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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남의 기획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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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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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6
알함브라궁의옛날옛적이야기-망코 읍장님과 고참병의 이야기(2)

 

워싱턴 어빙 지음 / 윤경남 옮김&사진


 

(지난 호에 이어)

“꿈이 아닐세! 그럼 당신은 저 너머에 탑들이 있는 데가 바로 알함브라 성인 것도 모르겠구려?” 나팔수가 다시 받아 쳤어요.

“오, 나팔의 자손이여. 나를 놀리지 마오. 저것이 정말 알함브라면 나는 이 고을 읍장님께 기이한 일들을 고해바쳐야 하오.

“기회가 올 게다. 그러잖아도 우린 너를 그분 앞에 끌어갈 작정이었으니까.” 상등병이 말하자 나팔수는 그의 말고삐를 뺏어 쥐고, 두 병사는 그 낯선 병사의 양팔을 하나씩 잡고, “앞으로 가잇!” 하고 구호에 맞추어 앞서 가는 상등병을 따라 행진했어요.

누더기를 걸친 보병과 적갈색 나는 훌륭한 아라비아 준마가 순찰대에 붙잡혀 끌려오는 모습은, 성 안에서 빈둥거리는 부랑배들과 이른 아침 우물가에 모인 수다장이들의 주의를 끌고도 남았지요. 성채 안의 어중이떠중이들이 호송대 뒤로 꼬리를 물고 따라갔고요.

사람들은 서로 눈짓 해가며 한마디씩 수근 대는군요. “탈영병이로군.”, “밀수 업자야.”, 또 다른 사람이 말했어요. “도둑 우두머리인 모양이다.” 그러자 다른 노친네가 한마디 거들었어요. “그래, 잘 해봐라. 우두머리든 아니든, 늙은 망코 읍장나리한테 한 번 걸려보라지, 비록 외팔 나리이긴 하지만.”

망코 읍장은 알함브라성의 코마레탑 내실에 앉아 그의 고해신부이며 바로 이웃 수도윈에 사는 뚱뚱한 프란치스코회 수도사와 함께 따끈한 초콜릿 차를 마시고 있었지요.

가정부의 딸인 새초롬하고 눈동자가 검은 한 소녀가 그의 옆에서 시중을 들고 있고요. 사람들은 그 소녀가 얌전한 척하면서 풍만한 몸집을 휘젓고 다니는 말광량이라며, 늙은 읍장님의 냉가슴을 차지하고, 제멋대로 군다고 입을 모아 수근 댔어요.

 

 

읍장은 성채 주변을 어슬렁대다가 상등병에게 붙잡혀 온 수상하고 낯선 자가 읍장나리를 뵙기 바라며 뜰에 대기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부심과 위엄으로 가슴이 벅차 올랐어요. 바구니 모양의 손잡이가 달린 호신용 톨레도 검을 꺼내어 허리에 차고, 콧수염을 눈 밑까지 둥글게 말아 올린 다음, 등 높은 의자에 앉아 험상궂은 표정을 짓고 포로를 대령하라고 명령을 내렸어요.

“죄인은 들으라, 넌 누구이며, 네가 직접 하고자 하는 얘기가 무엇이란 말이냐?”

“전쟁터에서 상처와 흉터만 안고 막 돌아 온 병사입니다요.“

“병사라-흠-걸친 옷을 보니 보병이로군. 네가 훌륭한 아라비아 준마를 거느린 것도 알겠고. 전쟁터에서 상처와 흉터만이 아니라 그 말도 데려왔단 말이지.”

“읍장 나리께서 괜찮으시다면 이 말 때문에 일어난 이상한 일들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만. 이 성채뿐만 아니라 온 그라나다의 안전에 관한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나리 한 분께만 들려드려야 하는데…”

읍장은 상등병과 부하들을 내보내 문밖에서 대기하도록 하고 말했어요.

“이 성스러운 수도승은 내 고해신부이니 그 앞에선 무슨 말이든 할 수 있고, 에—, 이 소녀도 마찬가지니라.”

병사는 실눈을 떠 새침떼기 소녀를 곁눈질 하면서 말했어요. “좋습니다. 그 소녀는 남아있게 하십시오.”

부하들을 내보내자 병사는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그는 차림새에 비해 말솜씨가 아주 좋군요.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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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29
알함브라궁의옛날옛적이야기-망코 읍장님과 고참병의 이야기(1)

 

워싱턴 어빙 지음 / 윤경남 옮김&사진

 

 

깊이 모를 내 혼의 잠심이 깃든 듯, 알함브라 성 안에서 가장 영혼의 안식을 느끼게 하는 곳, 그것은 바로 코마레궁 뜰에 낮은 관목으로 둘러싸인 긴 연못가에서다.

아라비안 특유의 대칭구조로 지은 이 궁전의 누각이 그 못에 다 비쳐도, 사람들이 연못가를 바람처럼 지나가도 끄떡도 않는 것을 보면, 이 코마레궁 내벽에 아름답게 목각해 넣은 시인 이벤의 싯구, ‘오직 신만이 승리하리라’는 구절처럼, 오직 신만이 움직이게 하는 마술이 걸려있는지도 모른다.

코마레궁 안엔 대사의 방이 있고, 왕은 이 방에서 국가 행정을 처리하며, 각국의 외교사절들을 맞아 들였다. 이층에 황금빛으로 장식한 화려한 쌍둥이 무지개 창문이 남쪽으로 난 방에서 다로 강을 내다보며 성밖에 있는 알바이친 마을을 감독하기도 했다.

코마레궁 서편 끝에 왕녀의 탑, 포로의 탑, 칠층 탑 등이 이어서 있는 수조광장 부근은 알함브라에서 가장 높은 지역이다. 이 고지대는 깎아지른 낭떠러지로 둘러싸여 사람들은 그곳에서 멀리 보이는 한적한 산을 태양의 산이라고 불렀다.

더 멀리 네바다 산맥이 보이는데도 그보다 낮은 산에 태양이 머무는 것에 신성을 느낀 것 같다. 그 태양의 산자락을 구불구불 돌아 드는 하얀 신작로로 오늘의 주인공인 한 고참병이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날개 달린 천마 같은 페가수스를 타고 태양의 산에서 느닷없이 알함브라성에 들어선다. 사람들은 놀라고, 이 수상한 병사는 붙잡혀 망코 읍장이 심문하는데 그 자리가 바로 코마레궁의 한 방이다.

사도 요한이 쓴 묵시록에, ‘신의’와 ‘진실’이란 이름을 가진 심판자가 탄 신비스런 ‘흰말’이 있는가 하면, 오늘의 주인공인 고참병이 타고 온 말은 중국 삼국시대에 관운장이 탔던 적토마에 페가수스의 위력을 합성한 것 같아 보인다.

이제, 옛날 옛적에 알함브라의 전쟁터에서 한 쪽 팔을 잃은 용감한 전사가 읍장이 되어 알함브라를 다스리던 때의 “망코읍장님과 고참병의 이야기”를 들어보시겠어요? -옮긴이

 

--

 

용감한 외팔이, 망코 읍장님은 알함브라 성안에 주둔하고 있는 수비군대의 위력을 과시하면서도, 그의 요새가 부랑자와 밀수입자들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비난에 심기가 불편해졌어요. 그래서 어느 날 알함브라 성채와 성밖 언덕배기에 벌집같이 들어 선 집시들의 동굴에서 부랑자를 모두 내 쫓아버렸지요. 병사들을 거리마다 풀어 놓아 순찰하다가 수상한 사람을 보면 잡아들이게 명을 내렸고요.

그러던 어느 여름날 아침이었어요. 늙은 상등병과 나팔수와 병사 두 명으로 구성된 순찰대가 태양의 산에서 내려오는 길 목, 헤네랄리페 정원 담 밑에 앉아 있는데, 요란한 말발굽소리와 곡조도 안 맞는 옛날 군가를 목이 터져라 부르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 왔어요.

상등병은 한적한 산 위에서 낯선 병사가 다 떨어진 보병 군복에 화려한 무어 장식이 달린 아라비아 군마를 이끌고 내려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그를 불러 세웠어요.

“게 가는 게 누구냐?”

“친구요.”

“뭐 하는 아무개냐?”

“전쟁터에서 갓 돌아온 병사요. 지닌 거라곤 찌그러진 갓과 텅 빈 지갑뿐인 가난한 병사라오.”

그 병사는 장난기 서린 눈빛으로 이번엔 자신이 질문할 차례란 듯 묻기 시작했어요.

“말씀 좀 물어도 될까요? 이 언덕 아래 보이는 저 도시이름이 무언가요?”

“이 도시 이름이 뭐냐고? 허, 고이한지고. 태양의 산에서 어슬렁거리며 내려 온 작자가 우리의 위대한 도시 그라나다의 이름을 묻다니!” 나팔수가 꽥 소리 쳤어요.

“그라나다라구요? 오, 성모님이시여, 이게 꿈인가요?”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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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22
알함브라궁의 옛날옛적이야기-알함브라궁의 장미와 은빛 류트 이야기(10)

 

워싱턴 어빙 지음 / 윤경남 옮김&사진

 

(지난 호에 이어)

마침내 그들은 어둠의 장막이 드리운 큰 방에 들어갔어요. 창문은 햇빛을 기리기 위해 모두 닫았고, 은 촛대 위에 노란 양초 몇 대가, 상복을 입고 말없이 서 있는 사람들과 수심이 가득한 신하들의 모습을 희미하게 비춰주고 있군요.

장례용 침상 한 가운데에, 곧 매장하려고 기다리고 있는 왕이 가슴 위에 두 손을 얹고 코끝만 겨우 내놓고 누워 있고요. 왕비는 조용히 그 침실로 들어가 하신타에게 어두운 방 귀퉁이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연주를 시작하라고 손짓 했어요.

하신타가 떨리는 손 끝으로 류트를 만지기 시작했어요. 차츰 자신이 생기고 활기를 찾으며 부드럽고 꿈꾸는 듯한 선율이 흘러 나왔어요. 자신이 이미 영의 세계에 들어가 있다고 생각한 왕도 이 선율이 천사의 노랫소리이거나 하늘의 음악이라고 생각했어요.

다양한 주제가 이어지며 악기와 더불어 음유시인의 목소리가 반주하고 있군요. 하신타는 알함브라의 옛 영화와 무어인들의 공로를 치하하는 전설적인 담시를 노래했어요. 하신타의 영혼이 그 주제에 몰입하는 듯 했어요. 알함브라의 추억은 그녀의 사랑 이야기를 떠오르게 했기 때문이지요.

그 음율은 장례식장을 생기에 차게 만들었어요. 왕의 우울한 심장에도 닿은 듯, 왕이 머리를 쳐들어 주위를 둘러보고는 일어나 앉았어요. 마침내, 왕의 눈이 밝게 빛나기 시작했어요. 마루 바닥에 뛰어 내리더니, 검과 방패를 가져오라고 일렀어요.

음악의 승리, 아니 마법의 은빛 류트의 완벽한 승리라고 해야겠지요. 우울증 악령은 쫓겨나고,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 거에요. 그 방 창문들은 활짝 열리고, 히스파냐의 영광스런 눈부신 햇빛이 음울하던 방안에 쏟아져 들어왔어요.

방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눈이 사랑스런 마법사를 찾았으나, 은빛 류트는 그 마법사의 손에서 바닥에 미끄러져 떨어졌고, 그녀도 방바닥에 털썩 주저 앉는 순간, 꿈에도 그리던 루이스 데 알라콘의 품에 안겨 버리는군요.

행복한 한 쌍을 위해 성대한 결혼식이 베풀어졌어요. “그런데, 잠깐! 그렇게 얘기가 끝나버리면 어떡해요? 루이스가 왜 그렇게 오랫동안 하신타를 내버려 두었는지 말해주어야지요.”하고 독자가 불평하는 소리가 들리네요. 아, 그건 자부심 강하고 현실적인 그의 아버지가 반대한 탓이랍니다. 하지만 정말 서로 좋아하는 젊은이들은 언제고 다시 만나기만 하면 곧 이해심이 생기고 지난날의 원한 같은 건 다 묻어버리는 법이거든요.

그럼 그 자부심이 강한 늙은 아버지는 어떻게 그 혼인을 맺어 주었을까요?

아, 그건, 왕비의 한 두 마디, 특히 왕실의 총애를 받게 된 하신타에게 높은 지위와 보상을 안겨주자 금세 극복이 되었다나요. 게다가, 하신타의 은빛 류트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마력을 숨기고 있어서 가장 완고한 머리와 매정한 가슴도 녹여놓은 셈이지요.

그러면 그 마법의 은빛 류트는 어찌 되었을까요?

아, 그건 바로 가장 궁금한 오늘의 이야기의 진가를 풀어주는 대목이랍니다. 그 은빛 류트는 한동안 루이스와 하신타의 집안에 보관해오다가 어느날 도둑을 맞아 사라졌다는군요. 사람들은 틀림없이 질투에 눈이 먼 유명한 가수 파라넬리의 짓이라고 여겼어요.

그가 죽은 후에 이탈리아의 다른 누군가의 손에 넘어 갔는데 그 마법의 힘을 알지 못하던 그 사람이 은은 녹이고 줄은 낡은 크레모나 바이올린에 바꾸어 달았다는군요. 그 현은 아직도 마법의 힘이 남아있답니다. 독자님의 귀에 살짝 얘기하는데 —얘기가 퍼져나가선 안되니까요— 지금 그 바이올린은 마법으로 전 세계를 사로 잡고 있는 바로 파가니니의 바이올린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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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5
알함브라궁의 옛날옛적이야기-알함브라궁의 장미와 은빛 류트 이야기(9)

 

워싱턴 어빙 지음 / 윤경남 옮김&사진

 

(지난 호에 이어)

안달루치아가 모두 그 음악에 미쳐 있는 한편 엘 에스코리알의 궁정에서는 아주 다른 분위기가 떠돌고 있었답니다. 필립페5세가 자기 건강염려증에 걸려있다는 건 모두 아는 일인데, 온갖 공상에 사로잡혀 있었답니다. 몇 주일씩 침대에 누워 지내며 불평 어린 상상을 하며 끙끙 앓는 거에요.

어떤 때는 왕위를 버리겠다고 왕비에게 떼를 써서 왕비가 골머리를 앓게 하기도 하고요. 왕비는 궁정의 화려함과 왕관의 영예를 너무 좋아하여 어리숙한 왕을 기술적으로 안정하고 유지하게 하는데 힘을 다 쏟고 있는데도 말이지요.

왕의 우울증을 몰아내는 데는 음악의 마력만큼 효과 있는 약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왕비는 가수든 연주가든 뛰어난 음악가는 모두 곁에 불러 모았고, 유명한 이탈리아 가수 파리넬리도 왕실 주치의 자격으로 궁정 안에 살게 되었어요.

하지만 왕은 파리넬리의 노래나 궁중 오케스트라의 연주도 전혀 들으려 하지 않고 자기가 상상한 질병을 오래 앓고 나더니, 그 망령에게 항복한 듯 자신을 완전히 죽은 사람으로 여기게 되었어요.

 죽은 사람에 걸맞게 조용히 누워만 있다면 누가 뭐라겠어요? 왕은 이젠 자신의 장례식을 치르자고 고집하며 왕실 사람들을 들볶더니, 자신을 매장하지 않고 놔 두는 그들의 태만과 불손을 참지 못해 호령 호령하며 말할 수 없는 곤욕을 치르게 하는군요.

 어떻게 해야 할른지? 왕의 명령을 거역하는 일은 무도한 짓이지만, 그 명령을 따르자니 왕을 생매장 해야 하는데 이 역시 군주를 살해하는 짓이 아닐까 하고요. 궁중이 이런 끔찍한 곤경에 빠져 있을 때, 안달루시아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아버린 한 여자 음유시인에 관한 소문이 궁내에 퍼져나갔어요. 왕비는 서둘러 그녀를 왕이 머물고 있는 산 로렌조 수도원으로 불러들이라고 명령을 내렸어요.

 

 

며칠 후, 왕비가 베르사이유의 영광을 기리려고 만든 멋진 가로수 길과 테라스와 분수가 있는 정원을 거닐고 있을 때 멀리까지 이름이 난 음유시인이 왕비 앞에 대령했어요. 이사벨라 여왕은 온 세상을 미치게 만드는 그 어린 소녀의 모습을 보고 놀랐어요.

그 어린 음유시인은 그림 같이 아름다운 안달루시아 의상에, 손에는 은빛 류트를 들고 겸손하게 눈을 내리 깔고 서있는 거에요. 그 소박하고 신선한 아름다움으로 그녀가 바로 ‘알함브라의 장미’임을 알아챘어요.

언제나처럼 감시꾼 프레데곤다가 그녀의 옆에서 왕비의 질문에 대답을 대신했어요. 하신타의 모습에 호감을 느낀 왕비는, 그녀의 아버지가 왕실에 봉사하다 젊은 나이에 전사한 공로 있는 가문의 출신임을 알고 더욱 마음이 끌렸어요.

“만일 네가 너의 명성대로 폐하가 사로 잡혀있는 악령을 몰아 내준다면, 너의 장래는 내가 책임지고, 명예와 부귀를 얻도록 보살펴 주겠다.”

그녀의 재주를 시험해 보고 싶은 성급한 마음으로 왕비는 곧 우울증에 걸려있는 왕의 거실로 그녀를 데려갔어요.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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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8
알함브라궁의 옛날옛적이야기-알함브라궁의 장미와 은빛 류트 이야기(8)

 

워싱턴 어빙 지음 / 윤경남 옮김&사진

 

(지난 호에 이어)

“육신의 딸이여, 무엇이 너를 그리도 괴롭히는지? 왜 너의 눈물은 분수를 흔들어 놓고, 너의 한숨과 비탄은 고요한 밤의 수호자를 어지럽히는지 말해보렴.”

“제가 우는 건 한 남자의 불성실한 태도 때문이고, 제가 한탄하는 건 쓸쓸하게 버려진 제 신세가 서러워서랍니다.”

“마음을 편하게 가져라. 너의 슬픔도 끝날 날이 올 터이니. 네 앞에 서 있는 이 무어왕의 공주를 보렴. 너처럼 사랑 때문에 불행했단다.

너의 조상이기도 한 그리스도인 기사가 내 마음을 사로잡아 그의 고향으로 그리고 그의 교회의 품으로 데려가려고 했었지.

나는 마음 속으론 그이를 따라 개종했건만, 내 믿음과 아우르는 용기를 갖지 못해 끝내 망설였단다. 그때 사악한 악령들이 나를 사로 잡았고, 나는 순수한 그리스도인이 내 마법을 풀어 주는 날까지 이 탑에 갇혀있게 된 거란다. 네가 그 일을 해결해줄 수 있겠니?”

“그러믄요, 꼭 하겠어요.” 하신타가 떨리는 소리로 대답했어요.

“그럼, 두려워 말고 이리 오렴. 너의 두 손을 이 분수에 담갔다가 그 물을 내게 뿌려다오. 너의 신앙의 방식을 따라 내게 세례를 베풀어다오. 그러면 마법이 풀리고 고통 받는 내 영혼은 편히 쉬게 된단다.”

소녀는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다가서서 분수에 손을 담가 물을 가득 퍼 올려 그 유령의 창백한 얼굴에 뿌렸어요.

 잠시 후에 그 환영은 말할 수 없이 온화한 웃음을 띄우더니, 은빛 류트를 하신타의 발치에 떨어뜨렸어요. 그리고는 하얀 두 팔을 가슴 위로 모으더니 눈 앞에서 사라졌어요. 물방울 세례만이 연못 속에서 일어난 듯이요.

하신타는 놀라움과 경외감을 안고 분수 가에서 물러나왔어요. 밤새도록 눈을 붙이지 못한 하신타는, 먼동이 트자 모든 일이 불안한 꿈 속의 일 같았어요. 하지만 분수가에 다시 내려가 보니 그 환영의 실체가 사실임을 알겠어요. 분수 옆에 아침 햇빛에 반짝이는 은빛 류트가 놓여 있는 거에요.

하신타는 급히 숙모에게 달려가서 그 동안 일어난 이상한 일들을 모두 얘기하고, 그 이야기가 정말임을 은빛 류트를 보여줌으로써 밝혔어요. 설혹 고상한 숙모님이 의심을 했다고 해도, 하신타가 그 악기를 연주하는 순간에 그 의문들은 모두 날아가 버렸어요.

하신타가 켜는 황홀한 선율이 얼음장처럼 차가운 프리데곤다의 가슴을 봄 눈 녹듯이 녹여주었거든요. 초자연적인 선율이 아니고서야 그런 효과를 낼 수가 있겠어요?

그 류트의 위력은 날이 갈수록 더해갔어요. 그 탑을 지나가던 길손들은 숨막히게 황홀한 그 음률에 넋을 잃고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답니다. 나무 위에서 노래하던 새들도 저들의 노래를 그치고 마술에 홀린 듯 침묵 속에 귀를 기울였어요.

소문은 금새 퍼져 나가, 그라나다 사람들은 왕녀의 탑에서 사방으로 퍼지는 그 하늘스런 음악을 몇 음절이라도 들으려고 알함브라로 몰려들었답니다.

사랑스러운 어린 음유시인은 마침내 그 은신처를 떠나게 됩니다. 그 나라의 부귀와 권력이 높은 사람들이 그녀를 즐겁게 해주려고 그녀에게 영예를 베풀 기회를 놓고 다투기 시작했어요. 심지어 누가 더 그 류트 연주 기회를 많이 베풀 것인가를 두고 싸우기도 하고요.

하신타가 어디를 가든 감시꾼 숙모가 옆에 붙어 감시하면서 음유시인의 선율에 홀딱 빠진 열렬한 군중들을 위압하고요. 그녀의 신비스런 음율의 힘에 관한 소문이 온 도시로 퍼져나갔어요.

말라가, 세비야, 코르도바의 온 성안이 그녀의 이야기로 들떠있었고, 안달루시아 전역에선 알함브라의 아름다운 음유시인 이야기 말고는 하지도 않을 정도였대요. 사랑의 영감을 받아 마술의 류트를 연주하는데 못 들은척한다면 음악적이고 낭만적인 안달루치안이라고 할 수 없었거든요.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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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1
알함브라궁의 옛날옛적이야기-알함브라궁의 장미와 은빛 류트 이야기(7)

 

워싱턴 어빙 지음 / 윤경남 옮김&사진

 

(지난 호에 이어)

어느 여름날 한밤중에 숙모가 잠자리에 든 후, 하신타는 그 탑 안에 있는 눈같이 하얀 대리석 분수 옆에 앉아 있었어요. 그곳은 신의 없는 기사가 처음으로 무릎을 꿇고 그녀의 손에 입을 맞춘 자리지요. 몇 번이나 영원히 변치 않겠다고 맹세한 바로 그 자리였어요.

가엾은 어린 소녀의 가슴은 슬프고 다정한 추억들로 가득 차 오르고 소녀가 흘리는 눈물이 천천히 한 방울씩 분수 속에 떨어졌어요. 그때, 수정처럼 맑은 물이 요동치며 거품이 부글부글~~부글부글 끓어오르더니 화려한 무어인의 옷을 입은 한 여인의 모습이 그녀의 눈 앞에 서서히 일어서는 거였어요.


 

하신타는 너무나 놀라 그곳에서 달려나가 다시는 돌아올 엄두를 내지 못했지요.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숙모에게 자기가 본 이야기를 해드렸지만, 숙모는 하신타가 정신이 쇠약해져 환상을 보았거나 분수 옆에서 졸다가 잠결에 꿈을 꾼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옛날에 이 탑에 살았다는 무어의 세 공주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 이야기가 네 꿈 속으로 들어간게야.”

“무슨 얘기요, 아주머니? 난 통 모르는 얘긴데요.”

“너두 분명히 이 탑에 갇혀 있던 세 공주 이야기를 들었을 텐데. 자이다와 조라이다와 조라하이다 공주님들이 기독교인 기사들과 달아나기로 했던 이야기 말이다.

두 언니는 탈출에 성공 했는데 셋째 공주는 결심을 이행하지 못하고 이 탑 안에서 죽었다는구나.”

“아, 이제 생각이 나네요. 마음 약한 조라하이다의 운명을 생각하며 울었던 일을요."

“네가 그 공주의 운명을 생각하며 우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 조라하이다의 연인은 바로 너의 조상이니까. 그 기사님은 무어인 공주와의 사랑으로 오랫동안 슬퍼했지만, 시간이 그의 슬픔을 낫게 해주어 히스파니아 여인을 만나 결혼했고, 너는 바로 그들의 후손이 된단다.”

하신타는 그 말을 곰곰이 마음에 새겨 보았어요. “그렇다면 내가 본 것은 헛개비가 아니야. 난 믿을 수 있어. 만일 그것이 아직도 이 탑에 머물고 있다는 그 여린 조라하이다의 영혼이라면 내가 겁낼게 하나도 없지. 오늘 밤에 분수 옆에서 지켜보자. 어쩌면 다시 찾아올지도 모르니까.”

자정이 되어 사위가 조용할 무렵 하신타는 분수 옆에 다시 자리를 잡고 앉았어요. 알함브라의 감시탑에서 자정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분수는 다시 요동을 치며 부글부글~~부글부글 끓어 오르면서 무어 여인의 형상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군요. 그 여인은 젊고 아름다웠어요. 보석으로 반짝이는 화려한 의상에, 손엔 은빛 류트를 들고 있군요. 하신타는 마음이 떨려 정신이 아득해지는 듯 했으나 그 여인의 부드럽고 구슬픈 목소리와 창백하고 서글픈 얼굴에 떠오르는 사랑스런 표정에 다시 용기를 냈어요.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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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25
알함브라궁의 옛날옛적이야기-알함브라궁의 장미와 은빛 류트 이야기(6)

 

워싱턴 어빙 지음 / 윤경남 옮김&사진

 

(지난 호에 이어)

 

“왕비님의 시종무관이에요. 저한테 작별인사 하러 온 거에요.”

“왕비님의 시종이라고?” 경계심 많은 프레데곤다가 숨 넘어가는 희미한 소리로 물었어요. “대체 네가 언제 왕비님의 시종을 알게 되었단 말이냐?”

 “흰 매가 탑으로 날아 들어온 날 아침이에요. 그이가 왕비님의 흰 매를 찾으러 왔거든요.”

 “아, 바보 천치 같은 계집애야! 젊고 짓궂은 시종들에 비하면 흰매 따위는 하나도 위험하지 않단다! 그자들이 노리는 건 바로 너같이 순진한 새들이란 걸 알았어야지.”

숙모는 자존심이 몹시 상했어요. 자신이 그렇게 자부했던 감시망에도 불구하고 바로 자기 눈 앞에서 젊은 연인들이 다정하게 만나고 있었다니 말이에요. 하지만
순진한 조카딸이 이성의 모략에 노출 되었음에도 그 불같은 시련에 화상을 입지 않고 온전했다는 것은, 자기가 정숙하고 신중한 교훈을 조카딸의 입술까지 적셔 놓은 덕분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했어요.

숙모가 자존심을 달래며 누워있는 동안, 조카딸은 그 시종기사가 되풀이하며 맹세한 일들을 가슴속에 소중히 품고 지냈어요.

날이 가고 달이 가도 그 기사에게선 아무 소식도 들려오지 않았어요. 석류가 빨갛게 익어가고,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고, 산에서 가을비가 퍼붓고, 시에라 네바다가 흰 눈으로 외투를 갈아입고 겨울의 매서운 바람이 알함브라의 여러 탑들을 훑어 지나가도, 그이는 오질 않는군요. 겨울도 지나고, 꽃송이들이 부드러운 산들바람과 함께 노래해도, 그이에게선 감감 무소식 이었어요.

가엽게도 어린 하신타는 창백해지고 말 수가 적어지며 깊은 생각에 잠겨있기가 일수였어요. 그녀가 즐겨 수를 놓던 비단 실타래는 발밑에 굴러다니고, 그녀의 기타는 소리를 잃었고, 보살피던 꽃들마저 시들어 가고 새들의 노래는 들어주는 사람이 없게 되었어요. 하신타의 밝게 빛나던 눈동자는 남몰래 흘리는 눈물로 어두워져가고요.

고독한 아가씨의 사랑의 정열을 달래주기 딱 좋은 곳이 있다면 바로 알함브라궁 같은 곳이지요. 그곳은 다정하고 낭만적인 망상을 불러일으키려고 작당한 듯한 곳이니까요. 말하자면 연인들의 낙원인 셈이지요. 한데 그런 낙원에 홀로 있다는 건 얼마나 힘든 일인가요.—게다가 버림받은 처지라면!

“아이구 이 어리숙한 것아! 내가 너한테 남자들의 농간이나 거짓말이 어떤 건지 몇 번이나 경고하지 않았더냐? 더구나 그 도도하고 야심 찬 가문의 남자에게 무얼 기대 하겠느냐구. 넌 고아인데다 몰락한 집안의 후손임을 잊어선 안 된다. 그 청년이 진실하다 해도, 자부심 강한 귀족 가문인 그의 아버지가 너처럼 하찮은 신분의 며느리를 원하지 않을게다. 그러니 마음 잡고 네 맘속에 어른거리는 헛된 생각들일랑 몰아내버리거라.”

빈 틈없는 프레데곤다의 말은 조카딸의 마음을 더 침울하게 할 뿐이었어요.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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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8
알함브라궁의 옛날옛적이야기-알함브라궁의 장미와 은빛 류트 이야기(5)

 

워싱턴 어빙 지음 / 윤경남 옮김&사진

 

(지난 호에 이어)

데리고 있는 조카딸은 전쟁에 희생당한 장교의 고아였어요. 수녀원에서 교육을 받다가 그 신성한 보호시설에서 숙모의 감시 겸 보호 아래로 옮겨왔어요. 큰 그늘이 되고 있는 숙모의 보호 아래 소녀는 성 안에 숨겨진 채 무기력하게 지내고 있었지 뭐에요. 마치 가시덤불 아래 꽃을 피우고 있는 장미꽃처럼 말이에요.

막 피어나는 그녀의 신선하고 아침 해 같이 아름다운 모습은 그렇게 갇혀 지내도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말지요. 안달루시아 사람들은 그들의 시적인 기질을 발휘하여 그 소녀를 “알함브라의 장미꽃”이라 불렀답니다.

경계심이 많은 숙모는 왕실 가족이 그라나다에 머무는 동안 매력이 넘치는 조카딸을 철저하게 계속 감시했으며, 자신의 감시망이 철저한 것에 만족하고 있군요. 사실이지 그 훌륭한 숙녀도 달빛이 고요한 밤에 탑 저편에서 기타 퉁기는 소리와 사랑의 노래 소리에 마음이 산란해지긴 했지만, 그때마다 조카딸에게 하는 말이 “저런 가치조차 없는 음유시인의 노래엔 귀를 닫아버리라”고 훈계하는군요.

순진한 처녀들을 유혹해서 파멸시키는 기술의 하나라고 가르쳤고요. 아, 슬프도다. 아무리 무미건조한 교훈이라 한들 순진한 소녀의 마음으로부터 달밤의 세레나데를 그 따위 훈계로 막아낼 수 있을까요?

 

 

마침내 필립페 왕이 그라나다에서 얼마동안 머문 다음 갑작스럽게 수행원들을 거느리고 떠나게 되었어요. 경계심이 많은 프레데곤다는 왕의 행차가 ‘정의의 문’을 지나 도시로 이어지는 큰 길을 따라 내려가는 것을 지켜보았어요.

마지막 깃발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이젠 모든 근심이 다 물러갔다고 기뻐하며 탑으로 돌아온 순간, 날렵한 아라비아의 준마가 정원 쪽문 앞에서 발굽으로 바닥을 구르고 있는 모습에 기절할 지경으로 놀랐어요.

게다가 장미 덤불 사이로 화려하게 수 놓은 옷을 입은 젊은이가 조카딸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있는 광경엔 더욱 기절초풍 할 일이었어요. 그녀의 발 소리가 들리자 기사는 부드럽게 작별인사를 하고 갈대와 배롱나무 담장을 살짝 뛰어넘어 말에 올라 타더니 순식간에 눈 앞에서 사라진거에요.

마음 여린 하신타는 슬픔으로 고통에 못 이겨 숙모가 기분이 좋지 않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고 있었어요. 숙모의 팔에 몸을 던지고 흐느끼며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어요.

“아, 나의 사랑! 그가 가버렸어요! 떠나 버렸다고요! 이제 다신 그이를 볼 수 없게 되었어요!”

“떠나다니? 누가 떠났단 말이냐? 네 앞에 무릎 꿇고 있던 그 젊은이는 대체 누군고?"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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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1
알함브라궁의 옛날옛적이야기-알함브라궁의 장미와 은빛 류트 이야기(4)

 

워싱턴 어빙 지음 / 윤경남 옮김&사진

 

(지난 호에 이어)

루이스 데 알라콘은 더 이상 늑장을 부려선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는 모든 풍경을 한 눈에 접어두었어요. 그리고는 고맙다는 말을 우물우물 하면서 곧장 매를 찾으러 나선형 층계를 가볍게 올라갔어요.

잠시 후 주먹 위에 도망 간 새를 얹고 돌아왔어요. 소녀는 분수 옆에 앉아 명주실을 감고 있다가, 당황하며 실타래를 바닥에 떨어뜨렸어요. 루이스는 재빨리 실타래를 집어 들고 우아한 몸짓으로 무릎을 꿇고 소녀에게 내밀었어요. 그것을 받으려고 내민 소녀의 손을 잡고 왕비의 아름다운 손에 했던 것 보다 더 열렬하게 입을 맞추었음은 말할 것도 없고요.

“어머니나, 기사님!” 그런 인사를 받아 본 적이 없는 소녀는 놀라움에 더욱 얼굴을 붉히며 소리 질렀어요.

가장 겸손한 듯이 그 기사는 천 번도 더 사과를 하면서, 그것은 궁중에서 가장 깊은 존경과 경의를 표시하는 인사법이라고 설명하는군요.

그녀의 분노는 -그녀가 분노를 느꼈다면 말이지요- 쉬이 가라 앉았지만, 흥분과 당혹감은 가시지를 않았어요. 소녀는 바느질 감 위에 시선을 묻고 실타래를 계속 헝클어뜨리며 얼굴만 점점 더 붉히고 있네요.

능청스런 시종무관은 그녀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알아채고 그 기회를 이용하려고 아름다운 말들을 다 내뱉었으나 웬일인지 그 말들은 모두 그의 입 속에서 사라져버리는 거에요. 신사답게 보이려고 애쓸수록 어설프기만 하군요.

궁중에서 경험 많고 똑똑한 숙녀들 앞에서 그렇게 우아하고 뻔뻔할 정도로 능수능란 하던 자기가 겨우 열다섯 살 된 순진한 소녀 앞에서 긴장하여 당황하다니, 자신도 놀랄 지경 이었어요.

사실이지 그 꾸밈없는 소녀의 순진함과 정숙함이 바로 감시에 혈안이 된 그녀의 숙모가 주는 예비지식 보다 더 효과적인 보호자인 셈이었어요. 하지만, 첫사랑의 속삭임에 넘어가지 않을 여자가 어디 있겠어요? 순진한 어린 소녀는 기사가 더듬거리며 말을 잘 못하는 것도 본능적으로 다 이해했을 뿐 아니라, 자기 발치에 무릎을 꿇은 연인의 모습을, 그것도 그렇게 매력 있는 연인의 모습을 처음 본 그녀의 가슴은 한껏 부풀어 오를 수밖에 없었지요.

루이스의 순진한 수줍음은 오래가지 않았고 곧 자신의 유연하고 자신감 있는 태도로 돌아갔어요. 멀리서 째지는 목소리가 들려 왔거든요.

“숙모님이 미사를 마치고 돌아오시는 거에요!” 소녀는 겁에 질려 소리쳤어요. “기사님, 제발 떠나주세요.”

“그대의 머리에 꽂은 장미꽃을 기념으로 주기 전엔 떠나지 않겠소.”

소녀는 새까만 머리칼 사이에서 급히 붉은 장미를 떼어내며 말했어요. “자, 받으세요. 이제 어서 가세요.”

루이스는 장미꽃을 받아드는 동시에 그것을 내민 아름다운 소녀의 손에 입맞춤 세례를 퍼부었어요. 그리고는 그 장미꽃을 자기 모자에 꽂고 흰매를 주먹 위에 앉히고 다정한 하신타의 마음마저 품은 채 정원을 가로질러 달려나갔어요.

탑에 돌아 온 숙모는 빈틈없는 성격상 조카딸이 안절부절 못하는 것과 방안의 혼란스러운 공기로 눈치를 채긴 했지만, 한 마디 설명으로 충분히 파악했지요.

“큰 매가 먹이를 찾아 홀 안으로 들어 왔댔어요.”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흰매가 탑 안으로 날아 들어오다니! 그렇게 뻔뻔한 매 이야기를 들어본 사람이 있을까요? 새장 안에 있는 새도 안전하지 않다니!”

빈틈 없는 감시꾼인 프레데곤다는 노쳐녀들 중에서도 가장 경계심이 많은 여자였어요. ‘반대의 성’인 남성에 대해 공포와 불신감이 있으며, 독신생활이 길어질수록 점점 더 짙어져 갔어요. 그 훌륭한 여성이 남성들의 계략 때문에 고통을 받은 건 아니었고, 오히려 그 여성의 얼굴 위에 호위병을 세워두는 바람에 아무도 그녀의 영역을 침범하지 못한 것이랍니다. 두려워할 이유가 아주 적은 숙녀들일수록 매력 넘치는 이웃에 대한 감시를 적극적으로 펼치거든요.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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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4
알함브라궁의 옛날옛적이야기-알함브라궁의 장미와 은빛 류트 이야기(3)

 

워싱턴 어빙 지음 / 윤경남 옮김&사진

 

(지난 호에 이어)

 

 

루이스 데 알라콘은 이 폐허가 된 탑 속에 여성의 취향과 우아한 흔적이 있는것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알함브라 성안에 떠도는 마법에 걸린 홀들의 이야기들이 떠 올랐어요. 반짝이는 거북이등을 한 저 고양이가 마법에 걸린 공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드네요.

그는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어요. 다락 위의 작은 창문에 아름다운 얼굴이 어른거리다가 사라져 버렸어요. 그는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으나 헛일. 안에선 발자국 소리도 안 나고 사위가 정적에 싸여있을 뿐이었어요. 그는 착각을 한 것인가 혹은 아름다운 그 환영이 이 탑의 요정일까? 생각하며 더 크게 문을 두드렸어요. 잠시 후 환하게 눈부신 얼굴이 다시 내다보는군요. 열다섯 살쯤 된 이제 막 피어오르기 시작한 소녀의 얼굴이.

루이스는 즉시 깃털 달린 모자를 벗어 예의 바른 말씨로 자기 매를 찾을 수 있게 탑에 올라가게 해달라고 간청했어요.

“저는 문을 열어드릴 수 없어요. 숙모님이 누구한테도 문을 열어주면 안 된다고 하셨거든요.” 소녀는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어요.

“부디 제 청을 들어주세요, 아름다운 아가씨. 저건 왕비님이 가장 아끼시는 흰매랍니다. 저 매를 찾지 못하면 저는 궁전에 돌아가지 못합니다.”

“그러면 당신은 궁정 기사들 중 한 분이란 말인가요?”

“그렇답니다, 아름다운 아가씨. 저 흰매를 놓친다면 왕비님의 총애와 제 지위마저 잃게 됩니다.”

“맙소사! 숙모님이 저에게 특별히 문단속을 시키신 건 바로 궁정 기사들을 경계 해서라고요!”

“못된 기사들을 경계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만,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아가씨가 저의 이 작은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모든 걸 잃어버리게 될 소박한 시종 기사일 뿐입니다.”

어린 소녀는 젊은 기사가 겪을 고난에 마음이 움직였어요. 사소한 호의를 들어주지 않아 그가 곤란한 처지가 된다면 얼마나 가엾은 일인가. 더군다나 숙모가 철없는 처녀들을 사냥하러 배회하는 식인종이라고 말해온 그런 위험한 존재 같아 보이지도 않고요. 그는 점잖고 겸손하게 모자를 손에 들고 간청하며 서 있는데 너무나 매력적이지 뭐에요.

 엉큼한 그 시종무관은 그녀가 경계를 약간 푸는 듯 하자, 감동적이고 애절하게 간청하는 말씨로 어떤 처녀도 거부할 수 없는 본성에 호소했어요. 얼굴이 빨개진 그 탑의 어린 파수꾼이 내려와 떨리는 손으로 문을 열 수밖에요. 창문으로 흘깃 본 그녀의 모습에 매료된 그 기사는 그녀의 전신이 자기 앞에 모두 드러나자 황홀 지경이었어요.

그녀의 안달루시아형 조끼와 주름 치마가 아직 성숙한 여인에 이르지 않은 그녀의 몸집에 둥글고 섬세한 균형을 잡아주었어요. 이마 위로 반듯하게 가르마를 탄 반짝이는 머리칼은 그 지방 풍습대로 방금 꺾은 장미꽃으로 치장했네요.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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