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계정 찾기 다시 시도 아이디 또는 비밀번호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이용우 칼럼

ywlee
4A943545-216F-4675-AE03-DE987A8FC8CF
58398
Y
메뉴 닫기
오늘 방문자 수: 63
,
전체: 204,050
경제 및 시사문예 종합지 <한인뉴스 부동산캐나다>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욱 품격 있는 언론사로 발전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메뉴 열기
ywlee
ywlee
87898
9183
2021-05-06
月下獨酌(월하독작)-코로나와 나를 위한 삶

 

 

 코로나로 인해 사람 만날 기회가 뜸해진 요즘, 혼술(혼자 마시는 술)의 묘미를 알기 시작했다. 이 나이토록 술은 혼자서 마시면 무슨 큰일이나 난 줄 알았다. 알콜중독자나 그러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혼자서 한잔 하니 그렇게 마음이 느긋하고 편할 수가 없다.

 

 혼술을 하면 우선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진다. 누구와 어울려 마시면 대화에도 신경써야 하고 주변의 눈도 있어 편치 않으나 혼자 술을 마시면 음악을 감상하며 달콤한 향수에 젖어들 수 있으니 얼마나 편한지. 특히 업무관계로 사람을 만나 술을 마셔야 하는 경우 더욱 술의 흥취가 없다.   

 

 또한 혼자서 술을 마시면 억지로 마실 필요가 없으니 도가 지나치는 일도 없다. 나는 원래 술을 반주(飯酒)로 즐기는 체질이라 과음하는 일이 적다. 일단 속에 밥이 들어가면 술을 억지로 먹여도 써서 더 이상 마시지를 못한다. 나는 특히 즐거운 일이 있거나 기분이 좋을 때 술을  마신다. 마음이  우울하면 술도 입에 써서 받질 않는다.

 

0…혼자 와인잔을 기울이노라면 가끔 아내가 대작(對酌)을 해주니 이 또한 낙(樂)이다. 다만 아내는 소량이라도 매일 마시면 좋을 리 없다며 잔소리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도 나의 건강을 생각해 하는 소리라고 새겨 들으면 오히려 고마워진다. 

 

 창밖에 달빛이라도 비추는 봄밤은 술마시기에 최고로 어울리는 분위기다. 그런 날엔 이태백의 시가 절로 흥얼거려진다.

 

‘花間一壺酒(화간일호주), 獨酌無相親(독작무상친)/擧杯邀明月(거배요명월), 對影成三人(대영성삼인)/月旣不解飮(월기부해음), 影徒隨我身(영도수아신) (꽃나무 사이에서 한 병의 술을 홀로 마신다/잔 들고 밝은 달을 맞으니 그림자와 나와 달이 셋이 되었다/달은 술을 마실 줄 모르니 그림자만 나를 따르는구나)

 

 중국 최고의 시인 이백(李白)의 ‘달 아래 홀로 술을 마시며(月下獨酌(월하독작)’ 시를 음미하노라면 과연 시선(詩仙)다운 풍류가 차고 넘친다. 이백은 외로운 낭만주의자였다. 인생의 무상을 관조하며 세상을 초월하고 자유를 찾아 유랑했다. 이백에게 술은 뗄레야 뗄 수 없는 존재였다. 그의 생애를 통틀어 술은 문학과 사색의 원천이었다.

 

0…이백에 대해 조선 영조 때 가인(歌人) 남파(南派) 김천택은 다음과 같은 시조를 남겼다.

‘옷 벗어 아희 주어 술집에 볼모하고/靑天[청천]을 울어러 달더러 물은 말이/어즈버 千古[천고] 李白[이백]이 날과 어떠 하더뇨’

 

 스스로 주중선(酒中仙)이라 칭하며 술을 벗삼아 천하를 유랑하던 호방한 이태백. 그는 속세를 떠나 세상번뇌를 잊고 물따라 구름따라 부귀영화를 뜬구름처럼 알고 초연히 살다간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일설에는 그가 일생동안 권력과 명예욕에 사로잡혀 세상을 하직하는 그날까지 권력과 명예를 동경하고 권력 주변을 맴돌고 그리워하다 간 이중적 삶을 살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무러면 어떤가. 유명 문학작품과 지은이의 인성(人性)이 일치한다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꼭 그렇지도 않은 것이 인간사 아니겠나. 작품은 빼어난데 사람은 개차반인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게 인간세상이다. 이것저것 다 빼고 나면 즐길 작품이 얼마나 되겠는가.     

 

0…자고로 술 좋아하는 사람치고 악인(惡人) 없다는 말이 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계산적이지 않고 마음이 넓다는 뜻이다.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 사람은 대개 성격도 꼬장꼬장하다. 세상 살면서 어느 땐 한잔 하고 자세도 좀 풀어지는 경우도 있을 터. 그런 면이 없다면 인간적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문학과 술은 바늘과 실처럼 따라 다닌다. 문학 한다는 사람이 술을 모른다면 인생의 고뇌를 깊이 다루지 못함과 같다 할 것이다. 이래서 술은 적당히 잘만 마시면 인생의 활력소가 된다. 문제는 그것이 과할  때 사단이 벌어진다. 과해서 좋은 것이 어디 있으랴.

 

 나이 먹을수록 변하는 것 중 하나가 사람 만나는 일이 귀찮아졌다는 것이다. 나는 성격이 사람을 좋아하는 편이라 전에는 걸핏하면 모임자리를 만들었다. 이사람 저사람 연락해 술자리를 만들어 즐겼다. 그러던 것이 언젠가부터 그 모든 것이 시큰둥해졌다. 그런 자리가 별 의미가 없어졌다. 모임을 갖는다고 우정이 돈독해지거나 사람을 깊이 사귀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을 만날수록 오히려 악연(惡緣)만 쌓여갔다.

 

 아니다 싶은 사람과는 구태여 시간을 낭비하며 인연을 이어갈 필요가 없다. 나는 요즘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갖다 보니 전보다 책도 많이 읽게 되고 나를 돌아보는 기회도 많아졌다. 정신적으로도  한결 여유로워졌다. 번잡한 세상사 물리치고 가끔은 나만의 세계에 침잠해보는 것도 정신건강상 좋지 않을까 한다. 내가 요즘 혼술자적(自適)의 운치를 느끼기 시작한 이유도 그렇다.

 

0…‘나무도 병이 드니 정자(亭子)라도 쉴 이 없다/호화이 섰을 제는 올 이 갈 이 다 쉬더니/잎 지고 가지 꺾인 후는 새도 아니 앉는다.’ (송강 정철(鄭澈) ‘나무도 병이 드니’)

 

 인간세상은 언제나 힘있고 돈있는 곳으로 사람들이 쏠리게 마련이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득이 되지 않으면 떠난다. 그러니 이런 현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누가 나를 배신하더라도 너무 슬퍼하거나 과로워하지 말 일이다. 그저 나의 삶에 충실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오는 사람 막지 말고 굳이 떠나는 사람 붙들지 말자. 코로나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새삼 느끼는 감상이다.    (사장)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ywlee
ywlee
87789
9183
2021-04-29
윤석열 대통령?-서천 소가 웃을 일

 

 

 한국 속담에 ‘서천 소가 웃을 일’이라는 말이 있다. 묵묵히 일만 하다 죽어서는 온몸을 사람들에게 고루 나눠주고 가는 충실한 가축인 소에게 호불호(好不好) 표정이 있을 리 없다. 그런 소가 어이가 없고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다면 그야말로 말도 안되는 상황을 뜻하는 것일 게다(서천의 유래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0…한국의 대선(2022년 3월 9일)을 앞두고 야권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유력주자로 거론되고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새삼 위의 속담이 생각난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이라는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이 이 정도밖에 안 되나, 몹시 씁쓸하다.

 

 본인이 직접 대권도전 의사 표시를 한 적은 없으니 사실 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윤씨 신드롬은 현 정부를 싫어하는 보수층의 여망을 담은 반증 현상일 것이다. 어찌됐든 간에 윤씨가 과연 대통령감인가.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이유를 몇가지 짚어보자.     

 

 첫째, 윤씨가 갑자기 야권 대선후보로 부상한 것은 조국 전 법무장관 사태를 계기로 진영갈등이 본격화되면서부터다. 그의 거침없는 칼날이 청와대까지 향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을 싫어하는 보수진영이 쾌재를 부르게 만들었다. 다시 말해 윤씨가 뜬 것은 문 대통령을 싫어하는 그룹이 똘뚤 뭉친 결과이지 윤석열 자체가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다.

 

 둘째, 윤씨는 국정수행 경험이 전혀 없다. 간접적으로라도 국정을 체험하는 정치인도 아니다. 그는 단지 검찰이라는 무소불위 권력조직에 27년간 몸담으면서 권위주의에 흠뻑 찌든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서민들의 애환을 알 턱도 없다. 사람 잡아들이는 일을 전문으로 하던 사람이 무슨 국정을 수행한단 말인가. 아직 피도 안 마른 손으로 국가를 통치하면 어떤 결과가 올까.    

 

 셋째, 그는 남의 티는 잘 보는 사람이 자신의 들보는 애써 외면하는 이중 인격자다. 타인의 사소한 의혹에 대해서는 잔인할 정도로 칼을 휘두르는 사람이 자신의 가족과 주변인들이 다수 연루된 비리의혹에 대해서는 구구한 변명과 눈가림으로 비켜가고 있다.

 

 그의 내로남불식 해명은 특히 보수언론의 엄호를 받으며 엉뚱한 방향으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보수언론들은 윤석열 띄우기에 혈안이 돼있다. 다시 말해 문재인 정부를 밀어내기 위해 온갖 악랄한 수단을 다 동원하고 있다. 윤씨는 일종의 대리인이다.     

 

 넷째, 그의 인성(人性)도 그렇다. 자신을 중용한 임명권자(대통령)에게 노골적으로 대들고 할퀴려 든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저버리고 국가의 존엄성마져 마구 흔들었다. 도둑 잡으라고 개를 키웠더니 되레 주인을 물어 뜯으려 한다. 이런 사람이 대권을 잡는다면 자신에게 밉보인 사람은 가차없이 무자비하게 도려낼 것이다. 나라가 편할 리 없다.  

 

 다섯째, 검찰 외에는 뚜렷하게 내세울만한 경력이나 치적도 없다. 그래선지 난데없이 출신지역을 끌어다 대고 있다. 윤씨는 서울 연희동 태생이다. 그런데 갑자기 충청도 연고론을 들먹이고 있다. 부친의 고향이 충남 논산이라며 자기도 충청도 사람인 냥 처신한다. 억지춘향이다. 나도 충청도(대전) 출신이지만 그런 사람을 지지할 생각이 전혀 없다.

 

 직접 연고도 아니고 아버지 고향 운운하는 것은 달리 내세울게 없기 때문이다. 충청도를 무시해도 유분수다. 그들 부자(父子)가 지역발전을 위해 무엇을 했단 말인지. 충청도 수준을 그 정도로밖에는 보지 않는다는 말이다. 만약 그가 대권을 잡는다면 고질적인 지역 편가르기가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여섯째, 야권도 한심하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승리하더니 이젠 눈에 보이는 것이 없나 보다. 올해 81세인 야당 비대위원장이란 사람이 하는 말이 가관이다. “윤석열을 만나보고 대통령감이 되면 밀어주겠다”. 자기가 밀어주면 대통령을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한마디로 코미디다. 누가 누굴 대통령으로 만들어주겠다는 것인가. 지금 야당엔 대통령감이 없다는 말로 밖에는 해석되지 않는다.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선거에서 여당이 패한 것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로 현 정부에 대한 비판론이 거세진 시점에서 진 것이지 야당이 좋아서 그런 것도 아니다.

 

0…지금 문재인 정부 지지율은 바닥을 헤매고 있다. 무엇보다 부동산 고삐를 잡지 못한 원인이 가장 크다. 그런데 이는 사실 전 정권에서 마구잡이로 풀어준 부동산 관련 정책의 폐해를 고스란히 떠안은 결과이다. 규제들이 다 풀어진 상태에서 정권을 받았기 때문에 막대한 자금이 부동산으로 몰리는 시점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런 해명은 설득력이 없다. 현 상태로 간다면 내년 대선에서 정권을 빼앗길 가능성이 적지 않아 저으기 걱정된다. 특히 윤석열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돼선 안된다.   

 

 사람 잡아넣는 선수인 윤씨가 만약 정권을 잡는다면? 손에 묻은 피가 채 마르지도 않은 상태에서 생사람을 잡아 엮기 시작할 경우 대한민국은 또다시 피바람이 불 것이고, 그러면 성난 민중이 다시 들고 일어날 것이다. 4년 전엔 촛불이었지만 다음엔 횃불이 될지도 모른다. 이런 비극의 연속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윤씨는 자중자애하고 대선 불출마를 선언해야 할 것이다.

 

 윤씨가 보수언론이 부추긴 물거품과도 같은 순간적 지지율에 도취돼 스스로 판단을 그르친다면 대한민국에 큰 누를 끼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윤씨는 자신에 대한 신비주의가 최고 정점에 달한 이즈음에서 조용히 물러나는 것이 역사에 순응하는 길일 것이다.   (사장)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ywlee
ywlee
87652
9183
2021-04-22
하얀 목련- 잔인한 사월의 단상

 

 

 ‘April is the cruelest month, breeding/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Memory and desire, stirring/ Dull roots with spring rain/ Winter kept us warm, covering/ Earth in forgetful snow, feeding/ A little life with dried tubers…’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네/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뿌리로 약간의 목숨을 남겨 주었네…)

 

 내가 대학 영문과 2학년 때 수강한 시가 바로 난해하기로 유명한 T.S. 엘리어트의 ‘The Waste Land’(황무지)였다. 위는 이 시의 서문에 해당하는 ‘The Burial of the Dead’(죽은 자의 매장)으로 4월이면 많은 사람들이 첫구절을 즐겨 인용한다.

 

 희망과 꿈으로 부풀어야 할 새 봄 4월이 왜 이렇게 잔인한 계절로 인식되게 됐을까. 그것은 각자  마음속으로 느낄 나름이겠지만, 혹독한 겨울추위 끝에 봄이 오면 무언가 좋은 일만 있을 것처럼 기대가 넘쳤지만 막상 현실은 꼭 그렇지만도 않기에 그런 것 아닐까.

 

 특히 한국에서 4월은 별로 좋은 기억이 없었다. 대표적인 4.19학생혁명(1960)을 비롯해 제주 4.3 비극(1948)을 거쳐 4.16 세월호 참사(2014)까지, 봄을 찬양만 하기엔 처연한 장면들이 더 많았다. 이래서 한국 청년들 사이에서 4월은 잔인한 달로 여겨졌다. 매년 이맘때 캠퍼스 언덕에 피어있던 하얀 목련들이 아련하게 다가온다.

 

0…시인 묵객(墨客)들이 가장 많이 소재로 삼은 계절은 봄, 월별로는 4월, 꽃으로는 목련이 아닐까 한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 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박목월 시인의 이 노래는 지금 들어도 마냥 가슴이 설렌다. 4월이 오면 어김없이 생각난다.

 

 봄의 전령사 목련(木蓮)은 이른 봄 하얗게 피는 꽃이 마치 나무에 피는 연(蓮)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눈보라와 찬바람을 견디며 봄을 기다린 목련은 단아한 유백색의 꽃을 피운다. 하얗고 커다란 꽃잎은 화려함을 내세우지 않기에 고결한 기품이 더 돋보인다.

 

 목련은 여러 이름을 갖고 있다. 옥같이 깨끗한 나무라 해서 옥수(玉樹), 꼭 오므리고 있는 꽃망울의 모습이 붓을 닮았다 해서 목필(木筆), 봄소식을 가장 먼저 전한다 해서 영춘화(迎春花), 보라색의 자목련은 봄이 끝나갈 무렵에 핀다 하여 망춘화(亡春花)라 한다.

 

 특히 대부분의 꽃들이 태양을 바라보며 남쪽을 향해 피는 것과 달리 목련은 북쪽을 향하고 있어 북향화(北向花)라고도 한다. 꽃봉오리 아랫부분에 남쪽의 따뜻한 햇볕이 먼저 닿으면서 세포분열이 반대편보다 빠르고 튼튼하게 자란 탓에 꽃봉오리가 북쪽을 향하게 된다고 한다.

 

0…‘부활과 고귀함'이라는 꽃말을 가진 목련. 이를 소재로 한 시와 노래도 무척 많다. 희고 순결한 목련과 봄의 정감을 주제로 한 많은 노래 중에도 빼놓을 수 없는 노래가 있다. 이맘때 가장 많이 듣고 부르게 되는 양희은의 '하얀 목련'이다.

 

 "하얀 목련이 필 때면 다시 생각나는 사람/ 봄비 내린 거리마다 슬픈 그대 뒷모습/ 하얀 눈이 내리던 어느 날 우리 따스한 기억들/ 언제까지 내 사랑이어라 내 사랑이어라//…그대 떠난 봄처럼 다시 목련은 피어나고/ 아픈 가슴 빈자리엔 하얀 목련이 진다···"

 

 김희갑씨가 작곡하고 양희은이 직접 작사한 이 노래에는 양희은(68)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겨 있다. 1982년 봄, 당시 서른살의 양희은은 3개월 시한부 난소암 판정을 받는다. 투병 중에 친구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오늘 너와 같은 병으로 세상을 뜬 여자의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넌 잘 싸우고 있니? 봄비 맞아 목련이 툭툭 지고 있다…”

 

 편지를 읽은 양희은이 병실에서 창밖을 내다보는데 거기에 하얀목련이 눈부시게 피어나고 있었다. 양희은은 북받치는 감정으로 단숨에 노랫말을 써내려 갔다. “내 인생에 마지막이 될 노래”라 생각하고. 유서처럼 써내려간 가사는 작곡가 김희갑 씨에게 넘겨졌고 곧 이어 태어난 곡이 불후의 명곡 ‘하얀 목련’이다.

 

 양희은은 이에 앞서 데뷔곡 ‘아침이슬’이 방송금지곡으로 묶인데 이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도 가사가 퇴폐적이라며 금지곡이 돼 마음고생이 무척 컸다. 노래를 어떻게 불러야 살 수 있을지 고민하던 그는 의기소침한 가운데 유럽 배낭여행을 떠났다가 14개월 뒤 귀국, 병원에서 난소암 판정을 받았다.

 

 양희은은 ‘하얀 목련’ 취입 후 35살 때 사업가와 결혼, 미국으로 떠났다. 그는 그곳에서 난소암이 기적처럼 나아 1994년 귀국했다. 송창식과 귀국콘서트를 연 그녀는 무대에서 ‘하얀목련’을 부르며 오열해 관객들을 울렸다.

 

0…목련과 함께 왔던 봄이 어느새 낙화(落花)되어 지고 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했듯, 봄은 오는 듯 마는 듯, 존재하는 듯 마는 듯하다 가버리기에 더욱 아쉽다.

 

 코로나로 일상의 소중함을 잃어버린 지 1년이 넘었다. 그날이 그날 같았던 소소한 날들마저도 몹시 그리운 요즘이다. 그대 떠난 봄처럼 다시 목련이 피어나는 평범한 일상이 소생하길 기대한다. (사장)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ywlee
ywlee
87523
9183
2021-04-15
인종의 그늘-마음가짐부터 당당해져야

 

▲아시안 증오범죄 반대 집회를 벌이고 있는 미국 젊은이들

  

 인종(민족)과 관련한 분쟁과 수난은 인류의 탄생 초기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중 유대인들처럼 오랜 세월 고난을 당한 민족도 드물 것이다. 구약시대 유대인은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다 모세의 인도로 탈출, 가나안에 정착했다. 이후 유대인들은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등의 지배를 받다가 로마제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지역으로 흩어져 살았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현지에 동화되지 않고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지키며 살았다. 중세에도 다수가 동화되지 않고 차별을 겪었는데, 이로 인해 천하거나 죄스러운 것으로 여겨지던 금융, 상업, 무역 등에 종사하게 되어 오히려 유대인들은 막대한 자본을 축적하게 된다. 근대에도 차별은 계속됐고 유럽 정치의 극단화 끝에 나치 독일이 주도한 홀로코스트 대학살로 유럽 유대인의 과반수가 죽고 남은 대부분은 미국, 영국, 이스라엘 등으로 이주하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세계의 유대인 인구는 약 1,800만 명 정도였으나 히틀러가 집권하는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로 이후 약 1천만 명 정도로 줄어들었다.

 

 동양에서도 전쟁 등을 통해 타민족을 대량으로 학살하는 만행이 수없이 저질러졌다. 1937년 중일전쟁 때 중국 수도 난징을 점령한 일본군이 중국인 100만여 명을 학살하고 생체실험까지 자행했다. 이에 앞서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혼란의 와중에서 일본 민간인과 군경에 의해 조선인 6,600여 명이 무참히 학살당했다. 일제 강점기 35년간 한국은 피눈물나는 압박과 설움을 겪었다.      

 

0…타인종에 대한 차별이나 배타적 행위는 특히 전쟁이나 전염병 창궐 등 국가가 위기상황에 처했을 때 정치 지도자(특히 독재자)들이 국민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해왔다. 가장 비근한 예가 바로 미국 도널드 트럼프다.   

 

 전직 대통령이라는 칭호가 아까울 정도인 이 인간은 “백인은 좋은 유전자를 가졌다”며 노골적으로 백인우월주의를 부추겼다. 이 자는 극우 분열주의를 통해 미국을 철저히 양분시킴으로써 자신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백인 하층민들을 결집시켰다. 이로 인해 비백인인 흑인과 아시아인들이 주요 공격대상으로 떠올랐다.  

 

 특히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확산되면서 공공의 적 1호 트럼프는 ‘차이나 바이러스’란 극단적인 표현을 거침없이 사용함으로써 아시아인들에 대한 혐오범죄를 선동질했다. 그러잖아도 분풀이 대상을 찾던 저질 백인들이 트럼프의 선동질을 기회로 아시아인들에 대해 노골적인 폭력과 혐오 범죄를 자행하기 시작했다.   

 

0…미국은 반아시안 정서가 확산되면서 한인들 피해도 급증하고 있다. 동양계 사람들은 거리를 돌아다니기가 겁날 정도다. 지난 1년 동안 미 전역에서 일어난 반아시안 폭력사건은 확인된 것만 110건이 넘고 피해 숫자는 갈수록 늘고 있다. 주로 백인과 흑인들인 가해자들은 “너는 (코로나에) 감염됐다” “중국으로 돌아가라” “바이러스를 여기 가져온 건 너다” 등의 혐오발언을 뱉어내고 있다.

 

 트럼프가 쫓겨나다시피 권좌에서 내려왔지만 그가 남긴 악질 유산은 여전히 남아 있다. 바이든  취임 이후에도 미-중 갈등이 계속되면서 중국에 대한 반감도 오히려 고조되고 있다. 바이든은 백악관에 ‘아시아계 증오범죄 해결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신설하고 대책 마련에 나서겠다고 하지만 백인우월주의자들의 마음을 움직일지 의문이다.

 

 세계의 리더를 자처하는 미국. 하지만 갈갈이 찢긴 자국민 통합도 이루어내지 못하면서 중국이나 북한, 미얀마 등을 향해 인권을 말할 자격이 있는가. 미국은 우선 바이든 말대로 "차별을 가능하게 하는 법과 국민의 마음을 바꿔야 한다." 사람이 아니라 증오가 공동체를 파괴하는 바이러스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0…인종범죄는 전파력이 강해 모방범죄로 번질 우려가 크다. 미국발 증오범죄가 이웃 캐나다를 비롯해 유럽 전역으로 퍼져가고 있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축구선수 손흥민이 당한 악플 세례 수모는 우리를 경악케 한다. 온갖 다인종이 모여 사는 유럽에서 아시안과 한국인을 향해 이런 공격이 퍼부어졌다는 사실이 놀랍다.     

        

 제노포비아(Xenophobia: 외국인 혐오증)는 이민자들이 흔히 겪을 수 있는 현상이란 점에서 남의 일이 아니다. 나 역시 이민자로서 느끼는 소회가  많다. 20년 째 소위 선진국이란 데서 살고 있지만 솔직히 머릿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인종편견은 지우기 어렵다. 허여멀건한 피부와 얼굴윤곽 뚜렷한 백인들이 모인 곳에 가면 아무리 당당하려 해도 왠지 주눅부터 들고 언어문제로 버벅거릴 땐 위축되기 일쑤다.

 

 반면 외모가 거므스레하고 한국보다 못사는 나라 출신의 사람을 만나면 슬며시 우월의식이 나타난다. 서양 레스토랑에선 메뉴 주문에서부터 움츠러드는 반면, 중국식당이나 월남국수집 같은 곳에선 말이 안 통해도 마음은 편하다. 근원을 따져보면 역시 인종에 대한 허접한 우월의식 때문이다. 인종차별은 이처럼 이율배반적이고 모순적이다.

 

0…현재 해외에 나와 살고 있는 한민족 동포는 줄잡아 800여만 명. 이들이 외국에서 차별받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려면 먼저 스스로의 (경제적, 언어적)실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현지인에게 무시당하지 않는다. 심리적으로 자신만만하면 어떤 상황에도 굳건히 대처할 수 있다.   

 

 또한 혐오범죄는 소외에서 비롯되는 측면이 크다. 따라서 현지사회와 적극적으로 어울리는 것도 중요하다. 이질적으로 행동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동화돼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정치적 역량을 키우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 결국 동족 정치인이 많아야 이민자의 위상도 굳건해진다.   (사장)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ywlee
ywlee
87394
9183
2021-04-08
빛바랜 앨범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 

 

 나는 여섯 살에 아버지를 여의었기에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나 추억이 거의 없거니와 아버지라는 용어 자체가 어색하다. 그 이름을 불러본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 친구들이 아버지와  함께 다니거나 아버지 덕택에 잘 된 것을 보면 무척 부러웠다. 한편으로 “왜 우리 아버지는 그렇게 일찍 돌아가셨나” 속으로 원망도 했다. 지금도 부친의 후광으로 떵떵거리며 사는 계층에 본능적인 반감을 갖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이 나이토록 아버지라는 이름을 아예 잊고 살아왔다. 그런데 최근 우연히 빛바랜 사진첩들을 뒤적이다가 노랗게 색이 변한 옛날 사진들을 보노라니 새삼 눈에 띄는 장면들이 몇개 있었다. 바로 내가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들이었다. 갓난아기 때부터 너댓 살 무렵까지인 것 같은데 너무도 새삼스러워 한참을 들여다 보았다.

 

0…그러면서 불현듯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아, 나에게도 아버지가 있었구나. 그런데 왜 나는 그동안 아버지 생각을 안하고 살아왔을까? 아버지라는 존재가 전혀 없었던 것마냥…” 그것은 아마도 먹고 사는데 열중하느라 옛 생각을 안했기 때문었을까. 그리고 이내 안도의 한숨을 쉬어본다. 나에게도 아버지가 있었다!           

 

 사진 속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멋진 신사숙녀였다. 아버지는 예전 구세대답지 않게 하이칼라 머리에 와이셔츠와 넥타이를 맨 세련된 모습이었다. 언젠가 친구들과의 계모임에 참석할 때 나와 어머니를 함께 데리고 간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호탕하게 웃으시는 얼굴에서 쾌남아 인상을 짙게 풍긴다. 단아하신 어머니는 내 평생 보아온 모습과 똑같다.       

  

 아버지는 일제시대 일본으로 건너가 세탁소 일을 하시다가 해방 후 귀국하셔서도 그 일을 하셨다고 어머니에게서 들었다. 아버지는 내가 여섯살 때 집에서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하시더니 너무 고통스러워 병원으로 실려 가셨다. 진단 결과 급성 복막염인데 시간이 너무 지나 손을 쓸 수가 없다고 다시 돌아오셨다. 그 몇시간 후 아버지는 참으로 허망하게 돌아가셨다.  

 

 요즘같은 시대엔 병이라고 할 것도 없는 질환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 당시 정확한 연세는 모르지만 내가 여섯살 때이니 40대 중.후반 정도 됐을 것이다. 부질없는 상상이지만 만약 아버지가 조금만 더 사시어 내가 중.고등학교라도 마치는 것을 보셨더라면 나의 운명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내가 건강에 신경을 쓰는 이유도 나의 자식들만큼은 아버지가 오래 함께 있어 좋은 추억거리들을 많이 만들어주고 싶기 때문이다.

 

0…빛바랜 앨범 속에는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두 형님과 두 누님 등 5남매 가족들의 사진도 들어 있다. 우리 형제 중에는 둘째형님이 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았다. 나는 막내로 태어난데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면서 가족들의 동정심 때문인지 형님 누님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내 천성이   마음이 여리고 인내심이 부족한 것은 그런 가정환경 때문이라 생각된다.   

 

 대전 고향집 감나무 아래 평상에서 찍은 가족사진을 보자니 마냥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사진에 들어있는 분들 가운데 어머니와 큰형님, 큰매형은 이 세상에 없다. 그 대신 코흘리개였던 조카들이 결혼을 해서 자식들을 낳아 그 빈자리를 채워가고 있다. 세월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빛바랜 앨범 속에는 우리 부부와 아이들의 추억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처녀시절 나의 아내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이국적인 미모에 겸손하고 다소곳한 언행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아내의 처녀시절 사진을 보면서 나는 가끔 농담을 한다. “키만 조금 더 컸더라면 나같은 사람 안 만나도 잘 나갔을텐데…”

 

0…우리들의 약혼과 결혼사진을 보니 참 새삼스럽다. 약혼식 날 양가 부모님과 친구들 앞에서 부른 노래가 하필 ‘아침이슬’이었으니 분위기를 망쳐버렸다. 그후 엉겁결에 결혼식을 하고 신혼살림을 차리고 아이들 낳아 기르며 쏜살같이 지나가버린 시간들이 무척 새롭다.

 

 우리의 그간 생활은 크게 고생한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크게 발전한 것도 없는 평범한 일상의 연속이었다. 만약 신혼생활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아내에게 한층 더 잘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사진첩에는 나의 풋풋했던 학창시절 추억들도 다소곤히 담겨있다. 꿈많고 위풍당당했던(?) 그 사진이 나였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특히 고교 졸업 후 딱 1년간 체험한 사관학교 시절이 평생의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이 신기하다. 그대로 군문(軍門)에 머물렀다면 나는 무엇이 됐을까.  

 

 달콤한 추억과 함께 너무도 보고 싶은 친구의 얼굴이 있다. 친형제 이상으로 가깝게 지냈던 친구가 지금은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에 눈시울이 붉어져 온다. 죽마고우와 한여름날 물장구 치며 천렵을 즐기던 사진을 보니 온갖 회한이 밀려온다. 젊었던 친구의 아내는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0…빛바랜 사진첩을 뒤적이다 보니 현재의 나 자신을 되돌아볼 기회가 됐다. 현실이 각박하고 피곤할 때는 가끔 아름답던 옛추억에 잠겨보는 것도 정신건강상 좋다고 한다. 마냥 푸르고 천진했던 어린시절 고향의 추억, 사랑하는 사람과의 꿈결같은 만남들을 회상하다보면 답답했던 마음이 한결 부드럽게 풀리고 여유도 생긴다. 추억은 바로 현실의 힘이라지 않는가.     (사장)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ywlee
ywlee
87282
9183
2021-04-01
삶이 힘드십니까-이런 인생도 있습니다(2)

 

▲굶주림에 지친 북한 어린이가 쓰레기통 주변에 떨어진 밥을 주워먹고 있는 모습(사진: 중국 탈북자 단체)

 

(지난 호에 이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아현(가명)씨의 50여 년 인생 스토리를 짧은 지면에 다 옮길 수는 없다. 첫아들을 삼킨 무정한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다시 미얀마와 라오스, 태국의 난민수용소를 거쳐 한국으로 오기까지 생과 사의 고비를 수없이 넘나들었고 그때마다 그녀는 기적처럼 살아났다. 그녀의 삶 자체가 순간순간 한편의 스릴러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하고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마을사람들이 줄줄이 굶어서 죽어나가는 처절한 현실을 목격하면서 그녀는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 쳐야 했고 장바닥에서 만난 친지 집에 얹혀 살다가 졸지에 솥도둑으로 몰려 무수한 발길질을 당할 때는 이대로 살아간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쥐약을 입에 넣을 직전까지 가는, 그야말로 삶에 대해  추호의 미련도 없는 극한으로 내몰렸다.

 

0…이씨가 자신의 가혹한 고난과 역경이 고스란히 담긴 자서전을 썼다. 책은 아직 출판되지 않았다. 그녀가 최근 내게 건네준 초본을 읽으면서 이는 흔한 탈북수기 정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불행한 나라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극한 고난을 겪을 터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대처하고 극복해가느냐가 중요할 것이다.      

 

 “우리 삶의 터전은 전쟁터였다” “죽음의 먹구름이 몰려오다” “풍지박살난 신혼생활” “굶주림의 공포 속에 테어난 아들” “유랑의 길에 오르다” “나는 훔치지 않았다” “잔인한 여름밤의 악몽” “죽음의 강 압록강” “보위부 감옥” “깨어진 환상” “공포와 두려움은 언제 끝나나”… 책의 소제목만 보아도 그녀의 모진 고난을 짐작할 수 있다.

 

 두 번에 걸친 결혼생활 실패, 그것도 따지고 보면 원수같은 가난이 원인이었다. ‘가난이 창문으로 들어오면 행복은 대문으로 나간다’는 말이 있듯,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극빈생활에서 행복이 있을 리 없다. 그녀의 잘못이라면 나라를 잘못 태어난 죄밖에 없다. 그것은 북한주민 모두가 마찬가지다.         

 

0…와중에 그녀는 따스한 인간사랑을 잊지 않는다. 정다웠던 친구를 생각하며 부른 노래는 가슴을 아리게 한다. “인생길에 상봉과 이별 그 얼마나 많으랴. 헤어진대도 헤어진대도 심장 속에 남는 이 있네. 아, 그런 사람 나는 소중해…”  

 

 이씨는 지난해 토론토 친지의 소개로 알게 됐는데 무척 활달하고 적극성이 있어 보였다. 그동안 극한의 역경을 헤쳐왔기에 어떤 일도 두렵거나 무서워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고난과 역경은 사람을 강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녀는 중국 길거리의 점쟁이 말대로 앞으로 (캐나다 땅에서) 당당하고 멋지게 살아갈 것이라 확신한다.

         

 이씨는 자서전을 최종 교정 중에 있으며 출판사도 섭외하고 있다. 특히 책을 하루 빨리 영문으로 번역해줄 사람을 찾고 있다. 그녀가 영문판을 만들려는 것은 이 책을 현재의 낭군에게 읽게 하고 싶어서다. 포르투갈-캐네디언인 현 남편은 이씨 모자(母子)가 캐나다 이민을 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은인이기도 하다.  

 

 그녀는 나아가 자신의 삶을 다큐영화로도 만들 생각이다. 이에 지난주 나와 이씨는 토론토의 젊은 영화감독 신대근씨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신 감독은 부친이 이북출신이어서 그녀의 자서전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며 영화제작에 의욕을 보였다. 부디 좋은 결실이 맺어져 북한에 대한 실상이 상세하게 알려지길 바란다.

 

0…”끼니를 굶는다는 말을 이해 못할 정도로 원하는 걸 아무때나 먹을 수 있는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 곳곳, 특히 북한에서는 기아에 시달려 무수한 어린 목숨들이 사라져가고 있다. 북한 인민들이 최소한 배고픔만이라도 느끼지 않을 만큼의 세상이 와주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그녀의 조국 북한에 대한 사랑과 애정은 변할 수가 없다.

     

 사실 탈북자들에 대한 시선은 제각각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보수-진보의 이념에 따라 해석을 달리 한다. 그것은 정계로 진출한 일부 인사들 때문이기도 하다. 이들은 북한 내부사정에 정통한듯 처신하며 ‘정보장사’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씨의 자서전은 정치적 색채를 떠나 민초들의 시각에서 진솔하게 쓴 것이기에 감동적이고 어떤 정치적 구호보다 설득력이 있다.  

 

0…이씨는 말미에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인간의 기본적 권리, 또 내가 갖고 있는 가정, 건강, 행복이 거저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지, 또 내가 얼마나 오랜 세월을 겪으며 엄청난 희생과 댓가를 치르고서야 손에 넣을 수 있었는지 이 책을 쓰면서 돌이켜볼 수 있었다.”….

 

 특히 죽음이 앞에 닥쳐오고 삶이 끝장날 것 같은 위기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모든 고난들을 이겨내 여기까지 오게된 나의 경험들이 현재 죄절과 절망을 느끼며 심지어 삶을 포기하려는 사람들에게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메기지를 안겨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뿌리 뽑힌 나무가 캐나다 땅에서 다시 견고하게 뿌리를 내릴 것이라는 의미로 제목도 ‘뿌리 뽑힌 나무’로 정할 예정이다. 영문은 ‘A Woman From The North’. 

      

 현재 삶이 힘들고 고달프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이 책을 읽어보실 것을 권한다. 인간으로서 누릴 최소한의 조건만 주어진다면 그 어떤 난관이나 절망도 헤쳐나갈 수 있음을 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되리라 믿는다.   (사장)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ywlee
ywlee
87173
9183
2021-03-25
삶이 힘드십니까-이런 인생도 있습니다(1)

▲압록강을 건너다 익사한 한 탈북자의 시신(사진: 중국 탈북자 단체)

 

 “언젠가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신은 자신이 어느 나라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 이 질문은 내가 캐나다 사람, 혹은 한국사람, 아니면 북한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 즉 나의 국가적 정체성이 무엇인가 라는 물음이었다…

 

 “나는 캐나다 시민권자가 되고 싶고 또 그렇게 될 것이지만 그렇다고 캐네디언은 아니다. 현재는  대한민국 시민이지만 그렇다고 한국사람이라고 하기엔 무언가 그것도 아닌 것 같다. 그럼 나는 북한사람인가? 나는 아마도 그런 것 같다. 내가 원하지 않았지만 난 북한사람이다. 왜냐 하면 나의 뿌리가 북한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삶이 그 누구보다 가장 특별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왜냐 하면 나라는 존재는 이 세상에 단 하나 뿐이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만난 이 여성의 삶은 아무래도 너무 특이하다.

 

0…올해 50대 초반인 이아현(가명)씨. 그녀는 북한에서 26년, 중국에서 10년, 한국에서 4년을 살다 10년 전 캐나다로 왔다. 이력만 대충 봐도 고단한 가시밭길 여정을 짐작할 수 있다.  

 

 1970년 초 평양에서 태어난 그녀는 여섯살 때까지 평양에서 살았다. 부모는 둘 다 대학을 나온 지식층이었다. 특히 두뇌가 명석했던 어머니는 김일성 종합대학 국문과를 나온 인텔리로 집안이 모두 공부를 잘했단다. 어머니가 고등학교 국어교사였던 관계로 이씨는 소녀시절 세계명작 문학작품을 두루 섭렵했고 탄탄한 문장실력도 쌓을 수 있었다.

 

 이씨는 어머니의 핏줄을 받아 머리가 좋았다. 하지만 북한에서 지식인들은 하나같이 가난하고 궁핍하게 살았고 오히려 대학을 안 나온 사람들이 군대나 보위부 같은 권력기관에 있으면 더 잘 사는 것을 보고 그녀는 일부러 대학을 안 가려고 공부를 안했다고 한다. 그러나 나중에 어머니의  권유에 따라 교원양성소를 나와 잠시 유치원 교사일을 하기도 했다.

 

0…이씨 가족은 평양에서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함경도 시골로 쫓겨가게 됐다. 6.25때 행방불명된 큰아버지 때문이었다. 이씨가 한번도 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그 분 때문에 이씨네는 불순분자 가족으로 찍혀 ‘혁명의 수도’ 평양에서 살 수가 없었다. 이때부터 이씨 가족의 가시밭길이 시작된다.  

 

 이씨 부모는 궁벽한 시골에서도 국가(김일성과 김정일)를 위해 충성을 다 바쳐 밤낮없이 일했다.  이에 둘 다 당원이 된 부모를 따라 아버지 고향인 함경남도 해안도시로 이사를 가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이씨는 열악한 환경에도 공부를 잘했다. 시골에서 도시로 이사가 한동안 고생도 했으나 이내 전교 1등으로 올라섰다.

 

 중고교 시절 그녀는 군대와 똑같은 단체합숙훈련, 천리길 행군 등을 체험했고 고교졸업 후에는  수산사업소에서 총을 맨 보초병으로 취직해 근무하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주민 300여만 명이 굶주리다 죽어가는 비참한 현실 속에 그녀 가족들 역시 찢어지게 가난한 환경은 오로지 먹을 것만 해결되면 바랄게 없는 벼랑 끝으로 몰렸다.       

 

0…이씨는 한동네의 가난한 집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으나 극도의 가난은 신혼생활의 단란한 꿈을 허락하지 않았고 시댁과의 갈등까지 겹쳐 이내 만정이 떨어지고 말았다. 거리에서 구걸까지 해야 하는 생활로는 더 이상 사는 의미가 없었고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란 각오 아래 1살짜리 아들과 함께 중국으로 건너가기로 마음 먹었다.    

 

 그녀는 한밤중에 갓난아기를 안고 압록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그러나 발이 미끄러져 강물 속으로   쓰러지는 바람에 아기를 놓치고 말았다. 아기는 강물에 휩쓸려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이때부터 그녀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렇게 첫아들을 잃고난 그녀에게는 이 세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고통스런 일들만 줄줄이 일어났다.

 

 북한 경비대에 체포됐다 풀려난 그녀는 아들까지 잃고난 마당에 더 이상 북한땅에 살 이유가 없다고 거듭 마음을 다잡고 이번엔 혼자서 탈북을 감행한다.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며 겨우 도착한 중국땅. 그러나 북-중 국경지대에서는 북한으로 다시 잡혀갈 상황이 도처에 산재했고 그녀는 어떻게든 북한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에 얼굴도 모르는 중국 남자와 결혼을 약속하고 길을 떠난다.

 

0…하지만 나이도 속여가며 만난 그 남자는 가난이 찌든 시골에서 너무도 궁핍했고 이씨의 고생은 그칠 줄을 몰랐다. 이 와중에 아기가 태어났고 그녀는 지긋지긋한 가난을 피해 보려고 어린 아들과 둘이 도시(칭다오)로 나와 닥치는대로 일을 했다.

 

 그녀는 마침내 천신만고 끝에 마음씨 좋은 친지 덕택에 아파트도 마련했고 그럭저럭 자리도 잡혀갔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물듯이 무수한 극한상황을 딛고 그녀는 오뚝이처럼 일어났다. 처참한 북한과 중국에서의 밑바닥 생활, 억울하게 도둑으로 몰려 죽도록 얻어맞고 울부짖던 일… 그녀가 생존해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기적이었다.      

 

 그러나 중국에서 언제까지 탈북자라는 불안한 신분으로 살아갈 수는 없었다. 그녀는 마침내 꿈에도 그리던 한국으로 가기로 결심한다. 꿈에도 그리던 대한민국! 그러나 한국에서의 생활은 텔레비전에서 보던 것처럼 그렇게 녹록지가 않았다. 여기서도 고난은 계속됐다. (다음 호에 계속) (사장)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ywlee
ywlee
87029
9183
2021-03-18
아침형 인간-서머타임을 즐기자

 


 

 지난 14일(일)부터 캐나다와 미국에 일광절약시간제(Daylight saving time, 서머타임)가 시작됐다. 서머타임은 1905년 미국의 한 건설업자에 의해 제안돼 1차대전을 거쳐 유럽에서부터 시행되기 시작했다. 미국과 캐나다는 효율성을 놓고 반대 의견이 많아 시행과 폐지를 반복하다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실시됐다.

 

 그러나 주(州)에 따라서는 이를 시행하지 않는 지역도 있다(미국 하와이, 아리조나, 캐나다 사스캐처완 등).

 

 서머타임은 그동안 존속 여부를 놓고 논란을 벌여왔다. 낮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고 에너지를 절약하자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일년에 두 차례씩 시계를 인위적으로 돌려놓아야 하는 불편함과   사람의 생체리듬에도 이롭지 않기 때문에 이를 폐지 또는 일원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높았다.

 

 이에 온타리오 주의회는 지난해 서머타임을 연중 그대로 적용하자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이것이 시행되려면 같은 시간대인 퀘벡주와 뉴욕주 등이 동의해야 한다. 온타리오만 시행하면 혼란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서머타임은 특히 아침잠이 많은 사람들에게 고역이다. 1시간을 일찍 일어나야 하니 힘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무척 피곤하다고 하지만 나는 전혀 문제가 없다. 나는 일찍 일어나 활동하는 전형적인 ‘아침형 인간’이기 때문이다.                                    

 

0…‘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소 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재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니.’(남구만(南九萬) ‘동창이 밝았느냐’).

 

 이 시조에는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아침잠에 빠져있는 게으른 머슴의 모습이 목가적(牧歌的)으로 잘 그려져 있다. 예전 농경시대 사람들은 하루종일 논밭에 나가 일하다 저녁때 집에 돌아오면 밥숟가락 놓기가 바쁘게 곤한 잠에 빠졌다. 그 시대엔 달리 오락거리도 없었으니 일찍 잠자리에 들 수밖에 없었을 터이다. 지금도 나같은 시골 출신들이 대체로 초저녁 잠이 많은 것은 자라온 집안의 생활습관 영향이 큰 때문이다.

 

 나는 시골출신에다 나이까지 들어가는 탓인지 초저녁 잠이 많다. 아내나 아이들은 보통 밤 12시 넘어 잠자리에 들지만 나는 영화 한 편을 다 보기가 어려울 정도로 일찌감치 머리를 꾸벅댄다. 예전엔 초저녁 잠이 많으면 잘 산다고 했다. 그것은 낮에 열심히 일해서 저녁에 무척 피곤하다는 뜻일 게다. 하지만 일찌감치 고개를 꾸벅대는 나를 보고 아내는 “재미없는 시골사람”이라고 투덜대기도 한다.

 

 일찍 잠자리에 드는 덕분에 아침엔 일찍 일어난다. 가끔 저녁 술자리 때문에 늦게 잠자리에 들어도 아침엔 일찍 일어난다. 그래서 직장에 지각하는 일은 거의 없다. 알람시계를 맞춰놓을 것도 없이 새벽에 눈을 뜨면 정확히 5시 50분 경이다. 그래서 나는 직장이든 어떤 약속이든 지각하거나 늦는 사람을 싫어한다. 그런 사람은 대개 게을러 보이고 그래서 신뢰할 수가 없는 것이다.

 

 머리도 아침에 훨씬 잘 돌아간다. 저녁엔 나른하게 졸리워서 기억력도 현격히 떨어지거니와 아무 생각도 하기가 싫다. 그래서 골치 아픈 일이나 꼭 기억해야 할 일들은 다음날 아침에 생각하면 쏙 떠오른다. 내가 생각해도 참 신기하다.

 

 골프도 오전에 치면 점수가 훨씬 잘 나온다. 그래서 누가 오후에 골프를 치자고 하면 별로 내키지가 않는다. 나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아침형 인간’이다.  

 

0…예로부터 새벽에 활동하는 아침형 인간에 대해 긍정적인 말이 더 많다. 서양격언에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사람에겐 건강, 부귀, 지혜가 따른다’(Early to Bed and Early to Rise Makes a Man Healthy, Wealthy, and Wise)는 말이 있다.

 

 수년 전 토론토대학 연구에 따르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종달새(lark)족은 해가 중천에 떠야 일어나는 올빼미(owl)족 보다 행복도가 높았다. 야행성 올빼미 족은 늦은 밤까지의 활동으로 이른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힘들지만 종달새족은 아침 일찍 일어나 여유로운 시간으로 하루를 보내기 때문에 긍정적인 감성과 인생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아침형 인간은 대체로 부지런하고 자기 관리나 절제도 강하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 중에는 대체로 아침형 인간이 많다. 한의학적 관점에서도 인간은 해가 뜨면 일어나 활동하고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드는 것이 자연스럽다. 순환하는 자연과 더불어 생활하는 것이 순리인 것이다.

 

 일설에는 밤에 많이 활동하는 올빼미형 인간이 똑똑하고 지능지수(IQ)도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긴 하다. 연구에 따르면 올빼미형 인간은 새롭고 창조적인 것을 선호해 고도의 인지기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대체로 창의적 성향이 있는 예술가들이 이 유형에 속한다. 유명 작가나 음악가들 중에는 밤을 새워 작품을 창작하는 사람이 많다.

 

0…어쨌든 대체로 아침형 인간에 대한 긍정적인 견해가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베스트셀러  <아침형 인간>(2003)의 저자 사이쇼 히로시는 강조한다.

 

 “아침에 일어나기가 죽도록 싫은가? 매일 반복되는 출근전쟁에서 탈출하고 싶은가? 하루가 한없이 길고 고된가? 직장생활이 두려움의 연속인가? 그렇다면 모든 고민을 날려버릴 ‘아침형 인간’으로 변화하라. 내일 아침부터 30분만 일찍 일어나 보라. 당신의 아침, 당신의 하루, 나아가 당신의 인생을 바꿀 아침형 인간으로 변화하는 첫날의 감동을 맛보라.”    (사장)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ywlee
ywlee
86872
9183
2021-03-11
개를 잘 못 키우면-주인을 물어 뜯는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 TV 프로 중에 ‘개는 훌륭하다’란 것이 있다. 어느날 가족들과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볼수록 재미가 있어 계속 보게 됐다. 성질이 못된 사나운 개를 훈련시켜 온순하게 길들이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전문훈련사 K씨는 이 분야의 유명 스타로 떠올랐다.

 

 이 프로에 등장하는 문제견(犬)들의 공통점은 개 주인과 가족들이 개를 너무 예뻐하고 귀여워한 나머지 버릇이 나빠져 나중에는 도저히 감당이 안될 정도가 돼버리는 것이다. 사나운 맹견 중에는 걸핏하면 주인을 물어뜯는 행패를 저지르고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버리는 등 통제가 불가능한 상황까지 치닫는다.       

          

 우리도 수년 전 말티즈종 하얀 강아지를 사다 길렀다. 생김새나 하는 짓이 너무 귀여워 집에선 온가족의 관심이 강아지에게 집중됐다. 그런데 처음엔 귀엽기만 하던 강아지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말썽을 피우기 시작했다. 대소변을 아무데나 보고 사람이 오면 너무 짖어대 난처하게 만들었다. 그러던 차에 가족들이 모두 일을 나가면서 도저히 강아지를 돌볼 여건이 안돼 이웃집에 넘겨주고 말았다.     

 

0…많은 분들이 개를 길러 보았을 것이다. 어렸을 때는 정말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귀엽다. 사람에게 충직해서 절대로 변심하지 않고 배신하는 일도 없을 것이라 철석같이 믿는다. 그런데 하루이틀 시간이 흐르고 개가 자라면서 달라지기 시작한다. 특히 견종(犬種)에 따라 본성이 나타나는데 순한 개가 있는가 하면 갈수록 사나워지는 개도 많다. 나중엔 통제불능한 상태에서 개에게 끌려다니는 신세가 되는 경우도 많다.

 

 길거리에서 커다란 개가 노려보며 다가오는 모습은 섬뜩하다. 특히 개주인이 연약한 여성이나 노약자인 경우 개에게 쩔쩔 매면서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면 행여 목줄이라도 끊어지면 큰 인명사고가 날 것 같아 조마조마하다. 비공식 통계에 따르면 개가 사람을 물어 사망하는 사고가 미국만 한해 500명, 전세계 사례까지 합치면 2만5천 명에 달한다고 한다.

 

 인간을 개와 비교해선 안될 말이지만 사람도 비슷하다. 인간이나 개나 무조건 너무 예뻐하기만 하면 버릇이 나빠지게 된다. 손주를 너무 귀여워하다 보면 할아버지 수염이 남아나질 않는다는 말도 있다. 서양 속담에 매를 아끼면 아이를 버린다(Spare the rod and spoil the child)란 말도 있다. 그래서 적절한 훈육과 통제가 필요한 것이다.

 

0…난데없는 ‘개소리’를 해서 미안하지만 개를 기르면서 겪는 낭패감과 사회생활에서 만나는 인간관계는 흡사한 점이 많다. 처음엔 상대방을 존중하고 잘 따르지만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본성이 나타나고 급기야 상대방(주인)을 물어뜯는 경우까지 생긴다.  

 

 특히 인간은 함부로 정을 주었다가 배신을 당하는 일이 흔하다. 오냐오냐 대했다가 뒤통수를 맞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인간관계에는 절제가 필요하다.

 

 나는 사람의 첫인상을 중요시하지 않는다. 물론 밝고 환한 첫인상은 사람을 좋게 보이게 하지만 그런 느낌이 끝까지 지속되는 예보다는 다르게 흘러가는 경우가 더 많다. 사람을 잘 못 본 것이다.  처음엔 믿음직하여 정을 주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와 반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인간관계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0…한국에서 지난 2년 여간 온나라를 들쑤셔놓은 검찰총장이란 사람을 보면서 개를 잘못 키우면 이런 꼴이 되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도무지 국가의 위계질서 따위는 무시한 채 눈에 보이는  것도 없이 닥치는대로 치고 받고, 마음에 안들면 온집안을 뒤져서 티끌 하나라도 찾아내려 눈에 불을 켜는 이 사람 때문에 온나라가 공포에 떨었다.        

 상관(법무부 장관)에 비수를 들이대며 억지 강압수사로 정권을 뒤흔들었다. 급기야 그는  임명권자(대통령)를 향해 짖어대며 국가의 체통까지 흔들어댔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대통령의 인사권에 도전하고 지지율을 잠식하고 대통령을 겁박하는 모습을 보며 그야말로 주인을 물어뜯는 개(‘구교주인’-狗咬主人)라는 한탄이 절로 나왔다.

 

 사실 그가 공격한 주인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다.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는 국민을 상대로 한 고도의 정치행위다. 공직자 인선을 잘해 민심의 지지가 높아지든, 잘못된 선택으로 민심이 등을 돌리든, 그 결과는 대통령이 책임질 일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넘볼 수도, 넘봐서도 안 될 금단의 영역을 마구 침범했다.

 

0…그는 정치와 사법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도덕과 법률을 뒤섞고 상식과 이성을 휘젓고 결국 나라를 혼란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통제받지 않는 권력의 폐해가 얼마나 가공(可恐)한 것인지 국민들은 생생히 목도했다.

 

 이 사람은 당초 강직한 이미지 때문에 서열을 뛰어넘어 파격적으로 인선한 것인데 갈수록 기세가  등등해져 마침내 잡으라는 도둑과 강도는 제쳐두고 오히려 뒤돌아서 주인을 물어뜯으려 대드는 개  행사를 하고 있다.  

 

 이 사람이 이제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야욕까지 드러내고 있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설령 이 인간이 정권을 잡는다면 또한번 주인(국민)을 물어뜯는 상황이 올 것이다. 개버릇 남 못 준다는 속담이 있듯 인간의 본성은 언젠가는 드러난다. 다시 ‘구교주인’의 상황이 초래되는 일이 없도록 국민들의 올바른 판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사장)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ywlee
ywlee
86621
9183
2021-03-04
자유와 책임-그릇된 소신의 폐해

 

▲마크 램지어와 문제의 논문

 

 자유(自由)는 사전적 의미로 ‘외부의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법률적 의미로는 ‘법의 범위 안에서 남에게 구속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행위’다.

 

 인간의 최우선 가치는 자유다. 자유를 위해 목숨까지 바친다. 하지만 진정한 자유란 한 사람이 살아감에 있어 취하는 선택과 행동에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의미하기도 한다(The freedom follows responsibilities). 그렇지 않으면 자유로 위장한 무책임과 방종(放縱)에 빠지게 된다.  

 

 자유와 방종은 동전의 양면이다. 남에게 구속 받거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대로 행동한다는 점에선 같은 개념이다. 그러나 자유는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최소한의 전제가 붙지만 방종은 최소한의 제약도 없이 멋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자유를 누린답시고 남한테, 특히 불특정 다수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저지른다면 그것은 방종이요 만행이다.

 

0…자유와 유사한 개념에 민주가 있다.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며 주권도 국민에게 있다는 말이다. 한국 헌법 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 규정하고 2항에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민주국가의 주인인 국민은 아무 통제나 제약없이 자기마음대로 행동해도 된다는 뜻인가. 그건 아니다. 민주국가의 주인으로서 국민은 자기행동에 일정한 책임을 져야 국가체제가 유지돼 나갈 수 있다. “아무렇게나 하든 말든 그건 내 자유”라는 말은 있을 수 없다.

 

 특히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자유와 방종을 구분해야 하는 시험에 들어섰다. 방역당국이 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두기 등을 권고하면서 많은 사람들은 잘 따르고 있지만 일부는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지킨다는 명목 하에 방역수칙을 어겨 다른 이들의 생명과 안전까지 위협하고 있다.

 

 한국은 유난히 언론과 정치적 표현의 자유 운운하며 폭력적이고 선동적 언어를 남발하는 부류가 너무도 많다. 극보수 언론, 정치인, 종교계 등에서 쏟아내는 악랄한 발언들은 소름을 돋게 한다. 방역수칙을 비웃으며 대규모 반정부 집회를 열고 원색적으로 국민과 정부를 이간질하는 목사 탈을 쓴 인간도 있다. 국가차원에서 자중해야 할 사안도 표현의 자유를 들이대며 기를 쓰고 해댄다. 이건 자유가 아니다.

 

0…자유 중에서 가장 악용되는 자유가 바로 언론과 표현, 학문의 미명 하에 자행되는 자유일 것이다. 최근 한국은 물론 전세계 학자들 사이에 큰 논란을 빚고 있는 미 하버드대 교수란 자의 위안부 관련 망언 논문이 전형적인 사례다. 이 사람은 그런 글을 논문이라고 발표한 저의 자체가 의심스럽다.

 

 우선 이 사람의 글은 다양한 자료에 근거한 것으로 포장돼 있지만 관련자료를 인용하면서 내용을 왜곡하거나 중요 부분을 누락하는 등 악의적으로 짜깁기한 정황이 발견됐다. 특히 위안부는 ‘계약 매춘부’였다며 근거로 제시한 자료가 거짓으로 밝혀졌다. 같은 대학 동료 한인교수에 따르면 그의 글은 1930년대 일본 룸살롱 여성들의 계약서 샘플을 위안부 계약서라고 주장하는 글을 인용했다.

 

 계약에 따른 위안부 운영의 증거로 램지어가 제시한 자료에 ‘계약'이 아님을 나타내는 여러 증거가 있었지만 그는 그런 자료는 누락하거나 외면했다. 학문의 요체인 진실 추구와는 거리가 먼 행태다.  학문의 자유는 증거에 기초하고 적절한 근거를 갖추는 책임이 있어야 보장받는 법이다.

 

 전세계 학자들로부터 램지어 논문 철회 서명을 받고 있는 UCLA 교수(경제학)는 램지어가 ‘게임이론’을 토대로 위안부가 계약 매춘부였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끔찍한 잔혹행위를 합법화하기 위한 위장막으로 게임이론과 법, 경제학을 이용했다. 게임이론은 이 논문의 무모한 주장에 신비로운 보호막과 권위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0…경제학 용어인 게임이론은 여러 경제주체가 서로를 이기기 위해 경쟁하는 상황에서 그 결론이 어떻게 도출되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이론이다. 가령 한 기업이 독점하는 시장에 어떤 기업이 새로 진입할지 여부를 결정할 상황이 있을 때 기존 독점자와 신규진입자가 목표를 위해 어떤 전략을 구사할지 조언해주는 이론이다.

 

 학계에서는 램지어가 논문의 주장을 합리화하는 논리로 사용한 게임이론에 오류가 있으며 위안부 문제에 왜 게임이론을 끌어들였는지 의문이라는 반응이다. 게임이론으로 2007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에릭 매스킨 하버드대 교수도 램지어의 비판서명에 동참하며 게임이론을 이용해 역사적 만행을 정당화하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램지어의 논문 출간을 앞두고 이 논문을 검토해달라는 요구를 받은 이스라엘의 저명한 경제학 교수는 특히 이 논문은 태평양전쟁 중 일본군 위안소에서 어린소녀들에게 가해진 성폭행이 합법적 계약이었을 뿐이라는 주장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0…각계의 비판이 빗발치자 램지어는 뒤늦게 “조선인 계약서는 갖고 있지 않다"며 자신의 논문과  관련된 증거가 없다는 사실을 시인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학문의 자유라는 명분을 앞세워 완강하게 버티던 램지어. 초기에 이 문제가 불거졌을 때 하버드대 총장도 학문 자유를 이유로 그의 논문을 옹호했다. 따라서 하버드대도 이번 사태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한심한 것은 한국내 대학교수란 자들까지 나서 램지어의 주장을 ‘학문의 자유’라며 옹호하고 나선 것이다. 이런 인간들 때문에 자유가 왜곡되고 있다. 그릇된 소신과 신념이 인류사회에 끼치는 악영향은 무지(無知)보다도 심각하다.   (사장)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더보기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