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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옛산이로되- 세월 따라 변해가는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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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한국의 뉴스를 보면 눈에 익은 모습이 화면에 비칠 때가 있다. 엊그제는 내가 즐겨 보는 MBC 탐사기획 프로그램 ‘스트레이트’에 언뜻 낯익은 얼굴이 비쳤다. 강원도 춘천에 있는 어느 초호화 골프장에서 전 정부의 정.관.재계 인사들이 접대골프를 즐겼다는 고발프로였는데, 그 중 한명이 고교시절 같은 반 동창이었다. 그는 한국의 최고 권력기관 중 하나라는 국세청의 고위직까지 오른 인물이다. 

 

 

 

 


 고교시절 친구는 수줍고 얌전한 전형적인 ‘범생이’로 학업성적이 뛰어나 전교 5위 안에 들었는데 집안이 어려워 장학생으로 지방대에 진학했다. 우리는 고교 졸업 후 거의 만난 적이 없으나, 그 후 듣자 하니 7급 공무원으로 공직에 진출했는데 아주 모범적인 공무원으로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그는 결국 최고위직까지 승진했고, 소위 지방대-비고시 출신으로 그런 위치까지 오른 친구는 우리 동창들 간에 입지전적 존재로 불렸다.


 그런데 흐르는 세월과 함께 사람도 변해가는지, 예전처럼 여전히 깨끗하고 양심적일 거라고 생각했던 동창생 친구가 진흙탕 같은 공직세계에 오래 발을 담그고 있다 보니 그도 별 수 없이 물이 들었나 보다. “골프비를 누가 내주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내가 왜 당신에게 그런 걸 답해야 하느냐”고 퉁명스럽게 내뱉는 그는 이미 내가 아는 예전의 순진했던 친구가 아니었다. 전혀 잘못한 게 없는데 왜 그런걸 갖고 귀찮게 구느냐는 식이다. 그 모습을 보며 참으로 입맛이 씁쓸했다.


0…꿈 많던 고교시절, 나에겐 친형제처럼 지냈던 ‘삼총사’ 친구가 있었다. 우리는 3년 내내 같은 반, 같은 자리에 앉으며 늘 붙어다녀 다른 친구들의 부러움과 질투를 동시에 받았다. 그런데 그 중 한 친구는 집안형편이 어려워 대학진학을 포기한 채 일찌감치 세무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세월이 흐른 어느날, 그의 아파트에 초대를 받아 놀러 갔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박봉(薄俸)이 뻔한 말단공무원인데 친구의 아파트 실내 곳곳엔 유명화가의 고가(高價) 그림이 걸려 있고 고급 도자기도 놓여 있었다. 그러면서 그 친구는 자기가 어딜 가나 사업가들에게 대접을 잘 받는다며 자랑스러운 듯 얘기하는 것이었다. ‘아니, 이 친구가 이렇게 변하다니!’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아내를 볼 면목이 없었다. 그리고 그 후론 이 친구를 만나고픈 생각도 없었고 그럴 기회도 별로 없었다.  

     
 ‘삼총사’ 중 다른 단짝 친구는 나와 이름까지 비슷한데다 사관학교까지 함께 진학해 그야말로 평생동지나 마찬가지였다. 고교시절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변치 말자며 어른들 몰래 막걸리까지 나눠 마시며 우정을 맹세하기도 했다. 특히 이 친구는 다부진 체격에 리더십도 뛰어나고 공부도 잘해 친구들 중에서 가장 장래가 촉망되는 인물 중 하나로 꼽혔다. 


 그런데 이 친구는 이상하게 인생이 뒤틀리면서 일찌감치 사회생활에서 은퇴를 하더니 부동산 중개인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민을 온 후 9년 만에 한국에 나갔다 친구를 만났는데, 사업에 별 재미를 못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친구의 초라한 모습을 보니 왈칵 눈물이 솟았다. ‘그렇게도 장래가 촉망되던 네가…’ 그 친구는 그러나 여전히 정의감과 강직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우리는 밤을 새워 술을 퍼마시며 옛날 추억에 잠겼다.            


0…엊그제는 한국 외교부 인사를 보니 P국 대사(大使)에 대학 동창 여학생이 들어 있었다. 전문 외교관은 아닌데 워낙 똑똑하고 영어를 잘해서 그런지 외교가에서 꾸준히 실력을 인정받아온 듯하다. 


 이처럼 아직 현직에서 활동하는 동창생이 있는가 하면 일찌감치 은퇴를 하고 벌써 노후생활을 즐기는 친구들도 많다. 사실 내 나이토록 현직에서 일을 하는 사람은 자영업자를 제외하곤 절반 정도이다. 공직이나 기업에서 근무하던 친구들은 대부분 은퇴하고 등산이나 다니면서 소일하는데, 그것도 못할 노릇이라고 한다.     


0…누구나 최소한 초,중,고교 동창생에, 대학을 마친 사람은 4단계의 동창생을 두고 있을 것이다. 나는 여기에 중도에 그만둔 사관학교까지 5단계의 동창생을 갖고 있다. 그런데 평생 기억에 남는다는 고교 동창 중 공부를 잘했던 친구들은 대개 공무원이나 기업체, 학계로 빠지고 공부를 못한 친구들은 사업 쪽으로 갔는데, 지금도 일을 하며 친구들 식사비를 팍팍 내주는 사람은 공부 잘했던 모범생이 아니라 바로 말썽꾸러기였던 친구들이다. 


 이들은 대학을 못 갔거나 대충 때우고선 일찌감치 자기 사업을 시작한 이들이다. 처음엔 대기업 다니는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했으나 지금은 전세가 완전히 역전돼 이 친구들이 오히려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다. 교실에서의 모범생이 반드시 사회에서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셈이다.    


 고교 졸업 후 1년간 다녔던 사관학교. 동기생 중에는 별 4개를 달며 최고위직까지 오른 친구도 있고 도중에 옷을 벗은 친구도 있다. 한 동기생은 군사령관까지 올랐으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벌인 해프닝으로 옷을 벗었다… 추억은 그대로건만 사람은 세월 따라 변해만 간다. ‘산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 물이 아니로다/실버들 향기 가슴에 안고 배 띄워 노래하던 옛동무여/흘러간 구비구비 적셔보던 야릇한 꿈을/어이 지녀 가느냐, 어이 세워 가느냐…’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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