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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 저울-무너지는 사법부 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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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여신 디케(Dike) 상. 법의 여신이라고도 불린다. 

 

 

 

 예전 어렸을 때, 어르신들이 장래희망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꼭 빠짐없이 들어가는 직업이 있었다. 바로 판,검사였다. 판,검사야말로 가장 권위있고 존경받는 직업으로 추앙받았다. 특히 그것은 다른 세습적인 부(富)를 누릴 수 없는 일반 흙수저들이 금수저 반열에 오르는 가장 빠른 신분상승의 수단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무리 죽어라 일해도 권력과 부를 한번에 거머쥘 수 있는 길은 달리 없었다. 그래서 시골 출신의 가난한 대학생들이 육법전서(六法全書)를 싸들고 고시공부 하러 깊은 산의 절로 들어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개중에는 운과 ‘암기력’이 좋아 수년 만에 사법고시에 합격해 하산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십년 가까이 절간에서 청춘을 허비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렇게 어렵사리 사법고시 관문을 통과한 선택받은 사법연수원생 주변엔 온갖 유혹의 손길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우선 돈 많은 집안으로부터 혼담(婚談)이 쇄도하고 이를 연결해주기 위한 ‘마담뚜’까지 등장하며, 권력과 연줄을 대려는 어두운 손길들도 줄을 잇는다. 


 학창생활을 하면서 누구는 부당한 정치권력에 항거하다 패가망신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구는 바깥세상과는 담을 쌓고 오로지 법조문 외우기에 매달려 마침내 입신(立身)하는 사람도 있었던 것이 나같은 세대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도서관과 절간에서 법조문만 외우던 사람들에게 복잡다단한 이 세상을 폭넓게 이해하는 자세를 기대하는 것은 애당초 무리였다. 또한 자신도 흙수저 출신이면서 일단 현직에 들어가면 약자와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조직에서 크기 위해 충성을 다하는 인간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관례다. 이런 상황에서 공평무사한 판결이나 권력에 대한 성역없는 수사는 애초에 기대할 수 없는 것이었다.        

     
0…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이 ‘디케(Dike)’다. 디케는 정의(正義) 또는 정도(正道)라는 뜻이다. 이것이 로마시대에는 유스티티아(Justitia)로 대체됐는데, 정의를 뜻하는 영어 저스티스(Justice)는 여기서 유래했다. 디케는 처음엔 두 눈을 가리고 칼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졌고, 유스티티아는 여기에 저울이 더해졌다.


 즉, 정의의 여신은 오른손에 칼, 왼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칼은 정확한 판정에 따라 정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는 뜻이며, 저울은 엄정한 정의의 기준을 상징한다. 또한 디케에 눈가리개를 두른 것은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않고 공정하게 판결을 내리기 위한 것이란 뜻이다. 즉, 정의와 불의의 판정에 있어 편견이나 사사로움을 떠나 공평함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일각에서는 눈가리개에 대한 다른 해석도 생겨났다. 즉, 여신의 눈을 가린 것은 진실을 애써 외면한 채 왜곡된 판결이 양산되는 세태에 대한 풍자라는 것이다. 사법부의 부패와 정직하지 못함을 비판한 것이다. 


 법과 정의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이에게 엄정하고 공평하게 적용되지 않는다면 힘없는 사람에겐 가장 위험한 폭력이 될 수도 있다. 법은 강자의 이익이라는 역설이 생긴 연유다. 아무리 능력이 탁월한 신(神)이라도 눈을 가리고 있으면 공정하기 어렵다. 사람을 심판하는 법관은 저울이 과연 공정한 저울인가부터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 


0…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의 법원 앞에 세워져 있는 정의의 여신상은 눈을 가리지 않았고 손에 칼도 없다. 이에 대해 세인들은 법관이 먼저 상대(피고)가 누구인지를 살펴보고 그 지위에 따라 유,무죄를 판별하고, 권세가들에게는 큰 벌을 내리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이라고 꼬집는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이래서 생겨났다. 


 특히 보수정부에서 민감한 시국사건의 판결을 보면 과연 판사가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하는지 의심스러운 경우가 많았다. 최근 불거진 전 정부의 사법부 행태는 그 존재의미를 무색케 한다. 최고 수장(首長)인 대법원장이란 사람이 무능한 대통령과 짜고 해고 노동자 등 소수약자가 관련된 재판을 멋대로 뒤집고 지연시키는 ‘거래’를 함으로써 스스로 권위를 추락시켰다. 국민들 불신이 팽배한 가운데 사법부는 자멸의 길을 택했다. 약자의 피눈물을 외면한 채 오로지 정권유지에 도움되는 판결만 하도록 했으니 정권의 시녀 역할을 자임한 꼴이다.


 판사에 대한 영어가 서양에선 정의를 강조한 Justice를 주로 쓰는 반면 한국에선 판정을 강조하는 Judge로 쓴다. 정의를 앞세우기보다 개인의 판단을 중시하는 측면에서 매우 권위적이다. 판사의 이런 의식구조에서는 올바른 판결이 나오기 어렵다. 


0…사법부의 권위가 추락한 것은 비단 한국 뿐만이 아니다. 이곳 캐나다에서는 온주 보수당 정부가 법원의 판결을 무시하고 이른바 ‘Notwithstanding’(예외조항)을 적용해 기어코 토론토시의원 정수를 줄이려고 혈안이다. 이것이 과연 삼권분립이 보장된 민주 선진국가인지 의심스럽기 짝이 없다. 


 시의원 수를 줄여 서민들 세금을 깎아주는 것이야 백번 찬동하지만 민주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특히 법원 판결까지 뒤엎어버리는 처사가 문제인 것이다. 다수정권으로 승리한 주 총리는 “법원 판사는 임명직이지만 주의원은 시민들이 직접 선출한 직책”이라는 해괴한 논리를 내세워 밀어부치기 식으로 나가고 있다.   


 이것이 선례가 될 경우 법원의 판결이 권위를 잃고 법질서 경시 풍조가 만연할 지도 모른다. 자라나는 세대는 과연 무엇을 보고 배울 것인가. 이래저래 사법부의 권위는 무너져 가고 있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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