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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근 불가원-비대면 시대의 처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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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앞두고 각 지방에 걸린 현수막들

 

 “아는 분 같은데 혹시 이 아무개씨 아닌가요?” 일전에 한 골프장에서 분명 한국인으로 보이는 분이 나에게 다가오며 인사를 건넸다. 그 분은 모자를 쓰고 선글라스에 마스크까지 해서 얼굴 전체를 휘감아 누구인지 전혀 알아볼 수가 없는데 그나마 복장과 자세가 눈에 익었다. 내가 긴가민가 하자 그 분은 모자와 선글라스, 마스크를 벗으며 “저예요” 하는데 평소 알고 지내는 분이었다. 우리는 한바탕 껄껄 웃었다.

 

 이런 일은 요즘 흔히 겪는 풍경이다. 어쩌다 식품점이나 식당 같은 곳엘 가도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선뜻 누구인지 짐작이 안간다. 마스크를 쓰면 얼굴의 절반이 가리는데 거기에 선글라스나 모자까지 쓰면 완전히 ‘변장’ 수준이라 누구인지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한번은 저녁에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딸들을 보며 농담을 했다. “얘, 엄마와 너희들은 요즘 손해보는 것 같다. 예쁜 얼굴을 가리고 다니니 남들이 알아주지 않잖아”했더니 딸들이 아빠는 주책이라며 눈을 흘긴다.      

 

 이래서 요즘은 다른건 몰라도 외모에서만큼은 내가 꿈꾸는 ‘만인평등의 세상’이 어느정도 실현된 것 같다. 내 얼굴도 잘 생긴 편이 아닌데, 마스크로 덮고 다니니 잘 생긴 사람, 못 생긴 사람 구분할 필요없이 모두가 같아 보인다.      

 

0…공교롭게 우리 두 딸은 최근 비슷한 시기에 직장을 옮기게 됐는데, 첫날부터 집에서 온라인으로 일을 시작했다. 나와 아내는 아이들이 직장을 옮겼으면 최소한 처음 며칠간은 직장에 나가 상사와 직원들에게 인사라도 하고 향후 업무지시도 받는게 예의가 아니겠느냐 했더니 그럴 필요가 없단다. 화상을 통해 처음 만난 직원들과 자연스레 소개를 하고 업무 오리엔테이션도 받는데 아무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광경은 예전 같으면 상상하기 힘든 것이다. 누구나 그렇듯이 나도 첫 직장에 출근하던 날, 새 양복에 멋진 넥타이를 골라 매느라 신경쓰던 시절이 엊그제 같다. 상사에게 좋은 인상을 주려고 애써 미소를 짓던 시간도 하나의 추억으로 멀어지고 있다.            

 어찌보면 마스크로 얼굴의 반을 가린 채 직접 만나는 것보다 화상으로 대화하면 얼굴 전체를 볼 수 있으니 앞으로는 비대면 접촉이 오히려 더 친숙해질 것이란 생각이다. 또한 굳이 시간을 할애하며 밖에서 누굴 만날 필요가 없어지게 될 것이다. 그야말로 뉴노멀 시대임을 실감한다.

 

0…고국에선 추석(10월 1일)을 앞두고 코로나 지역감염에 비상이 걸린 가운데 각 자치단체에서는 타지로 나간 자녀들이 올 추석엔 고향을 방문하지 말 것을 호소하는, 이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진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전에는 애향심을 고취하기 위해 고향방문 캠페인을 벌였으나 올해는 정반대로 ‘고향방문 안하기’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지역이동을 자제하기 위해 온갖 기발한 방법이 동원되는데 이를테면 온라인제사 인증사진 공모전, 봉안시설 1일추모객 총량예약제, 온라인 성묘 서비스, 산림조합 벌초대행 서비스 등 전에는 들어보지도 못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1년중 가장 풍성한 한가위를 맞아 따스한 정을 나누던 미풍양속이 이렇게 변하고 있다.

 

 한편, 고향방문 자제를 위해 각 지방에 걸린 현수막 문구들도 눈길을 끌고 있다. 어느 고장에서는 ‘지역 시부모 일동’이 내건 플래카드에 ‘소중한 자식들아, 차례는 우리가 알아서 지내마. 내려올 생각 말고 영상통화로 만나자', '며늘아! 이번 추석은 너희 집에서 알콩달콩 보내렴' 등이 걸려 있다.

 

 가장 재미있고 익살스런 표현은 '불효자는 옵니다'라는 것이다. 예전 진방남 선생이 부른 가요 ‘블효자는 웁니다’를 패러디한 이 문구는 전에는 명절에 부모를 찾아뵙지 않으면 불효자라 했지만 올해는 찾아뵙는 것이 오히려 걱정을 끼쳐드리는 것이니 불효자가 된다는 것이다.  

 

 이밖에 ‘안 와도 된당께', ‘내려오지 말고 용돈이나 두 배로 보내거라' 등 재치있는 문구들이 넘친다. 그런가 하면 추석연휴기간에 제주도 등지의 휴양지가 예약이 꽉 찼다고 하자 이를 빗대는 말도 등장했다. 즉 “거리두기 캠페인 하는데 연휴에 관광지 가는 사람은 효자일까? 불효자일까? 남인수 선생의 '불효자는 떠납니다'가 생각난다.”

 

0…비대면 시대를 풍자하는 문구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조상님은 어차피 비대면, 코로나 걸리면 조상님 대면’이라는 문구는 짧지만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즉, 보이지 않는 조상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은 어차피 비대면인데 코로나 걸려서 자칫 목숨을 잃으면 조상님을 직접 뵙게 되니 이는 곧 죽게 된다는 뜻이다.  

 

 일부에서는 비뚤어진 종교집단을 매개로 한 코로나 확산을 풍자해 ‘예수님은 어차피 비대면, 코로나 걸리면 예수님 대면’이란 촌철살인 문구도 유행하고 있다. 이런 풍경들을 보면서 한편으로 재미있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론 세상 삶이 갈수록 팍팍해지는 것 같아 씁쓸하다.

 

 안보면 멀어진다(out of sight, out of mind)는 말이 있듯이 아무리 비대면 시대라곤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자주 접촉하지 않으면 결국 멀어진다. 그러니 비록 몸은 떨어져 있어도 마음만은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친지들과 자주 연락하고 안부도 전하며 살아갈 일이다.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비대면 시대의 지혜로운 처세법(處世法)이 아닐까 한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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