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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명(汚名·Notorious)"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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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II - 전쟁과 여인의 운명 (III)

멜로드라마와 첩보 스릴러 장르의 절묘한 만남

캐리 그랜트·잉그리드 버그만 전성기 불후의 명작

 

 

 

최근에 '오펜하이머'라는 영화가 극장가를 강타하고 있다. 내용은 원폭개발, 이른바 '맨해튼 프로젝트'의 비하인드 스토리로 개발책임자인 유대인 핵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생애와 사상편력을 흥미 있게 그린 영화다. 이 '맨해튼 프로젝트'의 내용이 알려지기 전인 1946년 8월15일에 앨프리드 히치콕이 감독하고, RKO라디오 픽처스가 배급한 영화가 있다.

   1945년 8월6일 히로시마 및 8월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던 1945년 10월부터 1946년 2월까지 제작한 첩보 스릴러 흑백 영화 "오명(汚名·Notorious)"이다.

   잉그리드 버그만이 '백색의 공포(Spellbound·1945)'에서 히치콕 감독과 첫 인연을 맺고 두 번째로 출연한 작품으로, 당시 캐리 그랜트가 42세, 잉그리드 버그만이 31세였으니 두 주연의 전성기 시절에 이 불후의 명작이 만들어진 셈이다. 그리고 '카사블랑카(1942)'에서 루이 르노 서장 역으로 나왔던 클로드 레인즈가 다시 버그만과 공연했다. 러닝타임 101분.

 

 

   참고로 이 영화에서 잉그리드 버그만의 의상이 계속 바뀌는데 '사랑아 나는 통곡한다(The Heiress·1950)' '젊은이의 양지(A Place in the Sun·1952)' '로마의 휴일(1954)' '사브리나(1955)' '스팅(1973)' 등에서 아카데미 의상디자인상을 여덟 차례 수상한 에디트 헤드(Edith Head, 1897~1981)가 맡았다.

   이 영화의 오픈 크레디트가 끝나면 "1946년 4월24일 오후 3시20분, 플로리다 마이애미"라는 타이틀이 뜬다. 그러나 이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무렵의 마이애미'라는 정보일 뿐 줄거리와는 별로 상관이 없다. 히치콕 감독은 이와 똑같은 시간과 날짜를 '사이코(Psycho·1960)'에서도 사용했다.   

   이어서 장면은 플로리다 법정. 존 휴버먼이 나치 독일의 전범으로 징역형 선고를 받는다. 법정에 참석했던 그의 딸 앨리시아 휴버먼(잉그리드 버그만)이 아버지의 일을 잊기 위해 파티를 연다. 파티에 온 미국의 첩보원인 T.R. 데블린(캐리 그랜트)이 그녀에게 브라질로 이동해 간 나치의 조직을 찾아내기 위해 리우 데 자네이루로 갈 것을 종용하는데….

   앨리시아가 협조하기를 거절하자 데블린은 그녀가 아버지와 다투면서 '미국을 사랑한다'고 부르짖는 대화가 녹음된 LP레코드판을 틀어준다. 아마 당시에 녹음재생 방법은 레코드판뿐이었던 것 같다. 이때 뼈있는 말을 내뱉는 앨리시아. "한손에는 깃발을 흔들면서 다른 손으로는 도둑질을 하는 것이 당신들이 말하는 애국심이 아닌가요?…."

  

 

리우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데블린은 앨리시아의 아버지가 감옥에서 독캡슐을 먹고 자살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해준다.

   도착 후 본부에서의 지시를 기다리는 동안 데블린은 정작 앨리시아의 과거 때문에 착잡한 심경이지만 그녀와 열애에 빠진다.

   이때 둘의 키스 장면은 히치콕 영화 중에서 '가장 통정적(通情的)이고 에로틱한 키스 장면'으로 회자된다. 당시 '3초 이상의 키스를 금지'하는 심의 규정 때문에 이를 교묘하게 피해가며 음식과 일상에 대한 사소한 대화를 속삭이고 전화도 받으면서 2분30초 동안 끌어간 이 장면은 강한 격정적인 사랑의 느낌을 표현하는 모범적인 트릭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한때 세바스천이 그녀와 사랑에 빠진 일이 있었다는 얘기를 듣게 되는 데블린.

   데블린은 앨리시아를 만나 짐짓 냉정한 태도를 꾸미고 그녀의 임무를 알려준다. 이에 앨리시아는 데블린이 다만 자기 직업상 목적 성취를 위해 그녀를 사랑한 척 했을 뿐이라고 믿고 보란듯이 이 미션을 수행하기로 결심한다.

   데블린은 앨리시아가 승마클럽에서 세바스천을 자연스럽게 만나도록 주선한다. 이때 세바스천은 그녀를 즉각 알아보고 레스토랑에 초대하여 "항상 다시 만나게 될 줄 알고 있었다"며 크게 기뻐한다.

   세바스천은 앨리시아를 다음날 그의 집 만찬에 초대하는데 거기에는 몇몇 사업상 지인들만 모이는 극비의 자리였다.

   데블린과 미국 정보국장인 폴 프레스콧(루이스 켈헌)은 앨리시아에게 세바스천 주위 사람들의 이름과 국적 등을 파악하라고 지시하고 그녀가 파티에 사용할 고급 목걸이까지 준다.

  

 

다음날 세바스천의 집으로 간 앨리시아는 세바스천의 어머니 안나(레오폴딘 콘스탄틴)와 먼저 맞닥뜨리는데 그녀는 살갑기는커녕 냉랭하게 대한다.

   그런데 만찬석상에서 앨리시아는 한 손님이 와인병을 쑤석거리며 급히 방에서 나가는 것을 목격한다. 어디를 갔다 왔는지 그 신사는 만찬이 끝나서야 돌아와서 사과를 하고는 피곤해서 먼저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하고 황급히 떠난다.

   이때 나치 그룹의 다른 사람이 굳이 그를 바래다 주겠다고 나서는데, 그 신사는 곧 싸늘한 시체로 발견된다.

   다음날 경마장에서 데블린을 만난 앨리시아는 만찬에 참석한 인물들에 관한 정보를 보고한 후 "세바스천의 이름을 내가 상대할 친구 명단에 포함시켜 주세요"라고 말한다. "그렇게 빨리 가까워졌나!"하고 빈정거리는 데블린. "그게 바로 당신이 원하는 바가 아닌가요?"하고 냉정하게 쏘아붙이며 눈가에 이슬이 맺히는 앨리시아.

   이때 이들을 계속 망원경으로 지켜보고 있던 세바스천이 그녀에게 다가와 혹시 데블린을 사랑하고 있는 건 아닌지 슬쩍 물어보는데….

   그 다음날 미정보국장실에 나타난 앨리시아가 세바스천이 청혼을 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다음 지시를 받고자 왔다고 말한다. 프레스콧 국장이 이 상황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데블린에게 의견을 묻자 그는 대뜸 그렇게 하는 것이 낫겠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설마 하고 기대했던 사랑하는 데블린의 냉담한 반응에 깊은 실망감을 안고 드디어 세바스천과 결혼하는 앨리시아. 그러나 세바스천의 어머니는 이 결혼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앨리시아가 데블린을 만나 남편 세바스천이 자기에게 준 집 열쇠뭉치에 포도주 보관 창고 열쇠만 없다고 알린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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