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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끊으니…다른 길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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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 종가집에서 막내로 태어난 나는 어릴 때 집안에 제사가 많았고, 그럴 때면 술심부름을 내가 가곤 했다. 찌그러진 양은 주전자를 들고 읍내 술도가(都家)에 가서 막걸리를 받아 오는데, 처음엔 호기심에서 주전자 꼭지에 입을 대고 한모금 마셔 보았고, 이내 그 맛에 길이 들여지기 시작했다. 어느 땐 절반 가까이나 마셔 집에 오면 주전자가 가벼워졌고, 그러면 어른들께 혼이 날까 조바심치던 추억이 아련하다. 


 시골에서 자란 분들 중에는 이런 식으로 술을 배우기 시작한 분이 많으실 것이다. 그런데 술도 집안내력이 있어 우리 집안 어르신들은 폭음까지는 아니더라도 대체로 술을 즐기는 편이었다. 달리 오락거리가 없던 그 시절엔 술이 거의 유일한 일상의 배출구였을 것이다. 아무튼 그 시절은 그런대로 낭만과 풍류가 흐르던 시절이었다. 


0…나도 그동안 술께나 좋아하고 즐겼다. 특히 이민 오기 전엔 직업상 낮술의 묘미에 빠졌는데, 그 멋이 기가 막혔다. 대낮에 한잔하고 하늘을 보면 세상이 그렇게 아름답게 보일 수 없었다. 그래서 나에 대한 이미지는 술이 많이 들어있다. 그러나 술이 센 편은 아니고 주로 분위기를 즐기는 편이었다.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서 술을 마시면 흥취가 더했다. 말하자면 술 자체보다 풍류(風流)를 즐기는 편이었다. 비가 오면 오는대로, 낙엽이 지면 지는대로, 눈이 내리면 또 그 나름대로, 한잔 하면서 즐기는 운치가 참 좋았다. 


 자고로 술을 모르는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하지 않던가. 술 좋아하는 사람 치고 악인이 없다고도 하잖는가. 나는 술을 하지 않는 사람은 꼬장꼬장 하고 멋도 모르는 사람으로 치부했다. 내 주변에 대체로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리라.           


0…그런데, 나이를 먹을수록 몸의 이곳저곳에서 경고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최근엔 갑자기 오른쪽 엄지발가락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화끈거리는 것이 영 불편했다. 걷는 것도 절뚝거리며 이틀을 불편하게 지냈고, 주말 골프약속도 취소해야 했다. 누군가에게 물어보니 이것이 이른바 통풍(痛風) 증세라는 것이다. 문자 그대로 바람만 스쳐도 아프다는 병이다. 아니, 남의 일로만 여겼던 병이 나에게 찾아올 줄이야!


 나는 어이가 없기도 해서 인터넷을 뒤져 보았다. 한마디로 통풍은 기름진 음식 등을 잘 먹어서 생기는 병이라 ‘귀족병’ 혹은 ‘황제병’이라고 한단다. 글쎄 나같은 사람이 그런 황공한 얘기를 들을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니 그 말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닌 듯하다. 평소 고기와 술을 즐기는 편인 나는 그날 점심때 삼계탕을 푸짐하게 먹고 저녁엔 삼겹살에 막걸리까지 마셔대며 포식을 한 것이다.


 다음날 부랴부랴 워크인 클리닉을 찾아 응급약을 처방받아 복용했더니 다행히 통증은 이틀만에 가라앉았다. 그리고 정식으로 가정의를 찾아가 혈액검사를 했더니 요산(Uric acid) 수치가 높은 것으로 나왔다. 이에 가정의는 요산수치를 낮추는 약을 처방하면서 주의사항을 늘어놓았다. 요점인 즉, 통풍은 음식으로 인해 발생하는만큼 먹지 말아야 할 음식이 너무 많았다. 보통 상식적으로 몸에 좋은 음식은 모조리 먹지 말아야 할 지경이다. 


 특히 의사가 지시하는 제1 수칙은 술을 멀리하라는 것이다. 아뿔사, 이젠 무슨 재미로 사나! 그동안은 퇴근하면 집에 와서 우선 와인부터 찾아 치즈와 곁들여 한잔 하는 것이 기가 막힐 정도로 풍미(風味)가 좋았다. 와인과 치즈는 궁합도 잘 맞는다. 식사 전에 한잔 하면 음식 맛도 더 좋았다. 그래서 그것은 하루 일과의 최고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젠 그런 낙(樂)이 없어져버린 것이다. 


0…최근 건강검진을 받고 이런저런 주의를 받았다. 콜레스테롤에, 요산에, 전립선에… 그동안 건강에 관해서는 전혀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이런 주의를 받고 보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러나 모든 화근이 술에서 비롯된다니 자제하는 수밖에 없다. 


 퇴근 후 집에서 한잔 하는 재미가 없으니 왠지 불안하다. 누가 저녁에 만나자고 해도 은근히 겁이 난다. 술 한잔 하자고 하면 어쩌나. 그동안 술을 매개(媒介)로 친했던 친구들도 점점 멀어질 것이다. 이러다 인간관계의 폭이 줄어드는 것은 아닐까 걱정도 든다. 내가 술 좋아하는 것을 많은 이들이 알기에 만나면 으레 술을 시키려 드는데, 내가 사양하니 ‘해가 서쪽에서 뜨겠다’는 반응들을 보이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인간관계도 중요하지만 우선 내 건강부터 챙겨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됐다. 술 마시며 잡담하는 시간이 줄어들다 보니 처음엔 무엇을 할지 몰라 안절부절하는 일종의 금단현상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그러다 책을 손에 들기 시작하면서 방향이 정해지는 듯하다.   


 그동안 종종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던 나의 친구들, 요즘 내가 술을 멀리하면서 자연히 만남도 뜸해지고 있다. 이런 것은 분명 아쉬운 측면이다.

그러나 이젠 술이 없어도 대화를 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야겠다. 아직 단주(斷酒)까지는 못 갔고 절주(節酒) 단계에 머물고 있지만 언젠가는 그렇게 하리라 마음을 먹어 본다. 좀더 윤택한 노후의 삶을 위하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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