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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출판기념회-이동렬 교수의 노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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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이동렬 교수님을 처음 만난 것은 지금부터 대략 17~18년 전이 아닌가 한다. 노스욕의 한식당에서 아내와 식사를 하는데, 키가 큰 중년의 학자풍 어른이 부인과 함께 우리 곁을 지나시며 “혹시 아무개씨 아니세요?” 하고 인사를 건네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이민 온지 얼마 안돼 신문사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한인 인사들 얼굴을 제대로 분별할 수가 없을 때였다. 


 헌데 그 분은 어디선가 뵌 듯한 인상이었는데 먼저 “저 이동렬이라고 합니다.” 하며 자기소개를 하시는 것이다. 나는 아차 싶어서 “죄송합니다. 교수님을 몰라뵙고…” 하며 머리를 숙였더니 교수님은 껄껄 웃으시며 “내가 그렇게 유명한 사람인가요?” 하면서 어서 식사를 계속하라고 하셨다. 교수님은 그때도 중절모를 쓰고 계셨는데, 사모님(정옥자 여사)과 함께 두분이 도란도란 식사하시는 모습이 참 다정해 보였다. 


 그 후로 우리는 종종 만나 문학 이야기며, 세상 돌아가는 일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연말과 새해가 되면 교수님은 달필의 휘호(揮毫)를 써서 신문사에 놓고 가시곤 했다. 경북 안동 태생인 이 교수님은 시골 출신답게 품성이 소탈하고 화제에 격의가 없어 처음 만나는 사람 누구와도 쉽게 친해지는 분이다. 학자연(學者然)하며 목에 힘이나 주는 사람들과는 거리가 멀다.  


0…이동렬 교수,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출판기념회’라는 이벤트다. 내가 아는 한, 이 교수님은 토론토 한인사회에서 책(수필집)을 가장 많이 펴낸 분이며, 출판기념회 역시  거의 2년여 간격을 두고 계속해 오셨으니 최다기록 보유자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 교수는 잊어버릴만 하면 한번씩 출판기념회를 연다”는 농담까지 한다. 일각에선 “또 출판기념회냐”는 소리도 나온다. 그런데 그게 정말로 싫어서 하는 소리가 아니다. 이 교수를 친근하게 여기기에 격려성으로 하는 소리다.

 
 그 출판기념회라는 것도 그렇다. 대부분 출판기념회라 하면 흔히 엄숙하고 진지한 장면들을 연상하지만 이 교수님의 행사는 그런 것들과는 거리가 멀다. 별 격식도 없고 딱딱하지도 않아 그저 실컷 웃다가 오면 된다. 어느 땐 그야말로 코메디 경연장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지난 주말(5일)에 열린 이 교수의 16번째 수필집(‘산다는 이유 하나로') 출판기념회도 그랬다. 낮 12시부터 본한인교회에서 열린 행사에는 160여 명의 초청객들이 자리를 빼곡히 메운 가운데 시종일관 웃음바다 같은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그동안 여러차례 이 교수의 출판기념회 사회를 맡아온 ‘전속 사회자’ 백경락 선생(문협회원, 전 토론토한인회장)의 구수한 입담부터 분위기를 돋구었다. “2년 전 출판기념회가 마지막이라더니 올해 또 하게 됐다. 내 그럴 줄 알았다. 듣자하니 2021년에 또 다시 출판기념회를 한단다. 이거 언제까지 이렇게 이 교수 출판기념회에 불려다녀야 하느냐.” 장내는 폭소가 터졌고, 이어지는 초청인사들의 축사 대부분도 “출판기념회 이젠 그만 좀 하라”는 장난기 가득한 충고로 채워졌다. 우리 부부는 하도 웃어서 공짜로 먹은 점심 부페가 금방 소화돼버렸다.  


 이 교수의 색소폰 스승인 홍원표(전 MBC 관현악단장) 선생의 클라리넷 연주가 장내를 완전히 음악의 향연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등 가을 주말 낮에 펼쳐진 행사는 정말 유쾌한 시간이었다. 무려 3시간 반이나 진행돼 조금은 지루할 듯 하건만 대다수 참석자들이 자리를 뜨지 않고 끝까지 함께 하며 신나게 웃고 박수를 쳤다. 


0…이 교수는 ‘출판기념회의 달인’이라 할만하다. 그런데 그것이 전혀 밉지가 않다. 동포사회의 연례 행사가 된 이동렬 교수 출판기념회는 은근히 기다려진다. 보통사람은 평생 한권 내기도 어려운 책을 거의 매년 줄줄이 내는 그 열정이 그저 존경스럽다.          


 사람은 사귀어봐야 안다는 말을 이 교수님을 통해 실감한다. 나는 솔직히 처음엔 이 교수님이 농담을 하도 잘 하시어 ‘날라리’ 교수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농담도 잘하시고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 것 같아도 속마음은 심지가 엄청 곧다. 정의에 대해 기탄없이 발언하고 불의는 참지를 못하는 성격이다. 나는 그런 면이 가장 좋다. 정치적으론 진보성향이어서 과거 잘못된 행태에 대해선 거리낌없이 소신을 밝힌다. 


 이날 출판기념회에서 이 교수님은 “나이가 들수록 왜 이렇게 어린시절이 생각나는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그는 그만큼 마음이 여리고 섬세하다. 김명규 한국일보 발행인의 말대로 그는 진한 농담도 잘하지만 그만큼 인간성이 순수하다. 거드름을 피우거나 뽐내는 일이 없다. 그래서 인간관계의  교류 폭이 무척 넓다. 


 0…이 교수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부인 정옥자 여사의 내조가 큰 힘이 됐음을 아는 사람은 안다. 서울 사대 후배인 정 여사는교양미가 몸에 배어 남편이 아무리 진한 농담을 해도 그저 말없이 미소만 지으신다. 산전수전 다 겪었다는 듯… 교수님 내외는 종종 우리 부부와 함께 식사를 하시는데, 절대로 밥값을 못내게 하신다. 식사가 끝날 때쯤이면 사모님이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식대를 지불하고 오신다. 


 서예에, 수필에, 음악(색소폰) 실력까지 갖춘 이런 고품격 노교수를 알고 지낸다는 사실에 나는 행복하다. 우리집 책장엔 이 교수님의 수필집이 빼곡히 차 있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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