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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문협회원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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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아래 들리던 목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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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택 대기령이 내렸다. 팬데믹에 묶인 지 벌써 2년째로 접어든다. 마스크 쓰고, 사회적 거리를 두고, 손을 깨끗이 씻고. 방역수칙은 이제 습관화되었건만 2차 3차 럭다운 선포는 더 큰 공포와 불안으로 미래에 대한 희망에 먹칠을 한다. 앞을 분별할 수 없이 캄캄하던 그 밤이 슬며시 펼쳐진다.

 그것은 순진한 것이 아니라 무지한 연고였다. 버스정류장에서 산길로 조금 오르노라면 오른쪽으로 굴다리가 나오고, 거기서 암자까지는 반시간, 넉넉히 한 시간 정도면 도달 할 수 있다고 들었다.

12시경에 출발하였으니 천천히 걸어도 2시경이면 암자에 도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걸어갔다. 그런데 반시간 정도 지나면서 노랫소리가 잦아들며 주위를 둘러보게 되었다. 떠날 때는 맑게 갠 하늘이었는데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산속은 차츰 어두워지더니 어느 순간부터 완전히 캄캄한 밤이 되었다.

반시간 정도 걸으면 나온다던 굴다리도 나오지 않았다. 사람이 다니지 않은 산길은 잡목과 수풀에 엉겨서 길도 찾을 수 없었다. ‘조금 더’ 무조건 위로만 향해 산길을 오르게 되었다. 온 몸은 땀으로 흠뻑 젖고 손에 든 가방들은 천근같이 무거워졌다.

 대학교에 신입한 나와 의대 본과에 진학한 사촌언니가 축하여행을 떠난 것이었다. 리더는 E여학교 선배이자 언니의 먼 친척 되는 S언니였다. 목적지는 남해 소금강산. 리더가 6.25사변 때 잠시 피난생활을 하던 곳이라 했다. 벼르기만 하다 끝내 올라가보지 못한 명산에 꼭 가보고 싶은 것이 마음속 깊은 의도였다.

학교와 집 밖에 모르던 여자 셋이 집을 떠나 먼 여행길에 나선 것은 성취감에 도취된 만용 때문일 것이었다. 학생시절 승마부에서 명성을 떨쳤다는 리더는 자신만만하여 앞장서고 우리는 따르기만 하면 되었다.

여수에서 나룻배를 타고 남해로 건너갔다가 돌아올 때는 다시 배로 부산까지 가서 쉬고 이틀 후에 서울로 귀가 한다는 마스터 플랜 외에 지명이나 세세한 일정을 모르는 것은 전적으로 리더에게 일임한 때문이었다.

길은 점점 험해져서 손을 잡아끌어 주어야만 오를 수 있는 돌 작 길이 되었다.

언니의 커다란 트렁크는 셋이 힘을 합해야만 들 수 있고 몸마저 짐짝처럼 끌어야 할 지경이 되었다.

무조건 위로만 사력을 다해 오르던 우리 앞에 마침내 공터가 나타났다. 소나무가 둥그렇게 둘러선 반반한 풀밭위로 찬바람이 몰아치고 새파란 하늘에는 별이 총총하게 빛나고 있었다.

 흠뻑 젖었던 온몸이 이번엔 추위로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정말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이었다. 산정에만 오르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줄 알았는데 이제는 어디로 가야 될지 실망과 두려움이 몰려왔다. 온 몸의 물기는 전부 땀으로 빠져 나간 듯 탈진되고 머릿속은 무감각의 텅 빈 공동이었다. 엉엉 언니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언 듯, 바람결 따라 가느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딱. 딱. 따닥. 또그르르 목탁소리였다.

‘여보세요. 암자가 어디 있어요.’ 우리에 갇힌 사자처럼 공터를 돌아가며 소리소리 질렀다.

그러나 산정에서 지르는 소리는 위로만 떠돈다는 것을 알 턱이 없었다. 우리는 소리 나는 곳을 향해 산길을 내리 달렸다. 길을 찾아 내려온 것이 아니라 소리 나는 방향을 향해 트렁크는 던지고 잡아끌고, 사람은 구르고 넘어지고, 나뭇가지에 긁히고 찔리면서 무작정 달린 것이었다.

자루처럼 툭툭 떨어진 곳은 작은 절간 뒷마당이었고 쪽마루까지 기어가서 털석 털석 주저앉았다. 건넌방 법당에서 불경을 외는 소리, 목탁 두드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안방 미닫이문이 주삣 주삣 열리다가 마루 끝에 세 여자를 보더니 후다닥 도로 닫혔다. ‘여보세요. 산에서 길을 잃었어요.’ 순간 목탁소리가 멎고 안방문도 다시 획 열렸다. 안방에선 남학생이 어머니와 함께 뛰어나왔다. 부리나케 부엌으로 내려가 밥상을 차리고 군불을 지피느라 분주하였다.

대나무대롱으로 산골물이 졸졸 흘러내리는 뒤꼍으로 나가 얼음같이 찬 물을 머리부터 뒤집어썼다. 시간을 물으니 새벽 3시라고 하였다. 세상에, 15시간을 산속에서 헤맨 것이었다.

아직도 산엔 위험한 짐승이 돌아다니는데 여자 셋이 상하지 않은 것은 기적이라 하였다. 내년도 대학입시 수험생이라는 남학생은 내 가슴에 서울대학교 배지를 보더니 자기의 목표요 기도의 응답이라고 반색하며 좋아하였다.

바닷가 산속은 해가 빨리 지고 밤이 속히 온다는 것, 높은 산은 안개가 띠처럼 두르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내가 남학생의 기도의 응답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히 전능자의 손길이 나를 보호해 주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내 인생길에서는 절대로 남의 말만 의지하고 목적을 찾아 나서지 않는다는 투철한 신념은 그때부터 생겼다.

오늘 초강도 팬데믹 위협의 소용돌이에서 그 밤을 떠올리니 새로운 용기와 투지가 솟구친다. 필사의 힘을 다하면 ‘하늘은 언제나 선(善)의 편이라’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남해의 소금강산은 나를 지혜롭게 만들어 준 아름다운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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