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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 배경 영화(IV)-‘무법자’(Hors-la-loi)(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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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제리 독립전쟁 기간(1954~1962) 중 프랑스와 알제리 양국(兩國)에 각각 특기할 학살 사건이 발생했다. 하나는 1961년 10월17일 파리에서 이 전쟁에 대하여 비난 시위를 하던 알제리계 민간인 1만여 명을 프랑스 군경이 무차별로 사살한 이른바 '파리 학살 사건'이다.

 

 다른 하나는 그 다음 해인 1962년 알제리 민족해방전선(FLN)이 7월5일부터 7일까지 오랑에서 저지른 이른바 '1962년 오랑 학살 사건(Oran massacre of 1962)'이다.

 

 오랑(Oran)은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1960)의 명작 '페스트(La Peste)'의 무대로 유명하며 영화 '카사블랑카(1942)'에도 언급되는 도시다.

 

 그런데 프랑스 정부는 1961년 파리 학살 사건에 대해 반세기가 지난 2001년 10월에서야 인정하고 유감을 표시한 반면, 1962년 오랑 학살에 대하여 알제리 정부는 아직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사실 이 학살 이면에는 피에느와르(Pied-Noir)라는 알제리 거주 백인들이 문제가 되었다. 피에느와르는 직역하면 '검은 발(Black Foot)'이라는 뜻인데 알제리에서 태어난 프랑스계·스페인계·이탈리아계 등 유럽인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알제리 전쟁이 일어나자 이들은 프랑스로 돌아가거나 삶터인 알제리에 남아 있었지만 그들의 정체성은 프랑스인인지 알제리인인지 애매모호 하였다.

 

 게다가 무슬림 아랍인인 아르키(Harkis)도 문제가 되었다. 전쟁 중 프랑스 편에 자원하여 열심히 싸웠지만 종전 후에는 프랑스 측으로부터는 총알받이에 다름 아닌 알제리인이었고, 알제리 측에서는 반역자, 배신자, 매국노로 몰리는 신세였다.

 

 천대를 받을지언정 프랑스로 갈 수 있었던 아르키들은 그나마 행운아였다. 그 중에는 1953년 알제리 전투 발발 직전에 마르세유로 이주한 전 프랑스 유명 축구선수인 지네딘 지단의 아버지 스마일 지단(Smail Zidane)도 있었다.

 

 이러한 복합적인 문제점들이 학살의 주원인이었다.

 '이방인(L'Etranger, 1942)'으로 유명한 문인 알베르 카뮈도 피에느와르였다. 그는 정작 알제리의 독립에는 반대하였는데, 아랍인이 아닌 프랑스-스페인계 백인 혈통이었기 때문이다. 세계적 패션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Eves Saint Laurent, 1936~2008)은 오랑 출신이다. 그는 1960년 알제리전쟁 당시 징집되어 전투에 투입되었으나 20일만에 정신병이 발병했고, 다행히 프랑스 파리에 있는 군병원으로 후송되어 더 이상 전쟁에 휘말리지 않았다.

 

 그밖에 '추억의 솔렌자라(Solenzara)' 등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가수 엔리코 마샤스(Enrico Macias·84), 영화배우 장 폴 벨몬도(Jean-Paul Belmondo, 1933~2021)의 아버지인 유명 조각가 폴 벨몬도(1898~1982) 등도 피에느와르였다.

 

 그리고 프랑스 권투선수로 세계미들급 챔피언이었던 마르셀 세르당(Marcel Cerdan, 1916~1949)이 있다. 세르당은 1949년 그의 연인이었던 당대 최고의 프랑스 샹송가수 에디뜨 피아프(Edith Piaf, 1915~1963)를 만나러 파리에서 뉴욕으로 가는 도중 비행기가 포르투갈령 아조레스 군도에 추락하여 사망했다.

 

 이때 같은 비행기에 역시 피아프의 주선으로 뉴욕 연주 여행을 가던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지네뜨 느뵈(Ginette Neveu, 1919~1949)와 피아노 반주자인 한 살 위의 오빠 쟝도 요절했다.

 

 서론이 좀 길어졌다. 알제리 독립전쟁은 이와 같이 온갖 미명 아래 식민 지배 및 억압, 고문, 강간, 학살을 정당화하고 문명국이라 자처했던 제국주의 프랑스의 민낯을 드러낸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에 하는 얘기다. 그리고 우리나라와 같이 식민지배와 무장독립운동의 경험을 공유하는 나라의 사람들이라면 알제리인들과 똑같은 감정과 분노를 느낄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제 영화를 살펴보자.

 2010년 프랑스 스튜디오카날(StudioCanal)이 배급한 원제 '오르랄루아(Hors-la-loi)'는 'Outside The Law' 즉, '무법자(無法者)'라는 뜻이다. 알제리·프랑스·벨기에·튀니지·이탈리아 합작. 감독 라시드 부샤렙. 출연 자멜 드부즈(Jamel Debbouze), 로시디 젬(Roschdy Zem), 사미 부아질라(Sami Bouajila) 등. 러닝타임 137분.

 

 이 영화는 세티프 대학살과 알제리 독립운동을 다룬 액션, 드라마 작품이다. 단순히 특정사건에 집중하기보다는 주인공인 삼형제를 중심으로 식민지배 기간인 1925년부터 1962년 독립할 때까지의 전체를 연대순으로 개략적으로 짚어낸다. 핵심적인 사건이 등장할 때는 당시에 촬영한 실제 영상을 그대로 삽입하여 현장감과 역사성을 드높인다.

 

 1925년 식민치하의 알제리. 사이드, 메사우드, 압델카데르 삼형제는 어린 시절에 아버지(아메드 베네이샤)가 대대손손 물려받은 농지를 단지 서류가 없다는 이유로 토지소유권을 강탈당하는 것을 본다. 어머니(차피아 부드라)는 프랑스 경찰과 그 앞잡이인 알제리인 카이드(라르비 제칼)에게 저주를 퍼붓는다. 가족들은 정든 땅을 떠나 세티프(Setif)로 이주하여 정착하는데….

 

 20여 년이 지난 1945년 5월8일 파리. 나치 독일로부터 해방된 프랑스는 반파시즘 전쟁의 승리를 자축하며 춤을 추었다. 이때 장면은 당시의 흑백 영상자료를 보여주는데 프랑스 삼색기만 컬러로 처리하여 강렬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같은 날, 식민지 알제리에서 해방을 부르짖는 민간인 4만5천 명이 살해되는, 피로 강을 이루는 이른바 '세티프 대학살(Setif massacre)' 참극이 벌어졌다. 민가에 숨어든 차남 압델카데르(사미 부아질라)는 붙잡혀 감옥으로 간다.

 

 한편 돈벌이에 수완이 좋은 막내 사이드(자멜 드부즈)는 길거리에서 권투시합 내기를 벌이다 거리에서 독립을 부르짖던 아버지의 싸늘한 시체를 발견한다. 집으로 돌아오니 누이동생들은 살해당하고 어머니만 용케 살아남았다. 그래도 이 곳을 떠나지 않겠다는 홀어머니를 정성껏 보살피는 사이드.

 

 8년 뒤인 1953년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에 아르키로 참전한 장남 메사우드(로시디 젬)에게 어머니는 가족들의 근황을 알리는 편지를 보낸다.

 

 1954년 가을. FLN의 무자비한 테러가 일어난다. 이 틈을 이용해 사이드가 프랑스 경찰 앞잡이인 카이드 집에 침입하여 그를 칼로 찔러 죽여 옛날 토지를 강탈했던 일에 대한 복수를 한다. (다음 호에 계속)

 

▲ '무법자(Hors-la-loi·2010)' 영화포스터

 

▲ '무법자(Hors-la-loi)'는 1925년 식민치하에서 토지를 강탈 당하고 대대손손 살던 고향을 등지고 가족이 떠나면서 시작한다.

 

▲ 1945년 5월8일 이른바 '세티프 대학살'에서 민간인 4만5천 명이 살해되는 피로 강을 이루는 참극이 일어난다.

 

▲ '세티프 대학살'에서 독립을 부르짖던 아버지는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고 누이동생들도 집에서 살해되는 끔찍한 비극을 당한다. 사진 가운데 권투시합용 링이 보인다.

 

▲ 1955년 겨울, 사이드(자멜 드부즈)는 홀어머니(차피아 부드라)를 모시고 파리 외곽 판자촌인 난테르로 이사 온다.

 

▲ 1955년 겨울, 파리 외곽 빈민촌인 난테르의 눈 내린 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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