도 실현 가능성이 줄어드는 때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겪는 심리적 불안상태를 일컫는 ‘쟁자이어티(Janxiety: January + Anxiety)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0…1월을 색깔로 표현하면 푸른색(blue)에 가깝다. 푸른색은 우울, 슬픔, 외로움 등을 나타낸다. 화가들은 이 색을 통해 우울감을 나타낸다. Feel blue는 ‘기분이 우울하다’는 뜻이고 ‘Love is blue’란 노래도 있다. 
 푸른색이 우울한 기분을 표현하게 된 것은 옛날 항해 중 선장을 잃은 배가 파란깃발을 달고 선체에 파란띠를 두르고 돌아온 데서 비롯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구슬프고 흐느끼는 듯한 ‘블루스’라는 음악도 있는데 아프리카 노예들의 처량하고 힘든 노동요에서 유래됐다.     

 

0…1월하고도 보름 정도 지난 이맘때가 일년 중 가장 우울하며 그중에도 월요일이 특히 그렇다. 주말에 쉬고 월요일에 출근하는 직장인들에게 ‘월요병’이라 불릴 정도로 괴로운 날이 월요일이다. 몸은 찌뿌듯하고 기분도 별로 안 좋으며 머리 회전도 잘 안된다. 
 월요일인 Monday의 어원은 ‘달의 날(day of the Moon)’에서 비롯됐다. 한국, 중국 같은 동양에서도 한자에 달을 넣어 月曜日이라 쓴다. 반면 일요일(日曜日)인 Sunday는 ‘해의 날’(day of the Sun)이다. 
 해는 밝고 희망적인 기분을 주는 반면, 달은 어둡고 음침한 분위기를 풍긴다. 옛부터 요일에 따라 느끼는 기분도 달랐던 것이다.  

 

0…우울한 기분을 표현하는 푸른색과 기분이 저조한 월요일을 합쳐 만든 말이 Blue Monday다. 우울한 단어끼리 합쳐졌으니 그 기분이 어떻겠는가. 
 1957년 미국 가수 팻츠 도미노가 발표한 ‘Blue Monday’ 노래가 있다. 가사는 이렇다. 
‘난 우울한 월요일이 싫어. 온종일 노예처럼 일만 해야 해. 이제 화요일이 오네, 오 힘든 화요일. 놀 시간도 없는 생활이 지겨워’(Blue Monday how I hate Blue Monday. Got to work like a slave all day. Here come Tuesday, oh hard Tuesday. I'm so tired got no time to play)

 

0…블루먼데이는 2005년 영국 심리학자 클리프 아낼이 발표한 이래 춥고 음습한 날씨와 함께 1년 중 가장 우울한 날이라는 인식이 굳어졌다. 
 이에 대해선 근거없는 속설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즉 이는 영국의 한 여행사(Sky Travel)가 자사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장사가 시원찮은 년초에 손님을 끌기 위해 이 개념을 개발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즈음에 따뜻한 남쪽나라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   

 

0…겨울 우울증은 일조량이 적어지는 늦가을에 시작돼 봄이 되면 사라진다. 전문가들은 겨울철  우울증 극복방법으로 다음 사항을 권한다. 
 1.낮에는 가급적 집 밖에 있을 것. 2.가능한 밝은 곳에 있을 것. 3.날씨가 좋으면 밖에 나가 햇볕을 쪼일 것. 4.집에서도 조명을 밝게 할 것. 5.규칙적인 생활을 할 것. 6.운동을 꾸준히 할 것. 7.가급적 혼자 있지 말 것. 8.여유가 있으면 따뜻한 곳으로 여행을 갈 것.  
 아름답던 옛날을 회상하는 것도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 꿈결같던 연애시절을 떠올리거나 어릴적 뛰어놀던 고향 풍경을 반추한다. 나는 옛날 노래를 흥얼거려도 기분이 풀린다. 

 

0…경제적,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다면 따뜻한 남쪽나라로 피한(避寒)여행을 떠나는 것도 좋겠다. 실제로 토론토의 많은 한인들이 지금 플로리다 등 남쪽나라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직은 한참 일해야 하는 나같은 사람은 그저 언젠가는 가리라는 상상만 하면서 스스로를 극복하는 수밖에… 
 지금은 겨울의 중간, 아직 추위가 지나려면 멀었다. 요즘 같은 때, 나름대로 겨울 우울증을 극복할 지혜가 필요하다 하겠다. 
 ‘순이가 떠난다는 아침에/말 못할 마음으로 함박눈이 나려, 슬픈 것처럼/창밖에 아득히 깔린 지도 위에 덮힌다/방안을 돌아다 보아야 아무도 없다/벽과 천정이 하얗다. 방안에까지 눈이 내리는 것일까/정말 너는 잃어버린 역사처럼 홀홀이 가는 것이냐’ -윤동주 ‘눈 오는 지도(地圖)’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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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11
유대인 생각

 Editor’s Note

-고난 헤쳐온 강인한 민족성 

-인류의 ‘공공의 적’ 질시 두 얼굴      

 

                                          유대인 출신 유명인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The Merchant of Venice). 여기서 사람들 기억에 가장 선명하게 각인돼 있는 것은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Shylock)의 지독한 돈욕심일 것이다.

 그는 빌려간 돈을 기한 내에 갚지 못할 경우 채무자(안토니오)의 가슴살 1파운드를 떼어가겠다는 계약을 하고 돈을 빌려준다. 결국 제꾀에 넘어간 샤일록은 전 재산을 몰수당하는 것으로 결말이 난다.  

 

0…권선징악적 색채를 띠는 이 작품은 겉으로 보면 희극이지만 16세기 유럽에 만연한 반유대주의 모습을 잘 드러낸다.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유대인을 싫어한다. 그런 차별과 멸시를 받은 샤일록은 복수의 마음으로 계약을 이행하지 않은 안토니오의 살을 악독하게 떼어가려고 한다.

 독자들은 책을 읽고 그야말로 샤일록은 참 나쁜 놈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셰익스피어가 의도했든 안했든 이 작품을 통해 당시 만연했던 유대인 혐오 정서를 알 수 있다.

 지금도 선명한 샤일록의 악랄한 대사. “나는 인간을 믿지 않는다. 물질만 믿는다. 물질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I don't trust humans. I only believe in material things. Materials never betray.)

 

0…신(神)이 지배하던 중세 유럽은 기독교 사회였다. 그런데 기독교와 유대인은 양립(兩立)하기 힘든 존재다. 유대인은 예수를 죽였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유대인은 오래전부터 유럽인의 ‘공공의 적’이었다. 

 중세 유럽에서 유대인은 법률에 의해 토지를 소유할 수 없었다. 따라서 농사도 못 지었고 허락된 것이라곤 오직 장사뿐이었다.

 유대인의 특성을 말할 때 장사 수완이 좋다고 하는데 이런 특성은 타고난 게 아니라 당대 사회의 강요에 의해 어쩔 수없이 만들어진 것이다.

 

0…상업에 종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돈에 대해 일찍 눈을 뜨게 됐고 유럽에서 처음으로 은행제도를 창설한 것도 유대인이었다.

 중세인들이 비천한 직업이라 여겼던 고리대금업도 유대인들이 맡았다. 이것도 유대인들이 하고 싶어서 했다기보다는 딱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어쨌든 유대인들은 금융업으로 막대한 부(富)를 축적하게 됐다. 유럽인들은 이런 유대인에 대해 수전노(守錢奴)라는 편견을 갖게 된다. 자기 민족도 아닌 자가 돈으로 자신들을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니 유대인에 대한 감정이 좋을 수가 없었다. 

 이후 십자군 원정에서 유대인은 학살의 대상이 되기도 했고 이런 학살에서 이들에겐 아무런 법적 보호도 적용되지 않았다.

 

0…유대인은 왜 강한가? 민족이건 개인이건 고난과 시련을 겪으면 강해지는 법이다. 유대민족이 그런 케이스다.

 유대인만큼 숱한 고난 속에 방황했던 민족도 드물다. 하지만 고난과 시련을 겪는다고 모두가 강해지지는 않는다. 비뚤어지거나 좌절하는 사람도 많다.

 그럼 무엇이 유대민족을 강하게 키웠을까? 그 힘은 신앙이었다. 종교는 배움을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가르쳤다. 천가지 재물보다 한가지 배움이 더 소중하다고 가르쳤다. 하느님의 섭리를 하나라도 더 이해하기 위해 공부하라고 가르쳤다. 그 내재된 힘이 오늘날의 유대민족이다.

 

0…요약건대, 유대인의 힘은 독실한 신앙심, 배움 강조, 공동체 자본주의, 삶의 지혜서 탈무드, 가정, 방랑의 고통에서 체득한 탁월한 적응력,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언어, 부(富)와 영리추구를 인정하는 종교 등에서 나온다.

 ‘돈은 버는 게 아니라 불리는 것’이라는 신념은 외부인의 눈엔 보이지 않는 경쟁력을 의미한다.

 하지만 최근 반유대주의가 전세계에서 거세게 고개를 들고 있다. 유대인을 겨냥한 증오범죄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중동은 물론 세계적으로 유대인 혐오 표현과 음모론이 확산되고 있다.

 

0…유대인, 그들은 왜 '공공의 적'이 됐나.

 유대인의 역사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생존을 위한 사투였다. 유대인이 있는 곳엔 증오와 차별이 따랐고 종국엔 학살을 불러왔다. 시대마다 주체와 장소, 동기가 달랐을 뿐, 유대인이 '공공의 적'이라는 점은 늘 같았다.

 특히 이스라엘이 건국(1948)을 전후해 야금야금 먹어들어온 팔레스타인과의 분쟁을 계기로 세계의 적개심이 본격화됐다.

 

0…세계의 유대인 수는 1,600만명 정도. 이중 절반 이상이 이스라엘 밖에서 거주하며 미국에 사는 유대인이 760여만 명으로 가장 많다. 이어 프랑스에 45만여명, 캐나다에 40여만명이 살고 있다. 

 세계 인구의 0.2%, 미국 인구의 2.4%에 불과한 유대인이 전세계 경제, 법조, 정치, 과학계를 쥐락펴락하고 있다.

 세인들은 유대인의 놀라운 능력을 이리저리 분석하며 은근히 셈을 내고 부러워한다. 무슨 송사(訟事)가 벌어지면 변호사도 꼭 Jewish를 찾는다.

 

0…유대인이 남다른 데가 있긴 한가. 분명한 것은 그들도 하나의 종족일 따름이다.

 문제는 선민(選民)이라는 지독한 자만심에 빠져 자기네끼리만의 게토(Ghetto)를 형성한 채 타민족을 깔보고 상종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같은 자가당착적 자만심이 오늘날 팔레스타인에 대한 무자비한 살육만행으로 표출되고 있다.   

 

0…주일미사 때 툭하면 성서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민족이 어떻고~` 대목만 보면 신앙이 깊지 않은 나같은 사람은 거부감에 자리를 박차고 나오고 싶어진다.

 우리 역사도 제대로 모르면서 왜 허구한날 이스라엘민족 타령을 하고 그들을 찬양해야 하나. 더욱이 지금 저들이 저지르고 있는 만행은 미치광이 살육잔치나 다름없잖은가. 

 이제 유대인에 대한 막연한 환상에서 깨어나자. 탈무드가 어떻고 Jewish lawyer를 써야 한다는 둥의 배알없는 맹신에서 벗어나자.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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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04
천년도 어제 같고

 

 

Editor’s Note

-인생은 한바탕 꿈결 
-새해엔 조금만 변해보자 

 

 

 ‘천년도 당신 눈에는 지나간 어제 같고/마치 한토막 밤과도 비슷하나이다. /당신이 앗아가면 그들은 한바탕 꿈/아침에 돋아나는 풀과도 같나이다. /아침에 피었다가 푸르렀다가/저녁에 시들어서 말라버리나이다. ’(가톨릭 성가) 
 새해부터 허무한 말이지만 인생은 흐르는 강물과 같아 참으로 무상하다. 천년의 세월도 창조주의 눈에는 한갓 어제에 불과하다. 

 

0…사람은 나이를 먹을수록 그에 비례해 시간이 빨리 흐르는 느낌을 갖는다. 10대 때는 시속 10킬로, 20대는 20킬로. 그러다 50, 60을 지나면 인생의 종착역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질주한다. 
 열 살짜리 어린아이에게 1년은 생의 10분의 1이지만 쉰 살의 어른에게 1년은 인생의 50분의 1밖에 안 된다. 
 살아온 날과 살아갈 날의 길이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는 것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지만 나이에 따라 순식간에 가버리기도 하고 영원할 것처럼 늘어지기도 한다. 
 살아갈 남은 시간이 짧은 노년에는 세월의 속도를 더 빠르게 느낀다.

 

0…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왜 빨리 흐르는 걸까. 1912년 노벨의학상을 받은 알렉시스 카렐은 다음과 같이 비유했다. 
 “시계에 표시되는 물리적 시간은 강물처럼 일정한 속도로 흐른다. 청소년기엔 강물보다 빠른 속도로 강둑을 달릴 수 있다. 그러나 중년을 넘어 노년이 되면 심신이 지치면서 강물 속도보다 뒤처지고, 그렇다보니 강물이 훨씬 빠르게 느껴진다.” 
 어린이에게 하루는 짧고 1년은 길지만 어른에게 하루는 지루하게 길고 1년은 짧다. 
 어렸을 때는 매일이 새롭고 모든 것이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지만 성인의 경험은 반복적이고 일상적이다.
 어린 시절이 인상적인 기억의 연속인 반면, 단조로운 어른의 시간은 별로 기억에 남는 것이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0…‘마음, 마음, 마음이여 알 수가 없구나/너그러울 때는 온 세상을 다 받아들이다가도/한번 옹졸해지면 바늘 하나 꽂을 자리가 없구나’ –달마대사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어느 땐 온 세상을 다 품을 것처럼 너그러워지다가도 어느 땐 내가 미워죽겠을 정도로 옹졸해지니 참으로 오묘하다. 
 그래서 철석같은 결심과 뼈저린 후회를 반복하게 되는 것이 사람인가 한다. 때론 나 자신도 내 마음을 모르겠는데 하물며 남의 숨겨진 마음을 어찌 알까. 

 

0…새해 벽두엔 많은 사람이 새로운 결심을 한다. 새해엔 신앙생활을 좀더 착실히 하겠다거나, 술과 담배를 줄이거나 아예 끊겠다거나, 열심히 운동해 살을 빼겠다든가 등등… 
 하지만 늘 그렇듯 새해 결심은 작심삼일(作心三日)로 끝나기 쉽다. 
 통계자료에 따르면, 많은 이들이 새해 첫주 안에 4분의 1이 신년 결심을 포기한다. 왜 그럴까.
 학설에 따르면 새해 결심을 이루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인간의 뇌가 현재의 정서적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방식으로 굴러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새해 소원을 빌고 결심을 할 때 느끼는 행복감과 만족감이 미래에도 동일하게 지속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하지만 실제 소망과 결심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실천 자체는 행복감을 주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그래서 중간에 이를 미루고 당장 더 큰 행복과 만족감을 주는 일을 먼저 하게 되는 것이다.

 

0…어떻게 하면 새해 목표를 잘 실천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학자들은 현실적인 목표를 잡고 새로운 습관을 받아들이는 감정 훈련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피터 허먼 토론토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현실적인 목표를 세우고 과도한 변화는 기대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이를테면 한 주에 살을 500 그램 빼겠다고 결심하면 십중팔구 실패하지만 한 달에 500 그램을 뺀다고 하면 1년에 6킬로그램은 뺄 수 있다는 것이다. 
 결심이란 이처럼 구체적일수록 달성할 가능성이 크다. ‘운동을 더 많이 하겠다' 보다 '일주일에 세 번 5킬로미터를 걷겠다'는 결심이 바로 그런 것이다. 

 

0…나는 새해 결심으로 이런 것을 생각해보았다. 즉, 조금이라도 변해보자는 것이다. 내적(內的)으로.
 내 마음이 나도 모르게 수시로 변하는 것을 생각하면 나 스스로 얼마든지 변할 수가 있을 것 같다. 
 구체적인 실천강령으로, 어떤 상황에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것, 누구에게든지 좋은 말만 할 것, 작은 일에 연연하지 말 것.  
 그러면 결국 아름다운 과실이 나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이것만 제대로 실천해도 나는 아마 많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하찮은 일에 안달하고 화를 내고 남에 대해 좋지 않은 말과 생각들을 많이도 했다. 그러다 결국 나만 괴로워하고 스스로 지쳐버리는 일상이 되풀이 돼왔다. 

 

0…하긴, 새해니 지난해니 하는 것도 모두 인간들이 지어낸 것일 뿐, 세상은 달라지는 것이 없다. 사람의 마음이 달라질 뿐. 
 세월이란 것도 인간세계에서나 통할 뿐 삼라만상은 그저 자연 그대로 굴러가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그 한정된 시간 속에 얼마나 보람있고 충실한 삶을 살 수 있을까. 
 ‘묵은 해니 새해니 분별하지 말게/겨울 가고 봄 오니 해 바뀐듯 하지만/보게나 저 하늘이 달라졌는가/우리가 어리석어 꿈속을 노닐뿐’ (妄道始終分兩頭/冬經春到似年流/試看長天何二相/浮生自作夢中遊’)-학명선사(1867-1929)의 선시(禪詩) ‘세월’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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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1
사랑의 손편지

                                                  ▲ 예전 시골에서 우체부가 편지를 전해주던 모습   

 

Editor’s Note

-아련한 옛 추억의 그림자  

 

-사라져가는 정취들 아쉬워  

 

 

 “막내야 보아라. 겨울날씨가 추워지는데 그 섬은 어떠냐? 대청도란 섬이 어디 있는지 이 에미는 그저 꿈속에서만 겨우 짐작해보곤 한다… 아무튼 언제나 건강에 조심하고 먹을 것 꼭 챙겨먹어라. 나는 한시도 걱정이 놓이질 않는구나…” 
 내가 전방 섬(대청도)에 첫 소대장으로 부임하고 난 며칠 후, 전령이 전해준 손편지 겉봉투엔 어머니의 눈에 익은 꼬부랑 글씨가 적혀 있었다. 예전의 어머니는 ‘아래 아’ 글씨를 쓰셨으며 글씨체만 보아도 대번에 어머니란 것을 알 수 있었다.         
 군에서 처음으로 어머니로부터 온 편지를 받아드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 못난 막내를 군에 보내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실 어머니를 생각하니 가슴이 메어졌다. 

 

0…이런 사연은 비단 나만의 것이 아닐 것이다. 군에 가서 부모님으로부터 온 편지를 받아들고 눈물 한번 안흘린 한국남자가 있을까. 
 지금은 좀처럼 보기도 쓰기도 어려운 손편지. 그에 대한 추억도 참 많다. 사춘기 시절, 가슴 두근거리며 써내려가던 풋사랑 연애편지는 지금 생각해도 마냥 청초하고 살폿하기만 하다.   
 우체부가 대문을 열고 들어오면 어머니가 버선발로 뛰어가셔서 받았던 군에 간 우리형님의 편지. 그후엔 내가 전방에서 받아보는 어머니의 가슴 절절한 자식사랑 편지.  

 

0…“그리운 00씨”로 시작되는 연인에게서 날아온 사랑편지는 힘들고 고독한 군생활을 견디게 하는 최대의 무기였다. 
 유명인사들의 편지에 얽힌 사연도 많다. 민주화투쟁 과정에서 감옥에 갇힌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부인 이희호 여사와 주고받은 옥중서신들을 모은 ‘마지막 편지’라는 책이 만들어져 세인의 심금을 울렸다. 
 억울하게 간첩으로 몰려 사형선고를 받고 수감생활을 한 신영복 교수의 옥중서신이 모아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지식인 사회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1997년에 제작된 최진실.박신양 주연의 ‘편지’란 멜로영화는 보는 이들의 눈물샘을 흠뻑 적시기도 했다. 

 

0…손편지 하면 떠오르는 영화같은 스토리가 바로 유치환.이영도 시인의 플라토닉 사랑 이야기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유치환 ‘행복’ 중)
 애당초 청마(靑馬) 유치환과 정운(丁芸) 이영도 시인의 사랑은 요즘 말로 하면 외도(外道)요 불륜이었다. 

 

0…경북 청도 출생의 이영도 시인은 재색(才色)을 갖춘 규수로 21세에 결혼해 딸 하나를 낳았다. 하지만 남편이 폐결핵으로 죽는 바람에 스물 아홉에 청상과부가 되어 홀로 살다 해방되던 해 통영여중 교사로 부임한다. 
 그런데 일본 유학 후 해방이 되자 고향에 돌아와 같은 학교의 국어교사가 된 청마의 첫눈에 정운은 열렬한 사랑의 화신으로 다가왔다. 일제치하의 방황에서 지쳐 돌아온 서른 여덟 살의 청마는 스물 아홉살의 청상(靑孀) 정운을 만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유교적 가풍과 전통적 규범을 깰 수 없는 정운이었기에 좀처럼 마음의 빗장을 열 수 없었다. 

 

0…청마는 이때부터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정운에게 편지를 써보냈다. 통영 우체국에 나가 편지를 부치는 일이 일상사가 됐다. 
 그러기를 3년. 날마다 배달되는 편지와 청마의 애절한 사랑 시편들에  마침내 정운의 마음도 녹기 시작했고 두 사람의 플라토닉 사랑은  시작됐다. 
 하지만 이미 둘 다 기혼(旣婚)인데다 자식까지 있는 이들의 사랑은 애당초 이루어질 수 없었고 그러기에 더욱 안타깝고 애틋했다. 

 

0…끝이 보이지 않던 청마의 사랑편지는 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끝이 났다. 1967년 2월, 청마가 부산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영영 붓을 놓게 된 것이다.
 청마는 타계할 때까지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20년 동안 편지를 써보냈고 정운은 그 편지들을  꼬박꼬박 보관해 두었다. 
 6•25 이전 것은 전화(戰禍)에 불타 버리고 청마가 죽었을 때 남은 편지는 5천여 통. 이 편지들이 모여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란 책이 엮어져 나왔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한폭의 빛바랜 앨범 같은 아름다운 문학작품이 잉태된 배경엔 이처럼 애틋한 사랑의 손편지가 있었다. 

 

0…손편지는 인간적 체온과 진솔함이 담긴 사랑의 매개체이다. 특히 외국에 살면서부터 고국에서 날아온 편지는 더욱 더 반갑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요즘엔 그런 낭만을 기대하기 어렵다. 우편함엔 대부분 공과금 고지서나 광고 전단지만  쌓여 있을 뿐 그리운 사람의 손편지는 눈을 씻고 보아도 없다. 
 요즘 세상에 육필 편지를 주고받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이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메일로 혹은 그마저 귀찮으면 셀폰 메신저로 소식을 주고 받는다. 

 

0…문명의 이기(利器) 덕분에 모든게 편리해지긴 했으나 그리운 이의 체취가 담긴 손편지를 받아보는 반가움과 기쁨은 아련한 추억으로만 남아 있다. 
 연말이 되니 이곳저곳에서 스마트폰으로 안부를 전해오고 있다. 아예 없는 것보다야 반갑긴 하지만 갈수록 인간의 정이 메말라 가는 것 같아 씁쓸하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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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3
2023-12-14
냉소와 편견을 넘어

 

-한국 현대사의 거목 김대중 
-선입견 없는 인간의 참 진실을 

  

“Prejudice disabled me from falling in love with others and pride shuns others away from me.”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게 하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못하게 한다.”) -제인 오스틴(Jane Austen)의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 중

 

인간의 고정관념 중 하나인 ‘편견’에 대해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우상(偶像, Idol)이란 말로 설명했다. 
이는 인간이 올바른 지식을 얻을 때 장애가 되는 편중된 견해, 즉 그릇된 선입관을 말한다. 바로 4가지 우상(Four Idols)이 그것이다.

 

-종족(Tribe)의 우상: 인간의 입장에서 자연이나 세상을 보는 편견.
-동굴(Cave)의 우상: 자기의 경험에 비추어 세상을 판단하려는 편견.
-시장(Marketplace)의 우상: 다른 사람의 말만 듣고 그럴 것이라 착각하는 편견.
-극장(Theater)의 우상: 자신의 소신 없이 권위나 전통을 맹신하는 편견.

 

0…나는 이중에도 한국사회에 팽배한 ‘시장과 극장의 우상’에서 비롯되는 편견이 가장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성찰이나 경험에 따라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고 지배계층의 오만하고 비뚤어진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그것에 의지하려는 것이다.
한번 뇌리에 박힌 그릇된 고정관념(편견)은 개인은 물론, 국가와 사회 공동체 전체를 병들게 만든다. 

0…한국에서는 비뚤어진 편견이 정치 사회적으로 무수히 남용돼왔다. 왜곡된 편견은 극도에 치우친 이념으로 변질되고 집단화되어 국가사회를 분열시킨다.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에 대해 “좌빨” “00도 출신”이라는 단어만 갖다 붙이면 그 대상은 하루아침에 생매장된다.  
이들 용어가 사라지고 상대를 진정으로 존중하는 풍토가 조성돼야 한국사회는 비로소 선진국 대열에 오를 것이다.    

 

0…나는 한국에서 정치부 기자 생활을 하면서 3김씨(김대중, 김영삼, 김종필)와 접촉할 기회가 많았다. 개인 인터뷰도 여러번 했다.   
3김은 긍정적 측면보다 부정적 이미지가 더 강하지만 한국 현대정치사에 막강한 영향을 미치며 때론 동지로, 때론 라이벌로 민주주의의 초석을 다져온 것이 사실이다. 
‘3金’이라는 한묶음으로 분류되는 그들이지만 각자 뚜렷한 특징이 있다. 
난감한 질문을 알쏭달쏭한 선문답(禪問答)으로 피해가는 JP(김종필)의 노회함, 질문의 핵심과는 동떨어진 YS(김영삼)의 동문서답.  
이에 비해 DJ(김대중)는 질문의 요점을 진지하게 파악한 후 기사로 쓰기에 꼭 알맞은 답을 제시했다. 

 

0…나는 이민오기 전까지 청와대를 출입하며 DJ를 가까이서 직.간접적으로 만나 그 인품을 접했다.
그를 한번이라도 만난 사람은 그의 해박한 지식과 논리에 고개를 숙이게 돼있다. 개인적인 호불호(好不好)를 떠나 시대상황을 꿰뚫는 예리한 판단에 혀를 내두른다. 
그러나 한 인간의 공과(功過)를 두고 DJ처럼 극명하게 평가가 엇갈리는 예도 없을 것이다. 
0…미래를 내다보는 혜안(慧眼)으로 한국 현대정치사를 좌지우지한 사람, 정치 거목, ‘행동하는 양심’, ‘인동초’(忍冬草).  
반면, 지역감정을 조장한 파벌정치, 북한에 마구 퍼준 좌익 용공주의자 등 비판도 높다. 그라면 무조건 싫다는 사람도 많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DJ가 없었다면 한국의 민주화는 훨씬 뒤로 미뤄졌을 것이란 점이다. YS와 JP가 있긴 하지만 그들은 DJ가 있었기에 민주화 여정의 동반자로 갈 수 있었다.    

 

0…DJ의 목숨 건 투쟁이 없었다면 한국의 현대 정치사는 어디로 흘러갔을지 모른다. 
그는 한국 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겼으며 한국사회에 터부시돼온 좌파 이데올로기를 극복해냈다.
지금도 혹자는 그를 용공(容共)주의자로 몰고 있지만 내가 만난 DJ는 그렇게 편협한 인물이 아니다. 

 

0…이란에 호메이니가 있다면 한국엔 DJ가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DJ는 숨죽여 지낼 때 더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휘했다. 
1970년대 ‘동교동 재야인사’로 불리며 신문사진에서 눈에 검은 띠가 둘러쳐진 그는 신비로움마저 자아냈다. 
당시는 그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조차 금지됐고 그를 지지한다는 것은 곧 좌익 용공주의자로 몰리기 십상이었다.     

 

0…“한국인들은 참 이상하다. 한국인에게 노벨상을 주지 말라고 한국인들 스스로 로비를 한다./ 김대중씨의 노벨상 수상을 반대하는 편지 수천 통이 전달됐다. 내가 노벨위원회에 들어온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그것도 어느 특정지역에서 날아온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경악했다. 대체 그 사람들의 의도가 무엇인지 혼란스러웠다./ 왜 다수의 한국인들이 김대중씨의 위대함과 민주주의를 향한 불굴의 의지에 감명하지 못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이는 지난 2000년 11월, 노르웨이 베르겐에서 열린 한반도 국제심포지엄에서 노벨상심사위원회 간사였던 노르웨이 국립대학의 스팔니치뇨 교수가 한 말이다. 
노벨상을 타려고 범국가적 로비를 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특정인에게 상을 주지 말라고 ‘역(逆)로비’를 한 사실을 밝힌 것이다. 참 부끄러운 일이다.  

 

0…해외에서 ‘아시아의 넬슨 만델라’, ‘자기를 죽이려 한 사람조차 끌어안는 탁월한 인격자’로 칭송받는 그가 정작 조국에서는 외면당했다. 
“내가 진실로 말한다. 어떤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누가복음 4장24절)는 예수의 말씀이 이처럼 적확할 수 없다. 
그동안 DJ를 싫어했던 사람은 그가 쓴 책을 단 한 줄이라도 읽어보고 비판을 하든지 말든지 했으면 좋겠다. 
소외받고 그늘진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정책을 좌파정치라 몰아부치지 말고 가급적 이해하려는 자세도 가져봄직 하지 않을까.      

 

0…생각건대, 앞으로 상당기간 한국 정계에서 DJ를 대체할만한 인물은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마침 그의 탄신 100주년을 맞아 기념영화가 상영된다고 한다. 자못 기대가 크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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