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계정 찾기 다시 시도 아이디 또는 비밀번호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이용우 칼럼

ywlee
3E6DA81D-B431-4457-8440-64E53AA6F1D8
58398
Y
메뉴 닫기
오늘 방문자 수: 171
,
전체: 148,761
경제 및 시사문예 종합지 <한인뉴스 부동산캐나다>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욱 품격 있는 언론사로 발전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메뉴 열기
ywlee
ywlee
83408
9183
2020-10-26
민주주의와 중우정치-트럼프 재선 가능성 다분


▲도널드 트럼프                          ▲조 바이든

 

 앞으로 열흘 후부터 미국인은 말할 것도 없고 전 세계인들은 현대판 네로 같은 사이코패스 무대를 더 이상 안 볼 수 있을까. 그것은 세계인들의 큰 희망사항이요 기대임에 분명하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의 독특한 선거제도 때문이요, 또 하나는 민주주의의 최대 약점인 중우정치 때문이다.     

 

 미 대선은 각 주(State)의 독립성을 보장한다는 명분 아래 각 주에서 선출된 선거인단(Electoral College)이 대통령을 뽑는 간선제다. 50개 주 중 48개 주민들은 직접투표를 통해 자신들을 대표할 선거인단을 선출하는데, 선거인단에 출마한 사람은 주로 특정 정당의 당원이기 때문에 어느 대선 후보를 지지하는지 공표된 셈이다.

 

 각 주에서 선출된 선거인단은 각 정당의 대통령 후보에게 투표를 하고 그 중 한 표라도 더 많이 득표한 정당이 그 주에 할당된 선거인단을 모두 가져가는 소위 ‘승자독식’(winner-take-all) 방식이다. 이야말로 전형적인 제국주의 스타일이다. 개중엔 ‘믿지 못할 선거인’(faithless elector)이 자신이 투표해야 할 후보자에 투표하지 않는 경우도 있긴 하다. 이럴 경우 그는 정치적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 이를 잠재적 범죄행위로 규정한 주도 있다.

 

 선거인단 수는 각 주의 하원 및 상원의원을 합친 수로, 상원은 주당 2명, 하원은 인구가 많을수록 많다. 예컨대 캘리포니아 주의 선거인단은 55명이지만, 버몬트, 몬태나, 와이오밍, 노스 & 사우스다코타 주 등은 3명 밖에 안된다. 이로써 전국 선거인단은 435명의 하원의원과 100명의 상원의원, 워싱턴 D.C.에 있는 3명 등 모두 538명이다. 이중 매직넘버(과반수)인 270명을 확보하면 미국을 넘어 세계의 대통령이 된다.   

 

0…문제는 선거방식이다. 전체 유권자 직접투표에서 이기고도 선거인단 수에서 뒤져 패한 경우가 미국 역사상 다섯 번 있었다. 가장 최근 경우가 2016년. 당시 직접투표에서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보다 약 286만 표, 2% 포인트나 앞섰으나 선거인단 수에서 80명 차 가까이 패하면서 트럼프가 당선됐다.

 

 그 전인 2000년엔 전체 국민의 직접투표에서 민주당 앨 고어가 앞섰지만, 선거인단 수는 조지 W. 부시가 앞서 대통령이 됐다. 1824년 존 퀸시 애덤스, 1876년 러더퍼드 B. 헤이스, 1888년 벤저민 해리슨도 모두 직접투표에서는 졌지만 선거인단 수에서 우위를 점해 대통령이 됐다. 이들은 모두 공화당 소속이다.

 

 11.3 대선을 코앞에 둔 현재 조 바이든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트럼프에 상당히 앞서 있다. 그러나 당락을 결정하는 선거인단 투표는 별개 문제다. 전국 투표에서 이겼지만 선거인단 투표에서 패하는 사태가 재현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2016년 당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 민주당은 이번 선거 또한 4년 전의 데자뷔가 되지 않을까 초조하다.

 

 전국 여론조사에서 뒤지고 있는 데 대해 트럼프 캠프는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을 패배시키기 위해 4년을 보냈다. 왜 이런 기관이 지불한 여론조사를 신뢰해야 하느냐"며 정확성에 의문의 불씨를 지피고 있다. "사람들은 이성이 아니라 감성적으로 반응한다. 감성적으로는 같은 (패배) 시나리오가 다시 전개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한 정치평론가의 해석이다.  

 

 각종 여론조사를 비웃듯 트럼프가 4년 전처럼 다시 승리하는 이변을 연출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설령 트럼프가 지더라도 쉽게 승복하지 않고 판을 길게 끌고 갈 가능성도 크다. 일각에선 벌써부터 개표결과에 대한 우려가 팽배해있다. 미국은 시간대가 다양해서 개표시간도 다르다. 이번엔 특히 트럼프가 불법과 사기라고 공격하는 우편투표가 확대돼서 최종 개표 결과가 언제 나올지 장담 못한다.

 

 또 하나 변수는 트럼프의 콘크리트 지지층이다. 판세가 백중해 투표 당일 자정을 넘겨도 당락 윤곽이 나오지 않는다면 트럼프는 지지층을 총궐기시키고 선거결과를 법원으로 가져갈 공산이 크다. 2000년 부시 대 고어의 대선 결과가 한달 정도나 늦게 법원에서 결정된 사태보다 더 큰 혼란과 항의가 미국 전역을 뒤덮을 것이란 우려가 그래서 나온다.

 

 트럼프는 이미 선거 결과를 소송까지 몰고 갈 것임을 천명한 바 있다. 그럴 경우 보수파가  장악한 연방대법원에서 트럼프의 손을 들어줄 확률이 높다.

 

0…민주주의의 맹점으로 중우정치(衆愚政治, Ochlocracy)란 말이 쓰인다. 국민의 대표자가 국민을 제대로 통제 못하고 나라가 통제불능된 상태를 말한다. 미국이 지금 이런 꼴이다. 코로나로 하루에 수천 명이 죽어나가는 나라가 미국이다. 이게 세계 최강국가란다. 그런데도 여전히 트럼프 광팬들이 미쳐 날뛴다.

 

 승자가 싹쓸이하는 선거방식, 여기에 아무리 미친 짓을 해도 무조건 지지하고 보는 극우 백인층의 ‘묻지마 몰표’ 때문에 지구촌이 다시 4년을 미치광이에게 시달릴 가능성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한다면 전보다 더 미쳐 날뛸 것이다. 세계의 모든 질서와 가치가 뒤죽박죽될 것이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미국 대통령은 전 세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한국이나 캐나다나 관심이 안 갈 수가 없다. 트럼프가 재선된다면? 대재앙의 4년을 다시 맞을 순 없다. 현명한 미국인들의 판단을 기대할 수밖에…  (사장)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ywlee
ywlee
83275
9183
2020-10-21
이재명 vs. 이낙연-닮은 듯 다른 두 흙수저

 


▲이낙연(왼쪽) 씨와 이재명 씨

 

 한국의 차기 20대 대통령 선거일은 2022년 3월 9일이다. 여권에서는 일찌감치 양강구도로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 이낙연과 이재명. 정책대결은 아직 미지수이지만 두 사람의 캐릭터가 볼만하다. ‘달달한 고구마’와 ‘시원한 사이다’로 비유되는 두 이(李)씨. 둘 다 흙수저 출신이란 점에서 닮은 듯하지만 걸어온 길은 사뭇 다르다.

 

투박, 속시원한 이재명  

 이재명은 서민들의 카타르시스를 대신할 후련한 발언과 행동으로 ‘탄산충분 사이다’로 불린다. 시원하게 속을 풀어주는 사이다 같지만 탄산이 과하면 불편해지기도 한다는 뜻이다. 1963년 12월 생이니 올해 만56세로 이낙연(67)보다 11살 적다. 유년시절 가정환경은 문자 그대로 찢어지게 가난했다. 본래 5남4녀지만 누이 두 명이 일찍 세상을 뜨는 바람에 5남2녀 중 다섯째로 자랐다.

 

 열 살에 아버지가 집을 나가자 어머니와 일곱 남매가 화전(火田)을 일구며 생계를 유지했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이재명 일가는 성남의 빈민촌에 정착한다. 나이가 어린 이재명은 다른 사람의 신분과 이름을 빌려가며 가족 생계를 위해 여러 공단(工團)을 전전했다. 설상가상, 공장에서 일하다 프레스 기계에 팔이 눌리는 사고로 장애6급 판정을 받아 군면제 판정을 받았다. 부상 후유증으로 일을 쉬는 사이 공부에 매진해 고입과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그러나 기회가 차단된 환경에서 다시 공장 노동자 신세를 이어가야 했다.

 

 이후 4년 전액장학금에 매월 생활비 30만원 지원이라는 파격 조건을 제시한 중앙대 법학과에 진학했다. 6년 뒤 사법고시에 합격한 그는 사법연수원 성적도 좋았다. 하지만 판.검사 임용을 앞두고 갈등을 거듭한다. 군사정권의 주구(走狗)가 되지 않겠다는 소신과 집안형편 사이의 고민이었다. 그러던 중 인권변호사였던 고 노무현 대통령의 강의를 듣고 그의 철학에 매료된다. "변호사는 굶지 않는다"는 그의 말을 믿어보고 싶었다.

 

0…‘변호사 이재명’은 주로 노동과 인권사건 변호를 맡으며 민변 활동을 했다. 시민들과 뜻을 모아 '성남시민모임'을 창립, 시민운동에도 뛰어들었다. 각종 행정비리 특혜의혹을 파헤쳤다. 정치권력, 언론, 돈, 조직 등과 정면으로 맞서 싸웠다. 하지만 거대한 부패 기득권 세력 앞에 한계를 절감했다.

 

 2004년 성남 구시가지의 대형병원들이 문을 닫으며 의료공백이 심각해졌다. 이에 공공의료원 설립을 목표로 시민 2만 명의 뜻을 모아 주민발의 조례를 만들었으나 시의회로부터 47초 만에 날치기를 당하고 만다. 교회 지하실에서 서럽게 울던 그는 시민의 권한을 대리하는 시장이 돼 직접 시립의료원을 만들겠다고 마음먹었다. 정치 입문을 결심한 순간이다.

 

 이재명의 스타일은 한마디로 ‘원칙과 공정'이다. “백성은 가난보다 불공정에 분노한다(불환빈 환불균-不患貧 患不均)”는게 그의 소신이다. 정치 뿐 아니라 업무, 일상생활에서도 정도(正道)를 지키려 한다. 그를 따라다니는 의혹 중 하나인 ‘형수욕설' 논란 역시 원칙을 지키기 위한 형과의 갈등 때문이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디테일’강한 이낙연

 이낙연은 잡초같은 삶을 살아온 이재명에 비하면 꽃길을 걸어온 듯도 하다. 하지만 그 역시 흙수저다. 전남 영광의 가난한 농가에서 7남매 중 장남으로 출생한 이낙연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교사가 그의  총명함을 알아보고 가난한 부모님을 설득, 중학교부터 광주로 보냈다. 가난했지만 어머니가 농사일과 채소장사를 하며 뒷바라지를 했다. 그후 그는 한국 최고라는 서울 법대에 들어갔다.

 

 그는 사법, 행정고시에 한차례씩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계속 도전할 수 없었던 이유는 가난 때문이었다. 언론 인터뷰에서 “당시 하숙비가 없어 선배네 하숙집과 친구네 자취방을 전전하는 생활을 했고, 1년은 입주 가정교사를 했다. 그러다 보니 영양실조 상태에 빠지는 등 몸이 망가져 있는데 영장이 나오길래 졸업식 일주일 전에 입대했다. 제대 후에 한 친구가 자신의 월급 절반을 주면서 고시공부를 하도록 후원해줬지만 동생들은 크는데 나만 공부한다는 게 양심에 용납되지 않아 그만두고 취직했다”고 했다. 전역 후 은행에 취업했다가 기자(동아일보)로 진로를 바꿨다.

 

 이낙연은 오랜 기자 생활과 풍부한 행정경험이 어우러져 현안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그의 바지 뒷주머니에 꽂혀 있는 수첩엔 깨알 메모가 가득하다. “21년 동안 신문기자로 일하면서 얻은 많은 것들은 제 생애에 걸쳐 소중한 자산으로 작용하고 있다. 모든 판단을 정확한 사실에서 하려는 버릇, 어떤 사안이든 균형 있게 보려는 습성, 정확하되 야비하지 않게 표현하려는 노력, 이 모든 것은 신문기자 경험이 제게 남긴 귀중한 선물이다.”

 

0…올해 초까지만 해도 여론 지지도에서 이낙연이 훨씬 앞서 있었다. 그런데 갈수록 격차가 줄고 급기야 이재명이 앞서는 조사도 나오고 있다. 왜 그럴까. 속된 말로 "밋밋한 이낙연보다 도발적인 이재명이 낫다"는 대중들의 심사 때문이다. 이낙연은 실수를 안 하려고 작정하고 밋밋하게 얘기하는 반면, 이재명은 아예 사고를 치려고 작정하고 도발적으로 덤비는 스타일이다.

 

 야권에 뚜렷한 인물이 없기에 현재로선 한집안 싸움 양상이다. 그러나 진영 내 양자 구도는  골육상쟁(骨肉相爭)처럼 훨씬 더 치열하고 어렵다. 1987년 김영삼-김대중, 2007년 이명박-박근혜, 2012년 문재인-안철수 경우가 그 교훈이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나마 여기까지 온 한국의  민주화가 또다시 5년여 전으로 후퇴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론 박원순 같은 사람이 민주국가에서 가장 이상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해왔지만, 그가 없으니 굳이 두 이씨 중에 한 명을 들라면 차라리 이재명이 낫다는 생각이다. 비전과 인품도 중요하지만 한국같이 상대 진영에 대한 무차별 공격이 난무하는 상황에서는 (이재명 같은) 단단한 맷집과 강단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장)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ywlee
ywlee
83122
9183
2020-10-13
가황(歌皇) 나훈아-세상을 움직이는 대중문화


 ‘테스형’이라니. 처음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어리둥절했고 그게 대중가요 제목이라는 것을 알고는 누군가 또 말장난을 했구나 했다. 요즘 대중가요 가사라는 것들이 대부분 말도 안되는 허튼 소리를 늘어놓지 않던가. 그런데 나훈아가 부르는 노래를 유심히 듣고 보니 이게 보통 심오한 노랫말이 아니었다. 가슴이 저며오고 콧잔등이 시큰했다.  

 

‘울 아버지 산소에 제비꽃이 피었다/들국화도 수줍어 샛노랗게 웃는다/그저 피는 꽃들이 예쁘기는 하여도/자주 오지 못하는 날 꾸짖는 것만 같다/아! 테스형 아프다 세상이 눈물 많은 나에게/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세월은 또 왜 저래/먼저 가본 저 세상 어떤가요 테스형/가보니까 천국은 있던가요 테스형/아! 테스형…’

 

 나훈아가 혼신의 열정으로 애타게 소크라테스를 찾는 모습은 진실로 ‘먼저 가본 저 세상은 어떤지, 가보니까 정말로 천국은 있던지’ 묻는 것 같았다. 이런 가사를 만든 사람은 누구인가 살펴보니 바로 나훈아 자신이었다. 작사, 작곡, 노래까지 혼자서 다 한 것이다.

 

 노래 말미에 나훈아는 “세상이 왜 이래. 세월은 또 왜 저래, 라고 물어봤더니 테스형도 모른다고 하더라”며 “세월은 너나 없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모양”이라고 술회했다.

 

0…나훈아(본명 최홍기,73). 언론에서는 그를 가황(歌皇), 즉 가요계의 황제라는 칭호를 붙였다. 이제까지 가왕(歌王)이란 말은 있었지만 가황이란 극존칭은 나훈아가 처음일 것이다. 나는 나훈아 추석특집 공연을 보며 그가 그런 호칭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이번 공연은 그동안 대중가요를 다소 우습게 여기던 사람들의 인식을 180도 바꿔놓았다.       

 

 나훈아는 기본적으로 노래를 잘한다. 고교 1학년 때 이미 자기노래를 발표하면서 가요계에 데뷔했다. 호소력 짙은 목소리와 간드러진 꺾기 창법이 매력적인 그는 1968년에 발표한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 대히트하면서 대중들의 시선을 끌어 모으기 시작했다. 이후 70년대는 그보다 두 살 위인 남진과 함께 한국 가요계를 양분하면서 치열한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주로 활달하고 흥겨운 남진의 노래들과 달리 나훈아는 대체로 차분하고 조용한 서정적인 노래를 불러 중장년층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그의 노래 주제는 고향, 사랑, 인생 등 다양하고 깊이가 있다. 특히 그의 자작곡 노래 중에는 슬프고 로맨틱한 곡들이 많은데 ‘갈무리’, ‘영영’,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 ‘홍시’ 등이 그렇다.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자장가 대신 젖가슴을 내주던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눈이 오면 눈맞을 세라 비가 오면 비 젖을세라/험한 세상 넘어질세라 사랑땜에 울먹일 세라…’ (‘홍시’ 중)

 

0…나훈아는 가수이면서 동시에 작곡과 작사 능력으로 ‘싱어송라이터’의 자리매김을 확실히 했다. 데뷔 이후 현재까지 약 2,500여곡을 취입하고 200여개의 앨범을 발표했는데, 그가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만 800여곡 이상이다. 평생 남의 노래만 부르는 가수도 수없이 많은 점에 비추어 그는 확실히 뛰어난 음악인이다.  


 이런 그이기에 자존심도 강하다. 일화에 따르면, 언젠가 삼성그룹 회장 이건희의 연회에 나훈아가 참석해주도록 초청받았으나 그는 자신의 공연을 보기 위해 표를 사는 이들한테만 노래를 한다며 단호히 거절했다 한다.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한 나훈아이지만 굴곡도 많았다. 1972년 서울시민회관 공연 중 한 남자에게 병 파편 피습을 당해 몇 개월을 입원했다. 톱스타 김지미를 비롯해 세 번의 결혼과 이혼을 겪었고, 여배우와의 염문설, 일본 조직폭력단 연루설, 신체 절단설, 잠적설, 암 입원설 등 끝없는 괴소문에 시달려야 했다.

 

 방송에 출연하지 않을 때도 나훈아의 공연장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홍보와 마케팅에 집중하는 요즘 가수들이 꺼리는 은둔활동은 일종의 희소가치로 작용해 오히려 공연장마다 관객이 몰려들게 했다. 2017년 다시 돌아온 나훈아는 올해 뜻하지 않은 코로나 난국을 맞아 비대면 콘서트 ‘대한민국 어게인’을 열게 됐다.

 

0…이번 콘서트는 73세의 나이라곤 믿어지지 않는 나훈아의 걸출한 가창력과 쇼맨십, 화려한 무대연출을 유감없이 과시한 정상급 공연이었다. 그는 장장 2시간 반 동안 29곡을 선사하며 지친 기색도 없이 압도적 카리스마와 에너지로 공연을 끌고 갔다. 음색은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지 않은 듯 매끈했다. 때로는 애절한, 때로는 간드러지는, 때로는 힘있는 절창으로 관객을 울리고 웃겼다.

 

 나훈아는 코로나로 지친 국민을 위해 무보수로 이번 공연에 출연했다. 그로서는 15년 만의 안방극장 나들이었고 국민들은 전례없이 높은 시청률로 화답했다. 민소매 셔츠에 찢어진 청바지 차림으로 술술술 곡조를 뽑아내는 나훈아의 신비스런 모습에선 흐르는 세월이 무색했다.

 

 이날 무대는 한국 각지와 일본, 호주, 러시아, 덴마크, 짐바브웨 등에서 사전 신청한 전세계 팬 1천여 명을 온라인으로 연결해 중계했으며 관객들은 곡이 끝날 때마다 "나훈아!"를 연호했고 고향 노래가 나올 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나훈아는 말미에 “이 나라를 누가 지켰나, 바로 여러분이다. 국민이 힘이 있으면 위정자들이 생길 수가 없다"는 발언도 했다. 이에 여야 정치권은 제각각 아전인수식 해석을 늘어놓기도 했다.

 

 이런 모습을 보며 새삼 대중문화의 위력을 확인한다. 권력보다 금력보다 대중과 함께 숨쉬고 노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사장)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june
정준일
2020-10-11
나훈아 - 테스형 (김연숙 cover)
83204
ywlee
ywlee
82965
9183
2020-10-06
정부 돈은 눈먼 돈?-코로나 지원금의 두 얼굴

 

 올해 초 터진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세계 각국 정부에서는 천문학적인 돈을 풀어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을 위해 현금을 지원해주고 있다. 한국 정부도, 캐나다 정부도 예외가 아니다. 이름은 각각 달라도 국가재난사태를 맞아 국민들을 위해 돈을 지원해준다는 근본 취지는 다 같다.     

 

 캐나다 정부는 올 3월부터 코로나 피해가 확산되자 국민들의 소득보전을 위한 각종 대책을 잇달아 내놓았다. 그 중 대표적인 몇가지만 보면 ▶개인과 가정을 위한 CERB, CRCB, CRSB, EI ▶업체 종업원 임금보조를 위한 CEWS ▶중소기업 대출을 위한 CEBA ▶대학생들을 위한 CESB ▶그밖에 장애인과 시니어, 원주민들을 위한 지원금 등 무척 다양하고 많다. 당사자들이 일일이 신경쓰지 않으면 모를 정도다. 속된 말로 이런 제도만 잘 찾아 먹어도 굶어죽을 일은 없게 돼있다.

 

0…이처럼 다양한 지원금 중에도 가장 많은 국민이 혜택을 본 제도가 바로 국가재난지원금(CERB)이다. 지난 3월 15일부터 소급 적용되기 시작한 이 제도는 당초 최대 16주까지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가 이를 두 차례나 연장해 지난 9월 26일까지 시행했다.

 

 캐나다 국민들이 생전 처음 받아보는 이 지원금은 신청절차가 비교적 단순하고 쉬워 대충 전화만 걸고 몇가지 물음에만 답하면 신기하게도 사흘 안에 통장에 2천달러가 자동으로 입금됐다. 이러다 보니 너도나도 CERB를 신청해 돈을 탔고, 제도 시행 열흘 만에 캐나다 전체 인구의 3분1 수준인 1,200만여 명이 이를 신청했다.

 

 그런데 문제는 코로나로 인해 직접 피해를 당한 사람들(실직자, 자영업자, 대학생, 장애인, 노약자 등)을 위해 마련된 이 제도가 버젓이 생업에 종사하며 수입에 별로 지장을 받지 않는 사람들까지 마구잡이로 신청을 해서 돈을 타가는 데 있었다.     

   

 솔직히, 내가 아는 사람 중에도 경제사정이 넉넉한 사람이 CERB 지원금을 신청해 탔고, 거기에 정직하지 못한 편법까지 써가며 정부의 모든 혜택을 하나도 빠짐없이 챙기는 사람을 보았다. 이는 한달 수입이 2천불에 못 미치면서도 묵묵히 일을 하는 많은 사람을 몹시 맥빠지게 하는 행위였다.  

 

 개중에는 CERB와 고용보험(EI)을 함께 신청해 이중으로 지급받는 경우도 있었다. 이는 정부의 지원금 프로그램이 갑작스럽게 마련되다 보니 수급자격을 엄격히 가리지 못하고 일단 신청만 하면 입금을 해주는 시스템상 헛점에서 비롯됐지만, 가장 근본적인 것은 개인의 양심이 바르게 작용하지 않은 데서 벌어진 해프닝으로 보인다. 이럴때 가진 자들이 더 ‘공돈’에 혈안인 광경을 보고 입맛이 참 씁쓸했다.    

 

0…CERB에 대한 부정수급 지적이 확산되자 정부가 나서 무자격자는 자발적으로 돈을 환불할 것을 권고하기에 이르렀고, 그나마 많은 이들이 스스로 ‘부정직함’을 반성하고 줄줄이 반납 대열에 동참했다. 국세청은 한때 부정수급자에 대해 5천 달러의 벌금과 6개월 이하의 징역형 등 강력한 처벌까지 예고했으나 “너무 지나치다”는 야당(NDP) 등의 여론에 밀려 흐지부지됐다.

 

 CERB는 코로나 실직자들에게 많은 혜택을 준 것이 사실이지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이 제도가 마침내 지난 9월 26일에 종료됐다. 그러자 정부가 다시 꺼내든 카드가 국가회복지원금(CRB-Canada Recovery Benefit)이란 것이다. 이는 고용보험(EI)과 CRB의 금액을 기존 긴급재난금과 똑같이 주당 500달러로 인상한 것인데, CERB를 이름만 바꾼 것으로 내년 9월 25일까지 지급된다.

 

 이는 소수정부인 연방자유당이 살아남기 위해 이를 강력 주장해온 신민당(NDP)의 안을 받아들여 성사된 것인데, 실직자들에게 반가운 소식에 틀림없지만 부작용도 우려된다. 한달에 월급 2천불을 못받는 사람은 일부러 일을 안하고 이것만 받으려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힘들게 일하며 저임금을 받을 바에야 정부 혜택을 받으며 편안히 쉬는 것이 훨씬 나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일은 고되고 임금은 적은 식당, 편의점 등 영세업소들에선 이미 종업원을 못 구해 애를 태우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연방정부 외에도 온주 및 시정부가 제공하는 각종 세제 혜택이나 보조금 등을 감안하면 저임금 근로자들이 받는 돈은 코로나 이전보다 많을 수도 있다. 따라서 앞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정부지원에 의존하는 사람이 늘면서 영세업소의 구인난은 계속될 것이다.

 

0…자유당정부는 이밖에 고용보험도 쉽게 신청할 수 있게 했고, 실직자들이 정부지원금을 받으며 연 3만8천 달러까지 별도의 고용수입을 가질 수도 있게 배려했다.

 

 그런데 정부의 각종 지원 대책이 고마운 것은 사실이지만 자칫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지적도 만만찮게 제기되고 있다. 지원금이 후하다 보니 근로자들이 직장에 나가기보다 차라리 실직상태로 남아 있으려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이다.

 

 자고로 정부 돈은 눈 먼 돈이라는 말이 있다. 비상시국이라곤 하지만 수급자격 여부를 꼼꼼이 따지지 않고 마구잡이로 넣어주는 정부지원금은 마약에 다름 아니다. 일은 안하고 정부 지원에만 의존하려는 나태함을 조장할 수 있고, 사회적 사행심마저 만연할 우려가 있다.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건전한 양식을 가진 많은 이들의 근로의욕을 저하시키는 결과를 낳는다면 이는 안하느니만 못하다 하겠다. 그보다는 가능한 일자리를 유지토록 하고 근로하도록 독려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사장)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ywlee
ywlee
82790
9183
2020-09-30
불가근 불가원-비대면 시대의 처세법

 

▲추석을 앞두고 각 지방에 걸린 현수막들

 

 “아는 분 같은데 혹시 이 아무개씨 아닌가요?” 일전에 한 골프장에서 분명 한국인으로 보이는 분이 나에게 다가오며 인사를 건넸다. 그 분은 모자를 쓰고 선글라스에 마스크까지 해서 얼굴 전체를 휘감아 누구인지 전혀 알아볼 수가 없는데 그나마 복장과 자세가 눈에 익었다. 내가 긴가민가 하자 그 분은 모자와 선글라스, 마스크를 벗으며 “저예요” 하는데 평소 알고 지내는 분이었다. 우리는 한바탕 껄껄 웃었다.

 

 이런 일은 요즘 흔히 겪는 풍경이다. 어쩌다 식품점이나 식당 같은 곳엘 가도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선뜻 누구인지 짐작이 안간다. 마스크를 쓰면 얼굴의 절반이 가리는데 거기에 선글라스나 모자까지 쓰면 완전히 ‘변장’ 수준이라 누구인지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한번은 저녁에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딸들을 보며 농담을 했다. “얘, 엄마와 너희들은 요즘 손해보는 것 같다. 예쁜 얼굴을 가리고 다니니 남들이 알아주지 않잖아”했더니 딸들이 아빠는 주책이라며 눈을 흘긴다.      

 

 이래서 요즘은 다른건 몰라도 외모에서만큼은 내가 꿈꾸는 ‘만인평등의 세상’이 어느정도 실현된 것 같다. 내 얼굴도 잘 생긴 편이 아닌데, 마스크로 덮고 다니니 잘 생긴 사람, 못 생긴 사람 구분할 필요없이 모두가 같아 보인다.      

 

0…공교롭게 우리 두 딸은 최근 비슷한 시기에 직장을 옮기게 됐는데, 첫날부터 집에서 온라인으로 일을 시작했다. 나와 아내는 아이들이 직장을 옮겼으면 최소한 처음 며칠간은 직장에 나가 상사와 직원들에게 인사라도 하고 향후 업무지시도 받는게 예의가 아니겠느냐 했더니 그럴 필요가 없단다. 화상을 통해 처음 만난 직원들과 자연스레 소개를 하고 업무 오리엔테이션도 받는데 아무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광경은 예전 같으면 상상하기 힘든 것이다. 누구나 그렇듯이 나도 첫 직장에 출근하던 날, 새 양복에 멋진 넥타이를 골라 매느라 신경쓰던 시절이 엊그제 같다. 상사에게 좋은 인상을 주려고 애써 미소를 짓던 시간도 하나의 추억으로 멀어지고 있다.            

 어찌보면 마스크로 얼굴의 반을 가린 채 직접 만나는 것보다 화상으로 대화하면 얼굴 전체를 볼 수 있으니 앞으로는 비대면 접촉이 오히려 더 친숙해질 것이란 생각이다. 또한 굳이 시간을 할애하며 밖에서 누굴 만날 필요가 없어지게 될 것이다. 그야말로 뉴노멀 시대임을 실감한다.

 

0…고국에선 추석(10월 1일)을 앞두고 코로나 지역감염에 비상이 걸린 가운데 각 자치단체에서는 타지로 나간 자녀들이 올 추석엔 고향을 방문하지 말 것을 호소하는, 이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진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전에는 애향심을 고취하기 위해 고향방문 캠페인을 벌였으나 올해는 정반대로 ‘고향방문 안하기’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지역이동을 자제하기 위해 온갖 기발한 방법이 동원되는데 이를테면 온라인제사 인증사진 공모전, 봉안시설 1일추모객 총량예약제, 온라인 성묘 서비스, 산림조합 벌초대행 서비스 등 전에는 들어보지도 못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1년중 가장 풍성한 한가위를 맞아 따스한 정을 나누던 미풍양속이 이렇게 변하고 있다.

 

 한편, 고향방문 자제를 위해 각 지방에 걸린 현수막 문구들도 눈길을 끌고 있다. 어느 고장에서는 ‘지역 시부모 일동’이 내건 플래카드에 ‘소중한 자식들아, 차례는 우리가 알아서 지내마. 내려올 생각 말고 영상통화로 만나자', '며늘아! 이번 추석은 너희 집에서 알콩달콩 보내렴' 등이 걸려 있다.

 

 가장 재미있고 익살스런 표현은 '불효자는 옵니다'라는 것이다. 예전 진방남 선생이 부른 가요 ‘블효자는 웁니다’를 패러디한 이 문구는 전에는 명절에 부모를 찾아뵙지 않으면 불효자라 했지만 올해는 찾아뵙는 것이 오히려 걱정을 끼쳐드리는 것이니 불효자가 된다는 것이다.  

 

 이밖에 ‘안 와도 된당께', ‘내려오지 말고 용돈이나 두 배로 보내거라' 등 재치있는 문구들이 넘친다. 그런가 하면 추석연휴기간에 제주도 등지의 휴양지가 예약이 꽉 찼다고 하자 이를 빗대는 말도 등장했다. 즉 “거리두기 캠페인 하는데 연휴에 관광지 가는 사람은 효자일까? 불효자일까? 남인수 선생의 '불효자는 떠납니다'가 생각난다.”

 

0…비대면 시대를 풍자하는 문구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조상님은 어차피 비대면, 코로나 걸리면 조상님 대면’이라는 문구는 짧지만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즉, 보이지 않는 조상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은 어차피 비대면인데 코로나 걸려서 자칫 목숨을 잃으면 조상님을 직접 뵙게 되니 이는 곧 죽게 된다는 뜻이다.  

 

 일부에서는 비뚤어진 종교집단을 매개로 한 코로나 확산을 풍자해 ‘예수님은 어차피 비대면, 코로나 걸리면 예수님 대면’이란 촌철살인 문구도 유행하고 있다. 이런 풍경들을 보면서 한편으로 재미있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론 세상 삶이 갈수록 팍팍해지는 것 같아 씁쓸하다.

 

 안보면 멀어진다(out of sight, out of mind)는 말이 있듯이 아무리 비대면 시대라곤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자주 접촉하지 않으면 결국 멀어진다. 그러니 비록 몸은 떨어져 있어도 마음만은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친지들과 자주 연락하고 안부도 전하며 살아갈 일이다.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비대면 시대의 지혜로운 처세법(處世法)이 아닐까 한다.  (사장)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ywlee
ywlee
82601
9183
2020-09-20
해병대와 카투사-추미애 아들 논란을 보며



▲해병대 장교 복무 시절의 필자

 

 나는 1981년 서해 최북단 대청도에서 군생활을 시작했다. 대학 졸업 후 해군간부후보생(OCS)을 통해 해병대 소위로 임관된 내가 맨처음 배속된 부대가 백령도 해병대 여단본부였고 예하 대대가 대청도였다. 지금은 인천 연안부두에서 쾌속선으로 4시간이면 당도하지만 당시엔 여객선을 타고 12시간을 항해해야 했다.

 

 긴 여정 끝에 도착한 백령도는 신참 소위에게는 경외로움 자체였다. 하루를 꼬박 달려온 먼 바다 한가운데에 그처럼 아름답고 큰 섬이 있는 줄을 입대 전에는 상상도 못했다. 서해 5도를 관할하는 해병대 백령도 여단 중에서도 나는 다시 배로 30여분 거리에 떨어져 있는 대청도에 배속됐다.

 

0…청춘시절 최전방에서 보낸 군 경험은 평생 잊을 수가 없다. 북한 해주 땅이 코앞에 있고 효녀 심청이 몸을 던졌다는 인당수의 푸른 바다는 파도가 잔잔하고 햇빛이 찬란하면 더없이 아름다웠다. 하지만 기상이 불순하고 파도가 거세면 무서울 정도로 을씨년스러웠다.

 

 장산곶이 빤히 보이는 이쪽 진지에서 우리는 검푸른 바다를 향해 밤낮 없이 총부리를 겨눈 채 언제 벌어질지 모르는 돌발상황에 긴장을 풀 수 없었다. 내가 대청도에 발을 디딘 첫날부터 발칸포가 밤하늘을 향해 불을 뿜어대던 기억이 선하다. 북한 항공기가 우리 해안에 접근해와 경고사격을 가하는 소리였다. 그때 이곳이 최전방이라는 사실이 실감나는 동시에 내가 과연 살아서 나갈 수 있을까 하는 공포감이 엄습해왔다.

 

 다행히 다음날부터 평상으로 돌아갔지만 전방엔 늘 긴장이 감돌았다. 해안방어가 주임무인 우리 소대는 특히 야간경계근무가 중요했다. 나는 매일밤 바닷가 철책선을 따라 순찰을 돌며 병사들이 졸지는 않는지, 어디 아픈 곳은 없는지 항상 신경을 써야 했다.

 

 전방에서 가장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 중 하나가 일상적 병영생활이다. 해안선에 땅거미가 내리고 병사들이 경계근무에 돌입하면서부터 사단이 벌어진다. 어두운 탄약고에서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그것은 틀림없이 선임병사와 후임자가 치고받는 것이다. 해안 소대장으로서 이 같은 일을 살피느라 밤마다 신경이 곤두섰다.

 

0…해병대는 강한 군대의 대명사다. 적지(敵地) 해안에 침투해 교두보를 장악하는 것이 주임무인 해병대는 그만큼 훈련이 세고 군기가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인간의 한계체력까지 실험하는 극한상황을 이겨내야 한다. 선후배의 위계질서는 한겨울 서릿발처럼 차갑고 날카롭다.

 

 그러나 어찌보면 해병대를 미화(美化)해서 그렇지 병영생활은 한없이 힘들고 고달프기만 하다. 잠도 못자고 훈련은 고되고 선임자들은 괴롭히고… 사병식당에서 나오는 밥과 부식(반찬)은 눈물이 날 정도로 부실하다(지금은 좀 개선됐는지 모르겠다). 이러니 남은 것은 오로지 치받는 악 밖에 없다. 이래서 해병대원이 휴가를 나오면 장안이 시끄럽다. 아무나 닥치는대로 치고받고 ‘땡깡’을 부려댄다.

 

 특히 ‘편한 군대’로 알려진 카투사(KATUSA, 미군에 배속된 한국군)는 해병대의 밥이다. 한번 잘못 걸렸다간 죽도록 얻어맞고 도망치기 바쁘다. 가장 재수없는 경우는 카투사 대원이 기차 안에서 해병대와 딱 마주치는 것. 어디 도망칠 곳도 없고 그저 얻어맞는 수밖에 없다.   

 

 해병대가 ‘깽판’만 부리는 것은 아니다. 전쟁이 나면 가장 먼저 죽을 각오를 하고 적진에 뛰어드는 것이 해병대다. 또한 평상시 국민들에게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서 해병대는 물불 가리지 않고 소매자락을 걷어부친다. 이는 현역이나 예비역이나 같다. 거리에서 해병대가 만나면 무조건 선배가 후배에게 술을 산다. 그 끈적한 우정은 아마 이 세상 최고일 것이다.             

 

0…지금 한국에선 난데없이 법무부 장관 아들이 카투사 복무시절 여러 특혜를 받았다는 논란으로 시끄럽다. 카투사는 ‘주한미군한국군지원단’에 소속된 군대로 몇년 전만 해도 시험을 치러 들어갔다. 말이 군인이지 미군들과 생활하며 호의호식하고 특히 영어실력을 개발하기 좋은 기회이기 때문에 입대를 앞둔 젊은이들이 매우 선호하는 곳이다. 한때 카투사 시험준비학원까지 있었다.

 

 그런데 법무장관 아들이 카투사로 복무하면서 2차례 병가 후 개인휴가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특혜가 있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또 자대 배치, 동계올림픽 통역병 선발과 관련한 청탁의혹 등에 휩싸였다. 논란의 핵심은 현 법무장관이 집권여당 대표 시절, 아들의 부대 배치를 서울(용산)로 해달라고 했고, 특히 아들이 무릎을 치료한 후 휴가가 끝나도 복귀하지 않고 휴가를 연장하는 과정에서 보좌관을 동원해 압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온갖 제보자가 끼여들고 검찰까지 개입하면서 양상이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국방부는 현행 규정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음에도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고 있다.   

 

 나는 이번 해프닝을 보며 두 가지 생각을 한다. 하나는 이런 일이 해병대 병영에서도 일어날 수 있을까, 또 하나는 이런 일이 과연 온나라를 떠들썩하게 할만한 ‘빅 스캔들’인가. 내 생각에 군기(軍紀)가 엄격한 해병대에선 이런 일이 있을 수 없다고 본다. 전화로 휴가를 연장한다? 이는 일반직장 비슷한 ‘나이롱 군대’에서나 있을 수 있다.    

 

 또 한편으로, 대형 이권(利權) 관련도 아니고 아들의 병가(病暇)연장 부탁 정도라면(사실여부도 불명확하지만 야당과 보수언론의 주장대로 설사 그렇다손 치더라도), 그것도 탈영이 아니라 실제로 무릎수술을 하고 며칠 후에 복귀했다면, 모정(母情)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고 넘어가고 사과를 받아주는 선에서 끝내는 것이 어떨까. 이게 무슨 온나라를 들썩일 일이라고 소모적 정쟁으로 국력을 낭비하는지 한심하다. (사장)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ywlee
ywlee
82398
9183
2020-09-10
가족골프의 행복-점수 높아도 감성지수 최고

 이민사회에서 골프는 단연 공통의 화제일 것이다. 아마 가장 대중적인 한인스포츠가 골프가 아닐까. 아무리 시골 외곽으로 나가도 한인골퍼들을 만난다. 이러다 보니 처음 만나는 사람들도 흔히 "골프 잘 치세요?"란 말이 스스럼없는 인사가 됐다.  

 

 가게를 하는 한인남성들은 대개 오전에 도매상에 들른 후 골프장으로 직행하는 사람이 많다. 푸르고 싱그러운 잔디 위에서 터뜨리는 호쾌한 장타 한방에 이민생활의 온갖 스트레스가 말끔히 날아가 버린다. 골프마저 없다면 무슨 재미로 살까. 그런 면에서 골프는 매우 건전한 스트레스 해소 수단이다.

 

0…나는 한국에서는 골프치는 이들을 경멸하는 편이었다. 국토도 좁은 나라에서 산야(山野)를 마구 훼손하며 건설한 골프장 자체를 환경파괴의 주범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드넓은 캐나다에 오니 지천에 널린 것이 골프장이고 서민들도 큰 부담없이 즐길 수 있어 자연스레 골프채를 잡게 됐다. 만나는 한인마다 화제도 대개 골프 뿐이라서 소외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안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치밀하지 못한 성격 탓인지 나의 골프실력은 좀처럼 늘지를 않았다. 정식으로 레슨을 받은 적도 없다. 그저 친지의 어깨 너머를 기웃거리다 바로 필드로 나갔다. 처음엔 뭐가 뭔지 모른 채 클럽을 휘두르다 스트레스만 받고 오기 일쑤였다.

 

 언젠가 ‘머리를 얹는’ 날, 교회의 행사였는데 여러 사람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나는 그만 헛스윙을 두어번 하다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채 돌아섰던 악몽이 지금도 선하다.

 

 그래서 다음날부터 이를 악물고 드라이브 연습장엘 나가기 시작했다. 점수는 뒷전이고 일단 멀리 날려놓고 보자는 각오였다. 퍼팅이야 순전히 재수요, 점수가 무슨 대수냐며 오로지 멀리 시원하게 장타만 내뿜으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다 보니 드라이브 하나만은 자신이 붙었다. 골프입문 15년이 지난 지금도 점수는 여전히 100대를 오락가락하지만 드라이브만은 자신이 있다. 대학동문회에서 장타상을 탄 적도 있다. 그후 나는 서서히 골프에 빠져들었다. 날씨만 좋으면 뭐 마려운 강아지 마냥 안절부절 못하며 누가 골프 치자고 전화 오기만을 기다렸다.

 

0…그러던 내가 언젠가부터 골프가 시큰둥해지기 시작했다. 가장 큰 이유는 점수가 신통찮아 재미가 없는 것도 그랬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 운동이 시간을 너무 허비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한번 나갔다 하면 대개 하루종일을 할애해야 하니 도무지 다른 일은 할 수가 없었다. 운동이라곤 하지만 카트를 타면 운동도 안되고, 점수가 안 나오면 스트레스만 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하여 나는 과감히 골프채를 창고 속으로 쳐박아버렸다. 골프치는 시간에 파워워킹을 하거나 책을 한 장 더 넘기는데 쓰기 시작했다. 아내와 느긋하게 산책하면서 지나온 날들과 앞으로의 일을 여유있게 생각해볼 시간도 많아졌다. 의미있게 할 일도 참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큰딸이 지난해 결혼을 하고, 또 올해는 뜻하지 않은 코로나 난국이 펼쳐지면서 상황이 변했다. 가족들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스포츠가 공통화두로 떠오른 것이다.

 

 어느날 온가족이 모인 저녁식탁에서 내가 “우리 골프를 시작하면 어떨까?” 했더니 다들 “좋은 생각”이라며 동의를 했다. 특히 사위가 자기 직장에서도 상사가 골프를 매우 즐기니 자기도 해야겠다고 나섰다. 이래서 가족 5명에, 운동감각이 뛰어난 작은딸의 남자친구까지 합세해 우리는 시간만 나면 골프연습장을 찾았고 각자 실력연마에 몰두했다.  

 

0…우리 가족은 올해 수차례 동반골프에 나섰다. 우리 부부와 두 딸, 큰사위 등이 모두 실력이 도토리 키재기에 불과하지만 하나도 스트레스 안 받고 그저 기분좋아 샷을 날리니 그 순간이 너무도 행복하다. 아, 이 시간을 얼마나 꿈꾸어 왔던가. 작은딸은 젊어서 그런지 드라이브샷도 멀리 나가고 아이언도 제법 잘 친다.

 

 우리는 스코어 카드는 그냥 코스상황만 보고 점수기록은 하지도 않는다. 점수가 무슨 대수인가. 골프를 마치고 함께 둘러앉아 먹는 식사는 말 그대로 꿀맛이다. 그래서 우리는 주말이 기다려진다.            

 

 내가 올들어 다른 사람과 골프를 친 것은 두 세번. 그것도 모두 부부동반이다. 아내는 다른 것은 다 똑똑한데 운동신경은 다소 덜 발달한 탓에 보기 민망하게 헛방을 칠 때가 수시로 있다. 하지만 동반자가 허물없는 사이이니 그냥 웃어넘기고 만다.

 

 나는 시간이 나는대로 아내와 함께 9홀짜리 코스를 돈다. 하지만 이래라 저래라 코치를 해봤자 자세만 더 꼬일 것 같아 그냥 하고픈대로 놔두면 부담이 없어서 그런지 곧잘 친다. 그 순간 아내의 볼에 키스를 해주며 격려한다. 그 순간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0…이제 골프 트렌드도 급격히 변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 시대를 겪으면서 가족의 중요성이 커지고 그래서 가족단위로 즐기는 스포츠로 자리잡았다. 사회적 거리두기에도 알맞은 운동이다. 이를 계기로 이젠 골프장도 가족친화적으로 변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특히 골프가 오래 걸리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9홀 코스를 많이 개발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가족골프를 즐기면서 나의 골프실력은 오히려 퇴보하지만 행복지수만은 훨훨 날아가는 기분이다.  (사장)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ywlee
ywlee
82140
9183
2020-09-08
종교는 아편이다-‘공공의 적’이 된 한국 개신교

 

 시골에서 자란 나는 어릴 때 어머니 손을 잡고 동네 근처 절(사찰)에 따라다닌 추억이 있다. 큰 절도 아니고 암자(庵子) 비슷한 정도였는데, 그때 절의 처마 끝에서 은은히 들려오던 풍경(風磬) 소리와 코끝을 스치던 향불 내음이 지금도 아련하다.     

 

 당시에는 대체로 불교를 믿는 집안이 많았고 교회에 나가는 집도 더러 있긴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교회에 나가지 않는 집에서는 교회에 나가는 사람들을 정신이 좀 나간 사람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높았다. 심지어 어느 집에서는 성경책을 들고 전도하러 다니는 사람이 오면 “재수없는 예수쟁이가 온다”며 아예 대문을 걸어 잠그는 경우도 흔했다. 우리집도 예외가  아니었다.    

 

 ‘예수쟁이’를 극도로 싫어하던 동네 어르신들 주장에 따르면, 그들은 말로만 번지레한 소리를 늘어놓을 뿐 실제 행동은 온갖 악행(惡行)을 저지르고 다닌다는 것이다. 특히 목사라는 사람들은 이상한 논리로 현실을 왜곡 부정하고 오로지 ‘천국’에 들어간다는 소리만 하며 신도들의 혼과 재물을 다 빼앗는다는 것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자란 나는 지금도 기독교(개신교)에 대해 아무리 마음의 문을 열려고 해도 잘 안된다. ‘예수’라는 단어 자체가 마음 속에 부정적인 똬리를 틀고 있어 문이 열리질 않는다. 예수만 믿으면 만사가 잘 풀린다는데, 그것은 노력도 않고 기도만 하라는, 지극히 무책임한 말로 밖에는 안 들린다.   

 

 그런데 기독교에 대한 나의 시각은 대학생활을 하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당시 유신정권하에서 수많은 민주인사들이 수난과 핍박을 당할 때 용기있게 나서 군사정권 퇴진과 민주쟁취를 외친 사람들 가운데 한 부류가 바로 종교인, 특히 가톨릭계 인사들이 많았던 것이다. 내가 존경하는 분들이 그처럼 소신있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나는 신앙의 위대한 힘을 발견했다. 

 

 이런 연유로 나는 지금도 사회적 약자와 그들이 처한 모순된 현실을 외면하는 종교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해괴망측한 정치적 논리로 대중들을 선동하는 사이비 예수쟁이를 경멸한다. 성경 어디에도 없고 예수 그리스도도 원치 않는 그릇된 행동을 거침없이 자행하는 이들이 예수의 이름을 더럽히고 있다. 불행히도 한국의 적지 않은 교회들이 이런 식으로 흘러가고 있다.                       

 

0…독일의 역사철학자 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는 ‘종교는 인민의 아편(阿片)’이라고 질타했다(Religion is the opium of the people). “종교적 고통은 현실의 고통의 표현이자, 현실의 고통에 대한 저항이다. 종교는 억압된 피조물의 탄식이며, 심장 없는 세상의 심장이고, 영혼 없는 현실의 영혼이다. 이것은 인민의 아편이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인민에게 있어 환각적(幻覺的) 행복인 종교를 버리라는 것은 곧 현실의 행복을 지향(志向)하라는 것이다. 현실에 대한 환각을 버리라는 요구는 환각을 필요로 하는 현실을 포기하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종교에 대한 비판은 종교라는 후광을 업은 속세에 대한 맹아(萌芽-새로 튼 싹)적 비판이다. 억압과 착취로 인해 피폐해진 삶을 살면서도 현실 도피로 천국을 꿈꾸며 살아가는 이들을 일깨우기 위해 한 말이다.   

 

 세상엔 아무리 노력해도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오직 기댈 곳이라곤 환각적 사이비 종교 밖에 없을 터이고 이 틈새를 집요하게 비집고 들어오는 세력이 상식적으로 말도 안되는 행태를 자행하고 있다. 코로나 시대를 맞아 독버섯처럼 창궐하는 사이비 기독교도 그런 부류다.   

 

 마르크스의 말대로, 희망 없고 기댈 곳 없을 때 잠시 고통을 잊기 위해 아편에 손을 대지만 거기에 빠져들수록 헤어 나오기가 어렵다. “코로나에 걸려 죽어도 좋다”고 외칠 수밖에 없다. “하느님도 나한테 까불면 죽어”라고 막 나가게 된다. 그렇다면 한국은 국민들이 아편에 기댈 수밖에 없을만큼 희망이 없는 나라인가.                

 

0…개신교 지도자란 사람이 “종교의 자유는 목숨과 바꿀 수 없다. 대책 없이 교회 문을 닫고 예배를 취소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예배를 함부로 제한하지 말라”는 광고도 실렸다. 이에 일반 국민은 한목소리로 성토를 쏟아내고 있다. “목숨을 건다는 것은 내 목숨이 위험할 때 하는 말이지 내가 예배를 드림으로써 남의 목숨이 위험해질 때 하는 말이 아니다”라고 비판한다.

 

 대면예배를 강행하는 교회들은 ‘성경의 가르침’ 운운하지만 실제로 성경 어디에도 그런 근거는 없다. 오히려 모여서 예배하는 것이 나와 남을 죽일 수도 있는 상황이기에 ‘살인하지 말라’는 십계명을 어길 수 있는 것이다.

 

 솔직히, 교회가 대면예배에 목숨을 거는 것은 헌금수입 때문이다. 어느 목사가 “교회를 영업장이나 사업장처럼 취급하지 말라”고 하자 다른 개신교 지도자는 “교회는 사업가보다 더 돈을 밝힌다. 장사 감각과 영업 감각도 가장 뛰어나고, 마케팅에 목숨걸듯 교회운영을 하면서 적반하장”이라고 비판했다. 한국의 상당수 교회는 이미 비즈니스화된지 오래다.

 

 한국의 개신교는 왜 ‘개독’과 ‘먹사라는 오명을 뒤집어 썼을까? 수 많은 한국의 예수쟁이들과 일부 비뚤어진 교회 지도자들이 올바로 예수를 믿지 못했거나 마치 예수를 믿지 않는 듯 행동한 까닭이다. 그들의 그릇된 신념으로 인해 많은 국민이 입는 피해가 너무 크다. 부디 회개하기 바란다.   (사장)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ywlee
ywlee
81875
9183
2020-09-01
의사들, 지금이 집단행동 할 땐가?

 


 

 싱거운 유머 하나. 의사, 건축가, 정치가 등 세 사람이 모여 각자 누구의 직업이 제일 오래 되었는지  자랑을 했다. 먼저 의사는, 하느님이 아담의 갈비뼈로 이브를 만든 것은 바로 외과수술이니 의사가 가장 오래된 직업이라고 했다. 이에 건축가는 하느님이 혼돈상태에서 세상을 건설했으니 건축가가 가장 오래됐다고 했다. 그러자 정치인이 반문했다. “그럼 애당초 세상을 혼돈 속에 빠트린 사람이 누구지요?”

 

 아마도 의사야말로 인류창조와 더불어 가장 오래된 직업 중 하나가 아닐까. 그만큼 사람에게 꼭 필요한 직업도 의사일 것이다. 인간이 가장 절실한 상태에서 찾는 사람이 바로 의사이기에 그 사명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의사는 그래서 세상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직업인이자 선망의 직종이기도 하다.   

 

 그런데 세상이 변해가면서 언젠가부터 의사는 인간의 병을 고치고 생명을 지켜주는 파수꾼 역할보다는 돈을 많이 버는 직종이라는 인식이 더 강해지기 시작했다. 의사=고소득자라는 등식으로 굳어지게 된 것이다. 한편 의사들의 파워가 세지면서 권력집단으로 변질도 됐다.  

 

0…최근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의사들의 집단행동(파업)을 보면서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다. 정부는 의사 부족과 수도권·지역간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앞으로 10년 간 4천 명의 의사 인력을 추가로 양성하겠다는 방안을 발표했는데, 이에 대해 의사협회가 거세게 반발하며 총파업에 나선 것이다.

 

 올해 의대 정원(3,058명)은 지난 2006년 이래 동결돼있다. 정부는 절대적인 의사 숫자가 부족한데다 이들이 서울 등 수도권에 집중돼 있고, 코로나 사태를 거치며 역학조사관 등 특수분야 인력 확충의 필요성이 커져 정원을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의 인구 1천명 당 의사 수는 2.4명으로 OECD 평균 3.4명보다 많은 차이가 난다. 지역별로도  서울이 3.1명이지만, 경북 1.4명, 세종 0.9명 등 격차가 크다. 또 전국을 70개 진료권으로 나눠 의료인력 필요 현황을 추계해보니 적어도 3,258명의 의사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의협은 "OECD 통계만 보면 선진국이라는 일본이나 미국, 프랑스도 인구 1천명 당 의사 수가 평균치보다 떨어진다"며 "한국에서 환자가 원하는데 의사를 못 만나는 경우가 있느냐"고 반문한다. 선진국과 비교해도 한국은 언제든 병원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의료 접근성이 우수하다는 주장이다.

 

 의협은 또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해서 지역간 불균형이 해소되거나 특정과목 기피 현상이 사라지지도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의협은 특히 의사 숫자가 늘어난다면 의료의 질이 떨어질 것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군색한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속으로는 의사들이 많아지면 환자유치 경쟁이 심해지고 자기들의 수입도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는 이유가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대한병원협회도 의대 정원을 늘릴 경우 2065년에야 의사 수급이 적정해질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는 돈이 되는 성형외과 등에는 의사들이 집중적으로 몰리는 반면, 감염내과, 소아외과, 중증외상, 역학조사관 등 특수분야 의사는 절대 부족하고, 기초의학, 제약, 바이오 등의 전문 의과학자도 턱없이 적다. 지역도 도시만 선호하고 농어촌지역은 외면하고 있다. 이런 실태는 코로나를 계기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래서 적극적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다.

 

0…의사들의 집단행동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전국의 시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58.2%가 ‘의대 정원 확대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국민들은 소수의 의사들이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업무를 독점해서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려 한다고 보고 있다.

 

 걸핏하면 거리로 나서는 의사들. 시민단체들은 정부가 이들의 집단이기주의를 방치하지 말고 업무개시 명령을 내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보건의료단체 등은 정부 안에서 한발 더 나아갈 것을 주문한다. 의사 수를 늘리는 것은 물론 ‘공공의료’를 위해 일할 의사를 길러내고 이를 뒷받침할 교육·의료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이 부러워하는 3사(의사, 판.검사, 변호사). 갈수록 이들이 파워그룹으로 성장하면서 집단 이기주의로 흐르고 있다. 법조계가 국민들로부터 불신을 받은 지는 이미 오래 되었다. 그런데 생명을 다루는 의료계마저 이렇게 되면 국민들이 기댈 곳은 없다.

 

 코로나 위기에서 헌신적으로 일하는 의료진이 있는 반면, 아픈 환자들을 외면하고 길거리로 나선 의사들은 무언가. 이는 인간의 생명을 담보로 자기네 이익을 실현하겠다는 협박에 다름 아니다. 진료는 보아가면서 요구를 해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0…의사에 대한 일반인들의 기대치는 매우 높다. 이런 사람들이 자신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선다면 과연 좋은 소리를 들을까. 아프리카에서 헌신적인 인술(仁術)을 펼진 슈바이처 박사나 이태석 신부까지는 아니더라도 환자를 외면한 채 거리로 뛰쳐나와 목청을 돋구는 행위는 창피하지 않은지. 아무런들 사람의 생명보다 자신들의 이익이 더 중요할까.            

 

 “지금의 의사는 오직 사람의 병만 다스리고 마음은 고칠 줄 모르니 이는 근본을 버리고 말단만 쫓는 격이며, 그 근원은 캐지 않고 말류만 손질하는 것이다.” 조선의 명의(名醫) 허준 선생은 의사가 인간에 대한 사랑 없이 겉만 좆는 세태를 이렇게 질타했다. 오늘날 의사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사장)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ywlee
ywlee
81594
9183
2020-08-26
“넌 왜 그리 무능하냐?”-캐나다 총독의 갑질 논란



▲직원들에 대한 폭언 등 갑질행태로 물의를 빚은 줄리 파예트 연방 총독  


 영연방 국가(Commonwealth of Nations)의 일원인 캐나다의 국가 원수는 영국 국왕으로, 현재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다. 그런데 국가 원수가 멀리 떨어져 있는 관계로 ‘대리인’을 임명해 국가 원수로서의 의전활동을 대신하도록 했는데 그 자리가 바로 연방 총독이다.

 

 총독의 공식 직함은 ‘His(Her) Excellency, The Right Honourable Governor General of Canada’ 혹은 ‘The Governor General and Commander-in-Chief in and over Canada’라고 쓴다. 영국 왕은 온타리오 등 캐나다의 각 주(10개) 총독도 임명한다. 주 총독은 ‘Lieutenant Governor of Ontario’ 식으로 쓴다.

 

 연방 총독은 연방총리(Prime Minister)의 조언(advice)에 따라 영국 왕이 임명하며 정해진 임기는 없으나 통상 5년이고 역시 총리의 조언에 따라 영국 왕이 중임시킬 수 있다. 그런데 임기란 게 우습다. ‘At Her Majesty's pleasure’, 즉 ‘폐하의 기쁨에 부응하여’ 임기가 부여된다. 시쳇말로 고무줄 임기다.

 

0…영국 여왕과 직접 교신하는 총독. 그래서 그런지 따라다니는 모든 용어에 권위주의가 물씬 풍긴다. 캐나다 총독의 공식 연봉은 29만여 달러(정확히는 28만8,900 달러). 여기에 화려한 관저(官邸)를 비롯해 수발 드는 직원 등 많은 인력이 따라 붙는다.

 

 총독이 사는 관저는 오타와에 위치한 리도 홀(Rideau Hall)이며, 전통적으로 매년 몇 주 정도를 퀘벡에 있는 시타델(Citadel, 성채)에서 보내기도 한다. 총독이란 자리는 한마디로 국민들이 낸 세금을 써가며 유유자적한 상류층 생활을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캐나다 총독은 종전에는 영어권과 불어권 출신이 번갈아 맡았는데, 근자에는 대개 영-불어 이중언어자들이 임명된다. 제29대 현 총독은 몬트리올 출신의 줄리 파예트(Julie Payette, 56)로 2017년 10월 2일 취임했다. 전임자는 데이빗 존스턴(전 워털루대 총장).

 

0…연방 총독이 하는 일은 무얼까. 영국 여왕을 대신하는 명예직으로 형식적 의전활동이 주업무다. 캐나다를 방문하는 외국 요인들을 위해 연회를 베풀고, 신임 외국대사로부터 신임장을 제정받는다. 총리실에서 써준 연방의회 개원사(Throne Speech)를 낭독하고 국가의 주요 공로자들에게 훈장을 수여하기도 한다.

 

 또한 의회에서 통과된 법안을 영국 왕실에 전해 승인을 받아주며, 위의 공식직함에서 보듯 형식적이나마 캐나다군의 총사령관 역할도 한다. 총리의 요청에 따라 정부 구성과 의회해산 등의 명목적 권한도 갖고 있다.

 

 쉽게 말해 캐나다 총독은 실제로 머리를 쓰거나 몸을 움직여서 할 일은 거의 없고, 사전에 짜여진 각본에 따라 그냥 실수없이 의전행사만 우아하게 잘 치러내면 된다. 이런 자리이기에 권위주의가 붙을 이유가 없다.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명목상 왕이므로 얌전하게만 있으면 된다.

 

 그런데, 50대 중반의 현 여성 총독이 자신의 주제를 모르고 경솔하게 처신하다 국민들의 호된 비판 여론에 직면해 있다. 자기 사무실 직원들을 하인 다루듯 함부로 대하고 예산을 낭비해 물의를 빚고 있는 것.    

 

0…2017년 10월 취임한 파예트 총독은 몬트리올에서 출생해 그동안 엔지니어, 과학 방송인을 거쳐 한때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우주비행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명예박사학위만 27개에 달하며, 민간 최대 명예 훈장인 Order of Canada도 받았다. 이에 저스틴 트뤼도 총리는 3년 전 그녀를 주저없이 총독에 발탁했다. 그런데 이처럼 ‘화려한 과거'를 지닌 파예트가 이중인격자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녀의 갑질에 시달리다 사직한 직원들에 따르면, 파예트는 리도 홀 직원들에게 걸핏하면 버럭 소리를 지르고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는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직원들을 향해 “너는 왜 그렇게 게으르냐” 또는 “무능하기 짝이 없군” 이라는 모욕적인 발언을 수시로 내뱉었다. 한술 더 떠 그녀의 비서까지 합세해 갑질에 동참했다. 그 비서 역시 직원들을 왕따시키고 자신의 하인 부리듯 다뤘다.

 

 그런가 하면 파예트는 자신의 사생활 보호시설에 무려 25만 달러나 지출해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 관저를 개보수하면서 총독전용계단 디자인에 14만 달러를 쓰고, 집무실에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도록 게이트와 여러 개의 문을 설치하는데 11만7,500달러를 지출했다. 더욱 기가 찬 것은  총독의 고양이 전용 출입구 설치도 공사계획에 포함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파예트가 논란에 휩싸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1년 플로리다에서 차를 몰다 (실수이긴 하지만) 보행자를 치어 숨지게 한 적이 있는가 하면, 그 몇 개월 후엔 남편을 폭행한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다. 이 여자의 전력이 드러나면서 트뤼도 총리의 총독 지명 과정과 검증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0…총독의 갑질논란으로 여론이 악화되자 총리실 산하 추밀원(Privy Council Office)이 조사에 나섰으나 이 여자를 자리에서 쫓아낼 가능성은 별로 없다. 총독 임명이나 해임 권한은 영국 여왕에게만 있는데, 왕실은 이 문제에 개입할 의사가 별로 없다. 구태여 남의 일에 간섭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요즘 시대에 여왕이니 총독이니 하는 용어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다.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고액의 연봉을 받아가며 하는 일도 없이 권위나 부리는 총독 같은 자리는 어서 빨리 폐지해야 옳을 것이다. 연방상원의원도 그중 하나다.  (사장)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더보기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