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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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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29
충성의 명분- 받들만한 사람을 받들어야

 


 혹시가 역시가 됐다. 지난 22일 윤석열 대통령이 토론토를 방문한 이유도 불분명했지만 억지춘향격의  동포간담회 역시 볼썽 사나웠다. 한마디로 시간과 돈의 낭비였다고 밖에 평가할 수가 없다.  


 토론토총영사관 측은 대통령 방문 2주일여 전부터 간담회 참석자를 선정해 통보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고, 행사 당일 저녁 6시 30분까지 호텔에 도착해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행사 예정 시각인 밤 8시를 훌쩍 넘긴 8시 30분에서야 윤 대통령 부부가 나타났다.


 원래 윤씨의 표정은 항상 굳어있는 모습이지만 이날 따라 더욱 경직돼 보였다. 전날 미국 뉴욕에서 내뱉은 비속어 논란으로 한국은 말할 것도 없고 세계 언론에 화제가 되고 있음을 숨길 수 없었다.  


0…호텔 간담회 행사장의 소위 ‘헤드테이블’에는 윤 대통령 부부와 토론토한인회장, 총영사 외에 다소 뜻밖의 인사들이 자리에 앉았다. 왜 그들이 상석(上席)에 배치됐는지 의아해하는 분들이 많았다.


 그 분들을 폄하해서가 아니다. 정치와 외교는 프로토콜(protocol)에 따라 움직인다. 한국 대통령 행사에 온타리오를 대표하는 덕 포드 총리 정도의 인사를 초청하거나 주요 한인정치인이 헤드테이블에 앉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는 것이다.    


 행사는 먼저 간단한 국민의례가 있었는데 단상에 태극기만 꽂혀 있고 정작 캐나다 국기는 없었다. 여기가 어디인가. 여긴 캐나다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캐나다 국기를 비치했어야 하지 않은가. 행사준비가 얼마나 허술한지 짐작할 수 있는 첫대목이었다.


0…격려사 순서에서 윤 대통령은 미리 준비한 원고를 읽었다. 이럴 때 자연스럽고 친근한 모습으로 동포들을 대하면 안되나. 굳이 그렇게 딱딱한 원고를 읽어야 하나.


 내용도 뻔했다. 캐나다 동포들이 한-캐 관계발전에 기여하고 있다는 둥 원론적인 얘기만 했다. 그나마 최근 불의의 총격사건으로 순직한 홍성일 경관에 대해 언급이라도 한 것은 적절했다.    하지만 요식적인 연설에 걸린 시간은 딱 5분여.   


 이어 늦은 저녁식사가 시작됐다. 그 시간은 ‘침묵의 시간’이었다. 아무런 대화 없이 그저 묵묵히 비싼 요리만 즐겼다. 그 분위기가 참 어색했다. 와인을 곁들인 고급호텔 요리는 일인당 500불 수준이었다는 후문이다. 내가 먹어본 가장 비싼 요리 중 하나로 기록됐다.   


0…윤씨 부부는 시종일관 굳은 표정을 풀지 못했다. 그러니 분위기가 그렇게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가만히 앉아 어기적 어기적 요리만 먹으려니 참 한심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가원수란 사람이 왔는데 어색한 침묵 속에 값비싼 밥만 축내니 동포들에게 미안한 생각마저 들었다.     


 이어 대통령을 환영하는 축하공연이 열렸는데 어색한 분위기는 여전했다. 애쓴 흔적은 갸륵했지만 그런 자리에 그런 공연은 좀 생뚱맞아 보였다. 대통령 부부는 어색하게 박수를 쳤다. 전반적인 분위기가 한마디로 경직되고 어색했다.


 대통령 부인 김건희씨는 시종 다소곳하고 조신하게 행동하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그 역시 자연스럽지가 않았다. 언론의 가십거리에 오르고 싶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마네킹같은 무표정한 얼굴로 헤드테이블에 앉았는데 억지로 꾸민 듯한 모습이 역력했다.


 언론에 잡힐까 신중을 기하는 것 같았고 그럴수록 측은해 보였다. 그러길래 왜 그리 너무 높은 위치에 올라 감당을 못한 채 허위적거리는가.      


0…이어 동포간담회의 하일라이트라 할 수 있는 대통령과의 질의응답. 사실 이 시간을 위해 그 복잡한 다운타운 호텔까지 차를 몰고 간 것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함 바로 그것! 사전에 지정된 2명의 질의자들께는 미안하지만 질문과 응답은 기대 이하였다는 것이 총평이다.


 동포 간담회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적어도 10여 명 정도는 발언하도록 해야 함에도 딱 2명만 사전에 선정해 뻔한 내용을 반복했다. 돌발적인 질문을 우려해 그랬을 것이라 이해는 되면서도 씁쓸한 기분은 지울 수가 없었다.  


 동포권익이나 남북문제 같은 수준있는 질문은 애당초 기대하기 어려웠다. 질문(부탁)이 뻔하니 답변도 뻔했다. “적극 검토하겠다…” 이건 안하겠다는 말이다. 주목할 말이 없으니 기사로 쓸 말도 없었다. 이런 간담회를 왜 했는지.    


0…이번 간담회는 3박자가 딱 맞은 3류 쇼였다. 첫째, 대통령 본인의 무능한 자질, 둘째, 참석자(200여 명) 선정 기준 의문, 셋째, 비굴하고 요식적인 질의 응답(동포들에게 돈 좀 달라 VS. 알아보겠다). 동포들을 이런 식으로 우롱해도 되는지.  


 그럼에도 이날 참석자들은 윤씨와 기념사진을 찍느라 아우성이었다. 참 씁쓸한 풍경이었다. 


 한편 이날 호텔 앞에서는 한인동포 20여 명이 윤씨의 퇴진을 주장하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였다. 또한 250여 명의 동포들이 모인 가운데 조 국 전 법무부장관 영화(‘그대가 조국’)도 상영됐다. 윤씨가 도륙을 내다시피 해서 엮어넣은 조 국 장관, 바로 그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0…윤 대통령은 다음날 오타와에 가서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번 유럽-북미 순방 중 유일하게 ‘정상회담’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만남이었다. 한국 언론에서는 이를  대서특필하며 한-캐나다의 동반자적 협력관계를 재확인한 회담이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캐나다의 언론에서는 이를 단신 정도로 취급했다. 왜 그랬을까. 한국의 윤 대통령은 캐나다 언론에서조차 별로 주목할 가치가 없는 존재였나 보다. (사장)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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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22
우물에 갇힌 한인사회- 우리 경찰관이 순직했는데…

 


고 앤드류 홍(성일) 경찰관

 

 지난 9월 12일 한낮, 충격적인 총격사건이 벌어졌다. 미시사가의 한 커피점에서 40대 범인이 제복을 입은 현직 경찰관을 저격, 현장에서 사망시키고 이어 훔친 차를 몰고 인근지역(밀턴)으로 가 또 한차례 광란의 총격전을 벌였다.

 

 이 사건으로 범인을 포함한 4명이 숨지고 4~5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 사건은 캐나다가 더 이상 안전한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했고 특히 무고한 시민 누구라도 범죄의 희생이 될 수 있음을 각인시켰다.

 

0…이 사건이 특히 충격적인 것은, 이미 총을 소지한 범인이 또다른 총을 빼앗기 위해 제복을 입은 무장경찰관이 나타나기를 2시간이나 기다렸다 근접 사격을 가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공교롭게 총을 맞고 현장에서 사망한 경찰관은 40대 후반의 한인으로 밝혀져 토론토 동포사회에 더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올해 만 48세의 앤드류 홍(한국명 홍성일) 경관은 토론토경찰청 교통국에서 22년간 근무해온 베테랑 경찰관으로 이날 교통교육 훈련차 미시사가지역을 방문중이었으며 점심시간을 이용해 팀호튼스에서 간식을 들고 있었다.  

 

0…이 사건은 많은 문제점을 던졌다. 우선, 안전한 나라로 인식돼온 캐나다가 이젠 어느 누구도 범죄 표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총을 지닌 경찰관이 대낮 개방된 장소에서 공격을 당하는데 일반시민은 언제 어디서 어떤 위험에 닥칠지 모른다.

 

 특히 캐나다의 가석방(Parole) 제도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애꿎은 경찰관과 자동차 정비사, 정비소에서 일하던 28세 유학생을 쏘아 죽인 범인(40세, 주거부정)은 강도.불법무기 소지 등 다수의 전과범이었다.

 

 하지만 그는 일정기간 복역 후 가석방으로 풀려나 사회로 복귀했다. 이에 경찰은 그를 ‘재범 위험 요주의 인물’로 리스트에 올려 놓았으나 감시는 소홀했다. 이로써 당국의 흉악범 관리에 다시 한번  허점을 노출시켰다.

 

0…이번 뿐만이 아니다. 3주 전 캐나다 전역을 엄청난 충격속으로 몰아넣은 사스캐처완 원주민 마을 칼부림사건(11명 사망, 18명 부상)의 난동범 2명(형제)도 수많은 전과를 지닌 흉악 범죄자였으나 얼마 전 가석방으로 풀려난 전력이 있다.

 이에 따라 캐나다가 흉악범에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비판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이에 앞서 2018년 4월 한인밀집지역인 노스욕에서 밴차량을 인도로 돌진시켜 한인 3명을 포함한 11명을 살해하고 16명을 다치게 한 20대 범인은 정신감정을 이유로 시간을 끌다 4년여 만에 겨우 재판을 마쳤지만 그 역시 25년 후에는 가석방을 받아 나올 수 있다.     

 

 이래서 흉악범죄를 저지르고도 언젠가는 출소하니 범죄를 짓고도 별로 반성할 줄 모르며, 심지어 모방범죄까지 발생시킬 소지가 크다는 것이다. 

 

0…한편, 현직 경찰관 피습사건이 터지자 캐나다 각계에서는 전국적인 조문바람이 일었다. 저스틴 트뤼도 연방총리를 비롯해 덕 포드 온주총리, 존 토리 토론토시장, 토론토경찰청장 등이 일제히 조문을 표했다.

 

 미디어에서도 연일 이 사건을 대서특필하고 특히 홍 경관에 대한 추모 특집기사를 실었다. 토론토에는 홍 경관에 대한 조문소가 설치되고 각계 인사와 시민들의 조문행렬이 이어졌다. “Hong was and is a hero.” 토리 시장은 홍 경관을 추모하며 이같이 적었다.

 

 홍 경관의 장례는 토론토경찰장(葬)으로 성대하게 치러졌고 동료경관들은 고인을 극진히 모셨다. 장례식은 방송을 통해 생중계됐고 운구행렬은 영스트릿을 따라 장엄하게 이어졌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 국장기간이어서 관심이 온통 영국에 가 있었지만 토론토시민들의 홍 경관 추모열기도 그에 못지 않았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캐나다의 공동체 일원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0…하지만,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유감스런 면이 작지 않다.

 한인경관이 불의의 총격사고로 숨지자 캐나다 사회는 고위 인사들이 일제히 나서 조문을 표하고 언론도 난리인데 정작 그 많은 한인단체들은 한마디 코멘트도 없었다. 어딘가 이상하지 않은가.

 

 홍경관 유족에게 온정의 손길도 이어지고 있다. 순직경관들 유족을 지원하는 단체에서는 홍경관 부인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당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도움을 주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한인사회는 조용했다. 같은 핏줄인 경찰관이 순직했으니 적어도 한인단체 몇 군데서 애도의 글이라도 나와야 할텐데 꿀먹은 벙어리다. 한인 가운데 조문소에 서명한 사람도 극소수였다.

 이것도 영어소통 때문일까?

 

 토론토경찰장(葬)에 앞서 19일 진행된 한인대상 추도식(천주교식 연도(煉禱))에도 한인 조문객은 많지 않았다. 소수의 성당 교우들만 참석했다. 그 많은 한인단체와 단체장들은 이런 때 무얼 하고 있는지.

 

0…이번 뿐만이 아니다. 4년 전 노스욕 밴참사로 한인 젊은이 3명이 죽고 3명이 다쳐 민족별로는 가장 큰 피해를 당했는데도 당시 조문행사장엔 한인들이 별로 안나타났다.

 

 이처럼 한인들이 현지 일에 무심한 현상은 투표율로도 잘 나타난다. 올 6월 온주 총선거 당시 한인 투표율은 전체 유권자의 20% 도 안됐다. 한인들은 도무지 주류사회 일엔 관심이 없는 것이다.

 

 마침 한국의 대통령이 온다니 은근히 관심들이 여기에 쏠려 있었던 듯하다. 능력도 식견도 없는 사람을 만나 무슨 얘기를 듣겠다는건가.

 동포들은 부디 쓸데없는 일에 신경쓰지 말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부터 관심을 갖자.

 

 한인경관이 큰 비극을 당했으면 조문서 한줄이라도 발표하는 것이 예의가 아닐까.    (사장)       

 

yw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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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15
레스토랑 가기가 겁난다- 영어의 골든타임을 놓치면

 

 평소 영어를 거의 쓰지 않다가 갑자기 돌발상황에 맞닥뜨리면 말이 안나와 당황하기가 십상이다. 비근한 예로 이곳 현지 레스토랑에 가면 적잖이 곤혹스러운게 사실이다.

 

 수년 전 한국에서 친지가 다니러 온 적이 있었는데, 그분은 나름 외국음식에 관심이 있다고 해서 우리는 좀 괜찮은 스테이크 하우스에 데려갔다. 그런데 그분은 자기는 이곳 사정을 모르니 우리가  알아서 맛있는 메뉴를 시키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현지음식을 자주 먹어봐서 잘 알 거 아니냐는 것이다.

 

 이럴 때 평소 한국음식만 먹어온 내가 무슨 음식을 추천하고 주문할지 참 막막하기만 했다. 솔직히 이실직고 하며 “우리는 한국음식만 먹어서 잘 몰라요” 할까.

 

 속으로 비지땀이 흘렀다. 나는 도대체 이곳에 살면서 음식메뉴 하나도 제대로 주문하지 못한단 말인가. 나는 고시공부하듯 애꿎은 메뉴판만 뒤적거리고 있는데, 마침 아내가 재치있게 메뉴를 시켰다. 가정과 출신인지라 음식에 대한 상식이 있기 때문이다.

 

 Appetizer는 무엇에, 메인 메뉴는 고기를 어떻게 구워달라고 했다. 그래서 나도 슬그머니 “나도 그걸로 하지 뭐…” 하고 넘어갔다.

 

0…이런 상황에서 서양메뉴를 능숙하게 오더할 수 있는 한국인(이민 1세)이 얼마나 될까. 한식당에 가서도 무얼 먹을까 하면 대개 “아무거나!” 하는 습관이 있는데 복잡하기 짝없는 양식요리를 세세히 주문할 수 있는 한국인이 몇이나 될까 말이다. 그렇다고 한식당처럼 “Anything!”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런 일이 있은 후 나는 마음 속으로 다짐을 했다. 앞으로 혹시 서양 레스토랑에 갈 일이 있으면 아예 사전에 메뉴를 정해놓고 오더할 말도 미리 준비를 하자고. 그야말로 남들 앞에서 (개)망신 당하기 싫으면 그렇게라도 해야겠다고.

 

 특히 곤혹스러운 것은 한국에서 누가 왔을 때 그들을 이곳 레스토랑으로 안내했을 때다. 그들은 당연히 우리가 영어를 잘하고 서양음식도 잘 주문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텐데 실상은 이러한 것이다.   

 

0…언어는 필요이자 습관이다. 평소 영어를 사용해야 할 필요성이 절박하고 일상생활이 습관화돼야 하는데 우리는 정반대 환경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민 와서 5~10년 이내에 영어환경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멀어져간다. 동족끼리 어울리는 생활습관이 몸에 배는 것이다. 이민연조가 오래되신 어르신들이 더 언어장벽을 느끼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즉 이민연수(年數)와 영어습득은 오히려  반비례한다고 할 수 있다.

 

 “캐나다에 그리 오래 사셨으면서 영어를 못하세요?”란 말이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다. 골든타임을 놓치면 평생을 언어 불편자로 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새로 이민 온 ‘프레시맨’들에게 가능한 현지사회와 어울려 살아갈 것을 권한다. 훗날  “내가 영어만 잘하면 뭐든지 자신있다”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0…내가 아는 한국분 중에는 조준상 대표가 영어를 자연스럽게 잘한다. 40여년간 부동산 일을 하면서 현지인들과 소통해온 덕일 것이다.

 

 이처럼 영어가 늘려면 현지인과 자주 교류하고 영어로  대화해야 한다. 굳이 고차원적인 영어가 아니더라도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영어가 최고다.

 

 집에 자녀가 있으면 도움 좀 청하면 좋을 것이다. 나의 경우 둘째딸이 집에서 근무중이라 궁금한 영어가 나오면 수시로 물어본다. 마침 딸이 (나를 닮아서 그런지!) 언어재능과 감각이 있다. 영어는 물론이고 한국말도 아주 섬세한 표현까지 이해하고 있어 내가 무엇을 물어보면 정확하게 가르쳐준다. 

 

 두 언어 중 하나라도 어색하면 번역이나 통역을 해도 정확한 표현을 하기가 어려운 법인데 우리 딸은  뉘앙스까지 파악해내니 큰 도움이 된다.

 

 지난 주엔 골프를 치는데 앞서가는 조가 너무 더디게, 할 짓 다해가며 느리게 플레이를 했다. 그래서 지나가는 마샬(marshal)에게 “Those guys are so slow…”라고 불평을 했더니 그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 가서 주의를 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해도 그런 complain이 왠지 어색해보였다. 그래서 집에 와서 딸에게 물어보았다. 이럴 땐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이에 딸은 “The group in front is holding us back”이라고 하는게 좋겠다고 했다. 역시!       

 

0…사실 이는 매우 아이러니한 얘기다. 아이들이 한국말 잊지 않도록 집에서 한국말만 쓴 결과 아이들은 한국말이 자연스러운 반면, 부모는 그만큼 영어 쓸일이 없었다는 뜻이다. 그러니 이제라도 아이들이 부모에게 그 은덕(?)을 돌려드려야 하는 것 아닌지. 

 

 집에서 자녀들과 영어만 쓴 분들은 적어도 일상회화는 잘 하실 것이다. 반면 자녀들의 한민족 정체성과 한국말 소통 면에서는 아쉬운 점도 없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이민 1세들의 눈물어린 애환인 것이다. 

 

 아무튼 주변의 작은 일에서조차 쉽게 사용할 말을 어렵게 생각해서 하려니 힘이 든다. 하지만 배움에 너무 늦었다란 말은 없다(It's never too late). 죽을 때까지 영어를 배우고 익혀 비록 남의 나라 땅이지만 당당하게 살아가야겠다.   

 

0…영어와 관련한 에피소드는 무궁무진하다. 책으로 써도 몇권은 될 것이다.

 

 내가 이렇게 영어에 대해 시리즈로 쓰는 것은 나 자신이 그 절실한 필요성을 새삼 깨달으며 이제라도 공부 좀 하자는 스스로의 다짐이기도 하다.

 

 영어권 이민생활에서 가장 남는게 무엇이겠나.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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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08
영어, 그 불편한 진실- 모든 능력 평가의 척도

 

 

 지난주 ‘영어는 권력이다’ 글이 나간 후 많은 분들이 공감한다는 댓글을 보내오셨다. 사실 우리가 영어권인 캐나다에 이민 올 때는 시간이 지나면 꽤 영어를 잘할 줄 알고 왔을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못하다.

 

 자녀들이 단기간에 영어에 익숙해져 현지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것이 기특하긴 하지만 정작 이민 1세들은 그렇질 못하다. 이유가 무얼까?

 

0…대부분의 이민자들은 캐나다에 올 때 영어를 잘해보겠다는 결심이 조금이라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굳은 결심을 해도 시간이 지나면 타성에 젖기 쉽다. 세월이 흐르면서 초기의 다짐이 갈수록 흔들린다. 외국어와도 점차 멀어지게 된다. 

 

 특히 먹고 살자니 우선 일자리 찾는 일이 급한데, 캐나다 경력도 없는 이민자들이 현지에서 일자리를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여기서부터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진다. 결국 마음 편한 동족사회 안에서 일거리를 찾게 되고 그러면서 영어는 별로 쓸 일이 없는 생활로 빠져든다.       

 

 모든 것이 그렇듯, 언어 역시 필요에 의해 발전하는 법인데 우리민족끼리 어울리다 보니 영어 사용의 필요성이나 절박함을 못 느끼는 것이다.   

 

0…최근 이탈리아 여행 때 만난 한인가이드가 기억에 남는다. 40대 초반의 그는 성악공부를 하러 유학 온지 7, 8년이 됐다고 한다. 그런데 현지 이탤리언과 교신을 하는데 꽤 자연스레 이태리어를 했다.

 

 평소 언어에 관심 많은 내가 그의 언어실력을 창찬했더니 그는 캐나다에서 온 우리보고 “선생님은 영어를 잘하실 거 아녜요. 부러워요.저는 영어가 제일 어려워요.” 하는 것이다.

 

 그때 나는 속으로 뜨끔했다. 그러면서 새삼 나를 돌아보았다. 영어권에서 20년 이상을 살아온 나는 과연 영어를 잘 하는가.

 

0…영어는 세계 공용어이긴 하지만 우리 같은 비영어권 민족에겐 매우 어려운 언어다. 정반대인 어순(語順)도 그렇지만 문법이나 어휘가 너무 다기다양하고 변화무쌍해 따라잡기가 결코 쉽지 않다. 단어와 문구를 많이 안다고 해도 발음과 액센트를 자연스럽게 내기도 만만찮다.

 

 특히 아주 간단한 동사와 형용사도 뒤에 조동사와 전치사가 무수하게 따라붙어 수십가지 뜻으로 나뉘니 웬만해선 원어민처럼 말하기가 쉽지 않다.  

 

 즉 영어를 잘하느냐 여부는 어려운 단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쉬운 단어로 연결된 일상 말을 얼마나 잘하느냐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니 비영어권 사람이 익숙해지기가 어렵다. 힘든 단어를 죽도록 외워도 일상에선 별로 쓸 일도 없고 현지인이 잘 알아듣지도 못한다.   

 

0…또한 다른 언어들은 적당히 발음을 해도 뜻이 통하고 어색하지도 않다. 대부분의 서양어는 스펠링대로 발음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어는 스펠링과 발음이 다른 경우도 많다. 이러니 우리같은 동양인들에게 여간 어려운게 아니다.    

 

 특히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 그것은 다른 나라 언어는 잘못해도 외국인이니 그러려니 하지만 영어는 다르다. 영어를 잘하면 다른 모든 능력이 뛰어나 보이고 웬만한 단점은 묻혀 버린다. 그래서 영어는 곧 능력으로 통한다는 것이다.       

 

 웬만한 허물은 영어만 잘하면 덮힌다. “그 친구 다른 건 몰라도 영어는 잘해”. 반대로 다른 능력이 출중해도 영어를 못하면 다 묻힌다. “그 친구 영어를 못해서…”. 이러니 영어는 곧 능력으로 통하는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씁쓸한 현실이다.

 

 더욱이 대중 앞에 서야 하는 단체장이 무능력자라고 무시당하기 싫으면 영어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다.

 

0…그럼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굳을대로 굳은 머리로 새삼 영어단어를 외우기도 그렇고… 하지만 늦었다고 ‘생존수단’을 포기할 수는 없다. 우선 작은일부터 실천해보자.

 

 나의 경우 언어적인 면에 관심이 많다. 거리를 운전하면서도 가게의 간판이나 거리 이름을 유심히 본다. 저런 이름은 어디서 왜 나왔을까. 궁금한 것은 나중에 사전을 찾아 확인해본다. Willowdale엔 옛날에 버드나무(willow)가 많았나 보다. Finch 애비뉴엔 핀치라는 예쁜 새가 살았을까. 내가 사는 동네엔 가시나무(thorn)가 많았나… 

 

 차안에서도 계속해서 뉴스채널을 듣는다. 15분마다 같은 뉴스가 반복되니 웬만하면 다 들리게 된다. 이러다보니 캐나다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웬만큼 알게 된다. 이는 화젯거리를 쌓는데 큰 도움이 된다.

 

 화젯거리가 풍부해야 대화도 재미있게 할 수 있는 법. 따라서 현지인과 대화를 하려면 이곳 뉴스를 많이 들어 화젯거리를 많이 만들고 또한 용어도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가게를 하더라도 물건만 사고 팔 것이 아니라 이 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스포츠 등에 대해 알고서 대화를 나누면 훨씬 부드럽게 풀어나갈 수 있다. 아는 것이 많아야 대화거리도 많고 인간관계도 돈독해지는 법이다.

 

0…내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캐나다 뉴스를 요약해(recap) 업데이트하는 이유도 그렇다. 한인들이 이곳 소식을 알아야 현지에 적응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다. 단, 뉴스를 요약만 할 뿐 자세한 내용은 기사원문의 링크를 걸어둔다. 이참에 영문기사도 좀 보시라는 주문이다.     

 

 골프를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너무 집착하지 말자는 것이다. 골프를 잘 친다는 것은 그만큼 시간과 돈을 들였고 가정에는 등한시했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차라리 그 시간에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우고 영문신문도 정독하는 것이 훨씬 생산적이지 않을까.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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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01
영어는 권력이다- 한인 리더들 영어능력 절실

      


2022 한인대축제 공식 개막식 행사

 

 나는 명색이 영문과 출신이다. 중.고교 시절 영어성적은 늘 상위권이었고 대학 학과도 앞뒤 잴 것 없이 영문과를 택했다. 영어라면 자신이 있었고 한때 시사영어 출판사에서 일하기도 했다.

 

 캐나다 이민의 동기도 영어가 결정적 요인 중 하나였다. 봉급생활로는 아이들의 엄청난 영어 과외비를 댈 자신이 없었고 어줍지도 않게 외국인 불러다 한시간씩 회화를 배운다고 실력이 늘 것 같지도 않았다. 평생 영어 때문에 시달릴 아이들을 생각할 때 차라리 영어 쓰는 나라에 가서 사는게 낫겠다는 결심을 했던 것이다.

 

0…미련없이 이민봇짐을 싸들고 왔고 캐나다 땅에 발을 딛자마자 나름 영어에 자신이 있던 터라 모든 정착 일을 스스로 해보겠다며 여기저기 부딪쳐 가면서 호기도 부렸다. 첫 정착지도 영어만 쓰기 위해 한국인이 없는 소도시로 정했다.

 

 하지만 곧 모든게 부질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먹고 사는 일이 급하다보니 우선 일자리를 찾게 됐고, 기자 노릇 외에는 달리 재주가 없는 나는 다시 한국신문 만드는 일에 매달리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영어를 정복하겠다던 의지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영어실력은 갈수록 줄었다. 한인직장에, 한국음식에, 한국사람에, 한인사회에, 한인성당에… 영어를 별로 쓸 필요가 없는 날이 22년째 반복되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오가는 차안에선 뉴스채널을 고정시켜놓고 계속 뉴스를 들으니 시사흐름엔 어느정도 통달해있다. 하지만 일상적 대화가 참 곤혹스럽다. 한국에서 배운 단어들은 고차원적이고 어려운 것들이지만 일상에서는 잘 쓰지 않는 말들이어서 현지인과 대화를 이어가기가 난감하다.  

 

0…우리는 특히 모국어의 중요성을 감안해 집에서는 아이들과 한국말로 대화를 하다보니 아이들의 한국어 실력이 자연스러운 것은 다행이지만, 문제는 우리 부부의 영어실력이 늘지 않은 것이다.

 

 이같은 현실은 많은 이민자들이 처한 실상이다. 이민초기만 해도 연조가 오래된 선배들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선배들 가운데 많은 분이 영어를 거의 못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왜 그럴까, 처음엔 의아했지만 이젠 이해가 간다. 언어란 일상에서 자주 써야 느는 법인데 우리들은 굳이 영어가 필요없는 환경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0…지난주 캐나다 한인사회 최대규모라 할 노스욕 한인대축제가 성황리에 치러졌다. 팬데믹으로 중단됐다 3년 만에 재개되니 더 반갑고 활기에 차 보였다. 방문객도 인산인해였고  프로그램도 알찼다.

 

 한인사회가 주최한 축제인데도 외국인이 더 많이 행사장을 찾았고 한인행사가 주류사회와 더불어 성장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모든 행사가 그렇듯 옥의 티는 있게 마련. 특히 공식 개막식은 이전부터 지적돼왔듯 또다시 개선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관객이 스탠드를 꽉 메운 가운데 열린 개막식에서 무대 단상에 나란히 앉은 소위 VIP란 분들의 스피치(영어)가 시작됐다.

 

 모두 7명이 스피치에 나섰고 그 중 5명이 한인 지도자들이었다. 이들은 사전에 열심히 스피치 연습을 한 흔적은 보였지만 듣는 청중의 입장에선 불안하고 조마조마했다. 누구는 미리 준비해온 원고를 읽었고 누구는 즉석연설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딱딱하고 굳은 발음과 어색한 문법은 그렇다 치고,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본인 스스로 파악이나 하고 발언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많은 청중 앞에서 긴장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 감안하면서도 ‘이건 아닌데’ 라는 생각을 접을 수가 없었다.

 

0…이럴 때 유창하고 능숙하게 영어연설을 할 한인지도자가 있다면 얼마나 듬직할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어설픈 스피치도 그렇지만 발언시간도 너무 길어 전체 분위기를 지루하게 만들었다.

 

 더듬거리는 한인들에 이어 마이크를 잡은 현지 정치인은 마치 기다렸다는듯, 속사포 같은 속도로 (원어민)스피치를 하는데 한인들과는 무척 대조적이었다. 자신감에 찬 톤으로 행사장 분위기를 띄웠다.

 솔직히 이런 모습을 보면서 은근히 자존심이 상하는 것은 나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번 경우처럼 주류 정치인이나 현지 인사들이 한인행사에 참석해 연설할 경우 한인들은 왠지 왜소해 보이고 설득력도 떨어진다. 정말 속상하고 자존심이 상한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수모를 당하고 살아야 하는가.

 

0…한인들이 현지인에 비해 뒤지는게 무언가? 딱 하나, 바로 영어다. 모든 능력이 앞서도 언어가 달리면 더 이상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민사회는 우리끼리만 모여 사는 소공동체가 아니며 현지인들과 어울려야 스케일도 커지고 당당하게 캐나다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죄송하지만 이 기회에 감히 제언해본다. 한인단체 지도자로 나설 분들은 상당한 영어실력이 있는 분들이 나서주길 바란다. 본인 스스로 영어 스피치에 자신있고 현지인들과 의사소통에도 지장이 없는 분이 단체장을 맡아야 한다. 그래야 한인사회가 현지인들로부터 대우받고 위상도 올라갈 수 있다.        

 

 생각해보라. 리더란 사람이 의사전달도 불분명하고 연설도 제대로 못한다면 현지사회로부터 올바른 대우를 받을 수 있겠는가. 그들은 면전에선 만인평등한듯 친절하게 대할지 모르지만 돌아서면 우습게 여길 것이 뻔하다. 

 

 일반 동포들도 평소 영어실력 배양에 힘쓰자. 허구한 날 골프에만 매달리지 말고 공부 좀 하자. 언제까지 남의 나라에서 말 못하고 무시당하며 살 것인가.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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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25
사랑의 기술 -손자를 안고 보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 아마 그것은 사랑일 것이다. 삼라만상 모든 존재의 근원은 사랑이며 사랑이 없으면 아무런 생명체도 존재할 수가 없을 것이다. 생각하는 존재인 인간은 더더욱 그렇다. 사랑이 없는 인간사회란 상상할 수가 없다.   

 

 인류의 영원한 스승인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다. “살아오면서 한순간도 사랑에 빠져 있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사랑에도 종류가 있다. 연인을 향한 사랑 에로스(Eros), 가족에 대한 사랑 스토르게(Storge), 이방인을 배려하는 사랑 크세니아(Xenia), 친구간의 사랑 필리아(Philia), 인류를 품는 무조건적 사랑 아가페(Agape)…

 

0…이 중 나는 두 사랑에 주목한다. 스토르게와 아가페 사랑이 그것이다.

 스토르게는 인간의 본능인 가족간의 사랑이다. 따뜻함과 다정함, 호의가 자연스럽게 분출되는 사랑. 이는 누가  강제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나타난다. 우선적으로는 직계가족 관계에서 나타나지만 같은 부족 내에서 혹은 같은 임무나 의무를 수행하는 사람도 경험할 수 있다.

 

 가장 고결한 스토르게는 인류 모두가 한가족이라는 마음이다. 하지만 그 시작은 가족 구성원이 서로에게 느끼는 사랑, 특히 부모가 자식에게 쏟는 사랑에서부터 비롯된다.

 

 아가페는 가장 지고지순(至高至順)한 사랑이다. 마음에서 진정으로 우러나는 자기희생적이고 무조건적 사랑으로, 아가페를 실천한다는 것은 진정한 인류애를 보여주는 것이다.

 

 아가페는 사랑을 베푼 대상이 자신에게 보답을 해줄 것이라 기대하지 않는다. 아가페가 충만한 사랑은 아무 대가 없이 주고, 무조건 사랑하며, 보상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다. 대가를 기대하지 않으나 자신이 준 것보다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는 경우도 많다.

 

0… 사랑을 표현할 때 보통 하트(heart) 모양을 사용한다. 하트는 빨간 심장의 이미지이다. 하트를 통해 상징되는 사랑의 의미는 뜨거운 감정이자 설레는 마음이다. 즉 하트는 사랑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이라는 의미다.  

 

 사랑에 대한 이 같은 통념에 반기를 든 학자가 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이성적 결단이라고 이야기한 에리히 프롬이다.

 

 독일의 정신분석학자이자 사회철학자인 프롬은 저 유명한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에서 인류의 영원한 화두인 사랑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그에게 사랑이란 뜨겁고 설레는 감정적 경험이 아니라 의지를 갖고 노력해야 하는 훈련의 영역이다.

 

 사람들은 사랑을 ‘하는’ 문제보다 ‘받는’ 문제로만 생각한다. 다시 말해 상대방을 사랑하기 위한  노력보다 상대로부터 더 많은 사랑을 받는데 집중한다. 프롬은 이에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며 사랑의 ‘대상’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고 감정은 사랑의 전부가 아니라고 설파한다.

 

 프롬은 말한다. “사랑처럼 큰 희망과 기대 속에 시작됐다가 실패로 끝나고 마는 사업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아무 노력과 훈련 없이 그저 희망과 기대만 갖고 뛰어드는 사랑은 결국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0…기다리던 큰딸이 마침내 출산을 했다. 내가 할아버지가 된 것이다. 솔직히 무척 반갑고 기뻤다. 애당초 성별(性別)은 관심이 없었다. 산모와 아기 모두 건강하기만을 바랐다. 지금도 아들타령을 하는 사람이 있나 본데 두 딸을 둔 나는 그런 건 초월한 지 오래다. 

 

 아무튼 내 팔 길이만한 핏덩이를 안아보니 가슴이 뛰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아, 생명의 신비여. 그 작은 신체에 있을 건 다 달려 있다. 뚜렷한 이목구비, 손가락 발가락 열개씩, 새까만 머리숱… 직계 손자는 아니지만 아무리 바라보아도 신기하기만 하고 시간 가는줄 모르겠다.

 

 예로부터 ‘내리사랑’이라 했다. 손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뜻한다. 특히 내 자식보다 손주 사랑은 더 각별한 것 같다. 그것은 자식을 낳을 때는 한창 정신없이 일할 때여서 온전히 기뻐하거나 정을 쏟을 여유가 없었으나 손주를 볼 때 쯤이면 여러 면에서 어느정도 여유가 생겨 더 그런 것이 아닌가 한다.

 

 한편으로 손주들은 아무래도 내 자식들보다는 살아서 오래 얼굴 볼 시간이 적기에 애틋한 마음이 들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막내자식에게 더 정이 쏠리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지.

 

0…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아름다운 단어. 사랑이란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단어들을 아우르는 말이다.

 

 하지만 프롬의 말대로 사랑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손자가 사랑스럽다고 무조건 받들기만 할 것인가. 아니면 이 험한 세상 풍파 잘 헤쳐나가도록 강하게 훈련을 시킬 것인가.

 

 나는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나 추억이 전혀 없다. 아버지마저 어릴 때 여의었는데 할아버지는 더더욱 기억 같은게 있을 리 없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역할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그냥 예뻐하기만 하면 되나. 아니면 엄할 때는 엄하게 훈육시켜야 하나… 

 

 어쨌거나 손자에게 이 외할아버지는 인자하고 때론 근엄했던 인물로 기억되면 그것으로 족하겠다. 잔잔한 바다는 훌륭한 항해사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 고요한 바다는 안전하고 편한 항해를 하게 하는 반면, 거친 바람과 높은 파도는 위기대처 능력을 가진 훌륭한 항해사를 키워내게 된다. 

 

 손자가 이름(지용-志?) 그대로 의지가 뛰어난 인물로 잘 자라주길 기대하는 한편, 할아버지로서 나의 사랑엔 어떤 기술이 필요할까 생각해본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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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8
적당히 감추고 살기- 사람은 신비해야 아름답다

 

▲신부는 베일에 가려져 있을 때 아름답다.

 

 신비주의(mysticism)는 원래 종교와 철학적 개념이지만 지금은 보통 베일에 가려진 인간의 모습을 가리킨다. 이는 실제 능력이나 인품 등이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빛을 발한다. 막상 신비의 베일이 벗겨지고 실체가 드러나면 그 결과는 대개 실망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인간은 적당히 신비로울 때 아름다운 것이다.          

 신비주의는 정치권에서 위력을 발휘할 때가 많다. 겉으로 나서지 않고 뒤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며 정치판과 국가 정세를 좌지우지하는 것이다. 그 파워는 겉으로 안 보이기에 더 신비하다.

 

0…영어 속담에 ‘Everyone has a skeleton in the closet’란 말이 있다. 인간은 누구나 감추고 싶은 한 두가지 약점은 갖고 있다는 뜻이다. 아무리 재산이 많고 뛰어난 실력을 갖춘 사람이라도 말 못할 사정과 고민이 있기 마련이다.    

  

 야누스의 얼굴(Janus face)이란 말도 있다. 말과 행동이 다른 이중인격자를 가리킨다. 로마신화에 나오는 야누스는 성(城)이나 집 문을 지키는 신이었다. 그런데 머리는 하나인데 얼굴 한쪽은 앞을, 다른 쪽은 뒤를 보고 있다. 앞뒤  모습이 다르다는 데서 이 말은 부정적 의미로 사용하게 됐다.

 

 말 못할 약점이든 표리부동(表裏不同)이든 인간은 이중적인 면을 조금씩은 갖고 있다. 겉과 속이   완전히 같다면 좋겠지만 그런 무결점 인간은 많지 않다. 그래서 인간관계도 오래 유지되기가 쉽지 않다. 처음엔 상대방의 장점만 보이다 시간이 지나고 신비의 베일이 한꺼풀씩 벗겨지면서 결함이 더 크게 보이게 되고 결국은 파국을 맞는다.

 

0…사람은 신비의 베일에 가려져 있을 때 아름답다. 면사포 쓴 신부는 아름답다. 하지만 베일이 벗겨지고 본모습이 나타나면 실망을 느낄 수가 있다. 따라서 처음의 좋은 인상을 오래 간직하려면 자신을 적당히 베일에 감싸두는 기술이 필요하다.

 

 그것은 무촌(無寸)관계인 부부사이도 마찬가지다. 아름답기만 하던 사람이 함께 살아가면서 신비감이 사라지며 티격태격하는 것이다. 사람인 이상 좋았던 첫인상의 이미지가 오래토록 이어지기가 참 어렵다. 대개는 도중에 싫증을 느끼기 쉽다. 이래서 원만한 관계가 오래 가려면 적절한 절제와 예의가 필요한 것이다.  

 

 한국의 정치판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한다. 한때 멋있고 유능하게 보이던 사람이 베일이 한꺼풀씩 벗겨지면서 무능하기 짝없고 추한 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세인들을 실망시킨다. 신비감이 퇴색하기 때문이다.

 

0…나는 한때 안철수를 좋아하고 존경했다. 한국 최연소 의대 학과장, 최초의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개발자, 카이스트 석좌교수를 거쳐 이름도 생소한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 이르기까지 고도의 지적(知的) 길을 걸어온 사람.

 

 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를 만든 8할은 치열한 고민이었다. 교수를 계속할지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해야 할지 6개월간 고민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당시는 힘들었지만 진지하게 고민하니까 답이 보이더라. 고민은 인생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게 해준다.”

 

 동안(童顔)에 이지적(理智的) 이미지의 그는 성공한 사업가이자 겸손한 성품으로 사회 부조리에 대한 비판도 하면서 젊은층의 높은 지지를 얻었다. 청렴과 도전 등 시대의 아이콘으로 불릴 만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그는 세간의 인기를 업고 정계진출을 선언했다. 이때부터 그의 이미지는 급전직하 추락한다. 그는 누가 봐도 지도자감이 아니다. 시골 면장 정도에 어울릴 사람이다. 그가 학자나 의사로 있으면서 가끔 소신있는 조언이나 했더라면 훨씬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을 것이다.  

 

 이명박도 그랬고 반기문도 그랬다. 현대건설 사장.서울시장, 유엔 사무총장으로 끝났으면 지금도 세인들의 존경을 받고 살 터인데 그 이상 욕심을 부리다 세간의 웃음거리가 됐다.    

 

0…윤석열이란 사람은 더 가관이다. 검찰총장으로 마구 칼을 휘두를 때 사람들은 속이 후련했고 환호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정의의 사도’로 비쳐졌다.

 

 그러나 그것으로 족해야 했다. 미운털 박힌 사람 잡아다 족치는 일 외에는 아무 경력이 없는 그가 난데없이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서면서 만신창이가 됐다. 대통령에 당선된 순간부터 무식, 무지, 무능함이 더 적나라하게 드러나며 끝모를 나락으로 추락하고 있다.

 

 신비의 베일이 벗겨지기 시작한 윤석열의 맨모습은 천박하기 이를 데 없다. 얄팍한 식견이 드러나며 그를 대통령으로 보는 국민은 점점 줄고 있다. 그를 감싸줄 신비주의는 더 이상 없다. 취임 3개월 만에 지지율 20%대로 추락한 그는 더 이상 무얼 보여줄 능력도 역량도 없어 보인다.  

 

 그는 ‘검찰총장 윤석열’로 끝냈어야 한다. 그쯤에서 물러났다면 세인들의 아쉬움을 사면서 강직한 검사로 기억됐을지 모른다. 본분을 모르고 주제넘은 짓을 하다 저 꼴이 됐다.

 김건희도 가만히만 있었으면 가짜 학력으로 돈 많이 벌며 잘 살 수 있었을 것이다.  

 

0…아침이슬처럼 부질없는 것이 세상 인심이다. 열렬한 환호를 보내다가도 언제 돌변할지 모른다. 추락은 스스로 베일을 벗으면서 시작된다. 신비의 베일을 벗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다.

 

 존경받는 인물이 그 이미지를 간직한 채 본분을  지킨다면 오래토록 신비감에 싸여 명예를 유지할 터인데, 그 베일을 벗고 싶어 안달하는 것이 인간이다.

 부디 좋은 이미지를 갖고 세인들의 존경을 받으며 살고 싶으면 적당히 가릴 것 가리고 살아갈 일이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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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1
카사노바 재해석- 베네치아 & 스토리텔링

 


카사노바의 초상화

 

 이탈리아 북부 아드리아해에 면한 베네치아. 이탈리아 전체가 그렇듯 베네치아는 문화와 예술, 신성한 종교와 탐미적 아름다움이 가득한 도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찬란한 문명의 시기라 일컫는 그리스 로마 시대의 문물과 정신의 수혜자이며 신화와 실재가 병존했던 도시가 바로 베네치아다.

 

 이탈리아어로 베네치아(Venezia), 영어로 베니스(Venice)인 이 도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상(水上) 도시로 꼽힌다. 운하와 수상골목이 거미줄처럼 얽혀있고 차가 다니지 않아 배와 보행자의 천국이다.

 

 사람들은 베네치아를 ‘물의 도시’, ‘아드리아해의 여왕’, ‘가면의 도시’ 등으로 부르며 중세부터 그 아름다움을 축복해 왔다.

 

 하지만 찬란한 도시라는 수사(修辭) 이면엔 타민족 침입을 피해 생존하기 위해 만든 인공섬이라는 눈물어린 역사를 안고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여행객은 신기할지 몰라도 살기에도 불편하다. 물이 마루까지 차오른다고 생각해보라.  

 

 0…벼르던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오니 감미로운 여운이 오래 간다. 짧은 시간에 주마간산(走馬看山) 식이긴 했지만 나름 알찼다. 이번에 돌아본 도시들 모두 특색이 있었는데 그중 베네치아가 기억에 뚜렷이 남는다.

 

 초기 정착민이 살던 베네치아만은 습지대로 땅이 진흙투성이 개펄로 지반이 단단하지 못했다. 이후 훈족 등 외적을 피해 피난민이 몰려들었고 인구가 늘자 도시면적을 늘릴 필요성이 대두됐다.

 

 이에 베네치아인들은 개펄에 참나무를 촘촘히 박고 나무로 된 기단을 얹고 그 위에 다시 돌을 얹어 건물을 지었다. 신비하고 특별한 인공섬을 만든 것이다.

 

 이로써 베네치아는 110여 개의 섬이 400여 개 다리로 연결됐다. 섬의 모양이나 역사 자체가 세계적 문화유산이다.

 

0…베네치아는 중세들어 본격적으로 부흥했다. 십자군전쟁이 기폭제였다. 유럽에서 중동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베네치아는 수백 년간 지속된 십자군전쟁의 군수기지로서, 또 동로마.중동.인도와의 무역에서 중계상 역할을 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베네치아를 지배하는 귀족 가문들은 넘쳐나는 돈을 주체하지 못했다. 상술(商術)에 뛰어난 이들은 아름다운 궁전과 성당을 경쟁적으로 지었다. 예술에 대한 후원도 아끼지 않아 당시 베네치아는 많은 예술가들이 귀족 가문의 후원으로 인류 문화유산이 될 걸작들을 만들어냈다.

 

 안토니오 비발디도 그중 한명이다. 베네치아에서 태어난 비발디는 성직자이자 작곡가였다. 그의 불멸의 곡 ‘사계’는 4대의 바이올린으로 이루어진 협주곡으로 그동안 귀족과 성직자들 전유물이던 음악의 대중화를 시도했다.

 

0…베네치아 출신의 한 유명인이 있다. 어쩌면 이 남성은 가장 베네치아다운 삶을 살다간 인물이라 하겠다. 18세기 베네치아가 마지막 화려한 불꽃을 피우던 시기에 태어난 그는 베네치아가 수세기 동안 누렸던 풍요, 향락, 문화, 예술 등 세속적인 모든 것을 향유하다 갔다. 바로 조반니 카사노바다.

 

 그의 출생에서부터 어두운 성장과정, 귀족가문으로의 입양, 사교계 입문, 화려한 여성편력, 떠돌이 신세, 비참하게 사라져간 그 모든 것이 한편의 스토리텔링감으로 으뜸이다. 인간이 이처럼 다양한 삶과 재주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그는 분명 독특한 인물이다.

 

 우리가 흔히 ‘희대의 바람둥이’, ‘호색한(好色漢)’ 정도로 알고 있는 카사노바. 하지만 그는 단순한 바람둥이가 아니었다.

 

0…카사노바는 1725년 베네치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배우, 어머니는 유명 성악가였다. 그는 유럽 전역을 여행하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몸소 체험했다. 방대한 책을 읽은 그는 수학, 과학, 역사, 언어, 철학, 예술은 물론 펜싱과 체육 등에도 능했다.

 

 카사노바는 분명 남들과 차별되는 ‘다름’이 있었다. 수려한 외모도 한몫했지만 그의 주무기는 박식함과 달변이었다. 17세에 박사학위를 받을 정도로 각 분야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고 언어에서는 거의 천재였다.

 

 귀족의 상징인 라틴어와 그리스어는 물론 프랑스어, 스페인어, 영어, 히브리어까지 능통했다. 춤도  뛰어났고 바이올린, 승마 등 못하는 것이 없는 팔방미인이었다. 종사한 직업만 성직자, 작가, 음악가, 배우, 연금술사 외에 간첩, 도박꾼, 사업가 등 수십가지였다.

 

 특히 그는 비상한 기억력의 소유자였다. 한 번 본 사람은 절대로 잊지 않았고 심지어 당시 상황과 대화와 행동도 기억할 정도였다.

 

0…시쳇말로 바람 피울 수 있는 능력 중 으뜸은 기억력이라고 한다. 즉 여러 여성과 동시에 교제할 수 있는 능력, 그것도 ‘진정성을 주면서’라는 조건에 카사노바는 그야말로 천부적으로 부합했다.

 

 하지만 카사노바를 진정으로 빛낸 것은 그가 어떤 여성을 만나 한 순간 사랑을 하더라도 진정을 다했고 상대 역시 카사노바의 진정성을 느꼈다는 점이다.

 

 그는 체코의 보헤미아에서 73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40여 편의 작품을 남겼다. 그의 자서전 “내 삶의 이야기”(History Of My Life)는 18세기 당대 베네치아 뿐 아니라 유럽 사회의 관습과 예술, 문화, 종교 등에 관한 생생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카사노바는 책의 서두에 “내가 인생을 살아오면서 행한 모든 일이 설령 선한 일이든 악한 일이든 자유인으로서 나의 자유 의지에 의해 살아왔음을 고백한다”고 적었다.

 

0…시대를 초월해 자유를 만끽했던 ‘진정한 자유인’ 카사노바. 어쩌면 그는 천부 인권론적 사고, 즉 인간이 가져야 할 기본적 권리인 감정과 표현 그리고 행동의 자유를 실천했던, 시대를 앞서간 인물인지 모른다.

 

 카사노바를 다시 보면서 위선에 가려진 인간의 본능적 자유의 소중함을 되새겨 본다.   

 

*사족(蛇足): 카사노바 정도의 능력이 없는 사람(박식함, 달변, 매너, 기억력, 배려심, 재력, 인물…)은 바람 피울 생각 꿈도 꾸지 말고 가정에 충실할 것.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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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w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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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5
아는만큼 보인다- 여행은 인격수련 과정

 



밀라노 두오모 대성당 앞에서

 

 캐나다에 살면서 이탈리아인들에게 호감을 갖는 것은 나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특히 집을 사고 팔 때 이탤리언이 살던 집은 거의 대부분이 만족감을 주기에 거래가 잘 이루어진다. 그것은 그들이 손재주가 좋아 집을 잘 가꾸고 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는 전통적으로 음악, 미술, 건축, 패션, 디자인, 고급 스포츠카 등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수준을 인정받고 있고 음식도 인기가 높다. 그들은 세계화되어 있고 우리 일상생활에도 친숙하다. 성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이탈리아로 유학을 많이 간다. 

 

 핏자, 파스타, 스파게티, 고급 와인에서부터 구치, 프라다, 베르사체, 페라리, 람보르기니, 마세라티 등 이탈리아는 섬세한 기술이 요구되는 명품으로 유명하다. 이탈리아 문화는 대체로 우아하고 세련되고 고상한 기품이 서려 있다.

 

 서양의 역사와 문화예술의 핵심을 관통해온 세계 8위의 경제력 국가 이탈리아. 그 화려한 이면에는 수많은 거장들의 핏줄이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그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떨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브루넬레스키, 보티첼리, 도나텔로, 갈릴레오, 단테, 베르디, 비발디, 푸치니…

 

 하지만 우리가 단순히 들어만 왔던 천재 거장들의 실제 작품을 눈으로 목격하는 순간 한없는 경외심과 함께 겸손해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의 능력과 인내의 한계는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0…여름휴가를 이용해 아주 값진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왔다. 25년 전 기자단과 함께 유럽을 다녀온 적이 있지만 이번은 그때와는 달리 훨씬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는 기회가 되었다.

             

 평생에 누구나 한번쯤 다녀오고 싶고 또 많은 분들이 이 나라를 다녀와서 아시겠기에 세세한 관광지 설명은 부질없는 것일테다. 이탈리아는 몇마디 필설로 표현하기엔 너무도 방대하고 유서깊은 세계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여행에서 느낀 몇 가지만 짚어본다.

 

 우리 부부가 다녀온 도시는 세계의 모든 길이 통한다는 로마, 세계 패션과 디자인의 중심지 밀라노, 기업 문화예술 후원의 원조 피렌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상도시이자 금융(보험)의 태동지인 베네치아, 산타루치아의 고향 나폴리 등이다.  

 

0. 이탈리아는 13, 14세기에 일어난 유럽의 문예부흥 운동인 르네상스의 중심지였다. 이 르네상스 시기를 중심으로 유럽의 중세기와 근대기가 나뉘며, 신과 교회에 편중되어 있던 사회에서 벗어나 문화, 경제, 사회, 정치적으로 급속한 발전을 이룩하게 된다.

 

 당시 이탈리아 반도는 독립적인 도시국가들로 쪼개져 귀족들이 통치했다. 이 귀족들은 막대한 부와 세력을 통해 예술과 과학자들을 후원했다. 특히 유명한 귀족 가문들로 피렌체의 메디치와 밀라노의 스포르자, 베네치아의 모체니고 가문 등이 꼽힌다.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는 귀족 가문의 비호 아래 상인들이 거대한 부를 축적했고 이들의 후원을 받아 여러 예술가들이 두각을 나타냈다. 이들의 후원이 없었다면 다빈치나 미켈란젤로 같은 천재들도 빛을 발하지 못하고 역사를 바꾼 르네상스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0…이들 거장들이 남긴 거대한 문화유산은 후세인의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공사기간도 상상을 초월한다. 밀라노 두오모(Duomo. 대성당)는 장장 500년에 걸쳐 완성됐고, 피렌체 두오모는 140년이 걸렸다.

 

 건축이나 조각 장비도 변변치 않았을 그 시기에 도대체 어떻게 그런 상상과 기술이 나왔을까. 우리가 다만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놀라운 성실성과 집념이 아니었나 하는 정도이다.

 

 문화예술 창작 과정에서 천재 거장들 간의 경쟁이 치열해 갈등과 시기 질투도 많았다. 이런 긴장과 경쟁관계가 문화예술 수준을 한층 더 눈부시게 만든 측면도 있긴 하다. 그래서 더 인간적이다.

 

0. 화려한 역사에도 불구, 지금 이탈리아는 경제 침체에 허덕이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고 1인당 실질 국민소득은 2000년 수준보다도 낮다. 왜 그럴까?

 

 무엇보다 이탈리아는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갖고 있다. 기업의 95%는 고용원 10명 미만이다. 대부분 가족중심으로 운영되는 이들은 자본력의 한계로 연구개발이나 IT 기술 등에 투자를 할 수가 없다.

 

 가족 대대로 이어온 가업(家業)으로 제품은 뛰어나지만 소규모 방식이다. 세계 최고의 스포츠카를 만들지만 거의 수작업에 가깝기 때문에 대량생산이 어렵다. 소비자에겐 대만족이지만 기업으로선 성장에 한계가 있다.

 

 여기에 막대한 재정적자에도 불구하고 연금수령 연령 하향, 기본소득 지급 등을 밀어붙이고 있는 파퓰리즘 정권에서 파생되는 정치적 혼란도 한몫 하고 있다.

 

0. 어쨌든 이번 여행을 통해 새삼 성실과 최선을 다하는 이탈리아인들의 자세는 배워야 한다는 교훈을 되새기는 계기가 됐다.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외국여행을 자주 다니고 싶다. 영국 귀족들이 자제들에게 가르치는 덕목 가운데 하나가 외국여행을 얼마나 자주 다녔는지가 들어있다. 여행은 인격을 완성시키는 필수코스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엔 나만이 아니라 더 깊고 크고 다양한 세계에 나보다 훨씬 뛰어나고 훌륭한 사람들이 살아왔고 지금도 살고 있음을 깨달으며 한없이 겸손해지기 때문이다.

 

 다만, 역사와 배경을 모르고 가면 수박 겉핥기요 고행길 밖에 안된다. 특히 오랜 역사를 가진 유럽으로 가기 전엔 상당한 공부를 해가야 뿌듯한 마음으로 돌아올 수 있다. 여행은 딱 아는만큼 보이기 때문이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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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w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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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21
유언장을 쓰며- 마음을 비우니 다른 세상이





 

 여름 휴가철을 맞아 두 딸이 마련해준 이탈리아 여행을 떠나게 됐다. 그런데 요즘 코로나가 다시 확산세를 보이고 있고 세계 공항마다 북새통에 항공기 지연.취소 사태가 잇따르고 있어 마음이 편치만은 않은 상태다.

 

 어쨌든 벼르고 벼르던 여행인지라 기대감에 부풀고 있다. 나는 전에 유럽을 다녀왔지만 아내는 처음인지라 더욱 설렌다. (독자들이 이 글을 읽으실 때쯤 우리 부부는 꿈에도 그리던 피렌체에 있을 것이다.)

 

0…그런데 출발을 닷새쯤 앞두고 아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우리 여행 떠나기 전에 유언장을 작성해놓는 것이 어떻겠어요?” 나는 순간적으로 ‘웬 유언장?’ 하는 생각을 하다가 이내 그 뜻을 알아차렸다.

 

 아내가 굳이 설명을 안해도 나는 그 속마음을 금방 이해했다. 한치 앞도 모를 사람 일, 여행 중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누가 알겠는가 말이다. 외국여행 길에 뜻밖의 일이라도 당한다면… 가급적 불길한 상상은 하고 싶지도 않지만 그래도 현실은 현실 아닌가.   

 

 그래서 나는 흔쾌히 그러자고 동의했다. 사실 이 유언장은 내가 환갑을 맞을 때부터 생각을 하고 있던 터였다. 보통사람이 백년 이상을 사는 것도 아니고 언젠가는 이승을 떠난다면 살아생전에 모든 일을 깔끔하게 처리해두는 것이 마음 편하지 않겠는가 해서다. 

 

0…우리는 이튿날 곧장 변호사 사무실에 가서 소위 유언장(Will)이라는 것을 작성했다. 그런데 솔직히 기분이 다소 묘해졌다. 유언장(遺言狀). 쉽게 말해 우리 부부가 죽은 후에 처리할 일들을 자식들에게 문서로 일러두는 것이 아닌가.

 

 나는 문득 우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 같던 죽음이란 단어가 현실로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부부 중 내가 먼저 죽든, 그 반대든 남은 두 딸에게 이러저러한 것을 배분해준다는 내용이 골자인데 마치 죽음이 옆에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것이 두렵거나 무서운 것이 아니라 그저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우리 부부는 유언장에 서명하면서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건 말을 안해도 금방 알 수 있는 표정이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우리는 말했다. “별로 남겨줄 것도 없으니 금방 끝났네…”

 

 사실 우리는 딸들에게 유산이라고 남겨줄 것도 별로 없고 간단해서 고민이나 걱정할 것도 없다. 집 한 채에 통장 잔고 몇 푼… 이런 실정이니 여느 재벌가처럼 부모가 돌아가신 후 자식들간에 흔히 벌어지는 재산쟁탈 전쟁 같은 염려는 없을 터이다.

 

 어쨌든 오래 전부터 생각해두었던 일을 마치고 나니 숙제를 끝낸 기분이었다.   

 

0…사람이 죽기 전에 남기는 말이나 글에는 두 가지가 있다. 유서(遺書)와 유언이 그것이다. 하지만 한 글자 차이지만 양자는 어감도 그렇고 법적 효력도 다르다. 유서는 대체로 자살하는 사람이 가족이나 주변인에게 자신의 마지막 심정을 전하는 글이다.

 

 유서는 영어로 Suicide note라고 쓰며, 법적효력이 없는 것이 보통이다. 어쩌면 극한에 몰린 인간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쓰는 가장 진솔한 말이 유서일지도 모른다.  

 

 유서에 비해 일정한 형식을 갖춘 유언은 자신의 생각이나 마음이 아닌 주로 재산상속이 포함된다. 즉, 유서는 자신의 마지막 생각을 담담하게 적는 것이고 유언은 법적 효력이 발생할 수 있는 형식을 갖추는 것이다.

 

 우리의 유언장을 작성해준 변호사에 따르면 유언은 상속받는 사람의 동의가 필요하지 않으며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작성할 수도 있고 그중 가장 마지막에 작성한 유언이 법적 효력을 갖게 된다고 했다.

 

 0…유언장 작성 시기는 언제가 좋을까? 그것은 영육간 건강할 때 하는 것이 좋다. 건강이 나빠지면 유언장을 작성하는 것에 지장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정신적으로 미약한 상태에서 올바른 판단이 안 설 경우 자칫 엉뚱한 분란을 초래할 수가 있다.  

 

 한국인은 대체로 사망에 따른 복잡한 문제를 미리 생각하길 꺼리는 경향이 있다. 모든 재산이 배우자에게 자동 상속된다고 잘못 알고 있는 경우도 많다. 특히 유언장은 재산이 많은 사람들이나 하는 일로 치부해버리는 사고방식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유언장을 미리 준비해 두면 효율적으로 유산을 분배하고 본인이 원하는 상속자에게 정확하게 재산을 전할 수 있다. 본인이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재산관리 및 분배를 담당하게 미리 지정해 둘 수도 있다.

 

0…유명인사들의 유언에 관한 에프소드도 많다.

 영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로 꼽히는 윈스턴 처칠 수상은 이런 유언을 남겼다. “나는 창조주를 만날 준비가 되어 있다. 다만 창조주께서 나를 만나야 하는 시련에 준비가 되어 있는지는 또다른 문제겠지만. ”

 

 독일의 경제학자이자 철학자, 언론인으로 '자본론'을 집필한 칼 마르크스. 실질적인 공산주의 창시자인 그는 이렇게 일갈했다고 한다. “마지막 말은 살아있을 때 충분히 말하지 못한 바보나 하는 것."

 

 아무튼 유언장을 쓰고 나니 웬지 마음이 홀가분해지고 세상사 욕심도 없어지는 것 같다. 어차피 모든 것 뒤에 남겨두고 한줌의 재로 돌아갈 인생인데 욕심을 내 무엇할 것인가.     

 

 딱 한번만 사는 일생(一生). 사람은 가고 유언(遺言)만 남는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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