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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문협회원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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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변경선 동(東)과 서(西)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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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변경선은 그리니치천문대를 경도 0도로 삼고 아시아의 동쪽 끝과 아메리카의 서쪽 끝에서 날짜를 바꾸도록 경도 180도를 기준, 인위적으로 날짜를 구분하는 선이다.

서쪽이 동쪽보다 하루 빠르고, 한국은 미국보다 하루가 빠르다. 경도 15도를 지날 때마다 한 시간씩 줄어든다. 시간이 주는 만큼 온 몸의 체질을 눈물로 쏟으며 이 선을 넘어갔다.

1. 공항

비행기 안은 참으로 시원하였다. 푹신푹신한 의자에 씌운 하얀 리넨커버는 풀이 빳빳이 먹혀 있었고 선반 위엔 베개와 담요 같은 것들이 잘 개어져 얹혀 있었다. 아스팔트를 눅진눅진하게 녹인 뙤약볕이 그대로 숨이 턱턱 막히게 하는 비행기 밖의 세상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별 천지였다.

숨을 후- 하고 몰아쉰 후 잠 간 입구에 멈추어 서서 한 눈에 그런 비행기 안의 풍경들을 죽 훑어보았다. 좌우를 살피며 좁은 통로를 걸어가다 앞날개가 눈 밑에 보이는 오른쪽 창가에서 자리를 찾은 나는 뒤로 돌아 섰다.

“그럼 몸조심해서 잘 갔다 와라. ‘영’이는 이제 아빠 만날 텐데 그만 울고...”

뒤따르던 오빠가 아직도 잉잉거리고 울고 있는 ‘영’을 건네주었다.

“응 오빠 두 건강하구... 도착하면 곧 편지할게 ”

싸~ 하니 박하냄새가 풍겨 오는 듯 코끝이 시큰해 왔다. 타원형의 작은 유리창에 코를 대고 비행장을 가로질러 나가는 오빠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팔을 축 늘어뜨리고 걸어가는 하얀 남방셔츠 등에 7월의 강한 햇살이 눈부시게 반사되더니 바라보는 눈을 아리게 했다.

-이렇게 해서 떠나는 것인가? 떠난다는 것은 결코 즐거운 일이 못 되는구나.

5개월 먼저 미국으로 떠나던 때의 남편은 비행장에도 나오지 못 하게 했었다. 등을 보이는 일이 이처럼 힘든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멀리 환송 대에 아직도 고개를 숙이고 서 계신 어머님. 하얀 손수건이 눈으로 코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고만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래 미국은 무엇 하러 그렇게들 가는 거냐? 여기서 잘 살면 그게 더 좋지“

남편이 처음 미국으로 떠날 때 어머님은 하루 빨리 ‘숙’을 데리고 가라고 당부하셨다. 처자를 두고 도미한 의사들의 방종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온 어머님은 구두서약이라도 받듯 해를 넘기지 말고 어서 데려 가라고 하신 것이었다. 그러던 어머님이 막상 남편의 초청장을 받고 도미수속을 하느라 부산하게 돌아가자 이번에는 옷소매를 잡아끌 듯 만류하는 것이었다.

“공부를 더 해야 하니 할 수 없잖아요.”

“의과를 나왔으면 개업을 하지 공부는 뭘 하려고 그렇게 많이 하는 거냐? 개업만 하면

얼마든지 잘 살던데.”

이런 말씀이라면 벌써 귀가 따갑게 들어 왔다. 양가의 어른들은 이구동성으로 남편이 융통성이 없어서 돈도 안 벌리는 기초의학에 남는다고 면박을 주었다. 더 듣기도 싫고 또 들었다고 해서 그렇게 기분이 상하지도 않았다.

“의사라고 다 개업만 하면 새 의학지식은 누가 가르쳐 줘요 수 십 년이 지나도 옛날 지식만 가르쳐서야 의사가 제대로 환자를 고칠 수 있겠어요?”

“그럼 아범이나 다녀오라 지 넌 또 뭘 하러 거길 가니 아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애 데리고 살림하느라 그 고생을 어떻게 하려 구. 직장이나 다니면서 여기서 기다리지.”

남편보고 빨리 식구들을 데려가라던 때의 일을 까맣게 잊은 말씀이었다.

“고생은 왜 고생만 하겠어요. 어떻게 기회 봐서 저도 공부를 좀 해야지요.”

“에그. 그 공부 웬만치 해 두어라 몸도 약한데. 애를 달고 대학원엘 다니느라 그 고생을 하더니 그것 마쳤으면 됐지 거기까지 가서 두 공부할 타령이냐?”

“고생은 되어도 남을 가르칠 사람은 쉬지 않고 자꾸 공부를 해야 돼요.”

어머님은 잠 간 말씀을 중단하고 ‘숙’을 물끄러미 바라보셨다. 숱이 적어서 얇게 붙은 쪽진 머리가 앞가르마께서 반짝거리며 윤을 내고 있었다.

“그렇게 꼭 가야 될 거면 갔다 일직이나 돌아와라.”

자식이 커서 결혼을 하고 아기 엄마가 되었어도 항상 어린애같이 곁에 두고 싶어 하는 외곬의 사랑. 출가한 딸자식은 남이라는 허전한 마음을 드린 것 같은 송구함이 앉은자리를 불편하게 하였다. 부득불 비행장까지 전송 나오신 어머님은 기운이 하나도 없이 몸만 건성 움직이는 인형 같았다.

“이제 떠나면 그래 언제 다시 너를 볼 수 있니?”

“뭐 한 3년만 있음 될걸요”

“3 년?!” 우뚝 솟은 어머님의 콧등과 눈가가 붉어 지셨다.

출국에 따르는 자잘한 일들을 마치고 다시 어머님 앞에 섰을 때 얼굴은 온통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고 눈은 충혈이 되어 ‘숙’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셨다. ‘숙’의 두 손만 꼭 잡고 서 계시던 어머니. 그 곁에 계시던 아버님은 말없이 안경만 자꾸 벗어 닦고 계셨다. 이때까지 비행기 탄다고 좋아하던 ‘영’이 울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때였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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