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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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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1
'무방비 도시 (Rome, Open City)' (2)

WWII - 전쟁과 여인의 운명 (IV)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희생물이 되는 여인들.

 

네오리얼리즘 3부작 중 첫 번째로 현실감을 살린 수작

 

 

1. 제1부 (계속)

   한편 피나는 만프레디에게 프란체스코와 내일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라며 임신 상태라 좀 늦긴

했지만, 전쟁 중이라 돈 피에트로 신부가 한 마디만 하면 결혼식은 끝이라고 말한다. 그래도 시청의 파시스트보단 낫다며. 자기는 전기퓨즈 제조공장에 다녔는데 나치가 점령하는 바람에 쫓겨났단다.

 

   이때 돈 피에트로 신부가 도착한다. 만프레디는 신부에게 군사위원회로부터의 자금을 전해 달라고 부탁한다. 타글리아코조(Tagliacozzo, 이탈리아 중부 지역 아브루조의 아킬라 주에 속한 도시로 로마에서 약 80km 동쪽에 위치)에 있는 언덕에 500명의 레지스탕스가 있다며 자기는 쫓기는 몸이라 갈 수가 없단다. 통행금지가 5시에 있으니 티부르티나 다리에서 6시에 누군가 기다리고 있을 텐데 '모닝 인 플로렌스(Morning in Florence)'라는 노래를 휘파람으로 부는 사람에게 전달하면 된단다. 신부는 목숨을 희생하는 사람들에게 그 돈은 오히려 적다고 말한다.

   신부가 조각상 가게에 들른다. 흥정하는 척하다가 '꽉 낀 신발(tight shoes)'(만프레디의 암호명?)이 보냈다고 하자 주인이 잠깐 기다리라고 한다. 그 사이에 마주 보고 진열돼 있는 누드 조각과 성인(聖人) 조각을 서로 등을 보게 재배치해 놓는 신부. 시니컬하고 코믹한 장면이다. 또한 세속과 종교 간 상충하는 갈등을 절묘하게 묘사한 장면으로도 볼 수 있겠다.

   주인의 안내를 받아 안쪽 문을 통해 지하통로로 내려가는 신부. 인쇄소를 운영하고 있는 프란체스코(프란체스코 그란드자케트)를 만난 신부는 간밤에 만프레디 하숙집을 게슈타포가 수색했다며 지금 피나의 집에 머물고 있다고 알린다. 그리고 그의 편지를 전달한다.

 

 

   쪽지에 의하면 만프레드가 로마를 떠나 파시오니스트 수도원에 보내지길 원한다. 프란체스코는 두꺼운 책을 신부에게 건넨다. 그 책 속에는 지하운동 지원금 100만 리라가 감추어져 있다. 공산주의와 가톨릭의 제휴! 독일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물과 기름 같은 사상과 종교마저도 결합된다.

   장면은 바뀌어 마리나의 분장실에 로레타가 찾아와 대뜸 오늘 아침에 만프레디를 만났다고 하지 않는가. 그리고 다른 집을 찾을 때까지 같이 지내도 괜찮은지 묻는 로레타.

  

이때 다음 출연을 위해 마리나가 떠난 분장실에 언니로 불리는 잉그리드(조반나 갈레티)가 들어온다. 그리고 분장실 거울에 붙여놓은, 앞에서 이미 봤던 스페인 광장에서 찍은 마리나와 만프레디의 사진을 유심히 살펴보며 야릇한 미소를 짓는 잉그리드. 그녀는 게슈타포의 첩자이다.

   한편 피나가 신부를 만나러 온다. 양배추 수프를 만들고 있는 교회지기인 아고스티노(난도 브루노)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말하는데, 마침 돈 피에트로 신부가 돌아온다.

   아고스티노가 책을 들고 오는 신부에게 "자꾸 책만 사고 식료품은 사 오지 않는다"며 불평을 늘어놓는다. 신부는 "산 로렌조에게 전달할 책"이라며 손도 못 대게 하고 또 외출하려고 하자 아고스티노가 통금 20분 전이라며 의아해 묻는다. 이에 "의사와 신부는 괜찮다"고 대답하는 신부. 아고스티노가 "산파"도 있다고 말하는데….

 

 

 

  이때 피나가 신부에게 고해성사하러 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 외출해야 하니 내일 아침에 오라고 말하는데 그럼 같이 걸어가면서 얘기하겠다며 따라 나선다. 그러면서 책을 들어주겠다고 하자 신부는 기겁을 하고 말리는데….

   성당에 기도한 후 피나와 함께 성당을 나서는 돈 피에트로 신부에게 한 독일군(아코시 톨네이)이 찾아와 얘기할 게 있다고 한다. 피나가 들고 있던 책보따리를 전해주려고 하자 잠시 생각에 잠긴 신부는 도로 맡기고 저만치 가 있으라고 타이른다. 요리를 하고 있던 아고스티노를 나가게 하고 독일군을 독대하는 신부.

 

   그 독일군이 대뜸 총을 빼들자 잔뜩 긴장하는 신부. 한데 그 독일군은 탄창을 빼내어 그 속의

탄환을 입으로 물어뜯은 뒤 탄피 속에서 꼬깃꼬깃 말아놓은 쪽지를 끄집어내는 게 아닌가. 그것은 민투르노(Minturno, 이탈리아 남부 라치오 주에 있는 고대도시)의 사제인 돈 사베리오 데리시가 쓴 편지였다.

   신부가 안경을 벗고 깨알같은 글씨를 읽고 있는 동안 독일병은 "내가 비열하다고 생각하지 말아달라"고 말한다. 그는 다행히도 씨노(Cassino)에서 도주한 탈영병이었던 것이다. 신부가 상심하지 말고 내가 도와주겠다며 그를 숨겨준다. [註: 2차 대전 종전 무렵인 1944년 5월 프랑스 원정군(French Expeditionary Corps·FEC)과 독일군 사이의 몬테카씨노(Monte Cassino) 수도원을 둘러싼 치열한, 이른바 '몬테카씨노 전투'에서 FEC가 탈환에 성공했다. 그러나 FEC 외인 부대인 모로코 군인들에 의해 이탈리아 치오치아라(Ciociara)에서 저질러진 집단 살인과 강간이라는 오점을 남겼다. 이를 다룬 영화가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두 여인(1950)'이다. 연합군의 공습으로 거의 폐허가 된 카씨노는 1950년대 초반 이탈리아 공화국의 루이지 에이나우디(Luigi Einaudi, 1874~1961) 대통령 시절(재임기간 1948~1955) 때 재복원되었고 1964년 교황 바오로 6세가 축성식을 거행했다.]

 

 

   한편 교회 의자에서 신부를 기다리고 있는 피나. 가방 위에 올려놓은 하얀 포장은 레지스탕스의 자금인 걸 모른 채…. 드디어 레지스탕스 대원을 만나서 무사히 자금을 전달해주는 신부.

   밤늦게 프란체스코가 귀가한다. 통행증을 제시해 검문을 무사히 통과하고 집에 당도했을 때 잉그리드가 독일군 지프차를 타고 집에 도착하는데….

   만프레디가 귀가한 프란체스코를 반가이 맞는다. ?????????돈 피에트로 신부가 타글리아코조에서 온 지노를 만났다고 하자 기뻐하는 만프레디. 그러나 '만프레디가 당분간 모든 접촉은 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지노의 당부를 전하는 프란체스코.

   이때 피나가 걱정스레 들어와서 온 동네를 다 뒤져도 마르첼로를 못 찾겠다며 푸념을 늘어놓는다. 로몰레토와 다른 두 아이도 없어졌다고 말한다.

   그때 시내에서 폭발음이 들린다. 포탄이 터진 모양이다. 그와 동시에 없어졌던 마르첼로와 위층에 사는 로몰레토를 비롯한 동네 아이들이 우루루 달려 들어온다. 아이들이 나름의 저항군 활동을 한 것 같다. 그렇지만 집에 도착하는 족족 부모들에게 야단을 맞는다. 마르첼로도 엄마에게 혼줄이 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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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3
'무방비 도시 (Rome, Open City)' (1)

WWII - 전쟁과 여인의 운명 (IV)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희생물이 되는 여인들.

 

네오리얼리즘 3부작 중 첫 번째로 현실감을 살린 수작

 

 

이번에 소개하는 영화는 '무방비 도시(Rome, Open City. 원제 Roma citta aperta)'이다. 1945년 미네르바 영화사 배급. 이탈리아 흑백 스탠더드 영화. 감독·제작 로베르토 로셀리니(Roberto Rossellini, 1906~1977). 그리고 '길(La Strada, 1954)'로 유명한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 등이 참여하여 세르지오 아미데이의 '지난 날의 이야기(Stories of Yesteryear)를 바탕으로 각색했다.

   출연 알도 파브리치, 안나 마냐니, 마르첼로 파글리에로. 러닝타임 105분. [註: 본 칼럼은 2013년에 디지털로 복원된 원판의 영어 자막을 참고하였다.]

   1946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각본상 후보에 오름으로서 로셀리니 감독과 당시 각색가였던 페데리코 펠리니 그리고 여주인공 안나 마냐니가 국제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었다.

   바티칸은 1995년 영화 100주년을 맞이하여 종교, 가치, 예술 등 세 가지 카테고리로 나누어 45편의 '위대한 영화'를 선정했는데, 이 작품은 '가치(values)' 부문에 들어가 있다. 또한 이 영화는 '길'과 함께 프란치스코 교황이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로도 꼽혔다.

 

   그런데 '무방비 도시'라는 제목은 1943년 8월14일 이탈리아 왕국이 연합군에 대해 로마를 'open city'로 선언했던 역사적 사실에 기인하여 그런 타이틀이 붙었다. [註: 'Open City' 즉, '무방비 도시'는 "군사시설 및 주둔하고 있는 부대가 없는 것으로 선언된 도시"를 일컫는다. 주로 적에 의한 함락이 거의 확실시 되는 도시에서 무의미한 전투 및 문화유산 등의 파괴와 무고한 시민들의 학살을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선언되는데, 이건 항복 선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국제법상 이 경우 공격당사자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무방비의 도시를 포격, 공습해서는 안 된다. 역사적으로 무방비 도시 선언 사례는 1940년에 벨기에가 브뤼셀을, 그리고 같은 해 프랑스가 파리를 독일군에게 선언했다. 그리고 1942년 맥아더 장군이 필리핀의 마닐라를 일본군에 대해 무방비 도시로 선언했다.]

   필자의 자의적 해석으로 '무방비 도시'를 '전쟁과 여인의 운명'이란 카테고리에 끼워넣은 이유는 여기에 등장하는 여인들이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처구니 없는 희생물이 되기 때문이다.

   편의상 2부로 나누어 서술하고자 한다.

 

1. 제1부

   배경은 1944년 3월 로마. 2차 대전이 끝나갈 무렵 독일 나치 점령하에 있던 로마의 민중들은 어려운 생활을 꾸려나가면서 한편으로는 나치에 대항하는 지하운동을 펼친다. 다양한 캐릭터 중 레지스탕스 지도자가 가톨릭 사제의 도움으로 로마를 탈출하기 위해 안간 힘을 쓰는 과정이 줄거리의 중심이다.

 

 

   영화의 도입부. 독일군들이 조르조 만프레디(마르첼로 파글리에로)가 묵고 있는 하숙집을 급습한다. 도우미인 나니나 할머니에게 그의 행방을 묻는다. 그러나 하숙집 여주인은 만프레디가 자주 들어오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이때 옥상을 통해 도망치는 만프레디. 마침 그때 그의 연인 마리나 마리(마리나 미키)로부터 전화가 걸려오는데….

   독일군 바우어 상사가 옥상으로 올라가 확인한다. 바로 옆집에 스페인 대사관저가 내려다 보인다.

   한편 게슈타포 베르크만 소령(해리 파이스트)이 이탈리아 경찰 수사관(카를로 신디치)에게 로마를 14개 지역으로 나누어 통치할 계획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베를린에서 입수한 사진― 만프레디와 한 여자가 스페인 광장을 배경으로 찍은 ―을 보여주는 베르크만. 경찰수사관이 만프레디는 민족해방위원회의 리더이며 옆의 여자는 카바레 댄서인 '마리나 마리'라고 말한다. 정체가 드러난 이상 이제 체포는 시간 문제인 것 같다.

 

 

  이때 옆방에서 고문 때문에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부하가 들어와서 교수를 고문하고 있는데 조용히 하도록 하겠다고 정중히 보고한다.

   장면은 빵배급소. 이탈리아 경찰 상사(에두아르도 파사렐리)가 피나(안나 마냐니)의 짐을 들어준다. 배급 받은 빵 두 덩어리를 경찰에게 주는 피나. 이때 지나가던 한 신사가 피나에게 계란을 16리라에 팔라고 하자 경찰 상사 사이에 입씨름이 벌어진다.

   아파트로 돌아오니 레지스탕스의 주요인물인 만프레디가 그의 동료인 프란체스코(프란체스코 그란드자케트)를 만나러 온다. 프란체스코와 결혼을 앞둔 피나가 열쇠를 찾아 문을 열어주자 그의 아파트로 들어온 만프레디는 대뜸 돈 피에트로 펠레그리니 신부(알도 파브리치)를 좀 불러달라고 부탁한다.

   이에 어린 아들 피콜로 마르첼로(비토 아니키아리코)를 불러 교회로 심부름을 보내는 피나.

 

 

   한편 피나의 여동생인 로레타(카를라 로베레)가 노크도 안 하고 방으로 들어와 카바레 동료인 마리나의 애인 만프레디가 와 있는 것을 목격한다. 만프레디는 로레타에게 마리나에게 며칠 간 볼 수 없다고 전해달라고 부탁한다.

   피나가 "여동생은 스스로 예술가라며 '굶는 노동자'인 우리를 창피하게 생각한다."며 "그러나 나쁜 애는 아니고 좀 어리석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마리나는 어렸을 때부터 로레타와 함께 자란 사이라며 그녀의 어머니가 우리 양철공 가게 가까운 곳에서 수위 일을 했기 때문이란다.

   한편 만프레디는 마리나를 안 지 4개월 밖에 안 됐다고 말한다. 그가 로마에 왔을 때 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중 공습경보가 울려 모두 대피했지만 자기와 마리나 둘만 남았는데, 그녀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밝은 웃음을 짓는 것이 인연이 되어 서로 사랑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의 여자가 아니라며 "만일 그녀가 더 어렸을 때 만났더라면…"이라고 말하는 만프레디. "여자는 변해요. 특히 사랑을 할 때는요."라며 그제서야 커피라도 한 잔 드리겠다고 제의하며 나가는 피나.

 

 

  한편 돈 피에트로 신부가 동네아이들의 축구시합 심판을 보고 있다. 마르첼로가 도착하여 누군가가 프란체스코 아파트에 찾아왔는데, 잘은 모르지만 엄마가 이상하게 행동하는 걸 보면 중요한 일이라며 빨리 가야한다고 보챈다. 아주 똑소리가 나는 영리한 아이다.

   마르첼로가 떠나기 전에 성당에 들러 인사하는데 너무 깜찍하고 귀엽다. 그런데 그는 신부님에게 '교리문답(catechism)' 할 시간이 없다며 자기들은 적들을 물리치는 일에 골몰하고 있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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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1
"오명(汚名·Notorious)" (하)

WWII - 전쟁과 여인의 운명 (III)

멜로드라마와 첩보 스릴러 장르의 절묘한 만남

캐리 그랜트·잉그리드 버그만 전성기 불후의 명작

 

 

 

  그도 그럴 것이 같은 해 8월6일 히로시마 및 8월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맨해튼 프로젝트(원자탄 개발 계획)'의 상세한 내용이 공개되기 직전에 일어난 일이었으니 국가 최고의 기밀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였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평화의 비둘기는 깃털 하나 다치지 않고' 영화를 제작할 수 있었으며, 그 결과 원자폭탄 투하 후 맨 처음으로 나온 우라늄 소재 첩보영화였으니 흥행에 대성공을 거뒀다는 사실이다.

   얘기가 나왔으니 얘기지만 '맨해튼 프로젝트'가 알려지게 된 것은 영화 배우 도나 리드(Donna Reed, 1921~1986)에 의해서였다. 그녀가 아이오와 주 농촌 마을의 데니슨 고등학교 2학년 시절인 1936년에 화학을 가르쳤던 에드워드 톰킨스(Edward R. Tompkins, 1927~1990) 선생이 학교를 떠나면서 그녀에게 준 책 "How to Win Friends and Influence People"은 그녀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그 후 오고 간 서신연락에서 선생은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음이 밝혀지면서 원자탄 개발이 노출되는 단서가 되어 1947년 MGM에 의해 원자탄에 대한 첫 다큐멘터리 영화 "The Beginning or the End"가 제작되기에 이르렀다.

 

 

 

   아무튼 '오명'의 스토리는 오래된 주제인 직업상 의무감과 사랑 사이의 갈등을 그리고 있다. 데블린의 임무는 앨리시아를 성적 미끼로 삼아 세바스천의 침실로 밀어넣는 것이다. 그러나 진작 그녀가 자기의 임무를 훌륭하게 이뤄냈을 때는 곤혹스러워 한다.

   데블린은 직업상 어쩔 수 없었기 때문에 그를 비난할 수는 없다손 치더라도 나치 세바스천은 오히려 매력 있는 인물로 비친다. 왜냐하면 그의 앨리시아에 대한 사랑은 데블린보다 더 순수하고 깊어 보일 뿐만 아니라 사랑에 바탕한 그의 신뢰가 결국 배반 당하면서 심원한 질투심과 격분에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이 오히려 안타깝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한편 앨리시아는 그녀가 사랑한 남자에 의해 냉정하게 조종 당하고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오명을 남기는 성적인 노예'로 전락한다. 그리고 그녀의 목숨까지도 내놓아야 할 위기에 처한다.

   그런데도 자기를 그녀 아버지의 나치 일당들에 대한 스파이로 삼아 참기 어려운 곤경에 처하게 한 연인으로부터 오히려 버림 받을까 두려워한다. 애국심이라는 미명 아래 행해진 이러한 처사는 국수주의(國粹主義)에 다름 아닐른지….

 

 

 

   요컨대 '오명'에서 여자는 신뢰와 사랑을 받아야 할 존재이며 남자는 스스로 사랑을 주어야 할 존재로 그려지는데, '오명'은 이러한 멜로 드라마적 요소를 첩보 영화에 절묘하게 뒤섞는 또다른 장르의 원류를 보여준다.

   또 이 영화에는 아들의 반려자를 죽이도록 무뚝뚝하면서도 절대적인 권위로 군림하는 세바스천의 어머니가 주요 캐릭터로 나온다. 실제 히치콕 감독의 어머니는 1942년 9월에 사망했는데 4년 후인 '오명'에서 처음으로 그의 어머니를 캐릭터로 내세운 것이다. 그 후 어머니의 등장은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1959)', '사이코(1960)', '새(The Birds·1963)', '마니(Marnie·1964)' 등으로 이어진다.

 

   히치콕의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대부분 아버지가 없는 사람들이고 가혹한 모성적 초자아(超自我)가 중요한 작품 배경을 이룬다는 점이 특징이라면 특징인데, 이는 우연의 일치라기보다 히치콕 자신의 오이디푸스적 갈등을 반영한 것일 수 있다.

   마치 밀로쉬 포르만 감독의 '아마데우스(1994)'에서 모차르트가 유명한 오페라 '돈 조반니'를 작곡할 때 그를 쫓아 다니는 죽은 아버지의 환상을 테마로 했듯이, 분노와 원망, 죄의식과 슬픈 열망 등의 개인적 표상이며 동시에 모성애와 에로틱 러브가 혼재되어 나타나기도 하는 것이다.

 

   따라서 히치콕이 사용한 충격과 서스펜스 전략의 이면에는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저질러지는 인간 내면의 잔혹성에 대한 분노와 혐오감이 자리잡고 있다. 특히 '사이코'가 그렇다.

   또 '오명' 영화만큼 술 마실 때 술이 다 떨어져 가는 것을 안타깝게 표현한 영화도 없는 것 같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마치 술마시기가 주제인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아마도 앨리시아가 죄책감과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른다.

 

 

   첫 도입부 파티 장면에서 한 손님이 앨리시아에게 이제 그만 마시자고 하니까 "중요한 술마시기는 아직 시작도 안 했다"고 대답하는 것과 음주 운전 장면은 앨리시아를 '엽기적인 그녀'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교통 경찰이 등장하고 데블린이 경찰에게 뭔가를 보여주자 아무 소리 안 하고 경례까지 붙이고 보내주는 장면은 그 자체로 이야기에 호기심이 생기게 만든다. 아무튼 마지막에 독을 탄 커피를 마신 뒤에야 그녀는 아마도 음주는 훨씬 더 위험한 가치 없는 짓임을 깨닫게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끝으로 히치콕 감독에 대한 평가 중 귀담아 들을 내용은 그의 전성기와 일치하는 전쟁과 파시즘의 득세에 따른 이데올로기 문제 등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고, 자신이 몸담은 시대정신이나 이데올로기에서 빚어진 고통에도 무관심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사상이나 메시지의 전달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오로지 관객들을 공포와 두려움 속으로 몰아가는 일에만 몰두하였다. 다시 말해서 불완전한 인간들의 모습을 따스한 시선으로 감싸는 '휴머니즘의 부재(不在)'야말로 스릴러의 천재 히치콕의 한계라고 할 수 있겠다.

   1979년 3월7일, 미국영화협회(AFI)가 히치콕에게 '평생공로상'을 수여했을 때 열린 축하 만찬에서 잉그리드 버그만이 '오명'에서 사용했던 유명한 와인창고 소품 열쇠를 그에게 선물했다. 사실은 영화 촬영 후 캐리 그랜트가 갖고 있다가 몇 년 뒤 이 열쇠가 그에게 행운을 가져다 주었다며 버그만에게 행운의 기원으로 준 것이었다. 히치콕 감독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그에게도 행운을 가져다 주었으면 좋겠다며 기뻐했다고 한다.

   덧붙이는 말: 잉그리드 버그만이 이탈리아 명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와의 열애로 헐리우드에서 추방되었을 때도, 그후 그와 이혼하여 헐리우드에 복귀했을 때도 변함없이 

우정을 지켜준 이는 캐리 그랜트 단 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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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명(汚名·Notorious)" (중)

WWII - 전쟁과 여인의 운명 (III)

멜로드라마와 첩보 스릴러 장르의 절묘한 만남

캐리 그랜트·잉그리드 버그만 전성기 불후의 명작

 

 

(지난 호에 이어)

 

   이 사실과 지난 만찬 때의 와인병 에피소드 사이에 연관이 있다고 판단한 데블린은 직접 조사를 하기 위해 앨리시아에게 큰 파티를 열도록 주문하고 자기도 초대해 달라고 부탁하는데….

   한편 앨리시아는 비밀리에 세바스천의 열쇠고리에서 포도주 창고 열쇠를 훔친다. 그때 세바스천이 와서 격렬히 포옹하는 바람에 오른손에 쥐고 있던 열쇠를 왼손으로 옮겼다가 이윽고 카페트 바닥에 떨어뜨려 발로 보이지 않게 책상다리 옆으로 밀쳐 놓음으로서 간신히 위기의 순간을 모면하는 앨리시아!

   장면은 리우 데 자네이루 해변가에 있는 세바스천의 맨션. 성대한 파티가 열린다. 이때 카메라가 이층 발코니에서 천천히 이동하면서 로비홀을 높이 넓게 보여주다가 점차 아래로 내려오면서 줌 인(zoom-in)하여, 숨긴 열쇠를 불안해하며 꼼지락거리는 잉그리드 버그만의 오므린 손을 클로스업 해 보여주는 장면이 압권이다.

 

 

데블린이 나타나 앨리시아의 손등에 키스하는 순간 그 열쇠를 눈치 채지 않게 그의 손에 교묘하게 전달하는 앨리시아. 이들의 행동을 질투심에 불타서 은밀하게 감시하는 세바스천의 눈을 피해 둘이서 칵테일을 마시러 가는 사이에, 샴페인을 원샷으로 들이키고 사라지는 사나이가 등장한다. 바로 카메오 역의 히치콕 감독이다. 이때가 영화 시작 후 60분이 지났을 때다.

   데블린은 앨리시아가 망을 보는 사이 와인 창고 안을 조사한다. 그때 데블린이 실수하여 와인병이 바닥에 떨어졌는데 그 병엔 술이 아닌 이상한 검은 모래가루(나중에 우라늄석으로 판명된다)가 들어있다. 샘플을 채취한 후 그 자리에 다른 와인병을 채워놓고 깨끗이 정리하고 문을 잠그고 나온 데블린과 앨리시아.

   그때 세바스천이 모자란 샴페인을 가지러 창고로 접근해 오자 관심을 돌리기 위해 둘은 키스를 한다. 위기를 넘긴 데블린은 그 집을 무사히 빠져 나온다.

 

 

   한편 와인 저장고 문을 열려고 열쇠고리를 끄집어냈으나 열쇠가 없어진 것을 알아차린 세바스천…. 그러나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보니 없어진 열쇠가 고리에 도로 끼워져 있다.

   홀린 듯 앨리시아가 침대에 자고 있는 동안 그가 포도주 창고에 내려가 보니 선반 위에 있는 포도주가 모두 1934년산(産)인데 한 병만 1940년산 레이블이 붙어있는 게 아닌가.

   수상히 여겨 선반 밑바닥 안쪽을 손으로 훑어보니 1934년 레이블이 붙은 깨진 유리병 파편과 검은 모래가 흩어져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세바스천!

   세바스천은 데블린과의 관계를 의심해보다가 드디어 앨리시아가 미국의 첩보원임을 눈치채게 된다. 이제 진퇴양난에 처하게 된 세바스천! 그의 동료 나치들에게 자기의 실수를 실토하면 자신은 물론 사랑하는 앨리시아도 위태롭게 될 터이니, 일단 이 상황을 어머니 안나와 먼저 상의하고 도움을 청하는데….

   그녀는 앨리시아에게 독이 든 커피를 마시게 해 서서히 죽이는 방안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녀를 방에 가두어 두고 나치 관계자들에게는 이 사실을 말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앨리시아가 정보국장을 찾아갔을 때 그 검은 가루는 우라늄석으로 밝혀진다. 그러자 그녀에게 우라늄석 채굴 출처를 밝히라는 새로운 임무가 맡겨지는데….

   현기증을 앓고 있던 앨리시아는 어느 날 세바스천의 친구이며 나치 음모자인 앤더슨 박사(레이놀드 슌젤)가 찾아왔을 때 우라늄석 채굴 장소 뿐만 아니라 그녀의 병의 원인도 알게 된다. 왜냐하면 앤더슨 박사가 실수로 앨리시아가 마시던 커피잔을 집어 들자 세바스천과 안나가 새파랗게 질려 둘이 거의 동시에 못 마시게 말렸기 때문이었다.

 

 

   충격을 받은 앨리시아가 그녀의 방으로 돌아가려다 층계 밑에서 어지러워 쓰러진다. 그녀는 방으로 옮겨졌으나 전화도 치워버렸고 너무나 허약하여 밖으로 나갈 기운도 없었다. 더욱이 그녀 방엔 안나가 뜨개질을 하며 지키고 있다.

   한편 데블린은 5일 동안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는 엘리시아가 궁금해 세바스천의 집을 방문한다. 집사로부터 그녀가 약 일주일 정도 몸져 누워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는 데블린. 그때 세바스천은 나치 관계자들과 회의를 하고 있는데 참석자 모두가 하나같이 자신의 정보가 유출된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세바스천을 마냥 기다리고 있던 데블린은 살며시 앨리시아의 방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가 본다. 침대에 누워있는 그녀로부터 세바스천과 그의 어머니 안나가 독약으로 죽이려 했다는 얘기를 듣고 데블린은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다시는 떠나지 않겠다고 말한다.

   약기운 때문에 몸을 추스릴 수 없는 앨리시아는 "내가 깨어 있게 다시 (사랑한다고) 말해 줘요."라고 속삭이는데….

  

 

이윽고 데블린이 엘리시아를 부축해서 그녀의 방에서 나오다 세바스천과 그의 어머니 안나와 맞닥뜨린다. 남편이 아닌 제3자인 데블린이 나타나 앨리시아를 병원으로 데려가려고 하자 아래층에서 나치 관계자 3명이 아차 하면 응사할 태세를 갖추고 이들을 지켜본다.

   역시 총을 숨기고 층계를 내려오던 데블린이 모자(母子)가 독약을 먹여 죽이려 했다는 사실을 폭로하자 나치 동료들의 의심을 받게 된 세바스천과 안나는 당황한다.

   세바스천은 지난번 잘못된 일로 나치에게 죽임을 당한 과학자를 생각하면서 두려움에 떤다. 집밖까지 따라나온 세바스천은 데블린에게 같이 데려가 달라고 애원한다.

   그러나 데블린과 앨리시아는 그를 나치 친구들에게 남겨놓은 채 총총히 차를 몰고 떠나버린다.

   카메라가 절망감에 젖어 넋이 빠진 듯 힘없이 집으로 되돌아가는 세바스천의 뒷모습을 보여주다가 마침내 안으로 들어가 현관문이 닫히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오명'에서 세바스천의 와인 창고에 나치에 의해 숨겨놓은 우라늄은 당시 그것이 원자탄 개발에 사용된다는 사실을 일반인들은 잘 모를 때였다. 히치콕 감독은 1945년 중반에 캘리포니아 공과대학(Caltech)의 1923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밀리컨(Robert Andrews Millikan, 1868~1953) 교수를 찾아가 우라늄에 대해 문의한 일로 인해 수개월 동안 미연방수사국(FBI)에 의해 추적 당한 일이 있었다고 술회한 바 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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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7
"오명(汚名·Notorious)" (상)

WWII - 전쟁과 여인의 운명 (III)

멜로드라마와 첩보 스릴러 장르의 절묘한 만남

캐리 그랜트·잉그리드 버그만 전성기 불후의 명작

 

 

 

최근에 '오펜하이머'라는 영화가 극장가를 강타하고 있다. 내용은 원폭개발, 이른바 '맨해튼 프로젝트'의 비하인드 스토리로 개발책임자인 유대인 핵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생애와 사상편력을 흥미 있게 그린 영화다. 이 '맨해튼 프로젝트'의 내용이 알려지기 전인 1946년 8월15일에 앨프리드 히치콕이 감독하고, RKO라디오 픽처스가 배급한 영화가 있다.

   1945년 8월6일 히로시마 및 8월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던 1945년 10월부터 1946년 2월까지 제작한 첩보 스릴러 흑백 영화 "오명(汚名·Notorious)"이다.

   잉그리드 버그만이 '백색의 공포(Spellbound·1945)'에서 히치콕 감독과 첫 인연을 맺고 두 번째로 출연한 작품으로, 당시 캐리 그랜트가 42세, 잉그리드 버그만이 31세였으니 두 주연의 전성기 시절에 이 불후의 명작이 만들어진 셈이다. 그리고 '카사블랑카(1942)'에서 루이 르노 서장 역으로 나왔던 클로드 레인즈가 다시 버그만과 공연했다. 러닝타임 101분.

 

 

   참고로 이 영화에서 잉그리드 버그만의 의상이 계속 바뀌는데 '사랑아 나는 통곡한다(The Heiress·1950)' '젊은이의 양지(A Place in the Sun·1952)' '로마의 휴일(1954)' '사브리나(1955)' '스팅(1973)' 등에서 아카데미 의상디자인상을 여덟 차례 수상한 에디트 헤드(Edith Head, 1897~1981)가 맡았다.

   이 영화의 오픈 크레디트가 끝나면 "1946년 4월24일 오후 3시20분, 플로리다 마이애미"라는 타이틀이 뜬다. 그러나 이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무렵의 마이애미'라는 정보일 뿐 줄거리와는 별로 상관이 없다. 히치콕 감독은 이와 똑같은 시간과 날짜를 '사이코(Psycho·1960)'에서도 사용했다.   

   이어서 장면은 플로리다 법정. 존 휴버먼이 나치 독일의 전범으로 징역형 선고를 받는다. 법정에 참석했던 그의 딸 앨리시아 휴버먼(잉그리드 버그만)이 아버지의 일을 잊기 위해 파티를 연다. 파티에 온 미국의 첩보원인 T.R. 데블린(캐리 그랜트)이 그녀에게 브라질로 이동해 간 나치의 조직을 찾아내기 위해 리우 데 자네이루로 갈 것을 종용하는데….

   앨리시아가 협조하기를 거절하자 데블린은 그녀가 아버지와 다투면서 '미국을 사랑한다'고 부르짖는 대화가 녹음된 LP레코드판을 틀어준다. 아마 당시에 녹음재생 방법은 레코드판뿐이었던 것 같다. 이때 뼈있는 말을 내뱉는 앨리시아. "한손에는 깃발을 흔들면서 다른 손으로는 도둑질을 하는 것이 당신들이 말하는 애국심이 아닌가요?…."

  

 

리우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데블린은 앨리시아의 아버지가 감옥에서 독캡슐을 먹고 자살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해준다.

   도착 후 본부에서의 지시를 기다리는 동안 데블린은 정작 앨리시아의 과거 때문에 착잡한 심경이지만 그녀와 열애에 빠진다.

   이때 둘의 키스 장면은 히치콕 영화 중에서 '가장 통정적(通情的)이고 에로틱한 키스 장면'으로 회자된다. 당시 '3초 이상의 키스를 금지'하는 심의 규정 때문에 이를 교묘하게 피해가며 음식과 일상에 대한 사소한 대화를 속삭이고 전화도 받으면서 2분30초 동안 끌어간 이 장면은 강한 격정적인 사랑의 느낌을 표현하는 모범적인 트릭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한때 세바스천이 그녀와 사랑에 빠진 일이 있었다는 얘기를 듣게 되는 데블린.

   데블린은 앨리시아를 만나 짐짓 냉정한 태도를 꾸미고 그녀의 임무를 알려준다. 이에 앨리시아는 데블린이 다만 자기 직업상 목적 성취를 위해 그녀를 사랑한 척 했을 뿐이라고 믿고 보란듯이 이 미션을 수행하기로 결심한다.

   데블린은 앨리시아가 승마클럽에서 세바스천을 자연스럽게 만나도록 주선한다. 이때 세바스천은 그녀를 즉각 알아보고 레스토랑에 초대하여 "항상 다시 만나게 될 줄 알고 있었다"며 크게 기뻐한다.

   세바스천은 앨리시아를 다음날 그의 집 만찬에 초대하는데 거기에는 몇몇 사업상 지인들만 모이는 극비의 자리였다.

   데블린과 미국 정보국장인 폴 프레스콧(루이스 켈헌)은 앨리시아에게 세바스천 주위 사람들의 이름과 국적 등을 파악하라고 지시하고 그녀가 파티에 사용할 고급 목걸이까지 준다.

  

 

다음날 세바스천의 집으로 간 앨리시아는 세바스천의 어머니 안나(레오폴딘 콘스탄틴)와 먼저 맞닥뜨리는데 그녀는 살갑기는커녕 냉랭하게 대한다.

   그런데 만찬석상에서 앨리시아는 한 손님이 와인병을 쑤석거리며 급히 방에서 나가는 것을 목격한다. 어디를 갔다 왔는지 그 신사는 만찬이 끝나서야 돌아와서 사과를 하고는 피곤해서 먼저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하고 황급히 떠난다.

   이때 나치 그룹의 다른 사람이 굳이 그를 바래다 주겠다고 나서는데, 그 신사는 곧 싸늘한 시체로 발견된다.

   다음날 경마장에서 데블린을 만난 앨리시아는 만찬에 참석한 인물들에 관한 정보를 보고한 후 "세바스천의 이름을 내가 상대할 친구 명단에 포함시켜 주세요"라고 말한다. "그렇게 빨리 가까워졌나!"하고 빈정거리는 데블린. "그게 바로 당신이 원하는 바가 아닌가요?"하고 냉정하게 쏘아붙이며 눈가에 이슬이 맺히는 앨리시아.

   이때 이들을 계속 망원경으로 지켜보고 있던 세바스천이 그녀에게 다가와 혹시 데블린을 사랑하고 있는 건 아닌지 슬쩍 물어보는데….

   그 다음날 미정보국장실에 나타난 앨리시아가 세바스천이 청혼을 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다음 지시를 받고자 왔다고 말한다. 프레스콧 국장이 이 상황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데블린에게 의견을 묻자 그는 대뜸 그렇게 하는 것이 낫겠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설마 하고 기대했던 사랑하는 데블린의 냉담한 반응에 깊은 실망감을 안고 드디어 세바스천과 결혼하는 앨리시아. 그러나 세바스천의 어머니는 이 결혼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앨리시아가 데블린을 만나 남편 세바스천이 자기에게 준 집 열쇠뭉치에 포도주 보관 창고 열쇠만 없다고 알린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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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29
'사랑할 때와 죽을 때' (A Time to Love and a Time to Die) (끝)

WWII - 전쟁과 여인의 운명 (II)
다 읽지도 못한 아내의 편지는 강물에 떠내려가고…

 

 

 

(지난 호에 이어)  
   그 후 1942년까지 컬럼비아사에서 반나치 영화를 제작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잠깐 독일로 갔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유니버설 인터내셔널사에서 1950년대(1952~1959)에 주옥 같은 멜로드라마를 제작함으로서 당시 유행하던 가족 멜로드라마 제작의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 중 걸작으로 평가되는 4편의 영화는 '위대한 망령(Magnificent Obsession•1954)', '천국이 허용한 모든 것(All That Heaven Allows•1955)', '바람에 쓴 편지(Written on the Wind•1956)', '사랑할 때와 죽을 때(A Time to Love and a Time to Die•1958)' 이다. 
   특히 '슬픔은 그대 가슴에(Imitation of Life•1959)'는 셔크 감독의 "왕관에 박힌 보석"으로 평가되는 작품으로, 당시 유니버설사에 노다지를 안겨주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고향인 독일로 돌아간 후 영화에서 손을 떼고 스위스의 루가노에서 30년 가까이 여생을 보내다 90세로 세상을 떠났다. 

 

 

   존 가빈(John Gavin, 1931~2018)은 친구의 권유로 유니버설사에서 스크린 테스트를 받고, 193㎝의 건장한 체구에 남성적이고 잘 생긴 점이 '제2의 록 허드슨'으로 낙점 받아 1956년 데뷔했다. 그가 첫 주연하여 스타덤에 올랐던 영화가 바로 '사랑할 때와…'였다. 
   그리고 다음 해 '슬픔은 그대 가슴에(삶의 모방)' 출연 이후 그의 전성기인 1960년에 줄리우스 시저 역으로 나온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스파르타쿠스',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사이코', 도리스 데이와 공연한 '누군가 노리고 있다(Midnight Lace)' 등에 연거푸 출연했다. 

 

   그는 스탠포드 대학에서 라틴아메리카 경제학사(經濟學史)를 전공하였으며 재학 중 해군 ROTC를 수료한 후, 4년의 군복무 기간 중 한국전쟁에 참여하여 1951년부터 종전 때인 1953년까지 미해군 '프린스턴' 함대 소속 공군 정보장교로 근무했다. 
   그는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에 능통하여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 1981~1986년 간 멕시코 대사를 역임하기도 했다. 또 1971~1973년 간 미국 배우조합(Screen Actors Guild) 이사장을 지냈다. 그는 배우로서의 명성만큼이나 사업가로서의 수완이 남달랐던 것으로도 유명했다. 
   그의 부인은 콘스탄스 타워스(Constance Towers•90)인데, 존 웨인, 윌리엄 홀든 주연의 '기병대(The Horse Soldiers•1959)'에서 한나 헌트 양으로 나와 우리와도 안면을 튼 배우이다. 타워스나 가빈 모두 두 번째 결혼이었고, 자녀도 모두 첫 번째 배우자로부터 2명씩 데리고 온 결혼이었다.

 

 

   릴로 풀버(Lilo Pulver•94)의 본명은 리젤로테 풀버(Liselotte Pulver)로 주로 남자 같은 여자 역으로 많이 출연한 스위스 베른 출신 배우. 그러나 그녀는 항상 얼굴에 따뜻하고 즐거운 웃음을 머금고 있는 배우로 잘 알려졌다.
   음악감독 로자 미클로시(Rozsa Miklos, 1907~1995)는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그레고리 펙, 잉그리드 버그만 주연의 '백색의 공포(Spellbound•1945)', 극중의 반복되는 오셀로 역에 급기야는 자신도 질투의 화신이 되어 무의식 속에서 한 여인을 살해하게 되는 로널드 콜맨 주연, 조지 쿠커 감독의 '이중인생(A Double Life•1947)' 그리고 너무도 유명한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벤 허(Ben-Hur•1959)' 등의 음악을 맡아 아카데미 음악상을 3번이나 수상한 헝가리 부다페스트 태생의 유명한 작곡가이다. 

 

 

   여기서 게슈타포 장교 역으로 잠깐 나오긴 했지만 클라우스 킨스키(Klaus Kinski, 1926~1991)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테스(1979)'에서 주연했던 나스타샤 킨스키(63)의 아버지다. 폴란드 조포트 태생 독일 배우로, 튀어나올 듯 부리부리한 눈, 곧잘 삐뚤게 다문 입매에 냉소를 흘리던 그의 이미지는 악역의 대명사처럼 보였다. 
   '닥터 지바고(1965)'에서 굴라크로 돌아가는 기차 속에서 만난 냉소적인 무정부주의자 죄수 역, '속(續) 황야의 무법자(1965)'에서 리 반 클리프에게 고초를 겪다 죽임을 당하는 악당 역 정도가 비교적 알려진 작품들. 
   킨스키의 성장기는 불우하기 짝이 없다. 제2차 세계대전 때 17세의 나이에 독일군에 징집됐던 그는 다음해 1944년 네덜란드에서 전투 개시 이틀 만에 영국군의 포로가 되어 전쟁이 끝날 때까지 영국 포로수용소에서 지냈지만, 독일로 돌아왔을 때는 가족 대부분이 죽고 사라진 뒤였다. 갈 곳 없던 그는 연극무대에 올랐고, 터뜨릴 곳 없는 울분의 출구와 같은 그곳에서 광포한 카리스마와 그만큼 사나운 성격으로 이름을 얻기 시작했다.  

 

 드디어 어렸을 때 동고동락한 인연이 있던 베르너 헤르초크(Werner Herzog•81) 감독의 총애로 발탁되어, 인간의 욕망과 광기 어린 집착을 그린 '아귀레, 신의 분노(Agurre, the Wrath of God•1972)' 등 5편의 영화에 주역으로 등장함으로서, 그의 길들여지지 않은 야수와 같던 신들린 듯한 연기가 스크린에 남게 된다. 
   그는 13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고,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 니콜로 파가니니를 주연하고 연출한 '파가니니(1989)'를 마지막으로 캘리포니아 라구니타스에서 심장마비로 65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그의 시신은 화장되어 태평양에 뿌려졌다. 
   세 번 결혼하여 각각 한 명씩의 자녀를 두었는데 모두 배우로 활약하고 있다. 폴라, 나스타샤 등 딸 둘은 아버지를 돌보긴 했지만 정작 장례식에는 막내인 아들 니콜라이만 참석했다. 안타깝게도 자식들이 부정(父情)을 못 느꼈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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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15
'사랑할 때와 죽을 때' (A Time to Love and a Time to Die) (3)

WWII - 전쟁과 여인의 운명 (II)
다 읽지도 못한 아내의 편지는 강물에 떠내려가고…

 


(지난 호에 이어)
   다음날 에른스트는 게슈타포의 소환장과 관련하여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빈딩을 찾아 간다. 밤새도록 술 마시고 여자를 껴안고 철야 파티를 하던 빈딩이 역시 반갑게는 맞이하는데, 피아노를 치고 있던 강제집단수용소장 까까머리 하이니(쿠르트 마이젤)가 술에 취해 피아노 위에 성냥개피를 장작더미처럼 쌓아놓고 그 위에 보드카 술을 붓고는 불을 지른 다음 가혹한 고문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는 게 아닌가. "유대인 신세는 이런 거야! 이렇게 불태워 버리는 거라구! 음! 핫핫핫…."
   실망감을 안고 나온 에른스트는 불안에 떨면서 엘리자베스를 대신해 게슈타포 사무실을 직접 찾아가는데, 거기서 뜻밖에 게슈타포 장교(클라우스 킨스키)로부터 장인인 크루제 박사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담배상자에 넣은 유골을 전달받는다. 
 

 

 에른스트는 엘리자베스에게 알리지 않은 채 먼저 요셉을 만나 상의한다. 그 사이에 폴만 교수가 체포되었다는 얘기를 듣고는 성당 묘지에 크루제 박사의 유골함을 묻는다. 엘리자베스가 도착했을 때 성당에서는 아기의 세례식이 거행되고 있어 눈치채지 못한다. 
   파괴된 공장 때문에 3일 간 일을 쉬게 된 엘리자베스는 그 사이 사랑스럽고 아담한 게스트하우스에 방 한 칸을 마련한다. 딸같이 대해주는 주인아줌마가 정성스럽게 준비해 준 저녁 식사 때 엘리자베스에게 장인의 죽음을 알리는 에른스트. 오래된 고급 와인을 앞에 놓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엘리자베스. 에른스트는 그녀를 위로한다. 

 

 

   다음날 휴가 연장을 신청하지만 오히려 즉각 귀대하라는 명령을 받는 에른스트. 엘리자베스도 직장에서 마찬가지로 연장거절을 당하는데…. 
   이제 휴가 마지막 날이다. 꿈같은 신혼생활을 마치고 다음날 아침 6시 기차로 떠나야 하는 에른스트는 엘리자베스에게 절대로 배웅 나오지 말라고 당부한다. 공습경보가 울리지만 휴가의 마지막 밤을 차마 방공호에서 보내고 싶지 않아 작은 방 안에 그냥 머문다. 이 신혼부부는 포격소리가 울릴 때마다 서로 더 꼭 껴안으며 마지막 밤을 지새운다.
   화면이 서서히 오버랩되며 이른 아침 전선으로 떠나는 이들을 수송하는 열차를 타는 동료 군인들 속에 에른스트의 모습이 보인다. 귀대하는 날 기차역엔 유대인을 색출하려는 게슈타포의 감시망이 삼엄하다. 역으로 절대 나오지 말라는 남편 에른스트 몰래 역에 나와 몸을 숨기고 먼발치에서 떠나는 기차를 바라보는 엘리자베스! 
   

 

드디어 경적을 울리며 전선으로 가는 열차가 서서히 움직이고 이를 애틋하게 바라보는 엘리자베스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힌다. 창밖에 십자가가 보인다. 그러다 그녀가 아웃포커스 되면서 창틀이 십자가로 클로즈업된다. 이 순간이 그들의 영원한 이별이 될 것임을 암시하는 연출이다. 그러나 아는 듯 모르는 듯 기차는 그렇게 떠나가고…. 
   다시 전투가 계속되는 동부 전선. 러시아군의 무차별 폭격을 받으며 퇴각하는 비참한 독일군들 속에 에른스트 그래버가 보인다. 부상자와 사망자가 속출하는 가운데 전선을 벗어나 어느 마을에 도착한 그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는 사이 우편물이 도착한다. 

   마을 지하실에서 생포한 민간인 포로들을 헛간에 가두고 보초 임무를 맡은 에른스트는 엘리자베스가 보낸 편지를 꺼내 읽으려 한다. 
   그때 에른스트가 속한 부대가 긴급 후퇴 명령을 받게 되면서 슈타인브레너가 남아있는 민간포로들을 사살하기 위해 창고로 온다. 무의미한 살상에 진저리가 난 에른스트가 그를 제지하자 서로 간에 격한 감정과 몸싸움이 벌어진다. 결국 에른스트가 그를 사살하고는 갇혀있던 포로들을 풀어준다. 

 

 

 그리고 미처 읽지 못했던 아내의 편지를 품에서 꺼내 읽는 에른스트. "강가에 있는 자두나무 옆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어요. 나무는 잘 자라고 있어요. 우리도 힘차게 살자고 했었죠. 우린 그러고 있어요. 제가 임신했거든요…" 엘리자베스가 임신했다는 사실에 마냥 기쁘고 행복하기만 한 에른스트!
   그러나 그때 풀어준 민간 게릴라 한 명이 죽은 슈타인브레너의 총을 집어들고 에른스트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총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지고 미처 다 읽지도 못한 편지는 강물로 떨어진다. 다리 위에 쓰러진 에른스트는 편지를 붙잡으려 하지만 손이 닿지 않는다. 다 헤진 장갑 사이로 보이는 손가락이 애처롭다. 
   편지는 흐르는 강물 따라 떠내려가고… 에른스트의 처연한 모습만 강물에 비친다. 봄날의 자두꽃 같은 청춘은 그렇게 슬프게 지고 만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23번 '열정' 2악장(Andante con moto)"이 가슴을 찢어 놓을 듯 흐르는 가운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에른스트 그래버가 꿈꾸었던 휴가에서의 부모와의 상봉은 물거품이 되고 생사조차 모르게 될 때, 전방이나 후방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이 비참하게 생활하거나 죽어갈 때, 양심의 유보에 대한 그의 혼돈은 점차 진전된다. 또한 엘리자베스와의 사랑은 전쟁 중에서 인간성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던 만큼 그에게 절대적이었으나, 오히려 사랑하는 사람을 가지게 됨으로써 그를 잃게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그만큼 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다운 삶을 조금이라도 찾는 그 순간이 그에게는 영원하다. 결국 에른스트는 자신의 양심에 따라 러시아인 포로들을 풀어주기 위해 살인광인 동료 독일군을 살해한다. 그러나 에른스트는 자신이 첫 양심에 따라 움직인 그 행동에 의해 오히려 죽게 된다. 
   요컨대 인간 삶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는 '아름다운 사랑과 행동하는 양심'이며, 인간의 잔인성과 무모함, 무용한 사상•종교 등과 무상함을 극복하여, 남겨진 뿌리로 싹을 돋아내는 자두나무처럼 의연히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더글라스 셔크(Douglas Sirk, 1897~1987) 감독은 덴마크에서 독일로 이주한 부모 밑에서 함부르크에서 태어났다. 본명 한스 데틀레프 시에르크(Hans Detlef Sierck). 1937년 나치 정권 때 정치적 성향이 다르고 두 번째 부인이 유대인이라 이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하여 이름을 더글라스 셔크로 바꾼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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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8
'사랑할 때와 죽을 때'(A Time to Love and a Time to Die) (2)

WWII - 전쟁과 여인의 운명 (II) 
 

다 읽지도 못한 아내의 편지는 강물에 떠내려가고… 
 

(지난 호에 이어)   

 

 

상기된 기분으로 임시숙소인 군병원으로 돌아온 에른스트에게 로이터가 새 군복도 빌려주고, 린다 플라츠에 있는 게르마니아 호텔의 비밀 나이트클럽도 소개해 준다. 
그곳은 고급 장교와 극소수 부유층만이 드나들 수 있는 비밀 클럽이지만 엘리자베스를 위해 2년치의 전투수당을 모두 쏟아 부어 로이터의 추천대로 최고급인 1937년 요하니스베르크 성 여름산(産) 와인과 푸아그라, 킹크랩 등을 주문하며 잠시 전쟁을 잊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한 잔의 와인을 앞에 놓고 두 남녀는 건배한다. "우리 삶에서 사라져버린 모든 것들을 위하여!"라며…
그러나 이곳도 공습경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연합군의 폭격이 시작되어 호텔 지하로 대피하지만 그곳도 안전하지 않아 종업원들과 손님들이 너도 나도 살겠다고 앞다투어 대피소를 빠져 뛰쳐 나갈 때, 에른스트는 유유자적(悠悠自適) 무너지는 셀라에서 고급 와인 두 병을 훔쳐서 맨 마지막으로 나온다. 

 

 

밖에서 그의 생사를 걱정하며 기다리고 있던 엘리자베스는 그가 안전하게 살아있음을 확인하고는 기뻐하며 서로 감격의 포옹을 나눈다. 
엘리자베스는 에른스트를 자신의 집으로 안내한다. 집 창문 밖에 집단수용소 재감자(在監者)들이 길거리에서 강제 노동하고 있는 모습을 보지만 그 속에 크루제 박사는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의 실종으로 마음이 무거운 엘리자베스에게 에른스트가 청혼한다. 
"우리 결혼 할까요?" "비가 올 것 같아요." 동문서답을 하자 농담하지 말라며 그는 동료에게 들은 이야기를 해준다. "결혼하면 200마르크가 나오고 내가 죽으면 또 돈이 나온다."고…. 
아무리 전쟁이라고 해도 이따위 청혼이라니! 둘은 잠깐 실랑이 하다가 이내 포옹한다. 결국 청혼을 받아들인 그녀가 말한다. "나는 당신을 너무 사랑해서 마음이 아파요!" 전시에 최전방에 있는 군인을 사랑한다는 것은 당연히 마음이 아프지만, 농담이 진담이 된다고 했던가… 이들의 대화는 이 영화의 마지막 비극을 암시하기도 한다.

 

 

다음날, 로이터가 에른스트의 결혼 준비를 돕는데, 베처는 귀대 준비를 하면서 시큰둥해서 말한다. "드디어 아내를 찾았는데 100파운드나 살이 빠져서 알아볼 수가 없었다"고… 그러고는 병영으로 떠난다. 
결혼신고 사무실. 에른스트는 결혼 신고에 앞서 엘리자베스가 크루제 박사의 딸이란 게 탄로나면 그녀가 위험에 빠질 것이라는 염려 때문에, 만일 모자를 내려놓으면 문제가 생긴 것으로 알고 도망치는 것으로 약정한다. 
그러나 결혼 신고가 원만히 이루어져 서명을 하기 위해 모자를 벗어 탁자 위에 놓는 바람에 그녀가 사무실 밖으로 도망치는 해프닝이 벌어진다. 

 

 

신혼부부는 엘리자베스의 집에서 세상 밖 모든 일들은 잊기로 하자며 친구 빈딩이 보낸 결혼 축하 샴페인으로 자축 건배를 하고 술잔을 벽으로 던져 깨트린 후 신혼 첫날밤을 보낸다. 독일인이 유럽 어디를 가든 환영 받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독일인을 미워하지 않는 세계를 여행하는 꿈을 꾸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엘리자베스!

그 다음날, 에른스트는 그의 어머니가 자기가 있는 전방에 보냈던 양말과 편지가 들어있는 소포가 고향으로 되돌아와 받게 되자 아직 어머니가 살아있다는 희망을 갖게 된다. 한편 이런 와중에 엘리자베스는 게슈타포로부터 내일 오후 4시까지 출두하라는 소환장을 받게 되어 희비가 교차되는데…. 
그녀의 구명(救命)을 위해 에른스트는 폭격 맞은 얀 플라츠 시 박물관에 숨어있다는 옛 스승인 폴만 교수(원작자인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가 카메오로 출연)를 찾아간다. 그러나 폴만 교수는 자기는 감시 받고 있다며 아무도 본 사람이 없을 때 다시 찾아오라고 부탁하며, 아까 올 때 만났던 노동자들에게는 문을 열어주지 않더라고 얘기하라고 주문한다. 
그때 또 공습경보가 울린다. 이번에는 공장을 폭격하는 대공습이라는 한 노동자의 얘기에 에른스트는 폭격이 퍼붓는 가운데 엘리자베스가 일하고 있는 군수공장으로 달려간다. 공장은 이미 형체도 없이 사라졌지만 한 구조대원이 폭격 전에 다른 사고가 있어 직원들을 모두 일찍 집으로 돌려보냈다며 집에 가서 확인해 보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그러나 두 사람이 살던 집도 폭격을 맞아 아수라장이다. 에른스트는 불타고 있는 집으로 들어가 가방, 이불과 옷가지 등 그리고 화분과 크루제 박사 사진액자까지 챙겨갖고 나온다. 에른스트는 엘리자베스가 걱정되어 안절부절이지만 무사히 돌아온 것을 확인한 둘은 폴만 교수가 숨어있는 시 박물관에서 함께 밤을 보낸다. 
폴만 교수는 에른스트에게 같이 숨어 지내는 유대인 요셉을 소개한다. 게슈타포의 소환장을 검토해 본 요셉은 정보를 캐내기 위한 목적이며 그래서 본인이 출두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에른스트는 10일 후에 휴가가 끝나면 아내 혼자 남아야 하니 친위대 친구 빈딩에게 도움을 요청해야겠다며 떠나려 하는데…. 
이때 폴만 교수가 "복귀 안 할 생각도 있는가?"하고 묻는다. 요셉은 탈영은 총살이고 아내와 같이 도망치는 건 힘들 거라고 말한다. 또 폴만 교수도 부모님이 살아있다면 그들을 이용해서 너희들을 찾을 거고 숨겨줘도 사형이니까 탈영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한다. 
에른스트는 믿을 게 아무것도 없다며 폴만 선생에게 묻는다. "교수님, 이 세상에 아직 믿을 게 남았습니까?" "믿을 만한 게 있지." "뭐죠?" "하느님." "아직도 하느님을 믿으세요?" "더더욱 믿지." "의심 같은 건 없으세요?" "당연히 있지. 하지만 시험 당하지 않으면 믿음도 없는 거라네."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어떻게 믿음이 생기세요?" "이건 하느님이 뜻하신 일이 아니야. 우리가 저지른 실수이지."
은사 폴만의 신에 대한 지속적인 믿음과 요셉의 모든 독일인을 경멸하지는 않는 지각 있는 결단력에 감동을 받아 그 자신의 공포스런 전쟁에 대한 책임감에 회의를 품게 되는 에른스트. "독일은 이 전쟁에서 패배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세계가 불행해진다"고 말하는 폴만 교수. 결국 '인간이 선택하는 일은 신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 작가의 생각으로 여겨지는 대목이다. 요셉은 유사시 엘리자베스를 구난해 줄 것을 약속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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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1
'사랑할 때와 죽을 때' (A Time to Love and a Time to Die) (1)

WWII - 전쟁과 여인의 운명 (II)
다 읽지도 못한 아내의 편지는 강물에 떠내려가고…

 

 


   2022년에 넷플릭스 오리지널 독일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가 에드바르트 베르거 감독에 의해 리바이벌 되었다. 이는 독일 작가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Erich Maria Remarque, 1898~1970)가 제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1929년에 쓴 동명의 소설을 바탕으로 리메이크된 것이다. 
   이 원작을 맨 처음 영화화한 작품이 1930년 루이스 마일스톤 감독의 동명의 흑백영화였다. 요컨대 정작 독일작가의 작품을 독일감독에 의해 제작되는 데 거의 1세기가 걸린 셈이다.[註: 1930년 영화 '서부전선 이상없다'는 본보 390회(2020.10.9) 참조]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는 또 1954년에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쓴 '사랑할 때와 죽을 때(A Time to Love and a Time to Die)'라는 소설을 발표했는데 이 작품도 동명으로 영화화 되었다. 
   1958년 유니버설 인터내셔널사 배급. 시네마스코프 컬러 작품. 감독 더글라스 셔크. 출연 존 가빈, 릴로 풀버, 키난 윈, 클라우스 킨스키 등. 러닝타임 132분.
 

 

 

 화사한 자두나무 꽃이 한잎 두잎 떨어지더니 어느새 흰 눈이 흩날리며 눈이 쌓이기 시작하고 퇴각하는 군인들의 처참한 모습이 화면으로 들어온다. 제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인 1944년 동부 러시아의 독일 전선. 패색이 짙어 동부전선으로부터 퇴각하는 독일군들이 마을에 도착해 인원 점검을 해보지만 많은 병사들이 실종된 상태이다. 
   서로 죽고 죽이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눈 덮인 들판에, 얼어붙었던 눈이 녹으면서 질퍽거리는 진흙 바닥에서 동료의 시체들이 발견된다. 전장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어느 병사가 말한다. "눈이 녹고 시체가 발견되면 봄이 온다는 거지." 
   진흙바닥의 눈 녹은 물은 마치 시체가 흘리고 있는 눈물처럼 보이나 병사들의 가슴에는 그런 낭만적 감정이 전혀 없다.

 

 

   마을에 숨어 있던 러시아 민간인 4명을 게릴라 혐의로 체포한 독일군들은 피에 굶주린 친위대 출신 살인광 슈타인브레너(벤크트 린드스트롬, 스웨덴 스톡홀름 출신 배우)와 신병 허쉬랜드(짐 허튼, 1980년 영화 '보통사람들'에서 아카데미 최우수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티머시 허튼의 아버지)로 하여금 처형토록 한다. 
   그 보상으로 구하기 힘든 보드카가 나오지만 젊고 순수한 허쉬랜드는 자신의 살인적 행동에 심리적인 갈등을 느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를 본 에른스트 그래버(존 가빈)는 착잡해 하지만 중대장은 허쉬랜드의 죽음을 사고 처리하면서 입막음을 하기 위해 얼른 휴가를 떠나라고 말한다. 기차역에서는 휴가병들에게 식료품을 나누어주고 있다. 후방에 있는 가족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얄팍한 위장선전 행위에 불과하다. 
   에른스트는 2년 만에 첫 휴가를 얻어 고향을 찾아온다. 그러나 고향 마을은 연합군의 폭격으로 온통 폐허로 변했고 부모님의 행방 또한 묘연하다. 부모님의 행적을 찾기 위해 우체국에 들렀다가, 몸무게가 200파운드 나가는 아내를 찾고 있던 헤르만 베처(돈 디포르)를 만난다. 베처는 에른스트에게 자기가 있는 의무대에서 같이 지내자고 한다. 

 

 

   그때 의사 얘기가 나오자 어머니의 주치의였던 크루제 박사 생각이 나서 에른스트는 그의 딸 엘리자베스 크루제(릴로 풀버)를 만나러 간다. 
   엘리자베스는 가족과 헤어져서 혼자 피난민들과 함께 방 한 칸을 얻어 불안한 나날을 보내며 생활하고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이 전쟁이 연합군에게 질 것"이라는 말 한마디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게슈타포에 의해 강제수용소로 끌려갔다며 혹시 에른스트가 아버지의 소식을 아는가 해서 반겼는데… 그녀는 저윽이 실망하는 눈치다.
   그들이 헤어지려 할 즈음 공습경보가 울린다. 그러나 그녀는 태연히 키우던 화분에 물을 주면서 이것이 그나마 자유를 오롯이 누릴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며 대피하지 않는데, 에른스트가 설득하여 지하방공호로 함께 대피한다. 거기서 에른스트는 많은 이웃들이 죽고, 그나마 남아있는 사람들도 비탄에 젖어 있어 전쟁의 또 다른 참상을 목격한다. 엘리자베스가 에른스트에게 말한다. "느껴져요? 공포예요…." 

 

 

    방공호에서 나와 헤어지면서 에른스트가 전선에서 받은 식료품을 주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화를 내며 거절한다. 전쟁 중에 귀한 식료품을 주는 것은 곧 자신의 몸을 대가로 요구하는 것이라고 오해했기 때문이다. 이에 화가 난 에른스트는 길거리의 여자에게 그 식료품을 줘버리고 숙소인 막사로 돌아온다. 
   의무대에서 베처와 통풍 치료를 받고 있는 로이터(키난 윈)를 만난다. 로이터는 에른스트에게 3주 간의 휴가는 인생으로 따지면 10년과 같다며 휴가를 그의 생애 마지막인 것처럼 보내라고 권고하는데….
   다음날 에른스트는 부모님을 찾을 단서를 찾기 위해 길을 나섰다가 우연히 고등학교 동창이며 지금 나치 장교인 친구 오스카 빈딩(대이얼 데이비드, 1976년 영화 '록키'에서 세계적 권투시합 프로모터 역으로 나온 배우로, 별명이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이다)을 만난다. 
   빈딩은 에른스트를 자기 차에 태우고 그의 호화저택으로 데려가 음식과 술을 대접하고 라일락향을 듬뿍 뿌린 욕조에서 더운물 목욕까지 하게 한다. 그리고 빈딩은 부모님을 찾아주겠다고 약속하고, 그에게 낙제점수를 줬던 은사 폴만 교수를 투옥시키기도 했다며 폼을 잡는다.
 

 

 친구의 호화 저택에서 후한 대접을 받긴 했으나 마음은 씁쓰름한 채 나온 에른스트는 폐허가 된 건물벽에 엘리자베스가 남긴 메모를 보고 기쁜 마음으로 그녀의 집을 찾아간다. 엘리자베스는 자두꽃 향기를 맡으며 봄이 온 것 같다고 말하고, 간밤에 그에게 무례하게 대한 것에 대해 사과한다. 두 남녀는 쑥스럽긴 하지만 강가로 산책을 나간다. 
   하늘에 뜬 첫 별을 보자 엘리자베스가 기뻐 소리친다. 에른스트가 "무슨 소원을 빌어요?"하고 묻자 그녀는 "저게 폭격기가 아니기를!"하고 대답한다. 두 남녀는 강가에서 폭격으로 나무의 절반은 죽었지만 절반은 꽃이 핀 자두나무를 보며 우리도 저 나무처럼 열심히 살자고 다짐하면서 첫 키스를 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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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18
'해바라기(Sunflower)' (하)

WWII - 전쟁과 여인의 운명(I)
평생 전쟁터에 간 남편만을 기다리며 살아온 한 여인의 순애보! 

  
(지난 호에 이어)
 드디어 조반나는 마네킹 공장 노동자 에토레(게르마노 롱고)와 결혼하여 가정을 꾸민다. 이들 사이에서 아들이 하나 태어난다. [註: 이 아들은 실제 소피아 로렌과 카를로 폰티 부부 사이에서 1969년 12월29일 태어난 장남 카를로 폰티 주니어로 사상 최연소 배우인 셈.]
   어떠한 이별이든 떠난 사람만 괴로운 건 아니다. 한마디 말도 없이 남편의 사진을 기차역에 떨어뜨리고 가버린 조반나는 안토니오의 가슴에 깊은 그리움을 남기고, 그 그리움은 향수(鄕愁)가 되어 안토니오는 결국 이탈리아로 발길을 돌리게 된다. 

 

 

   안토니오가 밀라노에 도착해서 여러 번 전화를 하지만 조반나는 만나주지 않는다. 결국 재회를 승락한 그녀는 안토니오가 결혼 선물로 주었던 귀걸이를 찾아 단장하고 비바람 천둥을 헤치며 찾아온 안토니오와 하룻밤을 지낸다. 
   안토니오는 조반나에게 러시아로 같이 가자고 제의한다. 전쟁이 사람을 변화시켰지만 죽음에서 헤어나 새 아내와의 새 삶이 얼마나 안전한지를 설명하면서…. 
   오직 일편단심 태양만을 바라보며 피어나는 해바라기처럼 평생을 오직 한 남자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기구한 한 여인의 순애보! 그러나 두 사람의 딸과 아들을 위해 각자의 길을 가야만 하는 운명이다. 
 

 

 

 안토니오는 떠나기 전에 조반나에게 털목도리를 선물한다. 이는 둘의 결혼 때 약속한 것이었다. 이 어색한 어둠 속의 재회에서 아무리 서로를 으스러지도록 안아보아도 그 포옹과 키스가 다시 둘을 갈라놓는 현실의 이별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두 사람은 잘 알고 있었기에 둘의 입맞춤이 그토록 길었나 보다!
   플랫폼을 미끄러지듯 떠나가는 기차. 조반나는 이별의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흐느끼는데… 기차는 안토니오를 싣고 조반나에게서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점점 멀어져 간다. 영원히…. 

 

 

   이 영화의 음악감독 헨리 맨시니(Henry Mancini, 1924~1994)는 '티파니에서 아침을(Breakfast at Tiffany's•1961)'의 주제곡인 '문 리버'의 작곡가로 유명하며, '하타리(1962)'에 나오는 '아기코끼리의 걸음마'로 우리에게 친숙한 인물이다. 
   '샤레이드(Charade•1963)'와 '핑크 팬더(Pink Panther•1964)' '어두워질 때까지(Wait Until Dark•1967)' 등 수많은 영화음악을 작곡하여 네 번의 아카데미 음악상과 열 번의 그래미상을 수상한 유명한 작곡가이다. 
   특히 '해바라기'에서 전편을 통해 사랑과 이별과 추억을 아우르는 주제곡이 악기와 템포를 바꾸어가며 감동적이고 슬프고도 아름답게 연주된다.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Marcello Mastroianni, 1924~1996)는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달콤한 인생(La Dolce Vita•1960)'과 '8½(1963)'에 출연하여 국제적인 배우로 발돋움한다. 
   그가 췌장암으로 72세로 죽었을 때 스웨덴 출신 글래머 배우 아니타 에크베리와 공동 출연한 '달콤한 인생'에 소개됐던 로마의 트레비 분수(Trevi Fountain)를 상징적으로 멈추고 검은 휘장을 둘러쳐 조의를 표할 만큼 한 때를 풍미했던 유명한 이탈리아 배우이다. [註: 007시리즈 2탄 '위기일발(From Russia with Love, 1963)'에서 제임스 본드의 동료 알리 케림 베이가 러시아 비밀요원 크릴렌쿠를 저격하는 장면이 있다. 건물 벽에는 대형 영화 포스터가 그려져 있는데 크릴렌쿠가 그 포스터에 있는 여자의 벌어진 입술 부분에 나 있는 창문을 통해 도망친다. 이 포스터가 봅 호프와 공연한 아니타 에크베리(Anita Ekberg, 1931~2015)의 '이 몸이 브와나(Call Me Bwana, 1963)'이다. 이때 본드는 "빚을 한방에 갚는군. 여자가 입만 닫았어도…"라고 익살스럽게 내뱉는다. ] 

 

 

   그의 마지막 영화는 포르투갈 출신 거장 마누엘 데 올리베이라(Manoel de Oliveira, 1908~2015) 감독의 '세계의 시초로의 여행(Voyage to the Beginning of the World•1997)'으로 사후에 개봉되었다.
   미남형인 그는 여성 편력으로 더 유명했는데, '연인들의 장소(A Place for Lovers•1968)'에서 공연한 페이 더너웨이(Faye Dunaway•83)와 재혼할 뻔 했고, 70년대에 네 번이나 공연한 카트리느 드뇌브(Catherine Deneuve•80) 사이에 프랑스 배우이자 가수인 딸 키아라 마스트로얀니(51)를 낳기도 했다. 
   참고로 둘이 공연한 4편의 영화는 It Only Happens to Others (1971), Liza (원제 La Cagna, 1972), A Slightly Pregnant Man (1973) 그리고 Don't Touch the White Woman! (1974)이다.
   그 외에도 로렌 허튼, 어슐라 안드레스, 아누크 에메,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등과 염문을 뿌리다가 마지막에 작가이며 영화감독인 안나 마리아 타토(Anna Maria Tato, 1940~2022)와 죽을 때까지 함께 했다.
   루드밀라 사벨례바(Ludmila Mikhaylovna Savelyeva•81)는 러시아 출신 세르게이 본다르추크 명감독의 '전쟁과 평화(1967)'에서 주인공 나탸샤 로스토바 역으로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함으로써 일약 이름을 날린 러시아 배우이다. 
   "해바라기"를 통해 고전 영화는 역시 극장문을 나설 때 마음속에 담아 가지고 갈만한 그런 내용이 지금보다 훨씬 많았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단순히 나이 탓만은 아닐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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