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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손편지-사라져 가는 정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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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마 유치환 시인과 정운 이영도 시인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망울 연연한. ’ (유치환 ‘행복’ 중)

 

 이 시의 탄생 배경으로 알려진 청마(靑馬) 유치환 시인과 정운(丁芸) 이영도 시인의 플라토닉 사랑은 요즘 말로 하면 외도요 불륜이었다.

 

 경북 청도 출생의 이영도 시인은 재색(才色)을 고루 갖춘 규수로 21세에 결혼해 딸 하나를 낳았다. 하지만 남편이 폐결핵으로 일찍 죽는 바람에 스물 아홉 살에 청상과부가 되어 홀로 살다 해방되던 해 통영여중 가사 교사로 부임한다.

 

 그런데 일본 유학 후 해방이 되자 고향에 돌아와 같은 학교의 국어교사가 된 청마의 첫눈에 정운은 열렬한 사랑의 화신으로 다가왔다. 일제하의 방황과 고독으로 지쳐 돌아온 서른 여덟 살의 청마는 스물 아홉살의 청상(靑孀) 정운을 만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유교적 가풍의 전통적 규범을 깨트릴 수 없는 정운이었기에 마음의 빗장을 굳게 닫아 걸고 청마의 사랑이 들어설 틈을 주지 않았다.

 

0…‘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통영 바닷가에서 바위를 때리는 청마의 '그리움'은 뭍같이 까딱도 않는 정운에게 보내는 사랑의 절규였다.

 

 청마는 이때부터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정운에게 편지를 써보냈다. 통영 우체국에 나가 편지를 부치는 일이 일상사가 됐다. 그러기를 3년. 날마다 배달되는 편지와 청마의 애절한 사랑 시편들에  마침내 빙산처럼 꿈쩍 않던 정운의 마음도 서서히 녹기 시작했고, 두 사람의 플라토닉 사랑은  시작됐다.

 

 하지만 이미 둘 다 기혼(旣婚)인데다 자식까지 있는 이들의 사랑은 애당초 이루어질 수 없었고 그러기에 더욱 안타깝고 애틋했다.

 

 끝이 보이지 않을 듯 하던 청마의 사랑편지는 그러나 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끝이 났다. 1967년 2월 13일 저녁, 청마가 부산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영영 붓을 놓게 된 것이다.

 

0…청마는 타계할 때까지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20년 동안 편지를 써보냈고 정운은 그 편지들을  꼬박꼬박 보관해 두었다. 그러나 6·25전쟁 이전 것은 전화(戰禍)에 불타 버리고 청마가 죽었을 때 남은 편지는 5,000여 통이었다. 이 편지들이 모여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란 책이 엮어져 나왔다.

 

 수채화 같은 두 시인의 러브 스토리는 청마의 아내(권재순)의 통 큰 마음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청마의 고향 소꿉친구였던 아내는 청마의 예술활동을 지원하는 든든한 후원자였으며 청마의 외도에 불평을 하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청마는 조강지처 아내를 만난 것이 인생 최대의 행복이었고?? 행운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한폭의 빛바랜 앨범 같은 플라토닉 사랑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문학작품이 잉태된 이면엔 애틋한 사랑의 손편지가 있었다.

 

0…지금은 좀처럼 보기도 쓰기도 어려운 손편지. 그에 대한 추억도 참 많다. 사춘기 시절, 가슴 두근거리며 써내려가던 풋사랑 연애편지는 지금 생각해도 순수하고 아름답기만 하다.   

 

 늙으신 어머니가 버선발로 뛰어 나오셔서 받았던 군에 간 아들의 편지. 전방에서 받아보는 어머니의 세심 어린 편지. “아무개 보아라. 겨울날씨가 추워지는데 거기는 어떠냐? 언제나 건강에 조심해라. ” 이 편지 받아들고 눈물 한번 안 흘린 한국남자가 있을까.

 

 “사랑하는 아무개씨…”로 시작되는 연인에게서 날아온 사랑편지는 힘들고 고독한 군생활을 견디게 하는 강한 무기였다.

 

 유명인사들의 편지에 얽힌 사연도 적지 않다. 민주화투쟁 과정에서 감옥에 갇힌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부인 이희호 여사와 주고받은 옥중서신들을 모은 ‘마지막 편지’라는 책이 만들어져 세인의 심금을 울렸다.

 

 억울하게 간첩으로 몰려 사형선고를 받고 수감생활을 한 신영복 교수의 옥중서신이 모아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지식인 사회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런가 하면 1997년에 제작된 최진실 박신양 주연의 ‘편지’란 멜로영화는 보는 이들의 눈물샘을 흠뻑 적셨다.

 

0…손편지란 이처럼 추억과 낭만과 인간미가 듬뿍 담긴 사랑의 매개체이다. 특히 외국에 살면서 고국으로부터 날아온 편지는 반갑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요즘엔 그런 낭만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우편함엔 대부분 공과금 고지서나 광고 전단지만  쌓여 있을 뿐 그리운 사람의 손편지는 눈을 씻고 보아도 없다. 요즘 세상에 육필 편지를 받아들고 기뻐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이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메일로, 혹은 그것마저 귀찮으면 간단히 스마트폰으로 소식을 주고 받는다. 문명의 이기(利器) 덕분에 모든게 편리해지긴 했으나 그리운 이의 체취가 담긴 손편지를 받아보는 반가움과 기쁨은 아련한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0…연말이 되니 이곳저곳에서 스마트폰으로 안부를 전해오고 있다. 아예 없는 것보다야 반갑긴 하지만 갈수록 인간의 정이 메말라 가는 것 같아 씁쓸하다.     

 

 ‘시보다 더 곱게 써야 하는 편지/시계바늘이 자정을 넘어서면서/네 살에 파고드는 글/정말 한 사람만 위한 글/귀뚜라미처럼 혼자 울다 펜을 놓는 글/받는 사람도 그렇게 혼자 읽다 날이 새는 글/그것 때문에 시는 덩달아 씌어진다’ (이생진 시인 ‘편지 쓰는 일’)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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