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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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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1
숫자의 두 얼굴-공포감 부추기는 코로나 집계

 
  

▲코로나바이러스19 세계 각국별 발생 현황표  

 

 


 “일본 크루즈선 코로나19 감염 88명 또 확인…총 542명, 승선자 14.6% 감염…미검자 1,307명 중 추가환자 발생 가능성…” “중국은 17일 하루에만 1,800여명이 신규 확진 판정. 누적 환자 7만2,400명. 어제 하루 숨진 사람만 98명, 지금까지 모두 1,800명이 넘게 사망…”


 요즘 국내외에서 코로나 19 와 관련, 연일 새로운 숫자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어느 나라에서 몇 명이 새로 확진되고 몇 명이 사망했으며 00번 환자의 동선(動線)이 아리송하다는 등. 개중에는 완치 판정을 받아 집으로 돌아갔다는 반가운 소식도 있긴 하다. 


 하지만 코로나 기세가 수그러들 기미가 보여도 당국에서는 무척 조심스럽게 반응하고 있다. 자칫 낙관적인 발표를 했다간 너무 안일하게 대처한다는 비난을 살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호들갑을 떨더라도 철저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정부당국으로서는 나은 선택일 것이다.      


0…중국의 예에서 보듯, 작금의 코로나 사태는 국가 전체의 공포 분위기는 물론, 대응방식에 문제가 있는 정권의 뿌리까지 뒤흔들고 있다. 이번 사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무능한 정부 소리를 듣기 딱 알맞으며 정권퇴진 위기에까지 몰릴 상황이다.  


 그런데 숫자란 것이 그렇다. 다분히 양면적 성격을 띠고 있다. 숫자는 우선 신뢰를 상징한다. 복잡다단한 상황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보다 명확한 숫자를 들이대면 대번에 설득력을 갖게 된다. 가령 전쟁의 참상을 알릴 때 1, 2차 세계대전과 6.25 한국전쟁으로 몆 명이 사망했다고 하면 금방 참혹함을 이해하게 된다.  


 반면에 숫자는 어떤 상황을 강조하거나 부풀릴 때 이용되기도 한다. 이는 흔히 정치 권력자들이 사용하는 수법이다. 현 정부가 집권하고 나서 이렇게 달라졌다고 숫자를 제시하면 국민들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한편, 숫자는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특히 나쁜 상황에서 숫자가 늘어나는 경우 사람들은 숫자만 보아도 겁에 질리게 된다. 지금의 코로나19 사태 현실이 그렇다. 다소 진정기미가 보이는 것도 같지만 아직은 계속해서 희생자 숫자가 늘어가고 있다.            

       
0…그런데 코로나19 희생자 숫자를 연일 누적해 발표하는 것이 과연 사람들에게 어떤 심리적 효과를 주는지 생각하면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비유가 옳은지를 떠나, 전 세계에서는 하루에도 수만 명이 자살이나 교통사고로 죽는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한국은 2018년 기준 하루에 36명, 1년에 1만 3천여 명이 자살로 죽었다. 중국에서는 교통사고로  하루 평균 300여 명, 매년 10만 명 이상이 죽는다. 


 의료 최선진국이라는 미국에서는 2년 전 독감으로 인해 무려 7만 명이 사망했다. 이번 겨울에만 사망자가 1만 4천명을 돌파했다. 이에 뉴욕대학의 의학박사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문제가 아니라 미국 독감이 문제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미국에서는 이제 11번째 확진자가 나온 코로나19에 대한 공포가 독감에 대한 공포를 압도하고 있다.


 이런 예는 부지기수다. 사람들이 크게 주목하지 않는 질병으로 죽어가는 숫자에 비하면 코로나는 조족지혈(鳥足之血)에 불과하다. 아프리카에서 풍토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만 매일 수백 명에 달한다. 하지만 매스컴과 사람들은 그런 것엔 관심이 없다. 


 지금 전 세계 언론에서 연일 집계되고 있는 코로나19 희생자 현황 숫자는 이제 자중할 필요가 있다. 사태에 차분하게 대응하면서 백신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전염병 자체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사회적 공포 분위기다. 질병 환자는 가시적(可視的) 숫자이지만 공포에 짓눌려 떠는 사람은 그보다 수백 수천 배 더 많으며, 그로 인한 사회적 기회비용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0…우리는 차에 치여 죽을까 두려워하면서 거리를 다니지는 않는다. 이번 겨울 미국에서 독감으로 인한 사망자가 거의 2만 명에 달한다고 해서 미국인의 입국을 금지하자는 이야기를 하지도 않는다. 만약 이번 코로나 사태가 미국이나 일본에서 발생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래도 전 세계가 이렇게 한 지역을 통째로 봉쇄하고 감옥처럼 갇힌 사람들의 안위(安危) 따위는 염두에도 두지 않는 잔인성을 발휘했을까.  


 자고로 숫자는 정확성과 신뢰를 주기 위한 자료로서 유효한 수단인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이 자칫 잘못 남용되면 공포의 무기로 사용되기도 한다. 지금의 현실은 다분히 그런 측면이 있다. 날마다 누적돼가는 희생자 집계를 보면서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움츠러들기 마련이고 사람을 만나거나 외출하는 것을 꺼리며 이는 결과적으로 모든 사회, 경제활동을 위축시키고 있다.    

 
 그나마 우리가 사는 캐나다는 이번 사태에 비교적 차분히 대처하고 있다. 2003년 사스(SARS) 폭풍의 혹독한 대가를 치른 탓인지 정부도 대응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0…구한말 조선에서 헌신적인 의료선교를 펼친 토론토 출신의 윌리엄 제임스 홀과 아들 셔우드 홀 일가(一家). 그들은 당시 무서운 전염병으로 알려진 폐결핵 환자들을 자신의 몸처럼 치료하면서도 사회적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진 않았다. 이들이야말로 현재 코로나에 대처하고 있는 각국 관계자들이 본받아야 할 표상(表象)이라 하겠다.  


 프랑스의 법학자 알랭 쉬피오(70) 교수가 지적했듯이 이제는 코로나 사태도 ‘숫자놀음'에서 해방됐으면 한다.  (사장)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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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6
‘기생충’이 남긴것- 욕망과 이기심의 샘터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영화 ‘기생충’에서 기우(최우식 분)가 가정교사 면접을 보기 위해 찾아간 저택

 

 

 영화 한 편의 위력이 이처럼 대단한지 새삼 돌아보게 된다. 백인들만의 잔치라는 비판을 받아온 할리우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사상 처음으로 비영어권인 한국영화가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등 주요 4개 부문을 휩쓸었다. 이는 봉준호 감독을 비롯한 출연 배우, 스탭들의 개인적인 영광은 물론, 한국인 전체의 커다란 영예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전 세계가 공포와 실의에 잠겨있는 시점에서 국제 영화계의 비주류인 한국영화가 당당히 최고 위치에 오른 것은 풀이 죽어 있는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아름다운 꿈을 선사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하겠다. 만약 올해도 미국 영화가 오스카상을 석권했다면 이렇게 큰 반향은 없었을 지도 모른다. 


 자금 동원 면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미국 등 세계 영화업계의 치열한 로비를 물리치고 당당히 최정상에 올라선 한국영화 기생충(Parasite). 


0…지난해와 올해 초에 걸쳐 권위있는 국제 영화상은 모조리 휩쓸며 세계 최고의 화제작으로 떠오른 ‘기생충’은 명예와 흥행 모두 대성공을 거두면서 그 인기 비결이 무엇인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많은 이들이 기생충을 보고 나서 어쩌면 평범한 코미디 같은 영화가 이렇게 큰 상을 잇달아 수상한 배경이 무언지 모르겠다는 반응들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봉준호 감독의 일곱 번째 장편 영화 '기생충'은 양극화와 빈부격차라는 사회 현상을 블랙 코미디 방식으로 전달한다. 가난한 가족과 부유한 가족, 두 가족의 미시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하지만, 한국은 물론 전 세계의 공통 담론인 빈부격차 문제를 아우른다. 


 전 가족이 모두 백수인 기택(송강호 분)네 장남 기우(최우식)는 친구가 소개해준 고액과외 면접을 위해 박 사장(이선균)네 집에 발을 들인다. 이후 기우를 시작으로 딸, 아버지 기택, 아내까지 차례로 박 사장네 집 입성에 성공한다.


 박 사장네 가족은 똑똑한 척하지만 실제로는 바보 같다. 치밀하지도 않은 기택네 계략에 쉽게 속아 넘어간다. 박 사장의 아내 연교(조여정)는 영어를 섞어 써가며 우아한 척하지만 사실은 단순하고 순진하기 짝없다. 기택네 가족이 완벽하게 박 사장네 집 기생(寄生)에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생각하지 못한 사건들이 발생한다.


0…영화의 주제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한국을 넘어 전 세계적 문제로 떠오른 계층간 빈부격차라는데 이의가 없다. 계층간 격차야말로 지구촌 사람들의 공통 화두가 된지 오래다. 이에 봉준호 감독은 "여러 나라 사람들이 와서 다 자국 이야기라고 했다"며 "가난한 자와 부자의 이야기니까 어느 나라든지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구체적으로 들으니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기생충’은 자칫 묵직한 부담감으로 다가올 수 있는 주제를 관객들로 하여금 마음의 부담 없이 그저 웃으며 즐기고 각자 나름의 결말을 생각하게 해준 것이 특징이다. 과외교사 기우를 보면서 가난한 시골 대학생이었던 나도 한때 부잣집 가정교사를 지낸 시절이 떠올라 아련한 향수를 느끼기도 했다. 그때 가졌던 서울 부잣집들에 대한 이질감 같은 것은 지금도 생생하다. 


 ‘기생충’은 반지하방에서 네 식구가 밑바닥 삶을 사는 극빈가정과 호화저택에서 여유롭게 사는 기업체 사장이라는 극단에 놓인 두 집을 설정했는데, 특이점은 선과 악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통상 ‘부자는 억압하는 자, 가난한 자는 핍박받는 자’라는 이분법적 구도가 아니라, 오히려 부자인 박 사장네는 순진하고 착해서 이용을 당하고, 가난한 기택네는 이들을 속이는 것으로 나온다. 즉, 선한 자와 악한 자가 뒤섞이는 구도로 관객들도 어느 한 편에만 감정몰입을 하지 않게 된다.


0…가난한 기택이네는 부잣집에 빌붙어 살고, 또 박 사장네는 다른 이들의 도움 없이는 집안살림이  작동되지 않으니 서로가 필요한 존재들이다. 즉 인간은 서로가 필요에 의해 상대를 이용하고 그에 빌붙어 살아가는 기생충 같은 존재들이라는 인식을 심어준다. 정작 문제는 이기심과 욕망이 우리 안의 기생충이며 타인은 배척 아닌 공생하는 존재인 것이다. 


 기택네가 박 사장네에 기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사도우미가 없으면 집안이 엉망이 되고 스스로 살아갈 능력이 없는 박 사장네를 생각하면, 도리어 누가 의존하는 기생충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결국 인간사회는 필연적으로 상호의존적이며, 모두가 서로 빌붙어 사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어차피 한데 섞여 살아갈 양이면 타인을 기생충으로 보기 보다 공생하고 상생(相生)해야 할 존재로 봐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진짜 기생충은 타자(他者)가 아니라 도리어 우리 안에 있는 이기심과 욕망일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권력과 재력에 빌붙어 호가호위(狐假虎威)하며 민초들의 고혈을 빨아먹고 있는 진짜 기생충 같은 인간들만 없다면 말이다.   


0…‘기생충’은 기억에 남을 대사를 많이 남겼다. “이거 정말 상징적이다”, “가장 완벽한 계획은 무계획이다”, “냄새가 선을 넘는다”, “반지하 냄새야. 이사 가야 없어져", “아버지는 계단만 올라오시면 돼요.", "경찰 같지 않은 경찰, 의사 같지 않은 의사”, "착해서 돈이 많은 게 아니라, 돈이 많으니까 착한거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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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1
중국의 눈물-따스한 인류애로 보듬어야

 
 

▲도시 봉쇄령이 내려진 우한(武漢)시에서 한 어머니가 백혈병에 걸린 딸이 검문소를 통과해 병원으로 갈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질병이 가져오는 비참함과 고통을 볼 때 페스트에 대해 체념한다는 것은 미친 사람이거나 눈먼 사람이거나 비겁한 사람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알베르 카뮈의 장편소설 ‘페스트’(La Peste, 1947)에서는 중세에나 횡행했고 근대에는 사라진 줄 알았던 역병(疫病)이 20세기 한 도시를 덮친 상황과 그에 대응하는 인간 군상(群像)들의 처절한 모습을 세심하게 그려냈다.    


 북아프리카 알제리의 한 도시에 치명적 전염병인 페스트가 발생하자 주인공인 의사(뤼)는 도시 곳곳을 돌며 환자들을 치유하는데 헌신의 노력을 다한다. 여기엔 친구(타르)의 협력이 큰힘이 됐다. 처음엔 비협조적이었던 (파느르) 신부와 (신문기자) 랑베르도 뤼의 인간적인 행동에 끌려 점차 구호활동에 참가하게 된다. 마침내 페스트가 종식하는 날도 가까운 듯했다.


 그러나 기민하게 구호활동의 기둥이 되어왔던 타르가 도시봉쇄 해제의 날을 기다리지 못하고 역병에 걸린다. 뤼는 병마와 싸운 사람들의 기록을 남기기로 결심한다. 페스트균은 멸망하지 않고 항상 어딘가에서 인간의 행복을 위협하고 있음을 감지하면서… 


 그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신의 도움 없이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는가?”


0…소설은 페스트 창궐과 떼죽음이라는 극한상황에서 나타나는 ‘비인간성’에 대한 집단적 반항과 인간의 연대성을 역설한다. 병의 재앙에 대한 사람들의 대응은 각양각색이다. 의사인 뤼는 묵묵히 직업상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전직 정치활동가 타루는 민간구호단을 조직해 뤼를 돕는다. 취재하러 왔다 도시에 갇힌 신문기자 랑베르는 연인을 보고 싶다는 일념에 도시탈출에 골몰한다.


 의료진과 구호단의 사투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사망자 수가 급격하게 늘면서 인간에 대한 마지막 예의라고 할 장례절차가 점점 간단해지더니 급기야는 크게 판 구덩이에 ‘벌거벗고 약간씩 뒤틀린 시신들’을 쏟아붓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이에 뤼는 타루에게 페스트와의 전쟁은 끊임없는 패배라고 고백한다. 


 하지만 이같은 패배에도 불구하고 역병 종식을 위한 투쟁은 계속된다. 카뮈는 소설에서 신문기자 랑베르를 통해 사랑에 대한 신뢰를 피력한다. 탈출을 모색하는 랑베르는 뤼와 타루가 아무 비난도 하지 않는데 그들을 계속 의식한다. 그는 “나는 영웅주의를 믿지 않아요. 내 관심은 오로지 사랑을 위해 살고 죽는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마침내 탈출할 수 있게 된 날 랑베르는 도시에 남아 구호단 일을 하기로 결심한다. 영웅주의로 돌아선 것이 아니라 의료진과 시민들에 대한 애정에서였다. 


0…지금 카뮈의 ‘페스트’가 새삼 회자(膾炙)되고 있다. 작품의 전개 내용이 오늘의 코로나 바이러스 대처상황과 아주 흡사한 탓이다. 그러나 카뮈의 페스트는 결국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소설 속에서 페스트라는 역병을 극복한 힘은 바로 극심한 고통을 겪으면서 돈독해진 공동체의 연대였던 것이다. 


 예로부터 역병이 돌면 민심은 흉흉해지고 인간의 적나라한 본성이 나타난다. 누가 어찌됐든 나만은 꼭 살아남겠다는 생각으로 남의 고통이나 절박한 상황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역사상 수천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전염병이 무수히 있었지만, 그에 비하면 의학이 고도로 발달한 지금의 코로나는 사람들끼리 서로 협력만 잘 하면 (단기간에) 극복할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그럼에도 전 세계가 패닉상태다. 과거엔 질병 자체가 무서웠지만 지금은 한술 더 떠 인간세계도 두려움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함께 중국인, 나아가 아시아인 전반에 대한 인종차별이라는 반인륜적 상황으로 번지고 있다. ‘지저분한 중국인’, ‘박쥐같은 야생동물을 잡아먹는 야만인’, ‘우리 모두를 감염시키려 드는 너희들은 우리가 환영하지 않는다’ 등 혐오와 경멸로 가득찬 말들이 거침없이 튀어나오고 있다. 


 아시아인이 운영하는 가게들은 손님이 뚝 끊겨 텅텅 비고 아시아 학생들은 학교에서 기침만 해도 친구들로부터 눈총을 받는 상황까지 왔다.


 서구인들 눈에는 중국인이나 한국인, 일본인, 동남아시아 사람이 다 비슷하게 보이기 때문에 우리 한국인도 이같은 혐오대상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다. 화살은 한국인에게도 날아오고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프랑스의 한 지역신문엔 ‘황색 경계령’(Yellow Alert)이라는 제목까지 내걸렸다. 이민자 천국으로 통하는 캐나다도 예외가 아니다. 


0…현재 확산 중인 전염병이 중국 우한(武漢)에서 발병하고 사망자와 감염자 대부분이 중국에서 나온 건 맞다. 중국에서 전 세계로 퍼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원인은 신종 코로나 라는  바이러스이지 중국인이나 아시아인 같은 인종이 아니다. 


 중국은 코로나바이러스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국가로 현재 가장 치열하게 이 병원체와 싸우고 있다. 전염병의 확산을 막으려면 그런 중국을 돕는 게 맞다. 


 전염병은 인류의 재해다. 전염병 대응에는 국가나 민족 간의 감정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그런 것은 다함께 힘을 합쳐 전염병을 물리친 다음에나 따질 일이다. 


 우리는 가까이는 2003년 사스 사태와 2015년 메르스 사태를 슬기롭게 극복한 바 있다. 이번 코로나 또한 머지 않아 잡힐 것이다. 지금 가장 무서운 적은 바이러스보다도 어쩌면 인간에 대한 불신과 혐오, 차별이 아닐까. 바이러스는 정복하면 곧바로 치유될 수 있지만 인간에 대한 불신은 쉽사리 회복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함부로 퍼뜨리는 헛소문 한마디가 바이러스보다 더 위험하다. 행여 우리부터라도 말조심해야겠다.(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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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04
전염병의 흑역사 -되풀이되는 인류와의 전쟁

 


<역사 속의 대형 전염병들>


165~180년 : 로마제국 천연두 유행, 500만명 사망
541~750년 : 비잔틴제국 선(線)페스트 대유행
14세기 : 선페스트(흑사병) 대유행, 유럽 인구 3분의 1 인 7,500만명 사망
1618~1648년 : ‘30년 전쟁’ 중 독일군 선페스트, 티푸스로 800만명 사망
1665년 : 런던 대역병으로 영국에서 10만명 사망
1812년 : 나폴레옹군 러시아 공격 중 티푸스로 수십만 명 사망
1816~1826년 : 아시아 대역병(콜레라)으로 인도•중국 등지에서 1,500만명 사망
1852~1860년 : 중국, 일본, 필리핀, 한국, 중동 등 2차 아시아 대역병
1881~1896년 : 유럽•러시아 콜레라로 80만명 사망
1865~1917년 : 3차 아시아 대역병으로 200만명 사망
1889~1890년 : 중앙아시아에서 시작된 아시아 독감으로 100만명 사망
1899~1923년 : 러시아 콜레라 유행, 50만명 사망
1902~1904년 : 4차 아시아 대역병, 인도•필리핀 100만명 사망
1918~1922년 : 러시아 티푸스 대유행, 300만명 사망
1918~1919년 : 스페인 독감으로 2000만~5000만명 사망
1957~1958년 : ‘아시아 독감’으로 세계에서 200만명 사망
1968~1969년 : ‘홍콩 독감’으로 세계에서 100만명 사망
2003년 : 사스(SARS)로 세계에서 810명 사망(토론토 44명)


 
 인류는 고대문명 초창기부터 전염병과 기나긴 전쟁을 벌여왔다. 엄청난 사람을 죽이며 급속도로 퍼져나가는 전염병은 사회구조 자체를 근본적으로 뒤흔들기까지 했다. 과거 여러 문명을 강타한 전염병이 오늘날 재차 닥친다면 지구의 종말이 온 것처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의학용어로 원충•진균•세균•바이러스 등의 병원체가 인간이나 동물에 침입해 증식하는 것을 감염이라고 하며, 전염병은 감염증 중에서도 전염력이 강해 소수의 병원체로도 쉽게 감염되는 질병을 말한다. 그 중에도 바이러스는 인류가 가축을 키우기 시작한 이래 종종 인간과 동물 사이를 오가며 인류의 면역력을 시험에 빠뜨리곤 했다. 


 그리스의 도시국가 아테네에서는 기원전 430년부터 4년간 티푸스가 유행해 인구의 4분의 1이 숨졌다. 이에 앞서 기원전 412년 그리스 의사 히포크라테스는 오늘날 ‘인플루엔자’로 알려진 병의 증상을 처음으로 기록에 남겼다. 유럽에는 1580년 인플루엔자가 대유행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의사들은 이 전염병이 10~30년의 주기를 갖고 유행한다는 관찰 결과를 남기기도 했다.


0…한 지역에 국한하지 않은 ‘국제화된 전염병’의 첫 사례는 서기 165~180년 로마제국의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황제 시절 유행한 전염병으로, 근동지역(시리아•레바논•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 파병됐던 로마 군인들이 병에 걸려 귀국하면서 이탈리아 반도 전역으로 퍼졌다. ‘안토니우스 역병’이라 불리는 이 병으로 500만 명 이상이 숨졌다. 


 541~750년 비잔틴 제국에서 유행한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은 14세기 흑사병 같은 선(腺)페스트로, 북아프리카 에티오피아와 이집트에서 유럽으로 옮아갔다. 전염병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는 한 도시에서만 하루에 1만명씩 숨졌다는 기록이 있다. 선페스트는 14세기 유럽 전역을 초토화시켰고, 17세기까지 수시로 재발해 유럽인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19세기는 ‘콜레라의 시대’였다. 아시아를 강타한 수차례의 대역병(大疫病)이 중국•인도 등에서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유럽과 미주 등지로 전파됐다. 20세기에는 두 차례 세계대전을 거치는 동안 수많은 군인들과 빈곤층 사람들이 전염병에 희생됐다. 


 20세기의 가장 무서운 전염병으로는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를 들 수 있다.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 의해 전염되는 에이즈는 현대의 대표적인 팬데믹(Pandemic.세계적 전염병)이다. 지금도 세계에서 3,320만명이 이 병에 감염된 채 살고 있고 연간 200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는다.

 

0…현대에 들어서도 전염병은 계속된다. 한때 신종인플루엔자 A(H1N1) 공포가 세계를 휩쓸었고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과 조류 인플루엔자(AI)에 이어 돼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변종이 지구촌을 공포로 몰아 넣은게 바로 몇 년 전이다. ‘스페인 독감’, ‘아시아 독감’, ‘홍콩 독감’ 등의 인플루엔자가 세계를 휩쓸었다. 


 기억에도 생생한 지난 2003년 아시아를 강타한 사스는 처음에 병원체가 규명되지 않아 ‘괴질’로 불렸다. 뒤에 신종 바이러스가 규명돼 ‘사스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중국 남부 광둥성, 홍콩 등지에서 발생해 ‘모든 것을 다 먹는 중국인의 식생활’이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특히 사스는 중국 당국의 불투명하고 비협조적인 대응이 사태를 악화시킨 측면이 있어 보건의료 시스템의 투명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했다. 캐나다에서는 사스 사태 당시 의료기관에 대한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됐고, 이를 통해 국민들이 안심할 수 있었다.


 미국 시카고대학의 역사학자 윌리엄 맥닐 교수는 <전염병의 세계사>(1975)라는 저서에서 “전염병은 한 사회 내에서 인구 구조와 노동 조건, 정치적 역학관계를 바꿀 뿐 아니라 지구적인 차원에서 문명의 형성•전파와 인간의 대규모 이주에도 영향을 미친다. 미시적, 거시적 양 측면에서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다”고 지적했다. 


0…최근의 ‘글로벌 전염병’들은 여행, 항공기, 이주, 지역간 식량교환(식품류 수출•입)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다만 과거에 비해 예방시스템과 치료제가 발달해 대규모 희생자를 내는 전염병이 줄어들었을 뿐이다. 


 전염병은 사람끼리 서로 피하게 만들고 왕래를 꺼림에 따라 사람 사이도 멀어지게 만든다. 당연히 경제도 위축된다. 질병으로 인해 사회구조까지 바뀌는 것이다. 


 인류(人類)는 전염병과의 전쟁에서 일시적으로 우위를 얻은 것처럼 보이지만 둘 간의 시소게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최첨단 인공지능(AI) 시대라곤 하지만 아직은 수천년 전부터 이어져 오는 전염병까지는 이겨내질 못하고 있다.(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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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6
21세기와 군주제-영국 왕실의 존폐 논란

  
  

▲2011년 윌리엄 왕세손의 결혼식 후 한자리에 모인 왕실 사람들.  

 

 

 의회 민주주의의 시초로 꼽히는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 대헌장, 1215- 국왕의 권리를 문서로 명시)를 계기로 영국 왕의 권위는 점차 무너지기 시작한다. 이후 최초의 의회 제정법인 권리장전(Bill of Rights, 1689)과 입헌군주제(1721) 도입 등을 거치면서 영국 왕실은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으며 오랜 세월 존속해왔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이런 방식도 한계에 다다랐다는 분석이 높다. 고리타분한 왕실은 언제까지 존속할 것인가. 


 영국을 비롯해 아직도 왕실을 유지하는 나라는 많지만 일부 국가의 왕실은 권위보다는 세인들의 조롱 대상이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영국의 경우 언론의 가십성 기사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들이 왕실 사람들이다. 왕실을 없애지 않는 이유가 황색언론에 가십과 조롱거리를 제공하기 위해서라는 우스갯소리마져 있다.


 많은 이들이 영국 왕실의 존재 이유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그들이 국민의 막대한 세금을 써가며 특별히 하는 일도 없이 스캔들이나 일으키는 사람들이란 인식이 크기 때문이다. 지난 97년 찰스 왕세자와 이혼한 다이애나비가 교통사고로 숨질 당시 왕실이 연루됐다는 의혹이 대두되면서 왕실 폐지론이 비등했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이 큰 영국 왕실이지만 1, 2차 세계대전 등 역사의 큰 고비마다 영국을 움직인 건 왕실이 아니라 의회와 유능한 수상들이었다. 영국에서는 일찍부터 의회가 발달해 수상 중심으로 국력을 키워나갔던 것이다.


0…영국인들 사이에 왕실을 폐지하자는 의견이 또 다시 높게 일고 있다. 이번에도 도화선은 왕실 인사의 부적절한 태도 때문이다. 주인공은 왕실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한 해리 왕손과 메건 마클 왕손비 부부. 이들은 최근 왕실의 구성원 역할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삶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할머니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가족회의를 연 뒤 이들의 뜻을 존중하겠다며 왕손 부부의 독립을 인정했다. 이를 두고 영국 언론들은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에 빗대 메건 마클 왕손비의 왕실 독립선언을 뜻하는 ‘메그시트’(Megxit)라며 왕실의 분란을 이슈화하고 있다.


 해리 부부가 독립을 선언한 이유는 마클 왕손비에 대한 보수 신문들의 지속적인 공격이 가장 큰 이유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마클 왕손비는 아프리카계 혼혈 미국인으로, 2018년 5월 해리와 결혼 당시 두 살 연상에 이혼 경력까지 있어 화제가 됐고 이는 언론의 공격대상이었다. 따라서 해리 부부의 독립 선언은 왕실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의도를 나타낸 것이다.


 해리 부부는 독립을 선언한 뒤 영국과 캐나다를 오가며 생활하고 자선단체를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를 실행할 돈인데, 이 때문에 또 다른 논란이 생겼다. 해리 부부가 왕실을 배경으로 돈을 만들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영국 정부가 왕실에 지급한 지원금은 8220만파운드(약 1230억원). 여왕이 소유한 부동산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의 4배에 달하는 액수다. 해리 부부가 노리는 돈도 이 정부 지원금의 일부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안 그래도 왕실을 지탱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에 불만이 많은 여론을 감안할 때 이는 부적절한 태도임이 분명하다.


 해리 부부의 독립 선언을 통해 다시 불거진 영국 왕실의 추문이 왕실 폐지론까지 이어지는 건 자연스런 시대적 여망이다. 왕실 폐지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될 것인지 와는 별도로 시대 변화에 따라 왕실에 대한 새로운 평가와 역할 축소는 불가피해 보인다.


0…왕실 인사들의 모범적인 자선행위가 세인들의 칭송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들은 각자 자신들의 관심 분야에서 다양한 자선활동을 펴고 있다. 왕실재단은 정신건강 문제에 대한 차별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특히 직장 내 정신건강 문제에 관심이 많은 윌리엄 왕세손은 '직장 정신건강'이란 웹사이트도 개설했다. 부인인 미들턴 왕세손비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정신건강 문제를 중심으로 여러 어린이 단체를 후원 중이다. 윌리엄과 해리로 이어진 자선활동은 어머니인 고 다이애나비에게서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이들의 일탈행동도 많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3남 1녀 중 막내인 에드워드 왕자를 제외한 나머지 셋은 모두 첫 결혼에 실패했다. 각각의 이혼 과정도 순탄치 않아 황색언론의 단골 먹잇감이 됐다. 특히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의 이혼, 잇따른 그녀의 비극적 죽음 등은 군주제 폐지론에 불을 댕겼다.


0…해리 왕자 부부가 왕실 공무를 중단하고 영국과 캐나다를 오가며 지낼 예정이다. 그러면 특별한 직업이 없는 이들은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 해리는 어머니인 고(故) 다이애나비와 증조모로부터 3천만 파운드(약 450억원)의 재산을 물려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할리우드 배우 출신인 메건 마클의 재산은 400만 파운드(약 60억원) 정도. 그러나 이들 부부는 개인재산 외에도 당분간은 찰스 왕세자가 개인 영지(領地)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의 일부를 지원받을 것으로 보인다.


 캐나다로서는 해리 가족의 경호가 골칫거리다.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이들의 경호비용을 캐나다 정부가 대서는 안 된다는 반발 여론이 높다.


 영국의 군주제 폐지 논란은 엘리자베스 2세의 사후(死後)에 지금보다 더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평등사회를 지향하는 민주국가에서 계층간 위화감을 조장하는 왕실은 아무래도 격에 맞지 않은 것 같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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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식(김치맨)
2020-01-25
Her Majesty 영국여왕 겸 캐나다 여왕에게 충성맹세를 하고서 캐나다시민권을 취득한 우리들! 왕실제도를 없애버리자고 주장/동조하다간 자칫 역모죄(Treason) 로 몰릴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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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1
습관의 힘-타성을 바꾸면 인생이 달라진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다. 아침 출근시간마다 꼭 2~5분 정도 늦는 동료가 있었다. 함께 입사한 사이여서 처음엔 그러려니 했는데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보기가 별로 안 좋았다. 다행히 직속 상사(과장)가 마음씨 좋은 충청도 분이어서 몇번은 그냥 넘어갔다. 그런데 어느날, 예외없이 헐레벌떡 사무실로 뛰어드는 그와 상사가 출입문에서 딱 마주쳤다. 그러자 상사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단체생활인데 시간 좀 맞춰서 출근하면 좋겠구먼…” 


 다음날 동료는 작심을 했는지 다른 직원들보다 먼저 출근해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 부서원들은 “와,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하며  농담 겸 칭찬을 보냈다. 그는 그렇게 며칠을 정시에 출근했고 우리는 이제야 그가 정신을 차렸구나 하고 안도했다. 그런데… 그는 한 일주일여 후부터 또다시 지각출근을 반복했다. 그러다 그는 결국 회사를 그만두었다. 회식자리에서 상사가 말하길 ‘권고사직’을 시켰다고 했다. “일을 잘 하고 못 하고도 중요하지만 단체생활의 기본자세가 안 돼있다”는 것이 사유였다. 


 이런 예는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직장에 늦는 것은 회사나 직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뿐더러 업무에 임하는 성실성에도 의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만큼 일에 대한 열정이 부족하다는 뜻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는 말도 있잖은가. 약속시간에 상습적으로 늦는 사람, 주일예배 시작 직전에 허둥대며 들어오는 사람 등 시간관념이 없는 사람이 많다. 이 모든 것은 바로 평소 습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의 경우 어디에 늦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그래서 대개는 정시보다 조금 일찍 가서 기다리는 편이다. 이런 탓인지, 일요일 성당에 갈 때 아내에게 언짢은 기색을 할 때가 있다. 나는 차의 시동을 걸어놓고 추운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도무지 나올 기미가 안 보이면 속으로 부글부글 끓기 시작한다. 여자들은 대개 집안일을 하고 화장도 하기에 시간이 걸린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어느땐 “도대체 뭘 꾸물거대는거야?”라며 화를 낸다. 그렇다고 미사시간에 늦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분들이 앉은 좌석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려면 괜히 눈치가 보여 마음이 편치 않다. 


0…우리의 일상은 습관으로 이루어진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 있는 반면,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늦잠을 자는 사람도 있다. 아침밥을 꼬박꼬박 챙겨 먹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물 한잔으로 때우는 사람도 있다. 남에 대해 주로 좋은 점만 얘기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약점을 들추고 흉만 보는 사람도 많다. 대화할 때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눈을 내리깔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모든 것이 습관이다. 맵고 짠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건강을 생각해 절식(節食)을 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한때 퇴근만 하면 으레 집의 지하실로 쪼르르 내려가 와인을 들고 나와 빈 속에 치즈와 한잔 기울이는 낙(樂)이 거의 습관처럼 굳어져 있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것이 건강에 이롭지 않다는 의사의 권고를 듣고 그 버릇을 딱 멈췄다. 그러자 처음엔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무척 허전하기만 했는데 몇주일이 지나고나자 견딜만해졌다.

  
 이처럼 습관이란 것은 올바로 박히면 좋으련만 그게 아니니 문제다. 그릇된 습관을 고치면 인생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지난 2012년 뉴욕타임스의 탐사보도 전문기자 찰스 두히그(Charles Duhigg)가 발표해 전 세계 베스트셀러가 된 저서 ‘습관의 힘’(The Power of Habit)에 따르면, 우리가 매일 행하는 행동의 40%가 그때그때의 적절한 의사결정이 아닌 무의식적인 습관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일상에서 행하는 습관의 원리를 이해하면 나 자신과 세상을 완벽하게 바꿀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저자가 수백 명의 기업인과 과학자들을 심층 인터뷰해 밝혀낸 습관의 힘은 놀라웠다. 개인의 삶을 넘어 조직, 기업, 사회에까지 어마어마한 힘을 발휘하는 게 습관이었다. 습관은 변화하면 좋고 안 해도 상관없는 것이 아니라 성공과 실패, 삶과 죽음의 열쇠까지 쥐고 있는 요소다. 


0…과학자들에 따르면 습관이 형성되는 이유는 우리 뇌가 활동을 절약할 방법을 끊임없이 찾기 때문이다. 어떤 자극도 주지 않고 가만히 두면 뇌는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거의 모든 일을 무차별적으로 습관으로 전환시키려 한다. 습관이 뇌에게 휴식할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좋은 습관을 갖기 위해선 자제력과 의지력이 중요한 요소다. 저 유명한 ‘마시멜로 실험’이 그것을 증명한다. 어린아이들에게 마시멜로를 한개씩 주고 오래 참는 아이에겐 덤으로 두어개를 더 주었다. 그 결과, 오래 참고 덤으로 더 받은 아이들이 나중에 성장해서도 학업성적도 높고 성공할 확률도 높았다. 초등학교 때 축구 같은 운동이나 피아노 연습 등을 권하는 것은 그것을 통해 인내심과 자제력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며 그런 요소는 어른이 되어서도 훌륭한 습관으로 남게 된다. 


 나의 하루일과를 잘 살펴보자. 얼마나 많은 무의식적인 습관 속에 살고 있는가. 습관을 조금만 (좋은 방향으로) 고치면 나의 인생이 달라질 것이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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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5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

 
  

▲몽골에서 10년째 의료선교를 하고 있는 외과의사 박관태씨

 

 

 지난주 한국 KBS에서 방영한 ‘인간극장'을 감동적으로 보았다. 신년특집 프로그램으로 ‘그대, 행복을 주는 사람’이란 타이틀로 소개된 ‘몽골로 간 의사, 박관태’씨 이야기였다. 주인공 박관태(50) 씨는 병원시설과 장비, 의료진이 턱없이 부족하고 열악한 동아시아의 내륙국 몽골에서 10년 동안 의료선교 봉사를 하고 있는 외과의사다. 


 살을 에는 매서운 추위가 내려앉은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 외곽. 박씨는 이곳에서 낙후된 환경 속에 비영리 병원을 운영하며 헌신적인 의료활동을 펼치고 있다. 유목민족인 몽골인들은 목축을 하면서 익숙한 육식 위주의 식습관 탓에 심혈관 질환을 유난히 많이 앓는다. 이런 현지인들에게 혈관외과 전문의인 박씨는 실력 좋고 마음씨 따뜻한 명의(名醫)로 칭송이 자자하다.


 그의 하루는 한시도 쉴 틈 없이 흘러간다. 밀려드는 환자가 끝없이 줄을 서는데 치료비가 없어 진료를 못 받는 이들에겐 무료로 치료를 해준다. 병원 경비를 후원해주는 고마운 손길들을 생각해 더 열심히 환자들을 돌보려고 최선을 다한다. 


 그는 특히 의술의 손길이 닿지 않는 오지 빈민촌에 의료봉사를 하기 위해 도로상태도 좋지 않은 머나먼 길 수백 킬로미터를 자동차로 10시간 이상 밤을 세워 달려가고, 도착하자마자 쉴새없이 환자들을 돌본다. 가는 도중에 차에 문제라도 생기면 큰 낭패다. 요즘같은 혹독한 겨울철엔 길에서 얼어죽을 정도다.


 박씨는 현지 환자들에게 구세주 바로 그 분이다. 그는 몽골 환자들 사이에서 ‘파김치’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몽골어로 ‘임치’는 의사를 뜻하는데 몽골인들이 ‘박임치’라고 자꾸 부르다 보니 어느새 ‘파김치’로 들리게 된 것. 그래서 얻게 된 별명 ‘파김치’는 그의 삶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0…척박한 의료 환경 속에 밤낮없이 환자를 돌보는 그에겐 든든한 동지가 한 사람 있으니, 바로 동갑내기 아내(산부인과 전문의)다. 의과대학 동기로 만난 두 사람은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는 일 외에 의술의 힘이 닿지 않는 몽골의 오지를 함께 누비며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아내는 남편이 선택한 길에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며 함께 의료봉사를 하고 있다. 그녀는 의사로서 뿐만 아니라 엄마와 살림꾼 아내 몫까지 하느라 하루 24시간이 부족하다.


 박관태씨가 몽골로 떠나온 가장 큰 이유는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의대 동기로 뜻과 포부가 통했던 친구는 대학시절 의료봉사를 함께 하며 언젠가 의료 환경이 열악한 몽골로 함께 떠나자는 약속을 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친구는 몽골로 오지 못했다. 갑자기 악성 임파종에 걸려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말았기 때문이다.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친구를 보며 괴로워하던 박씨에게 친구는 부탁을 남겼다. “몽골로 가서 내 몫까지 해 줘. 같이 못 가서 미안하다.” 


 몽골 국립대학 교수이기도 한 박씨는 자신의 의술을 현지 의대 제자들에게 전수하기 위해 자신이 집도하는 수술에 직접 참여하게 한다. 현지 의료진은 오진과 실수를 자주 하는 편인데 이런 것을 방지하려면 자신의 의술을 후배들에게 잘 전수해줄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는 물고기를 잡아주기 보다 잡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0…간절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 꼭 있는 사람, 부와 명예 대신 소명과 보람을 찾아 떠나는 박씨 같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의미있는 인생을 살고 있다 하겠다. 세속적으로 보면 의사로서 얼마든지 안락한 삶을 살아갈 수도 있는데, 험난한 고생을 자처해 나서는 이런 사람이 있기에 세상은 더불어 살아갈 맛이 나는 것이다.         


 박관태씨 부부는 자신의 욕망을 조금이라도 더 채우기 위해 분주히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들에게 행복의 또 다른 조건을 일깨워주고 있다. 먼 타국에서 헌신적인 봉사를 하며 현지인들에겐 꿈과 희망을 주고 우리에겐 한국인이란 자긍심을 일깨워주고 있다. 그런 힘든 일을 누가 시켜서 한다고 하겠는가. 


0…가장 의미 있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남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 세상엔 두 부류의 일이 있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과 마지 못해 하는 일이 그것이다. 이중에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은 누가 뭐래도 즐겁고 보람차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세속적인 부와 명예 따위는 하찮은 것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은 행복하다. 여기에 현실(경제)적인 문제까지 해결된다면 금상첨화이겠지만 설령 돈벌이가 안 되더라도 어떤가. 진정 내가 좋아서 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의미있고 가치있는 삶이다. 먹고 살기 위해 어거지로 하는 일은 흥미가 있을 수 없다. 일의 능률도 기대하기 어렵다.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신나게 즐기면서 하는 일이 가장 멋진 삶이다. 그중에도 어려운 남에게 도움이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새해엔 진심으로 내가 좋아하는 일, 나아가 좀더 보람있고 가치있는 일을 해보자고 다짐해본다. 이젠 나이도 좀 들었으니 굳이 내키지 않는 일에 쓸데없는 시간을 빼앗기며 살지는 않으리라.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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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7
카톡을 두드리는 그대에게-때와 주제를 헤아리자

  

 

 

 “친구여, 나는 그대가 직접 쓴 글을 보고 싶다. 잘 있다는 소식 한줄이라도 친히 전해다오…” 지난 연말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띄운 카톡 메시지다. 무척 친한 대학동창인데, 그는 아무 메시지도 없이 한해가 넘어가는 그림영상을 보내왔던 것이다. 나는 영상을 열어보지도 않았다. 이런 것이 너무 많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어 별 감흥을 느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친한 친구에게 밑도 끝도 없는 이런 영상을 보내 무슨 말을 전하겠다는 것인지 야속한 생각마져 들었다. 


 그제서야 친구는 잘 지낸다는 인사와 함께 무척 바빠서 그랬다며 미안하다는 말을 보내왔다. 나는 이에 “친구여, 아무리 바쁘게 살아도 우리만은 마네킹 같이 아무 표정도 없고 감정도 없는 싸구려 동영상 따위는 보내지 말자”고 덧붙였다.  


 이런 예는 친한 친구이기에 가능한 것이지, 정말이지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고 툭툭 떠오르는 카톡 영상과 메시지는 왕짜증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메시지도 없이 기계적으로 보내는 동영상과 그림들을 나는 솔직히 열어볼 생각도 없어 그냥 지워버린다. 


 개중에는 친하게 지내는 분들, 특히 손윗분이 동영상 또는 좋은 글이라며 보내오면 “고맙습니다. 잘 보았습니다”라고 답신을 하지만, 죄송하지만 바쁜 시간에 그런 영상을 볼 시간도 없거니와 전혀 감동도 없어 겉치레 인사에 불과한 경우가 태반이다.      

                       
0…요즘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사람 치고 카톡(KakaoTalk)을 사용하지 않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지난 2010년부터 서비스를 시작한 글로벌 모바일 메신저 ‘카톡’의 사용자 수는 탄생지인 한국에선 거의 전 인구(약 5천만 명)가 쓰고 있고, 해외에서도 급속히 늘고 있다. 카톡은 현재 230개국, 16개 언어로 서비스되고 있다. 출생 10년 만에 카톡은 막강한 파워를 지닌 통신무기가 됐다.    


 세계 어디서나 실시간으로 소식을 주고 받는 것은 기본이고, 무료전화에 사진.동영상 전송 등 모든 것이 손바닥 안에서 이루어지니 이처럼 편리한 기기가 있을 수 없다. 전 세계에 퍼져 사는 사람들끼리도 많게는 수백 명씩 그룹을 만들어 채팅을 하니 늘 가까이서 모임을 갖는 기분이다. 


 카톡은 이른바 ‘프리웨어’로 사용에 아무런 비용이 들지 않는다. 전통적 통신수단이던 집전화가 무용지물이 된 지 이미 오래고, 지난 수십년간 의사소통의 총아로 군림해온 인터넷 이메일 역시 한물 가는 추세다. 이제는 스마트폰, 그 중에도 통신수단으로는 카톡이 단연 대세이다. 


 하지만 카톡은 더 없이 편리한만큼 역기능도 만만찮아 요주의 대상이 됐다.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까톡” 소리는 소음공해가 된지 오래다. 교회나 장례식장, 중요한 회의 때 무심코 카톡 소리가 나면 황당하고 민망스럽기 짝이 없다. 특히 우리 같은 이민사회에서는 한국의 친구, 친지들과 편리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좋지만 시간대가 낮과 밤이 바뀐 상황에서 매우 조심해야 한다. 


 요즘엔 소리가 나지 않게 해놓곤 하지만, 혹시라도 중요한 소식을 놓칠세라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경우 수년 전 장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새벽에 집전화를 통해 소식이 왔으나 이번엔 카톡을 통해 다른 급한 소식이 떴다. 새벽 5시, 카톡에 뜬 메시지는 와병 중에 있던 어르신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이러니 정작 중요한 소식을 보기 위해 마냥 묵음으로 해놓을 수도 없는 것이다.


 토론토에 살다 한국으로 가신 어느 연세드신 친지분은 요즘 카톡에 재미를 붙이신 모양인데 새벽부터 시도 때도 없이 카톡으로 잡다한 소식들을 전해온다. 처음엔 반가워 즉각즉각 답신을 보냈으나 갈수록 귀찮아져서 이제는 꼭 응답할 일에만 짧게 답을 한다. 대부분 하찮은 동영상들을 보내오는데, 솔직히 읽어보지도 않는다.


0…카톡 중에도 가장 짜증나는 것은 그룹채팅(단톡방)이다. 누구나 경험했겠지만, 나의 경우 본의 아니게 이곳저곳 여러 그룹 채팅방에 엮여 있다. 적게는 10여 명에서부터 많게는 300명 이상에 이른다. 이중에는 중복해서 단톡방에 들어있는 경우도 많다. 그도 그럴 것이 동포사회 단체나 모임 따위에 참여하는 사람이 빤하기 때문이다(대략 500여명 남짓). 


 문제는 카톡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모양새가 긍정보다 부정적인 측면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꼭 필요한 알림이나 소식 등을 올리면 좋겠으나 대부분은 잡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누가 한마디 하면 보기에도 경망스럽기 짝없는 이모티콘을 마구 날리고, 어떤 사람은 대화의 흐름과는 무관한 동영상이나 그림을 남발한다.      

 
 개중에는 카톡방을 자기위상 과시나 비즈니스로 활용하려는 몰지각한 사람도 있다. 이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초대된 사람은 한 두번 지켜보다 방을 나가 버린다. 나도 불필요한 단톡방은 모두 나가버릴까 하다가도 그냥 뛰쳐나가면 혹시 성질 고약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냥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눌러 있기도 한다. 이래서 카톡은 공해요, 스트레스 요인으로 전락해가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나는 4년여 전부터 토론토 동포사회 시초 격인 단톡방(조성훈 후원회)을 운영하고 있는데, 무슨 소식이나 글을 올리기가 갈수록 조심스러워져서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고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카톡을 두드리고 있는 분들이여, 손가락을 매우 조심하자.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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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w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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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0
일모도원(日暮途遠)-해는 저물고 일은 많으니…

 

 

 나 같은 한자(漢字) 세대는 사자성어(四字成語) 쓰기를 즐긴다. 여러 말 대신 네 글자만 대면 되니 무엇보다 시간상으로 경제적이고, 뜻이 함축적이어서 직설적 어법보다 운치가 있어 보인다. 또한 그런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을 알아야 하니 자연히 배움도 함께 따른다. 


 집안 내력 탓인지 나는 일찍이 어.문학에 취미가 있어 중.고교 시절부터 국어.영어를 비롯해 한문.고전.제2 외국어(독일어) 등에 자신이 있었다. 수학이나 과학엔 영 취미가 없었지만 어.문학 시간만 되면 신이 났다. 학창시절 배운 한자실력에 더해 기자생활을 하면서 더욱 한자를 많이 쓰게 됐다. 지금도 술자리에서 흥이 오르면 한시(漢詩)를 읆조리곤 한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한자는 뒷전으로 밀려나게 됐고 영어를 어학실력의 으뜸으로 치게 됐다.  요즘 젊은세대에게 한자성어를 주절거리면 아마 “OK, Boomer” 소리를 듣기 알맞을 것이다. 이 말은 “알았어요, 아저씨”라는 뜻으로, 젊은이들 사이에 고리타분한 구세대, 즉 ‘꼰대’의 의미로 쓰인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도 60대 이상 기성세대는 한자어를 즐겨 쓰는 습관이 있고 나 또한 그러하다. 특히 이즈음 연말이 되면 가는 해를 아쉬워하는 한자어가 많이 쓰인다. 대표적인 예로 한국의 <교수신문>은 매년 이맘때 사회적으로 유행했던 풍조를 빗댄 ‘올해의 사자성어’를 발표한다.  

 

 

 


0…올해 한국의 대학교수 1,04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공명지조(共命之鳥)’라는 말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뽑혔다. 공명지조는 불교경전에 등장하는 새로 ‘한 몸에 두 개의 머리’를 가졌다고 한다. 따라서 이를 풀이하면 ‘목숨을 함께 하는 새’의 뜻이 된다. 즉, 서로가 어느 한쪽이 없어지면 자기만 살 것 같이 생각하지만 실상은 공멸하게 되는 운명공동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불교 경전에 따르면, 공명조는 한 머리는 낮에 일어나고 다른 머리는 밤에 일어난다. 한 머리는 몸을 위해 항상 좋은 열매를 챙겨 먹었는데, 다른 머리는 이에 질투심을 가졌다. 이에 다른 머리는 화가 나 어느날 독이 든 열매를 몰래 먹었고, 결국 두 머리가 모두 죽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공명지조를 올해의 성어로 추천한 교수는 “한국의 현재 상황은 마치 공명조를 바라보는 것 같다. 서로 이기려 하고, 자기만 살려고 하지만 어느 한 쪽이 사라지면 모두가 죽게 되는 것을 모르는 한국사회가 안타깝다”고 전했다.


 공명지조의 뒤를 이은 사자성어는 ‘어목혼주’(魚目混珠). 즉 ‘어목’(물고기 눈)이 진주로 혼동을 일으켜 무엇이 어목이고 진주인지 분간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가짜와 진짜가 마구 뒤섞여 있는 상태를 비유한다. 올해는 그야말로 무엇이 진짜 어목이고 진주인지 혼동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0…나는 일모도원(日暮途遠)이란 말을 좋아한다. 풀이하면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는 뜻이다. 흔히 무슨 일을 함에 있어 시간이 촉박한 상황을 이른다. 이 말은 원래 중국 춘추시대, 초 평왕과 그의 신하 오자서 일가의 피비린내 나는 복수극에서 유래했다.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에는 오자서가 평왕의 무덤을 파헤치고 그 시신을 꺼내 구리채찍으로 300번이나 후려갈긴 후에야 그쳤다고 기록돼 있다. 당시 오자서의 친구 신포서가 그의 행동을 지적하며 “일찍이 초나라의 신하로서 왕을 섬겼던 그대가 지금 그 시신을 욕되게 하였으니, 이보다 더 천리에 어긋난 일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라고 나무라자 오자서는 “吾日暮途遠 故倒行而逆施之”(해는 지고 갈 길은 멀어, 도리에 어긋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일축한다.


 즉, 일모도원은 오자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핑계였다. 그의 행위는 후대로 오면서 많은 비판을 받게 된다. 오늘날 오자서는 불굴의 의지로 춘추시대의 패자를 바꾼 초인이 아닌 ‘복수귀의 대명사’로 더 기억되고 있다. ‘시간이 급해 어쩔 수 없었다’는 구실은 오늘날 우리 주변에도 많이 횡행하는 일이다.  


 유래야 어쨌든 이즈음엔 ‘일모도원’의 심정이 아닐 수 없다. 이룬 일 없이 한해를 보내고, 또다시 나이만 먹고, 자꾸만 할일은 눈에 띈다.  


0…‘모사재인 성사재천(謀事在人 成事在天)’이란 말도 내가 좋아하는 성어 중 하나다. 제갈량이 했다는 이 말은 “일을 꾸미는 건 사람이지만 이루는 건 하늘이다”는 뜻이다. 이는 우리가 흔히 쓰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과 비슷한 말이지만, 굳이 구분을 하자면 ‘진인사…’는 결과가 나오기 전에 기대를 걸고 하는 말이고 ‘모사재인…’은 결과가 나온 후(대부분 원했던 바가 이루어지지 못한 경우)에 관한 것이다. 


 이 말의 유래는, 제갈량이 북벌을 단행할 때 호로곡에서 사마의를 상대로 화공을 펼쳐 궁지로 몰아넣었으나, 가장 중요한 시점에 비가 내려 화공이 실패하고 사마의를 살려보내고 말았다. 이를 두고 과거 적벽에서는 화공으로 조조의 대군을 물리쳤으나 이번에는 소나기로 인해 실패했으니 일이 이루어지고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하늘의 뜻에 달렸구나 하고 탄식하며 한 말이다. 따라서 정확히는 ‘모사재인(謀事在人) 성사재천(成事在天) 불가강야(不可强也)’,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되 일을 이루게 하는 것은 하늘이니 강제로 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한 해를 돌아보며 새삼 이 문구를 떠올리는 것은, 나는 그저 매사에 최선을 다할 뿐, 모든 결과의 주관은 하늘의 뜻에 맡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갈수록 실감하기 때문이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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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3
껄껄껄…-후회 없는 삶을 위하여

 


 

 “그때 조금만 참을걸” “내가 먼저 식사비를 낼걸” “아내에게 고맙다고 말해줄걸” “조금만 (부조)비용을 더 쓸걸” “귀찮아도 가볼걸” “미워도 먼저 악수의 손길을 내밀걸…”    

   
 이제껏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면 스스로 만족스럽고 뿌듯한 일들보다는 후회스럽고 아쉬운 일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학창시절엔 왜 좀 더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을까.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왜 좀 더 성실하게 근무하지 않았을까. 결혼해서는 아내에게 왜 좀 더 살갑게 대해주지 못했을까. 철이 들어서는 왜 좀 더 돈 벌 궁리를 안했을까. 그랬더라면 지금보다는 나은 삶을 누리고 있을텐데… 


 그 사람에게 왜 관용을 베풀지 않았을까. 그 자리에서 왜 그렇게 옹졸하게 처신했을까… 이런 ‘까, 까, 까’ 다음엔 대개 ‘~할걸(껄)’이란 접미어가 따라 붙는다. 좀 더 사랑할걸, 좀 더 베풀걸, 좀 더 마음을 열어줄걸… 돌이켜보면 대부분의 후회는 순간적인 판단력 부족과 평소 감정을 잘 조절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경우가 많다.  


0…연말이 되니 지나온 날을 돌아보며 다시 ‘까까까, 껄껄껄’ 하게 된다. 왜 사소한 일로 얼굴을 붉혔을까. 조금만 성질을 죽이고 참을걸. 가족에게 좀 더 자상하게 대해줄걸, 남들이 싫어하는 일을 내가 먼저 나서서 팔을 걷어부칠걸, (미운)사람을 보면 외면하지 말고 먼저 다가가 인사를 할걸,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해질텐데. 어려운 이에게 조금 더 아량을 베풀걸…       


 사람은 죽을 때 '껄껄껄'하며 죽는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호탕하게 웃으면서 죽는다는 얘기가 아니다. 살면서 저지른 여러 실수들을 후회하면서 "이리 했으면 좋았을걸…" 하며 죽는다는 얘기다. 그 중 가장 많은 ‘껄'은 "좀 더 베풀면서 살껄", “좀 더 용서하고 살껄", "좀 더 재미있게 살껄" 등이다. 


 요즘 송년 회식자리의 건배사로도 이 ‘껄껄껄'이 많이 쓰인다. ‘좀 더 사랑할 걸, 좀 더 즐길 걸, 좀 더 베풀 걸' 등의 회한 섞인 뜻이 담겨있다. 


0…죽어가는 사람을 돌보는 호스피스(hospice) 운동의 선구자이자 20세기의 대표적 정신의학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1926 ~2004)와 그녀의 제자 데이비드 케슬러(1959~ )가 써서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책 <인생수업(Life Lessons)>(2000년 출간)은 죽음 직전의 사람들 수백 명을 인터뷰해 ‘인생에서 꼭 배워야 할 것들’을 살아있는 우리에게 생생하게 전해준다.


 이 책이 들려주는 가장 큰 교훈은,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가장 후회하는 것은 삶을 그렇게 심각하게 살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별의 순례자이며, 단 한 번의 즐거운 놀이를 위해 이 세상에 왔다. 따라서 살아있는 동안은 행복만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의 눈이 찬란하지 않다면 어떻게 이 아름다운 세계를 반영할 수 있는가? 그렇다. 우리는 삶을 너무 심각하게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또 하나 중요한 교훈은,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충실하라는 것이다. 지나간 과거나 다가올 미래는 나의 힘으로는 통제가 안된다. 돌이킬 수도 없고, 앞당길 수도 없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시간은 바로 지금 이 순간 뿐이다. 과거의 실수에 집착해 괴로워할 필요도 없고, 확실하지도 않은 미래를 위해 오늘을 희생할 필요도 없다. 


 (사업가 입장에서) 내년에 그 일만 잘 풀리면, (회사원 입장에서) 새해에 승진만 하면, (중개인 입장에서) 집을 좀 더 많이 팔면… 해외여행도 가고, 취미생활도 하고, 불우이웃도 돕고, 사람들도 많이 만나 밥도 사주고… 그런데 그런 꿈이 이루어지면 세상이 달라질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질 않다. 막상 소원이 성취돼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따라서 지금 당장 실천하지 않는 꿈은 나중에 후회로 남게 된다. 죽어가는 이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그때 하고 싶었던 일을 할걸”이다.      


 <인생수업>의 귀결은,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행복하라는 것 외에는 다른 숙제가 없다는 것이다. 행복해지기 위해 무엇인가를 시도한 적이 언제였는가? 마지막으로 멀리 떠나 본 적이 언제였는가? 누군가를 진정으로 껴안아 본 적이 언제였는가?. 지금 이 순간을 살면서(Live), 사랑하고(Love), 웃고(Laugh), 배우자(Learn). 이것이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다. 


 0…나중에 ‘껄껄걸’ 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 가슴 뛰는 삶을 살자. 하고 싶은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 내일은 어떤 세상이 전개될지 아무도 모른다. 내 힘으로, 내 의지로 조절할 수 있는 일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지금 이 순간을 부정적인 생각 속에 우울하게 보내면 곧 ‘껄껄걸’ 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오직 행복만을 생각하며 밝고 긍정적으로 살아야겠다. 


 돈이나 소유에도 집착하지 말자. 인생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더 가치있는 일이 훨씬 많다. 또한 자신을 타인과 비교할수록 행복은 멀어진다. 인간은 누구나 약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재산이 많은 사람은 자식복이 없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은 가족에 문제가 있고, 외모가 출중한 사람은 건강에 문제가 있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나 자신은 아주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을 갖자.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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