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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은 굴복이다-분명한 의사표현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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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민생활 21년째. 그동안 내가 가장 피부로 느껴온 것 중 하나는 이민자들과 현지인들의 말하는 습관과 태도의 차이다. 이곳 현지인들이 거침없이 말을 쏟아내는데 비해 이민자들은 대체로 느릿하게 떠듬거리며 말한다. 그것은 우선적으로 영어를 잘하고 못하고의 차이가 가장 크겠지만 또 다른 이유는 문화적 관습과 개인의 성격에서 오는 면도 크다고 본다.

 

 예로부터 유교문화의 영향을 받아온 우리 한국사람을 비롯한 동양계인들은 어려서부터 말을 많이 하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배워왔다. 심하게 말하면 말을 많이 하지 말 것을 강요당해왔다. 그래서 말과 관련한 금언과 속담도 많다. 세치 혀를 조심하라, 어른에게 말대꾸하지 마라, 밥상앞에서 말을 하지 말라, 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발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이밖에 ‘저 사람은 왜 그렇게 말이 많지?’ 단어에도 반말, 빈말, 존대말 등 그야말로 여러 말이 있다. 감언이설(甘言利說), 교언영색(巧言令色) 등 한자어도 많다. 그런데 말과 관련한 대부분의 말들은 부정적인 말들이 많다. 이러다 보니 자연스레 말조심을 하게 되고 차라리 침묵하는 것이 미덕으로 간주되는 것이 습관처럼 됐다. 회의나 모임에서 동양인들이 대체로 수줍어 하며 말을 아끼고 주로 남의 말을 듣는 것은 이런 문화적 관습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예의를 중시하고 언행을 조심하는 습관도 좋지만 너무 말을 아끼고 자제하다 보면 사람들 앞에서 자신있게 자기 의사표현을 하는 것이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동양계는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나 회의 때도 가급적 침묵을 지키는 것이 예의 바르고 속이 깊은 것으로 인식했다. 이래서 동서양인이 함께 모인 곳에서 대개 발언을 독점하는 쪽은 서양인이고 동양인은 그저 묵묵히 듣는 쪽이다. 과연 침묵은 금처럼 값진 것일까.

 

0…흔히 침묵을 칭찬하는 말로 ‘침묵은 금이다’(Silence is gold)라는 말을 많이 쓴다. 그런데 이 말은 우리가 생각하듯 침묵을 지키는게 값지다는 뜻에서 생긴 말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의 뜻이 강하다. 이 말의 유래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려진 바 없지만 다음과 같은 설이 설득력 있게 유포되고 있다.      

 

 즉 고대 그리스의 정치가이며 웅변가였던 데모스테네스(Demosthenes)가 아테네 시민들 앞에서 “여러분도 나처럼 계속해서 말을 하세요. 침묵은 금의 가치밖에 없지만 웅변(eloquence)은 은처럼 큰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그 당시에는 은(Silver)이 가장 비싸고  금(Gold)은 상대적으로 값이 쌌는데, 그는 연설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이다.

 

 사족(蛇足)으로, 유럽에서 금이 은보다 비싸게 된 것은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첫발을 디딘 이후였다. 그 전엔 중국 명나라가 은값을 높이 평가해 중남미와 유럽의 은이 대거 중국으로 유입됐다. 따라서 당시 세계경제는 은본위제도였고 은값이 가장 비쌌다. 아무튼 한때는 은이 최고가치였고 금은 그 다음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침묵이 금이라는 얘기는 그다지 좋은 얘기가 아님이 확실하다.     

 

0…나는 침묵이 잘못된 습관이라고 본다. 이곳 사람들을 보면서 가장 부러운 것 중 하나는 자기 의사를 확실히 표현하는 것이다. 그것도 거침없이 마구 쏘아댄다. 얼마나 빨리 말을 하는지 미쳐 상대방이 대꾸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정치인들이 토론을 할 때 보면 상대방 얘기를 듣는 것이 아니다. 자기 주장을 속사포 쏘아대듯 한다.

 

 솔직히 이곳에서 말을 아끼는 것은 영어를 잘못하니 그런 것이지 왜 나의 생각이 없겠는가. 결국 대화를 나눠야 할 자리에서 말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영어에 자신이 없고 또 이야기할 화제거리도 없다는 뜻이다. 한인들이 연회장에서 어색하게 천장만 바라보는 것은 화제거리가 빈곤하기 때문이다. 스포츠든 여행이든 무슨 주제라도 이야기를 이어가야 한다. 식사자리에서 묵묵히 밥만 밀어넣으면 무슨 재미인가. 계속 웃고 떠들어야 한다.   

 

 우리가 한국에서 한국말 못하는 외국인을 업신여기는 것이나 여기에서 영어를 버벅거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유창한 정도는 아니더라도 가만히 침묵하고 있는 것보다는 무슨 대화든 나누는 것이 좋다. 그러자면 현지 신문 방송을 많이 보아 상식과 화제거리를 많이 비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0…인간의 사회적 관계에서 의사표현은 매우 중요하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도 있듯이 말을 한다는 것은 인간관계를 촉진시키고 문제해결의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물론 말을 할 때는 신중을 기하고 품위있게 할 필요가 있음은 당연하다. 다만 지나치게 신중해서 이것저것 계산을 한 나머지 침묵을 지킨다면 인간관계는 발전할 수가 없다.

 

 대인관계에서 침묵은 때로 상호신뢰의 환경을 깨트리거나 문제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자기의 생각이나 의견을 분명히 갖고 있음에도 침묵한다면 상대방을 믿지 못하거나 다른 속셈이 있어 그러는 것처럼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강요된 침묵’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화제거리를 길러야 한다. 화제거리가 많으면 최소한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는 면할 수 있다. 침묵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니다. 그것은 자칫 (자신에 대한) 굴복일 수도 있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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