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블로그 ( 오늘 방문자 수: 28 전체: 124,239 )
알함브라궁의 옛날옛적 이야기(20)
knyoon

 

무어인의 유산이 묻힌 칠층탑 이야기(3)

워싱턴 어빙 지음 / Yunice 윤경남 옮김 & 사진

 

 

 

(지난 호에 이어)

그는 즉시 이 문제는 살인과 절도에 해당하는 사건이라고 판단을 내렸어요. 그리고 틀림없이 풍부한 전리품도 있을 테고…한데 이것을 어떻게 합법적으로 확보하느냐가 문제였어요.

 

범인만 체포해서는 교수대만 좋은 일이고, 그 전리품을 손에 넣는 일만이 읍장이며 재판관인 자신을 풍성하게 해주는 일이므로, 그것은 그가 앞세우는 정의의 가장 위대한 목표가 되는 셈이었어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는 가장 신뢰하는 형리를 불렀어요. 옛날 히스파니아 복장에 검은 망토를 어깨위로 펄럭이며 사람들에게 겁주는 가늘고 긴 막대기를 들고 다니는 그 형리는 곧장 운수 사나운 물지게꾼의 뒤를 쫓았어요. 얼마나 확신에 차서 빨리 달려 갔는지, 페레힐이 자기 집에 들어서기도 전에 붙잡아 페레힐과 그의 당나귀까지 정의의 집행자 앞에 끌어 왔어요.

 

읍장은 아주 무시무시하게 찡그린 얼굴을 하고 그를 내려다 보며 고함을 쳤어요.

“너 죄인은 들어라!” 하고요. 땅딸보 가예고는 무릎이 덜덜 떨렸어요.

 

“내가 네 죄를 모두 알고 있으니 네 죄를 부인해도 소용 없을 줄 알아라. 네가 저지른 죄목은 교수대가 가장 합당한 벌이지만, 나는 자비로운 사람이고, 네 사연을 들어보겠다. 네가 네 집안에서 죽인 무어인은 이교도이며 우리 신앙의 적인 건 사실이다. 그를 살해한 것은 틀림없이 네가 순간적으로 종교적인 열성에 빠져서라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너에게 관용을 베푸노니, 그에게 훔친 물건을 모두 내놓으면 그 문제를 조용히 덮어 주겠다.”

 

불상한 물지게꾼은 자신의 결백을 증언해 주시라고 그가 아는 성인의 이름을 모두 불러 보았어요. 아, 비참하게도, 아무런 응답이 없네요. 응답이 있다 해도 재판관은 믿지 않았을 거지만. 물지게꾼은 죽은 무어 노인의 이야기를 자세히 설명해 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네요.

 

“그렇다면 네 말은 그 무슬림이 네가 죄를 저지를 만큼 황금이나 보석 나부랭이를 갖고 있지 않았단 얘기냐?”

“그건 제가 살아 남기를 바라는 것 만큼이나 사실입니다요. 그 노인은 제가 보살펴 준 값으로 고맙다고 조그만 백단 향나무 상자 하나를 남겨준 것 밖에는요.”

 

“백단 향나무상자라! 백단 향나무상자란 말이지! 그럼 그게 어디 있단 말이냐? 어디에 그걸 숨겨 놓았느냐?” 읍장님은 그게 보물일거라 여기며 고함을 쳤어요.

“그걸로 나리의 자비를 받게 된다면, 기꺼이 드리겠습니다. 그건 제 당나귀 등에 장바구니 안에 들어 있습죠.”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영리한 형리가 재빠르게 달려 나가 신기한 그 백단 향나무 상자를 단숨에 찾아 들고 나타났어요. 읍장은 떨리는 손으로 상자를 급히 열어보았어요.

그 안에 담겨 있으리라 기대한 보물은 보이지 않고, 아랍어로 적힌 양피지 두루마리와 초 한 자루만 댕그러니 들어 있어 모두 실망했지요.

 

죄인에게 유죄를 판결해도 얻을 게 없으면 히스파니야 어디서나 공명정대한 판결이 나기 마련이지요. 읍장님은 전리품으로 얻을 게 없음을 알게 되자, 실망스런 얼굴을 감추고 물지게꾼의 설명이나 그의 아내의 증언조차 건성으로 들어 넘겼어요. 그의 결백을 확신하고 무죄방면까지 해주었어요. 무어인의 유산인 백단향나무 상자와 그 속에 든 것도 그에 대한 보상으로 가져가게 허락하고, 물지게꾼의 당나귀만은 벌금으로 빼앗었답니다.

 

불상한 가예고는 이제 어쩔 수 없이 물독을 손수 져 날라야 하는 신세가 되었으니, 알함브라 성내의 우물터까지 무거운 물독을 메고 터벅터벅 걸어 올라가는 가예고를 생각해보세요. 한 여름 무더위 속에 힘겹게 언덕을 오르내리면서 페레힐은 본래의 밝은 성격이 사라져 가네요.

 

“개 같은 읍장 놈! 이 불쌍한 인간의 생계를 잇는 미물 일뿐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내 친구마저 훔쳐 가다니! ”하며 소리소리 질렀어요. 그가 힘든 일을 할 때 함께 해준 다정한 친구생각에 그의 착한 마음이 찢어지는 듯 아팠어요.

 

“아, 내 사랑하는 당나귀야! 너도 분명 이 옛 주인을 그리워하고 있을 거야. 너도 그 물독항아리를 그리워하고 있을 게 틀림없어, 아, 불상한 녀석!” 하고 소리치며 돌계단에 앉아 어깨를 쉬곤 했답니다.

 

착한 일을 하고도 혹독한 벌을 받는 이런 불상한 사람이 또 있을까요? 운 사나운 페레힐은 마음도 몸도 시달려서 지쳤지만, 아내의 비난을 앉아서 듣고만 있을 수 밖에요. 마침내 어느 날 저녁, 아내의 비아냥이 또 시작하자 페레힐의 참을성이 바닥났어요. 그는 마치 그의 고통을 비웃는 듯 선반 위에 반쯤 열린 채 놓여있는 백단향나무 상자를 노려보다가 그 상자를 냅다 바닥에 내 던졌어요. (다음 호에 계속)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