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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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러시아에 가다(23)-예수님이 보낸 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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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레비네크(Grevinec)에서는 이태리 방문객들이 도착할 시간에 대비해서 준비가 다 되어 있었다. 선전과 홍보를 맡은 책임자가 마을 입구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가 지방 평의회의 행정본부로 그들을 안내했다. 그 자리에서 지방 당 지도자와 콜호즈 집단 농장의 최고 책임자가 환영사를 했으며 페트로프나가 통역을 했다.


빼뽀네가 준비한 답사를 조심스럽게 마치자 지방 도시의 관례대로 박수가 뒤따랐다. 이미 소개한 거물급 인사 외에 차석급의 교관들도 있었는데, 페트로프나 동무가 그들을 부서별로 각각 소개했다. 그들은 가축 사육부, 야채와 과일과 곡물 생산부, 기계 수리부 등에서 일하는 책임자들이었다. 


환영회 잔치가 마련된 방은 창고 같은 구조에 통나무 식탁과 의자가 몇 줄 이어져 있었고, 벽에는 레닌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그 초상화는 준비위원들이 금빛 틀에 표구하고 푸른 솔가지로 장식해 놓았지만, 이런 정도의 장식보다는 식탁 위에 늘어놓은 여러 가지 보드카 병들이 더 손님들의 주목을 끌었다.


한 잔의 보드카를 붉은 포도주인양 급하게 마셔 넘긴 그들은 몸과 마음에 큰 자극제가 되고 있었다. 빼뽀네도 그 자극제에 즉시 열을 내고 반응을 나타냈다. 이 콜호즈가 특히 돼지고기와 우유와 곡물 생산 분야에서 인정받는 챔피언이라는 설명이 있자, 그는 발언권을 요청했다.


오리고프 동무 앞에 빙 둘러선 여러 사람들 앞에서 그는 즉흥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페트로프나가 구절마다 통역하는 시간 외엔 조금도 쉬지 않고 계속했다.


“나는 에밀리야 출신입니다. 그곳에는 50년 전에 가장 성공적인 인민 협동 조합이 처음 세워졌습니다. 이 지역은 농업이 고도로 기계화되어 있지요. 돼지고기, 낙농업, 곡물 생산량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최고랍니다. 우리 마을에서 동지들과 내가 함께 농민 노동자 협동조합을 세웠는데, 얼마 전에는 영광스럽게도 소비에트 연방으로부터 엄청난 선물을 받았답니다!”


빼뽀네는 서류 가방에서 사진을 한 다발 꺼내어 오리고프 동무에게 건네주었다. 그 사진들은, ‘니키따’라는 이름이 붙은 트렉터가 의기양양하게 마을 안에 들어서는 모습과, 협동조합 농장에서 그 차가 작업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곳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 사진을 돌려가며 들여다보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선 자본주의가 붕괴되어 가고 있습니다.” 빼뽀네는 말을 이었다. “아직 최후 단계에까지 이른 건 아닙니다만, 같은 지역 출신의 타롯치 동무가 증언한 것처럼 지금 진행 중에 있습니다. 틀림없이 지주나 성직자들의 특권은 말살될 것이며 새로운 자유 시대가 시작되리라 봅니다. 얼마 안 가서 콜호즈와 같은 집단농장을 모델로 한 농업 협동조합과 소브코스와 같은 집단 농장을 모텔로 한 정부 계획들이 과거의 수치스러운 유물인 노예 같은 노동 조건을 대신해 줄 것입니다. 저는 오리고프 동무와 당의 지도자들께 그레비네크의 운영 세칙들을 자세히 보여달라고 요청하고 싶습니다.”


오리고프 동무는, 이태리 동지의 요구가 중요한 대목임을 이해한다면서 그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는 콜호즈의 지도자들과 협의를 하고, 페트로프나 동무가 그 내용과 취지를 빼뽀네에게 전했다.


“동무, 우리 사업의 기술과 조직 분야에 대한 동무의 관심에 우리는 모두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내가 동무의 방문기간 내내 동무와 콜호즈 사이의 중개 역할만 하고 있다면, 동무의 동지들은 계획대로 여행 일정을 다 맞추긴 힘들 것입니다. 다행히도 여기 있는 기술자 가운데 이태리어로 완전한 정보를 줄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 있습니다.”


페트로프나는 러시아 사람 일행 중의 한 사람에게 손짓을 했다. 35세 내지 40세 가량 되어 보이는 얼굴이 검고 호리호리한 기술자 복장의 남자가 앞으로 한 발 나섰다.
“농기계 공급과 수리 관계를 맡고 계신 분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이름은 스테판 보도니, 이태리 사람.”


“소비에트 연방의 시민인 스테판 보도니입니다.”


깡마른 그 남자가 못마땅한 시선을 페트로프나에게 보내면서 빼뽀네에게 손을 내밀고 말을 가로 막았다.


“그렇습니다. 난 소비에트 시민이에요. 내 아이들도 그렇고요.”


페트로프나 동무는 당황하는 빛을 감추며 미소 지었다. “시민으로 정정하겠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나는 동무가 이태리 태생임을 분명하게 말해줘야 하거든요. 우리가 공식 여행을 할 동안 동무는 뽀따지 상원의원 동무의 개인 안내자가 되는 겁니다.”


그녀는 일행과 합류하려 갔고, 돈 까밀로도 그녀의 뒤를 따라가려 했으나 빼뽀네가 길을 가로 막았다.


“타롯치 동무, 동무는 나하고 함께 있어야 해요.”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가 보는 건 모두 기록해줘야 합니다.” 


“명령대로 하겠소, 동무.”


돈 까밀로가 비꼬아서 말했다.


“동무, 당신은 당원이오?” 


빼뽀네가 그의 안내인에게 물었다.


“아니오, 아직 그런 영광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는 어딘가 쌀쌀하기도 하고 초연한 듯 하기도 한 모호한 대답을 했다.


소비에트 시민 보도니는 빼뽀네가 묻는 질문에 매우 간결하고도 명확하게 대답했으며, 돈 까밀로는 그 대답들을 그의 공책에 모두 적었다. 그는 콜호즈 운영의 세부 사항을 낱낱이 잘 알고 있었고, 정확한 날짜와 숫자까지 열거했지만 자기 자신의 의견을 말하진 않았다. 


그는 빼뽀네와 돈 까밀로가 차례로 시가를 권했으나 정중히 거절했다. 그러나 그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기 때문에 마침내 그는 호주머니에서 신문지 조각과 마코르카를 꺼내어 교묘하게 잎담배를 말아 피웠다. 


그들은 밀 말리는 곳을 방문한 다음 비료와 살수기, 작은 농기구 등을 보관해 두는 창고를 방문했다. 모든 것이 일목요연했고 질서가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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