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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장국
leed2017

 

 '보신탕'이란 말은 개고기를 고아 끓인 국을 가리키는 말로 '개장국'의 속어(俗語)이다. 보신탕이란 말 말고도 지양탕(地羊湯), 구장(狗醬), 사철탕, 계절탕 등 뜻이 같은 말들이 여럿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어렸을 때 살던 집은 솔밭 속 외딴곳에 있었기 때문에 밤을 지키는 개[犬]들과는 인연이 유별나다. 우리 집에서 기르던 개는 전부가 똥개들이었다. 저먼 셰퍼드(German shepherd) 같은 고급(?) 개는 우리가 서울에서 살 때 한 마리 있었으나 시골집에는 없었다. 


 이들 똥개들은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저 멀리서 알아보고 쫓아와서 반갑다고 마구 달려들어 내 새 옷을 흙투성이로 만들어 놓았다. 집에서 심심할 때는 개를 데리고 낙동강가에 가서 함께 놀곤 했다. 그러니 개는 나같이 외롭게 자란 아이의 둘도 없는 친구요 무조건 나에게 복종하는 충성스러운 몸종이었다.


 이 정든 개가 어느날 아침 동네 장정 몇 사람에게 끌려가서 나뭇가지에 매달려 숨이 끊어질 때까지 두들겨 맞는다. 개는 두들겨 맞아 죽은 개라야 맛이 있단다. 생명이 끊어진 개가 다음에 가는 곳은 보신탕을 위해 마련된 큰 가마솥이다.


 내 정(情)든 개가 비명을 지르며 맞아 죽는 과정을 울면서 지켜본 나는 속으로 '앞으로 다시는 개장국을 입에 대지 않겠다.'고 굳게 굳게 맹세를 한다. 그러나 그 맹세는 채 이틀이 못가서 솟아 오르는 개장국의 향기로운 냄새에 떠밀려 사라져 버리고 나는 내가 언제 그런 맹세를 했느냐는 듯이 개장국으로 숟가락이 간다.


 내가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개장국은 노골적인 수난을 받기 시작한 거로 기억한다.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는 개를 잡아먹지 않으며 개를 잡아먹는 것은 미개인이라는 말도 들려왔다. 내가 평소에 마음속으로 흠모하고 존경했던 미국 사람들이 먹지 말라고 했으니 우리도 그렇게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나뿐만 아니라 한국 사람 거의 전부가 미국의 문학적인 노예가 아니었던가. 무슨 물건이든지 미국에서 만든 것이 좋고, 미국이라는 나라는 가난한 사람은 도대체 눈에 띄지 않고 모든 국민이 다 잘 먹고 잘사는 나라. 6.25 사변 때 우리나라를 구해준 겨레의 은인이 개고기를 먹지 말라는 말은 머릿속에 여간 큰 혼란을 가져온 것이 아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한 태도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의 미국에 대한 반감이랄까 실망은 개장국에서 시작했지 싶다. 20대 중반에 밴쿠버로 유학을 왔다. 이 북미대륙 사람들은 개를 개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것을 내 눈으로 보았다. 한국에서 개는 어디까지나 동물, 내가 살던 시골에서는 집 밖에서 잠자고, 집 밖에서 똥 오줌 누고 사는 가축이다. 그러니 닭이나 염소를 길러서 잡아먹는 것과 별다를 게 없다. 


 그러나 북미대륙에서는 개는 개 이상의 대접을 받는다는 것은 동네 반 바퀴만 돌아봐도 알 수 있다. 어떤 개는 사람 이상의 대접을 받는다. 개가 아프면 온 집안 식구들이 근심스러운 표정이 되고 개가 소천(召天: 죽는다는 기독교에서 쓰는 말) 하는 날에는 온 식구가 상주가 된다. 이러다가는 개 찜질방, 개 장례식장도 생길 날이 올 것 같다.


 일 년에 한번씩 대구대학에 방문 교수로 3, 4주를 다녀오던 시절에 동료 교수들과 전라도 무주구천동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어느 개장국 집에 들른 적이 있다. 나는 일행이 개장국집에 간다는 것을 미리 알았으나 아내에게는 이 말을 하지 않았다. 개장국인지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아내는 보통 고깃국으로 알고 맛있게 먹는 게 아닌가. 그걸 보고 혼자 얼마나 킬킬대고 웃었는지 모른다. 지금 아내는 개장국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개장국 애호가가 되었다.


 초등학교 시절, 예안 장날이면 아버지를 따라 면사무소 건너편 골목에 있던 개장국 집을 들어서던 때가 바로 엊그제 일 같다. 개장국을 먹는 나를 내려다 보시고 “사내가 우째 양(量)이 그르노!” 하시던 아버님도 세상을 뜬 지 40년이 넘었다. 부정(父情)의 인자한 그늘 아래서 개장국을 먹던 나에게도 무정한 세월은 오가서 여든이 내일 모레다. 오늘 같은 날은 그 개장국 한 그릇이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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