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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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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토에세이)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할머니가 들려주신 ‘텬로력뎡(天路歷程)’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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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들려주신 ‘텬로력뎡(天路歷程)’이야기

 

“세상의 광야를 헤매다가 동굴이 있는 곳에 이르렀다. 거기서 하룻밤을 지내기로 하고 짐을 풀었다. 그러곤 깜빡 잠이 들었는데 꿈을 꾸었다. 지저분한 옷을 입은 남자가 자기 집을 외면한 채 서 있었다. 손에는 책 한 권을 들고 등에는 무거운 짐을 짊어졌다. 가만히 보니 사나이는 책을 펴서 읽기 시작하면서 눈물을 쏟으며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나중에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는 듯 크게 소리쳤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로 시작되는 존 버니언(1628-1688)의 <텬로력정(The Pilgrim’s Progress, 최종훈 옮김1678년 출판)>은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판매되고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된 기독교소설이다. 

 

작가의 꿈을 빌어 무거운 짐을 진 주인공 기독도가 온갖 시험을 겪으며 천성을 향해 가는 이야기이다. 이탈리아 시인 단테는 그의 꿈을 통해 위대한 희극 ‘신곡’을 낳았고, 영국 소설가 존 버니언의 꿈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순례하는 고통과 기쁨이 담긴 ‘천로역정’을 낳았다. 

네 살 때부터 환상과 꿈을 보고 단테의 신곡, 묵시록, 꿈꾸는 여인 등 인간의 무의식의 상징들을 그림으로 그려낸 영성 화가이며 시인인 윌리엄 블레이크가 작고하기 직전까지 ‘천로역정’의 삽화를 그린 것은 아주 당연한 일 같았다.

 

1895 년 제임스 스카스 게일이 부인과 함께 우리말로 공역하여 게일 선교사의 ‘하나님 사랑, 한국 사랑, 한국인 사랑’을 알게 한 한국번역판의 삽화는 게일과 친구 사이로 지내던 기산 김준근이 그렸다. 흑백의 부드러운 단순미가 그 당시 조선의 아름다운 풍속을 보여주는 초기 기독교 미술작품이 되었다. 

 

자신의 꿈에 충격을 받은 주인공은 그의 꿈처럼 죄로 더럽혀진 자신을 발견한 마음의 짐 때문에 고민하다가 사랑하는 가솔을 버리고 구도자의 길로 들어선다. 

작가는 마틴 루터가 쓴 ‘로마서와 갈라디아서 영역판 주석’을 읽고, 예수의 죽음과 그로 인한 구원의 비밀 즉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우리를 이 악한 세대에서 건져내시려고 우리 죄를 짊어지시고 당신 자신을 제물로 바치셨습니다”(갈라디아1:4)는 비밀을 깨달았다고 한다. 

율법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느님의 은혜를 입고 구원받음을 깨달은 루터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기산 김준근의 삽화;기독도가 십자가에 다다라 죄짐을 벗자 턴사가 흰옷을입히다.

 

어렸을 때 우리 할머니는 나를 비롯해 다섯 남매를 한 방안에 키우셨다. 우리 부모님은 아기가 돌 잡고 나서 걸을 만하면 슬그머니 할머니 방에 밀어 넣으셨다. 우리는 학교에 들어가 공부방이 생길 때까지 할머니 옆에서 지냈고.

 

할머니는 저녁마다 똑같은 찬송가 두 곡을 불러주셨다. 곡조도 안 맞고 지겨운 찬송 “지난밤에 보호하사 잠 잘 자게 했으니 감사~”와, 마음이 따뜻해지는 “성~령이여 강~림 하사 나~를 감화하시고, 애~통하며 회~개한 맘 충~만하게 하소서”이다. 이 찬송은 지금도 혼자 웅얼웅얼 할머니를 그리며 부르는 찬송가이다.

 

할머니는 옛날 이야기도 가끔 해 주시지만 늘 같은 거였고, 나의 흥미를 끄는 책은 할머니가 밤마다 우리에게 읽어주신 ‘텬로력뎡’이었다.(그것이 죤 버니언의 유명한 소설인줄을 이제야 알았으니) 겉장이 노랗게 찌든 큰 책을 꺼내시면, 우리는 할머니 양편에 나란히 누워 소설 이야기를 듣는다. 

 

“어디까지 읽었더라…” 

“기독도(크리스천)가 좁은 문에 들어갔잖아.” 내가 얼른 대답한다. 아니면 다시 맨 처음으로 돌아가기 십상이므로. 그렇다고 다음 이야기로 냉큼 넘어가는 건 아니고 성경구절부터 따라 외워야 한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에 이르는 문은 크고 또 그 길이 넓어서 그리로 가는 사람이 많지만, 생명에 이르는 문은 좁고 또 그 길이 험해서 그리로 찾아 드는 사람이 적다.”

 

“할머니, 그 좁은 문이 저 다락문만큼 좁아?” 다락 속의 엿단지에 눈독을 들여도 키가 작아 못 들어가는 둘째 동생이 묻는다. “그렇단다. 네가 키도 크고 마음도 착해지면 들어갈 수 있지.” 동생은 입을 비쭉거리다가 잠 들어버린다. 

 

“멸망의 도시에 살던 기독도가 생명을 찾아 나섰나니라. 그러다가 고집쟁이와 온순이가 쫓아오더니.” 

“할머니, 그 얘긴 어제 했잖아요? 그 담에 어떻게 되었어요? 기독도는 아직도 무거운 짐 지고 있어요? 왜 내려놓질 않아요, 힘든데?”

“그렇단다. 전도자를 만나서 천당 가는 길을 알려주지만 의심과 낙심이라는 늪에 빠졌구나. 도움이 건져주고, 세상이치 시에 사는 똑똑이 세지를 만나 또 유혹에 빠지고…”

벌써 몇 번째 도돌이표를 만나도 할머니와 나는 진력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 이야기가 다시 계속된다.

 

“기독도는 길을 다시 떠나 구원이라는 울타리에 이르렀나니라. 야트막한 언덕 위에 십자가가 서 있고 그 아래 무덤이 자리잡았느니라. 언덕을 기어올라 십자가에 이르자 짐 보따리가 등에서 툭 떨어져 무덤 속으로 떼굴떼굴 굴렀나니라.

 ‘주님이 고통을 당하시어 내가 쉼을 얻고, 그분이 스스로 죽음으로 내가 생명을 얻었도다!’”

 ‘그래서 기독도는 한없이 울었지요?’ 나도 한마디. ‘그리고 천사가 나타나, 평화! 그대의 죄는 용서 받았나니라’ 했지요?” 하며 하품을 한다.

 

할머니는 내가 지루해진 것을 아시고, 어느새 감춰두신 곶감을 내 입에 살그머니 넣어주신다.(덕분에 나는 유치원 때부터 치과 출입을 자주 했지만 할머니가 감춰둔 곶감을 주신 얘기는 엄마한테 비밀로 했다) 그래도 하품이 난다. 눈이 스르르 감긴다. 할머니가 계속해 읽으시는 이야기가 내 꿈속에 들어와 빛나는 천사들이 생명의 강가에 서 있는 꿈을 꾸리라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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