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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산사(山寺)- 아련한 봄날의 추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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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이 고향인 나는 학창시절부터 충남 계룡산 자락에 있는 동학사(東鶴寺)를 자주 찾곤 했다. 꼭 부처님을 만나러 간다기보다는 산사(山寺)의 고즈넉하고 청초한 분위기가 좋아서였다. 은은한 목탁 소리에 향불 냄새를 맡으며 사찰 주위를 한바퀴 돌고 나면 정신이 쇄락(灑落)해지고 모든 잡념이 말끔히 사라졌다. 발길을 옮겨 산자락 위로 올라가 남매탑까지 이르면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히면서 기분이 날아갈듯 상쾌해졌다.

 

 사찰은 사계절 나름대로 풍광이 달라 언제 가도 운치가 있다. 특히 지금같은 봄날에 흐드러지게 피어나던 동학사 입구의 벚꽃터널은 꿈결에도 마냥 그립기만 하다. 그러나 올해 캐나다(토론토)는 아예 봄날씨가 실종돼 5월 중순에도 눈이 내리면서 꽃구경 하기가 더 어렵게 됐다. 이런 탓에 산사에 피어나던 벚꽃과 개나리, 목련, 진달래 등 봄꽃들이 더욱 보고 싶은 요즘이다.     

 

‘선운사 고랑으로/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작년 것만 시방도 남았습니다./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니다.’ (서정주의 선운사 동구(洞口))

 

 

0…산사는 특히 기분이 가라앉고 우울할 때 찾아가면 언제나 아늑하고 포근히 맞아주어 어머니의 품속 같았다. 조용히 법당에 무릎 꿇고 앉아 합장(合掌)하면 잡다한 번뇌가 말끔히 씻겨나갔다. 한동안 무념무상(無念無想)의 세계에 잠기면 정신도 한결 맑아진다.

 

 8년 만에 고국을 방문한 지난해 10월 중순엔 형님과 함께 계룡산 동학사 너머 서쪽에 자리잡은  갑사(甲寺)를 찾았다. 그때는 가을이었는데, 단풍진 사찰의 풍경(風磬) 소리가 타국에서 온 나를 변함없이 포근히 반겨주는 듯했다. 천년 고찰은 언제 찾아가도 그렇게 묵묵히 외로운 나그네를 안아준다. 절 입구에 달려있던 빨간 홍시감은 까치가 다 먹었겠지…     

 

 이민 와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개종(改宗)하긴 했지만 아직도 산사의 적막한 바람 소리, 새 소리가 그리울 때가 많다. 신봉하는 종교 여부를 떠나 산사는 속세에 찌든 인간의 심신을 씻어주는 청량제 역할을 해준다.

 

 요즘 특히 산사가 그리워지는 것은 시절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벌써 석달 이상 계속되고 있는 코로나 사태로 마땅히 어디 바람쐬러 갈 곳도 없고 마음이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이럴 때 가까운 곳에 산사라도 있다면 며칠 푹 쉬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고 싶다. 산사에 묵으면서 청정한 달 아래 서늘한 밤공기를 마시면서 경내를 거닐고 싶다.

 

 그러나 그런 것이 어려우니 나는 가끔 한국의 인터넷을 통해 여행지 둘러보길 좋아한다. 예전에 다녔던 산과 사찰 등을 감상하면서 혼자 향수에 젖어들 때가 있다. 그중 요즘같은 철에 가장 마음을 잡아당기는 것은 역시 푸른 산과 사찰이다.

 

 엊그제는 외국 기자의 눈으로 본 순천 송광사(松廣寺) 기사를 읽으면서 잠시 무욕의 세계에 빠져 보았다. 기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산사의 고요한 풍경을 Shangri-la(지상낙원)라 표현했다. 서양기자의 눈에도 그것이 지상의 낙원으로 비쳐졌던 모양이다. 텅 빈 승방(僧房)에 이불 한 채만 덜렁 개어있는 모습에서 오히려 꽉 찬 느낌이 드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0…짤디짧은 토론토의 봄이 어느새 낙화(落花)되어 지고 있다. 봄은 오는 듯 마는 듯, 존재하는 듯 마는 듯하다 가버리기에 더욱 아쉽다. 순간처럼 왔다 속절없이 지고 마는 짧은 생명이 인간사 모습과 닮았다.

 

 우리는 근심걱정 없이 행복했던 시절을 회상하며 “그때가 봄날이었다”고 한다. 봄날은 그렇게 포근하고 감미롭고 근심 걱정이 없는 계절이다. 내 인생의 봄날은 언제였을까. 혼자 있을 때 가만히 옛날을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아련한 봄날처럼 느껴진다. 밭일 하시는 어머니를 따라가 시냇가에서 개울 치고 가재 잡던 어린시절, 이상과 꿈도 많던 사춘기 시절, 청춘이 만개(滿開)했던 대학시절, 예쁜 아내를 만나 달콤한 사랑에 빠져 지낸 신혼시절…

 

 이제 그런 날들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비록 물질적으론 빈한했지만 그것이 별로 불편하거나 심리적으로 위축되지 않았고 마음이 평화로웠던 시절. 지금은 그 시절에 비하면 부족할게 별로 없건만 끝없이 욕심을 내면서 스스로를 불만족 속으로 몰아넣는다.   

 

 그리 특별하지도 않은 추억들이 가슴 아리게 그리운 것은 그런 날들이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내 인생의 봄날은 언제나 지금이다. 힘들고 어려운 지금 이 순간도 세월이 흐르고 나면 모든게 그립고 ‘그때가 봄날이었다’고 회상하게 될 것이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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