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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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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관시인 윤치호의 영문일기1897년~1906년(2)-<대한제국의 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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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5일. 화요일. 따뜻한 날씨. 샹하이


오전 내내 좋은 날씨--  오후 들어 변덕 날씨— 창공엔  별이 가득한 아름다운 밤이어라. 
오늘 오후 3시에 사랑하는 아내와 우리 아기가 트리니티 홈으로  가다.

 

1월 6일. 수요일. 구름 낀 날씨. 샹하이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오후 내내 함께 지내다. 로라는  정말로  ‘귀여운’  소녀이다. 제 엄마가 뭐라고 말 해주면 아기는 소리없이 예쁘게 따라 하는 모습이 너무 신기하다.


알렌 박사님과 저녁 식사를 같이 하다. 박사님은, 예기치 않게 최근에 르호르 선생에게  쏟아진  모함들에 관해 실제로 일어난 이야기를 하셨다. 그리고, 한 달을 두고 쓰셨다는


 헨드릭스 감독에게 보내는 격한 내용의 진정서 를 읽어 주셨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헨드릭스 감독님, 실제로 들은 이야기인데, 헨드릭스 감독께서 앤더슨, 파커, 리이드 등의 허위진술을 듣고, 르호르 선생이 무능하고, 비능률적이며, 임무를 소홀히 하는 사람임으로 가능한 조속한 시일 안에 미국으로 돌려보내기로 했다는 것이 사실인가요? 헨드릭스 감독님이 내쉬빌에 있는 선교부 사무실에 그 편지를 효율적으로 잘 정리해 보내셨다고  하더군요. 

 

’96년-97년’  연간사업 계획 속에는,  파커 박사가 르호르 선생은 더 이상 학교에 근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은근히 암시하고, 따라서 명예 학장도 그가 이 분야에 적합치 않다고 평하면서,  르호르 선생은 고향으로 돌려 보내야 한다고 기록해놓았다는군요.


 “나는 이곳 선교부를 개척할 때부터 일해 온 사람 이오. 선교사업을 해오는 동안 선교부에 소속된   남녀를 막론하고 일에 열성인 사람은 하나도 보지 못했으며, 로호르  보다 더 충실한 사람을 아직까지 본 적이 없소. 그런데, 로호르 같은 사람을 비능률적이다! 라고, 말들 하다니요.  왜 그는 앤더슨이나 리이드 박사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자신의 위치를  지키지 못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리이드가 로호르를  좋게 여긴 적이 없기때문이오.


 “감독께서 내게 리이드 박사를 조선에 보낼 계획에 동의 하겠는가 묻는다면, 나는 단호하게 반대 하겠소. 왜냐하면 리이드 박사는 사업을 계획한다거나 돈 관리를 할만한 능력이 없는 사람이기때문이오. 리이드 박사나  그의 부인이 할 수있는 일이란, 자신의 건강을 관리하는 지략에만 뛰어나지요. 리이드 부부는 자기 자녀들이 매사냥꾼 처럼 거칠게 자라도록 내버려두는 사람들이니까요.


 “자, 내 말을 들어보세요. 제가 선교부와 이 학원을 맡았을 때, 시기심과 사소한 일들로 나를 반대하는 치사스런 비방을  들으면서도 군 소리 않고 견뎌 왔소. 하지만 이제 로호르가 불공평하게 당하는 일은 참을 수가 없소. 


나는 이제 헨드릭스 감독에게 솔직하게 편지를 띄우는 바요.  선교부 안에서 일어난 상항들을 설명하고 선교부 내에 비치해 놓은 그 서류들을 모두 폐기 하 도록 요청하겠소. 헨드릭스 감독이 그렇게만 해준다면, 일은 아주 잘 풀릴 것이오.   감독이 그 요청을 거부한다면, 감독님 발 밑에 폭탄이라도 설치 하겠소 . 만일 어떤 특별 난 개성이나 명망 있는  선교사가 파송되어 감독의 그 편견이나 마음에 들지않아  이런 위기에 부딛친다면, 어떤 사람이라고 안전을 보장하겠소?”


알렌 박사는 헨드릭스 감독에게 쓴 편지를 내게 읽어주고는  말했다.


 “이 편지를 신중하게 쓰고 또 고쳐 완성하느라 한달이 걸렸다네.”


이렇게 드러나 버린 내용들이 내 마음을 괴롭혔다. 이번 사건의 전모에 대한 내 의견은 이렇다.

 

 


 알렌 박사는 선교부의 젊은 층 사이에서 아주 인기가 없다. 그가 중국에서 선교하는 방식은 다른 선교사들과 아주 다르다. 그는 폭 넓게 우주적인 안목으로 기독교 교리를 설파한다. 자신의  업적을 통계 숫자로 생색내지도 않는다. 그런가 하면 다른 선교사들은 지나치게 권위주의자들이다. 그들은 그리스도교가 당장 표면에 나타난  결신자의 통계숫자나  헌금 기부자의 총계와 무관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알렌 박사가 오랫동안 살고 있는 큰 집은  원래 샹하이에 와 있는 미국 동포들이 대중없이 드나 들도록 선교부 건물로 계획한 집이었다.

 알렌박사 가족들이 모두 선교사업에 종사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의 학문적인 진취성과 그의 장점들을 거듭 비유로 들어 가르치려고 든다해도,  선교부 내의 다른 직원들에게는 힘든 느낌과 소요만 불러일으킬 뿐이었다.


  로호르 선생은 결점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그를  무능한 일꾼 취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도 그가 자신에게 부여된 업무를 소홀하게 다루는 것을 본적이 없다. 어떤 사람이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모든 열정을  바치고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로호르 선생이다.

 

 

 


  시험 답안지를 심사할 때 혹은 변론하는 일에 부닥치면, 사람들은 좋지 않은 편견을 갖거나 오해를 불러 일으키기가 쉽다. 


아, 주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일보다는 설교하는 쪽이 얼마나 더 쉬운 일인가 말이다! 나는  천사의 모습을 그림 속에서만  보았으며, 사망 부고란에서도  완벽한 인간의 모습은 본 적이 없다.

 

 1월 7일. 목요일. 흐린 날씨. 샹하이


오후 6시 정각에 트리니티 홈에서 돌아오다. 매일 오후 몇 시간 씩 사랑하는 아내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일은 말할 수없이 즐겁다. 하지만, 아내를  남겨두고 내 방에 돌아올 때마다 가슴이 아프고 내 영혼이 메마르는 듯 함을 느끼게 마련이다.


 왜, 내 아내는 그 불편하기 짝이 없는 방을 지키고 있어야 하는 걸까?  정상이랄 수없게 맘에 안드는 상항에 나를 원망하면서 ? 이에 대해서 내가 할 수있는 말은, 견디며 살아가야 할 철칙 때문이란 말 외에  대답할 말이 없다. 아내도 물론 한 마디 불평  한 일이 없지만. 


 마치 내 사랑스런 아내가 이  역경을 도저히 견디어 내지 못하겠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 갓난 아기가 엄마를 걱정하며 게속 울어제끼고 발길질을 해 대는 모습은, 인간에게 주어진 위대한 특성에 따르는 특권을 아기도 누려야겠다고 발버둥 치는 듯이 보인다.

 

1월. 9일. 토요일. 좋은 날씨. 샹하이


 햇빛 안 드는 침침한 대낮과 별도 없는 깜깜한 밤을 여러 날 보내고 나서야 더욱 반가운 아름다운 아침 날씨이다.


 9시 30분에 이학균씨를 방문하다. 그에게서 조선의 소식  몇 가지를 듣고 종합해 보았으나 새로운 용기를 줄만한 소식은 하나도 없었다. 러시아 통역관 김홍륙이  조정대신 들을 쥐어흔들며 온통 세도를 펴고 있다. 그 일당들은 얼마전에 일본에 사람을 보내어, 어떤 인물들을-물론 조선사람들을- 암살하려고 비열하고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호시탐탐 때를 기다리고 있다. 김도일이 김홍륙 다음 가는 인물쯤 되리라. 김옥균을 살해한 홍종우와 공범자들인 이일직은 지금 높은 벼슬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홍종우는 파리에  머물면서 왕자 퇴위 운동 모략으로 소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파리에 있는 동안 가톨릭 선교부의 신세를 지며 얹혀 살더니, 귀국해서는 공공연하게 그리스도교를 비난하고 다녔다. 그의 이런 행동은 그가 상감의 신임을 받는 사람으로 여기게 만들었다. 조선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이 어느 정도인가 상상하고도  남는다.


    어느날 저녁에 김도일은  ‘기생들’과 팔짱끼고 노래하며 종로통을 휘젓고 다녔다. 한 순경이 그를 세우고 국상(國喪) 중에 이런 행동을 하면 안된다고  제지했다. 김도일은 그 순경을 후려 치더니 파출소로 끌고 갔다. 그리고는 한낱 순사 나부랭이가 감히 전권공사님을 모시고 지금 막 러시아에서 돌아 온 나같은 고관의 행차를 막다니, 무슨 짓이냐고 되레  위세를 떨었다. 파출소 소장  조차   너무나 황당하고  기세등등하게 구는 러시아 통역관에게 놀란 나머지 아무런 조치도 못하고 말았다는 것!


   사랑하는 아내의 거처에서 맥타이어홈으로 오후 6시 경에 돌아오다. 헤이굿 선생이 서재에 앉아 있다. 헤이굿 선생은 요즘  건강이 나빠져서 창백해 보였다. 모성애가 깃들고 아름답고 기품있는 그녀의 자세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 없어보인다. 몇 분동안 형식적인 인사를 나눈 후에 동정 어린 어조로, 예의 바르고 다정한 마음씨로 내게 말한다.


“윤 선생,  관직에서 물러 났으니 잘 되셨어요. 윤 선생의 그리스도인  친구들이  기대해준 것과는 반대로, 나는 당신이 조선정부의 관리로 들어갔던 일은 잘못 선택한 일이라 생각했답니다. 윤선생을 나무란다는 뜻이 아니지요. 오히려, 윤선생이 왕중의 왕이신 주님의 종으로 조선에 다시 돌아갈 기회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할 뿐이지요.


주님께서  그대 곁을 떠나지 않으셨다는 생각을 하면, 오히려 어떤 확신 같은 게 느껴지는군요.  우리 주님은  그대가 지난 2 년동안   다른 일을 하도록 계획하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조선 왕의 관직을 받았다면 오늘날 같은 은사가 찾아 왔겠어요? 오직 영원한 나라를 자리 잡아주시는 그리스도를 위해서만 당신은 일할 수 있게 된 겁니다. 뿐만 아니라, 윤선생은 조정에서 일할 사람이 아니란 생각도 했어요. 주님은 권세있는 인간이 되는 것을 원하진 않으시니까요.” 


 헤이굿 선생은 내가   여기 혼자 남아 있던 아내에게 편지를 자주  쓰지 않았다고 점잖게 나무란다. 저녁 식사와 기도회 모임까지 참석하다. 그런데 그 모임은 마음에 남을 만큼 특징있는 모임은 아니었다.

 

1월 10일. 주일. 답답하고 따분한 날씨. 샹하이


 12시 30분에 이학균을 방문하다. 그는 다음 사건들을 이야기하면서, 조선의 정세가 얼마나 희망이 없는가를   짐작할 수있게 해주었다.


1. 이범진이 김홍륙과 사이가 나빠졌다고 한다. 김홍륙이 웨베르 공사에게 이범진을 얼마나 중상모략을 했는지,  웨베르가 그에게 사태가 해결이 될때까지 집에 돌아가 있으라고 요청할 정도였다. 이범진은 웨베르에게, 문 밖에 나가면 자기 목숨이 위태해지므로 제발 공사관에 머물러 있게 해달라고 눈물을 흘리며 애원했다고  한다. 불길은 당장에 일어나지 않았고  더 이상 결말이 나지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며칠 후에 이범진은 술이 취한 상태에서 주먹으로 식탁을 꽝 치며 웨베르에게 아주 사납게 대 들었다. 그러자 직원들이 그를 공사관 뒷문 밖으로 강제로 내쫓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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