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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힘드십니까-이런 인생도 있습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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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을 건너다 익사한 한 탈북자의 시신(사진: 중국 탈북자 단체)

 

 “언젠가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신은 자신이 어느 나라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 이 질문은 내가 캐나다 사람, 혹은 한국사람, 아니면 북한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 즉 나의 국가적 정체성이 무엇인가 라는 물음이었다…

 

 “나는 캐나다 시민권자가 되고 싶고 또 그렇게 될 것이지만 그렇다고 캐네디언은 아니다. 현재는  대한민국 시민이지만 그렇다고 한국사람이라고 하기엔 무언가 그것도 아닌 것 같다. 그럼 나는 북한사람인가? 나는 아마도 그런 것 같다. 내가 원하지 않았지만 난 북한사람이다. 왜냐 하면 나의 뿌리가 북한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삶이 그 누구보다 가장 특별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왜냐 하면 나라는 존재는 이 세상에 단 하나 뿐이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만난 이 여성의 삶은 아무래도 너무 특이하다.

 

0…올해 50대 초반인 이아현(가명)씨. 그녀는 북한에서 26년, 중국에서 10년, 한국에서 4년을 살다 10년 전 캐나다로 왔다. 이력만 대충 봐도 고단한 가시밭길 여정을 짐작할 수 있다.  

 

 1970년 초 평양에서 태어난 그녀는 여섯살 때까지 평양에서 살았다. 부모는 둘 다 대학을 나온 지식층이었다. 특히 두뇌가 명석했던 어머니는 김일성 종합대학 국문과를 나온 인텔리로 집안이 모두 공부를 잘했단다. 어머니가 고등학교 국어교사였던 관계로 이씨는 소녀시절 세계명작 문학작품을 두루 섭렵했고 탄탄한 문장실력도 쌓을 수 있었다.

 

 이씨는 어머니의 핏줄을 받아 머리가 좋았다. 하지만 북한에서 지식인들은 하나같이 가난하고 궁핍하게 살았고 오히려 대학을 안 나온 사람들이 군대나 보위부 같은 권력기관에 있으면 더 잘 사는 것을 보고 그녀는 일부러 대학을 안 가려고 공부를 안했다고 한다. 그러나 나중에 어머니의  권유에 따라 교원양성소를 나와 잠시 유치원 교사일을 하기도 했다.

 

0…이씨 가족은 평양에서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함경도 시골로 쫓겨가게 됐다. 6.25때 행방불명된 큰아버지 때문이었다. 이씨가 한번도 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그 분 때문에 이씨네는 불순분자 가족으로 찍혀 ‘혁명의 수도’ 평양에서 살 수가 없었다. 이때부터 이씨 가족의 가시밭길이 시작된다.  

 

 이씨 부모는 궁벽한 시골에서도 국가(김일성과 김정일)를 위해 충성을 다 바쳐 밤낮없이 일했다.  이에 둘 다 당원이 된 부모를 따라 아버지 고향인 함경남도 해안도시로 이사를 가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이씨는 열악한 환경에도 공부를 잘했다. 시골에서 도시로 이사가 한동안 고생도 했으나 이내 전교 1등으로 올라섰다.

 

 중고교 시절 그녀는 군대와 똑같은 단체합숙훈련, 천리길 행군 등을 체험했고 고교졸업 후에는  수산사업소에서 총을 맨 보초병으로 취직해 근무하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주민 300여만 명이 굶주리다 죽어가는 비참한 현실 속에 그녀 가족들 역시 찢어지게 가난한 환경은 오로지 먹을 것만 해결되면 바랄게 없는 벼랑 끝으로 몰렸다.       

 

0…이씨는 한동네의 가난한 집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으나 극도의 가난은 신혼생활의 단란한 꿈을 허락하지 않았고 시댁과의 갈등까지 겹쳐 이내 만정이 떨어지고 말았다. 거리에서 구걸까지 해야 하는 생활로는 더 이상 사는 의미가 없었고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란 각오 아래 1살짜리 아들과 함께 중국으로 건너가기로 마음 먹었다.    

 

 그녀는 한밤중에 갓난아기를 안고 압록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그러나 발이 미끄러져 강물 속으로   쓰러지는 바람에 아기를 놓치고 말았다. 아기는 강물에 휩쓸려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이때부터 그녀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렇게 첫아들을 잃고난 그녀에게는 이 세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고통스런 일들만 줄줄이 일어났다.

 

 북한 경비대에 체포됐다 풀려난 그녀는 아들까지 잃고난 마당에 더 이상 북한땅에 살 이유가 없다고 거듭 마음을 다잡고 이번엔 혼자서 탈북을 감행한다.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며 겨우 도착한 중국땅. 그러나 북-중 국경지대에서는 북한으로 다시 잡혀갈 상황이 도처에 산재했고 그녀는 어떻게든 북한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에 얼굴도 모르는 중국 남자와 결혼을 약속하고 길을 떠난다.

 

0…하지만 나이도 속여가며 만난 그 남자는 가난이 찌든 시골에서 너무도 궁핍했고 이씨의 고생은 그칠 줄을 몰랐다. 이 와중에 아기가 태어났고 그녀는 지긋지긋한 가난을 피해 보려고 어린 아들과 둘이 도시(칭다오)로 나와 닥치는대로 일을 했다.

 

 그녀는 마침내 천신만고 끝에 마음씨 좋은 친지 덕택에 아파트도 마련했고 그럭저럭 자리도 잡혀갔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물듯이 무수한 극한상황을 딛고 그녀는 오뚝이처럼 일어났다. 처참한 북한과 중국에서의 밑바닥 생활, 억울하게 도둑으로 몰려 죽도록 얻어맞고 울부짖던 일… 그녀가 생존해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기적이었다.      

 

 그러나 중국에서 언제까지 탈북자라는 불안한 신분으로 살아갈 수는 없었다. 그녀는 마침내 꿈에도 그리던 한국으로 가기로 결심한다. 꿈에도 그리던 대한민국! 그러나 한국에서의 생활은 텔레비전에서 보던 것처럼 그렇게 녹록지가 않았다. 여기서도 고난은 계속됐다. (다음 호에 계속)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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