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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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러시아에 가다(17)
knyoon

 

 

 

(지난 호에 이어)


그녀가 스카못지아의 사진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이리저리 돌려 보다가 그녀의 핸드백 속에 슬쩍 밀어 넣었다는 사실로 보아 확실히 알 수가 있었다. 아무리 공산주의 사상에 철저히 물이 든 사람이라고 해도 인간의 연약함엔 어쩔 수 없는 법인가 보다. 


 
우주세포


 돈 까밀로를 제외하고는, 이 곳에 엄선되어 온 모든 당원들은 비운의 론텔라까지 포함해서 장기 근속한 당의 투사들이었다. 론텔라는 돈 까밀로에게 배신자로 낙인 찍혀 제거 당했었다. 나머지 여덟 명의 열성당원 가운데서 바치까 동무는 공산주의 이론으로 가장 든든하게 무장하고 있었고, 기회 있을 때마다 그의 이론을 잘 인용하였다.

 

 

 


바치까는 이태리 서북부의 제노아에서 왔다. 그는 정말로 타고난 제노아 사람이었다. 이 말은 그가 누구보다도 가장 발달된 사업가 기질을 가진 실질적인 사람이란 뜻이다. 그러나 돈 까밀로가 그의 제2의 목표로 그를 찍어놓고 있는 이상, 그의 사업에 대한 고도의 감각은 그에게 파멸을 가져올 뿐이었다.


그 사건은 공식 일정이 있는 첫날 오후에 일어났다. 그날 방문단 일행은 경호를 받으며 시내 관광을 했다. 빼뽀네가 아침에 찾아갔던 정부 경영의 종합판매점이 그들이 첫 번째로 찾아간 곳이었다. 오리고프는 그들에게, 소비에트 연방이 1965년까지 해마다 모직물을 80억 야드 생산하게 되며, 양말은 1500만 켤레를 생산하게 된다는 것을 알려주도록 페트로프나에게 지시했다. 


그런 다음,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물건을 자유롭게 살 수 있음을 믿게 하고 그 명령을 확인하기 위해서 출입구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스카못지아 동무는 상점 경영에 대해 낱낱이 알고 싶어서 페트로프나 동무를 가정용품부로 슬쩍 데리고 갔다. 빼뽀네는 집 보는 개 모양으로 돈 까밀로를 호위하느라고 바싹 붙어 다녔고, 다른 사람 들은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져갔다.


상점엔 여자들이 가득 차 있었는데, 대부분이 작업복을 입고 있거나 우편 배달부의 제복이나 전차 차장의 제복을 입고 있었다. 그들 일행은 대개 식료품과 가정용품을 몇 가지 산 다음에 숙녀복과 신발, 속옷, 화장품이 진열된 것을 보러 갔다.


돈 까밀로가 빼뽀네에게 말했다. “당신네들의 진정한 공산당 여성 당원들이, 허영심도 없고 흥청거리는 것을 오히려 경멸하는 듯한 모습은 꽤 주목할만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 눈 앞에서 일어나는 여성들의 모습은 두 가지로 설명할 수가 있네. 첫째 이 여성들은 훌륭한 공산주의자가 못 된다는 것, 아니면 소비에트 연방이 성취한 높은 생활 수준 덕분에, 그들이 그렇게 노골적으로 부러워하며 바라보고만 있는 그 물건들이 남아나지 않는다는 말일세.”


“무슨 의도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구먼요.” 빼뽀네가 의심쩍게 중얼거렸다.


“내 말은, 소비상품이 너무 많아서 여성들이 자기가 입고 있는 바지를 예쁜 드레스와 교환해 보고 싶은 생각을 제각기 느끼고 있다 그거요.”


그리고는 빼뽀네가 이 말에 걸려들지 않는 것을 보고 다시 말을 이었다. “만 리라를 바꾼 그 루블 지폐로 자네 부인에게 페티코트 하나 사드리지 그러나! 물론 국가가 고용한 양장업자의 손으로, 국가가 만들어낸 재료를 가지고 만든 국가 제품의 페티코트가 개인 양장점에서 만든 옷만큼 손질법이나 매끈한 면을 다 갖추었으리라고 기대할 순 없겠네만 말일세.”


이 말엔 빼뽀네도 더 이상 움츠려들거나 우물우물 대답을 회피하려 하지 않았다.


“여성들이 크리스천 디올에서 물건을 사고 노예가 되느니, 평범한 페티코트 하나 사 입고 자유로운 게 더 낫겠소.”


“그렇지, 말 잘했네, 동무.” 돈 까밀로가 말했다.


그 때 그가 찾아 돌아다니던 일행 중의 한 당원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바치까 동무는 사람들 틈에서 겨우 빠져 나와 옷 가게의 점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의 대화는 손짓말로 교환되었고 가격을 흥정했다. 흥정한 가격을 종이 쪽지에 적었다. 그런 다음 바치까 동무가 반짝이는 셀로판 봉투를 주머니에서 꺼내자 판매원은 재빠르게 그것을 카운터 밑으로 밀어 넣었다.


그런 다음 그 판매원은 그에게 밍크 목도리를 싸 주었다. 거래는 끝났다. 빼뽀네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돈 까밀로는 그 진행 과정을 낱낱이 봐두었다. 이젠 서둘러서 호텔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일행은 저녁때가 되어서야 호텔로 돌아왔다. 종합판매점을 방문한 다음에 병원과 베어링 공장을 방문했기 때문이었다. 돈 까밀로는 그의 방으로 곧장 올라갔고, 빼뽀네는 돈 까밀로가 눈에 안 띄자 걱정이 되어 서둘러 그를 찾아 다녔다. 그는 돈 까밀로가 호텔방 바닥에 앉아 여행 가방에서 꺼낸 서류와 인쇄물을 들여다 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동무는 이제 ‘레닌 어록’으로도 만족할 수 없게 됐나 보죠?” 돈 까밀로는 쳐다보지도 않은 채 서류와 인쇄물을 뚫어져라 들여다 보고 있었다.


“자, 이걸 좀 가지고 가서 푸른색 연필로 줄친 데를 외워보게.” 그는 빼뽀네에게 말했다.


빼뽀네는 그가 건네 준 인쇄물의 첫 장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니 이건, 군사 책자에서 따온 것 아닙니까?”


그가 소리쳤다.


“그래 그게 무슨 상관인가? 자넨 로마 경시청에서 잘라내 온 것이라고 말했음 좋겠나?”


빼뽀네의 얼굴이 10월 혁명처럼 아주 빨갛게 변했다.


“아니, 이 서류는 당의 지방 지구 도서관 책장에 있는, 내 개인 복사본에서 잘라 내온 것이군요.”


빼뽀네가 항의하듯이 말했다.


“도서관 도장까지 찍혀 있군요? 바로 저기 말이오. 내가 알고 싶은 건 어떻게 해서.”


“흥분하지 마시오, 동무. 내가 대교구청 도서관 안에서 공산주의 문화를 공부하고 있었다고 생각하진 않겠지? 안 그런가?”


빼뽀네는 마루 위에 널려있는 자료들을 검토해 보려고 허리를 굽혔다.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두 내 것이로구먼!” 그는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신부님이 내가 수집해 놓은 걸 모두 망쳐 놓으셨군요! 난 말이죠…”


“이봐요, 동무!”


돈 까밀로가 그의 말을 가로 막았다.


“이런 외국 땅에서 우리가 사소한 개인의 차이점들을 서로 헐뜯는다는 건 수치스러운 일이오. 빨리 그 푸른 줄 쳐놓은 데나 외워두게. 붉은 줄 친 데는 내가 외울 곳이네.” 


빼뽀네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았다. “틀림없이 또 무슨 꿍꿍이 속이 있으시군요.”


“그런 건 하나도 없네. 바보 노릇하고 싶지 않거든, 어서 내가 말한 것을 익혀 둬요. 자네라면 반 시간이면 될 테니까.”


“좋습니다. 나머지는 나중에 또 얘기 합시다.”


빼뽀네는 식탁에 앉아서 그의 학과를 열심히 공부했다. 두세 줄 정도에다 겨우 두 개의 문구가 있을 뿐이었지만, 그는 너무나 화가 치미는 바람에 한 장을 몽땅 외워버릴 수가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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