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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가게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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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C-TV 인기 시트콤 ‘김씨네 편의점’의 무대인 토론토의 가게 

 

 

 

 17년 전에 이민 온 우리 가족은 당시 우리보다 수개월 먼저 와 정착한 큰동서네를 따라 해밀턴의 어느 한인교회에 출석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서는 유난히도 가게(편의점)를 하는 한인분들이 많아 만나는 사람 열명 중 여덟, 아홉이 가게를 운영하거나 ‘헬퍼’ 등 어떤 형태로든 가게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주일 예배가 끝나고 팀홀튼에서 커피를 들면서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십중팔구 담뱃값이라든가, 우유값 등이 주된 화젯거리였다. 이러다보니 처음엔 나같은 ‘이민 초짜’들은 대화에 끼여들 여지가 별로 없었다. 


 그러나 어쨌든 가게가 대세인지라 나도 오자마자 동서의 가게 일을 도와주며 캐나다 생활에 적응해가고 있었는데, 처음엔 5센트, 10센트, 25센트 동전이 구별이 안돼 계산대 앞에 손님들이 줄을 설 땐 등이 온통 식은땀으로 후줄근해지곤 했다. (특히 숫자에 약한 나는 물건값을 계산하느라 애를 먹었다). 그때 그 시골 가게는 주유소를 함께 하고 있었는데 휘발유값을 다른 업소보다 약간 낮게 받기 때문에 항상 차량들이 밀려들었다.  

   
 그런 생활을 하는 동안 갓 이민 온 우리 아이들도 곁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가게야말로 이 세상에서 유일한 직업인가 보다 하고 생각한 것 같다. 하루는 교회가 끝나고 대화를 나누는데 점잖으신 어느 장로님이 다섯 살짜리 우리 막내딸에게 물으셨다. “너는 커서 캐나다에서 무엇이 되고 싶으냐?” 딸은 서슴없이 대답했다. “가게 주인요!” 이 말에 우리는 박장대소 하며 배꼽을 잡고 웃었다. 어린아이들 눈에도 가게야말로 돈을 많이 버는 곳으로 비쳤나 보다. 


 집에 오는 길에 우리 부부는 입맛이 씁쓸했지만, 한편으론 이해도 됐다. 당시 한인들 절대 다수가 가게를 하고 있었기에 캐나다에선 누구나 가게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인식되던 시절이었다. 특히 그 때만 해도 가게를 하는 분들은 대체로 여유 있게 살고 있었으며 ‘가게주인’이야말로 신참 이민자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고 어린아이들 눈에도 그렇게 비쳤던가 보다.


 가게를 하는 분들은 동포행사 때 기부금도 척척 잘 내고 월급쟁이처럼 쫀쫀하지도 않았다(물론 사람 나름이지만…). 부부가 번갈아가며 가게를 지킬 경우 개인시간이 없어 고달펐을 뿐이지 돈은 그런대로 만질 수가 있었던 것이다. 가게를 운영해 자녀들 대학교육도 시키고 번듯한 집도 장만한 분들이 많았다. 그러니 가게야말로 한인들에게는 ‘황금알’로 통할 만했다. 개중에는 가게를 사고팔고 해서 수년 만에 큰 돈을 모은 사람도 적지 않았다.


 우리 부부도가게를 하면 정말로 돈을 잘 버는가보다 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동서네 가게 일을 도우면서 다른 한편으론 부지런히 좋은 가게를 찾아 돌아다녔다. 그런데, 인연이 안 되려고 그랬는지 우리에게 맞는 가게는 나타나 주질 않았고, 나는 결국 한국에서와 똑같은 직장생활(신문사)을 하게 됐다. 


 내가 신문사에 나가게 됐다고 주변에 말하자 이민선배들은 하나같이 혀를 차며 측은하다는 눈초리로 “이 사람아, 왜 그렇게 안일하게 살려고 그래. 이민생활에선 돈이 최고야. 직장은 조금만 다니고 어서 좋은 가게를 찾아” 라는 충고를 보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나 같은 이민초년생들은 한국의 ‘넥타이물’이 덜 빠진 탓인지, 속으로 “저는 돈 벌려고 이민 온게 아닙니다. 난 그렇게 꾀죄죄하게 푼돈 벌어가며 살고 싶지 않습니다” 라고 응수하곤 했다. 그때의 선택이 옳았는지, 지금 생각해보아도 판단이 서질 않는다.  


0…캐나다 한인사에서 가게(편의점) 얘기는 빠질 수가 없다. 편의점은 한인경제의 젖줄이요 생명줄이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져가고 있다. 대형몰의 일요 휴무 덕분에 가게들이 포대자루로 돈을 긁어모으던 시절도 있었으나 이젠 옛추억이 되고 말았다. 갈수록 대형업소에 밀리고 수년 전부터 정부의 강력한 금연정책으로 담뱃세가 크게 오르면서 가게매상이 뚝 떨어졌다. 이젠 큰돈은커녕 생계마저 불안하다. 


 정부는 스몰비즈니스 육성 및 장려 운운하면서 정작 소규모 구멍가게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한인들이 줄기차게 요구하는 주류판매 허용은 마이동풍이다. 가게주인이 손님의 당첨복권을 가로채고 있다고 의심하며 자기 가게에서는 복권도 살 수 없도록까지 규제하고 있다. 가게 하는 사람들은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이러니 한인업주들 한숨소리가 높아만 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인들이 기댈 곳이라곤 실업인협회 밖에 없다. 실협은 1973년 코너스토어를 운영하는 몇몇 한인들이 모여 ‘상인협회’를 구성했고, 이듬해 30여 명의 회원으로 출범했다. 그 후 세월이 흘러 수년 전만 해도 회원 수 2500여 명을 거느린, 한인사회 최대의 경제단체로 성장했다. 


 그러나 지금은 회원 수가 1천여 명으로 급감했다. 그나마 이번 실협회장 선거에서는 60퍼센트 정도인 670명 만이 참여했다. 그야말로 실협은 생사의 기로에 서있다. 이제 새로 선출된 신재균 회장단은 어깨가 무겁다. 더 이상의 쇠락을 막고 부흥의 기틀을 다질 것인지, 아니면 몰락의 길로 들어설 것인지. 정직하고 올곧은 이미지를 지닌 신재균 회장단에 기대를 걸어본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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