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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이야기(66)
leed2017

 

눈으로 기약터니 네 과연 피었구나
황혼에 달이 오니 그림자도 성긔거다
청향(淸香)이 잔에 떠 이시니 취코 놀려 하노라

 

※해설: 눈으로 그렇게 하마고 기약하더니 네 정말 활짝 피었구나. 해질 무렵 동산에 달이 떠오르니 꽃 그림자도 성기구나. 맑은 향기가 술잔에 떠있으니 오늘은 취하도록 실컷 마시고 놀아볼까 한다. 

 

빙자옥질(氷姿玉質)이여 눈 속에 네로구나
가만히 향기 놓아 황혼월 기약하니
아마도 아치고절(雅致高節)은 너뿐인가 하노라
 

 

※해설: 얼음이나 옥처럼 맑고 고운 자질이 바로 흰 눈[雪]속에 있구나. 가만히 향기 놓아 저녁달을 기약하니 아마도 알뜰하고 곱고 높은 절개를 가진 이는 너 뿐인가 하노라. 옥같이 티 없고 맑은 자질은 흰 눈 속에 있는 것을! 가만히 향기를 뿜어 저녁달을 불러오니 격 높은 절개는 눈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백설예찬이다. 

 

 조선조에 글깨나 읽은 선비치고 대화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매화는 그 꽃과 향기가 은은하고 모양이 검소, 점잖아서 흔히 뜻이 깊은 지사, 높은 절의에 비유되곤 했다. 남명(南冥) 조식과 퇴계(退溪) 이황은 매화를 좋아한 선비로 유명하다. 정순목 교수가 쓴 <퇴계 평전>을 보면 퇴계는 그가 누웠던 병석에서 일어나 제자들에게 “저 매화분에 물을 주어라”하고는 그 날 오후에 세상을 하직하였다고 적혀있다. 

 

고을사 저 꽃이여 반만 여읜 저 꽃이여
더도 덜도 말고 매양 그만허여 있어
춘풍(春風)에 향기 쫒는 나비를 웃고 맞이 하노라

 

※해설: 곱기도 곱구나 저 꽃이여. 반은 시든 저 꽃이여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그 모습을 하고 있어, 봄바람에 향기 찾아오는 나비를 웃고 맞이 하거라.

 

 위의 시조 3수는 구포동인(口圃東人) 혹은 周翁 안민영의 창작이다. 하잘 것 없는 집안에서 태어난 안민영은 출생 연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石坡 이하응이 흥선대원군이 되어서 권세를 누리다가 물러날 때까지 그들 부자(父子)의 사랑과 비호를 받았다. 


 구포동인이라는 아호도 박효관과 마찬가지로 대원군이 지어준 것이다. 그가 지은 시조 중에 대원군에 관한 시조가 퍽 많은 것으로 보아 구포동인은 대원군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은 것을 알 수 있다. 

 

졸다가 낚대를 잃고 춤추다가 되롱이를 잃어
늙은이의 망령을 백구야 웃지마라
저 건너 십리도화(十里桃花)에 춘흥을 겨워하노라

 

※해설: 졸다가 낚싯대를 잃고, 춤추다가 되롱이를 잃어버렸네. 이 늙은이의 망령을 백구야 비웃지 마라. 저 강 건너 십리에 뻗친 복숭아꽃에 봄 신명으로 이런 노망 비슷한 짓을 한 것뿐이다. 

 

시비(柴扉)에 개 짖어도 석경(石經)에 올 이 없다
듣나니 물소리요 미록(?鹿)이로다
인세(人世)를 언매나 지난지 나는 몰라 하노라

 

※해설: 사립문에 개 짖어대도 돌밭길에 올 사람 없다. 들리는 것은 물소리뿐이요 보이는 것은 고라니와 사슴뿐인 걸. 인간 세상을 떠나 사니 얼마를 지났는지 나는 모르겠네.

 

 위의 작자 미상의 노래나 안민영의 노래들은 모두가 태평성대에서나 들어봄직한 마음가짐이요 생활상인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그렇진 않다. 이들 시조 작가들이 살았던 시기는 나라안팎의 꼴이 실로 어렵게 되어가고 있을 때였다. 


 바야흐로 안동 김씨의 60년에 걸친 세도정치는 온 나라를 가난과 부패로 몰아넣었다. 벼슬을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는 세상, 목민(牧民)할 위치에 있는 벼슬아치들은 백성을 착취하여 재산 모으기에 바빴다.


벼슬을 팔아서 이익을 챙기는 것이 어느 정도 유행했는지 황현이 쓴 <매천야록>에 나오는 일화 한 토막에 잘 나타나 있다. 그대로 옮겨보자.

 

개에게 벼슬을 주고 대가를 요구하다 : 충청도 바닷가 강씨 집안에 늙은 과부가 살았다. 살림은 다소 넉넉했지만 자녀가 없고, 복구(福狗)라는 개 한 마리와 같이 살았다. 지나가던 객이 복구라 부르는 소리를 듣고 남자 이름인 줄 알고 강복구라는 이름으로 감역(監役)에 억지로 뽑았다. 그 대가를 받아가기 위해 사람이 오자 과부가 탄식했다. “손님께서 복구를 보시겠소?” 그러고는 큰 소리로 부르니 개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나왔다…

 

 개 한 마리에 얽힌 이야기를 두고 이렇게 많은 지면을 할애해도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일을 보면 다른 일의 형편도 짐작할 수 있으리라. 온 나라는 먹을 것, 입을 것이 없는 벗어날 수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진 나라. 이런 판국에서는 근심 걱정 없는 태평성대의 이상적 생활이 더 간절하게 그리워지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어려운 경우를 당해서 우리는 도리어 웃고 떠들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지 않는가. 


 위에 소개한 5,6수의 시조는 가난과 비리, 착취와 억압에 찌든 민초들의 고된 삶에서 우러나온 이상향을 꿈꾼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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