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계정 찾기 다시 시도 아이디 또는 비밀번호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손정숙 코너

jsshon
EB648366-3221-4F38-AE44-4E2F000E7672
61212
Y
메뉴 닫기
오늘 방문자 수: 29
,
전체: 47,204
손정숙
문협회원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www.budongsancanada.com
메뉴 열기
jsshon
jsshon
80697
9203
2020-07-23
동백꽃과 미스 킴 라일락

 

 지난 4월, LA의 데칸소 정원(Descanso Garden)으로 동백꽃 구경을 갔다. 데칸소 식물생태정원은 삼만 오천 그루 이상의 동백꽃나무숲으로 유명하다. 원예 종 동백(Camellia)이 주종이지만 빽빽한 동백나무숲을 비집고 다니노라면 한국토종 홑겹동백꽃도 만나게 된다. 외국에 살면서 고국에서 즐겨보던 꽃을 만나면 어떤 꽃을 막론하고 반갑기 한이 없지만, 그 중에서도 무궁화와 동백꽃은 마치 친정처럼 포근한 마음의 안식처를 준다.

 

무궁화가 위엄을 갖춘 나라꽃으로 한민족의 사랑과 애국심을 일깨워준다면 동백꽃은 조선여인의 절개와 법도를 펴내는 지순한 꽃이라 할 수 있다. 사금을 입힌 듯 반짝이는 짙푸른 나뭇잎들 사이에 얼굴만 살짝살짝 내보이는 검붉은 토종 동백은 언제나 머리에 동백기름을 발라 앞가르마를 반듯하니 참빗으로 빗어 옥비녀를 꽂은 절도 높은 규방여인을 연상시킨다.

 

이에 비하면 원예 종 동백꽃은 크기도 두 손바닥 만한데다 겹겹으로 치장한 서양무희들의 치맛자락처럼 화려하고 펄럭대서 그만큼 경박스러워 보이고 정이 덜 간다. 한 겨우내 하얀 눈 속에서 안으로 정열을 불태우는 토종 동백과는 달리 원예 종은 또 낙엽수이고 일찍 꽃이 진다.

 

동백꽃은 해홍화 산다화라 부르며 물에 빠져 죽음으로 정절을 지켰다는 어부의 아내를 기리는 여심화란 이름도 있다. 이미 동백꽃의 절정기는 지났지만 늦게 피는 꽃이라도 있을 거라는 기대감으로 정원으로 들어서는 데 난데없이 라일락 향기가 진동하며 몰려들었다. 코로 스며들어 온몸으로 퍼져가는 듯 모세혈관을 자극한 꽃향기가 눈을 아리게 했다. 햇빛이 반짝해서 봄이오나 보다 하면 한 순간에 바람이 불고 눈까지 퍼부으며 변덕을 부리는 캐나다의 더딘 봄이 짜증스러워 멀리까지 찾아 온 공원이었는데 가슴 깊이 안겨 드는 라일락향기가 두꺼운 더께를 산뜻이 씻어주었다.

 

향기를 따라가는 벌, 나비처럼 발걸음은 저절로 그리로 끌려갔다. 해마다 튤립축제와 함께 라일락향기가 온 도시를 휘감는 ‘오타와’는 물론이고 캐나다의 어느 곳도 라일락꽃 순을 내기는 아직 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었다. LA의 날씨도 제법 차다며 라일락동산에 들어서는데 'Miss Kim Korean Lilac'(미스 킴 한국 라일락)이라 쓴 표지판이 턱 하니 앞을 막아 섰다.

 

한국 라일락이라니 깜짝 놀랐다. 작은 꽃망울들이 뭉텅이로 모여 있는 진 보라색 꽃송이들 옆에는 분홍색, 흰색 꽃 덩어리가 한데 어우러져 저마다 향기를 한껏 내뿜는 중이었다. 잎이 나기 전에 꽃이 먼저 피는 라일락동산은 색색으로 피어나는 뭉게구름이 쏟아놓은 듯 온몸은 금새 풀솜마냥 라일락 꽃 냄새에 흠씬 젖어 들었다.

 

미스 킴 라일락은 두꺼운 식물도감에 버젓이 학명 Syringa Patula Miss Kim(시링가 파툴라 미스 킴) 이라 올라있고, 북미주 제일의 라일락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쓰여 있었다. 1947년 미국군정청 소속 식물채집가 ‘미러’가 남한의 어느 산속에서 정향나무(털게 회나무) 종자를 미국으로 가지고 가서 육종 개량하여 만들어낸 라일락으로 자신의 연구를 도와주던 여성 ‘미스 킴’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한국에서 보다 더 추운 기후에서 잘 자라며 아름답고 향기가 강열하고, 추위와 더위를 잘 견디며 병충해와 공해에 강하다고 줄줄이 덕목이 적혀있었다. 4월에 라일락꽃향기를 맡을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그 추위에 잘 견디는 체질개선 때문이었던 것이다.

 

한국소녀가 ‘미스유니버스’에라도 당선된 듯 덩달아 어깨가 으쓱해지며 대견하였다. 하지만 육종개량과정을 읽어보니 ‘미스 킴 라일락’이 되기 위하여 토양과 추위를 견디고 싹이 나서 첫 꽃을 피울 때까지 십여 년의 시간을 실험실에서, 냉방에서 혹독한 단련을 겪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꽃이 거쳤을 온갖 고난을 떠올리니 청운의 꿈을 이루기 위해 갖은 고통과 시련을 겪은 초기 이민자들의 모습과 겹쳐지며 흐릿한 영상들이 어른거렸다.

 

백여 종족의 민족들과 경쟁하며 삶의 터전을 일구어야 하는 대부분의 한인은 언어장애와 성과부진으로 좌절하고, 이질문화에서 오는 사회적 불안이나 대인관계로 곤욕을 치렀다.

 

인종차별의 공포에 시달리고 이루지 못한 꿈에 절망하여 삶마저 포기하는 극한의 소식도 드물지 않게 들렸다. 그러나 오늘, 전 미주에는 이런 1세대들의 눈물이 거름이 되어 정계에서 학계에서 그리고 전자과학 분야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한인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마치 수수알갱이처럼 한데 뭉쳐서 향기를 발하는 라일락 꽃송이처럼 서로 협동하며 보다 활기차고 명랑한 사회를 이루어 가고 있다.

 

옹기종기 붙어있는 꽃송이를 살며시 어루만져보았다. 손끝에 스치는 꽃송이들이 뭉치라, 힘을 내라, 참고 승리하여 향기를 발하라고 뜨거운 입김을 토해내고 있었다. 수륙만리 이역 땅에서 외로움을 견디며 안으로 자신을 가꾸어 온 강인한 한국 여인상을 만난 듯 절로 우리의 발걸음엔 탄탄대로를 밟는 무게와 힘이 솟구쳤다.

 

품위 있고 심지가 곧은 규방여인의 은은한 표상이 동백꽃이라면 지성과 아름다움을 연마하여 현대여인의 재색을 고루 갖춘 청순한 꽃은 단연 ‘미스 킴 라일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정원 울타리 안에 마주하고 서서 향기로 들숨날숨 속내를 주고받으니 멀리 떠난 외로움은 바람결처럼 날아가 버리고 깨끗이 비워진 마음그릇엔 단단히 영근 지혜와 절도 높은 심성으로 가득 차고 넘친다.

 

새 삶을 열기 위해, 한 시름 짊어지고 그 그늘 찾는 나그네 있거든 보일 듯 말듯 살풋한 미소에 향기 담뿍 담아 새 소망과 힘을 얹어줄 우리의 여인 꽃들이 한없이 자랑스러웠다. 다시는 더디 오는 봄을 불평하지 말아야지. 돌아 나오는 내 몸에서 라일락꽃향기가 나고 있었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jsshon
jsshon
80240
9203
2020-07-12
이른 비 소리

 

비가 내린다. 덱커에 떨어져 튀는 물방울들이 음계처럼 흐드러지게 가락을 울린다. 

풍~년~이 와 앗~네 ~ 풍~년~이 왔~네. 귀에 쟁쟁한 비디오의 풍악이 겹친다.

 

공공장소가 폐쇄되고 외출금지, 접촉금지가 처음 시작될 때 2주정도면 끝나겠지 했다. 치사율이 높다는 엄포 때문에 더더욱 움츠리고 지낸지 벌써 4개월째다. 따뜻한 햇살에 눈 비비고 나오는 개나리, 종달새 노래장단에 아지랑이 너울대는 계절이 미쳐 알은체를 하기도 전에 저 혼자 왔다 사라져 버렸다. 목련, 수선화, 튤립, 라일락 영문도 모른 채 떠났다.

 

몰 워킹을 마치고 도서관에 들려 대여섯 가지 신문을 훑고 수도쿠를 복사해 오던 일과는 집에서 받아보는 한국 신문으로, 안부를 겸해서 딸이 보내주는 이메일 수도쿠로 대치하고, 운동, 예배, 토론과 회의는 모두 온라인으로 처리한다.

 

갑자기 폭주한 영상물 때문에 몸살이 난 컴퓨터가 공간부족 경고사인을 보내는지가 오래된다. 외부와의 마지막 소통라인이 끊어질세라 읽고 지우고 비우기에 바쁘다. 자주 씻고 마스크를 하고, 장갑을 끼고 서로 2미터간의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주의사항이 유일한 예방책이니 철저하게 지키라 했다.

 

공포심까지 일으키며 잔뜩 긴장하였는데 시일이 지나면서 일상화 되어지니 점점 느슨해진 심신에 강제로 덤터기 씌워진 시간이 버거워지기 시작하였다. 규칙적인 삶의 리듬을 구축하려는 방편으로 자동차 드라이브를 택했다.

 

나이아가라 폭포까지 전에 가보지 않은 길을 골라 달리는 한 시간 반 정도의 드라이브는 주변거리를 탐색하고 여러 생활상을 비교하는 호기심과 즐거움을 주고, 우레소리 요란하게 쏟아지는 폭포수는 신경세포의 나사를 조여주는 청량제 구실을 톡톡히 하였다.

 

그간 받아놓고 미처 열어보지 못한 수 십 개의 비디오테이프들 중에서 한편을 돌리고 나면 하루가 무사히 접어지고 편안한 쉼을 찾게 되는 삶이 이어지고 있다.

차량의 왕래나 인적이 드문 마을 길을 드라이브 하노라면 나름대로 삶의 틀을 새롭게 짜려는 모습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그 중에 두드러진 것이 깨끗한 집 단장과 정원가꾸기다.

 

경황없어 미루어 두었던 너즈러진 집구석의 먼지들을 말끔히 털어내듯 유리창을 닦고, 차고를 치우고, 대청소를 하는가 하면 나무 가지를 쳐주고, 울타리를 다듬고, 화단을 곱게 조성하기도 하여 아름다운 전원주택으로 변모하였다.

 

뿐만 아니라 집집이 뜰 모퉁이에 텃밭을 일구어 자연과 혼연일체가 된 평화롭고 넉넉한 삶의 향취가 훈훈하게 품어 나온다. ‘자연으로 돌아가라’ 300여 년 전, 장 자크 룻소의 말이 사방에서 공명을 일으킨다. 그는 인간에게 있는 세 스승 즉 자연, 인연, 사물에서 순리대로 이행되는 자연섭리를 가장 주요시하였다.

 

‘장 자크 룻소’를 ‘잠자코 있소’라 발음하여 교실이 떠나가게 웃기던 한 소년의 추억이 아스라하다. 지구별(Planet Earth), 지구의 자화상이라는 다섯 묶음의 장편 비디오를 보면 벌레는 병아리나 새들이 잡아먹고, 병아리는 독수리가 잡아먹고, 작은 물고기는 펭귄이 잡아먹고, 펭귄은 물개가 잡아먹고, 물개는 상어에 잡혀 먹힌다.

 

맹수에 쫓겨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얼룩말이나 산양을 보노라면 움직이는 생물들은 거의 모두 저보다 약한 것을 잡아먹는 약육강식의 먹이사슬을 쫓아 생존 번식하는 것을 알게 된다.

 

반면에 뿌리내린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식물들은 꽃을 피우고 과실을 내고 씨를 맺어 종족 보존을 위해 나고 죽는 생존사슬에 매어있음을 보게 된다.

 

국제교육진흥원과 국립영화제작소에서 제작한 세 묶음의 한영(韓英) VHS에는 농본국가인 한국의 전통과 의례와 절기 등을 이해하기 쉽게 잘 소개한다. 농사는 씨를 뿌린 순간부터 싹이 나고, 꽃이 피고, 과실을 내는 전 과정에서 이른 비, 늦은 비와 따뜻한 햇볕을 보내주는 하늘의 섭리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내 노역의 과실을 이웃과 나누며 자손을 번식시키는 공존의 삶인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와의 투쟁은 즉석에서 해결을 얻을 수 있는 대적이 아니다. 예방지침을 준수하며 치료법이나 백신이 발명되기까지 인내하며 잠자코 기다릴 수밖에 없다.

 

오늘 아침신문에는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이 점차 수그러들었다고 한다. 일차적으로 해제해준 공공장소의 안전성에 대한 설문결과가 있었다. 대강 일별하면 옥내모임은 옥외모임보다 위태롭다는 것이고, 옥외모임도 공동수영장이나 음악공연장 같은 대중모임장소는 위험을 느낀다고 하였다. 반면, 야외 캠프장, 걷기, 개(犬. 견)공원, 골프, 테니스 등은 안전하게 느껴진다고 답했다.

 

씨를 뿌린 후 싹이 나고 열매 맺기까지 풍성한 수고의 결실을 목표 삼아 꾸준히 어려움을 참으며 심신을 단련하는 농사는 어떤 것보다도 단연코 안전할 것이다. 빗줄기가 제법 줄기차게 쏟아진다. 큰 화분마다 심어놓은 다섯 그루 내 방울토마토 나무에도. 풍년이 왔 네~ 지화자 조~타.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jsshon
jsshon
79133
9203
2020-06-04
별이 빛나던 밤에

 

고흐 드라이브스루 전시회가 열린다고 한다. 60만 평방피트의 토론토스타 인쇄창고에서 소리, 빛, 디지털. 영상 등을 접목한 전시회에는 최대 14대의 차량이 동시에 입장하여 시동을 건 채 35분간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빈센트 뵌 고흐(1853-1890)는 후기 인상파 화가로 생애 말년에 ‘생 레 미’ 정신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던 12개월간 발작하는 틈틈이 10여 점의 명작을 그렸다. 고독과 경제적 어려움, 그림이 인정받지 못하는 좌절감, 그리고 병과 싸워야 했던 그의 정신적 고뇌와 갈등의 승화가 아주 특수한 화법으로 표현되어 강렬한 인상을 준다.

 

전시회 광고사진을 본 순간 깜짝 놀랐다. 40여 년 전 한 걸작이 겹쳐졌기 때문이다. 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그림 앞에 하얀 승용차 한 대가 서 있다. 승용차의 출현은 전시장 전체를 생생한 설치 미술 (設置美術)로 탈바꿈시키면서 별이 빛나던 그 밤으로 나를 끌고 갔다.

 

유학 후 귀국하여 전문분야에서 활약하려던 꿈과 열망은 남편의 진로수정과 출산으로 모두 접어야만 했다. 두문불출 집안에 칩거하면서 육아와 가사에만 전념하리라 몇 겹으로 활동제약을 가했지만 운전은 배워야만 했다. 차가 없으면 발이 없는 것과 같고 운전을 못하면 발이 묶인 것과 같다고 한다. 소소한 집안일들을 스스로 처리 할 수 있다면 연구실에 매어 있어야 하는 남편에겐 크나큰 시간 절약이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되었다.

 

평소 기계 공포증인 성격은 필요불가결의 절박한 상황 앞에 겨우 다잡았지만 실제로 운전 교습을 어떻게 받을 것인지가 큰 문제였다. 어린아이를 기르면서 매일 낮 일정한 시간에 연습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최종적으로 가족들의 일과가 전부 끝나는 저녁 6시 이후, 옆집 학생에게 아기보기를 부탁하고, 대학교 주차장에서 남편과 운전 연습을 하기로 하였다.

 

웃으며 나갔다 화나서 돌아오는 것이 부부 운전연습이라고 한다. 이해해주지는 못하고 잘못한다고 소리만 지르는 남편이 야속하기도 하고 서럽고 화가 나서 눈물이 절로 솟았다.

 

차들이 다 빠져나간 휑한 주차장엔 가로등만 졸고 있었다. 축구장과 체육관건물이 있는 넓은 주차장은 여러 개의 녹지대로 구획되어 있어서 그 사이를 돌며 운전 연습을 하기가 좋았다. 운전을 잘하려면 우선 차가 내 몸 놀리듯 거리, 속도, 차폭 등을 자유자재로 조정해야 될 텐데 운전석으로 옮겨 앉는 순간부터 몸은 굳어지고 정신은 핸들에만 집중되어 차를 다루는 게 겁이 났다. 속력 좀 올려! 제일 많이 듣는 주문이었다.

 

그 밤. 벌써 두어 번 소리를 지른 뒤라 서러움이 뭉글거리는 중이었다. 스톱! 큰소리에 화들짝 놀란 중추신경이 반사적으로 운동신경을 건드리는 순간 차는 휙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스톱! 스톱! 자동차는 꽝, 꽝, 땅바닥을 내려치더니 다시 공중으로 솟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꽝! 떨어진 차는 여력으로 미끄러지다가 서버렸다. 와락 잡아 끄는 남편의 손에 끌려 나왔는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인지기능이 전면 중지 상태였다. 모터가 폭발할지도 모른다며 내 손 잡고 뛰는 남편을 따라오면서도 실감이 되지 않았다.

 

불과 몇 초 사이였다. 자동차는 분계선 시멘트구역 2개를 뛰어넘어 잡목과 수풀로 덮인 낭떠러지에 4분의 1쯤 내민 상태로 정지되어 있었다. 낭떠러지 아래는 템스강이다.

 

차 바퀴 네 개가 전부 펑크가 나 있는 것을 보고서야 상황을 대강 정리 할 수 있었다. 브레이크 대신 가속기를 밟았다는 것, 차가 선 것은 펑크 때문에 더 구르지 못하고 나무들에 걸려서 떨어지지 않은 것이었다. 그제야 온몸이 떨리기 시작하였다. 남편이 팔짱을 꽉 끼었는데도 사시나무 흔들 듯 마구 흔들렸다. 올려다본 밤하늘에 별들도 요동치고 있었다.

 

아 아이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차로 15분 거리를 한 시간이나 숨이 차게 뛰었다.

 

다음날 현장에 나온 자동차 정비사는 차를 끌어 올려놓더니 머리를 흔들었다. 어떻게 네 바퀴가 동시에 펑크가 날 수 있느냐. 걸작 중의 걸작(Master Piece)이라며 탄성을 연발했다.

 

‘별이 빛나는 밤’(The Starry Night)을 다시 들여다본다. 짙은 남색 하늘과 노란색 달과 별이 보색으로 대비된 그림이다. 작열하는 달과 발광(發光)하는 별들, 뭉쳐진 성운이 흘러가듯 꿈틀거리고 있다. 어두운 밤인데도 하늘에서는 잠재된 강렬한 힘이 흐르고 있다.

 

턱은 뾰족하고, 커다란 눈은 상대의 가슴 속까지 찔러보는 듯 섬뜩한 용모이지만 그의 그림에서는 언제나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외로움이 감지된다.

 

네 바퀴가 몽땅 펑크가 난 내 걸작을 슬며시 대입해보다 문득 뵌 고흐에게 묻고 싶어진다. 하늘로 치솟은 사이프러스나무는 왜 저렇게 새까마냐고, 중앙에 뭉쳐진 성운은 무엇이냐고.

 

정신병원, 정신병자라는 특수상황은 상식과의 단절을 강요한다는 깨달음이 그림을 새 빛으로 조명해 준다.

 

천재 화가는 자신의 내부에서 소용돌이치는 억압에서의 탈출을 화폭에 창작했지만 평범한 인생은 이미 만들어진 물건을 공간에 배치하여 자기생각을 전달하는 설치예술 밖엔 표출해 내지 못하는 부끄러움이 살짝 스친다. 그래도 탈출수단이 완전히 사라진 캄캄한 순간에도 달과 별은 더욱 빛나는 걸작이 아니겠는가.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jsshon
jsshon
78076
9203
2020-04-30
팬데믹 패닉과 쌀

 

 서둘러 마트 안으로 들어가려다 멈칫 그 자리에 섰다. 웅성거리고 서 있는 사람들이 실은 가게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줄서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마스크를 하고 장갑을 낀 사람들이 제법 싸늘한 날씨에 어깨를 움츠리고 서 있었다.

 

 앞 사람 과의 거리는 2미터 정도, 한 사람 나오면 한 사람 들어간다. 마트 직원 둘이서 손님이 쓰고 돌려온 카트를 소독 비누로 싹싹 닦아 놓고, 줄서기와 장보기 안내를 하느라 바쁘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앞에 여섯 사람이 있으니 적어도 반시간 이상은 서 있어야 될 모양이다. 쌀을 사기 위해 줄을 서야 되는 황당한 상황에 여러 가지 상념이 오락가락하였다.

 

 한국식품은 한 달에 한두 번, 2시간 거리의 토론토지역 한국마트에서 대량구입을 하였다. 쌀처럼 오래 간수할 수 있는 식품은 일 년치를 사기도 하였다.

 

 3월말에 눈 수술이 예약되어있어서 4월말 경에나 장보러 가리라 예정하였는데 3월 초순에 불어 닥친 팬데믹 패닉으로 사재기 열풍이 일어나 벌써부터 쌀이 떨어졌다고 아우성이었다. 2주면 끝나겠지 하던 기대가 4주, 한 달로 연장되고 외출금지령에 교회, 학교, 식당, 모든 공공장소의 집회가 금지되고 사람과의 접촉을 견제하는 명령이 계속 강도를 높여갔다.

 

 휴지를 사러 갔다 텅 빈 선반에 놀라 대 여섯 상점을 뒤지며 곤욕을 치렀던 공포가 슬금슬금 되살아나 바닥에 깔린 쌀독이 은근히 걱정되었다. 빵도 많고 국수의 종류도 다양한데 아무러면 설마 굶기야 하려고..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신토불이(身土不二) 한국 사람은 하루 세끼 한 달 내내 빵으로만 살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어떻게 쌀을 구할 것인가. 궁리를 해보지만 누군가가 사주는 데서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전해주는 일이 더 큰 문제였다. 외출금지가 내려진 엄격한 시점에 이곳까지 쌀을 배달해 달라고 청할 염치는 없었다. 더구나 너도 나도 코로나바이러스로 조심하는 이때에 와 주겠다는 특별한 친지가 있더라도 극구 말려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머리를 흔들게 하였다.

 

 결국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가서 사오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는데 또 다른 난관이 있었다. 휴지 때처럼 마트에 쌀이 없으면 어쩌나. 먼 곳에서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생기지 않을까. 한국 신문광고를 보다가 번개처럼 묘안이 떠올랐다. 한국식품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먼 거리를 참작해서 쌀 한 포대만 보관해 주면 우리가 가서 픽업해 오겠다고 부탁하였다. 물량은 넉넉하다는 선선한 답변에 만사 제치고 달려온 길이었다.

 

 대학시절 부산에서 온 친구는 ‘쌀’이라 못하고 항상 ‘살’이라 하였다. 하얀 살 밥, 살 장사라 하여 주위를 웃겼다. 서정범 교수의 국어어원사전에 따르면 15세기 ‘쌀’(米)의 고음(古音)표기는 ‘살’이었다고 한다. 일본음식점에서 ‘사리’는 흰쌀밥이라고 하는데 경상도에서 전래되었을 것으로 유추한다. 몽골어에서 쌀(米)은 ‘사리’(sali)이다. 살이라면 몸의 뼈와 피를 담고 내 신경과 영혼을 담는 그릇 즉 내 형상을 만들어주는 체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살’은 또한 ‘살이’(生) ‘..살어리 살어리랏다.., 시집살이, 머슴살이처럼 삶, 생명(生命)의 뜻을 지니게 되어 ‘살’의 어간은 동의어가 된다고 한다. 쌀(米)로서 밥을 짓고 밥은 생명을 이어주는 기본 요소이며 삶의 총체적 원동력으로 연결된다.

 

 쌀을 얻기 위해 스스로 얼마나 노력하며 살아 왔는지 지난 삶을 돌아본다. 공기를 마시듯 저절로 아니면 마땅히 구비되어 있는 조건쯤으로 대하지는 않았는지.. 도자기를 빚어내듯 내 주위에 맴돌던 인연들을 귀히 여기지 못하고 주어지는 대로 무계획적이고 기계적인 삶을 이끌어 온 듯 자괴감이 엄습해왔다.

 

 입을 가리고 거리를 두고 쌀을 사기 위해 함께 서있는 이들이 새삼스레 내 삶의 동행자라는 친근감이 솟아오른다. 한 시간이 넘게 기다렸지만 쌀을 사가지고 돌아오는 길은 새 삶을 통째로 지고 오는 듯 마음이 넉넉하고 편안하였다.

 

 마스크는 남을 나에게서 보호하기 위하여, 장갑은 나를 남에게서 보호하기 위하여, 그리고 거리두기는 남과 나를 동시에 보호하기 위하여 착용하는 것이라 한다.

 

 영상으로 예배 드리고, 운동도 하고, 시니어 대학은 영상개학을 하였다. 서로 협조하며 지혜롭게 불편하고 고통스런 삶을 헤쳐 나가고 있는 것이다. 분명 위기는 기회를 불러온다. 살아남은 자들에게.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jsshon
jsshon
77581
9203
2020-04-02
팬데믹 패닉의 현장에서

 

수술이 취소되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왼쪽 눈 수술한지 십 여일, 예정된 오른쪽 눈 수술 꼭 2주전이다. 이렇듯 걷잡을 수 없이 사태가 악화된 원인이 무엇인지 놀라움과 분노가 동시에 밀려왔다. 처음 중국 우환에서 코로나가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대응처리만 했더라면… 


강한 비판이 뭉실 거리는 사이로 퍼뜩 떠오른 낱말이 생뚱맞은 ‘에누리’이다. 국어사전에는 ‘값을 더 얹어서 부르는 일’, ‘값을 깎는 일’이라 풀이되어 있다. 더 붙이기도, 깎기도 하는 일이니 ‘에누리 없다’는 말은 가감이 없다는 말이겠으나 상품의 정찰제가 고착되지 않았던 시절엔 주로 물건 값을 깎는 일로 흔히 쓰였다. 상인들이 부르는 물건 값이 신용이 없다는 사회상의 단면이기도 하다. 


수년 전 멕시코 여행을 할 때이다. 관광객들은 챙이 넓은 밀짚모자나 알록달록한 구슬장식이 달린 원색의 마직 옷, 수공예품에 매료되어 가게마다 장사진을 이루었다. 나중에 비교해 보니 30달러 정가의 똑 같은 상품을 20달러, 10달러, 심지어 8달러 50전에 사온 사람도 있었다. 


물건 값을 신용하지 않기는 우리민족 만이 아닌 것을 처음 알았다. 값을 깎으려는 행위가 공시된 수(數)치나 상황을 신용하지 못하는 군중심리와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떠오른 것은 코로나19사태보도를 둘러싼 공포 심리의 조장과 사재기 열풍 때문일 것이다.


 첫 번 눈 수술을 받을 당시 한국에서는 마스크대란이 일어났다. 한국과 북미주 대륙은 멀고 먼 곳이니 거리만큼 안전하다고 여겼다. 매스컴에선 연일 대중들을 안심시키려는 논평과 글로 가득 찼다. 수술 후 절대 청결해야 된다는 지시대로 서 너 가지 안약을 하루에 3, 4번 계속 투약하면서 두문불출 후속치료를 하는 중이었다. 


휴지가 필요해서 검은 안경을 쓰고 처음으로 마켓에 나가 보았다. 텅 빈 선반, 가게 안을 몇 번이나 샅샅이 돌았지만 없었다. 다른 마켓에 가보니 역시 비어있었다. 자그마치 다섯 가게를 돌고서야 영문을 알게 되었고 결국 동네 편의점에서 미쳐 팔지 않은 휴지 몇 덩이를 살 수 있었다. 


한국 식품점엔 쌀과 라면이 떨어졌다고 아우성이다. 트뤼도 수상 부인이 양성판정을 받았다더니 며칠 후에 나이아가라지역 세인 캐서린에서도 확진 자가 생겼다고 하였다.

수술 회의를 마친 큰 아들한테서 전화가 왔다. 앞으로 2주간 환자들이 병원에 오지 못하도록 예약취소전화를 해 줄 것이며 수술도 트라우마, 응급환자 외엔 전부 취소하고 크로나 바이러스환자 치료에 전념하게 될 것이라 하였다. 


필요한 식품, 일상용품 있으면 사서 배달해줄테니 절대 나가지 말고 아무도 접촉하지 않도록 조심하란다. 휴지 때문에 놀란 가슴이 공포심으로 조금씩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다음 날이 주일, 교회가 문을 닫았다. 오전에 출석하는 서양교회도, 오후에 예배 드리는 한국교회도 모두 영상 예배로 대치하였다. 그리고 월요일, 도서관 폐쇄를 알려왔다. 뒤따라 웰니스 센터의 프로그램 중단, 컴뮤니티 센터 일시 폐쇄를 알려 주었다. 다음 화요일, 강의하던 시니어대학에서 개학연기를 통보 받았다.


내 일상생활이 전부 뒤틀리고 옭매이는 듯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지구가 갑자기 자전을 가속도로 하는 듯 어지러웠다. 국경이 봉쇄되고 학생들의 봄방학이 4월 5일까지 연장되었다. 


직원들에게 재택근무를 하라는 직장이 늘었다. 식당, 편의점 모두 손님이 없어 타격 받고 국가와 세계적 대형경제체재도 크게 손실을 받고 있다. 맥도널드, 버거킹, 팀호튼스,.. 가끔 들르던 패스트푸드 식당은 전부 의자를 들어 올리고 테이크아웃만 주문을 받는다. 


커피 한 잔 사기 위해 길게 줄 선 차들이 비상시를 실감시켜 주는 듯 긴장감까지 일으킨다. 면회가 금지되고 사회적 거리를 지켜야 하는 환경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매일 한차례 나이아가라 폭포까지 드라이브 하는 일뿐이다. 한산하고 텅 빈 거리지만 우렁차게 쏟아지는 폭포를 마주하면 답답한 가슴이 그나마 후련하게 터지는 기분이다. 


균형이 맞지 않아 쉬 피곤해지는 눈으로 신문들을 펼쳐 보았다. 3월 10일: 한국에 코로나19 확진자 7478명(사망54), 17일: 8236(81). 한 주 사이에 새 환자 758명(사망27)이다. 24일: 8652(111), 25일: 9037(125), 하루 사이 385(14)늘었다.


26일: 9037(125) 어제와 동일하다. 그런데 27일: 9241(136)이다. 밤새 새 환자 204명 사망자11명이다. 


캐나다는 3월10일 77명(0)으로 시작되어 26일 현재 3290(30). 같은 기간 미국은 582명(22)으로 시작, 6만50(807), 이태리는 7424(366)으로 시작 6만9,176(6820)이다. 


‘오늘의 트윗‘엔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는 신문사 임직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뉴스제작에 나선다는 글이 떴다. ‘우리는 당신들을 위해 병원에 있을 터이니 당신들은 우리를 위해 집안에 있으시오‘ 의사들의 부탁이라 한다. 정부차원의 구조지원 정책도 발표되었다.


오늘 나이아가라 파크웨이를 달리노라니 식물원 앞 둔덕에 쪽빛 크로카스 한 무리가 눈에 띄었다. 에누리 없는 평강의 참 소식이 세상 가득 채울 날이 곧 오리라는 약속의 전령처럼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따뜻한 열기가 스며들었다.

 

* 팬데믹 패닉(Pandemic Panic, 세계적 대유행 공포)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jsshon
jsshon
77192
9203
2020-02-27
바다의 소리


 
 내 귀는 소라껍질
 바다의 소리를 듣는다.

 

 

 느닷없이 ‘장 콕토’의 시가 떠오른 것은 순전히 날씨 때문이었다. 잊을 만하면 다시 오고 다 갔나 싶으면 닥쳐와서 기승을 부리는 추위에 온몸을 잔뜩 움츠리고 떨고 있는 내 귀에 불현듯 남쪽 바다가 밀려 왔다. 


 나는 바닷물 속에 들어가기보다는 바라보는 걸 더 좋아한다. 물속에서는 물의 밀도에 갇힌 듯 답답하지만 시야에 거치는 것 없이 훤히 트인 바다는 내 마음 속 구석구석까지 시원하게 씻어 주어 바다만큼이나 넓어진 빈 마음공동에 온갖 소리가 고스란히 고여 왔다. 


길게 뻗은 모래사장과 솔밭 사이에 울퉁불퉁 솟은 너른 바위에 올라앉으면 하얗게 거품을 물고 쫓아오던 파도가 철석이며 부서지고, 보기만 하면 끼윽 끼윽 몰려드는 물새들이 반가웠다.


솔밭 사이를 훑으며 돌아 나온 한줄기 살랑바람이 모든 소리들을 잠재우고 고요한 바다에 노을이 지면 태양을 삼킨 바다는 시뻘겋게 끓어오르며 모든 번뇌를 쉬게 하였다. 


나는 바다의 숨소리, 바다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를 더욱 즐거워하였다. 아득한 수평선 저 너머에도 물이 있듯이 또한 바다의 소리는 흰 돛단배처럼 통통거리며 먼 날을 떠올려 주기도 하였다.


 그 해의 여름은 유별나게 더웠다. 졸업을 앞두고 실습 나온 교생들의 교무실은 이층 구석방이었는데 가뜩이나 긴장된 예비선생들은 단정한 외양을 위해 정장까지 하고 있었으니 무덥기가 한증막이었다. 지육 덕육 체육의 사범이 되는 훈련을 흐트러짐이 없이 이행하는 첫 난관이 무더위의 극복인 듯 시달렸다.


 어느 날 일찍 등교한 나는 흑판 모퉁이에 ‘장 콕토’의 시 두 줄을 써 놓았다. 교생들마다 모두 시원한 하루를 맞이하게 된 듯 기분이 상쾌해져서 환성을 질렀다. 


그런데 다음날 와 보니 한 남학생이 두 줄의 시 구에서 끝 자 한자씩을 지워 놓았다. ‘내 귀는 소라 껍. /바다의 소리를 듣는. ’ 그 다음날도 글자 지우기는 계속되어서 ‘내 귀는 소. /바다의 소리를. ’ ‘내 귀는. /바다의 소리. ’ 이렇게 되어갔다. 우리는 매일 아침 교실이 떠나가게 웃으며 더위를 날려 버렸다. 


 졸업과 함께 친구들은 사방으로 흩어지고 나는 미국으로 가게 되었다. 태평양을 건너기 전에 나는 인천 앞바다를 보고 싶었다. 언제 다시 보게 될지 모르는 고국산천의 한 자락을 마음에 담으려는 바램이었다. 기왕이면 섬에 가서 인천 땅을 바라보리라 생각하고 월미도로 향하였다. 


썰물에 물이 빠진 방파제는 대로같이 뻗어있어 갈 때는 바닷바람을 마시며 흥겹게 갔는데 불과 몇 시간 뒤에 시작된 밀물은 나를 당황하게 하였다. 내 달음질보다 더 빠르던 물결이 무릎까지 차 올랐을 때에야 숨이 턱에 차서 간신히 인천부두에 도착하였다. 그 무섭고 겁나던 경험은 오래 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고 때를 바로 알라고 늘 충고해 주었다.


 태평양과 대서양을 양쪽에 낀 캐나다 땅에서의 지난 일생은 양 대양의 파도만큼이나 거세고 바쁜 삶이었다. 세계를 한 가슴에 안을 듯 부풀었던 열정들은 부서진 포말처럼 주위를 맴돈다. 마치 시구에서 끝 자를 지워가듯 하나씩 떨어져 간 내 꿈은 말도 안 되는 서정의 흔적만 내 이마에 물결처럼 지어 놓았다.


 그때 무덥던 교무실에서 우리가 들은 바다의 소리는 이상과 도전에의 강렬한 부름이었다면 지금은 어떤 것일까? 


 ‘인생이란 다 그런 것이지. 밀물도 있고 썰물도 있는 것. 결코 서두르지 말고 좌절도 말고 언제나 한결같아야 되는 것이지.’ 


 오늘 계속 글자를 지우다 보니 ‘귀’도 ‘나’도 없어지고 ‘바다’만 남는 것을 알았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jsshon
jsshon
76988
9203
2020-02-13
그 사람을 만나고 싶다

 
 
 세상에 맡은 일과 나만이 존재하는 듯 설레발을 치던 일상에서 잠깐 숨을 고르게 한 것은 순전히 ‘발렌타인 데이(Valentine's Day)’ 덕분이다. 


 ‘사랑해요’ 전화에 이어 'Be My Valentine!' 이라는 카드와 함께 화분이 배달되고, 초콜릿을 받게 되면 정말 나는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주제넘은 생각까지 하게 된다.


 기독교의 순교자 ‘발렌타인’의 축일이 ‘숨은 흠모자’(Secret Admirer)의 사랑의 표시일로 전해진 것은 그 사랑의 깊이가 유별하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이 축제를 주제로 한 영화 ‘발렌티노’에서 여주인공은 해마다 발렌티노의 무덤에 장미꽃 한 송이를 바치고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곤 하였다.


 이제는 거의 내용도 다 잊었지만 한 여인이 40여 년간 한 번도 빠짐없이 해마다 발렌타인 카드를 받아왔다며 40여 장의 카드를 펼쳐 보이는 특별취재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50이 되었을까 그의 나이로 봐선 10대부터 누군가 보이지 않는 찬미자가 있어 왔다는 사실을 말하면서 둥실하고 순박한 여인의 얼굴은 온통 기쁨으로 반짝였다. 어느 해는 여행 중이었는지 외국에서 보내온 것도 있는데 카드를 받고 처음에는 발신인을 수소문 해 보려는 노력도 했었으나 ‘아무면 어떠랴?’ 이제는 단념하였다고 하였다.


 일평생 카드를 보낼 수 있는 누군가를 가졌으면 싶은 마음에 ‘롱펠로우’의 시가 떠올랐다.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항상 푸른 잎새로 살아가는 사람/...바람으로 스쳐 만나도 마음이 편안한 사람/...밤하늘의 별과 같은 사람/...흔들림 없이 묵묵히 걸어가는 의연한 사람/...거친 삶의 벌판에서..사슴 같은 사람/...화해와 평화스런 얼굴로 살아가는 그런 세상의 사람을 만나고 싶다.’ 


내가 카드를 보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받을 수 있는 ‘누구’가 되기 위해서 ‘...사람이 되고 싶다.’로 고쳐가며 수도하는 마음으로 이 시를 읽곤 했다.


 오늘 나이아가라합창단의 발렌타인 특별공연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장장 5시간의 싱-어-톤(Sing-A-Thon)이었다. 끝 무렵 순서에서 100여명의 합창단원들이 ‘사랑하는 사람에게’(Somebody to love)를 부를 때였다. 한 청년이 소프라노와 테너가 한창 듀엣을 부르는 무대로 걸어 나오더니 테너의 마이크를 빼앗아 자기가 부르는 것이었다. 


합창단원은 물론 지휘자도 청중도 ‘어!’ 하고 말문이 막혀 버렸다. 그 청년이 테너파트를 아주 훌륭하게 부르는 데 놀랐고, 그의 노래가 소프라노에게 주는 사랑의 고백이라는데 더욱 놀라워한 청중들은 그가 무릎 꿇어 프로포즈하고 소프라노가 손들 들어 약혼반지를 보여줄 때에서야 박수갈채와 환호성을 쏟아내며 즐거워하였다. 


엉겁결에 중단되었던 합창은 다시 시작되고 지휘자는 이 노래를 그들에게 선사하였다. 엄연히 공적인 행사를 훼방하였는데도 불평은커녕 축하하며 열광하는 이들을 보면서 내 마음엔 전율처럼 파장이 일며 깊은 상념에 빠져 들었다. 


될수록 감추려하고 표현하지 못한 사랑을 은밀한 사랑이라 믿는 우리는 사랑을 표현할 줄도 모를 뿐만 아니라 받는데도 서투른 것이 아닌가. 


 받는 ‘누구’가 되고 싶다는 바람(願)은 빛 잃은 계명처럼 흐려졌다. 되고 싶다’ 에서 ‘만나고 싶다’로 되돌아와 절망적으로 갈 길을 찾다가 눈이 번쩍 뜨였다.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의 마음에 들어가서/나도 그런 아름다운 마음으로 살고 싶다./../... 온화한 미소로/ 마음이 편안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 
들어가고 싶은 마음, 편안하게 아름다운 마음으로 살 수 있게 해주는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 보이지 않게 항상 나에게 사랑의 카드를 보내주는 사람. 삶의 현장에서 절망의 파도가 덮칠 때, 외로움과 고난의 회오리바람이 돌풍처럼 몰아칠 때 안길 수 있는 편안한 마음. 그 사람을 오늘 만나고 싶다.
‘...네가 내 안에 내가 네 안에 거하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요15:5-10)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jsshon
jsshon
76903
9203
2020-02-09
다리 긴 아저씨(Daddy long leggs)


 
 지난 한 주일간 교육주변의 여러 기사가 머릿속을 뱅뱅 돌며 상념에 젖게 한다. 슈거 대디(부유층 중년, 노년남성)와 데이트를 하는 대가로 생활비와 용돈을 받는 여자(슈거 베이비)가 전 캐나다대학에 7만 여명인데 그 중 1158명이 토론토대학에 재학 중이고 웨스턴대학이 777명으로 2위라고 한다. 


웨스턴대학은 남편이 은퇴하고, 나와 아이들 모두 거친 삶의 현장이고 40여 년 뿌리 박힌 고향이다. 절박한 여대생들을 도와주는 따뜻한 손길에 우선 감사하는 마음 한 모퉁이로 이성과 감성이 엇갈리며 착잡하게 흐른다. 


엉뚱하게 오래 전에 읽어 내용조차 가물가물한 동화가 떠올랐다. 다리긴 아저씨의 원제목은 ‘대디 롱 렉스’(Daddy long leggs)’이다. 진 웹스터(1876-1916)가 1912년에 발표한 이 동화는 백여 년이 지난 지금도 계층마다 다른 감동을 주는 명작 고전동화라 불린다. 


뉴잉글랜드 ‘존 그리어 고아원’의 제루샤 에벗에게 후견인이 생겼다. 무명인이기를 원하는 후견인 존 스미스는 절대 누구인가를 알려고 하지 말 것과 한 달에 한번 씩 자기에게 편지를 보내 줄 것을 조건으로 당부했다.  


후견인통보를 받던 날 검은 복장에 높은 중절모를 쓴 신사가 역광을 받아 기다란 그림자를 끌며 현관문을 나가는 것을 본 제루샤는 그를 ‘다리긴 아저씨’ 혹은 ‘다리긴 거미’ 라고 별명을 붙였다. 


동화는 제루샤가 대학생활 4년간에 쓴 편지묶음이다. 발랄하고 명랑한 여대생 제루샤의 작가의 꿈과 이상을 가능하게 해준 존 스미스의 후견역할은 아름다운 만남의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사적인 도움이 얼굴 없는 미담이기를 기대하는 마음바닥엔 너무도 흔한 ‘미 투’( ME TOO)의 기우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폭로와 몰락을 보아왔는가. 존경하고 숭배하던 스승이, 문학인이, 예술인이 심지어 성직자까지 가해자로 변모하는 순간 선의의 자선행위는 추악한 모습으로 사회윤리를 흐리게 하였다. 


자기계발과 신분상승의 수단으로, 삶의 질을 향상하고 아름다운 미래를 성취하려는 인간 본연의 소망이 난관에 부딪치는 큰 원인은 비싼 학비 때문이라 변호한다. 며칠 후 신문에는 교사들의 순환스트라이크사진과 기사가 첫 면을 장식하였다. 교사처우와 교육환경개선을 위하여 주정부의 교육예산 삭감에 항의하는 데모라 한다. 학생들에게 삶의 규범과 지표가 되어야 할 스승들이 피켓을 들고 거리에서 스트라이크를 하는 세태가 가슴 아프다. 


오래 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서는 신입생 전원에게 국비장학금을 지급하였다. 액수의 다소보다는 나라가 인정하는 스승이라는 존재감에 더 큰 자부심을 가졌었다. 2학년부터는 A학점취득자에게 장학금을 수여하였는데 교육학박사 성 래운 교수에게는 학업을 잇게 해주는 생명선과 같았다고 한다. 


성적A학점을 얻기 위해 그는 기숙사 소등 후에 오직 한 군데 켜있는 희미한 화장실 불빛아래서 공부를 하였다고 한다. 교수님은 학문연마는 바른 지식과 지혜와 인생철학의 탐구라며 상아탑의 성취가 지고한 목표인 만큼 과정도 진지하여야 된다고 주장하였다. 


낳으시고 가르치시고 다스리시는 아버지와 스승과 임금님의 존귀함이 똑같다 하여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 배웠다. 군사부일체의 교육질서가 흔들릴 때 사회적 기강도 흐트러지는 현상을 수없이 보아왔다. 세계에서 살기 좋은 나라순위에 캐나다가 2위라고 한다. 


같은 지면엔 누군가가 거액의 기부금을 장학금으로 내놓았다는 감동의 소식도 있었다. 요즘은 거의 모든 대학마다 장학제도가 있고 단체나 대 부호재단의 장학금도 많이 있다. 하지만 늘 부족하여 동창회에서는 기금조성에 동참해주기를 호소하는 서신이 자주 온다. 


한때 남편의 의대동창회에서는 사후재산을 모교에 전납한다는 유언장쓰기캠페인도 있었다. 오늘 국제구호기구 옥스팜에서는 아주 흥미로운 조사결과를 발표하였다. 전 세계 억만장자 2153명이 가진 돈이 하위 46억 명(46%)의 돈보다 더 많다는 것이다. 


빈곤한 대학생들이 마음껏 공부할 수 있으려면 그 중 몇% 만 있으면 될까. ‘돈이란 육감 같은 것이어서 그것이 없으면 다른 감각도 제대로 이용할 수 없게 된다.’는 섬머셋 몸의 명언이 떠오른다. 동시에 학교교육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웅변하는 표어가 있다. ‘아는 것이 힘 배워야 산다.’ 


 돈이던 지식이던 아무리 풍요로워도 삶에 긍정적인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면 많고 적음이 하등의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스친다. 스승이 존경받고 임금이 덕으로 다스리며 부모들이 안심하고 자녀를 양육할 수 있는 교육제도가 있을까. 아무래도 인간의 힘으로는 난제 중 난제 같기만 하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jsshon
jsshon
76605
9203
2020-01-09
겨울 밤 폭포에 걸린 무지개


 

 

 

성탄절 밤에 나이아가라폭포에 갔다. 장식전등이 점화된 나이아가라폭포와 ‘겨울 원더랜드’(Winter Wonder land)가 보고 싶던 차에 ‘말하는 머리’(Talking Head)라는 조형물이 새로 설치되었다는 신문기사를 읽고 용기를 내었다. 


깜깜한 들길은 얼음 눈 위에 차 바퀴자국만 두 줄로 길게 패였을 뿐 매운바람이 길바닥을 훑으며 쓰레질을 하고 있었다. 황량한 겨울벌판의 추위가 차 안에까지 스며드는 듯 몸이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수 만개의 작은 전등으로 점철된 폭포주변은 휘황찬란한 불야성이었다. 성탄절과 송구영신 이야기로 형상화된 전광조형들이 하얀 수정꽃 핀 나무들과, 얼음바위에서 떨어지는 폭포의 물줄기를 배경으로 환상의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나이아가라 강물은 낭떠러지로 쏟아지면서 폭포를 이루고 수력발전을 하여 전기를 출력하고, 이로 말미암아 세계에서 가장 큰 ‘꽃시계’를 만들 수 있고 ‘겨울 원더랜드’를 가능케 하였다. 외형적인 아름다움뿐 아니라 ‘꽃시계’는 장애인을 위하여 시계의 초침은 목발로 만들어지고 ‘겨울 원더랜드’는 자연생태계를 보호육성하기 위한 기금모금의 목적으로 계획되었다. 새로 설치하였다는 조형물은 예술적 교육적 가치와 기여도가 크다는 평이다.


육중한 수력발전소 건물 앞에 시커먼 두 개의 철제흉상(胸像)이 있었다. ‘그 대가리 참 크다’. 누군가 첫 인상을 큰소리로 외쳐 폭소를 터뜨렸다. 헝가리예술가 빅토르 비세크(Victor Vieseck) 작품으로 얼굴전면에 지압표시 같은 작은 점들이 파란빛으로 명멸하면서 표정을 바꾸고 있었다. 사람은 얼굴표정을 나타내기 위해 근육을 사용하지만 이 얼굴은 빛의 가능성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각각 개별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4000여 개의 LED에 의해 다른 얼굴표정을 지어낸다는 설명이었다. 


점점이 파란 빛이 웃는 모습, 화난 표정 등을 계속적으로 그려내고 있었지만 보는 이에게 전해지는 깊은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너무 큰 것을 기대한 때문일까 약간은 허한 마음으로 돌아서는데 때마침 폭포 위에 무지개가 흘러갔다. 5색 7색 조명등이 천둥소리를 지르며 부서져 내리는 폭포와 어우러져 출렁댔다. 용트림하는 청룡이 하늘로 치솟는가 하면 순식간에 뛰놀던 백조들이 푸드득 날기도 하였다.


 날씨가 청명하고 바람이 불지 않는 날에는 어김없이 폭포 위에 무지개가 떴다. 시간에 따라 이동하는 무지개는 온전한 반원형에서부터 길이가 길고 짧게, 색깔도 뚜렷한 것, 희미한 것 여러 모양이지만 신기하게도 색 띠의 순서는 언제나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보라색이다. 무지개는 물 한두 방울에 의한 프리즘 현상이 아니라 수억 개의 물 입자에 의해서 이루어진 막중한 질감과 부피를 가진 색의 집합체라 배웠다. 


무언가 머릿속에 풀리지 않는 덩어리들로 답답할 때 곧잘 폭포로 달려왔다. 무지개를 한참 바라보노라면 는개비처럼 촉촉한 색 입자가 특유의 전파를 보내는 듯 마음이 짜릿하게 흔들렸다. 튀어 오르며 산산이 부서지는 폭포의 우렛소리가 온 몸을 흔들어대어 마음구석에 끼여 있던 응어리들을 말끔하게 털어내는 듯 가슴이 후련하고 차분해지는 것이었다.


인간의 감정은 순전히 환경에 투사된 자신의 표정이라는 깨달음이 들자 빛에 의해서 이루어진 철제 표정과 비교되면서 상념에 젖게 하였다. 4000여 개의 LED의 가능성이 수 억 개 물입자의 힘을 따를 수 있을까. 4000여 개의 LED로 같은 표정만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머리는 사색하거나 판단할 수 있는 머리가 아니라 단순한 철제 대가리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가지 주제로만 프로그램 된 동일한 내용의 방송 연설과 무엇이 다르랴. 눈에 보이지 않아도 희망의 약속을 증언하는 무지개를 따를 수 있을까. 


새해 경자년엔 지구촌 곳곳에 선거도 많고 자발적 결단을 내려야 할 중대사로 꽉 차 있는 듯하다. 대가리 아닌 지각 있는 머리 되게 하옵소서.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jsshon
jsshon
76463
9203
2019-12-19
호두까기인형의 계절

 

 


 
흰 눈으로 찾아온 겨울하늘은 짙은 먹구름으로 덮여있었다. 그랙 프륀(Greg Frewin)극장에 도착한 것은 시작20분 전이었다. 티켓을 사고 닫힌 문을 열고 들어서니 장내는 깜깜하였다. ‘12월은 호두까기인형의 계절’ ‘아주 특별한 공연’이라는 대자제하에 나이아가라발레단의 공연기사가 있었다.  


나이아가라지역 발레학교를 주축으로 70여명의 학생들이 호두까기인형을 공연한다는 것이다. 겨울철눈길을 염려하여 택한 시간이 이틀간 공연 중 단 한번뿐인 정오공연이었다. 차이코프스키의 맑고 감미로운 선율이 음향기에서 울려나오면서 무대에 생기를 불어 넣었다.


호두까기인형은 토론토에서 내셔널발레를 본이래 벌써 3, 4년이 흘렀지만 한국에 체류하던 8년 동안 여러 번 국립발레단의 호두까기발레 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다. 한국발레의 초석을 다진 명사로 불리며 한국예술원 원장이던 무용가 송 범씨 댁에 몇 년간 함께 기거하였다. 


남자가 발레를 하는 것이 참 특이하다고 생각되었지만 정작 그분의 발레공연은 영상으로 밖엔 볼 수 없었다. 이미 그는 20대의 날렵하고 힘이 다져진 예리한 모습에선 멀리 떠나와 있었던 것이다. 공부 못하는 건 가르치면 되지만 덜 생긴 건 도리가 없다. 일정한 키(168센치 정도), 몸무게(40~43kg)에 X자 다리, 미모여야 하는 이상형신체조건을 이때 알았다. 


발레리노(남자무용수)의 키는 발레리나와 20센티 정도 크고 날씬해야 되지만 발레리나와 파드되(2인 무)를 추고, 들어 올리고, 점프하고 회전시켜야 되는 에너지를 소유해야만 된다. 발레는 초등학교 3, 4학년, 혹은 늦어도 5학년 때부터는 수련을 시작하여야 됨으로 이 시기에 지망한 학생이 끝까지 열거한 조건대로 자라야 하는데 성장과정에서 이상변화가 나타나면 가차 없이 탈락시켜버린다고 한다. 


토슈즈를 신고 나비처럼 백조처럼 아름답고 우아한 춤을 추는 발레리나의 길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속속들이 보고 들었다. 


크리스마스트리가 아름답게 장식된 방에 유모, 클라라와 동생 프리츠가 춤추며 나오고 파티손님들과 대부 도로셀마이어가 무대를 채운다. 클라라가 받은 선물은 호두까기인형, 프리츠가 심술궂게 장난치다 망가뜨린다. 대부가 인형을 고쳐주고 슬퍼하는 클라라를 위로한다. 


자정이 되어 손님들은 다 떠나고 클라라는 호두까기 인형을 끌어안고 잠이 든다.


이상한 소리에 잠이 깬 클라라는 크리스마스트리가 눈앞에서 커지고 호두까기인형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보게 된다. 갑자기 생쥐들의 공격을 받게 되고 호두까기인형이 인도하는 꼬마병정들과의 전쟁이 시작된다. 


클라라가 생쥐대장에게 슬리퍼를 던져 위기에 몰린 호두까기인형대장을 구해주는 찰라 갑자기 그가 왕자로 변화되어 신비한 나라로 함께 여행한다.


흰 눈 나라 왕과 왕비가 둘을 안내하여 과자나라로 도착하는 것에서 제1막은 끝이 난다. 전등이 켜지고, 주위를 돌아보던 나는 깜짝 놀랐다. 초등학교 학생들로 장내는 꽉 차있었다. 


기계에서 울리던 오케스트라보다 더 큰 왕 왕 소리가 생동의 교향곡으로 진동하였다. 


2막 과자의 나라, 스페인의 초콜릿, 아라비아의 커피, 중국의 차, 러시아의 캔디케인들이 즐겁게 군무를 추고 덴마크의 피리 부는 소녀들이 피리를 불며 춤을 춘다. 피날레는 70여명의 왈츠로 무대를 덮고 클라라는 잠에서 깨어나 모든 것이 꿈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 꿈은 해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기억할 꿈이 되었다는 한 시간 40여분의 춤이 줄거리다. 


처음 음향기에서 차이코프스키 오케스트라가 울려나올 때부터 내 얼굴엔 미소가 지어졌다. 클라라와 프리츠 남매의 다투는 장면이나 생쥐 떼들, 꼬마병정들의 춤사위가 정말로 실감이 났다. 파드되를 추는 클라라와 왕자, 무용수들이 점프하고 회전하고 들어 올리는 동작에서 표출되는 작은 실수와 미숙함이 어린 학생이라는 이유 때문에 오히려 귀엽게 보였던 것이다.


지난 4개월 여 동안 아름답고 완전한 미를 성취하기 위해 어린 학생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수련을 거듭한 열성과 노력이 가상하였다. 문득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생텍쥐베리의 ‘어린왕자’가 떠올랐다. “마음으로 보아야 더 잘 보이는 거야. 정말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어린 학생들이 추는 호두까기인형을 어린아이들과 함께 본 올해의 호두까기인형 발레공연은 나에게도 해마다 기억되는 즐거운 꿈이 될 것이다. 성탄절의 참 뜻을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교훈으로. 밖에는 줄지어 기다리는 노란 스쿨버스 위에 하얀 눈이 소복소복 내리고 있었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더보기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