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w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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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문을 나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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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 살면서 드나들지 말아야 할 곳이 세 곳이 있다 했다. 경찰서, 법원, 병원이 그곳이다. 죄를 짓지 말고, 송사(訟事)에 휘말리지 말며, 또한 병에 걸리지 말아야 한다는 경구다. 그런데 경찰서나 법원은 착하고 정직하게만 살면 안 가도 될 곳이지만, 병원은 가고 싶지 않다고 안 가도 되는 곳이 아니다. 특히 나이를 먹어갈수록 종종 찾지 않을 수가 없는 곳이 병원이다.

 

 

 

 


 굳이 병원(Hospital)이라고까지 말하면 어디가 많이 편찮은 듯 들리니, 여기선 가정의(家庭醫, Family Doctor)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 지난해 우리 가족이 이사를 하면서 가정의를 변경하게 됐고, 인사 겸해서 들르니 의사는 우리 집안의 가족력(家族歷) 등을 물은 뒤 혈액과 소변검사 등 기초검사를 받으라 했다. 많은 한국남자들이 그러하듯, 나 역시 어디가 아프지 않은데 굳이 건강검진을 받으라면 귀찮아 하는 습성이 있다. 그래도 못 이기는 체하고 검사에 응했다.  


 검사 후 별 이상이 없으면 그냥 지나가는데 무슨 이상이 있으면 의사로부터 면담요청이 온다. 나의 경우 검사 후 나흘째 되는 날, 가정의 사무실로부터 “잠깐 면담 좀 하자”는 전화가 왔고, 이에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무엇이 잘못 됐을까. 혹시 간에 문제가? 아니면 콜레스테롤? 전립선?. 여러 불길한 상상이 들었다. 면담 전날, 잠을 설치며 뒤척이는 밤이 무척 길고 어두웠다. 평소 건강하던 사람이 우연히 검진을 받아보니 중병에 걸렸더라는 이야기가 흔치 않던가. 만약 내 몸에 문제가 있다면? 나 자신이야 상관 없지만 아직도 젊고 아름다운 아내와 두 딸은 어찌 되는 건가…  


 다음날, 가정의 사무실의 1인용 진료실에서 대기하는 5분여 동안이 마치 몇시간은 되는 것처럼 초조했다. 이윽고 문을 열고 들어온 의사의 눈치를 살피며 “무슨 심각한 증세라도…?” 라고 묻는데 목소리가 떨렸다. 이에 의사가 하는 말, “콜레스테롤이 좀 높고 전립선 수치(PSA)도 좀 높아요. 그러니…” 하며 처방전을 써주었다. 먼저 콜레스테롤 약을 사서 복용하고 운동을 꾸준히 할 것이며, 또한 비뇨기과 전문의(Specialist)를 찾아 상담을 해보라는 것이다.


 나는 특히 뒷말에 가슴이 덜컹했다. 요즘 따라 주변에 왜 그리도 전립선 질환자가 많은지, 아는 선배님 중에도 세 분이나 이 질환으로 고생을 하고 계신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 인터넷을 통해 전립선에 대해 이것저것 뒤적여보았다. 수치가 대략 3 정도면 정상이고 그 이상이면 주의를 요한다는데, 나는 정상보다 약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전문의에게 진료예약을 하고 기다리는데 1개월 반 정도가 걸렸다. 그 시간동안 솔직히 의기가 소침해지는데, 매사에 자신감이 없어지고 의욕도 나질 않았다. “만약 결과가 좋지 않아(암!?)  병원을 들락거리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밤잠을 깨면 다시 이룰 수가 없었다. 우리가 장수(長壽)하는 집안도 아니어서 더 그렇다. 요즘같은 시대에 적어도 손자손녀 몇 정도는 보고 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때부터는 좋아하는 술도 멀리 하기 시작했다. 


0…마침내 검진일이 왔고 전문의를 만났다. 중동계로 보이는 백인의사는 투박한 인상과는 달리 부드러운 매너로 평소 불편한 점이 있는지 등을 묻고 진료기록을 살피더니 알기 쉽게 또박또박 설명을 해주었다. 얘기인 즉, PSA 수치가 정상보다 약간 높긴 하지만(4.3), 수치가 수년간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별 문제는 없는 것으로 판단되며, 앞으로 1년에 한번 정도 검진을 하면서 꾸준히 관찰을 해보자는 것이다. 


 나는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특별한 이상이 없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병원 문을 나서는 기분은 매우 가벼웠다. 그리고 이런 일을 겪으면서 늘 갖는 기분이 있다. 몸에 이상이 없는 것만 확인되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 기분. 그리고 다짐도 한다. 앞으로 세상 다시 태어나는 각오로 살리라. 남을 위해 봉사도 하고 평소 하고 싶었던 것도 즐기면서. 그런데 막상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듣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조금 전의 철석같던 결심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다시 나태한 습관으로 복귀한다. 


 그날 저녁도 나는 기분이 좋은 상태에서 한동안 입에 대지 않던 와인잔을 잇달아 들이켰다. 새로운 모습으로 성실하게 살겠다던 다짐은 오래 가지 않았다. 이러니 인간의 마음은 얼마나 간사한가. 일상의 평범한 행복이 얼마나 큰 축복인 줄을 모르고 스스로 몸과 마음을 해치는 일을 해댄다.      

 
0…건강검진에 대한 얘기는 전에도 몇 번 쓴 적이 있다. 검진을 받고나서 찜찜해지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결론은, 적절히 자신을 절제하고 관리하며, 낙천적으로 사는 것이 건강의 비결이 아닌가 한다.


 사람은 혼자서 사는 게 아니다. 최소한의 공동체 단위인 가족을 비롯해 많은 인간관계 속에 살아간다. 따라서 내 몸은 혼자가 아니라 주위의 여러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다. 내 몸이 아프면 나의 고통뿐 아니라 주변 모두에게 폐를 끼치게 된다. 평소 자기 관리가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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