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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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비밀일기(17)
knyoon

 

(지난 호에 이어)

“돈 까밀로와 빼뽀네씨! ” 하고.

우리는 서로가 좋은 친구가 된 다음에 작별했다. 나는 알베르띠노가 아직 차에 오르지 안았지만 기쁜 마음에 악셀레이터를 힘껏 밟는다.

여행 도중 여러 번이나 사람들이 내 팔자 콧수염을 조사해 보고는 “돈 까멜로와 빼뽀네야!”하고 외치는 것을 보게 된다. 억지로라도 그 아이는 자기 아버지가 적어도 해외에선 꽤나 존경을 받고 있는 인물이란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우리의 여행 목적지는 오스트리아가 아니다. 이 길은 단순히 14년 전 우리 포로들이 걸어간 길이었기 때문에 이 길로 들어선 것이다. 다음 번엔 뮌헨으로 차를 몰아갈 차례다.

고속도로로 몇 마일 가지 않아서 독일 국경에 들어서게 된다. “아버지 일기를 조금 더 읽을까요? ” 알베르띠노가 묻는다. “그래, 어서 읽어라.”

 공책 제1권이 재빨리 다시 등장했다.

 

9월17일 금요일

잘즈부르그를 지나자 풍경이 달라졌다. 건널목 차단기 뒤에는 갈색 셔츠에 붉은 나찌 깃발을 그려 넣은 완장을 차고, 다섯 명의 어린 소년들이 우리가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고 서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자기들이 우리의 목을 치겠다는 시늉을 해 보였다. “우리가 독일에 입성한 게 틀림없군.” 이탈리아 친구 한 사람이 말했다.

나는 알베르띠노에게 그만 읽으라고 말한 다음 그 공책을 가방에 다시 넣게한다. 아무 말 없이 몇 마일쯤 더 가다가 마침내 그 아이가 내게 묻는다.

“그 소년들은 지금쯤 어른이 되었겠네요. 아마 스물 셋이나 스물 네 살쯤 되었겠지요.”

“그렇겠지. 그 아이들이 공습에 불타버렸거나 폭사하지 않았다면 말이지.” 내가 대답한다. 그 이상 할 말이 없다. 다음 행선지인 독일이 기다리고 있다.

 

2. 독일

이탈리아인들은 단순한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 사복차림의 관리들과 또 모든 시민들을 거짓 가면을 쓴 죄인 취급하는 제복 입은 사람들과 싸우는데 이력이 나 있는 국민이지만, 오스트리아 국경을 넘어설 때는 누구나 실망하게 된다.

세관에서 여행자의 여권을 흘깃 드려다 보고는 가도 좋다고 손을 흔들면 그만이다. 이 간단한 작업이 오스트리아 세관 경비원이 하는 일의 전부다. 그때 이탈리안은 승려의 성취감을 사기 당한 기분이다.

그러나 독일 세관은 우리 이탈리안에게 훨씬 큰 만족감을 준다. 우선 여권을 자세히 드려다 볼 뿐 아니라 별로 반갑지 않은 개인명단과 대조하며 조사한다. 이런 일은 내게 오싹할 만큼 큰 기쁨을 준다.

만일 입국허가가 나지 않을 경우엔 우리는 다른 사무소에서 임시허가를 받아야 하며, 필요하다면 주당 16마르크의 보험료마저 지불해야 한다. 그건 별로 나쁠 게 없다. 그 경비원들은 아주 친절했고 차 뒤의 트렁크를 열라고 말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며, 그것은 결국 그 경비원이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이런 평범한 방식에 응답한 나머지, 나는 국경표지판이 우리 뒤로 물러갈 때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 쉴 수 있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우리는 드디어 통과하게 되었군요!”

“왜 그렇게 말씀하세요?”

알베르띠노가 알 수 없다는 듯이 묻는다. 이런 경우에, 우리가 줄을 서지 않고도 몇 분 안 걸려              어떤 식과 절차를 통과할 수  있었다는 것이 감사한 일이라고 나는 말해준다.

약간의 거짓말이지만, 이 전형적인 이탈리아 국민에겐 잘 설명해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의식이 편안하게 법  앞에 정당하게 서 있을 때에라도, 그 관료적인 봉쇄구역을 성공적으로 통과할 때면 언제나 주님께 감사와 찬양 드리지 않을 수 없음을 설명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중에 우리는 어떤 도보 여행자를 우리 차에 태웠다. 그는 젊은 공학도로서 이탈리아 말을 좀 할 줄 알았다. 최근 여름방학 중에 도보로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지나간 덕분이었다.

나는 나를 알아본 많은 독일사람들처럼 나를 이해하고 있는지 알고 싶은 생각이 들어 그에게 물었다.

 “1900년 이후로 이탈리안들은 그들의 전공 분야에서 큰 명성을 얻고 있고. 그 중에 당신의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생각나는 이탈리아인을 한 번 대 보시오.”

젊은이는 서슴지 않고 말한다.

 “카루소(Caruso), 토스카니니(Toscanini) , 지끌리(Gigl i)”

나의 순수한 작은 질문이 다이나마이트를 실은 기분으로 바뀌었다.

나에게 새로 나타난 독일의 얼굴은 프러시안(Prussian)의 찌푸린 눈살이 아니라 바바리안(Bavarian)의 미소였다. 우리 모두의 장래에 관한 가장 중요한 정치적인 단위는 전쟁장관 혹은 국방장관이리라.

이 내각은 바바리아에 그 청사를 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내각 자체가 바바리안적이다. 나는 그 고용인들이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바바리안이라고 말 하는 건 아니다. 그 분위기가 바바리안 적 느낌을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독일인들은 통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까? 통합에 대한 생각을 포기하는 것이 독일인들에 가능할런지 모르겠다. 독일 경제와 군대의 효율이 재건되었으므로 독일이 레벤스라움(Lebensraum-註: 독일 나치이념의 하나인 〈생활전선〉)에 대해

재론하거나 영토를 확장하려고 하진 않을는지 모르겠다.

평화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밤에도 뜬 눈으로 지새게 하는 불확실한 무엇이 있었다.             확실한 대답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독일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를 말하는 것은 더욱 불가능하다.

다만 그들이 내세운 본(Bonn) 공화국에 충성을 바치고 그로 인해 대표가 될 사람에 많다는 것을 의미하려는 것이다. 내가 쓸 수 있는 기록이란, 독일인,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말하는 일뿐이다. 동시에 나는 정치

전문가 류의 신문기자가 아니므로 그들 머리에서 어떤 일이 진행되고 있는가 확실히 말 할 수는 없다.

보수적인 독일인들은 통합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매우 지각 있는 견해를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그들은 틀림없이 통합을 원한다. 그러나 그것을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리고 “즉시” 요구한다는 생각에 대해서는 기가 죽어왔다.

그러한 슬로건이 후루시초프의 풍성한 두뇌로부터 곧바로 나왔다는 것이

이제 그들에게 분명해지고 있다. 그러나 독일은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들의 이상을 포기하거나, 신성한 중재를 통해서 이뤄지기를 기다리고 있지는 않다.

 그들은 대서양 연합에서 강력한 유럽 연합과 함께 과도한 소련의 힘을 균형잡기 위해 완고한 지혜를 짜내서 일한다. 그들의 국가적인 연합이 순간에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은 유럽인의 연합을 보다 필수적인 것으로 중요시한다.

대부분의 이탈리안들이나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유럽 연합이 단순한 슬로건이 될 수 있지만 독일인들에게 그 문제는 심각한 것이 된다. 그들의 국가가 통합되기를 기다리는 일은 그들을 좌절시키는 일이 아니다. 베를린이라는 “섬” 안에는, 러시아를 좋아하지 않는 독일인이 300만 명이나 있고, 동독에서도 반 러시아 감정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러시아인마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리라.

라인 강둑 위에 있는 본은, 예전엔  조용하고 고상한 도시였다. 연금 수혜자와 노안들만 살고 있던 이 도시가 갑자기 서독의 수도로 부상한 것이다. 그러나 본은 머리를 써서 그들 본래의 조용한 방법을 모색했다.

인구는 늘어났지만 여기에 놀라운 사실이 있다. 오직 정부 관리들과 그곳으로 이주한 그들의 가족 숫자만이 증가한 것이다. 이 도시는 로비스트와 전문가의 무리가 관료적인 기호로 모여드는 곳이 아니다.

본은 22명의 내각이 있는, 여전히 단조롭고 조용한 곳이다. 그러므로 이곳은 새로운 평온과 열심히 일하는 독일의 수도로서 적당하며, 나로서는 우리 모두가 열망하는 유럽 연합의 정신적인 수도로 추천하는데 주저하지 않으리라.

본은 아주 단조로운 평야 위에 누워있다. 나는 오후 5시에 국방장관을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있다. 국방성은 내가 들어있는 호텔에서 이 삼백 야드쯤 떨어져있다.

운 나쁘게도 비가 오고 있었는데 더욱 사나운 일은 내 자동차로 그곳에 가려고

결심한 일이다. 나는 5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4시 30 분에 길을 떠났으나, 5시 30분까지도 코블렌즈(Cohlenz) 노상에서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에 꼼짝 못하고 서 있었다.

결국은 본에 돌아가게 되겠지만 나는 이렇게 늦은 시간에 장관을 만 나러 가는 일 따위로 신경을 쓰기 싫어서 약간 부끄러운 마음으로 그냥 호텔로 돌아간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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