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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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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2
타는 목마름으로?-덧없는 변절의 세월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민주주의여/내 머리는 너를 잊은지 오래/내 발길은 너를 잊은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오직 한가닥 있어/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민주주의여…//…숨죽여 흐느끼며/네 이름 남 몰래 쓴다/타는 목마름으로/타는 목마름으로/민주주의여 만세’ (김지하 ‘타는 목마름으로’)
 

 1975년에 발표된 김지하의 시는 당시 민주주의를 갈망하던 대학생과 지식인, 민중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나같은 세대는 이 시를 읽으며 가슴 벅찬 감동을 느꼈고 암울한 조국의 현실에 분노했다.


0…1960년 4·19 혁명 후 학생운동에 참여한 김지하는 1964년 대일 굴욕외교 반대 투쟁으로 불리는 6·3 항쟁에 참가했다가 수감돼 4개월간 첫 옥고를 치렀다. 1969년 시 '황톳길'로 등단한 후 이듬해 풍자시 ‘오적(五賊)'으로 다시 구속되는 필화를 겪기도 했다.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을 배후 조종한 혐의로 군사정권에 붙잡혀 사형선고까지 받았다 풀려나면서 반체제 저항시인의 상징으로 불렸다. ‘타는 목마름으로'는 그의 대표작이다.


 ‘민주주의여 만세'를 외친 이 시는 군부독재에 맞서다 여러 차례 옥살이를 한 그의 저항정신이 담겨 있다. 1980년대 가수 김광석이 시에 곡을 붙여 노래로 만들었고 민주화운동 집회에서 자주 불리기도 했다.


0…나같은 세대에게 김지하는 영웅이었다. 엄혹한 군사독재정권 시절 그의 시를 읽고 많은 민중들이 민주화 투쟁의 의지를 불태웠다.


 그런데 이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웬 ‘생명’ 타령을 늘어놓더니 180도 변(변절)하기 시작했다. 한때  그의 생명사상과 후천개벽 사상이 민주화운동의 정신적·사상적 기반이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반민주 세력에 손을 뻗치기 시작한 것이다.


 “아아, 산다는 것이 왜 이리도 어려운가? 끝끝내 자유천지를 보지 못하고 나 역시 더러운 먹물 시궁창에서 굶주린 개처럼 허덕이다 죽고 말 것인가? 별 뜨듯 꽃 피듯 살날은 그 언제인가?” 1991년 <타는 목마름에서 생명의 바다로>에서 김지하는 이런 서문을 남긴다. 


0…그는 한걸음 더 나가 1991년 신공안정국(노태우 시절 대학생들 분신으로 촉발된 정국)에서 보수언론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는 글을 발표해 민주진영에 엄청난 충격을 안겼다.


 김지하는 “자살은 전염한다. 당신들은 지금 전염을 부채질하고 있다. 열사 호칭과 대규모 장례식으로 연약한 영혼에 대해 끊임없이 죽음을 유혹하는 암시를 보내고 있다"면서 운동권 세력이 연이은 자살을 조장하고 있다고 공격했다.


 심지어 학생들처럼 죽음을 강요당했던 자신의 경험이 스며 있다고까지 주장했다. 그를 든든한 민주화 동지로 여겨온 운동권과 진보진영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고 그가 근거도 없이 자신들을 부도덕한 세력으로 매도하며 군부독재에 아부하는 데 넋을 잃었다.


 김지하는 한술 더 떠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후보를 지지한다고 공개 선언까지 했다. 한 시대의 저항 영웅시인으로 추앙받던 사람이 이렇게 완벽하게 변할 수 있을까 싶었다.


0…당시 운동권 중엔 심재철이란 사람이 있다. 그는 서울대 총학생회장이었고 유시민은 같은 학교 대의원회 의장으로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


 1980년 5월 이맘때 전국 대학생 10만여 명이 전두환 퇴진과 비상계엄 해제를 외치며 서울역 광장에 모였다. 이때 유시민은 여기서 물러서지 말고 강력 저항을 하자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심재철은 반대했다. 학생들은 청와대까지 행진하자고 했으나 심재철은 후퇴를 결정하고 학생들을 해산시켰다.


 질풍노도 같은 저항운동에 찬물을 끼얹은 ‘서울역 회군'으로 민주화의 절호기회를 놓쳤고  전두환의 탄압은 더욱 심해졌다. 결국 사흘 후 5.18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수많은 피를 흘리게 됐다.


 당시 심재철은 겉으로는 민주화운동을 했지만 이미 생각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수많은 민주인사들의 삶이 망가질 때 심재철은 오롯이 양지만 쫓으며 승승장구한다.


0…심재철과 비슷한 인간이 김문수다. 그 역시 한때 노동운동의 중심 활동가였으나 그 후 행보는 사람이 어쩌면 이렇게 철저히 변절할 수 있을까 신기할 정도다.


 2012년에 나온 <와주테이의 박쥐들>(이동형)이란 책이 있다. 와주테이란 국회가 있는 여의도 윤중제(輪中堤)의 일본식 발음인데 시대를 대표하는 변절 정치인들 실체를 박쥐에 비유한 것이다.


 저자는 대표적인 변절자로 김문수, 이재오, 심재철, 손학규 등 6명, 가장 기회주의적 정치인으로 홍준표, 전여옥 등  4명을 꼽았다. 이들의 공통점은 과거 운동권 경력을 가진 자들이 철저히 변절해 보수꼴통 정치인이 되었거나 이른바 뉴라이트가 된 자들이다.
 

 이들은 애당초 보수 정치인들보다 더 악랄하게 민주진영 공격에 앞장선다. “한번 돌아선 자는 그 반대를 향해 끝까지 달려가는 법이다. 누구보다 악독하게 그 자들의 반대편에 설 것이다". 드라마 ‘추노’에 나오는 대사처럼 그들은 더 철저하게 반대편에 서야 입지가 다져지기 때문이다.  


0…이들을 비롯해 한때 민주화운동의 상징으로 추앙받던 김동길과 김지하 등을 보면서 생각한다. 나이를 먹으면 다 저렇게 될까. 나도 저렇게 노망이 들까.   


 많은 논란에 휩싸였던 김지하 씨가 엊그제 눈을 감았다. 요즘따라 오래 살아야 하는 이유가 이런 것이 아닌가 한다. 미운 인간들 모두 앞세우고 느긋하게 뒷짐 지고 따라가기 위해서 말이다.  (사장)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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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05
두 얼굴의 검찰-권력의 시녀 흑역사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사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사법고시 합격자들이 연수원을 수료하고 검사로 임용되면 선배검사들이 후배검사의 기(氣)를 살려준다며 폭탄주 마시는 법부터 가르치는 것이 관례였다. 검사는 무엇보다 위엄과 기개가 있어야 피의자들이 고분고분 말을 잘 듣기 때문에 목에 힘주는 법부터 배웠다. 

      

 그래서 그런지 어떤 피의자든 일단 검사실에 들어오면 기가 죽게 돼있다. 특히 사회적으로 대우받는 데 익숙한 고위 정치인이나 재벌 총수의 경우 검사들은 그들의 기선을 제압할 필요가 있다. 이래서 반말은 보통이고 때론 책상을 내리치거나 손찌검을 하는 것도 예사였다.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대우만 받던 고위층 사람이 아들뻘의 새파란 검사에게 이런 수모를 당하며 밤샘수사를 받고 나오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인간적인 굴욕감에 치를 떨 수밖에 없다. 이래서 개중에 심약(心弱)한 사람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많다.   

 

0…한국의 최고 권력집단으로 군림해온 검찰, 말만 들어도 으스스하다. 언론은 줄여서 검(檢)이라 한다. 그게 더 권위적이고 고압적이다. 사기를 쳐도 다른 곳은 몰라도 검찰이라며 윽박지르면 상대방은 아무 잘못이 없어도 일단 새파랗게 질리고 기가 죽는다.

 

 왜 그럴까. 한번 검찰에 불려가면 패가망신하기 십상이다. 검찰은 (피의자의) 웬만한 신상이나 약점을 상당히 확보한 상태에서 소환하기 때문에 한번 검찰에 들어가면 영락없이 수갑찬 모습으로 나오게 된다. 맨손으로 나오는 모습은 검찰의 자존심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실 죄지은 게 없는 사람은 검찰같은 기관을 무서워 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한국 검찰은 없는 죄도 만들어 생사람을 뒤집어 씌우기 때문에 한번 그 조직에 걸려들면 여간해선 빠져 나오기가 힘들다. 그래서 죄의 유무와 관계없이 검찰에서 부르면 겁을 먹게 돼있다. 

 

 특히 이런 덮어 씌우기 식의 악랄한 수사는 정권에 밉보인 정치인들에게 흔히 사용되는 수법이다.  이래서 검찰을 일컬어 권력의 시녀(侍女)라 하는 것이다.

 

0…유능한 검사는 사람을 많이 잡아 넣는 검사다. 그것도 특수부(특별수사부)에 재직하며 정치인과 사회 고위층, 유명인사를 많이 구속시켜야 출세한다. 이러니 무리한 강압수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윤석열이 대표적이다.   

 

 검찰은 생리적으로 민주니 인권이니 하는 고상한 수사(修辭)와는 거리가 멀다. 그런걸 감안하다간 수사 진척이 안된다. 또한 정치적으론 진보와도 애당초 코드가 맞질 않는다. 따라서 입바른 소리 하는 진보정치인을 엮어 넣으려 혈안이다. 보수정권에 대드는 진보정치인은 검찰의 단골 먹잇감이다.

 

 반면에 검찰은 정권 중에도 보수정권에 한없이 관대하다. 이들은 DNA가 서로 통하기 때문에 보수정객이나 자기네와 한통속인 법조인이 저지르는 웬만한 비위는 그냥 없던 일로 치부해버리고 만다.

 

 이래서 검찰이야말로 강한 자에게 한없이 약하고 약자에겐 끝까지 악랄하게 구는 암적(癌的) 존재란 말이 나오는 것이다.  

 

0…한국 검찰의 근본적 폐단은 기소독점주의에서 비롯된다. 피의자를 제멋대로 수사하고 자기들이 기소한다. 그러니 애당초 수사가 중립적일 수 없다.

 

 2년 전 한국에서 ‘가장 신뢰하는 국가기관’을 묻는 여론조사에서 검찰이 꼴찌를 차지했다(2.2%). 지난 10년 동안 같은 설문에서 검찰은 거의 매번 가장 불신받는 기관으로 지목됐다. 이는 오랜 역사적 경험과 더불어 평범한 사람들이 몸소 겪은 체험 때문이다.

 

 검찰은 미 군정기 이래로 정치권력의 중요한 일부로 군림하며 특히 보수체제 수호에 앞장서온  억압기구다. 그들은 군사독재정권 아래서 무수한 공안사건을 조작해냈다. 중앙정보부 등과 짜고 무고한 민주인사에 대해 무차별 기소를 남발했다. 검찰 손에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이 부지기수다.

 

 반면 검찰은 지배자들의 범죄에 대해서는 한없이 너그러웠다. 1987년 5공 비리 수사는 대부분 혐의 없음, 공소시효 완료 등을 이유로 흐지부지 처리해버렸다. 1994년에는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며 광주학살 수사에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렸다.  

 

 최근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추잡한 성접대를 받은 것이 드러났지만 사법부는 그를 단죄하지 않았다. 검찰의 제식구 봐주기로 기소가 늦어진 탓이다. 이 사건은 검찰 최악의 '흑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0…국회를 통과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은 검찰의 자업자득이다. 정당한 수사라면 당연히 해야 하지만 검찰은 자기네 입맛대로 수사하고 기소여부를 제멋대로 결정했다. 정치적 사안에서 검찰의 손아귀를 벗어난 인사(특히 진보진영)가 없다.

 

 열명의 도둑을 못 잡아도 한명의 억울한 사람을 도둑으로 만드는 실수는 말아야 하거늘, 한국 검찰은 진짜 도둑은 놔두고 생사람만 잡아 범인으로 만드는 탁월한 재주를 갖고 있다. 이러면서 정의와 공정사회를 외치는 것은 낯간지럽다.  

 

 미리 짜여진 틀 안에 피의자를 가두어 놓고 법을 어거지로 짜맞추는 악질 수사는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 캐나다 같은 정상적인 사회에선 검사라는 존재 자체를 의식도 안하고 산다. 한국도 이런 나라가 돼야 한다.

 

 한국엔 유능한 경찰대 출신이 많다. 이들에게 사건 수사를 맡기면 된다. 그동안 엘리트 의식에 절어있던 검사들은 이참에 왜 이렇게 ‘공공의 적’으로 몰리게 되었는지 반성해야 한다. 지금 무슨 할 말이 있다고 분개하는가.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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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28
함께 맞는 봄비- 더불어 사는 세상

 

 

 고 신영복 교수가 쓴 ‘함께 맞는 비' 붓글씨

 

 봄비가 촉촉히 내리는 뜨락에 서서 파릇파릇 올라오는 잔디와 튤립 새싹들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거센 눈보라와 얼어붙은 대지의 땅을 뚫고 기어이 올라 오고야 마는 그 놀라운 생명력에 새삼 경외감을 느낀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날엔 우산없이 그냥 거리를 걸어보고 싶을 때가 있다. 어느 시인은 ‘여름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지만 봄비는 둥글둥글 내리는 꿀비, 단비, 약비, 복비… 풀 나뭇잎 파릇파릇 돋우는 녹우(綠雨)’라고 했잖은가.

 

0…우산 없이 처량하게 비를 맞고 간다면 사람들은 어떤 생각들을 할까. 실연(失戀) 당한 사람? 마음이 몹시 울적한 사람? 혼자 비를 맞고 가는 사람은 그다지 행복한 상황은 아닐 가능성이 크다. 그럴 때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작은 우산이지만 함께 쓰도록 받쳐줄까, 아니면…

 

 이에 고 신영복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혼자 비를 맞고 가면 처량합니다. 그러나 친구와 함께 맞으며 걸어가면 덜 처량합니다.” 즉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위로하는 것은 그와 같은 처지가 되어 주는 것이다. 처지가 같지 않고 정이 같지 않은 사람의 동정은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경우를 흔히 본다. 배우자를 잃은 사람에게, 또는 극도의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무조건 ‘힘을 내라’고만 하면 그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차라리 함께 실컷 울어주는 것이  위안이 될 수 있다.

 

 한 계단도 오르기 어려운 장애인에게 “하면 된다”고 몰아부치는 것은 도움도 격려도 아니다. 조금 느리더라도 다른 우회길을 함께 이야기 하면서 가주는 것이 진정한 도움이다. 

 

 신교수는 비를 맞는 사람에게 우산을 받쳐주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물질적 도움을 주면 우선 당장은 작은 위안이 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동정받는 사람에게 상심(傷心)이 된다 했다. 동정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가 동정받는 처지에 있다는 사실을 한번 더 확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래서 ‘함께 맞는 비'는 신교수가 즐겨 쓰던 붓글씨 문구였다.

0…지난 2016년 1월에 세상을 뜬 시대의 참 지성 신영복 교수. 논어, 맹자, 장자, 노자를 비롯해 동서양의 근현대사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지식을 고뇌어린 성찰과 인간에 대한 한없는 사랑으로 투영해낸 그의 저술은 한구절 한구절이 모두 금언(金言)이다. 그 중에도 신교수가 일관되게 강조한 것은 바로 ‘인간에 대한 신뢰와 관계’였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37℃의 열덩어리로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내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이다.

 

 더욱이 그 미움의 원인이 자신의 고의적인 소행에서 연유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존재 그 자체 때문이라는 사실은 그 불행을 더 절망적인 것으로 만든다.

 

 신교수의 말대로 자기의 가장 가까운 사람을 향하여 키우는 '부당한 증오'는 비단 여름 잠자리에만 고유한 것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지금도 끊임없이 누군가를 미워하고 증오할 대상을 찾고 있는지 모른다.

 

 0…신교수는 생전에 늘 ‘관계와 연대’를 강조했다. 그중에도 ‘처지와 입장의 동일함’이야말로 관계의 최고 형태라고 역설했다. “서로를 따뜻하게 해주는 관계, 깨닫게 해주고 키워주는 관계가 최고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고인이 중시한 것은 머리로 하는 공부가 아니라 가슴으로 함께 나누는 공부였다. “공부의 시작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생동안 하는 여행 중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입니다. 이것은 낡은 생각을 깨트리는 것입니다.”

 

 남을 돕는 것도 처한 입장이 같아야 진정성을 담게 된다. 비를 맞고 있는 사람을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다.

 

 처지가 다르면서 돕거나 위로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함께 맞는 비는 누굴 도와도 그 정이 같아야 한다는 뜻이다.

 

0…서예가로도 명성이 높았던 신교수. 북악무심오천년(北岳無心五千年),  한수유정칠백리(漢水有情七百里). ‘북악은 5천년간 무심하고, 한수는 유정하게 700리를 흐른다’. 서울 정도(定道) 600주년을 기념해 쓴 작품이다.

 

 북악은 왕조권력을, 한수는 민초들의 애환을 상징한다. 왕조권력은 권력투쟁에 몰두해 백성들의 애환에 무심하지만 한강 물은 민초들의 애환을 싣고 유정하게 흘러간다는 의미다. 현 위정자들이 새겨들을 만하다.

 

0…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친구와 함께 비를 맞아주는 것, 진정한 더불어 사는 세상이다. 이 세상은 나 혼자만 사는 것이 아니다.

 

“봄꽃도 먼저 피면 반갑고 이쁘기는 하더라만, 꽃샘바람 불고 눈보라 치면 속절없이 지는 법이니라. 세상이 만화방창할제 더불어 피어나야 절기를 누리는 거란다…” (황석영 장편소설 ‘여울물 소리’ 중)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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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21
쓸쓸한 그대 뒷모습-물러가는 모든 것은 슬프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8년 9월 29일 가을비가 내리는 경남 양산시 사저 뒷산에서 산책하며 사색에 잠겨 있던 모습 

 

 인파로 혼잡한 도심 거리에서 문득 아버지의 뒷모습을 목격한 적이 있는가. 집에서 늘 얼굴을 대하며 사는 아버지이건만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마주친 아버지의 뒷모습은 왜 그리도 낯설고 쓸쓸하기만 한지. 갑자기 코끝이 찡해 온다.

 

 “남자든 여자든 사람은 자신의 얼굴로 표정을 짓고 손짓을 하고 몸짓과 발걸음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모든 것이 다 정면에 나타나 있다. 그렇다면 그 이면은? 뒤쪽은? 등 뒤는? 등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프랑스 작가 미셸 투르니에의 말이다.

 

 아무리 꼭꼭 숨기고 덮으려 해도 결코 감춰지지 않는 신체 부분. 바로 '뒷모습'이다. 얼굴에 두꺼운 화장을 하고 모자를 쓰고 화려한 치장을 해도 일단 돌아서고 나면 모두가 평등해진다.

 

 뒷모습은 거짓말을 할 수 없고 존재의 이면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가끔은 너무 솔직해서 바보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 나의 곁을 무심히 지나쳐가는 낯모를 타인들의 뒷모습들. 그들은 모두가 정직하다.

 

 하지만 뒷모습은 대개 쓸쓸하고 초라하고 슬프다. 사회적으로 성공했다는 사람들도 뒷모습만큼은 그리 당당하지가 않다. 한 인간의 허약함이 어깨 위에 버겁게 드러난다.

 

0…시골 출신인 나는 서울에서 학교에 다닐 때나 군대에 갔을 때나 종종 고향집에 들르면 홀로 계신 어머님은 나를 위해 온갖 먹을 것을 챙겨주시고 지극정성으로 보살펴 주셨다. 휴가를 마치고 다시 집을 나설 때 어머님은 버선발로 나오셔서 버스에 오르는 나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셨다.

 

 내가 군에 입대하던 날, 어머님은 시외버스 정류장까지 오셔서 멀어져가는 나를 향해 언제까지고 쓸쓸히 손을 흔드셨다. 차창 밖으로 흐려져가던 어머님의 모습이 지금도 눈물 속에 선하다.

 

 어머님은 그때 내 앞에서는 애써 눈물을 보이지 않으셨으나 애지중지 키운 막내아들이 서서히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보시면서 속으로 얼마나 가슴이 메이셨을까.

 

 어머님은 아마 나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혼자서 오래토록 바라보고 계시다가 돌아서서 이내 눈물을 훔치셨을 것이다.

 

0…내가 아무 미련 없이 훌쩍 이민을 떠나올 수 있었던 것도 떠나는 나의 뒷모습에 눈물 흘릴 어머님이 안 계시다는 홀가분함도 한몫 작용했다. 그런 면에서 나의 주변에 어머님을 홀로 남겨놓고 이민 온 사람들을 보면 참 대단한 강심장을 가지신 분들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다른 한편, 22년 전 김포공항 출국장에서 외국으로 떠나는 죽마고우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손을 흔들던 옛친구의 속가슴은 또 어떠했을까.

 

 그때 우리는 서로 뒷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어서 먼저 가라며 손을 흔들던 기억이 아련하다. 친구는 탑승구를 빠져나가는 나의 뒷모습을 넋나간 듯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0…이처럼 사람의 뒷모습은 쓸쓸하고 가슴 아픈 기억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늙으신 어머님의 가녀린 뒷모습에선 아무도 모르게 사위어간 세월의 서글픈 간극(間隙)을, 아버님의 구부정한 뒷모습에선 가장(家長)의 책무에 짓눌려 사느라 잃어버린 청춘의 허무함이 묻어난다.

 

 천하를 호령하던 장군도, 권력을 주무르던 사람도, 강단에서 열기를 내뿜던 노(老) 학자도, 덧없는 세월이 흘러 무대에서 내려와 홀로 걸어가는 뒷모습은 쓸쓸하고 왜소하게만 보인다.    

 

 0…이제 곧 뒷모습을 보이게 될 문재인 대통령. 이 사람만 생각하면 눈물부터 난다. 기득권 세력과 음습한 자본권력이 한통속으로 미쳐 날뛰는 모순 투성이 한국사회를 바꾸어보자고 외치며 분연히 일어섰던 사람, 가진 것 없고 외로운 약자들에게 손을 뻗쳐 평등사회를 만들어보자고 절규하던 그 사람.

 

 대통령 위에 군림하는 무소불위의 검찰과 언론 권력을 개혁해보려 무던히도 애쓴 사람. 하지만 현실은 그런 순진무구한 이상(理想)만으로는 결코 바꿀 수가 없었다. 철옹성같은 기득권 절벽 앞에  문재인의 희망과 꿈은 무너져 내렸다.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결단력과 추진력이 약해 보였던 사람, 한번 믿으면 끝까지 신뢰를 놓지 않았던 사람, 거대 기득권 세력의 완강한 저항 앞에서도 끝내 인내와 설득으로 참다운 세상을 만들어 보려던 사람. 하지만 그건 한갖 일장춘몽으로 끝이 났다.        

 

 그는 이제 자신이 발탁하고 키워준 인간에게 처절하게 배신당한 채 오히려 앞날을 걱정해야 할 운명이 됐다. 그 인간은 언제 자신의 임명권자에게 비수를 들이댈지 모른다.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전직 대통령들 모두의 뒷모습이 그러했다.  

 

0…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는 문재인의 뒷모습은 너무 쓸쓸해 보인다. 평범한 삶마져 짓밟히지 않을까 걱정돼서 더 그렇다. 사저(私邸)가 지척인 고향 마을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던 노무현의 뒷모습이 겹쳐 더욱 안쓰럽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무성한 녹음과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이형기 '낙화')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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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14
결국은 정치다-조성훈을 키워야 하는 이유

 


덕 포드 온주총리와 스탠 조 의원

 

 우리는 흔히 한국의 정치에 관해서는 관심도 높고 열성적인데 반해 정작 이곳 캐나다에서는 그런 얘기를 듣기가 쉽지 않다. 한국에 대통령이 누가 되든 그것은 심정적 동정이요 술자리 안주감일 뿐 그들이 우리 이민동포들에게 해주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현지에 살면 현지에 맞게 현지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흔히들 정치 얘기는 하지 말자고 한다. 그것은 개인적 호불호(好不好) 혹은 이념적 편향성 때문에 그런 것이지 정치야말로 우리 일상생활과 가장 직접적으로 연결돼있다. 건강보건, 주택, 교통, 교육, 노후대책 등 어느 것 하나 정치와 무관한 것이 없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치얘기를 빼고 무슨 얘기를 한다는 말인가. 부디 건전한 정치얘기 좀 많이 하자. 단, 이곳 현지정치 말이다.  

 

0…언젠가 난민구치소에 수감돼있는 어느 한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수년간 불법체류자로 살아왔는데 어쩌다 당국에 적발돼 추방될 위기에 있다며 도움 좀 줄 수 없겠냐는 것이었다. 듣자 하니 불법체류인 것은 분명한데 사정이 여간 딱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장시간 통화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어떻게든 이민당국에 호소해 선처를 바랄 뿐.    

 

 이런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인 길은 바로 정치인이 나서주는 것이란 사실을 우리는 그동안 여러차례 경험해왔다. 법과 논리로 해결이 어려운 일을 풀어줄 가장 빠른 길은 바로 정치인을 통하는 것이다. 그것도 힘 있는 정치인의 한마디가 결정적인 도움이 된다.

 

 그것은 한국이나 캐나다나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정치인은 작게는 지역 커뮤니티, 크게는 국가 전체의 대표로 선출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0…그동안 강력한 한인 정치인을 갈망하던 캐나다 동포사회에 마침내 적임자가 나타났다. 바로 조성훈(Stan Cho, 44) 온주의원이다. 조 의원이야말로 고달프게 타국살이를 하는 한인사회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인물이다.

 

 정치인의 덕목 중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요소는 인간에 대한 애정, 사람을 끌어당기는 리더십, 그리고 대화술이다. 이런 요소를 두루 갖춘 인물이 바로 조성훈 의원이다. 이는 결코 아부가 아니다. 나는 조 의원의 부친과 10년 이상 인연을 맺으면서 직간접적으로 조 의원을 자주 접해서 그를 안다.

 

 조성훈은 일단 인간이 되었다. 매우겸손하다 못해 조금은 수줍어하는 듯한 모습이 더 매력적이다. 하지만 연단에 오르면 180도 돌변하다. 어디서 그런 탁월한 연설실력이 발휘되는지.

 

0…그는 초선임에도 불구, 재무차관보에 이어 교통부 부장관에 발탁됐고 그런 중책을 맡아 짧은 시간에 자신의 소관업무를 상세히 파악해냈다. 좌중을 압도하는 강력한 연설의 힘은 바로 업무를 훤히 꿰고 있는 데서부터 나온다.

 

 주 의사당에서 자신만만하게 발언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이 사람은 타고난 정치인이라는 생각을 절로 갖게 된다. 그의 열정적인 연설에 다른 의원들은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 감히 반론을 펴지 못한다.

 

 그는 특히 한국과 한인들에 대한 사랑이 특출나다. 그는 기회있을 때마다 부모님들이 이민 와서 어렵게 가게를 꾸려가던 시절을 얘기하면서 자신은 이민자의 자식으로서 소수민족 서민들의 애환을 잘 알고 있음을 강조한다. 그럴 땐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매우 인간적이다. 이래서 더 친근감이 간다. 

 

0…조 의원은 캐나다에서 나고 자란 한인 2세다. 그에게 민족사랑 의식이 없다면 동포사회와도 별 관계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민족의식이 투철하고 진심으로 한인들을 위해줄 인물이다.

 

 그는 특히 자라면서 커뮤니티 파워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한인들이 주류사회에서 대우를 못 받는 것은 정치적 힘이 약하기 때문이며 소수민족의 권익은 정치를 통해 이룩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는 판단을 하게 된 것이다.

 

 부동산으로 성공한 부친의 후광도 있지만, 그는 그런 배경에 의지할 사람이 아니다. 대부분의 이민 1세들이 그러했듯 조 의원도 부모가 하루종일 일만 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이에 그는 부모들이 자신을 희생해가며 자녀를 키워온데 대해 그 은혜를 되돌려 드릴 때라고 생각한다.

 

0…조 의원은 대화나 연설을 할 때 영어가 훨씬 편하지만 한국말로 소통하는 데도 전혀 지장이 없다. 따라서 그는 진정으로 한인권익을 보호하고 정치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제목소리를 낼 인물이다.

 

 아직 40대 중반의 젊은 조 후보가 중진의원이 되어 착실히 경륜을 쌓으면 앞으로 유력 정치인으로 성장할 것이다. 캐나다 한인이민 반세기, 진작에 이런 2세 정치인이 나올만도 했다. 그 역할을 해낼 사람이 바로 조성훈이다.

 

 자질과 능력, 인성을 고루 갖춘 조성훈 의원을 재선 3선시켜 캐나다 한인 역사상 최초의 2세 중견 정치인으로 키워나가야겠다.

 

0… 4년 전 조 후보를 위해 한인사회 전체 동포들이 나서 자기일처럼 도와주었다. 원로들을 중심으로 후원회가 결성되고 물심양면으로 성원했다. 팻말을 꽂는 일, 전화로 지지를 호소하고 홍보전단을 배포하는 등, 일찍이 그런 예가 없었다.

 

 4년 전에 그랬듯이 이번에도 한인사회가 똘똘 뭉쳐 힘센 정치인을 탄생시키자. 한인사회가 믿고 기댈 언덕은 조 의원 같은 파워풀한 정치인이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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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07
나는 시대의 낙오자(?)-코인 광풍에 아웃사이더

 

 

 “친구들이 쉽게 큰 돈을 벌었다는 말에 나도 시작했다”, “한번 빠지면 새벽까지 시세를 확인한다”, "숫자가 정말 미친 듯이 올라간다", “눈 떠서 잠들 때까지 머리 속은 온통 그 생각 뿐이다”, “다른 돈벌이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시장 분석도 필요 없다. 돈을 넣고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요즘 한국에선 사람들이 모이는 곳마다 코인(coin) 얘기가 화제라고 한다. 이전에는 자녀 얘기와 주식투자, 부동산 얘기를 했지만 요즘은 단연 코인이다. 이에 무심한 사람은 별종 취급을 받는다. “이렇게 쉽게 돈을 벌 수 있는데 굳이 힘든 일을 해야 하나” 라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0…2009년에 처음 거래된 1비트코인의 가격은 단 1센트였다. 그러던 것이 2년 후 정확히 1달러에 도달했고 이후 매년 급상승해 1천 달러를 순식간에 돌파한 후 지금은 무려 5만여 달러에 거래된다. 13년 사이에 500만 배가 뛰었다는 얘기다. 이러니 아무리 문외한일지라도 한번쯤 호기심을 갖지 않을 도리가 없다. 

 

 코인을 공식화폐로 인정하지 않던 미국, 일본, 유럽 등에서 잇달아 정식화폐로 인정하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값이 치솟는 이유다. 특히 일론 머스크 같은 사람이 테슬라 결제수단으로 암호화폐를  도입하겠다고 툭하면 입방정을 떨면서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  

 

 코인을 포함해 한국의 가상자산 이용자는 지난해 560만 명, 시장규모는 60조원을 돌파했다. 유통되는 가상자산 종류만 총 630여 종에 달한다. 전 세계적으로는 2억5천만 명이 넘는다.

 

0…영어사전에도 등재된 이 괴물같은 존재에 대해 나는 개념조차 모른다. 다음은 위키백과 사전에 나오는 설명이다.

 

 “비트코인은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온라인 암호화폐(cryptocurrency)다.  2008년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프로그래머가 개발해 2009년 프로그램 소스를 배포했다. 중앙은행 없이 전 세계에서 P2P 방식으로 자유롭게 금융거래를 하도록 설계돼 있다. 거래장부는 블록체인 기술을 바탕으로 사용자들 서버에 분산 저장하기 때문에 해킹이 불가능하다…”

 

 나는 이런 설명을 아무리 해독하려 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 블록체인, 채굴, 전기료, 소스 코드, 알트코인, 이더리움, 리플, 라이트코인, 에이코인, 대시, 퀀텀… 무슨 외계언어처럼으로만 들린다.

 

0…대한민국은 열풍을 넘어 광풍(狂風)이라 할만큼 가상화폐 시장에 500만 명 이상이 뛰어들었고 지금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인터넷에는 단기간에 수백억원을 번 20대 청년, 수억원을 벌고  직장을 그만둔 교수와 직장인, 순식간에 학자금 대출을 상환했다는 청년 등, 투자수익을 인증하는 글이 쉴새없이 오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코인투자를 안하는 사람은 바보가 되기 십상이다. 회사에선 직원들이 업무는 뒷전인 채 코인 시세만 들여다 본다. 개중엔 “이러다 망가지는 건 한순간"이라는 사람도 있긴 하다. 그러나 특히 미래가 불안한 젊은층이 가상화폐 투자에 목을 매고 이를 유일한 탈출구로 여기는 풍조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한번 코인에 빠지면 마약보다 무섭다. 이에 전문가들은 코인 시장이 지나치게 과열됐다고 거듭 경고한다. 미국의 관료는 "비트코인은 나무가 하늘을 향해 계속 자랄 것이라고 믿는 투기꾼들을 위한 자산이다. 모든 투기꾼은 자신의 손을 다 태우고 나서야 교훈을 얻을 것이다”라고 경고한다. 

 

0…코인 열풍은 전 세계를 달구고 있지만 한국이 유독 심하다. 그것은 한국인의 전형적인 투기성향 때문이란 분석이다. 이러다 보니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 여러 거래소가 해킹으로 수십억의 고객 돈을 도난당했고 각종 투자사기와 가짜 코인을 이용한 다단계 사기도 성행하고 있다.

 

 하지만 여러 위험에도 불구, 투자 열기는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어떻게 대처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다 최근에서야 가상통화 거래소 등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나섰지만 현재의 광풍을 잠재울지는 미지수다.

 

0…코인 열풍은 한국을 넘어 멀리 이민사회에도 불어닥쳤다. 토론토의 많은 한인들(최대 2만여 명 추산)이 코인에 투자하고 있다. 나에게도 여러 유혹이 잇따르고 있다.

 

 “이렇게 쉬운걸 왜 안해?” “언제까지 월급쟁이로 살거야?” “내가 돈을 빌려줄테니 시험삼아 해봐”… 

 

 그런데 나같은 백면서생(白面書生)은 이런 것에 도무지 관심이 없으니 어쩐다? 남들은 순식간에 큰 돈을 벌어 떵떵거리고 산다는데 나는 아직도 고상한 척 눈을 감고 있으니 한심한 존재가 아닐까.

 

 돈이 최고인 세상에서 돈벌려고 열심히 투자하는 사람을 속물(俗物)이라 외면하는 나야말로 위선적인 인간이 아닐까.

 

 부부 중 하나라도 이런 방면에 눈 좀 뜨면 좋으련만 내 아내 역시 이런 분야엔 고개부터 돌리니 부창부수(夫唱婦隨),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지금은 코인 사는 사람들 보고 미쳤다고 하지만 수년 후엔 그런 얼토당토 않은 생각을 한 나같은 사람이 바로 미친 자라고 비웃음 당할 지도 모른다.

 

0…그런 점에서 나는 순진한 바보임에 틀림없다. 세상은 급격히 변하고 있는데 아직도 시대 정의가 어떻고 문학이니 철학이니 역사니 하는 비현실적인 소리나 늘어놓고 있는 나는 정말 시대의 낙오자가 아닐까.

 

 그런데 이건 분명 아니라는 생각이다. 한창 일할 젊은이들이 컴퓨터 앞에서 돈놀이 하느라 눈에 불을 켜는 세상이 정상일 수는 없다.

 

 무엇이 정상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이 시대에 진정 내가 서야 할 자리는 어딜까. (사장)     

 

 

yw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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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31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나를 스쳐간 여인들

 

 

‘4·19가 나던 해 세밑/우리는 오후 다섯 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혜화동 로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우리는 때 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김광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중)

 

 밤에 침대에 들어도 쉽게 잠이 안오는 때가 있다. 이런저런 세상사 번뇌로 몸을 뒤척일 때 그렇다. 그럴 땐 아름답던 과거를 회상하면 마음이 봄눈 녹듯 사르르 가라앉으며 꿀잠에 빠져든다.

 

 자주 떠오르는 것은 어린시절 뛰놀던 시골 동네 어귀와 친구들. 고민없고 눈물없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입가에 절로 미소가 돈다.

 

 가끔은 이제껏 나를 스쳐간 여인들을 떠올려 보기도 한다. 자라온 나이대로 돌이켜 보면 지금도 이름들이 선하게 떠오른다. 그건 아내와의 사랑과는 별개로 인생의 감미로운 활력소다. 

 

0…먼저 초등학교 시절. 얼굴이 유난히 발그스레 하얗고 보조개가 예뻤던 김00이 기억난다. 도시쪽에 살던 그 아이는 옷도 잘 입고 다녔는데 남자애들이 서로 관심을 끌어보려고 졸졸 따라 다니며 놀리면 눈을 살짝 흘기는데 그 모습이 너무 예뻤다.

 

 학교 졸업 후에도 가끔 생각이 났는데 언젠가 서로 대학생이 되어 우연히 거리에서 만날 기회가 있었다. 반가워서 다방에 들어가 커피 한잔을 하는데 예전의 그녀가 아니었다. 살이 통통하게 쪘고 고혹적(蠱惑的)이던 눈흘김은 찾을 수가 없었다.    

 

 다음은 고교시절 만난 여학생. 흔히들 얘기하는 나의 첫사랑이 아니었나 싶다. 고2때 시내버스 안에서 만난 그녀는 지방에서 올라와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머리를 두 갈래로 딴 청초한 모습에 나는 첫눈에 넋을 잃었다. 애간장 태우는 무수한 편지 던지기 끝에 마침내 함께 극장에도 가고 공원에도 놀러다니며 사귀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고3이 되자 진로문제로 고민하면서부터 만날 여유가 없어졌다. 결국 내가 사관학교에 진학하면서 그녀와도 자연히 멀어져 갔다.

 

0…대학 1학년 시절. 비가 내리는 봄날 아침 등굣길에 비를 맞으며 버스를 기다리는데 웬 아리따운 아가씨가 옆으로 다가와 “우산이 하나 있는데 쓰세요”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우산을 되돌려준다는 핑계로 다음날 우리는 학교 앞 다방에서 만났고 이내 데이트로 이어졌다.

 

 그녀는 학교 앞 개인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었다. 우리는 창경원 벚꽃놀이도 다니며 달콤한 시절을 보냈다. 지금도 봄꽃이 필 즈음이면 다소곳이 우산을 받쳐주던 그녀가 생각난다.

 

 하지만 그녀도 인연이 없었는지 그 후 시간이 흐르면서 만남 횟수도 줄었다. 무엇보다 내가 입주 가정교사를 하면서 주인집 여학생을 학교 축제 등에 초대한 사건이 그녀와 멀어지게 했다.

 

 입주 가정교사를 했던 미아리 집엔 내 또래의 재수생 H 와 고 3 여동생이 함께 생활하였고 그런 환경이라면 어떻게든 인연이란 것이 맺어질 수도 있었건만 하늘의 뜻은 그게 아니었다. 내가 그 집을 나오면서 모든 인연도 끝이 났다.

 

0…자유분방한 대학시절엔 이들 외에도 여러 여학생을 만났다. 대부분 꼭히 교제라고 할 것도 없고 그저 친구사이였지만 그중엔 기억에 남는 여학생이 몇 있다.

 

 먼저, 캠퍼스에서 만난 간호학과 H. (그러고 보니 내가 만난 여인 중엔 이상하게 간호학과에 H씨가 많았다). 다소 수줍어 하는 타입의 그녀는 외모가 꽤 아름다웠다. 우리는 학교 축제와 스포츠경기 등에 함께 다니며 점점 정이 들려고 했다.

 

 하지만 그즈음 나는 장래 진로문제로 고민하면서 누구도 책임질 수 없다는 강박관념에 쫓기고 있었고, 그래서 스스로 그녀를 보내야 했다. 우선 생활이 안정되고 난 후에야 누군가와 사귀어도 사귀어야 할 것 같았다. 

 

 그 H에 앞서 여름방학 때 고향(대전)에 내려가서 만나 사귀게 된 L은 지금도 기억 속에 아련하게 남아있다. 그녀는 지방대학 간호학과에 다니고 있었는데 나에게 무슨 영문책을 번역 좀 해달라고 부탁해서 만남이 시작됐다.

 

 그녀는 내가 현재의 아내를 만나기 전 장래 배우자감으로 생각했던 유일한 사람이다. 아마 당시 내가 확신이 있었더라면 그녀와 결혼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때 유학을 떠난다고 준비하며 생활이 안정되지 않은 상태였고 그런 상태로는 또다시 누구에게도 책임 못질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나는 무척 책임감이 강했던 것 같다(한편으론 바보 같았다!).

 

0…이런 순진한 몇몇 여성편력(遍歷) 끝에 나는 마침내 외모나 지성, 인성, 품성, 사려분별 등 모든 면에서 완벽에 가까운 한 여성을 만났다. 사랑도 해본 사람이 한다고, 이런저런 유형의 여성들과 스치고 지나다 보니 현재의 아내를 더욱 사랑하게된 것 같다.   

 

 감미로운 인연들 중에는 봄에 맺어졌던 인연이 많았다. 지금도 양희은의 ‘하얀 목련’을 들으면 그 당시 추억들이 꿈결처럼 스쳐간다. 아, 그녀들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풍진(風塵)과도 같은 세상, 달콤한 추억 한가지도 없다면 얼마나 삭막할까. 따분한 일상에서 때론 아름다운 추억에 잠겨보는 것도 삶에 활기를 되찾게 해줄 것이다.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   (사장)    

 

 

yw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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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24
인연에서 악연으로-사람을 잘 못 본 문재인

 


                                           지난 2019년 7월 25일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모습.

 

 중국 후한(後漢) 말에 태어나 촉한(蜀漢)의 초대 승상을 지낸 제갈량(諸葛亮). 당대 최고의 지략가요 재상이자 탁월한 능력 뿐 아니라 타의 모범이 되는 언행과 충성심으로 당대는 물론 후세 사람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는 전설적 인물.

 

 신출귀몰하는 전략과 사람의 마음을 꿰뚫는 혜안, 티끌만한 사심(私心)도 없는 지고지순한 충성심, 지혜의 화신… 제갈량은 중국 역사에서 두고두고 훌륭한 재상과 충성스런 신하의 모범으로 꼽힌다.

 

 하지만 천하의 제갈량인들 유비라는 듬직한 주군(主君)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한평생 초야에 묻혀 책이나 읽다 죽었을 것이다. 제갈량은 삼고초려(三顧草廬) 끝에 유비에게 발탁돼 최측근 참모로 27년간 미친듯 일하다 과로사한다.

 

 그 과정에서 사심없이 충성을 다했고 특히 유비의 아들(유선)에게도 대를 이어 충성함으로써 총명하고 사심없고 충성스런 인재의 표상이 되었다.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제갈량은 샐러리맨으로서는 가장 유능한 직원이었고 오너 입장에서는 가장 모범적인 참모였다.

 

 때를 기다리며 초야에 묻혀 살던 그를 점찍은 유비의 사람 보는 눈도 그렇고, 자신을 발탁해준 주군을 위해 대를 이어 죽을 때까지 변함없이 충성을 다한 제갈량도 그렇고, 걸출한 인물들임에 틀림없다.  

 

 이들처럼, 사람의 능력을 알아보고 그를 중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끝까지 배신하지  않고 그에 보답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능력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인정하고 알아주는 사람이 있어야 비로소 그 능력도 빛을 발하는 법이다.

 

0…인간사 고통 중 가장 큰 것 중 하나가 누구에게 배신을 당했을 때다. 영원히 충성하고 함께 하겠노라 다짐한 사람이 어느 순간 흑심을 품고 있음이 들통났을 때 당하는 사람의 가슴은 미어터지는 충격을 받는다.

 

 이래서 이병철 삼성 창업주 같은 사람은 신입사원 면접을 할 때 관상을 보게 한 뒤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단했다 한다. 장차 회사를 배신할 사람인지 아닌지를 가장 중요한 항목으로 판단케 하여 인물을 뽑았기에 삼성에서는 배신한 간부들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한치도 모를 인간의 속마음을 어찌 한 번의 인상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0…일개 검사에서 일약 한국의 대통령 자리를 거머쥔 윤석열. 그는 아홉 번의 도전 끝에 31세에 검사가 됐다. 그가 각 분야에 걸쳐 두루 무지(無知) 무식한 것은 황금의 청춘시절 9년동안 오로지 육법전서에만 매달리느라 폭넓은 독서와 사색, 고뇌의 시간을 갖지 못했던 때문이 아닌가 한다.

 

 여덟 번이나 사시 낙방을 거듭한 그는 대학 동기들보다 훨씬 늦게 법조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교수 집안에서 별 어려움 없이 자란 탓인지 세상 무서울 것 없다는 듯 좌충우돌하며 무수한 사람들, 특히 고위 정치인을 엮어 철창에 잡아 넣었다. 이래서 ‘강골검사’란 별칭이 붙었다.

 

 하지만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는 법. 잔혹하게 칼을 휘두르다 박근혜에게 미운털이 박혔고 이내 지방으로 좌천당해 떠돌게 된다. 그때 한직(閑職)을 겉돌던 尹을 발탁한 사람이 바로 문재인이다. 文은 수명을 다해 가던 尹을 살려냈다.

 

 文은 尹을 검찰 최고요직인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전격 발탁했다. 그후 승승장구한 尹은 마침내  검찰총수가 된다. 전임 총장보다 5기수나 아래였고 최종후보 중에도 기수가 가장 낮은, 파격 그 자체였다.

 

0…하지만 둘의 관계는 조국 임명을 계기로 금이 가기 시작했다. “살아있는 권력에도 같은 자세가 돼야 한다”는 文의 격려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무자비한 야성본능을 드러낸 尹은 조국 집안을 탈탈 털어 일가족을 완전히 도륙(屠戮) 냈다.

 

 그러면서도 尹은 자기 처가의 더 큰 비리에 대해선 함구했다. 그는 마침내 “민주주의 허울을 쓴 독재 전체주의를 배격해야 한다”며 자기를 키워준 文을 향해 선전포고를 했다. 어느덧 그는 반(反)정부 투사로 변신해 있었다.

 

 文은 尹에 대해 "검찰의 가장 중요한 현안은 국정농단사건 수사와 공소유지"라며 "그 점을 확실하게 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강조했었다. 尹도 한때 문 대통령에 대해 "검사로서 지켜봤을 때 정직한 분이라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둘은 이제 돌아오기 힘든 다리를 건넜다. 尹이야말로 결초보은(結草報恩)은 고사하고 자기를 키워준 은혜를 복수로 되갚은 인간이다. 물에 빠진 사람 구했더니 보따리부터 찾는 배은망덕(背恩忘德)을 넘어, 구교주인(狗咬主人), 즉 주인을 물어뜯는 개로 돌변했다.

 

0…자고로 한번 배신한 사람은 그 명분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또다시 배신하게 돼있다. 尹은 이제는 자기를 지지하고 뽑아준 국민을 배신할 차례다. 배신을 넘어 주인을 물어뜯는 미친개가 될 것이다.

 

 문재인은 사람을 잘 못 보았다. 그는 지금 처절한 배신감에 치를 떨며 밤잠을 설칠 것이다. 돌고 도는 수레바퀴 같은 인생사, 이래서 사람 보는 눈이 중요하다.

 

 한 사람에게 신뢰를 보내기 위해서는 그의 행동을 오랫동안 관찰해야 한다. 그러니 함부로 정주지 말고 한번 맺은 인연은 끝까지 가자. 행여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없었는지 자문해본다. 나의 철학이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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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w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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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17
잃어버린 한시간-서머타임 존폐 논란 계속

 

 

 지난 13일(일)부터 캐나다와 미국에 일광절약시간제(Daylight saving time, 서머타임)가 시작됐다. 서머타임은 1905년 미국의 한 건설업자에 의해 제안돼 1차대전을 거쳐 유럽에서부터 시행되기 시작했다.

 

 미국과 캐나다는 효율성을 놓고 찬반의견이 엇갈려 시행과 폐지를 반복하다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실시됐다. 그러나 주(州)에 따라서는 이를 시행하지 않는 지역도 있다(미국 하와이, 아리조나, 캐나다 사스캐처완 등).

 

0…서머타임은 낮시간을 충분히 활용하고 에너지를 절약하자는 취지에도 불구, 일년에 두 차례씩 시계를 인위적으로 돌려놓아야 하는 불편함과 사람의 생체리듬에도 이롭지 않으므로 이를 폐지 또는 영구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왔다.

 

 이에 온타리오 의회는 2년 전 서머타임을 연중 그대로 존속시키자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이것이 시행되려면 같은 시간대인 퀘벡주와 뉴욕주 등이 동의해야 한다. 온타리오만 시행하면 혼란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서부 BC주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때마침 미국 상원은 엊그제(15일) 서머타임을 항구적으로 적용하는 내용의 법안을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법안이 하원을 통과하고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하면 1차 대전 당시인 1918년 3월 연방정부에 의해 도입된 서머타임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이럴 경우 캐나다도 이를 따라갈 가능성이 크다.         

               

0…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소 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재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냐.(남구만(南九萬) ‘동창이 밝았느냐’).

 

 이 시조에는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아침잠에 빠져있는 게으른 머슴의 모습이 목가적(牧歌的)으로 그려져 있다. 특히 이래서 서머타임은 아침잠이 많은 사람에게 고역이다. 1시간을 일찍 일어나야 하니 힘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무척 피곤하다고 하지만 나는 별 문제가 없다. 나는 일찍 일어나 활동하는 전형적인 아침형 인간이기 때문이다.

 

 나같은 시골 출신들이 대체로 초저녁 잠이 많은 것은 자라온 집안의 생활습관 영향이 큰 때문이다. 예전 시골에서 농사짓는 분들은 하루종일 논밭에 나가 일하다 저녁 때 집에 오면 밥숟가락 놓기가 바쁘게 곤한 잠에 빠졌다. 그 시대엔 달리 오락거리도 없었으니 일찍 잠자리에 들 수밖에 없었을 터이다.

 

 나도 이런 영향을 받아 초저녁 잠이 많고 아침엔 일찍 일어난다. 우리집에서 아내와 아이들은 보통 밤 12시 넘어 잠자리에 들지만 나는 영화 한 편을 다 보기가 어려워 일찌감치 머리를 꾸벅댄다.

 

0…예전엔 초저녁 잠이 많으면 잘 산다고 했다. 그것은 낮에 열심히 일해서 저녁에 무척 피곤하다는 뜻일 게다. 하지만 일찌감치 고개를 꾸벅대는 나를 보고 아내는 “재미없는 시골사람”이라고 투덜대기도 한다.

 

 일찍 잠자리에 드는 덕분에 아침엔 일찍 일어난다. 가끔 저녁 술자리 때문에 늦게 잠자리에 들어도 아침엔 일찍 일어난다. 그래서 직장에 지각하는 일이 거의 없다. 알람시계를 맞춰놓을 것도 없이 새벽에 눈을 뜨면 정확히 5시 50분 경이다.

 

 그래서 나는 직장이든 어떤 약속이든 지각하거나 늦는 사람을 싫어한다. 그런 사람은 대개 게을러 보이고 그래서 신뢰할 수가 없는 것이다.

 

 머리도 아침에 잘 돌아간다. 저녁엔 나른하게 졸리워서 기억력도 현격히 떨어지거니와 아무 생각도 하기가 싫다. 그래서 골치 아픈 일이나 꼭 기억해야 할 일들은 다음날 아침에 생각하면 쏙 떠오른다. 내가 생각해도 참 신기하다.

 

 골프도 오전에 쳐야 점수가 잘 나온다. 그래서 누가 오후에 골프를 치자 하면 별로 내키지 않는다. 나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아침형 인간’이다.  

 

0…예로부터 새벽에 활동하는 아침형 인간에 대해 긍정적인 말이 많다. 서양격언에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사람에겐 건강, 부귀, 지혜가 따른다’(Early to Bed and Early to Rise Makes a Man Healthy, Wealthy, and Wise)는 말이 있다.

 

 수년 전 토론토대학 연구에 따르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종달새(lark)족은 해가 중천에 떠야 일어나는 올빼미(owl)족 보다 행복도가 높았다. 야행성 올빼미 족은 늦은 밤까지의 활동으로 이른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힘들지만 종달새족은 아침 일찍 일어나 여유로운 시간으로 하루를 보내기 때문에 긍정적인 감성과 인생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아침형 인간은 대체로 부지런하고 자기관리나 절제도 강하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 중에는 대체로 아침형 인간이 많다. 한의학적 관점에서도 인간은 해가 뜨면 일어나 활동하고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드는 것이 자연스럽다. 순환하는 자연과 더불어 생활하는 것이 순리라는 것이다.

 

0…아무튼 서머타임으로 아침잠이 많은 분들은 당분간 고생 좀 할 것이다. 나 역시 한시간을 더 일찍 일어나니 심신이 찌뿌듯하다.

 

 그런데 그것이 꼭 일찍 일어나 그런 것 같지만은 않다. 고국의 우울한 소식에 밤잠을 설쳐서 그런 것 아닐까. 요즘은 밤에 한번 깨면 한동안 뒤척이며 잠을 못 이루고 있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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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10
운명이다-선택의 결과는 선택한 자의 몫

 


 故 노무현 전 대통령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 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노무현

 

 이민살이 22년째. 부지런히 일하고 열심히 영어실력 쌓아서 현지에 잘 적응하며 살아보자고 아직도 수시로 다짐한다. 자꾸 고국 하늘만 바라보지 말고 여기서 굳건하게 발붙이고 살 생각을 하자고 마음을 다잡기도 한다.

 

 하지만 이민 당시 마흔 네살, 머리가 굳을대로 굳은 나이에 떠나온 조국이 그리 쉽게 잊힐 리 없다. 꿈결에도 이곳보다는 태어나고 자란 고향산천이 더 자주 베갯머리를 적신다. 고국은 그런 존재다. 잊을래야 잊혀질 수도 없고 마음이 외롭고 허전할 때 추억만으로도 가슴을 달래주는 존재.     

 

 스포츠 경기를 해도 캐나다보다도 한국을 더 소리쳐 응원하고 친구를 만나도 같은 언어를 쓰는 동족이 더 편한 법. 텔레비전 프로도 6시 내고향, 동네 한바퀴, 한국인의 밥상, 나는 자연인 같은 토속적인 영상들을 보며 향수를 달랜다. 그런 내가 한심해보일 때도 있다. ‘내가 이러려고 이민까지 왔나’    

 

0…외국에 나오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상처럼 간직하고 살아가기에 조국 대한민국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은 고국에 사는 국민들보다도 더 할 것이다. 이민 첫해 광복절 날 태극기에 경례를 하며 가슴이 뭉클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런데, 가끔은 고국이 참 이상할 때가 있다. 나로서는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 종종 벌어진다. 이번 대통령 선거란 게 그렇다. 그 Y라는 사람에게 표를 줄 하등의 이유도 명분도 없었건만 내가 지지하는 사람이 패했다. 새털처럼 아주 근소한 차이이긴 하지만 진 건 진거다. 근데 이건 아니다. 이해가 되질 않는다.   

 

 투표권도 없는 처지이긴 하지만 L후보를 열렬히 응원했다. 왜? Y보다는 여러 면에서 나을 것 같아서. L후보가 걸어온 길이 한국 서민층의 어려운 현실을 충분히 이해하고 특히 젊은 세대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내 생각에 그 Y라는 사람은 지지할 이유가 전혀 없다. 무소불위 권력에 취해 인간의 존엄성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눈에 핏발만 세우는 인간이다. 항상 굳어있는 그의 얼굴만 보아도 소름이 돋는다. 그 얼굴에서 인자함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 보아도 없다.

 그가 앞으로 얼마나 많은 선량한 사람들을 잡아들일지 벌써 두렵다.          

 

0…국민들이 선택한 길을 무어라 탓할 수는 없다. 매사는 선택한 자의 몫이니까. 모든게 운명이다. 기꺼이 퇴보를 선택했다면 그 또한 그들이 감당할 몫이다. 그러니 마음이 내키진 않지만 Y씨에게 앞으로 잘 해달라고 주문하는 수밖에…

 

 하지만 씁쓸하고 허전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이럴 때 마음 터놓고 함께 홧술이라도 마실 사람이 있다면 울분이라도 털어놓으련만. 울적해하는 아빠의 마음을 알았는지 딸이 문자를 보내왔다. “아빠, 너무 속상해 하지 마세요. 한국 떠나온 이유가 다 있잖아요.” 그렇지. 이런 꼴 보기 싫어서 왔지.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왜 난 아직도 철 지난 이념과 사유에 집착하면서 세상의 불공평과 불공정에 대해 분노하고 괴로워할까. 스스로 해결도 못하면서 마음만 애달퍼 하고 있을까. 그건 위선 아닌가.

 이재명을 지지한 것도 그가 흙수저 출신이라는 사실에 동병상련을 느껴서인 것 아닌지.

 

0…분명한 사실은, 역사는 부단히 전진해야 하고 그 전진대열에 누구에게나 동등한 기회가 부여돼야 한다는 것이다. 대동세상 만인평등까지는 못 이루더라도 극심한 빈부격차가 해소되고 최소한 밥을 못먹어 굶주리는 계층은 없도록 해야 한다.  

 

 어찌됐든 이제 당분간 고국 생각은 하지 않으려 한다. 가슴 속의 짝사랑을 잠시라도 잊어보려 한다. 못난 조국, 생각한들 가슴만 아플 터이다. 뉴스도 안 볼 생각이다. 그만큼 이번 사건은 충격이 사뭇 컸다.

 

 설령 언젠가 고향에 찾아간들 꿈결에 그리던 이상향은 아닐 것이다. 그동안 이런 일로 전화도 못 드린 형제자매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고향에 찾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더라

두견화 피는 언덕에 누워

풀피리 맞춰 불던 옛 동무여

흰 구름 종달새에 그려보던 청운의 꿈을

어이 지녀 가느냐 어이 세워 가느냐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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