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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동갑 객지 벗
kimchiman2017

 

“내 벗이 몇이나 하니 수석(水石)과 송죽(松竹)이라. 동산(東山)에 달 오르니 그 더욱 반갑고야. 두어라 이 다섯밖에 또 더하여 무엇 하리.” 


윤선도(尹善道) 선생이 지은 오우가(五友歌)의 첫번째 시다. 윤선생은 전남 완도군 보길도 부용동에서 은둔생활 할 적인 1642년, 그의 나이 56세때 이 시를 썼다. 오우가에서 윤선생은 물(水), 돌(石), 소나무(松), 대나무(竹), 그리고 달(月)! 이 다섯을 자신의 벗, 친구라고 자랑했다. 


얼핏 보기에는 대자연을 벗 삼아 유유자적하게 살아가는 50대 후반의 노인네 일 것 같다. 그러나 물, 돌, 나무 등을 친구로 삼을 수 밖에 없었던 윤선생이 애처롭지 않는가?

윤선생은 참으로 외롭게 살다가 이 세상을 쓸쓸히 떠난 사람임에 틀림없다. 오죽이나 외로웠으면 자신의 호를 고산(孤山)-외롭기 짝이 없는 산(Lonely Mountain)-이라 했겠는가? 


 윤선생은 어찌하다가 벗으로 지낼 사람을 단 1명도 만나지 못했을까? 그리고 벗. 친구라고 자랑한 것들이 말도 못하고 감정표현도 못하는 무생물들뿐이었을까? 아! 물, 돌, 소나무, 대나무와 달이 친구라면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도 친구하면 되겠네. 


일찍이 낙향해서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작은 외딴 섬 보길도에서 외롭게 살아간 윤선도 선생이다. 김치맨 역시 나이 오십에 세번째 새출발을 하면서 궁벽한 시골동네로 낙향했다. 20년 넘게 시골에 묻혀 외로운 삶을 살고 있다. 별볼일 없는 글재주로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다. 


‘고향 벗 3년이요, 객지 벗 10년’ 이란 말이 있다. 같은 고향 사람들끼리는 나이로 따져 위아래로 3년 이내끼리는 친구로 지내도 무방하다는 얘기이다. 그리고 캐나다로 이민 와서 만난 낯선 타향사람들과는10년 연장자나 10년 연하자들까지는 친구를 먹어도 된다는 학설이다. 


나이 열아홉에 고향을 떠나 지금까지 53년 동안이나 타향을 떠돌며 살고 있는 김치맨이다. “타향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헤어보니 고향 떠난 십여 년에 청춘만 늙고 부평같은 내 신세가 혼자도 기막혀서….” 라며 한탄하는 노래를 생각하면 반백 년이 넘도록 타향살이하는 김치맨은 서러워서 못 견디어 어찌해야 하나? 


얼마 전 김치맨은 책을 한 권 증정 받았다. 캐나다에서 17년째 살고 있다는 킹스턴에 사는 이진우씨가 펴낸 책이다. 그는 ‘내 생애 가장 용기 있는 결정 Oh Canada! 바다를 건널 수 있는 자는 용감한 사람이다’ 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이민 경험담을 써냈다.


그 책의 저자 이진우씨와는 안면도 교류도 전혀 없었던 김치맨이다. 그 책이 나왔다는 신문기사를 읽고서 즉시 한국일보 유지수 기자에게 그 저자의 연락처를 알려달라 부탁했다. 이진우씨와 처음엔 이멜로, 곧이어 전화와 톡으로 이 얘기 저 얘기 나누었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김치맨은 친구를 쉽게 사귀지 못한다. 그리고 건방지게도(?) 자신의 또래나 연상인 동포들과는 가까이 지내는 것을 꺼려 한다. 아니! 동년배나 연장자들과는 교류하거나 친구를 삼으려는 노력을 안 하기로 오래 전에 결심했다. 김치맨보다 젊은 친구들하고만 어울려 놀면서 마음이라도 젊게 살고 싶기 때문이다. 

 


 

 

 

 

객지 벗 10년? 나이로만 따져 10년 위, 아래는 그냥 안면몰수 하고 친구처럼 대한다는 그 객지 벗! 그런데 그리 많지 않는 김치맨의 친구들은 모두가 적어도 7년부터 15년까지 연하들이다. 그리고 그들 중엔 돼지띠 띠동갑들인 59년생도 여럿 있다. 새로 사귄 친구 이진우씨 역시 띠동갑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사귀기도 하고 또 만나기도 한다. 첫만남에서 서로에게 끌려 다정한 사이가 쉽게 되기도 한다. 반면 첫눈에 반하기는커녕 말 몇 마디 나누어 본 다음 실망해서 두 번 다시 교류하는 일이 없게 되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인맥이 매우 중요시된다. 그러나 자기가 일해 밥 먹고 사는 이곳 캐나다에서는 인맥이라는 게 별로 중요치 않다. 고향 선후배, 학교 동문들, 같은 교회 다니는 신앙의 동지들끼리도 각각의 신념과 이해관계에서 그 친밀도가 달라진다. 


캐나다에 이민 와서 사는 우리 동포들은 모두가 어린 시절 함께 뛰어놀던 죽마고우들을 모두 다 고향과 서울에 두고 떠나왔다. 이곳 남의 터전에 와서 정착한 우리 코리언들이다. 토론토, 해밀턴, 런던 등 대도시에 첫발을 딛고 정착한다. 그런데 주위를 아무리 살펴보아도 알 만한 사람이 없다. 친구 사귀기가 쉽지 않다. 


김치맨의 친구들의 객지 벗들의 대다수는 55년 양띠부터 64년 용띠까지들이다. 그리고 카톡 전성시대를 맞아 근래에 새로 사귄 카톡 객지 벗들도 꽤 많다. 모두가 소중한 객지 벗들이다. 한평생을 외롭게만 살다간 고산 윤선도선생이 무척 부러워할 성싶다. (2019.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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