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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화양연화(花樣年華)-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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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바로 그런 시간인 것을  
 


 


 올해 내 인생에서 중요한 일이 있었다면 그것은 두 말할 것 없이 슬하에 새 생명이 태어났다는 사실일  것이다. 손자를 바라볼 때마다 참 신기하고 경이롭다. 핏덩이였던 생명체가 하루하루 달라지는 모습에서 경외감과 더불어 인생의 봄날을 느낀다.

 

 아기를 통해 새로운 용어 익히는 재미도 쏠쏠하다. 나는 처음에 딸애와 사위가 아기를 보고 멍키(monkey) 멍키, 하길래 다소 의아했다. 사내답게 너무도 잘생긴 아기에게 무슨 멍키라니. 그런데 알고 보니 멍키는 원숭이 뿐만 아니라 ‘귀염둥이’란 뜻이 있는 것이다. Oh my pretty monkey!  

 

 생후 두어 달부터는 아기를 엎드려 놓고 고개 드는 연습을 시키는데 이를 tummy time이라 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아기가 고개를 들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에 양손엔 진땀이 흐른다. 몇번 해보더니 이젠 곧잘 고개를 들어 사방을 둘러보기까지 한다. 다음은 rollover(뒤집기)를 연습 중이다.

 

 그런데 저녁에 아기가 잠이 들려면 잠투정을 하며 울어대는데 이를 witching hour라고 한단다. 왜 이런 마녀 같은 이름이 붙여졌는지 모르지만 애교로 보면 그 또한 재미가 있다.  

 

 가장 신기한 시기는 아기가 엄마아빠와 주변인들에게 눈을 마주치고 반응을 보이면서 옹아리를 시작하는 때이다. 옹아리는 babbling이라고 한다. 아기가 내 눈을 보면서 뭐라고 웅얼대는 모습에 나는 그냥 자지러지고 만다. 

 이 모든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내 인생의 화양연화가 바로 지금이 아닌가 한다.

 

0…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을 일컬어 화양연화(花樣年華)라 한다. 2000년 홍콩 영화감독 왕가위의 영화제목으로 유명해졌다(영문 ‘In The Mood For Love’). 양조위.장만옥 주연의 이 영화는 가정이 있는 두 남녀가 쌓여가는 외로움을 풀기 위해 서로 가까워지며 애절하게 사랑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일종의 불륜 드라마인데 굳이 이해를 하려 든다면 사랑이라는 감정이 억누르려 해도 조절이 안되는 것이니 그 자체가 아름다운 것 아닐까. 사랑의 외줄타기, 그 순간이 화양연화다. 하지만 대사처럼 “그 시절은 지나갔고, 이제 거기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

 

 내 인생의 화양연화는 언제였을까. 이제와 생각해보면 살아온 모든 과정이 아름답고 행복했다. 그 자체로서 나의 봄날도 무르익어 왔다. 나의 머릿속에 각인된 고향의 정취는 더욱 그렇다.     

 

O…1994년 가을, 독일 베를린에 살던 작곡가 윤이상 선생의 자택. 현지 한국 특파원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윤선생의 한 지인이 찾아왔다. 그는 "선생님께 드리려고 통영에서 온 멸치를 갖고 왔습니다"라며 종이 꾸러미를 내밀었다.

 

 그 순간 윤선생은 "통영멸치라구? 이게 정녕 통영멸치란 말이오?"라고 울음 섞인 소리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의 목소리는 떨렸고 눈가는 이내 촉촉해졌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 음악가 윤이상. 그는 1967년 소위 ‘동백림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평생 조국을 등지고 살다 베를린에서 작고했다. 시대를 잘못 만난 천재작곡가. 꿈에도 잊지 못한 조국에 돌아갈 수 없었던 그이지만 평생 고향을 잊은 적이 없다.

 

0…그는 망향의 한을 이렇게 술회했다. "나는 통영에서 자랐고 그 귀중한 정신적 요소를 몸에 지니고 예술에 표현했다. 해외에 체재하는 38년 동안 한번도 통영을 잊어본 적이 없다. 그 바다, 푸른 물, 파도소리는 음악으로 들렸고 초목을 스쳐가는 바람소리도 나에겐 음악이었다."

 

 고인의 미망인(이수자)은 “남편은 고향땅이 보고 싶어 한일해역까지 배를 타고가 가물거리는 통영항구만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짓다 돌아오곤 했습니다. 먼 독일땅에 살면서 생의 마지막 끝자락까지 통영 앞바다 사진을 벽에 붙여 놓고 노후를 고향에서 지내고 싶다고 했습니다. 유언도 ‘고향인 통영에 묻히고 싶다’고 하셨지요.”

 

O…고향은 누구에게나 그리움의 대상이지만 윤이상 선생 같은 예술 거장에게도 고향은 언제나 그립고 애달픈 어머니와 같은 존재였다. 멀리 떠난 아들이 어머니를 그리워하듯, 그도 고향을 잊은 적이 없다.

 

 지금은 그의 업적을 기려 세계적 음악가들이 모이는 '통영국제음악제'가 열리고 있지만, 정작 윤 선생 자신은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고향에서 퍼간 한줌 흙과 함께 이국땅에 묻혔다.

 

 그는 아직도 꿈을 꾸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오페라(‘나비의 꿈’)처럼 한마리 나비가 되어 고향으로 날아가는 꿈을.

 

 그의 묘비에는 "고향 통영에서 퍼온 흙 한줌과 함께 여기 잠들다"라고 써있다. (그의 유해는 타계한지 23년 만인 2018년 봄에서야 그토록 꿈에 그리던 통영 앞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안장됐다.) 

 

O…아무리 연륜이 쌓여가도 이국땅은 여전히 낯설다. 나는 지금도 포근했던 고향의 옛모습이 눈에 선하다. 고향생각만 하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시야가 흐려진다. 고향은 그런 존재다. 현실이 고달프고 시릴 때, 생각만 해도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 어머니 품속 같은… 그게 화양연화였다.

 

 ‘그 물새 그 동무들 고향에 다 있는데/나는 왜 어이타가 떠나 살게 되었는고/온갖 것 다 뿌리치고 돌아갈까 돌아가/가서 한데 얼려 옛날같이 살고 지고/내 마음 색동옷 입혀 웃고 웃고 지내고저/그 날 그 눈물 없던 때를 찾아가자 찾아가…’(가고파)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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