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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없이 주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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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양 추위 속에/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새해는 그런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파릇한 미나리 싹이/봄날을 꿈꾸듯/새해는 참고/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세상은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좀 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 (김종길 ‘설날 아침에’) 


 대학시절 은사님이셨던 김종길 교수님과 제자들이 막걸리 잔을 앞에 놓고 이 시를 읊조리던 때가 있었다. 막걸리잔처럼 소탈하시고 풍류가 있으셨던 교수님은 1926년생이시니 한국나이로 이제 90세가 되셨을 것이다. 위의 시처럼 교수님은 아직도 그런 꿈과 풍류를 간직하고 계실까.


 새해, 새날… 참 좋은 단어들이다. 아마 이런 신선한 말이 없다면 생을 살아갈 희망도 목적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처음처럼 새날을 맞지만 새해 소망이나 결심이란 것도 단 며칠을 넘기지 못하고 흐지부지 되고 만다. 그나마 새로운 다짐을 안하는 것보다는 나으니 위안 삼아 또 하게 된다. 먼저 나는 지난해 무슨 다짐을 했는가 회상해 보았더니 ‘베풀며 살자’고 했었다. 그러나 역시 별로 실천이 되지 않았다. 


 지난 연말만 해도 이곳 저곳에서 연하카드와 함께 크고 작은 여러 선물들을 받고 보니 기쁨과 고마움보다는 송구한 마음이 앞섰다. 나는 너무 받는 데만 익숙하고 남에게 주는 데는 인색한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에서였다. 어느 선배님은 내가 동창회장을 맡느라 고생이 컸다며 장문(長文)의 격려 글과 함께 기프트카드를 보내주셨고, 또 어느 지인은 꽃을 보내주시기도 했다. 쌓여가는 카드와 선물들을 보면서 내가 과연 이런 소중한 정성들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자책감이 들었다. 


 정성이 담긴 카드 한장도 제대로 못쓰고 먼저 받은 곳에만 마지 못해 답장 형식으로 보내면서 마음 한구석이 죄 짓는 기분이었다. 이럴 땐 남에게 베풀기보다 받는 데만 익숙해 있는 나 자신이 미워진다. 특히 요즘엔 카드도 별로 쓸 일이 없어졌다. 웬만하면 ‘카톡’ 등 SNS로 안부를 주고 받으니 사람의 체취를 느낄 기회도 없어졌다. 이런 추세라면 아마 언젠가는 성탄카드도 사라져 갈  것이다. 밤낮 없이 들려오는 ‘카톡’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한편으론 반갑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세상을 너무 쉽게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무언가를 받을 때마다 나에게 잘해주시는 분들이 경제적으로 반드시 풍요롭지만은 않다는 사실에 더욱 가슴이 찡하다. 오히려 사정이 어려우신 분들이 먼저 베푸는 모습에서 나눔이나 베풂이 꼭 물질적 여유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렵게 돈을 모은 ‘콩나물 할머니’나 ‘청소부 아저씨’가 소중한 장학금을 쾌척할 수 있는 것은 어려운 이들의 사정을 알기 때문이다.


 넉넉해서 베푸는 일은 쉬울 수 있다. 그러나 남에게 나누어줄 수 있을 정도로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늘 부족해서 나누어주기 어렵다는 말을 반복하는 것이 사람이다.           


 시골 출신인 나는 성장배경 탓인지 남에게 살뜰히 베풀거나 특정한 날에 선물을 주고 받는 등의 아기자기한 면에 서툴다. 이러다 보니 결혼기념일에 아내에게 꽃을 선사한다거나 근사한 외식을 한 기억도 별로 없다. 그러면서 ‘남자는 속으로 사랑하는 것이지, 그렇게 낯간지럽게 행동해선 안 된다’는 억지논리로 나를 합리화시키려 든다. 그러나 요즘 시대에 그런 황당한 논리가 통할 리 없다. 마음이 있어도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성직자에게 드리는 영적(靈的)선물이 아닌 바에야 외형적 표시도 중요하다. 하여, 새해부터는 내가 먼저 받기 전에 주변에 좀 베풀면서 살아가자고 거듭 다짐해본다. 


 주위로부터 마음이 담긴 선물을 받으면 나처럼 하찮은 존재에게도 관심과 애정을 가져주시는 분들이 계시구나 하는 생각에 참으로 감사하다. 평소 베풀지 못하고 살아가는 나에게 주님께서는 웬 이런 복을 주셨는지, 그저 감사할 뿐이다. 외로운 이민생활과 인생길에서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소중한 것이다. 이런 분들이 계시기에 삶은 포근하고 살만한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 주의 사랑은 베푸는 사랑/값 없이 그저 주는 사랑/그러나 나는 주는 것보다/받는 것 더욱 좋아하니/나의 입술은 주님 닮은 듯하나/내 맘은 아직도 추하여/받을 사랑만 계수하고 있으니…’ (찬양곡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이 찬양곡은 어쩌면 그리도 나의 심정을 그대로 표현했는지… 입으로는 사랑과 나눔을 외치면서 행동은 따라주지 않는 위선적인 모습을 잘 표현했다. 그러나 신앙적으로 별로 독실하지 못한 내가 이 곡을 일종의 18번처럼 부르는 것은 받을 것만 헤아리는(計數) 타산적 삶이 아니라 진정한 사랑을 닮고 실천하고 싶은, 자기주문(呪文) 차원에서다. 계속해서 부르다 보면 마음도 그리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아무런 조건 없이, 그저 값없이 주는, 그런 사랑을 한번이라도 해보고 싶다.


 베푸는 삶을 살면 자연히 지도력도 따라온다. 지난해 대학 동창회장을 맡으면서 느낀 점 가운데 하나는 바로 리더십은 호주머니에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호주머니를 닫고서는 절대로 어느 개인도, 단체도 제대로 이끌어 가기가 어렵다. 올해 누가 토론토 한인회장이 되고 평통회장, 또는 다른 동포단체장이 될지 모르나 자기 호주머니를 열지 않으면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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