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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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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20
중국 의화단 전쟁 배경 영화-'북경의 55일'(55 Days at Peking)(2)

 

(지난 호에 이어)

 이러한 민중들의 분노와 불만을 배경으로 튀어나온 것이 의화단이었다. 의화단은 산동 지방에서 원나라 때부터 맥을 이어오던 백련교(白蓮敎) 계통의 비밀 결사로 대도회(大刀會)·팔괘교(八卦敎) 등 많은 비밀결사로 이루어졌다. 실제로 백련교는 불교 정토종의 일종인 백련종에서 비롯되었는데 중국 역사에서 두 번이나 큰 역할을 했다.

 

 14세기 원나라를 무너뜨린 '홍건적의 난'의 사상적 뿌리가 백련교이며 주원장(朱元璋)도 백련교에서 출발해 명(明)나라를 건국했다. 또 하나는 18세기 말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에 반기를 든 '백련교도의 난'(1796~1804)으로 중국 민족의 주류를 이루는 한족(漢族)을 중심으로 한 애국심과 종교가 융합된 비밀 결사체였다.

 

 이들 백련교 계통의 비밀 결사들은 스스로 하늘에서 내려온 신병(神兵)이라 칭하여 권법(拳法)과 봉술(棒術)을 익히고 주문, 부적, 의식을 통해 하늘을 날고 축지법을 쓰는가 하면 '도창불입(刀槍不入)', 즉 칼과 창도 자신의 몸을 뚫을 수 없다고 믿었다.

 

 이런 권법 무술 단체들의 무리를 '의화권(義和拳)'이라 불렀는데 서양은 이들을 권투선수(Boxer)로 번역했다. 그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던 모양! 그래서 '의화단의 난'을 The Boxer Rebellion이라고 불렀다.

 

 의화단은 노사부(老師父), 대사형(大師兄), 이사형(二師兄) 등 조직적 지도 체계를 갖추고 그들이 타도·제거 해야 할 적들을 재미있게도 '털의 길이'로 표현했는데, 1호는 긴 털이 난 자들, 즉 대모자(大毛子)로 외국인, 2호는 이모자(二毛子)로 중국계 그리스도교도, 외국 협력자, 3호는 삼모자(三毛子), 즉 수입품을 쓰는 자들로 규명했다.

 

 그들이 산동성에서 들고 일어났을 때 폭도에 불과했던 의화단이 1900년 6월 베이징에 들어왔을 때는 '부청멸양(扶淸滅洋·청을 도와 외세를 멸함)'의 단체로 변신하여 시민들의 호응을 받았다. 한편 서태후의 측근들은 의화단의 진격 상황을 지켜보고 이들의 힘을 배외 운동에 이용하려 하였다.

 

 다른 한편 6월10일 영국 공사의 주장아래 각 국의 군대를 더 동원한다고 발표하고, 영국 공사는 톈진(天津)에 있던 영국군 해군 제독 시모어(Edward H. Seymour, 1840~1929)를 지휘관으로 8개국 연합군을 조직하여 2,129명이 기차로 톈진을 떠나 베이징으로 향하게 되었다.

 

 이에 청조에서는 즈리성(直隸省·직예성) 총독 유록(裕祿)에게 이를 저지하라고 지시하고, 원래 의화단을 진압하고 있던 녜시청(?士成)의 무위전군(武衛前軍)으로 하여금 연합군의 베이징 진입을 저지하기 위해 이동시켰다. 이는 서태후의 태도가 크게 바뀌어 전쟁 준비로 들어간 것이다. 따라서 시모어 제독이 지휘한 연합군은 5일 동안에 톈진에서 베이징까지 절반도 나아가지 못하고 오히려 후퇴해야 했다.

 

 그런데 6월17일 열강의 연합군이 톈진의 다구(大沽) 포대를 함락하였다는 소식이 베이징에 전해졌다. 이에 긴급 어전회의를 소집하고 이 자리에서 서태후는 서양 열강이 제시한 4가지 요구 사항을 공포하였다. 그 내용은 황제를 위한 특별 주거 지역을 선정하고, 외국 대사들에게 각 성의 세금 징수권 및 군사 관할권을 부여한다는 것과 광서제의 일선 복귀 등을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정치권 반환'은 거북스러워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네 가지 요구 사항은 사실 단군왕 재의(端郡王載?, 1856~1922)에 의해 날조된 것이었는데, 여하튼 이 발표에 자극받은 서태후는 청나라는 열강의 어떠한 행동에라도 맞서 결사항전할 것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6월20일에 직예성 총독 유록이 톈진의 의화단이 3만 명 가까이 모여 교회를 불태우고 서양인을 죽이려 하는데 이를 평정하기가 어렵다고 하면서 이들을 달래자고 건의하였다.

 

 이 사실은 서태후를 크게 고무시켰고 의화단, 즉 민심을 이용하여 열강을 막아내 청조를 유지해 나갈 수 있다고 판단, 수구파의 의견을 받아들여 열강에 대한 선전포고를 결심하게 되었다.

 

 총리아문(總理衙門, 오늘날의 외무부)은 베이징 주재 11개국 공사에게 안전을 위하여 24시간 이내에 톈진으로 철수할 것을 요구하였다. 대부분의 공사들은 조속히 베이징을 떠나자는 데 의견을 모았으나 도이칠란트 공사 클레멘스 폰 케텔러(Clemens von Kettteler) 남작이 총리아문에 항의하러 가던 도중 숭문문(崇文門) 앞 큰길에서 의화단에 의해 피살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나 서태후는 6월21일 각국에 선전포고하고 30여 년 이래 서양 열강이 저지른 좋지 않았던 일들을 통박하면서 의화단에게 베이징 각국 공사관과 톈진 조계(租界)를 공격하도록 명하였다.

 

 단군왕의 진언에 따라 장친왕 재훈(莊親王載勛, 1853~1901)이 보군 총사령이 되고 보수파의 영수인 대학사 강의(剛毅)가 20만 명의 의화단을 통솔하여 동푸샹(董福祥) 휘하의 정부군인 무위후군(武衛後軍), 즉 감군(甘軍)과 서태후의 조카인 룽루(榮祿)의 만주 팔기병(八旗兵)으로 구성된 무위중군(武衛中軍)을 합류시켜 마침내 외국인에 대해 무자비한 테러를 가하였다.

 

 북경의 거리는 바야흐로 폭동과 테러가 난무하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양인(洋人) 1명을 죽인 자는 은 50냥, 양녀(洋女)를 죽인 자는 은 40냥, 양아(洋兒)를 죽인 자는 30냥'의 현상금을 거는 등 청나라 조정은 이성을 잃고 있었다.

 

 선전포고가 내려지자 의화단은 각국 공사관이 집결되어 있는 동교민항(東交民巷)을 포위하고 외국인 지구 공사관과 베이징 천주교회에 집중적인 공격을 퍼부었다. 동교민항은 지금의 톈안먼(天安門) 맞은편 동쪽에 있었다. 이곳에는 당시 외국인 공사관 소속 외국인 473명, 군인 451명, 중국인 기독교도 3천여 명이 살고 있었는데 2만여 명의 의화단과 청조에 저항하여 전쟁이 벌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곳에서의 포위 공격은 6월21일부터 영국·프랑스·미국·러시아·이탈리아·일본·독일·오스트리아 등 8개국 연합군이 북경을 점령한 8월14일까지 장장 55일간이나 계속되었다. 이 사건을 배경으로 만든 영화가 바로 니콜라스 레이 감독의 '북경의 55일(55 Days at Peking·1963)'이다.

 

 이제 영화 얘기로 돌아가자. 이 영화의 로케이션은 중국 베이징이 아닌 스페인 마드리드 근교에 세트장을 만들어 촬영했다. 특히 베이징의 천단(天壇), 자금성(紫禁城)을 비롯하여 중국어로 '멸양부청(滅洋扶淸)' '소살(燒殺)' '양귀(洋鬼)' 등이라고 쓴 깃발이나 벽보 등은 고증에 비교적 충실하여 실감나게 만들었다. 비록 글씨체는 엉성하지만….

 

 그런데 서태후를 포함한 청나라측 인물이나 의화단을 연기하는 배우들은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 모두 백인들이다.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영록 장군 역의 레오 겐을 제외하고는 그런대로 별 위화감 없이 무난한 편이다.

(다음 호에 계속)

 

▲ 단왕의 제의로 의화단의 무술을 선보인다. 왼쪽부터 아서 경의 부인(엘리자베스 셀러스), 아서 로버트슨 경(데이비드 니븐), 단왕(로버트 헬프만 경), 매트 루이스 소령(찰턴 헤스턴), 나타샤 이바노프 남작부인(에바 가드너).


▲ 의화단원이 도창불입(刀槍不入)의 시범을 보이기 위해 루이스 소령에게 칼을 건네고 있다. 이 배우가 '취권(醉拳)'으로 잘 알려진 위엔슈톈(袁小田)이다.
 

▲ 독일 공사 살해를 항의하러 간 아서 경에게 서태후가 "중국은 유순한 암소인데 열강들은 젖만 짜지 않고 고기까지 구하려 든다."고 말하자 그는 "중국이 소라면 경이적인 소죠. …서양에선 평화를 배우지만 중국의 미덕은 인내입니다"라고 말한다.


▲ 자희태후가 "인내하지 않는다면?"이라고 반박하자 아서 경은 "폭력과 조급함이 횡행한다면 수백만의 피와 고통이 있을 뿐."이라고 대답한다.

▲ 독일 공사를 살해한 의화단원들을 참수하는 장면. 이는 서태후가 측근고문인 단왕을 비호하기 위한 거짓 쇼이다.

▲ 매트 루이스 소령(찰턴 헤스턴)이 독일 공사 살해 명령자가 단왕이라고 일러바치자 서태후는 오히려 연합군은 24시간 내에 철수하라고 명한다.


▲ 서태후를 알현한 뒤 아서 경(데이비드 니븐)과 매트 루이스 소령(찰턴 헤스턴)이 경호 없이 걸어서 공관으로 가는데 의화단원들이 둘러싸서 위협한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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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13
중국 의화단 전쟁 배경 영화-'북경의 55일'(55 Days at Peking)(1)

 

 인류의 역사는 전쟁으로 점철돼 왔다. 전쟁은 국경을 사이에 두고 일어나기도 하지만 때론 내부에서 일어나기도 한다. 국경이란 지도상에 표시된 선에 지나지 않으며 실제로는 인간의 탐욕이 만든 보이지 않는 개념에 불과한 것이다.

 

 이번에 소개하는 '북경의 55일(55 Days at Peking)'은 국경은커녕 중국 수도인 페킹 내 조그만 외국인 거류민단을 둘러싸고 일어난 '의화단 전쟁'을 다룬 작품이다.

 

 여기서 '페킹'은 현재 베이징(Beijing, 北京)의 옛 표기이다. 외세 침략으로 19세기부터 북경은 영어로 Peking, 광동은 Canton이라 불렀던 탓에 지금도 예컨대 유명한 베이징카오야(北京?鴨), 즉 북경식 구운오리 요리를 Peking Duck, 광동식 요리를 Cantonese Cuisine이라고 부르고 있다.

 

 1963년 얼라이드 아티스츠사 배급. 감독 니콜라스 레이. 출연 찰턴 헤스턴, 에바 가드너, 데이비드 니븐, 플로라 롭슨, 로버트 헬프만 경 등 당대의 유명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는 호화 캐스팅. 러닝타임 150분.

 

 이 작품은 약 3분여의 서곡(overture)과 약 2분 정도의 중간 휴게시간(intermission)이 있다. 오픈 크레디트에 중국계 미국인 동 킹맨(Dong Kingman, 1911~2000)이 그린 따뜻한 색감의 중국 관련 수채화 그림들이 배경으로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 엔딩 크레디트 후에 뜬금없이 다시 수채화 배경에 주제음악(The Peking Theme) "So Little Time"(www.youtube.com/watch?v=j51HN3sRBr8)이 앤디 윌리암스의 노래로 나오는 게 퍽 인상적이다. 작곡은 디미트리 티옴킨, 작사가는 'Secret Love(1953)' '모정(1955)' '우정 어린 설복(1956)'의 주제곡 '내가 사랑하는 그대' 'April Love(1957)' '엘시드(1961)'의 주제곡 '사랑의 테마' '샌드파이퍼(1965)'의 주제가 '그대 미소에 깃든 그림자' 등으로 유명한 폴 프란시스 웹스터(Paul Francis Webster, 1907~1984).

 

 이 작품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의화단(義和團) 사건' 발발 전·후에 대한 역사적 상황 및 배경을 살펴보고 가는 게 좋겠다. 그러면 스토리를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두 번의 아편전쟁과 1894년 청일전쟁의 패배는 중국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중국도 개혁을 하고 일본도 개혁을 했는데 결과적으로 중국이 완패한 것은 바로 체제부터 개혁하지 않은 까닭이다. 중체서용(中體西用)을 표방하고 중국의 시스템은 그대로 둔 채 서양 학문·기술만 받아들이려 했으니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중국도 일본과 같이 체제부터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체제 개혁, 즉 변법(變法)만이 중국이 살길이다."

 

 청나라 때 '무술변법'으로 유명한 캉유웨이(康有爲·강유위, 1858~1927)는 3년여 동안 이와 같은 상소를 일곱 차례나 올려 마침내 광서제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여기서 광서제와 서태후의 관계를 좀 살펴보아야 하는데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얘기가 펼쳐진다.

 

 아편 전쟁 패배의 굴욕을 겪은 청나라 제9대 황제 함풍제(咸豊帝)는 1856년 제2차 아편 전쟁으로 베이징이 점령 당하자 러허(熱河)로 몽진 갔다가 그곳에서 사망하고, 다섯 살 된 서태후의 아들 동치제(同治帝)가 즉위하니 함풍제의 측실이었던 서태후(西太后, 1835~1908)가 실질적인 섭정을 하게 된다. 그러나 동치제가 1874년 18세의 나이에 천연두로 세상을 떠나자 서태후는 네 살짜리 조카를 황제의 자리에 앉히니 이가 곧 청나라 11대 황제 광서제(光緖帝, 1871~1908)이다.

 

 광서제가 성년이 된 1889년 이후 서태후는 마지못해 친정(親政)을 허용했지만 실질적인 모든 권력을 쥐고 막후에서 조종해 황제와 대립각을 세웠다. 1895년 청일 전쟁(淸日戰爭)에서 패배한 후 들끓는 여론에 부딪혀 이홍장(李鴻章)의 실각과 함께 서태후도 이화원에 은거하고 있었지만 한시도 경계의 눈을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서태후는 정치적 실권을 잃으면 자신의 지위가 위태롭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1897년 황제 앞에 나아간 캉유웨이는 퇴폐한 정치 부패의 개혁을 강조했고, 개혁의 기본 방침으로 개혁 이념 통일(코드 안 맞는 관리 축출), 소통(다양한 의견 수렴, 인재 발탁), 시스템 개혁(제도국 설치―인재 운영) 등 세 가지를 제시했다. 이 방침에 따라 광서제는 무술년(1898) 6월 '국시(國是)를 정하는 조서'를 발표해 변법 추진을 공포하니 이를 '무술변법(戊戌變法)'이라 한다.

 

 그러나 보수적 관리들은 복지부동이고 새 법을 무시하여 이루어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오직 경사대학당(京師大學堂), 즉 현 베이징 대학(北京大學) 창립이 유일한 성과였다. 그래서 무술변법은 '서류 혁명(Paper Revolution)'으로 끝나고 이에 불만을 품은 보수 세력에 반격의 기회만 준 결과가 되었다. 보수 세력의 중심에는 역시 서태후가 버티고 있었다.

 

 캉유웨이의 유신은 103일(1898. 6. 11~9. 21) 만에 막을 내렸기 때문에 '백일유신(百日維新)' 또는 '무술정변(戊戌政變)'이라고도 부른다.

 

 민중의 기반이 없이 추진한 변법운동은, '3일 천하'로 끝난 김옥균(金玉均), 박영효(朴泳孝) 등의 갑신정변(甲申政變·1884)과 마찬가지로 변법 운동자 스스로가 민중 운동이 아닌 위로부터의 개혁을 시도했으니, 완강한 보수 세력의 벽에 부딪혀 처음부터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혁명이었으며 중국이 스스로 개혁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신해혁명 이전 19세기 중국의 마지막 개혁의 실패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무술변법이 실패로 돌아간 다음해인 1899년 의화단이 중국인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거주하는 산둥(山東)성 평원현(平原縣)을 습격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것이 의화단 사건의 도화선으로 이를 계기로 하여 의화단의 폭동은 확대일로를 치달아 서양인에 대해 무자비한 테러를 가하는 외세 배격, 즉 배외(排外) 운동으로 확산되어 서양 연합 세력과 전면전을 벌였으니 이것은 단순한 '난'이 아니라 곧 '의화단 전쟁'이었다.

 

 청나라가 패전을 거듭할 때마다 치욕적인 조약을 체결하고 그에 따른 배상금의 지불 문제로 중국 민중들의 생활이 위협받게 되자, 그들은 교회가 서구 열강의 약탈적인 무역과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첨병 구실을 하는 '침략자의 종교'로 생각하여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청나라에서는 1858년 제2차 아편전쟁 후 맺은 톈진조약(天津條約)에 의해 청국 국내에서의 그리스도교 포교를 인정하기는 하였으나 민중들은 사교(邪敎)로 보는 경향이 많았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조상의 제사를 금하고, 부부유별(夫婦有別)의 전통 사회에서 남녀가 한자리에 모여 예배를 보는 것 등이 이해가 부족한 일반 민중들의 눈에 크게 거슬렸기 때문이었다. (다음 호에 계속)

 

▲ 하워드 터프닝이 제작한 '북경의 55일(1963)' 영화포스터

 

▲ 의화단의 처단을 명했던 영록 장군과 이를 저지한 단왕 사이에 다툼이 일자 '이 조용한 아침에 꾀꼬리 소리는 안 들리고 까마귀 소리만 들린다'며 단왕 편을 들어 의화단을 쏜 대령을 참수하라고 명하는 서태후(플로라 롭슨).

 

▲ 매트 루이스 소령(찰턴 헤스턴)이 인솔하는 미국군대가 베이징 시내를 행진하여 외국인 거류지역의 연합군에 합류한다.

 

▲ 호텔에 이미 도착한 연합군 장교들이 방금 당도한 매트 루이스 미 해병 소령을 환영하고 있다.

 

▲ 북경 사수 결정을 하기 전 고심하던 영국 공사 아서 로버트슨 경(데이비드 니븐)에게 부인 사라(엘리자베스 셀러스)가 나폴레옹이 "중국은 재워야 한다. 깨우면 세계가 떨게 된다"고 한 말을 상기시키며 조언한다.

 

▲ 매트 루이스 소령(찰턴 헤스턴)이 나탈리 이바노프 남작부인(에바 가드너)을 대동하고 무도회에 나타나자 모든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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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06
"손영호 칼럼 444 회 연재에 부쳐"

 

   2021년 신축년(辛丑年) 소띠 해를 보내고 호랑이해인 임인년(壬寅年)을 맞이했습니다.  코로나19 병란으로 집콕하면서 답답갑갑한 마음에 세월이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단주(檀柱) 손영호 인사 올립니다. 2012년 9월7일 "구스타보 두다멜의 연주회를 보고"를 시작으로 <한인뉴스 부동산캐나다>(발행인 조준상, 사장 이용우) 주간신문과 인연을 맺은 후, 2021년 12월24일 현재까지 햇수로 10년 동안 총 444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지난 2015년 12월까지 157회를 맞았을 때와 300회를 맞았던 2018년 12월에 정리도 할 겸 인사를 올린 후, 또 144회를 연재하여 누계횟수 444회에 이르게 돼 다시 인사를 드리고자 합니다. 


   돌이켜 보면, 어떤 한 분야에 치우치기보다는 여행, 음악, 영화 등 다방면에 걸친 제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가지 얘기들을 두서없이 하기 시작하다가 음악과 영화의 만남을 통해 영화 칼럼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필자가 본 영화 중에서 선별해 지면에 올렸는데, 횟수를 늘리더라도 글과 사진의 입체감 있는 내용을 싣는 게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여 그렇게 해오고 있습니다만, 어떨 때는 여러분에게 상당한 인내심을 요구하기도 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첫 회부터 300회까지 영화는 모두 96편을 소개했는데 이탈리아, 프랑스, 스웨덴, 독일, 그리스, 멕시코, 미국 및 한국 영화 등 다양한 카테고리를 섭렵했던 것 같습니다. 


   2017년 '청춘예찬 시리즈'(6편)에 이어 2018년 '유명음악가 시리즈'(10편)를 연재했는데, 2019년 초에 '사운드 오브 뮤직'과 당시 개봉된 인기 절정의 '보헤미안 랩소디'를 소개하고, '천국의 열쇠'에 이어 '쉘부르의 우산' 및 '초원의 빛' 그리고 마리아 칼라스를 새로 조명한 다큐멘터리 'Maria by Callas'를 올렸더랬습니다.


   그 밖에 우리 가곡 '동심초'에 얽힌 이야기 그리고 필자 부부의 '자전거 국토완주 그랜드 슬램' 달성에 관한 얘기도 곁들였습니다. 그동안 미뤄두었던 소재들을 또 하나의 긴 시리즈인 '서부영화 시리즈'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섭렵해 두려는 의도였지요.


   사실 '서부영화 시리즈'는 2016년 2월부터 6월까지 9편의 전설적인 영화를 소개했었는데 이즈음 부동산캐나다의 호스트 컴퓨터 다운으로 위에서 언급한 200여 회에 상당하는 옛 칼럼이 날아가 버려 새로 수정 보완하고 첨가하여 13편을 실었습니다. 그 중간에 연말이 되어 크리스마스 관련 영화인 불후의 명작 '멋진 인생'을 연재했습니다.


   다음은 '전쟁영화 시리즈'로 옮겨갔습니다. 전쟁 자체가 광범위한 개념이라 이를 카테고리별로 나눠 먼저 '한국전쟁 배경영화' 시리즈로 '원한의 도곡리 다리' '5인의 해병' '돌아오지 않는 해병' '모정(慕情)' '국제시장' 그리고 '추격기(The Hunters)' 등 6편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당시 샘 멘데스 감독의 '1917' 영화에 대한 평론으로 '영화 1917의 롤모델은 캐나다인 해리 브라운'을 실었습니다.


   다음은 '베트남전쟁 배경영화' 시리즈로 '디어헌터와 카바티나' '지옥의 묵시록과 발퀴레의 기행' '플래툰과 현을 위한 아다지오' 등 음악을 주제로 한 세 편의 대표작을 연재했습니다. 


   이어서 '제1차 세계대전 배경영화' 시리즈로 옮겨갔습니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를 시작으로 '무기여 잘 있거라' '메리 크리스마스' '애수(哀愁)' '거대한 환상' '마음의 행로(行路)' 그리고 대서사극 '닥터 지바고'와 '여로(旅路)' '영광의 길'에 이어서 '가을의 전설' 그리고 보너스 작품으로 대서사극인 '아라비아의 로렌스'와 '워 호스' 등 모두 12편을 올렸습니다.


   이어서 스페인 내전을 다룬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와 스페인 레콩키스타 배경영화 '엘시드'를 소개했습니다. 


   정리를 하자면 첫 회부터 444회까지 비영화 칼럼을 제외하고 새로이 수정·보완한 작품(20편)까지 포함하면 총 140편의 영화를 소개한 셈이 되는군요. 


   올해는 국지적인 전쟁영화, 예컨대 의화단(義和團) 전쟁을 다룬 '북경의 55일'을 비롯하여 아일랜드 독립전쟁 배경영화인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과 알제리 전쟁 및 미국 남북전쟁 등을 시리즈로 살펴보고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제2차 세계대전 배경영화 시리즈로 넘어가려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2차 대전 관련 작품이 너무 광범위해서 또 소그룹으로 잘게 나누어 엄선하는 과정을 거쳐야 할 것 같습니다. 예컨대 직접 전쟁 관련된 영화도 있고, 전쟁 전·후의 뒷이야기 그리고 홀로코스트 관련 영화 등 무지 많습니다. 과연 제 능력이 따라갈 수 있을지 벌써 걱정이 되는군요.


   새해에도 계속 많은 관심과 성원으로 보듬어 주시기를 부탁 드리고, 독자 여러분 및 <한인뉴스 부동산캐나다> 임직원들께 지면으로나마 감사의 말씀을 올리며 항상 강건하시고 가정과 하시는 사업에 평강과 번영과 만복이 깃드시길 기원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22년 1월 7일
단주(檀柱)  손영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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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23
스페인의 레콩키스타 배경 영화-‘엘 시드(El Cid)’(4.끝)

 

(지난 호에 이어)

 다음날 아침, 로드리고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크게 사기가 올라 있던 무어인들에게 성문이 열리면서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은 틀림없이 죽었으리라 생각한 바로 엘 시드였다. 양 옆에는 알폰소 국왕과 사라고사 왕 알 무타미드 사령관이 호위하고 있다.

 

 철제 부목을 댄 온몸을 흰색 기사복으로 성장을 하고, 오른손에 휘장을 높이 치켜들고, 눈을 부릅뜬 채 애마 바비에카를 탄 엘 시드의 출현은 일순간에 무어인 군대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그들은 혼비백산 도망친다. 이리하여 엘 시드는 역사의 문에서 전설의 세계로 말을 몰았다! 결국 벤 유수프는 그의 말에서 떨어져 바비에카의 발굽에 밟혀 죽는다. [註: 벤 유수프는 1106년에 사망했는데 극적인 효과를 주기 위해 사실과 다르게 각색했다.]

 

 알폰소 국왕이 그리스도교도와 무어족들을 향해 "기사 중 가장 고귀한 기사로 생애를 마친 용장의 영혼을 받으소서"라며 애도의 기도를 올리고, 성 안에서 히메나가 자녀들과 함께 이를 지켜보는 가운데, 무어족이 격멸된 해안가를 엘 시드의 시신을 태운 바비에카가 정처없이 달려가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註: 로드리고 디아스의 애마(愛馬) 바비에카(Babieca)에는 다음과 같은 얘기가 전해진다. 엘시드가 어렸을 때 종마장(種馬場)에서 일하던 그의 삼촌이 아무 말이나 선택하라고 했는데 하필이면 가장 허약하고 쓸모없는 말이라 '바비에카' 즉 '바보'라고 이름 붙인 이 말을 골랐다고 한다. 바비에카는 맹렬한 백마인 반면 알렉산더 대왕의 애마 뷰세팔루스(Bucephalus)는 거대한 흑마로 서로 종종 비견된다. 바비에카는 엘시드가 사망하고 2년 뒤 나이 40살에, 뷰세팔루스는 30살에 죽었는데 둘다 평균수명을 넘어 전마(戰馬)로서는 아주 오래 살았다.]

 

 로드리고 디아스는 육상전과 해상전이라는 차이가 있지만 우리의 이순신 장군과 여러 면에서 흡사한 점이 많다. 이를테면 로드리고를 칭송하는 '엘 시드'라는 이름과 이순신 장군을 '성웅(聖雄)'이라 높여 부르는 점이 같다. 또 영웅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않고 최후의 승리를 거둔다는 점은 빼닮았다. 원균의 패배로 인해 다시 이순신 장군을 복권시키는 것과 알폰소 국왕이 전투에 패하여 로드리고 장군을 불러올리는 상황도 비슷하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백성들의 두터운 신망을 받고 지위가 높아지면서 왕까지도 이를 시기하고 왕권에 도전할 것을 염려하여 추방령을 내리는 점도 비록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가 있다손 치더라도 마찬가지다.

 

 아무튼 엘 시드는 발렌시아 정복으로 왕과 동등한 위치를 구축함으로서 발렌시아의 왕이 될 수도 있었으나 왕관을 국왕에게 바쳤고, 왕의 이름으로 발렌시아를 죽음으로써 지켜냈다. 에스파냐의 국민적 영웅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현재 스페인 수도인 마드리드에서 약 210km 북쪽에 위치한 부르고스(Burgos)는 아를란손(Arlanzon) 강 유역의 해발고도 800m의 고원에 위치해 천연의 요새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부르고스 성당에는 엘 시드와 그의 아내 히메나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다. 잠깐 여기서 발렌시아에서 사망한 로드리고 디아스가 어떻게 부르고스까지 오게 됐는지 그 연유를 알기 위해 히메나에 대해 잠깐 살펴보는 게 좋겠다.

 

 도냐 히메나 디아스(Dona Jimena Diaz, 1046?~1116)는 1099년 7월10일 남편 사망 후 3년간 발렌시아의 통치자로 있었다. 그러나 1102년 알모라비데인들의 재공격으로 방어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알폰소 6세는 발렌시아를 포기하고 모스크 등을 초토화시킨 후 히메나와 그 딸들을 에스코트하여 카스티야로 철수한다. [註: 발렌시아는 1102년 5월5일 벤 유수프의 충직한 용장 마스달리(Mazdali Ibn Tilankan, ?~1115)에 의해 점령 당한 후 125년 동안 무슬림 국가로 남았다.]

 

 이때 히메나는 엘시드의 시신을 운구하여 카스티야의 산 페드로 데 카르데냐(San Pedro de Cardena) 수도원에 안장했다.

 

 그 후 장녀 크리스티나(또는 엘비라, 1075~?)는 귀족 가문과 결혼하여 그 아들이 나바라 왕국의 가르시아 라미레스 왕이 되었고, 차녀 마리아(또는 솔, 1080~1105)는 아라곤 왕자와 결혼했으나 성년이 되기 전에 사망하여, 바르셀로나 백작인 라몬 베렝겔 3세(1082~1131)와 재혼하여 딸 둘을 낳고 25세에 사망했다. 이때 결혼지참금으로 아버지 엘시드의 전설의 검 '티소나'를 주었다.

 

 1116년 히메나 디아스가 사망하여 남편 로드리고 디아스 옆에 묻혔다. 그러나 700여 년 후 나폴레옹 전쟁(1803~1815) 때 묘가 도굴 당하자 시신을 부르고스 성당으로 옮기고 엘시드의 애마 '바비에카'의 무덤만 카스티야에 남겨 두었다.

 

 또 엘 시드가 사용하던 두 자루의 칼이 박물관에 온전히 전시되어 있다. 하나는 부르고스 박물관에 보존돼 있는 '티소나(Tizona)'로 길이 93.5 cm, 무게 1.15 kg이다. 다른 하나는 마드리드 왕궁에 전시돼 있는 '콜라다(Colada)'로 길이 96.5 cm, 무게 1.72 kg인데 엘 시드의 기사 중 한 명에게 선물로 줬던 것이라고 한다. [註: 티소나는 11세기 초 무어족이 지배하던 코르도바에서 이른바 '다마스쿠스 스틸(알로이 스틸)'로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며, 1470년 이후 팔세스의 마키스 가문이 대대로 가보(家寶)로 보존하고 있었다. 1999년에 마키스 가문의 17대손이 팔겠다고 하여 스페인 문화부 주관으로 경매에 붙여 2007년에 부르고스 시가 160만 유로(약 200만 美달러)에 구입하여 전시하고 있다.]

 

 영화 '엘 시드'는 엑스트라 7천 명, 중세 시대의 의상 1만 벌, 선박 35척, 중세 전쟁무기 50여 가지 등 총제작비 620만 달러를 들인 대작이다. 그리고 스페인에 있는 4개의 수려한 고성(古城)에서 실제 전투 장면이 촬영되었는데, 특히 발렌시아 전투 장면(실제 페니스콜라 성)에서는 그 규모뿐만 아니라 수천 개의 화살이 하늘을 가득 메우며 날아가는 장대한 스펙터클이 미클로시 로자의 웅장한 음악과 어우러져 오래 기억될 만한 명장면을 선사하고 있다.

 

 영화 '엘 시드'의 주인공역을 맡은 찰턴 헤스턴(Charlton Heston, 1923~2008)은 진지해 보이는 고전적인 외모와 탄탄한 몸매 탓인지 '십계(十戒·1956)', '벤허(1959)'를 비롯한 헐리우드의 여러 서사 장르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다. 그리고 '북경의 55일(1963)' '혹성탈출(Planet of the Apes·1968)' 등 60여 년간 약 1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엘 시드'의 음악감독 미클로시 로자(Miklos Rozsa, 1907~1995)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백색의 공포(Spellbound·1945)', 조지 쿠커 감독의 '이중생활(1947)', 그리고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벤허(1959)' 등 3편의 영화에서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한 유명한 헝가리 출신 작곡가이다.

 

 그 밖에 '쿼바디스(1951)' '아이반호(1952)' '원탁의 기사(1953)' '보와니 분기점(1956)' '왕중왕(1961)' '소돔과 고모라(1963)' '그린 베레(1968)' 등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영화들의 음악을 담당하였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빡빡머리 때 보고 반세기가 지난 '엘 시드'는 여전히 재미있고 감흥을 주는 작품이다. (끝)

 

▲ 로드리고는 발렌시아를 포위하여 몇달 동안 굶주림에 지치게 한 후 투석기에 식량을 실어 성 안에 투척하여 내분을 촉발시킴으로서 승리한다.

 

▲ 발렌시아에 입성한 로드리고에게 왕관을 씌워주려고 하지만 그는 발렌시아가 국왕 알폰소 6세의 것임을 선포하고 사양한다.

 

▲ 엘 시드는 아내 히메나로부터 화살을 뽑지 말라는 동의를 얻어낸다. 남편의 비장한 죽음 앞에 의연한 모습을 보이는 히메나!

 

▲ 양 옆에 알폰소 국왕과 알 무타미드 사령관이 호위하는 가운데 죽은 엘 시드는 역사의 문에서 전설의 세계로 말을 몰았다!

 

▲ 무어족이 격멸된 발렌시아 해안가를 로드리고의 시신을 태운 바비에카가 정처없이 달려가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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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6
스페인의 레콩키스타 배경 영화-‘엘 시드’(El Cid)(3)

 

(지난 호에 이어)

 알폰소 6세 국왕의 즉위식이 스페인 부르고스에 있는 산타 가데아 성당에서 거행된다. 여기서 엘 시드는 홀로 충성 맹세를 유보하고, 왕으로 하여금 성서에 오른손을 얹고 '자신은 형(산초 2세)의 죽음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맹세를 하게 한다. 이것이 유명한 1072년 '산타 가데아 서약(Santa Gadea Oath)'이다. [註: 스페인 화가 마르코스 히랄데즈 데 아코스타(1830~1896)의 그림 "산타 가데아 서약(Jura de Santa Gadea·1864)"이 유명하다. 알폰소 6세는 갈리시아를 통치하던 동생 가르시아가 전쟁 중 피신했다가 돌아오자 그를 종신형으로 감옥에 보냄으로써, 이후 페르난도 대왕이 달성했던 스페인 통합 영토를 차지하여 부친이 자처하던 '전 스페인 황제(Emperor of all Spain)' 타이틀을 이루었고 본격적인 '레콩키스타'를 주도했던 인물이다.]
 

 알폰소가 자신은 참여하지 않았고 그의 누이가 책임이 있다며 서약하자 비로소 로드리고는 충성을 맹세하지만, 이 불경죄 때문에 그의 모든 재산과 권한을 몰수 당하고 단신으로 스페인 밖으로 추방된다.


 여태까지 그를 원망해온 히메나는 비로소 정의롭고 용감한 남편의 의지를 이해하고 다시 사랑에 불을 당겨 그를 따라 나선다. 이제 왕의 무장도 아니고, 부하도 군대도 없고 오직 자기 하나뿐이라며 낯선 땅에서 그녀는 여자로서의 행복감에 젖어 마냥 기뻐하는데….


 그 후 히메나는 쌍둥이 딸 엘비라와 솔을 낳는다. [註: 기록에 의하면 히메나는 1남2녀를 낳았다. 영화는 대체로 사실(史實)에 충실했지만 사건 전개에 연대의 오류도 있으며, 그 전후를 연결하기 위해 쌍둥이 딸로써 시기의 오류를 커버하는 것으로 각색했지 싶다. 영화 속에 나오지는 않지만 아들 디에고 로드리게스는 출생일은 불분명하나 알폰소 6세를 도와 1097년 콘수에그라(Consuegra) 전투에 참가했다가 전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군인의 기회는 국난의 시기이듯 1086년 북아프리카의 무어족인 벤 유수프가 대규모로 스페인을 침략하자 국왕 알폰소 6세는 원치 않았지만 추방했던 로드리고를 다시 불러들여 이들에 대한 방비를 하도록 명한다.


 그런데 로드리고는 왕의 군대와 합류하지 않고 자신을 따르는 무어족 족장들의 군대와 동맹을 이루어 발렌시아를 공격하겠다는 방책을 제시한다. 기독교도 왕국의 국왕 알폰소는 무례한 이교도를 끌어들이는 제안에 대노하여 다시 로드리고를 추방시키고 단독으로 무어족과의 대결에 나섰다가 대패하고 만다. 이것이 1086년 사그라하스(Sagrajas) 전투였다.


 또 추방 당한 엘 시드는 사라고사 왕 알 무타미드에게 의탁하고 후계자인 알 무스타인 2세를 충성스럽게 받들며 유랑의 고난 속에서도 군인으로서의 착실한 경력을 쌓아간다. 그는 1차 유랑시기인 1080~1086년 동안의 경험을 통해 스페인 이슬람국가들의 복잡한 정치와 이슬람 율법 및 관습을 터득했는데, 이는 나중에 그가 발렌시아를 정복하고 통치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 무렵 사그라하스 전투에서 대패한 알폰소 6세는 도와주지 않은 로드리고에 대한 앙갚음으로 히메나와 두 딸 엘비라와 솔을 투옥한다.


 게다가 백성들로부터 두터운 신망을 얻게 된 로드리고를 그리스도교도들은 그냥 놔두지 않는다. 무려 8세기에 걸쳐 이루어진 레콩키스타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 세력과의 종교전쟁인 것은 분명했지만 그것은 또한 같은 기독교 국가들 간의 전쟁이기도 했다. 예부터 집안싸움이 더 무섭고 가혹한 법이다!


 그들은 전후 스페인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해 서로 종(縱)과 횡(橫)으로 얽혀이전투구(泥田鬪狗) 했기 때문에 스페인의 역사는 안팎으로 복잡다단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레콩키스타 기간도 엄청 길어졌지 싶다.


 한편 알폰소가 무어족에게 패배한 후, 과거 히메나를 사이에 두고 로드리고와 반목하던 오르도녜스 백작은 엘 시드와 화해하고 스페인을 지키기 위해 로드리고의 가족을 지하 감옥에서 빼내 발렌시아의 로드리고 군대와 합류한다.


 그동안 발렌시아에 대한 지배력을 조금씩 강화하고 있던 엘 시드는 발렌시아 왕 알 카디르가 전에 로드리고에 했던 충성 맹세를 깨고 벤 유수프와 손을 잡은 사실을 알게 된다. '가재는 게편'이라고 했던가!


 드디어 엘 시드에게 운명의 순간이 찾아왔다. 발렌시아를 물샐틈없이 포위해 식량 공급을 차단한 지 몇 달. 이윽고 발렌시아 백성들이 굶주림에 허덕일 무렵, 투석기(投石機)에 식량을 실어 성내로 투척하자 빵 앞에 보이는 게 없다! 오히려 백성들이 이를 말리는 내부 병사들을 죽이고는 급기야 도망치는 발렌시아 왕 알 카디르를 붙잡아 성벽 아래로 추락사 시키고는 성문을 열어주는 일이 벌어진다.


 내분을 촉발하는 식량 투척 작전의 성공으로 마침내 엘 시드는 정복자로서 발렌시아에 입성한다. 그때가 1094년 6월17일이었다.


 알 무타미드 장군을 비롯한 로드리고의 군대 및 발렌시아 백성 등 모두가 로드리고에게 발렌시아 왕의 왕관을 씌워주려고 하지만 그는 사양하고, 발렌시아가 국왕 알폰소 6세의 것임을 선포한다.


 한편 발렌시아 입성 소식을 알리고 왕관을 전해주기 위해 알폰소 국왕에게 달려간 전령이자 로드리고의 사촌인 알바르 파녜스(?~1114)는 오히려 푸대접을 받고 응원군은 한 명도 보낼 수 없다는 최후의 통첩을 받는데….


 비로소 로드리고는 떨어져 있던 아내 및 자녀들과 발렌시아에서 몇년 동안 평화롭게 살았으나 그것도 잠시, 1099년 알모라비데 왕조의 대대적인 공격으로 이번에는 역으로 로드리고 군대의 발렌시아가 포위되고 만다. 그 와중에 정찰 나갔던 오르도녜스가 벤 유수프에 붙잡혀 모진 고문 끝에 그의 칼에 찔려 죽는다. 이 발렌시아의 방어는 스페인의 운명이 달린 중대한 전쟁이었다.


 영웅서사시의 완성은 영웅의 행복한 말로가 아니라 비극적인 최후로 대단원의 막을 내려야 더욱 더 장려해지는 법이다. 로드리고가 이끄는 군대는 무어인과의 마지막 일전을 겨루기 위해 성문을 열고 나가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다.


 그때 영웅의 가슴에 꽂히는 한 발의 화살! 전투는 로드리고의 부상으로 말미암아 중도에서 끝나게 되고, 성 밖에 진을 치고 있는 무어족의 군대는 로드리고의 죽음을 소리높여 외치며 자신들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는데….


 알 무타미드가 화살을 뽑아내야 살 수 있다고 말하지만 내일 이 중요한 작전을 자신이 직접 지휘해야 한다고 강변하는 로드리고. 결국 아내 히메나로부터 화살을 뽑지 말라는 동의를 얻어내고, 내일 아침 살아있든 죽든, 말에 태워 전장으로 보내도 좋다는 약속을 받는 엘 시드. 남편의 죽음 앞에 의연한 모습을 보이는 히메나!


 이때 도착하는 알폰소 국왕과 그의 군대. 알폰소 국왕은 로드리고의 전령이 돌아간 뒤에야 자신의 충성스러운 신하의 충정을 알게 되어 그를 구원하기 위해 직접 군대를 이끌고 도착한 것이다.


 알폰소 국왕이 로드리고 병상 곁에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빈다. 로드리고는 오히려 "자신을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데 훌륭하십니다"며 "이제야 스페인이 왕을 갖게 됐다."고 나이어린 국왕을 격려해 마지 않는다. 그리고 숨을 거둔다.

(다음 호에 계속)


▲ 로드리고는 왕명에 의해 히메나와 결혼식을 올리지만…. 맨 왼쪽이 페르난도 대왕(랄프 트루만), 맨 오른쪽이 산초 왕자(게리 레이몬드).
 

▲ 알폰소 6세(존 프레이저)가 엘 시드의 요청으로 이른바 '산타 가데아 서약'을 하고 있다. 그 왼쪽에 엘 시드가 증인으로 서 있다.


▲ 로드리고의 추방으로 이제 왕의 무장도 아니고 부하도 군대도 없고 오직 나 하나뿐이라며 마냥 행복해 하는 히메나(소피아 로렌).
 

▲ 로드리고(찰턴 헤스턴)는 알폰소 국왕에게 자신을 따르는 무어족 족장들의 군대와 동맹을 이루어 발렌시아를 공격하겠다는 방책을 제시하자 또 추방당하는데…
 

▲ 로드리고를 추방시키고 단독으로 무어족과의 대결, 즉 사그라하스 전투에 나섰다가 대패하는 알폰소 국왕(존 프레이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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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09
스페인의 레콩키스타 배경 영화-'엘 시드'(El Cid)(2)

 

(지난 호에 이어)

 이 전투에서 사라고사 왕 알 무타미드(더글라스 윌머)와 발렌시아 왕 알 카디르(프랭크 트링) 등 5명을 사로잡지만 같은 스페인인이라며 기독교, 회교도의 종교적 적대감을 버리고, 다시는 카스티야의 페르난도 1세 국왕의 영토를 침범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풀어주는 로드리고.

 

 이들은 관용을 베푼 로드리고를 '엘 시드'라고 칭송하며 동맹을 맹세한다. 그러니까 엘 시드는 적인 무어인들이 붙여준 칭호였다.

 

 그러나 이교도에게 관용을 베풀었다는 이유로 같은 그리스도교도에게 용서받지 못할 처지에 놓이게 된 로드리고는 가르시아 오르도녜스 백작(라프 발로네)과 현 수석무장이며 히메나의 아버지인 고마즈 백작(앤드류 크뤽생크)에 의해 반역죄로 몰린다.

 

 페르난도 국왕(랄프 트루만)의 전 수석무장이었으며 이제 나이가 든 로드리고의 아버지 돈 디에고(마이클 호던)는 국왕 앞에서 가문에 대한 모욕이라며 고마즈 백작을 위선자라고 호되게 비난한다. 이에 돈 디에고의 뺨을 때리는 고마즈 백작.

 

 로드리고는 은밀히 고마즈 백작의 집에 잠입하여, 늙고 자존심 강한 아버지로서 반역죄 혐의를 쓴 아들을 비호하기 위해 취한 행동이니 용서해 달라고 세 번이나 사정한다. 하지만 이를 거절하는 고마즈. 부득불 로드리고는 가문의 명예를 지키고 '승자가 곧 결백하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칼을 빼들고 결투를 벌인다.

 

 대결에서 힘겹게 이긴 로드리고는 명예를 지켰지만, 고마즈는 딸에게 '나의 아들'이라 부르며 복수를 부탁하고 눈을 감는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자신의 사랑을 부정하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는 처지에 놓이는 히메나. [註: 실제 도냐 히메나 디아스(Dona Jimena Diaz, 1046?~1116)는 스페인 북부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수도인 오비에도(Oviedo)의 디에고 페르난데스 백작의 딸이며 레온-카스티야 국왕 알폰소 6세와 사촌간이다. 로드리고 디아스가 그녀의 아름다움에 첫눈에 반해 결혼했다.]

 

 이때 아라곤 왕 라미로(제라르 티시)가 그의 수석무장 돈 마르틴(크리스토퍼 로데스)을 대동하고 페르난도 국왕을 찾아와 원래 자기들 땅인 칼라오라(Calahorra)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을 선포한다. 이에 페르난도가 같은 기독교 국가 간의 싸움은 무어인들만 이롭게 할 뿐이라고 말하자 대안으로 양국 수석무장의 결투로 결정하자고 제의하는 라미로.

 

 로드리고가 페르난도 왕의 수석무장 자격으로 출전한 칼라오라 기사전(騎士戰)에서 사랑이 증오로 바뀐 히메나는 그가 죽기를 바라지만 결과는 반대로 로드리고가 돈 마르틴을 죽이고 승리한다. 이에 칼라오라 땅을 지키게 된 페르난도 국왕은 로드리고의 결백을 선언하고 그를 수석무장으로 임명한다.

 

 한편 히메나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을 것을 맹세하고 오르도녜스 백작과 결탁하여 로드리고를 죽일 계략을 꾸미고, 백작이 로드리고를 죽이면 그와 결혼하겠다고 약속을 하는데….

 

 로드리고가 카스티야 왕의 봉신(封臣)인 무어족으로부터 공물을 받아오라는 첫 임무를 부여받고 평소 친하게 지내던 페르난도 국왕의 장남 산초 왕자(게리 레이몬드)를 데리고 떠나자 오르도녜스도 자원하여 함께 따라나선다.

 

 그런데 떠나기 전에 로드리고가 "살아돌아오면 히메나를 아내로 맞이하게 해달라"는 청원을 하자 페르난도 국왕이 이를 약속하는데, 이때 창에서 보고 있던 히메나와 오르도녜스 백작의 얼굴색이 싹 변한다.

 

 산길을 가는 도중 로드리고 일행은 정체불명의 매복병으로부터 기습을 당한다. 이때 옛날 자비를 베풀어 주었던 사라고사 왕 알 무타미드에 의해 로드리고와 산초 왕자는 극적으로 구출된다.

 

 오르도녜스의 배반을 알지만 그를 살려주는 로드리고를 산초 왕자가 죽이라고 명한다. "곧 왕이 될 몸이니 왕다운 생각을 배우시오. 사람의 목숨은 왕에게 달려있소"라고 훈계하며 "결혼식을 피로 물들일 생각은 없소."라고 내뱉는 로드리고!

 

 무사히 카스티야로 돌아온 로드리고는 왕명에 의해 히메나와 결혼식을 올린다. 첫날 밤 히메나는 '결혼한 이유는 아버지의 복수를 하기 위함이며 날 소유하는 건 당신의 권리겠지만 마음만은 영원히 가질 수 없다'고 선언하고, 다음 날 마음의 평화를 찾기 위해서라며 수도원에 숨어버린다.

 

 이윽고 페르난도 국왕이 죽자 산초 왕자가 왕이 된다. 아우인 알폰소 왕자(존 프레이저)는 형 산초에게 항의한다.

 

 "아버지는 왕국을 나누어 카스티야는 형에게, 아스투리아스와 레온은 저에게, 그리고 칼라오라는 누이 우라카 공주에게 주는 것으로 유언했습니다."

 

 그러나 산초는 장남상속권자이므로 왕국을 분할 할 수 없다며 이를 인정하지 않자, 알폰소는 품속의 단검을 빼 형을 죽이려고 하지만 제지 당하고 이로 인해 사모라(Zamora) 감옥에 수감된다.

 

 한편 페르난도 대왕의 모든 왕손(王孫)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로드리고는 알폰소를 사모라로 호송하는 30여 명의 병사들을 혼자서 처치하고 그를 누이가 있는 칼라오라로 피신시키는데….

 

 장면은 바뀌어 벤 유수프의 이슬람군대가 발렌시아에 도착한다. 명목상으로는 그의 함대 '아르마다'가 기항 할 해안을 보호하기 위해서였지만 사실은 그리스도 왕국인 스페인을 분열시켜 대군을 상륙, 정복하려는 속셈이 깔려있었다.

 

 한편 산초 2세가 칼라오라에 도착하여 알폰소를 내놓으라고 요구하지만 우라카 공주는 거절한다. 할 수 없어 내일 아침에 오겠다며 성 근처에서 야영을 하는 산초. [註: 산초 2세는 1072년에 '골페헤라 전투(Battle of Golpejera)'에서 알폰소를 격파하였고, 이때 알폰소는 톨레도(Toledo) 타이파국으로 피신했다. 이어서 여동생 엘비라가 통치하던 토로(Toro)는 쉽게 무너뜨렸지만, 누나인 우라카 공주가 통치한 사모라(Zamora)의 공격은 완강한 저항에 부딪쳤다. 영화속 사모라 성은 실제 쿠엔카에 있는 15세기 중세시대에 건립된 벨몬테 성(Castillo de Belmonte)에서 촬영했다.]

 

 이때 알폰소와 우라카가 로드리고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그는 어느 한 편을 거들 입장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의 왕손 보호 맹세는 모두를 평등하게 섬기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벤 유수프는 사모라의 귀족이며 페르난도 대왕의 신임이 두터웠던 용장 돌포스(파우스토 토치)를 매수(買收)하여 알폰소와 그의 누이 우라카 공주에게 접근하도록 만든 다음, 그들과 공모하여 은밀하게 산초 2세 왕을 암살할 계책을 꾸민다.

 

 밤에 탈영병으로 위장하여 사모라 성을 함락시킬 중요한 정보를 주겠다며 산초와 독대한 돌포스는 그를 유인하여 사모라 성 비밀통로로 안내한다. 무장해제 상태인 돌포스는 잽싸게 산초의 칼을 빼 그의 등을 찔러 암살한다. 그리고 도망치기 위해 성문을 열라고 소리를 지르는데….

 

 이때 성 위에서 계속 동정을 살피던 로드리고가 눈치 채고 성문을 열어주면서 그를 찔러 죽인다. [註: 벨리도 돌포스(Bellido Dolfos, 또는 Vellido Adolfo로도 알려져 있다)가 도망치려던 사모라의 성문은 오늘날 '반역자의 문(Portillo del Traidor)'이라 불린다. 산초 2세는 오냐(Ona)의 산 살바도르 수도원에 묻혔다.]

(다음 호에 계속)

 

▲ 세 번이나 사정하지만 이를 거절하는 고마즈 백작(앤드류 크뤽생크)에게 가문의 명예를 지키고 '승자가 곧 결백하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칼을 빼드는 로드리고(찰턴 헤스턴).


▲ 칼라오라 땅을 놓고 기사전으로 승부를 가리기 위해 페르난도 국왕의 수석무장 자격으로 출전한 로드리고(찰턴 헤스턴·왼쪽)는 적인 아라곤 수석무장 돈 마르틴(크리스토퍼 로데스)과 대결한다.


▲ 칼라오라 기사전을 참관하고 있는 (오른쪽부터) 우라카 공주(쥬네비브 파제), 히메나(소피아 로렌), 오르도녜즈 백작(라프 발로네). 아이러니하게도 우라카 공주는 로드리고를, 히메나는 로드리고의 적인 아라곤의 돈 마르틴을 응원하는데…

 


▲ 상복을 입고 사랑이 증오로 변한 히메나(소피아 로렌)는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오르도녜즈 백작과 공모하는데…


▲ 산길을 가는 도중 정체불명의 매복병으로부터 기습을 당했으나 사라고사 왕 알 무타미드(더글라스 윌머)에 의해 극적으로 구출되는 로드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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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02
스페인의 레콩키스타 배경 영화-‘엘 시드’(El Cid)(1)

 

 어니스트 헤밍웨이 원작의 1943년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1937년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었다. 이왕 스페인 얘기가 나왔으니 이번에는 11세기로 거슬러 올라가 스페인의 민족 영웅인 로드리고 디아스의 생애를 그린 대서사극 '엘 시드(El Cid)'를 소개한다.

 

 감독은 앤서니 만(Anthony Mann, 1906~1967)으로 '로마제국의 멸망(1964)'과 더불어 2편의 역사 대서사극을 만들었다. 1961년 얼라이드 아티스츠사 배급. 출연 소피아 로렌, 찰턴 헤스턴, 라프 발로네, 헤르베르트 롬, 더글라스 윌머, 마이클 호던 등. 러닝타임 184분(중간 휴식시간 포함 195분)의 70mm 대작.

 

 그런데 이 작품은 필자에게는 상당히 추억에 남는 영화이다. 당시는 고교 입학시험 제도가 있을 때라 아버지와 함께 부산 명문 고등학교에 합격자 발표를 보러 갔다. 그 때는 가나다 순의 이름 또는 수험번호 순서가 아닌 성적 순으로 합격자 발표를 했는데 자기 이름(한자)을 찾으려면 꽤 인내심이 필요했다.

 

 한데 금방 앞쪽에서 내 이름을 찾았다. 그러니까 매우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음을 알고 아버님은 아주 기분이 좋으셨나 보다. 기뻐하시면서 내가 좋아하는 '이나리즈시'를 곱빼기로 사주시고는 내친 김에 문화극장에 데리고 가서 막 개봉한 이 영화를 함께 관람 했었다. [註: 이나리즈시(?荷?司, いなりずし)는 유부초밥을 말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쌀밥 위에 생선을 얹어주는 스시(すし)는 니기리즈시(握りずし, 쥠초밥)라고 한다.]

 

 말하자면 '합격 축하 선물'이었던 셈이다. '빡빡머리' 중학생 신분으로…. 그런데 '엘 시드'는 실존 인물인 만큼 그 역사적 배경을 모르던 까까머리 적에 이 영화를 왜 그리도 재미있게 봤던지….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지만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여 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되었고, 또한 어렸을 때부터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부친의 영향이 컸음을 밝힌다. 따라서 이 글은 작고하신 아버님께 바치는 글이기도 하다.

 

 그런데 종전의 35mm 스탠더드 화면에 익숙해 있던 당시, 솔직히 영화의 내용에 앞서 70mm 대형 화면과 그 음향효과에 압도되었던 기억이 있다.

 

 복합상영관이 일반화되어 버린 오늘날에는 구시대의 유물처럼 되어 버렸지만, 당시 TV의 등장 이후 관객을 안방에서 영화관으로 끌어내는 방법 중 하나가 이와 같은 70mm 와이드 스크린을 활용한 스펙터클이었고, 이런 와이드 스크린에 가장 잘 어울리는 영화는 역시 대형 서사극이었다.

 

 그러나 당시 70mm 상영관이 준비되지 않아 제작일로부터 약 5년이 지난 66년에서야 이 영화가 한국에 수입, 개봉되었지 싶다.

 

 서론이 꽤 길어졌다. 아무튼 영화 '엘 시드'는 11세기 회교도의 침공으로 이베리아 반도 남부 지역에서 산악지역인 북부로 밀려난 그리스도 왕국인 레온―카스티야의 귀족기사, 장군 및 외교관으로 용맹을 떨친 로드리고 디아스 데 비바르(Rodrigo Diaz de Vivar, 1043~1099)의 생애를 그린 작품이다.

 

 1043년 스페인 부르고스 인근 비바르에서 태어나 1099년 7월10일, 그가 탈환했던 발렌시아에서 56세로 사망했다. 걸출한 야전 지휘관으로 회교도들인 무어인들을 상대로 스페인 영토를 재탈환하는 여러 차례의 전투에서 빛나는 승리를 거두며 'El Cid Campeador'라고도 불렸는데 캄페아도르는 '투사(鬪士)·승리자'라는 뜻이다. 그의 이름처럼 되어버린 '엘 시드'는 본래 아랍어로 'Al Sidi', 즉 '경(卿)·영주(領主)·주군(主君)'을 의미한다고 한다.

 

 엘 시드는 적어도 일곱 번의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전쟁의 승리를 모두 국왕과 그리스도교도로서의 믿음의 공으로 돌린 품위있고 신의가 있는 충직한 기사였다. 그러나 그 승전(勝戰)은 그가 '엘 시드'였기 때문이 아니고, 훌륭한 기사요 능력있고 명석한 야전사령관이었기 때문이라고 보겠다.

 

 다시 말해 그는 왕 또는 종교적 믿음을 위해 싸운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을 위해 싸웠고, 그 결과 '인간 로드리고'는 '엘 시드'의 전설을 낳게 되고, 스페인의 첫 번째 국민적 영웅이 된 것으로 해석하고 싶다.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역사적 배경은 '레콩키스타(Reconquista)'라는 사건이다. 레콩키스타란 711년부터 1492년까지 무려 780여 년 동안 스페인의 전신(前身)인 이베리아 반도 북부의 카스티야와 아라곤 등 로마 가톨릭 왕국들이 반도 중남부의 이슬람 국가를 축출하고 국토를 회복하는 일련의 종교전쟁 과정을 말한다.

 

 그 중에서 11세기에 한정된 얘기이지만, 스페인의 정체성 ― 따라서 라틴 아메리카의 정체성을 이루게 될 미래의 사건들에도 영향을 주는 ― 을 이루는 결정적인 사건이다보니 영화는 3시간도 모자라 숨가쁘게 다음 시퀀스로 넘어가 버리고 만다.

 

 영화는 이렇게 시작한다. 북 아프리카 무라비트 왕조의 카디(이슬람교 최고재판관)인 벤 유수프(헤르베르트 롬)가 안달루시아 족장들을 모두 집결시켜놓고 연설을 한다. 이교도(그리스도교)를 서로 싸우게 만들어 피폐해질 때 우리가 처들어간다는 계책을 내놓고, 유일신 알라의 제국은 알라 외에 신은 없다며 모두 죽이고 불태워버리라며 먼저 스페인, 다음은 유럽 그리고 세계를 지배해야 한다고 스페인과의 일전을 독려하는 벤 유수프. [註: 무라비트(Murabit) 왕조는 스페인어로는 알모라비데(Almoravides) 왕조라고 불리며, 1040년 발흥하여 1147년 멸망한 북아프리카의 베르베르인 왕조로 모로코 마라케쉬(Marrakesh, Morocco)에 근거지를 두었다. 1061년부터 제5대 수장이었던 유수프 벤 타슈핀(Yusuf ibn Tashfin, ?~1106)이 지배하던 때가 최전성기였는데, 그는 1086년 이베리아 반도 알 안달루스(Al Andalus: 이베리아 반도 북부의 극소수 가톨릭왕국을 제외한 전 이슬람 왕국의 통칭)의 타이파들(taifas: 각 이슬람 왕국과 그 군주들을 지칭)이 북부 그리스도교 왕국인 레온(Leon)과 카스티야(Castilla)의 침탈로부터 방어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이베리아 반도로 건너왔다. 벤 유수프는 1090년 그라나다에 이어, 차례로 세비야·알메리아(1091), 알리칸테(1092), 바다호스(1094) 등을 정복해 나갔다. 그러나 이 영화의 배경이 된 1094년 엘 시드가 발렌시아를 점령하면서 파죽지세는 한동안 주춤하게 되었다.]

 이때 주인공 로드리고 디아스(찰턴 헤스턴)는 그의 미래의 아내가 될 도냐 히메나(소피아 로렌)를 만나러 가는 도중에 소환되어 무어족 군대와의 일전에 참가하게 된다. (다음 호에 계속)

 


▲ '엘 시드(El Cid·1961)' 영화 포스터

 

▲ 무라비트 왕조의 수장 벤 유수프(헤르베르트 롬)는 안달루시아 족장들에게 스페인과의 일전을 독려한다.

 

▲ 로드리고 디아스(찰턴 헤스턴)의 아버지 돈 디에고(마이클 호던)는 무어족 포로의 처리를 아들에게 맡기는데…

 

▲ 사라고사 왕 알 무타미드(더글라스 윌머·오른쪽)와 발렌시아 왕 알 카디르(프랭크 트링) 등 포로 5명을 다시는 카스티야의 영토를 침범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받고 풀어주는 로드리고.

 

▲ 로드리고가 오기를 기다리는 히메나(소피아 로렌)는 "사랑은 시간을 초월한다"면서도 너무 행복해서 오히려 불안한 듯 안절부절 못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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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5
스페인 내전 배경 영화-‘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지난 호에 이어)

 이때 로베르토와 함께 남겠다고 눈물로 울부짖으며 온몸으로 연기하는 잉그리드 버그만의 얼굴을 클로스업 한 이 마지막 장면은 마치 '카사블랑카(1942)'를 연상시키듯 보는 이의 가슴을 저미게 하는 명장면이다.

 

 끝장면이다. 필라르와 파블로에 의해 강압적으로 끌려가며 절규하는 마리아가 사라지자 로베르토는 미국을 위해서도 스페인을 위해서도 아니며 오로지 사랑하는 마리아와 내 몸과 다름없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여 적군을 향해 기관총을 난사한다. 총열에서 나오는 흰 연기가 화면을 가득 채운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로베르토 조던의 죽음으로, 마치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잃게 된 관객들을 위한 타종인 양 종이 울리며 막을 내린다.

 

 '누구를 위하여…'는 흥행에도 성공하고, 작품상을 포함한 9개 부문의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름으로써 작품성도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지만, 정작 원작자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1899~1961)는 이 영화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정치적 얘기를 배제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필라르가 파블로의 무용담을 들려주면서 잔인한 폭도로 변해버린 공화정부파 마을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다. 하지만 영화는 이를 통해 (비록 설득력도 떨어지고 깊이도 없긴 하지만) 오히려 파시스트든 공화정부파든 모두 비인간화되어 가는 전쟁의 실상과 반전 및 인류애를 이야기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는 것으로 비친다.

 

 하지만 3시간 가까이의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원작대로 모든 걸 다 얘기할 수 없는 한계와 흥행성의 고려 때문에, 무릇 헐리우드 영화가 대부분 그렇지만 로베르토와 마리아의 운명적인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느낌이다. 따라서 마지막 20분 가량을 제외하면 액션 드라마라기보다는 일반 로맨틱 드라마 같은 영화로 둔갑한 듯하다.

 

 사실 거기에는 사연이 있었던 모양이다. 헤밍웨이의 소설에서 악당이며 적으로 묘사된 프랑코파가 실제로 스페인 내전에서 승리했고, 그 후 제2차 세계대전 시 중립국을 표방했던 스페인은 파라마운트사에 역사를 다시 쓰도록 엄청 압력을 넣었다고 한다. 그 결과 영화는 로베르토 조던이 지원하던 자유공화당파를 아군, 프랑코파를 적군으로 분명히 규정짓지 못한 채 러브 스토리에 치중하는 것으로 어정쩡하게 바뀌었던 것이다.

 

 헤밍웨이의 원작을 영화로 만든 작품에는 헬렌 헤이스, 게리 쿠퍼 주연의 '무기여 잘 있거라(1932)', 그레고리 펙, 수전 헤이워드, 에바 가드너 주연의 '킬리만자로의 눈(1952)', 스펜서 트레이시 주연의 '노인과 바다(1958)' 등이 있다. '무기여…'는 1957년 록 허드슨, 제니퍼 존스 주연으로 찰스 비더 감독에 의해 리메이크되기도 했으나 전작에 비해 작품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註: 1957년판 '무기여…'는 본보 2020년 11월20일~12월4일 참조]

 

 필라르 역의 그리스 배우 카티나 팍시누(Katina Paxinou, 1900~1973)는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시상식에서 "3대가 게릴라 집안이었다"며, 제2차 세계대전 중인 당시 '자유와 인간 존엄성'을 위해 싸우는 연합군을 치하하고, 당시 그리스를 점령했던 나치에게 죽었을지도 모를 아테네 왕립극장의 동료들에게 이 상을 헌정한다고 비장한 수상소감을 밝혔다.

 

 카티나 팍시누는 알랭 들롱과 공연한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로코와 그의 형제들(1960)' 'Mr. Akadin(1955)' 등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배우이다.

 

 파블로 역의 아킴 타미로프(Akim Tamiroff, 1899~1972)는 이 영화로 골든 글로브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아르메니아계로 지금의 조지아의 수도인 트빌리시(Tbilisi)에서 태어나 모스크바 예술학교에서 드라마를 수학하고 1923년 동료배우들과 미국을 방문했을 때 눌러 앉게 되었다.

 

 그 후 헐리우드에서 오손 웰스 감독과 오랜 협력관계를 맺어 'Mr. Akadin(1955)' '악의 손길(1958)' '카프카의 심판(1962)' 등에 출연하였고 '오션 일레븐(1960)' '톱카피(1964)' 등으로 우리와 안면을 튼 배우이다.

 

 길잡이 안셀모 역의 블라디미르 소콜로프(Vladimir Sokoloff, 1889~1962)는 러시아 모스크바 출신 유대인으로 나치를 피해 1932년 파리를 거쳐 1937년에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그는 '마카오(1952)'에서 중국인 역으로 '황야의 7인(1960)'에서 늙은 현자 역으로 '대장 부리바(1962)'에서 노(老) 스테판 역 등의 조연, 성격배우이다.

 

 스웨덴 스톡홀름 태생의 금발 벽안(碧眼), 뚜렷한 이목구비를 갖춘 큰 키의 잉그리드 버그만(Ingrid Bergman, 1915~1982)은 17세 때인 1932년 장학금을 받고 스웨덴 왕립연극예술아카데미에 입학해 연기를 배웠고 스웨덴과 독일 영화계에서 활동하다, 1936년 '간주곡'에 출연한 것이 헐리우드 영화제작자 데이비드 O. 셀즈닉의 눈에 띄어 1939년 미국으로 오게 된다. 그 해 '간주곡'의 리메이크작 '이별(Intermezzo: A Love Story)'에 출연하면서 헐리우드에 데뷔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당시 영어도 못했고 키가 너무 크고 높다란 코와 짙은 눈썹을 가진 외모에 독일식 이름을 가진 그녀였지만 결코 이를 고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화장끼 없는 자연미 그대로의 순수하고 신선한 미모와 개성 때문에 헐리우드의 성형미녀들을 제치고 성공하는 비결이 되었다.

 

 1942년 '카사블랑카'에서 아카데미상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지만, 다음해 '누구를 위하여…'에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고 그 다음해 '가스등(Gaslight)'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다. 1945년 '세인트 메리의 종'에서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라 3년 연속 아카데미상에 노미네이트되는 기록을 세웠다. 지금까지 캐서린 헵번이 세운 4번 연속 기록이 최고이다.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과도 인연을 맺어 '백색의 공포(Spellbound·1945)', '오명(1946)' 그리고 컬러 작품인 '염소자리(1949)' 등 3편에 출연했다.

 

 1972년 유방암 선고를 받았으나 연기에 매진, 1974년 단역으로 출연한 '오리엔트 특급살인'으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1978년 마지막 출연작인 잉마르 베리만의 '가을 소나타'에서 명연을 펼쳐 아카데미 후보에 오르고 4년 뒤 세상을 떠났다.

 

 이탈리아의 영화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Roberto Rossellini, 1906~1977)와 결혼해서 아들 하나와 쌍둥이 딸을 두었다.

 

 덧붙이기: 스페인 내전을 다룬 영화 중 켄 로치(Ken Loach) 감독의 "토지와 자유(Land and Freedom·1995)"를 권하고 싶다. (끝)

 

▲ 다리 폭파 전야 푸른 달밤에 '72시간에 생을 바쳐 사랑하라'는 필라르의 말을 로베르토에게 전하며 마지막 사랑을 나누는 마리아.

 

▲ 다리는 폭파 되었지만 로베르토를 살리기 위해 안셀모(블라디미르 소콜로프)가 죽는다.

 

▲ 다리 폭파 후 한사람씩 말을 타고 협곡을 건너가는데 모두들 초조한 마음으로 지켜본다.

 

▲ 다리는 폭파됐지만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 로베르토와 함께 남겠다고 눈물로 울부짖는 마리아. '카사블랑카'의 마지막 장면을 연상시키는 가슴 저미는 장면이다.

 

▲ 마지막 장면 - 오로지 사랑하는 마리아와 내 몸과 다름없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여 적군을 향해 기관총을 난사하는 로베르토 조던(게리 쿠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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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9
스페인 내전 배경 영화-'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중)

 

(지난 호에 이어)

 이 시는 동료애·인류애에 대한 메시지와 함께 죽음에 대한 사색을 읊은 것인데, 여기서 말하는 '종'은 죽은 사람을 위해 울리는 종이므로 엄밀히 말하면 '조종(弔鐘)'이라고 해야 맞다. 그리고 바로 이 '조종', 곧 '죽음'이 원작 소설의 중심 테마이기도 하다. 이는 헤밍웨이가 제1차 세계대전 및 스페인 내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체험했고, 아버지의 자살을 경험했으며 자신 또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들을 감안하면 자연스럽게 이해가 된다.
 

 1937년 스페인 내전, 파시스트와 싸우는 공화주의자들을 돕기 위해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이 스스로 전쟁에 뛰어든다. 미국인 로베르토 조던(게리 쿠퍼)도 그 중 한 명이다. 미국에서 대학 강사였던 청년 조던은 자신의 신념을 위해 아무런 연고도 없는 스페인의 전쟁터로 와 공화 정부파의 의용군에서 폭파 전문 게릴라로 활약하고 있다. 


 밤중에 달리는 기차를 폭파하고 적군에게 쫓기는 로베르토와 동료 카쉬킨(페오도르 찰리아핀). 이윽고 카쉬킨이 적군의 총탄에 맞고 쓰러지며 로베르토에게 약속대로 처리하라고 부르짖는다. 동료가 적군에게 생포되어 고문의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조던은 권총으로 카쉬킨을 사살한다.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밀리시아노 카페&바로 돌아온 조던은 골츠 장군(레오 불가코프)으로부터 3일 후 공화 정부파의 공격에 때맞춰 적군의 진격로인 협곡의 다리를 폭파하라는 새 임무를 부여받고 길잡이 안셀모를 소개받는다. 따라서 이 영화의 줄거리는 3일, 즉 72시간이라는 시한 속에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조던은 집시 노인 안셀모(블라디미르 소콜로프)의 안내로 협곡의 다리를 정찰한 후 다이너마이트를 운반하여, 파시스트 점령지의 산악 지대에서 은밀히 활동하고 있는 파블로(아킴 타미로프)가 이끄는 게릴라 부대에 합류한다.


 게릴라의 동굴 아지트엔 열아홉살의 아가씨 마리아(잉그리드 버그만)가 요리, 빨래 등 허드렛일을 하며 게릴라를 돕고 있다. 그녀는 파시스트들에 의해 공화파 시장이었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총살 당하는 광경을 목격하고, 자신도 머리를 삭발 당하고 집단 강간을 당해 죽어가다 파블로가 이끄는 게릴라들의 손에 가까스로 구출되어 3개월 전에 그들의 일원이 되었다.


 조던은 게릴라 부대에 합류한 첫날 마리아를 보고 첫눈에 반하고, 그런 아픔을 겪은 마리아는 처음으로 사랑의 행복을 맛본다. 이를 눈치 챈 집시 여장부 필라르(카티나 팍시누)가 조던의 손금을 봐주겠다고 제의한다. 유심히 살펴보던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러나 시치미 떼고 아무 말도 해주지 않는다. 초반의 이 장면에서 이미 조던의 죽음을 암시한다.


 게릴라의 두목 파블로는 다리가 파괴되면 산으로 도망쳐야 하는데 10명에 말은 5필밖에 없다며 다리 폭파를 거부한다. 그러나 파블로의 부인이자 동지인 필라르는 파블로가 겁쟁이가 돼 버렸다며 이제 자기가 대장으로써 게릴라들을 규합해 조던을 돕겠다고 나선다. 이에 파블로는 아무 말 없이 혼자서 어디론가 사라지는데….


 다음날, 간밤에 처자식을 보러 몰래 마을에 다녀온 페르난도(포르투니오 보나노바)가 공화 정부파가 무슨 다리 폭파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마을에 돌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이는 작전이 어떤 경로를 통해 누설되었음을 의미하는 중요한 사안이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이 짓누르는 긴장 속에서 피어나는 로베르토 조던과 마리아의 사랑 이야기는 아름답다. 마리아가 키스를 할 때 "키스를 어떻게 하는지 모르지만 코를 어디에 두는지 궁금했었다."고 수줍게 말하면서 로베르토와 키스하는 장면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또한 마리아 역을 위해 실제 머리를 짧게 커트한 잉그리드 버그만의 헤어스타일은 당시 세계적인 유행의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아무튼 신념을 위해 전쟁에 뛰어들었지만 냉혹한 현실 상황에 회의하던 조던은 마리아의 사랑에서 투쟁의 의미를 찾고 폭파계획을 진행한다.


 마침 정찰 나갔던 안셀모와 집시 라파엘(미하일 라숨니)이 돌아와 다리 보초병은 8명이고 정오와 오후 6시에 교대한다고 보고한다. 사실 그들은 문맹이라 로베르토가 그려준 그림에 작대기만 그려서 갖고 왔다.


 5월인데 밤에 눈이 내린다. 그 사이에 아지트를 떠났던 파블로가 돌아와서 계속 술을 마시며 마리아와 조던에게 딴지를 걸자, 참다 못한 오거스틴(아르투로 데 코르도바)이 파블로를 몇 대 때리고 내쫓는다.


 조던이 대원들에게 파블로의 처치 문제를 놓고 각자의 의견을 묻는데 모두 죽이자고 하지만, 페르난도는 그가 똑똑하고 길을 잘 안다며 다리 폭파 후 누가 우리의 철수를 주도하겠냐며 동정만 감시하자고 제안하는데….


 이때 필라르가 파블로의 무용담을 들려준다. 혁명이 시작되던 날, 시청 앞에서 한 사람씩 몽둥이로 쳐서 죽이는 잔인한 폭도로 변해버린 공화정부파 사람들에 환멸을 느끼고, 보다 나은 일을 하기 위해 이곳으로 왔다고 말하는데,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든가! 파블로가 불쑥 나타나 "눈이 그쳤다. 이제 다리 폭파에 찬성한다"며 "도우러 왔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여기서 약 4분의 중간 휴게시간이 있다.

 다리 폭파 후 탈출하는 데에 필요한 말을 훔치다 적군에게 발각된 엘 소르도(조셉 칼레야)와 호아퀸(릴로 야르손) 등 5명의 대원들은, 로베르토 등 나머지 동료들이 적군에게 발각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간밤에 내린 눈 위에 반대편으로 가는 발자국을 만들어 자신들을 추적해 온 적군을 가파른 암벽 계곡으로 유인하여 싸운다.


 암벽 정상에서 머리싸움으로 트릭을 써서 적군을 옴짝달싹 못하게 하던 5명의 전사는 결국 3대의 비행기 폭격에 의해 장렬한 최후를 맞는다.


 한편 조던은 아군의 작전이 적군에게 새나가버려 골츠 장군에게 다리 폭파 취소를 요청하는 편지를 써서 안드레스 로페스(에릭 펠데어리) 편에 급히 보낸다.


 이 무렵 로베르토와 마리아는 푸른 달빛이 가득한 밤, 협곡의 다리를 폭파해야 하는 운명의 날 전야에 바위틈에서 사랑을 나눈다. "사랑을 하는 데 시간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3일 밤과 3일 낮의 시간은 우리 생애의 전부와 같다." 필라르가 마리아에게 조언해준 명언이다.


 동이 틀 무렵, 골츠 장군과의 연락이 제때에 닿지 않아 로베르토는 위험을 무릅쓰고 임무를 완수하기로 마음먹고 집시 게릴라들의 도움을 받아 끝내 다리를 폭파하고 만다. 그러나 안셀모 노인과 페르난도를 잃어버린다.


 다리 폭파 뒤 한사람씩 말을 타고 적의 포탄이 쏟아지는 협곡을 가로질러 탈출한다. 이윽고 마지막으로 로베르토가 협곡을 철수하던 중 적군의 포탄 파편에 맞아 치명적인 부상을 입게 되자 그는 마리아를 불러 설득한다.


 "…당신 가는 곳엔 항상 나도 가는 거야. 우리는 사랑하니까 당신은 나고, 나는 당신이야. 지금 떠나. 빨리 그리고 멀리. 우리 둘이 가는 거야. 항상 우리들은 같이 있다는 걸 기억해. 일어나… 작별인사는 하지 마, 마리아! 우리는 헤어지는 게 아니니까…. 안 돼! 돌아보지 마. 지금 가. 힘내! 우리의 삶을 돌봐줘…." (다음 호에 계속)

 

▲ 게릴라의 두목 파블로(아킴 타미로프)는 말이 부족하다며 다리 폭파를 거부하자 그의 부인인 집시 여장부 필라르(카티나 팍시누)가 대신 조던을 돕겠다고 나서는데…

 

▲ 마리아를 친딸처럼 여기는 집시 여장부 필라르(카티나 팍시누)가 "72시간에 생을 바쳐 사랑하라"고 말한다.

 

▲ '키스를 할 때 코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모른다'고 수줍게 말하는 19살 마리아(잉그리드 버그만)가 로베르토(게리 쿠퍼)와 키스하는 명장면.

 

▲ 암벽 정상에서 싸우는 엘 소르도(조셉 칼레야)와 호아퀸(릴로 야르손) 등 5명의 대원들은 결국 3대의 비행기 폭격에 의해 장렬한 최후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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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ho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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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1
스페인 내전 배경 영화-‘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상)

 

[필자주: 제1차 세계대전 다음은 응당 제2차 세계대전 시리즈로 넘어가야겠지만 그 전에 각 나라의 내전(內戰) 내지는 독립전쟁을 다룬 유명 영화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예컨대 스페인 내전과 레콩키스타, 아일랜드의 독립전쟁, 중국의 의화단 전쟁, 알제리 독립전쟁, 미국의 남북전쟁 등은 단순히 해당 국가의 비극으로 그치지 않고 그로 인한 역사의 상처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교훈을 주기 때문입니다.]

 

 먼저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 한 편을 소개한다. 잉그리드 버그만이 컬러 작품에 처음 출연했던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이다. 원작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동명의 장편 소설.

 

 1943년 파라마운트사 배급, 테크니컬러 작품. 감독은 '굿바이, 미스터 칩스(1939)'로 유명한 샘 우드. 출연 게리 쿠퍼, 잉그리드 버그만, 카티나 팍시누, 아킴 타미로프 등. 음악감독 빅터 영. 러닝 타임 170분(서곡과 중간 휴게시간이 각 4분씩 있다).

 

 이 영화는 최우수 작품상 등 아카데미상 9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으나 최우수 여우조연상 하나만 필라르 역의 카티나 팍시누에게 안겨졌다. 기대됐던 최우수 작품상은 '카사블랑카'에게 돌아갔다.

 

 배경은 내전이 한창이던 1937년 스페인. 영화 속에 들어가기 전에 좀 복잡하지만 스페인 내전의 배경을 잠깐 살펴보고 가는 게 도움이 되겠다.

 

 오늘날의 스페인이 생기기 전에는 이베리아 반도를 중심으로 그 북부에 있던 카스티야(Castilla)와 아라곤(Aragon) 등 가톨릭 왕국들이 반도 중남부에 있는 이슬람 국가, 즉 무어인을 상대로 711년부터 1492년까지 780여 년간 이른바 '레콩키스타(Reconquista)'라는 전쟁을 벌였다.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의 종교전쟁의 성격을 띤 긴 전쟁에서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고 이베리아 반도를 통일한 스페인 왕국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수호자를 자처하고 예외적으로 교황이 아닌 국왕이 종교재판을 관할하는 특혜를 얻었다.

 

 오랜 전쟁으로 피로가 쌓인 스페인 제국은 20세기 초반에 이르기까지도 종교재판으로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면서 봉건군주제적인 성격을 띠었고, 정경합일(政經合一)의 로마 가톨릭 교회가 토지의 대부분을 독식하는 경제구조로 인해 빈부의 격차가 극에 달했다.

 

 한편 카스티야-아라곤 연합왕국에 반발하는 지역주의 운동이 16세기 이래 계속되고 있었다. 이러한 갈등은 결국 왕정 종식의 요구로 이어졌고, 그 결과 1873년 스페인 제1공화국이 수립되었다.

 

 하지만 1897년 마르크스주의를 강령으로 하는 스페인 사회주의노동자당이 결성되었고, 공산주의 운동이 등장하면서 왕정 복고와 계급 갈등, 파업 투쟁 등이 잇달아 일어나 결국 1923년 군부 독재에 의해 제2공화국이 성립된다.

 

 공화국 정부의 가장 큰 현안은 토지 개혁이었으나, 스페인의 소수 지배계급인 지주와 로마 가톨릭 교회 등의 완강한 저항으로 개혁은 지지부진하였다. 설상가상으로 1929년 세계를 강타한 대공황으로 양극화가 심화되고 계급 갈등이 심각한 상황에서 무정부주의와 파시즘 등의 극단주의가 대두되어 사회는 극도로 불안정하였다.

 

 이에 제2공화국 정부가 사퇴하고 1936년 2월 총선 결과 스페인 사회주의노동자당, 좌파 공화파, 스페인 공산당 등으로 구성된 '인민전선'이 승리하여 의회를 장악하고 토지 개혁을 포함한 개혁 정책들을 시행하였다.

 

 사태가 노동자편으로 돌아서자 대지주·자본가·로마 가톨릭교회·군부 등 보수 기득권 세력의 불만이 고조되는 한편 노동 계급의 커지는 힘을 두려워한 나머지 마침내 그해 7월17일 스페인령 모로코에 머물고 있던 프란시스코 프랑코(Francisco Franco, 1892~1975) 장군이 이끄는 파시스트 세력이 군사 쿠데타를 일으킴으로써 스페인 내전이 시작되었다.

 

 내전 당시 프랑코파는 파시스트 진영인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정권, 안토니오 살라자르(1889~1970)가 집권하고 있던 포르투갈, 그리고 스페인의 가톨릭교회와 왕당파 등으로부터 지원을 받은 우파였다.

 

 반면, 마누엘 아사냐(Manuel Azana, 1880~1940)가 이끄는 반파시즘 진영인 좌파 인민전선 정부, 즉 공화정부파는 멕시코, 소비에트 연방과 영국·프랑스·미국 등 각국에서 모여든 의용군인 '국제 여단'이 지원함으로서 스페인 내전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전초전 양상을 띠었다. [註: 유럽 전역을 포함한 세계 각국에서 스페인의 '민주공화국'인 제2공화국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의용병이 모여들었다. 아나키즘, 사회민주주의, 공산주의, 극좌파, 자유주의 등 다양한 이념을 가진 이들은 '국제 여단(國際旅團, Brigadas Internacionales)'이라 불렸으며, 스페인 내전을 세계의 파시즘을 저지하기 위한 최전방으로 여겼다. 53개 국가에서 모인 약 3만2천 명의 국제 여단은 스페인 내전 기간 동안 헌신적으로 전투에 참가하였으며, 당시 국제 여단의 자원병으로 참여한 사람 중에는 윈스턴 처칠의 조카 에스먼드 로밀리, 조지 오웰과 어니스트 헤밍웨이 같은 지식인도 상당수 있었다.]

 

 그런데 영국과 프랑스는 공화국 정부에 군수 물자를 지원하였으나 국제 연맹의 불간섭 조약을 이유로 스페인 정부에 대한 지원에는 미온적이었다. 미국은 공식적으로 중립을 표방했지만, 스페인 제2공화국과 지원국 소련 측에는 비행기를, 스페인 반군에게는 가솔린을 팔았다. 말하자면 양다리를 걸친 형국이었다.

 

 결국 1939년 4월1일 공화파 정부가 마드리드에서 항복하여 프랑코측의 승리로 끝났지만 내전으로 인해 스페인의 전 지역이 황폐화되었다. 스페인의 총통이 된 프랑코는 1975년 사망할 때까지 일인독재정치를 계속하였는데 그의 사후에 부르봉 왕가(Casa de Borbon)가 복고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스페인 내전 발발일 36년 7월18일과 내전 종전일인 39년 4월1일 두 날짜를 각각 연월일별로 더하면 75년 11월19일이 되는데, 이는 프랑코 총통이 사망한 날짜가 된다.

 

 이제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오프닝 크레디트가 끝나면 다음과 같은 타이틀이 뜬다.

 

 "누구의 죽음도 나를 위축시킨다. 그것은 나 또한 인류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느냐고(누가 죽었냐고) 묻지 말지어다. 종은 바로 당신을 위하여 울린다."

 

 17세기 영국 성공회 사제이자 시인인 존 던(John Donn, 1572~1631)이 1624년에 쓴 '갑자기 발생하는 사태에 대한 명상(Devotions Upon Emergent Occasions)'이란 시에서 인용한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1943)' 영화 포스터


▲ 로베르토 조던(게리 쿠퍼)과 안셀모(블라디미르 소콜로프)가 폭파할 다리를 정찰한다. 그러나 안셀모는 다리 폭파 후 죽는다.


▲ 로베르토 조던과 안셀모가 게릴라 두목 파블로(아킴 타미로프·왼쪽) 부대와 합류한다.


▲ 게릴라 동굴아지트에서 19살 마리아(잉그리드 버그만)가 장만한 식사를 하고 있는 로베르토 조던과 게릴라 전사들.


▲ 필라르(카티나 팍시누)가 로베르토(게리 쿠퍼)의 손금을 봐주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초반의 이 장면에서 이미 그의 죽음을 암시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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