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w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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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약(文弱)의 설움-손재주가 없다 보니…
ywlee

 

 

 


 
 우리 집안은 대대로 ‘선비’ 집안이었다. 형제자매 거의 모두가 문과 출신이다. 쉽게 말해 펜대나 굴리고 살아온 것이다. 두 형님이 모두 공무원이셨고 조카들도 대를 이어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나 역시 이 나이토록 펜대를 굴리며 살고 있다. 


 예전에는 펜대나 굴리고 산다는 것이 은근히 자랑으로 여겨졌던 것이 사실이다. 손에 흙 안 묻히고 궂은 일도 안하고 편안한 삶을 산다는 뉘앙스가 풍겼던 것이다. 


 그런데, 자칭 이런 ‘펜대쟁이’들의 특징이 있으니, 기계를 만지거나 무엇을 조립하는 따위의 일에 아주 서툴다는 것이다. 내가 바로 전형적인 그런 타입이다. 뼛속까지 문과체질인 나는 한마디로 손재주가 젬병이다. 기껏 할 수 있는 것은 벽에 사진을 걸기 위해 못을 치는 일 정도다.   


 우리 집안이 그랬다. 가족 대부분이 대체로 손재주가 없다. 그런건 ‘양반’이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뇌리에 차 있었다. 그 알량한 양반 타령이 이렇게까지 나의 일상에 불편을 끼칠 줄은 상상도 못했다. 


 한국에서야 소소한 집안일도 기술자를 부르면 금방 달려와 해결해 주지만 이민을 오고보니 답답하기가 짝이 없었다. 모든 일을 스스로 해내야 하는 것이다. 전에는 그래도 근처에 손재주가 비상한 친구가 살고 있어 전화 한통이면 득달같이 달려와 해결해주었는데, 최근 우리 가족이 새로 이사를 오고 보니 모든 집안일을 내 스스로 해야 해서 죽을 지경이다.  


0…내가 제일 가기 싫은 곳이 바로 IKEA라는 매장이다. 가구 제품 따위를 완성해서 팔 것이지 왜 그리 복잡하게 조립부품만 잔뜩 만들어놓았는지. 수년 전 이곳에 들러 책상과 가구 몇 점을 산 후부터 나는 웬만해서는 이곳엘 절대로 가지 않으려 한다. 간단한 줄 알고 사온 책상을 조립하느라 비지땀을 흘리다 결국 아내와 말다툼으로 확대됐고 “내가 다시 그곳에 가면 성(姓)을 갈 것”이라는 다짐을 했다. 


 IKEA도 그렇고, 홈 디포나 캐네디언 타이어 등의 조립매장에 들어설 때부터 나는 긴장하기 시작한다. 이런 날은 십중팔구 아내와 토닥거리게 되기 때문이다. 집에 와서 망치나 드라이버를 드는 순간부터 내 이마엔 구슬땀이 배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이래서 웬만하면 그런 곳엔 가지 않으려 한다. 


0…그런데, 지난 블랙프라이데이에 일이 터지고 말았다. 새 집에 이사를 오고 보니 소파와 운동기구 등이 필요하던 차였다. 그러나 나는 IKEA 처럼 부품을 조립해서 파는 곳엔 절대로 가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이번엔 상황이 달랐다. 이제 사회생활을 하는 두 딸이 하나씩 사준다는 것인데, 내가 가길 싫어하는 그런 매장에서 최고 75%까지 세일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따라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정말 마지못해 아내와 딸들을 따라 매장에 가서 우리가 원하는 물건들을 골랐는데, 보기엔 거의 완성품처럼 보였다. 조립은 거의 필요없는… 내가 안도하는 모습을 보이자 가족들도 덩달아 “아빠 고생시키지 않아도 되겠다”는 표정들을 지어 보였다. 그런데 물품의 부피가 우리 차에는 도저히 들어가질 않았고, 하는 수 없이 둘다 별도 배송료를 주고 배달을 시켰다. 


 상품은 그날 밤에 도착했는데, 문제는 트레드밀과 소파를 조립하면서 벌어졌다. 쇠뭉치로 만들어진 트레드밀은 내가 조립을 감당하기엔 애당초 역부족이었고, 아주 간단해 보였던 소파에도 무슨 부품이 그리 많은지 포장지를 뜯는 순간 기가 질렸다. 한숨부터 절로 나왔다. 전형적인 문과체질인 나는 가구나 기계의 조립설명서를 들여다보는 자체가 스트레스다. 


 이런 나를 잘 아는 아내와 두 딸이 팔을 걷어부쳤다. 온가족이 낑낑대며 조립을 시도했으나 트레드밀은 도저히 설명서를 이해할 수가 없어 한켠으로 제켜두고 전문가를 불러 해결하기로 했다. 그리 간단해 보였던 소파는 겨우 조립을 했는데 무려 밤 12시가 다 돼서야 끝이 났다.


 나의 벌겋게 상기된 얼굴을 보면서 가족들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이들아, 정말 미안하다. 아빠가 손재주가 없어 너희들이 이 고생이구나. 너희들은 제발 손재주 좋은 낭군을 만나거라. 펜대나 굴리는 (아빠같은) 사람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단다… 그날은 참 우울한 하루였다.      

  
0…내가 제일 존경하고 부러워하는 사람은 바로 손재주가 좋은 사람이다. 특히 캐나다에서는 더욱 그렇다. 문학책이나 뒤적이고 뜬구름 잡는 얘기나 좋아하는 문약(文弱)한 문돌이의 애달픈 심정을 누가 알랴. 


 그러나 이런 와중에도 두 아이들이 곱게 자라준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두 딸이 이제 직장생활을 하며 수입이 생기게 됐다며 서로 상의해 자기들이 물품을 사드리자고 나선 것이 참 기특하고 감격스럽다. 이민생활 18년째를 맞는 우리는 그동안 크게 이룬 것은 없지만 가족간 사랑만큼은 아주 잘 다져낸 것 같다. 특히 이민 와서 잘 자라준 딸들이 참으로 고맙기만 하다. 


 돈 많은 부모들처럼 자식들에게 잘 해주지도 못하고, 대를 이어 물려줄 가업(家業)도 없으나 반듯하고 정직하고 예의 바르고 건강하게 자라준 것이 고마울 뿐이다. 가정에 사랑과 평화가 넘치니, 그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도 그렇게 사랑스럽게 살아갈 것이라 굳게 믿는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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