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블로그 ( 오늘 방문자 수: 16 전체: 560,316 )
포토에세이: 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7)-빌바오 부둣가의 구겐하임 미술관?
knyoon

 

 

이른 아침 네르비온 강가에 은빛과 푸른빛 나는 큰 기선(汽船)이 부두를 떠나려고 하얀 수증기를 푹폭 뿜어내고 있었다. 남편과 나는 부둣가의 돌난간에 기대서서 그 스팀보트를 바라보며, 어제 하루종일 기차를 타고 오는 동안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자전거로 순례한 사람들을 만난 이야기와 오늘의 일정을 의논하고 있었고.

 

 이윽고 아침 해가 눈부시게 떠오르자 그 스팀보트는 80년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리고, 현대의 아방가르드 건축물인 티타늄 건축예술작품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스페인 북부지방 바스크의 작은 도시 빌바오를, 내리막길이던 금속산업에서 벗어나 초현대예술의 도시와 관광도시로 바꾸어 놓은 구겐하임 미술관이, 진줏빛 나는 0.5mm 두께의 티타늄으로 온통 덮인 채 인어 같은 곡선미를 자랑하며 하늘을 향해 금속의 꽃(metal flower)을 피우고 있다. 

 외부에서 보이는 이 곡선미건축은 미술관 내부에 들어서면 해체주의건축의 조화로 탈바꿈한다. 미술관 앞문으로 들어서면 55미터 높이의 텅빈 중앙홀이 한눈에 들어오고, 천장에 붙어있는 쇠붙이 꽃에서 흘러나오는 분수를 비춰주는 현란한 조명이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준다.

 

 

달팽이 구조의 회랑을 빙글빙글 돌아가며 작품들을 보다가 현기증이 나서 살그머니 반대편 테라스로 나가 보았다. 그 테라스는 하늘로 덮인 듯한 차양에 단 한 개의 기둥이 버티고 서 있다. 네르비온 강 건너편에 산들과 교회가 보이고, 맞은편 ‘Puente de la Salve’ 다리를 건너오는 사람들이 마치 우리가 배를 타고 내다보는 듯이 느껴져 반갑다고 손을 흔들어 줄 뻔했다.

 다시 안으로 들어오자 세 개의 전시실이 한눈에 들어온다. 모퉁이마다 조형작품들이 우리를 안내하는 듯 서있고, 2층과 3층을 연속적으로 연결하여 전시하고 있는 제1전시실은 상설전시장이다. 제2전시실은 일곱 개의 공간으로 나뉜 생존작가 초대전시실이며, 제3전시실은 기획 전시실로 제일 큰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리차드 세라의 금속 조각작품, ‘시간의 문제’가 시간의 나뉨, 거리, 영원성 등을 상징하며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아즈텍의 선조들을 보여주는 전설문화의 방엔 사람의 얼굴보다 더 큰 가면이 걸려있는데 그것은 기원전 600년경에 선사시대를 휩쓴 올멕왕조의 얼굴이다. 그 가면엔 아즈텍에서 캐낸 비취보석 바탕에 이마의 부처님점, 붉은 눈썹, 수염과 갓끈은 산호로 장식하여 눈길을 끈다. 왕들이 자신의 얼굴보다 이 페르소나로 그들의 호사를 더 과시한 듯. 

 

 

1만1천 평방미터나 되는 전시실과 50미터가 넘게 높이 솟은 이 미술관 건물은 강변에서부터 빌바오 시가지 높이만큼 치솟아, 강과 지상의 도시 사이를 쉽게 드나들게 해 주고 있다. 이 미술관 자체가 빌바오시의 상징이 되는 한편, 이상적으로 도시를 살려낸 도시계획의 큰 본보기이다. 

 1997년 10월9일, 스페인 바스크지방의 작은 도시인 빌바오에 21세기의 건축신화를 만들어낸 이 미술관을 설계한 게리(Frank O. Gehry)는 누구인가? 그는 1929년에 캐나다 토론토에서 태어나 미국 남가주대학에서 미술과 건축을 전공하고 56년에 하버드대학에서 디자인대학원과 도시계획을 공부했다. 1990년대에 새롭게 부상한 해체주의건축의 시조일 뿐 아니라 곡선의 건축, 조각적 건축, 유기적 건축, 실험적 건축가로 불리기도 한다.

 자연에서 출발하여 유기적, 조각적 접근으로 건축물을 설계한 것이 그의 특징이며, 티타늄으로 덮은 그의 곡선건축은 3D 컴퓨터 테크놀로지로 우주항공기 설계용 소프트웨어를 활용하여 짧은 시간에 그 섬세한 건축미를 나타냈다.

 게리의 작품을 실현시킨 이면엔 이 미술관을 성사시킨 커미셔너와 솔로몬 구겐하임을 빼놓을 수 없다. 미국 철강계의 거물인 솔로몬 구겐하임은 자신이 직접 수집한 작품들을 보관하고 전시하기 위해 1937년에 재단을 설립하고, 59년에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을 처음 세웠다. 이어서 빌바오, 베니스, 라스베가스, 아부다비, 리투아니아, 베를린 구겐하임 미술관 등을 세웠다. 

 

 

잠깐 나타났다 사라져버린 안개 같은 빌바오 구겐하임 뮤지오의 환상에서 깰 무렵, 미술관을 둘러보고 뒷문으로 나온 우리는 하늘에서 떨어진 듯 혹은 미술관 뒤편에서 걸어나온 듯, 우리 키보다 몇 배 높은 큰 거미 한 마리와 마주쳤다. 밤에 보았다면 그것이 노련한 프랑스 여성 조각가 루이스 부르조아의 조형물 작품인줄도 모르고 소리치며 도망갔으리라. 그 거미는 마치 카프카의 작품, ‘변신’에 나오는 벌레 같았다. 아마도 구겐하임미술관의 복잡미묘한 컴퓨터 설계도의 시스템들은 이 거미가 토해놓은 거미줄인지도 모른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 오른 이 큰 거미 ‘Maman’의 그림자는 역시 못된 인간의 뱃속처럼 새까맣다. 예술가 루이즈의 콤플렉스가 내비친 그의 마음의 어두운 부분 같아 보인다. 그러나 그 어두운 부분이 위대한 예술을 잉태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빌바오시가 부활하고 아름다운 예술건축작품을 남기기까지 한 사람의 힘이 아닌 민관 협력체가 힘을 합쳐 이루어진 것도 놀랄 만한 일이다. 미술관 설계자로부터 항공사까지 참여한 작품이란 것에 경외감마저 느끼며, 예술과 과학의 유대 가능성을 다짐해주는 듯 이름도 아름다운 빌바오 구겐하임 뮤지오를 몇 번이나 뒤돌아보았다. 빌바오강을 건네주는 수송철교 밑으로 두 개의 큰 전차가 자동차와 사람을 싣고, 기중기의 힘으로 공중에 떠가는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면서.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Museo Guggenheim Bilbao): 스페인 바스크 지방 빌바오에 있는 근현대 미술관이다. 미국의 솔로몬 R. 구겐하임 재단이 설립한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의 분관의 하나이다. 1997년 10월 18일 개관하였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