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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남의 기획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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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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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25
알함브라궁의 옛날옛적이야기-알함브라궁의 장미와 은빛 류트 이야기(2)

 

워싱턴 어빙 지음 / 윤경남 옮김&사진

 

(지난 호에 이어)

 

 

마침내 그라나다가 다시 왕족의 거처로 환영을 받게 된 때가 왔어요. 온 세상이 알다시피 필립페 5세는 부르봉 왕가에서 히스파냐를 지배한 초대 왕이었지요. 온 세상이 알다시피 그는 파르마의 아름다운 공주, 이사벨라와 재혼 했고요. 그래서 히스파냐 왕좌에 프랑스의 왕자와 이탈리아 공주가 나란히 앉게 되었지요.

이 특이한 부부의 방문으로 알함브라궁은 신속한 보수와 정비로 법석이었어요. 이 왕가가 들어서면서, 온통 버려진 채였던 궁전의 모습이 모두 바뀌었고요.

요란한 북소리, 나팔소리, 골목과 정원 밖을 달리는 말발굽 소리, 번쩍이는 무기들, 성벽 여기저기에 내걸린 깃발들이 그 성채가 옛날에 누렸던 호전적인 영광을 떠올리게 했답니다.

왕궁의 수행원들 가운데 왕비가 총애하는 루이스 데 알라콘이라는 시종 기사가 있었어요. 위엄있는 이사벨라 왕비의 시종 무관으로 뽑힌 사람들은 모두 우아하고 아름다운, 그리고 뛰어난 기예를 지닌 사람들이지요.

이제 막 열여덟 살인 루이스는 몸이 날래고 유연했으며 그리스의 젊은 안티노우스처럼 우아했어요. 그는 왕비뿐만 아니라 궁중의 많은 여인들에게 귀여움을 받아 버릇이 좀 없었지요.

하는 일 없이 시간을 보내던 이 시종 기사가, 어느 날 아침 알함브라가 내려다보이는 헤네랄리페 연못 가의 숲길을 어슬렁 헤매 다니고 있었어요. 그는 왕비가 아끼는 흰 바다 매를 데리고 나왔어요. 그러다가 덤불에서 날아오르는 새 한 마리를 보고 매의 두건을 벗긴 다음 날려보냈어요.

흰 매는 높이 날아올라 사냥감을 향해 돌진했으나 놓쳐 버리고는 루이스가 신호를 보내도 못 들은 척 멀리 날아가버렸어요. 루이스는 흰매가 알함브라성 외벽에 홀로 서 있는 외딴 탑에 내려앉는 것을 보았어요.

헤네랄리페와 왕국 성채를 갈라놓는 계곡 옆에 서있는 탑, 바로그‘왕녀들의 탑’에 말이에요.

탑 앞엔 갈대로 격자 울타리를 친 작은 정원이 있고 울타리 안에 배롱나무 꽃이 가득 피어 있군요. 루이스는 그 골짜기를 따라 내려가 탑 가까이 가보았어요. 문은 빗장으로 잠궈 놓아 그는 문 틈으로 안을 들여다 보았어요.

관목 울타리를 친 작은 정원이 보이네요. 쪽문을 밀고 들어가 장미 화단을 지나자, 돌림무늬로 장식한 벽과 대리석 주랑이 나오고, 눈같이 하얀 대리석분수가 장미꽃밭으로 둘러싸여있는 무어식 홀이 나왔어요.

한 가운데에 노래하는 새가 들어 있는 금빛 새장이 걸려있고, 그 밑에 명주실이 감긴 실패 따위가 든 반짇고리가 놓여있고, 의자 위엔 거북이 등같이 반짝이는 고양이 한 마리가 누워 있네요. 그리고 리본으로 장식한 기타가 분수 옆에 서 있군요.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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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8
알함브라궁의 옛날옛적이야기-알함브라궁의 장미와 은빛 류트 이야기(1)

 

워싱턴 어빙 지음 / 윤경남 옮김&사진

 

 

“알함브라궁의 장미와 은빛 류트 이야기”는, 살아있는 하신타와 죽은 조라하이다 공주가 만나는 이야기이다. 이 만남은 만도린 같이 생긴 은빛 류트를 켜는 조라하이다의 한을 풀어 주고, ‘알함브라 궁의 장미’인 하신타가 꿈에도 잊지 못할 연인을 만나게 해준다.

조라하이다 공주의 은빛 류트에 맞추어 조선시대 바리 공주의 서사무가를 부른다면 동서양의 여성신화가 화합하는 순간이 되리라.

길을 닦아 가실적에 오귀문을 열어서루 극락세계루 가신답니다. 그러니께 오귀문을 열어서루 바리데기를 따라 서천서역구 그 좋은 극락세계를 가시는 구나.

 옛날에 옛적아 갓날에 정아적아 오귀대왕님 좌정하여 하늘의 서기가 반공한다… 달은 떨어져서 왼어깨에 안자고 해는 떨어져서 오른 어깨 안자고 별은 떨어져서 품안에 안기고.

 이때야 오귀대왕님아, 달은아 대왕님 직신이고 해는 부인님 직성이고 별시낱은 삼신이 굽어 봤구나. ”

 이 서사무가(敍事巫歌)는 오구대왕이 일곱 번째에도 공주를 낳자 실망하여 ‘바리데기'라는 이름으로 내다버린 바리공주의 노래이다. 바리 공주가 성장하자, 오구대왕이 병에 걸려 바리공주를 찾고, 바리공주가 자기를 버린 오구대왕 내외를 위해 서천 서역국(혹은 용궁 등)에서 고된 모험을 한 후, 아버지에게 영약을 가져다 주어 회생하게 하고, 바리공주와 등장인물들은 신으로 섬겨진다는 내용이다.

바리데기, 칠공주, 오구풀이, 오구굿, 진오기굿, 씻김굿 등으로도 불리는 이 사령제(死靈祭)는 전라도와 제주도 등에서 볼 수 있는 중요한 굿거리의 하나이다. “만신왕이 된 바리데기는 이미 여성원형을 넘어서서, 분열되어 죽은 자아기능을 통합하여 새롭게 살려내는 인간 무의식의 근원적 신생기능인 자기 원형상이라”고 융 심리학자는 말한다. (이부영: “한국민담의 심층분석”)

지난 번의 옛날옛적 이야기, “아름다운 세 공주 이야기”에 나온 셋째 공주는 언니들처럼 사랑하는 기사를 따라 도주할 수도 있었지만, 그 동안 자기를 바리데기 취급한 아버지에 대한 연민으로, 바라던 사랑의 도주를 포기하고 아버지를 돌보아드리다가 젊은 나이에 이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자신처럼 ‘장미의사랑’에 빠진 하신타를 은빛 류트로 구해준다.

이제, 지난 번과 똑같은 장소인 <왕녀의 탑>에서 일어난 알함브라궁의 옛날옛적 이야기, “알함브라궁의 장미와 은빛 류트 이야기”를 해드릴께요(옮긴이).

 

*

옛날에 아름다운 무어의 세 공주가 살았던 ‘왕녀들의 탑’도 이젠 폐허가 되었어요. 황금 노을 빛 둥근 천장엔 거미줄이 얼키설키 드리우고, 자이다와 조라이다와 막내공주 조라하이다의 아름다운 자태가 보이던 방에는 박쥐와 올빼미가 둥지를 틀고 있고요. 이 탑이 이렇게 버려진 데에는 이웃사람들의 미신 탓도 있답니다. 달이 밝은 밤이면 그 탑에서 젊은 나이에 죽은 조라하이다의 영혼이 분수 옆에 앉아 있거나 성벽 위에서 흐느끼며 울고 있거나, 한 밤중에 좁은계곡을 지나가는 나그네들이 그녀가 켜는 은빛 류트 소리를 들었다는 소문이 떠돌기 때문이랍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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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1
알함브라궁의 옛날옛적이야기(37)-아름다운 세 공주 이야기(12.끝)

 

워싱턴 어빙 지음 / 윤경남 옮김&사진

 

 (지난 호에 이어)

그들이 멀리 가기도 전에 알함브라 성채로부터 북소리, 나팔소리가 들려 오는군요.

“우리 도주 계획이 탄로났어요!”하고 바바가 소리치자, “하지만 우린 날쌘 준마가 있고, 어둔 밤이 우릴 도와 추격자들을 모두 따돌릴 수 있을 겁니다.” 하고 기사님들이 응수했어요.

일행은 말에 박차를 가해 평야를 가로질러 빠른 속도로 달려갔어요. 평야 위에 벼랑처럼 튀어나온 엘비라 산밑에 이르자 바바가 멈춰 서며 귀를 기울였어요.

“아직은 아무도 우릴 따라오는 이가 없으니, 산 속으로 도주하기엔 안성맞춤 이네요.”

그 말에 응수하듯 알함브라 성의 감시탑 꼭대기에 한줄기 불빛이 튀어 올랐어요.

“큰일 났네! 저 불빛은 산 고개마다 감시병들에게 경계태세를 알리는 건데. 어서! 빨리! 미친 듯이 달립시다. 지체할 시간 없어요.”

 그들은 박차를 가해 달렸어요. 재빨리 달리는 말편자 부딪는 소리가 바위에서 바위로 메아리 치자, 알함브라 성의 희미한 불빛이 이에 답하는 듯 사방 산 위의 감시탑에 봉화가 차례로 오르는 것이 보였어요.

“앞으로! 앞으로! 다리 쪽으로, 다리 쪽으로! 경계 봉화가 거기까지 오기 전에 달려요!” 바바가 험한 욕지거리까지 해가며 소리쳤어요.

일행은 산 벼랑을 돌아, 기독교인과 무슬림이 자주 피로 얼룩지던 험한 물살이 가로 질러가는 그 유명한 피노스 다리까지 왔어요. 놀라운 것은 그 교각의 탑에도 불이 켜있고 무장한 병사들이 대기하고 있는 거에요. 바바는 그의 준마를 끌어당겨 등자 위에 몸을 세워 사방을 둘러 보더니, 기사들에게 손짓해 재빨리 그 길을 벗어나 강을 돌아서자 강물 속으로 돌진하는 거였어요.

기사들도 공주들에게 자신들을 꼭 붙잡게 하고는 바바와 똑같이 뛰어들었어요. 일행은 급한 물살에 한참 떠내려 갔고, 파도가 그들을 에워싸고 아우성이었지만, 아름다운 공주님들은 기사님 등에 꼭 붙어서 불평 한마디 안 했어요.

기사들이 안전하게 반대편 강둑에 이르러 바바의 인도에 따라 사람들이 잘 다니는 길목을 피하기 위해 거칠고 외진 계곡을 따라 산 한가운데로 헤쳐 나갔어요.

 바야흐로 옛 성 코르도바에 도착하는 데 성공한 거에요. 그 기사들은 귀한 가문의 자제들이어서 온 나라와 친구들이 그들의 귀향을 환호하며 최고로 즐거운 축제를 열었어요. 아름다운 공주님들은 곧 교회의 품으로 돌아갔고, 기독교인이 되는 모든 절차를 거친 뒤에 행복한 아내들이 되었어요.

 공주님들이 기사님들과 산 넘고 강 건너는 멋진 도주를 급히 이야기하느라 똑 소리 나는 카디가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를 깜박 했네요. 카디가는 평야를 가로지르고 말을 달릴 때 바바의 등에 고양이처럼 매달려 뛸 때마다 비명을 지르는 바람에 구레나룻의 바바가 계속 욕지거리를 하게 만들었어요. 바바가 강물 속에 뛰어들 채비를 하자 카디가의 공포는 한계를 넘었어요.

“나를 그렇게 세게 끌어당기지 말아요. 겁내지 말고 내 허리띠를 잡으라고요.” 바바가 소리치므로 그녀는 바바의 가죽 허리띠를 등뒤에서 두 손으로 꽉 잡았어요. 그런데 산꼭대기에서 기사들과 숨을 돌리려고 멈추었을 때 노부인 카디가가 보이질 않는군요.

 “우리 카디가는 어떻게 된 거에요?” 공주님들이 놀라 비명을 지르는군요.

“알라만이 아시겠죠! 강 한가운데서 내 허리띠가 느슨해지더니 카디가가 내 벨트와 함께 강물에 휩쓸린 거에요. 알라의 뜻이지요, 뭐. 그 허리띠는 수를 놓은 비싼 거였는데.”

어리석게 후회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지만, 공주님들은 그들의 똑 소리 나는 상담자인 카디가를 잃은 슬픔을 감추지 못했어요. 하지만 똑 소리 나는 노부인 카디가는 그 강물에서 십중팔구 목숨을 잃진 않았거든요. 강 하구에서 그물질을 하던 한 어부가 그녀를 뭍으로 건져 올렸는데, 카디가가 그 어부의 기적의 그물 속에 걸려들어 어부를 놀라게 했다 나요.

똑 소리 나는 카디가에 대한 전설은 더 이상 전해지지 않는다는 군요. 하지만 그녀 특유의 분별력이 왼손잡이 모하메드의 손에 다시 들어가지 않은 것만은 분명하답니다.

 빈틈 없이 영민한 왕이 딸들의 탈출과 가장 신뢰한 신하에게 속아 넘어간 사실에 어떻게 대처했는지에 대해서도 알려진 이야기가 없다는 군요. 단 한번 다른 사람의 조언을 구한 그 일 이후로 그런 허점을 다시는 보이지 않았다는 일만 빼고요.

그러면서도 달아날 마음이 없어 남아있던 공주를 지키는 일엔 무척 마음을 썼다는 군요. 사실 막내공주는 뒤에 남은 일로 회한에 잠겼으리라 생각되는군요. 공주가 그 탑의 발코니에 기대어 코르도바 쪽으로 펼쳐 있는 산줄기를 서글프게 바라보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고, 이따금 류트를 연주하며 언니들과 연인을 생각하는 구슬픈 사랑의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는 걸 보면 알 수 있지요.

공주는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는데, 떠도는 소문에는 그녀의 시신이 그 탑의 지하 납골당에 묻혀있다고 합니다. 공주의 애달픈 요절이 여러 가지 전설을 낳는 모양이에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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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4
알함브라궁의 옛날옛적이야기(36)-아름다운 세 공주 이야기(11)

 

워싱턴 어빙 지음 / 윤경남 옮김&사진

 

 (지난 호에 이어)

알함브라 궁은 울퉁불퉁한 언덕 위에 서 있는데, 바위를 뚫고 낸 비밀통로가 있었답니다. 그 통로는 알함브라에서 그라나다 여러 지역으로 그리고 멀리 다로강과 헤닐강 강둑 위의 출구까지 연결되어 있었지요.

그 지하비밀 통로들은 무어 왕들이 반란이 일어날 때를 대비해서 그리고 개인적인 재미를 위해 만든 것이랍니다. 그 통로는 지금은 거의 폐쇄되고, 벽만 기념비적으로 조금 남아 있지요. 후세인 바바는 바로 이 지하비밀통로를 이용해 공주님들을 도시의 성벽 밖 출구로 모실 계획이었고, 그곳에서 기사들이 국경을 넘을 채비를 하고 기다리기로 했답니다.

 약속한 날 밤이 다가왔어요. 공주들의 탑은 언제나처럼 꽉 잠겨 있었고, 알함브라 성은 깊은 잠에 빠져있네요. 자정이 가까워지자 똑 소리 나는 카디가는 정원이 내려다보이는 발코니의 한 창문 앞에 귀를 세우고 서 있고요.

후세인 바바가 이미 탑 아래에 와서 신호를 보내네요. 똑 소리 나는 카디가는 줄 사다리 한쪽 끝을 발코니에 단단히 묶고, 한쪽은 정원 아래로 내려뜨린 다음에 내려갔어요. 큰 공주와 둘째 공주가 가슴을 두근대며 따라 내려갔고요.

아, 그런데 막내 공주 조라하이다 차례가 되자 멈칫거리며 떨기 시작하는 거 에요. 몇 번이나 그 작고 예쁜 발을 사다리 위에 걸쳤다가는 다시 뒤로 끌어당기는군요. 시간을 끌수록 공주의 작은 가슴이 점점 더 방망이질 치는 거에요.

조라하이다 공주는 비단장막에 쌓인 자기 방을 둘러보았어요. 새장에 갇힌 새처럼 살아온 건 틀림없지만, 그 안에선 안전했어요. 저 넓은 세상으로 훨훨 날아간다고 해서 누가 그 안전을 보장해주랴! 이젠 그 용감한 기독교인 연인만 생각하자, 하면서 작은 발을 사다리 위에 올려놓았어요.

그런데 아버지를 생각하며 다시 뒤로 움츠러드는 거에요. 부드럽고 사랑스럽고, 소심하고 세상 모르는 젊은 여인의 가슴에 일고 있는 이 갈등을 어찌 다 설명하겠어요?

 발코니 아래에서, 언니 공주님들이 애원하고, 늙은 카디가가 꾸짖어 대고, 후세인 바바가 볼멘 소리를 지껄여 대도 아무 소용이 없군요. 점잖은 무어 아가씨는 달콤한 죄악의 유혹에 빠졌다가, 그 위험에 질겁해서 탈출의 문턱에 서서 주저하며 서있는 거에요.

탄로날 위험이 순간순간 커지네요. 멀리서 발자국 울리는 소리가 들려 왔어요. “순찰병이 돌고 있어요. 더 머뭇거리다간 우리 모두 잡혀요. 공주님, 어서 내려 오세요, 아니면 우린 공주님만 두고 떠나겠어요.” 후세인 바바가 소리쳤어요.

조라하이다는 한 순간 공포에 질려 어쩔 줄 모르더니, 사다리 줄을 풀어버리는 거에요. 자포자기하는 운명적인 결단을 내리고 사다리 끝을 발코니 아래로 집어 던졌어요.

“결심 했어요. 내겐 달아날 힘이 없어요! 알라께서 사랑하는 언니들을 인도하고 복을 내려주시기 바래요.” 하고 소리쳤어요.

 

두 언니 공주는 동생을 두고 떠난다는 생각에 충격이 컸어요. 잠시 머뭇거리는데, 순찰대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오는군요. 화가 난 바바가 지하통로로 그들을 서둘러 이끌고 갔어요. 그들은 더듬더듬 산 중턱을 뚫어 만든 무시무시한 미로를 헤쳐나가, 성벽 밖으로 열리는 철문을 무사히 통과했어요.  

그곳엔 히스파냐 기사들이 바바의 지시를 따라 무어인 감시병으로 변장하고 기다리고 있군요.

조라하이다의 연인은 공주가 그 탑을 떠나지 않은 이야기를 듣고 미친 듯이 울며 날뛰었지만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어요. 두 공주는 각자의 연인 뒤에 올라 타고, 카디가는 바바의 등에 올라타자, 모두 함께 로페 가도를 돌아서 코르도바를 향해 산길을 달렸어요.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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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8
알함브라궁의 옛날옛적이야기-아름다운 세 공주 이야기(10)

 

워싱턴 어빙 지음 / 윤경남 옮김&사진

 

 (지난 호에 이어)

“무슨 일이 났느냐구요? 반역이 일어났어요. 아니 반역만큼이나 고약한 일이지요. 이 충실한 카디가에게, 글쎄, 공주님, 그 히스파냐 기사들이 나를 꼬신 거에요. 공주님들을 코르도바로 모셔다가 자기네들의 아내가 되도록 공주님들을 설득하라네요!”

영악한 카디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격렬한 슬픔과 분노를 터뜨리는군요. 아름다운 세 공주님들은 얼굴이 창백해졌다가 붉으락 푸르락 하다가 수줍은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못했어요.

 마침내 큰 공주가 언제나처럼 앞장서며 말했어요. “그런데, 유모. 이 기독교인 기사들과 달아날 마음이 있다면—그게 가능할까?”

마음씨 좋은 노부인은 갑자기 한탄을 멈추고 공주를 바라보며 말했어요.

 “가능하다 마다요! 그 기사님들이 이미 후세인 바바를 매수해놓고 모든 계획을 다 짜놓았다지 뭡니까? 그러나 아버님을 배신할 생각일랑 마셔요. 나를 가장 신뢰해주신 분인데!”

 “하지만 아버님은 우리를 한번도 신뢰하신 적이 없는걸! 자물쇠와 빗장만큼도. 그래서 우릴 포로처럼 가두어 놓으셨죠.” 큰 공주가 말했어요.

“하긴 옳은 말씀이에요. 공주님들에게 너무 하셨지. 이곳에 가두어 놓고 시들어가는 장미꽃들처럼 이 음울한 낡은 탑 안에서 젊음을 허비하게 하신 건 참 부당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제 나라를 두고 달아나다니요?”

“우리가 달아나려고 하는 그 나라는 우리 어머니의 고향이며 우리가 마땅히 자유롭게 살아갈 권리가 있는 곳이 아닐까?”

“오, 그 말씀도 지당하시네요. 폐하께선 폭군 같은 분 인데, 공주님들은 저를 폐하가 무서운 앙갚음을 하도록 이곳에 두고 가실 건가요?”

“말도 안 돼, 우리 착한 카디가. 우리와 함께 달아나면 어때요?”

 “참으로 착한 아가씨들, 사실을 말씀 드린다면, 내가 후세인 바바와 이 일을 의논했거든요. 제가 만약 공주님들을 동반해서 달아난다면, 저를 보호해주겠다고까지 약속 했어요. 그런데 생각들 해보세요, 정말로 부왕의 신앙을 저버릴 작정이신가요?”

“기독교 신앙은 원래 우리 어머니의 신앙이었다고. 나는 그 신앙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요, 동생들도 분명히 그럴 거라 생각하구요.” 큰 공주가 말했어요.

“정말 옳은 말씀이에요. 기독교는 어머님의 종교였지요. 임종 머리맡에서도 그 신앙을 저버리신 걸 몹시 한탄하셨어요. 그때 저는 공주님들의 영혼을 돌보아드리겠다고 약속까지 했지요. 이제 공주님들이 올바른 구원의 길로 들어서시는 모습을 보니 그지없이 기뻐요. 저 역시 다시 예전 신앙으로 돌아갈 결심이 서는군요. 후세인 바바 역시 그의 고향인 히스파냐로 돌아가 교회에 복귀할 작정이랍니다. 그래서 기사님들은 만약 우리가 부부가 될 마음만 있다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즉시 기사님들께서 후하게 사례하겠다고 약속하셨답니다.”

다시 말해서 이 똑 소리 나는 카디가는 이미 기사들과 훗세인과 의논하여 탈출 계획을 철저히 마친 다음이었어요. 첫째 공주는 이 계획에 곧장 동의했고, 큰언니의 모범적인 행동은 언제나처럼 동생들의 마음을 결심하도록 끌어갔어요. 막내공주가 좀 주저하긴 했지만요.

조라하이다는 얌전하고 소심한 성격이어서 가슴 깊이 아버지에 대한 깊은 사랑과 젊음에의 열정 사이에 갈등이 왔으나, 늘 그렇듯 결국 젊음의 열정이 승리하여 그녀는 소리 없는 눈물을 닦으며 달아날 채비를 했어요.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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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1
알함브라궁의 옛날옛적이야기(33)-아름다운 세 공주 이야기(8)

 

워싱턴 어빙 지음 / 윤경남 옮김&사진

 

 (지난 호에 이어)

 

Nasid 건축양식으로 지은 왕녀의 탑

 

 

이때부터 기사들은 거의 매일같이 그 골짜기에서 일하게 되었어요. 마음씨 좋은 후세인 바바는 점점 더 관대해지고, 일터에서 곯아 떨어지기가 일수였지요. 한동안 민요와 낭만적인 노래들로 애매하게 주고 받던 그들의 교제가 점점 무르익어 갔어요.

감시병이 보이지 않을 때면, 조금씩 공주들이 그들의 자태를 발코니에 드러내기도 하고요. 의미가 담긴 상징적인 꽃을 주고 받으며 기사들과 대화를 나누게끔 된 거에요.

만나지 못하는 안타까움은 매력을 더해주고, 그들이 남다르게 품고 있는 열정에 부채질 해주었고요. 사랑은 역경과 투쟁 속에서 더 기쁨을 느끼고, 옹색한 대지에서 더 끈질기게 자란다니까요.

 이 은밀한 교제가 공주들의 겉모습과 마음에 변화를 가져오자, 제일 놀란 것은 왼손잡이 부왕이었고, 제일 흐뭇해 하는 이는 자신의 음모를 성공시킨 똑 소리 나는 카디가 임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답니다.

 아뿔싸, 이 신호로 주고받는 교제가 이제 막을 내렸네요. 그 기사님들이 요 며칠 동안 계곡에 모습을 나타내질 않은 거에요. 공주님들은 하염없이 탑 밖을 내다보기만 했고요. 백조 같은 흰 목을 발코니 밖으로 내밀어 봐도 헛일, 새장에 갇힌 나이팅게일처럼 노래를 불러 보아도 헛일이었어요.

사랑하는 기독교인 기병들은 그림자도 얼씬하지 않았고, 숲에서 한 곡조의 노래도 들려오질 않았어요. 똑 소리 나는 카디가는 사태를 알아보려 나섰다가 곧 되돌아 와서 소리 치네요.

 “아이구, 우리 공주님들! 작은 아씨들이 그렇게 고집 부릴 때, 난 이렇게 될 줄 이미 알았다니까요. 이제 그 류트랑은 버드나무 위에 걸어 놔두셔도 되요. 그 히스파냐 기사들은 그들의 가문에서 몸값을 지불해서 그라나다로 내려가 귀향할 준비를 하고 있답니다.”

 아름다운 세 공주님들은 그 소식에 절망에 빠져버렸어요. 자이다는 작별인사도 없이 떠나버린 일에 모욕을 느끼며 화를 냈어요. 조라이다는 손을 비틀며 울다가 눈물진 유리창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지우다 다시 울다 했어요. 침착한 조라하이다는 발코니에 기대어 소리없이 울었어요. 그녀의 눈물은 그 신의도 없는 기사들이 자주 앉아 있던 꽃밭 위로 방울방울 떨어졌고요.

 똑 소리 나는 카디가는 오직 세 공주님의 슬픔을 달래주기 위해 안간힘을 썼어요.

 “진정하세요, 아가씨들. 이것도 익숙해지면 별일 아니랍니다. 세상이 다 그런걸요. 아, 공주님들이 제 나이쯤 되어보세요, 남자들을 제대로 알아보실 거에요. 장담컨대 이 기사들은 코르도바나 세비야에 사는 히스파냐 미인들을 만나 사랑을 나누게 될 거라고요. 곧장 그 여인들의 발코니 아래로 달려가 세레나데를 부를 거고요. 그렇게 되면 알함브라에 사는 무어인 공주들은 생각도 안 나겠지요. 그러니 공주님들, 마음 편히 가지시고, 제발 그 사람들 일이랑 잊어버리세요.”

 똑 소리 나는 카디가의 위로의 말은 세 공주님의 슬픔을 몇 배로 더 부풀려 놓아 이틀 동안 아무런 위로가 되질 못했어요. 사흘째가 되던 날 아침, 선량한 그 노부인이 숨이 턱에 차서 뛰어들어왔어요.

 “세상에 이런 무엄한 일이 있다니요! 제가 공주님들의 훌륭하신 아버님을 속이는 일에 눈 감아 주었으니 이런 대접을 받아 마땅하지요. 다시는 저한테 그 히스파냐 기사 얘길랑 하지 말아주세요.”하고 야단이네요.

 “왜 그래요, 무슨 일이에요, 착한 카디가?” 불안해진 공주님들이 숨도 못 쉬고 겁이나 소리쳤어요.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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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14
알함브라궁의 옛날옛적이야기(33)-아름다운 세 공주 이야기(8)

 

워싱턴 어빙 지음 / 윤경남 옮김&사진

 

 (지난 호에 이어)

 

▲베르밀리온탑 앞 산책로

 

베르밀리온 탑에 갇힌 기독교인 포로들은 훗세인 바바라고 하는 구레나룻 수염에 어깨가 딱 벌어진, 이슬람으로 개종한 기독교인의 감시하에 있는데, 이자는 뇌물을 받아내는 걸 좋아한다는 군요. 카디가는 그를 찾아가 몰래 큰 금화 한 닢을 손에 쥐어주며 말했어요.

“후세인 바바, 내가 모시고 있는 세 공주님이 탑에 갇혀 오락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서글픈 지경에 계시다오. 히스파냐 기사들이 음악에 뛰어나단 말을 들으시고 그들의 재주를 한번 들어보고 싶어하시는군요. 당신은 아주 친절한 사람이니 이 순진한 소원을 거절하진 않으리라 생각해요.”

“뭐, 뭐라구요? 탑문 꼭대기에 내 목이 달리는 걸 보고 싶소? 폐하가 이걸 아신다면 벌을 내릴 게 분명한데.”

“그럴 위험은 없다오. 공주님들의 소원을 들어주되, 폐하가 모르시게 할 수 있다오. 성 밖에 탑 밑으로 지나는 깊은 계곡을 아시죠? 세 젊은 기독교인들을 거기서 일하게 하고, 쉬엄 쉬엄 연주하고 노래도하게 하세요. 그러면 공주님들이 탑에서 창밖으로 들려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테고, 당신의 협조엔 후한 보상이 따르게 해주실 겁니다.”

착하고 나이 많은 카디가는 열변을 마친 다음, 이슬람 교도로 전향한 바바의 우람한 손 바닥에 금화 한 잎을 더 밀어 넣었어요.

카디가의 유창한 언변엔 이겨낼 사람이 없네요. 바로 다음날로 세 기사는 그 계곡에 배치 되었어요. 뜨거운 대낮, 동료 노역자들이 그늘에서 쉬고 경비병은 제 자리에 앉아 꾸벅꾸벅 조는 동안, 그들은 탑 아래 잔디에 둘러앉아 기타 소리에 맞추어 히스파냐 민요를 불렀어요.

골짜기는 깊고 탑은 높았지만, 그들이 부르는 노랫소리는 여름 대낮의 고요를 깨고 탑 위로 울려 퍼졌어요. 공주님들은 발코니에 앉아 그들의 노래를 듣고 있었고요. 카디가에게서 히스파냐어를 배워 온 공주들은 그 정다운 노래에 감동할 수 밖에요. 그런가 하면 똑 소리나는 카디가는 엄청나게 충격을 받고, “알라시여, 우리를 보호하소서!”하고 울부짖었어요. 

“저 기사님들은 아가씨를 향해서 사랑의 노래를 부르고 있군요. 어찌 저리 뻔뻔할 수가! 제가 노예감독에게 달려가 그들을 소리 나게 두들겨 주라고 하겠어요.”

“뭐라고, 곤장으로 치라고? 저렇게 당당한 기사님들이 저렇게 매력있게 노래 했다구 태형을?” 아름다운 공주님들은 생각만 해도 끔찍했어요. 카디가가 화를 낸 것은 당연하지만, 착하고 온화한 그녀는 쉽게 마음을 가라앉혔어요. 그 음악이 공주들을 기쁘게 해주는 듯 했으니까요.

공주들의 뺨은 이제 장미 빛으로 붉게 물들고 눈동자는 반짝이기 시작하네요. 카디가도 젊은 기사들의 연정이 담긴 사랑의 노래를 더 이상 반대할 재간이 없었고요.

노래가 끝나자 공주들은 한동안 침묵에 잠겼어요. 그러다가 조라이다는 마침내 만돌린같이 생긴 류트를 집어들어 달콤하고 애절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류트 가락에 노래를 실어 보냈어요.

“장미는 꽃잎 사이에 숨어 있어도, 나이팅게일의 노래 소리 기쁘게 귀 기울여 듣고 있다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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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07
알함브라궁의 옛날옛적이야기-아름다운 세 공주 이야기(7)

 

워싱턴 어빙 지음 / 윤경남 옮김&사진

 

 (지난 호에 이어)

 “공주님들이 더 가지고 싶은 게 무엇이지요? 말할 줄 아는 그라나다의 깜찍한 앵무새를 데려올까요?”

“미워! 괴상하고 알 수 없는 소리나 꽥꽥 지르는 새들이라니. 그 성가신 소리를 듣고 있으면 머리가 텅 비어 버릴 거야.”하고 자이다 공주가 소리쳤어요.

“그럼 지브롤터 섬의 원숭이를 데려와서 익살 떠는 것을 보시면 기분이 풀리실까요?”

“원숭이라구? 흥! 사람 흉내나 내는 역겨운 동물은 너무 싫단말야.” 조라이다 공주가 말했어요.

“모로코 왕실의 유명한 흑인 가수, 카셈은 어떤가요? 아주 멋진 여자 목소리를 낸다는데요.”

“난 흑인 노예들은 보기만 해도 끔찍해. 게다가 난 음악을 듣고 싶은 재미 마저 사라졌어.” 마음이 섬세한 조라하이다마저 불평이었어요.

“아, 공주님들, 그렇겐 말씀 못하실 걸요.” 늙은 카디가는 교활하게 말을 돌렸어요.

“어제 저녁만 해도 음악을 듣지 않으셨나요? 우리가 여행길에 만났던 세명의 히스파냐 기사들이 부르는 노래들을 저도 들었는걸요. 그런데, 맙소사, 공주님들! 왜 갑자기 얼굴들이 빨개지고 허둥거리시나요?”

“아냐, 아무것도 아냐, 유모. 제발 얘기 더 해봐요.”

“글쎄, 제가 어제 저녁에 베르밀리온탑을 지나다 보니 세 기사가 하루일을 끝내고 쉬고 있더군요. 한 사람은 기타를 그렇게도 우아하게 켜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돌아가며 노래를 불렀는데 그 모습이라니, 얼마나 멋지게 불렀는지 감시병들이 마법에 걸린 동상 마냥 꼼짝 않고 듣고 있더군요. 알라여, 용서하소서! 저도 조국의 노래를 들으면서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거든요. 더구나 그렇게나 고상하고 잘 생긴 젊은이들이 쇠사슬에 묶인 죄수였으니!” 마음이 따뜻한 카디가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어요.

“우리도 그 기사들을 볼 수 있게 유모가 좀 도와줄 수 없을까?” 자이다가 나서며 말했어요.

“나도, 음악을 좀 들으면 아주 기운이 날것 같은 걸.” 조라이다가 맞장구 치며 말했어요.

소심한 조라하이다는 아무 말도 안했어요. 하지만 카디가에게 달려가 팔로 목을 끌어 안았어요.

“아이구 나 좀 살려주어요. 작은아씨들,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나 아세요? 아버님이 이 얘기 한마디라도 들으셨다면 우린 모두 죽은 목숨이란 말이에요. 그 기사님들이 교육을 잘 받은 고귀한 청년들인건 틀림없지만, 그게 다에요? 그 사람들은 우리 신앙의 적들이란 말이에요. 그러니 공주님들은 그들에게 혐오감 외에 어떤 감정도 품어선 안 된답니다.” 똑 소리나는 카디가가 소리치며 말했어요.

혼기에 이른 여성에겐 어떤 금지도 통하지 않는 놀랄 만큼 대단한 의지가 있군요. 공주들은 합세해서 똑 소리나는 카디가에게 매달려 구슬리다 애원하다 못해, 거절하면 공주들의 마음에 상처를 입게 될 거라고 엄포를 놓지 뭐에요.

똑 소리나는 카디가도 별수 없었어요. 세상에서 가장 똑 소리나는 노부인이며 왕에게 가장 충실한 하녀이지만, 아름다운 세 공주가 기타 소리를 듣지 못해 병이 난 모습을 그대로 보아 넘길 수는 없지요.

무엇보다도 오랫동안 무어인들 틈에 살면서 충신 노릇 하느라 신앙까지 바꾸었지만, 그녀의 고향은 히스파냐였고, 가슴 속에 기독교 신앙이 아직 남아 있었거든요. 그래서 공주들의 바램이 이루어지도록 궁리하기 시작 했어요.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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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23
알함브라궁의 옛날옛적 이야기(31)-아름다운 세 공주 이야기(6)

 

워싱턴 어빙 지음 / 윤경남 옮김&사진

 

 (지난 호에 이어)

 왕은 살로브레냐 성에서 공주들이 쾌활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므로 알함브라성에 와서는 더욱 행복하리라 기대했어요. 그렇건만 공주들은 날로 수척하고 침울해져 주위 환경에 탐탁해 하지 않는 것 같아 놀랐어요.

꽃들은 향기를 잃었고, 밤에 우는 나이팅게일의 아름다운 소리는 잠을 설치게 할 뿐이었어요. 눈같이 흰 대리석 분수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밤중부터 아침까지 똑-똑-첨벙 떨어지는 물소리는 공주님들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듯 했고요.

  다소 전제적인 왕은 처음엔 화가 났어요. 하지만 딸들이 모두 여성스러워지고 욕망이 생겨나는 시기에 이 곳에 왔음을 떠 올렸어요.

 “공주들도 이젠 어린애들이 아닌 게야. 성숙한 여인이면 흥미를 가질만한 적당한 취미가 필요하겠지” 생각한 왕은 그라나다의 사가틴을 뒤져서 재단사와 은방 세공사와 공예가를 불어모았어요. 공주들에게 비단으로 짠 의상에 캐시미어로 만든 목도리, 진주와 다이아몬드 반지와 목걸이, 귀걸이, 팔찌, 발찌까지 장식품을 만들어 바쳤어요.

 하지만 모두 소용없는 일이었어요.

 

3 공주님들이 성에 갇혀 헤네랄리페 연못가의 3 장미꽃들처럼 시들어가고

 

 아름답게 치장한 공주님들이 날이 갈수록 창백해지고 침울하게 늘어져 있고, 병든 채 피지 못하고 줄기에 매달려 고개 숙이고 있는 세 송이의 시든 장미꽃 같았어요.

왕도 지쳤어요. 평상시엔 자신의 판단에 자신이 서서 남의 충고를 구하는 일이 없었지만, “혼기에 이른 세 딸의 변덕스런 마음에 내 예리한 판단마저 흐려지는구나” 하면서, 평생 처음으로 자문을 구하기로 했어요.

  왕이 자문을 구한 사람은 다름 아닌 똑 소리 나는 카디가 였어요. “카디가, 그대가 세상에서 가장 분별력 있고, 신의가 있는 사람임을 알고 있소. 그래서 내 딸들을 계속해서 맡겨두는 바요. 지금 공주들에게 덮친 알 수 없는 병의 증세가 무언지 알아내서, 내 딸들이 건강과 활기를 되찾을 방법을 알아 내주면 좋겠소.”

 카디가는 무조건 명령에 따르기로 했어요. 실은 공주들의 해괴한 병의 원인을 공주들 자신보다 더 잘 꾀어 알고 있었거든요. 공주들과 함께 기거하면서, 공주들이 자신을 신뢰하게 만드는 일이 급선무였어요.

 “사랑스런 공주님들, 없는 게 없이 다 갖춘 이 아름다운 궁전에서, 공주님들을 우울하고 침울하게 만드는 건 도대체 무슨 이유일까요?”

 공주님들은 실내를 멍하니 둘러보고 한숨만 지었어요.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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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8
알함브라궁의 옛날옛적이야기-아름다운 세 공주 이야기(5)

 

워싱턴 어빙 지음 / 윤경남 옮김&사진

 

 (879 호에 이어)

 왼손잡이 모하메드 왕은 잠시 자랑스럽고 당혹스러워 꽃처럼 피어나는 딸들을 정신 없이 바라보았어요. 그러면서도 점성술사들이 예언한 말이 생각 나 혼자 중얼거렸어요.

 “딸 셋이라, 세 딸이 문제란 말이다. 모두 결혼 할 나이가 아닌가! 용이 침 흘리게 만드는 서방의 매혹적인 과일로 자라고 말았으니!”

  왕은 공주들을 거느리고 그라나다로 돌아가는 길에 아무도 공주를 보지 못하도록 집 문이나 창을 단단히 잠그도록 전령을 시켜 일러두었어요. 그런 다음 왕은 번쩍이는 갑옷을 입고 흑마를 탄 무시무시한 기병대의 호위를 받으며 출발했어요.

공주들은 베일로 얼굴을 가리고 백마 위에 올라 타 부왕 옆에 바짝 붙어서 달려갔어요. 아름다운 장신구를 달고 은종을 딸랑거리며 달리는 그 기마행렬이 그라나다에 가까이 이르자, 헤닐 강둑에서 포로를 호송하는 한 무리의 무어 병사들을 만났어요.

병사들이 길을 비킬 사이 없이 땅에 엎드리며 포로들도 따라 하게 명령했어요. 포로들 중엔 정자에서 내다 본 바로 그 기사들이 끼어있네요. 그 기병들은 전혀 그 상황을 이해하질 못하는지 아니면 도도하기 때문인지 그대로 선채 다가오는 기마행렬을 바라보고 있군요.

  왕의 명령에 불복종하는 그들을 보고 왕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어요. 언월도를 왼 손에 뽑아 들고 그들을 향해 달려간 왕이 그들 중 한 사람에게 내려 치려는 찰나에, 공주들이 우루루 몰려가 왕을 에워싸고 포로들에게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애원했어요. 소심한 조라하이다까지 부끄러움도 잊은 채 그들의 입장을 옹호하고 나서는군요.

 왕이 쳐들었던 언월도를 내리자, 호위대장이 왕의 발치에 몸을 던지며 애원했어요.

 “폐하, 온 나라에 큰 누가될 행동을 거두소서. 이 세 사람은 전쟁터에서 사자처럼 싸웠던 히스파냐의 숭고하고 용감한 기사들입니다. 이들은 모두 높은 가문 출신들이라 몸값을 크게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알았다, 그만해라. 그자들의 목숨은 살려둔다만, 저들의 무모한 행위는 벌하겠다. 저들을 베르밀리온 탑으로 데려가 중노동을 시켜라.” 왕이 말했어요.

 모하메드 왕은 곧잘 저지르는 왼손잡이 실수를 또 저지르고 있네요. 요란과 소란과 흥분된 분위기 속에서 세 공주의 베일이 뒤로 벗겨져 그들의 눈부신 미모가 드러났지 뭐에요. 옛날 이야기에 보면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갑작스런 사랑에 빠지곤 했나봐요.

세 기사가 완전히 공주들에게 사로잡힌 것은, 숭배하는 마음에다 고마움까지 더했으니 놀랄 일도 아니지요. 그들이 각기 짝을 맞추어 사랑에 빠진 건 좀 이상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믿을 수 없는 일은 아니에요. 공주들도 포로들의 기품 있는 태도에 반했고, 그들의 용감하고 고귀한 태생을 알게 되면서 가슴 속에 더 소중하게 간직한 거니까요.

 

▲왕녀의 탑 천장. 연꽃무늬의 모카라베 공기통 장식

 

 공주들이 살게 된 곳은 상상할 수 없이 우아하고 환상적인 곳이었어요. 알함브라의 왕궁에서 좀 떨어진 탑이지만, 알함브라의 높은 언덕을 싸고 도는 성벽과 붙어있지요. 그 탑의 한 쪽은 성의 내부를 내려다 볼 수 있고, 탑 아래로는 진귀한 꽃들이 가득 핀 작은 정원이 있어요. 다른 쪽은, 알함브라궁과 헤네랄리페 정원 갈림길이 시작하는 계곡이 보이고요.

탑의 내부는 아라비아 양식으로 장식한 작고 우아한 방들이 높은 홀을 둘러싸고 있고, 아치형 둥근 천장이 탑 꼭대기까지 닿아 있고요. 작은 공기 통이 뚫린 홀의 천장과 벽은 모카라베 장식으로 덮여 환상적이고요.

홀 한가운데의 대리석 받침대 위에 눈부시게 하얀 대리석 분수가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내고, 분수 가엔 향기로운 관목과 꽃들이 사철 피지요. 금과 은으로 장식한 새장에선 아름다운 깃털이 덮인 새들의 달콤한 노랫소리가 나고요.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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