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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下獨酌(월하독작)-코로나와 나를 위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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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로 인해 사람 만날 기회가 뜸해진 요즘, 혼술(혼자 마시는 술)의 묘미를 알기 시작했다. 이 나이토록 술은 혼자서 마시면 무슨 큰일이나 난 줄 알았다. 알콜중독자나 그러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혼자서 한잔 하니 그렇게 마음이 느긋하고 편할 수가 없다.

 

 혼술을 하면 우선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진다. 누구와 어울려 마시면 대화에도 신경써야 하고 주변의 눈도 있어 편치 않으나 혼자 술을 마시면 음악을 감상하며 달콤한 향수에 젖어들 수 있으니 얼마나 편한지. 특히 업무관계로 사람을 만나 술을 마셔야 하는 경우 더욱 술의 흥취가 없다.   

 

 또한 혼자서 술을 마시면 억지로 마실 필요가 없으니 도가 지나치는 일도 없다. 나는 원래 술을 반주(飯酒)로 즐기는 체질이라 과음하는 일이 적다. 일단 속에 밥이 들어가면 술을 억지로 먹여도 써서 더 이상 마시지를 못한다. 나는 특히 즐거운 일이 있거나 기분이 좋을 때 술을  마신다. 마음이  우울하면 술도 입에 써서 받질 않는다.

 

0…혼자 와인잔을 기울이노라면 가끔 아내가 대작(對酌)을 해주니 이 또한 낙(樂)이다. 다만 아내는 소량이라도 매일 마시면 좋을 리 없다며 잔소리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도 나의 건강을 생각해 하는 소리라고 새겨 들으면 오히려 고마워진다. 

 

 창밖에 달빛이라도 비추는 봄밤은 술마시기에 최고로 어울리는 분위기다. 그런 날엔 이태백의 시가 절로 흥얼거려진다.

 

‘花間一壺酒(화간일호주), 獨酌無相親(독작무상친)/擧杯邀明月(거배요명월), 對影成三人(대영성삼인)/月旣不解飮(월기부해음), 影徒隨我身(영도수아신) (꽃나무 사이에서 한 병의 술을 홀로 마신다/잔 들고 밝은 달을 맞으니 그림자와 나와 달이 셋이 되었다/달은 술을 마실 줄 모르니 그림자만 나를 따르는구나)

 

 중국 최고의 시인 이백(李白)의 ‘달 아래 홀로 술을 마시며(月下獨酌(월하독작)’ 시를 음미하노라면 과연 시선(詩仙)다운 풍류가 차고 넘친다. 이백은 외로운 낭만주의자였다. 인생의 무상을 관조하며 세상을 초월하고 자유를 찾아 유랑했다. 이백에게 술은 뗄레야 뗄 수 없는 존재였다. 그의 생애를 통틀어 술은 문학과 사색의 원천이었다.

 

0…이백에 대해 조선 영조 때 가인(歌人) 남파(南派) 김천택은 다음과 같은 시조를 남겼다.

‘옷 벗어 아희 주어 술집에 볼모하고/靑天[청천]을 울어러 달더러 물은 말이/어즈버 千古[천고] 李白[이백]이 날과 어떠 하더뇨’

 

 스스로 주중선(酒中仙)이라 칭하며 술을 벗삼아 천하를 유랑하던 호방한 이태백. 그는 속세를 떠나 세상번뇌를 잊고 물따라 구름따라 부귀영화를 뜬구름처럼 알고 초연히 살다간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일설에는 그가 일생동안 권력과 명예욕에 사로잡혀 세상을 하직하는 그날까지 권력과 명예를 동경하고 권력 주변을 맴돌고 그리워하다 간 이중적 삶을 살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무러면 어떤가. 유명 문학작품과 지은이의 인성(人性)이 일치한다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꼭 그렇지도 않은 것이 인간사 아니겠나. 작품은 빼어난데 사람은 개차반인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게 인간세상이다. 이것저것 다 빼고 나면 즐길 작품이 얼마나 되겠는가.     

 

0…자고로 술 좋아하는 사람치고 악인(惡人) 없다는 말이 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계산적이지 않고 마음이 넓다는 뜻이다.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 사람은 대개 성격도 꼬장꼬장하다. 세상 살면서 어느 땐 한잔 하고 자세도 좀 풀어지는 경우도 있을 터. 그런 면이 없다면 인간적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문학과 술은 바늘과 실처럼 따라 다닌다. 문학 한다는 사람이 술을 모른다면 인생의 고뇌를 깊이 다루지 못함과 같다 할 것이다. 이래서 술은 적당히 잘만 마시면 인생의 활력소가 된다. 문제는 그것이 과할  때 사단이 벌어진다. 과해서 좋은 것이 어디 있으랴.

 

 나이 먹을수록 변하는 것 중 하나가 사람 만나는 일이 귀찮아졌다는 것이다. 나는 성격이 사람을 좋아하는 편이라 전에는 걸핏하면 모임자리를 만들었다. 이사람 저사람 연락해 술자리를 만들어 즐겼다. 그러던 것이 언젠가부터 그 모든 것이 시큰둥해졌다. 그런 자리가 별 의미가 없어졌다. 모임을 갖는다고 우정이 돈독해지거나 사람을 깊이 사귀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을 만날수록 오히려 악연(惡緣)만 쌓여갔다.

 

 아니다 싶은 사람과는 구태여 시간을 낭비하며 인연을 이어갈 필요가 없다. 나는 요즘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갖다 보니 전보다 책도 많이 읽게 되고 나를 돌아보는 기회도 많아졌다. 정신적으로도  한결 여유로워졌다. 번잡한 세상사 물리치고 가끔은 나만의 세계에 침잠해보는 것도 정신건강상 좋지 않을까 한다. 내가 요즘 혼술자적(自適)의 운치를 느끼기 시작한 이유도 그렇다.

 

0…‘나무도 병이 드니 정자(亭子)라도 쉴 이 없다/호화이 섰을 제는 올 이 갈 이 다 쉬더니/잎 지고 가지 꺾인 후는 새도 아니 앉는다.’ (송강 정철(鄭澈) ‘나무도 병이 드니’)

 

 인간세상은 언제나 힘있고 돈있는 곳으로 사람들이 쏠리게 마련이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득이 되지 않으면 떠난다. 그러니 이런 현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누가 나를 배신하더라도 너무 슬퍼하거나 과로워하지 말 일이다. 그저 나의 삶에 충실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오는 사람 막지 말고 굳이 떠나는 사람 붙들지 말자. 코로나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새삼 느끼는 감상이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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