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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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아들 어거스틴(제44회)
knyoon

 

(지난 호에 이어)

  

∽ 31 ∽

 


카시키아쿰에서, 우리는 어지러운 세상에서 당신에게로 휴식을 찾아왔고, 당신의 낙원의 즐거움을 당신 속에서 찾았더이다. -고백록

 

 어둠으로부터 광명으로 변화한 후 얼마 안 되어 어거스틴은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그는 로마 제국의 수사학자 직을 사임한 것이다. 


 그 동기엔 두 가지 요소가 작용했다. 첫째는 그의 건강이 나빠진 데 있었다. 후두염과 함께 심한 기관지염이 생겨 대중 앞에서 연설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 다음엔 그가 나자로와 영적으로 동격적인 인물로 무덤에서 불려 나왔지만, 아직도 그는 벗어버려야 할 무덤 속의 위험한 옷들을 걸치고 있다는 걸 깨닫고 있었다. 그 옷은 죄 많은 생활의 함정을 의미했다. 


이제 은총이 그에게서 정화작업을 시작했으므로 과거의 질서는 물러가고 새로운 질서가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바울이 영감을 받아 쓴 말씀에도,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 옛 것은 물러가고 모든 것이 새로워졌다고 선언하지 않았는가?


 한 발자국 내디딜 시기가 마침내 온 것 같았다. 과수원에서 체험을 가진 3주일 후에 포도주 축제가 있을 예정이었다. 그날은 어거스틴이 속세와 관계를 끊는데 필요한 무기를 그의 손에 쥐게 해주었다. 


 그는 사직했다. 궁중의 고관들은 유감스런 마음으로 그의 사임을 인정했다. 때마침 밀라노의 문법학자인 그의 동료가 밀라노에서 멀지 않은 카시키아쿰에 있는 별장을 쓰라는 제의를 해왔다. 그 초청장엔 “자네와 자네 식구가 있고 싶을 때까지 내 별장에서 살아도 좋네”라고 씌어 있었다.

 

 

 


 어거스틴은 기쁘게 그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는 어머니와 아들과 친구들을 다 데리고 카시키아쿰으로 옮겨가 휴가를 받은 듯한 나날을 시작했다. 


 카시키아쿰은 아늑한 언덕 아래 자리잡은 시골이었다. 아브라함 시대의 요르단 평원처럼 어디서나 샘이 솟았다. 시냇물로 수를 놓고, 발삼나무와 무화과나무로 둘러싸여 있고, 송진 내음이 샴페인처럼 상쾌한 그 마을은 방문객들에겐 요양지 구실을 했다.


 바람을 막아주는 아늑한 곳, 유혹으로부터의 도피처, 황무지에 우뚝선 거대한 바위의 그림자 같이 노래하는 새들의 아리아가 공중에 울려 퍼졌다. 시야에 가득 들어찬 호수가 햇빛 속에 청옥처럼 아른거리며 빛났다. 멀리 알프스 산의 모습이 산산조각이 나기를 갈망하는 듯, 힘센 톱니바퀴처럼 떠서 몰려온 흰 구름을 갈라놓았다. 


 어거스틴은 그 장면을 바라보고는 눈을 비비며 말했다. “여기서 우린 모두 몰약의 산과 유향의 언덕에 머물러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의 은인의 착한 마음씨를 기억하며 이렇게 말했다. “주님, 정의가 부활할 때 그에게 상을 내려주소서.”


 과로한 수사학자의 휴가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것은 완전한 휴가도 아니었다. 어거스틴과 같은 기질을 가진 사람들에겐 쉴 날이 없었다. 아직도 할 일이 남아 있었다. 


 그는 세례 받을 준비를 하기 위해 그의 영혼을 수양하는데다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암브로리우스는 그에게 이사야서를 공부하라고 권했다. 그는 그리스도를 향한 첫 개종자 아데오다투스를 성령의 진리 가운데서 가르쳐야만 했다. 게다가 별장의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한 감독을 그가 했다.


 마침내 그의 제자인 로마니아누스의 아들 리센티우스는 그의 친구와 함께 카시키아쿰에 와서 수사학을 계속해서 배우겠다고 고집을 세웠다. 어거스틴은 어부가 물과 그물과 미끼를 보고 반가워하듯이 이러한 변화를 환영했다. 그는 매일 정규 수업을 시작했다. 


 리센티우스는 좀 귀찮은 존재였다. 그의 기질은 아데오다투스의 기질과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리센티우스는 변덕이 심했다. 청년기에 접어든 아데오다투스는 어른과 같은 확고한 신념이 몸에 배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리센티우스는 그의 지적인 능력을 자랑하기에 바빴다. 훨씬 똑똑한 아데오다투스는 겸손한 태도를 간직했지만, 그 나이엔 괴로운 일이었다. 리센티우스는 자신이 대식가이며 애주가임을 자랑 삼았고, 모니카가 내놓는 수수한 음식을 큰 소리로 불평하곤 했다. 


아데오다투스는 수도승처럼 알뜰하게 먹고 마셨다. 리센티우스는 그리스의 비극 작품을 좋아했고, 아데오다투스는 아버지의 편견을 닮아 로마의 연극을 좋아했다. 리센티우스는 멋진 테너 음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원했고, 아데오다투스는 말씨는 부드러웠으나 음치였다. 


 뿐만 아니라 리센티우스는 그의 이교를 자랑했다. 하느님의 왕국에 들어갈 자가 되지 못하리란 사실이 어거스틴에게 그를 개종시킬 충동을 주었다. 불과 몇 주일 만에 자기의 아들은 물론이고, 가까운 친구도 몇 사람이나 그의 어머니의 신앙으로 이끌었으므로, 그는 전도하는 노력을 더욱 넓힐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가을날은 너무도 빠르게 흘러갔다. 어거스틴이 후년에 와서 이 시절을 회상할 때, 그 시절은 지상의 천국시대였다. 모니카와 아데오다투스, 알리피우스와 나비기우스, 그 외의 사람들이 모두 사이 좋게 지냈다. 은총의 이슬이 부드러운 잔디 위에 맺힌 하늘의 이슬처럼 그의 영혼에 방울 져 떨어질 때, 시편을 명상하는 그의 이른 아침 시간은 풍요로운 시간이었다.


 그를 둘러싼 자연의 음악이 지빠귀의 노래와 시냇물 소리, 수탉이 꼬꼬댁 거리는 소리, 들 벌레들의 속삭임과 어울리면, 어거스틴의 시상(詩想)은 물속에 얼굴을 마주보듯 메아리 쳐왔다. 젊은 예수가 지혜와 능력 안에서, 그리고 하느님과 사람의 은총 속에서 전진했던 것처럼, 어거스틴도 그 소리의 합창에 어울려 전진했다.


 그러나 휴가가 즐겁기만 한 건 아니었다. 고행이 따랐다. 그는 기관지염과 후두염은 나았으나 불면증에 시달렸다. 별장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잠든 후에 달빛이 창문에 비쳐 들어오면, 침대 위에 뜬 눈으로 누운 채 잠이 어서 와 그의 사념을 쫓아주기만 기다리곤 했다.


 때로는 기도를 하고, 때로는 시편도 되풀이 읽었다. 어떤 때는 멜라니를 생각했다. 그녀는 어디 있으며 어떻게 지낼까, 멜라니도 나를 생각하고 있을까, 밀라노에서 마지막 보았을 때처럼 아직도 예쁠까, 궁금한 생각들이 떠올랐다. 그럴 때면 그의 목이 아파오고 양심은 고통을 당했다. 그리고 속삭여 보았다. “사랑하는 사람아, 그대는 날 용서해 줄 수 있는지?”


 이따금 그는 의지력을 동원하여 그의 머리를 맑게 하고 그의 이성을 행동으로 불러내어 대화를 했다. 어거스틴의 정신처럼 변증법적인 기계에겐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머릿속에 그 대화를 기록했다가, 다음날「고백」이란 제목으로 출판하려고 아침이 되면 기록해 두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후에 그 등사 본으로 이성과의 대화인 ‘카시키아쿰의 메아리’를 들을 수 있었다.

 


 ∽ 32 ∽

 

  어머님의 연세 56세시며 내 나이 33세에, 경건하고 성스러운 영혼이 육신으로부터 하늘로 오르셨더이다. -고백록

 

 어거스틴과 그의 일행이 해상교통의 교차점인 테베강 하구에 있는 오스티아 항구에 도착한 것은, 카시키아쿰에서 긴 휴가를 끝내고 밀라노에 잠깐 들르고 난 다음해 여름이었다. 어거스틴과 아데오다투스와 알리피우스는 암브로시우스에게 그리스도교인이 되는 세례를 받았다. 그는 타가스테에 돌아가 수도원을 짓고 복잡한 세상을 떠나 사색의 생활을 시작할 계획으로 부풀어 있었다.


 그는 카시키아쿰에 몇 달 머물면서 수도생활이 가장 가치 있는 생활임을 확신했다. 암브로시우스가 밀라노 근처에 새로 지은 수도원이 있는데, 어거스틴도 그 주교의 본을 따서 자신의 공동체 안에 그와 똑같은 모양의 수도원을 짓고 싶은 영감을 받았다. 부모가 물려준 약간의 재산이 그 꿈을 가능하게 했다.
 

날씨가 좋지 않아 항해가 지연되었다. 일행은 실망하고 시가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방을 구했다. 오스티아 항은 시끄럽고 냄새 나고 문란한 도시로 이름나 있었다. 그들은 승선할 날만 초조하게 기다렸다.


 둘째 날 저녁 해가 질 무렵에 일행은 모니카와 어거스틴만을 남겨놓고 산보하러 나갔다. 모자는 창가에 기대어 수도원에 대한 계획을 이야기하며 서 있었다.


 대상(隊商)을 따라 아페닌 산맥을 건너오는 여행을 하고 난 뒤라 두 사람은 피곤했다. 모나카가 그 중 더했다. 어거스틴은 이따금 어머니에게 조심스런 눈길을 던지곤 했다. 그 여행은 연약한 어머니의 몸에 지나친 고행이었다. 그녀는 체중마저 줄어서 입고 있는 검은 옷이 헐렁해졌다. 얼굴은 창백하고 모형지도마냥 근심과 걱정의 잔주름이 져 있었다. 두 눈동자만 생기와 빛을 내고 있었다. 


 “쉬고 싶지 않으세요, 어머니?” 어거스틴이 물었다.


 “아직 괜찮다.” 그들이 기대어 서 있는 창문은 북쪽으로 나 있었다. 창 밑에 만발한 꽃밭이 우중충한 호스텔의 외부를 가려 주었다. 꽃밭 너머로 넓은 평원이 테베강 동북쪽으로 굽어져 숲 속으로 이어져 나갔다. 모니카는 꿈꾸는 듯이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난 자연의 집 속에 있는 삼라만상에 항상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구나. 그건 바로 하느님의 집이기 때문이지.”


 보통 때처럼 어거스틴은 어머니의 기분에 휩쓸려 들어갔다. “제가 한때 하느님을 그분의 집과 똑같이 생각했었다니요! 나는 땅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하느님이오?’ 땅은 내게 말했습니다. ‘난 그분이 아니어요.’ 난 바다와 호수와 기어 다니는 미물들에게 물었지요. 그들은 대답했어요. ‘우린 하느님이 아니어요. 우리들 위에서 찾으셔요.’ 난 돌풍과 우주에게 물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말했어요. ‘공기를 하느님이라 믿은 아낙시메네스가 잘못이야. 난 하느님이 아니어요.’ 난 내 육신의 문턱에 서있는 모든 것들에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나의 하느님에 대해서 말해주더니 너희는 그분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제 그분에 관해서 말해주렴.’ 그러자 그들은 모두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그분이 우릴 만들었어요!’ 하고 말입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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