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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도원
leed2017

 

동쪽 울타리 아래서 국화를 따다

유유히 남산을 바라보니

산 경치 해질녂이라 아름답고

날아다니던 새는 짝이어 돌아간다

(…採菊東籬下 / 悠然見南山 /

山氣日夕佳 / 飛鳥相興還 / …)

 

 귀거래사를 읊조리며 고향으로 돌아온 중국 동진의 시인 도연명이 ‘술을 마시다’라는 제목으로 지은 다섯번째 시(詩)입니다. 위에 인용한 것은 시의 시작이 아니라 시의 중간부터 4줄만 따온 것이지요.

 그로부터 10여년을 고향산수에 발 담그며 살면서 인생의 참뜻을 깨닫게 된 쉰 세살의 도연명이 내놓은 이 작품은 그의 평생 지은 120여편 시를 통틀어 가장 많이 애송되는 구절입니다. 그가 남긴 시 대부분은 전원생활의 한적하고 고요함을 노래한 것이었습니다.

 도연명은 전원생활의 즐거움을 그린 시 말고도 그가 동경하는 도원경(桃源京: 유토피아)을 그린 ‘도화원기(記)’로도 유명하지요. 이야기는 한 어부와 복숭아꽃으로 시작합니다.

 동진시대 때 무릉에 사는 한 어부가 복숭아꽃이 곱게 떠내려 오는 것을 발견하고 시냇물을 따라 올라가보니 갑자기 복숭아 나무로 뒤덮힌 숲이 나타났다. 어부는 그 아름다움에 취하여 자신도 모르게 그 숲을 따라 올라갔다. 한참 올리가다 보니 복숭아 나무 숲이 끝나는 지점에서는 산이 가로막혀 있고 굴이 눈에 띄였다.

 어부는 배를 버리고 굴 속으로 들어갔다. 굴 입구는 매우 비좁고 어두웠지만 수십보 걸어 들어가다 보니 갑자기 환해지면서 별천지가 나타났다. 넓은 들, 가지런히 세워진 건물, 논두렁 밭두렁이 보이고 비옥한 전답과 연못, 뽕나무와 대나무가 보기좋게 어우러져 있었다. 장닭이 울고 삽살개가 꼬리를 흔들며 반기고 있었다. 어쩌면 그렇게도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인가.

 어부는 자기 눈을 의심하였다. 사람들은 각자 생업에 열중하며 해가 뜨면 밭에 나가 일하고 해가 지면 집에 돌아와 쉬는 요순 시대의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로는 이곳에 사는 주민들의 선조가 진(秦)나라 때 난리를 피하여 이곳에  옮겨왔다는 것이며 그후 오랫동안 바깥세상과 단절된 채 오늘날까지 지내왔다는 것이다.

 어부는 그곳에서 며칠동안 머무른 후 작별을 고하였다. 어부는 가족들을 데리고 그곳에 와서 살아볼 생각으로 돌아오는 길에 여러군데에 표시를 해놓았으나 다시는 그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 어부의 이야기를 듣고 여러 사람들이 그곳을 찾으려 했으나 모두 실패하였다.

 도원경은 아름다운 곳이었으나 두말할 것도 없이 그런 곳은 실제론 존재하지 않는 곳. 착한 마음을 가진 시인이 어지러운 세상의 괴로움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기 위해 붓으로 그리워하던 이상향을 기술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걸핏하면 예로 아름다운 경치만 보면 “와, 무릉도원이다”라는 일곱글자를 내뱉습니다. 그러니 나는 무릉도원=빼어난 경치로 봅니다. 단군 이래 최고의 선비로 불리는 퇴계(退溪) 이황도 그의 ‘도산 십이곡’에서 청량산의 빼어난 경치를 두고 “도화(桃花)야 떨어지지 마라, 어주자(낚시꾼) 알까 하노라”고 읊었고, 퇴계와 쌍벽을 이루고 퇴계의 동갑내기 학자 지리산 산천제(山天祭)의 남명(南冥) 조식도 “두류산 양단수를 예듣고 이제보니 / 도화 뜬 맑은 물에 산영조차 잠겼세라 / 아이야 무릉이 어디메뇨 나는 옌가 하노라”하여 지리산의 비경을 자랑하였습니다.

 퇴계나 남명 말고도 조선의 선비들은 좋은 경치만 보면 조건반사적으로 무릉도원을 그의 시 어느구석에 끌어 앉히려고 애를 썼습니다.

 내가 태어나서 자란 곳도 봄이면 꽃피고 새우는 청량산 자락. 청량산 무릉도원에서 떨어진 복사꽃이 우리집 앞을 떠내려 갈 법도 하지만 실제 그런 일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복사꽃이 떨어져 떠내려 온다는데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면 활짝 핀 얼굴은  커녕 삶에 가난에 찌든 얼굴들만 보였지 무릉도원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밝은 표정들은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나는 3년 내지 4년마다 한국을 다녀오곤 합니다. 벌써 10번은 넘었지 싶습니다. 갈 때마다 나는 소위 말하는 명승지 한 곳은 보고 오지요. 내가 찾아간 무릉도원 혹은 명승지라 불리는 곳도 자세히 살펴보면 요사이 와서 큰 변화를 겪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내 생각에 가장 큰 변화는 무릉도원 근처에 사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인 것 같습니다. 내 방문의 초기(1975년대)에는 삶에, 가난에 지친 표정들이 많이 눈에 띄였는데 40년 세월이 지난 오늘날 지친 표정들은 밝고 명랑한 표정으로 많이 바뀐 것 같습니다.  

 무릉도원의 풍광을 통째로 바꾸어 버리는 불도저 개발 패거리들도 지적하고 싶습니다. 이들 불도저 패거리들은 무릉도원이고 아니고를 가리지 않고 단 며칠 안으로 무릉도원이나 그 근처를 폐허로 만들어 버립니다.

 퇴계가 “도화야 떨어지지 마라, 어주자 알까 하노라”를 읊조리던 청량산 입구에는 모텔, 노래방, 식당 등 각종 유흥시설들이 동네를 이루고 있지요. “사람이 승지(勝地)를 모르니 알게한들 어떠리”로 끝을 맺은 율곡(栗谷) 이이의 고산구곡도 나은 것은 없을 것입니다.

 두 무릉도원 승경 모두가 불도저에 할퀴고 새로운 장식과 분장에 옛날의 분장들은 터를 잃고 말 것 같습니다. (202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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