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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 속의 고독-이민사회와 친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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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중 속의 고독이란 말이 있다.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빗 리스먼(David Riesman:1909~2002)의 저서 ‘고독한 군중(The Lonely Crowd 1950)’에서 유래한 말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산업사회 속의 현대인은 자기 주위를 의식하며 살아간다. 그 이유는 그들 대열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서다. 즉 겉으로 드러난 사교성과 다른 내면적인 고정감과의 충돌로 번민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고독하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외롭고 고독한 존재다. 그래서 항상 누군가와 교류하며 가깝게 지내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런다고 자기 내면의 외로움이 근본적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자기 혼자라는 고독감에서 헤어날 수가 없다. 인간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나 역시 많은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쌓고 있다. 하지만 나 또한 군중 속의 고독을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다.

 

 그것은 외국에서 살아가는 이민자의 속성으로 인해 더욱 그런지도 모른다. 많은 이들이 나보고 아는 사람도 많고 발이 넓어서 외롭지 않겠다며 항상 분주하게 사는 줄 안다. 그것은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다.

 

 언론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이리저리 아는 사람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정작 삶이 힘들고 고달플 때 마음 터놓고 얘기를 나눌 사람은 많지 않다. 아니 거의 없다. 대부분이 피상적으로 알고 지내기 때문이다.         

 

0…이민사회에서 가장 바람직한 관계는 현지인들과 교류하면서 속내까지 터놓을 수 있는 친구를 사귀는 것일테지만 그것은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특히 이민 1세는 언어 소통과 문화 차이로 인해 더욱 그렇다. 이래서 결국은 동족사회로 돌아와 끼리끼리 어울리게 된다.

 

 나도 20여 년 전에 처음 이민 와선 전원도시에 살면서 현지 이웃가족과 어울리며 서로 정을 쌓아가곤 했다. 하지만 속 깊은 인간관계에까지 이르기엔 한계가 있었다. 결국 생계문제로 도시로 이사를  나오면서 그나마 현지인과의 관계는 그것으로 끝났다. 이내 동족끼리 어울리는 생활이 시작됐고 한국보다 더 한국적인 인생살이가 펼쳐졌다.

 

 동족과 어울리며 주변에 나이가 비슷한 동년배(同年輩)끼리 친구관계를 맺기도 했다. 그런데 친구란 것이 그렇다. 친구란 내가 어렵고 힘들 때 진정으로 따스한 말 한마디라도 해줄 그런 사이인데 이민사회에서는 이런 친구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사람마다 성장과정이나 살아온 배경이 다르고 특히 대부분이 어떤 형태로든 이해관계로 엮여있기 때문이다. 

 

 또한 동족끼리 어울리면 일단 말이 통하니 마음이 편하긴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간에 허물이 없어지고 그것이 더 진전되면 상대방에 대한 배려나 예의가 사라지면서 사람을 막 대하게 된다. 나의 경우 꽤 많은 한인모임에 참여했었지만 이런 이유들로 인해 결국엔 다 해체되고 말았다. 남은 건 마음의 상처투성이 뿐.          
 

 많은 분들이 이런 경험을 했을 것이다. 처음엔 간이라도 빼줄 듯 가까이 지내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의 존경심이 사라지고 흠결만 보이면서 이내 관계가 소원해지고 만다. 이래서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요체는 서로에 대한 예의를 끝까지 유지하는 것이다.         
 

0…내가 평생 잊지 못할 친구가 셋 있는데 그중 하나는 학교 동창도 아니고 같은 고향친구도 아니다. 하지만 그는 내 일생에 너무도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는 내 고교 친구의 중학교 동창인데 언젠가 모임에서 한번 만난 후 급격히 가까워졌다.      
 

 그는 고졸의 대기업 말단직원이었다. 장차 직장에서 승진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런 그의 최강 무기는 인간성, 그것뿐이었다. 20대의 젊은 시절부터 친구는 한결같이 자신보다 나를 먼저 챙겼고, 궂은 일엔 가장 먼저 발벗고 나섰다. 인간이 어떻게 사는 것이 정석인지 몸으로 보여준 쾌남아.  


 다른 친구들과 함께 어딜 놀러가면 그 친구는 아침에 가장 먼저 일어나 밥을 짓고 상을 차려놓고 우릴 기다렸다. “넌 잠도 없니?” 하고 물으면 그저 싱긋 웃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러면서 “내가 너희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이런 것밖에 더 있나?” 라며 자신을 낮추었다.       


 친구는 결국 학력 장벽에 막혀 대기업을 퇴사해야 했고, 물려받은 재산이 좀 있는 고교친구가 경영하는 주유소의 매니저로 일하게 됐다. 내가 수년 전 한국에 나가 가장 먼저 찾은 사람이 그 친구였고 그는 여전히 활기차고 의연하게 일하고 있었다.       


 친구는 나의 데미안이었다. 새가 알에서 깨어나는 아픔과 충격을 안겨준 나의 우상… 나는 가끔 ‘이런 상황이라면 그는 어떻게 대처했을까” 라는 상상을 해보곤 한다. 친구가 행동하는대로 하면 탈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친구를 다시 한번 만날 수 있다면 나는 인생을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다.


0…그 친구가 갈수록 더 그리워지는 것은 이민사회에서 그런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아는 사람은 많지만 진정으로 뜻맞는 동년배 친구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동안 여러 부류의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다 보니 이젠 인간관계가 무섭게만 느껴진다. 또 언제 어떻게 상처를 받을지 두렵다. 이래서 어떤 모임에 갔다가 오는 길은 더욱 쓸쓸한지 모르겠다. 군중 속의 고독이란 말이 갈수록 실감나는 요즘이다.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