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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문협회원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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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변경선 동(東)과 서(西)(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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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호에 이어)
 8월 말. 마지막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지 날씨마저 찌는 듯 더운 게 더욱 심화를 돋구어주었다. 괜스레 무서운 생각이 들어 대낮부터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일찌감치 저녁을 마치고 이층에 올라와 앉았으려니 새삼스레 혼자 떠나버린 ‘훈’이 야속하였다. 


 따르릉, 따르릉. 


 흠칫 놀랐다. 9시가 다 되었는데 어디서 전화인가? 잠시 망설이다가 수화기를 들었다. 


 “헬로! 마미야!” ‘훈’의 장거리 전화였다. 


 “별일 없었어? 문만 꼭 잠그면 되니까 문단속 잘 하고 올라가기 전에 가스스토브 다시 한 번 조사해 보고 일찍 자요. 나 사흘 후에 돌아갈게. 하이? 마미 들려?”


 소리 없이 듣고만 있는 수화기에선 혼자 떠드는 ‘훈’의 목소리가 줄줄이 이어지더니 이쪽에서 아무 반응이 없는 것을 그제야 알아차린 듯 다급하게 물어 왔다. 


 “알았어요!” 소리를 꽥 지르고 수화기를 철컥 내려놓았다. ‘일찍 자거나 말거나. 사흘 후에 오거나 말거나.’ 꼬부장하니 중얼거리던 안면이 비죽비죽 하는 듯 했는데 엉뚱하게도 얼굴엔 미소가 하나 가득 번져나가고 있었다.


 ‘훈’이 깜짝 놀라 당황할 것이 고소하기도 하고 종일토록 부글거리던 심사를 시원하게 앙갚음 하고나니 그렇게 자신이 무작정 버려진 것은 아니라는 위로감이, 굳어 있던 모든 신경을 부드럽게 풀어주는 것이었다. 


 다음 날은 아침 일찍부터 바빴다. 여느 때나 다름없이 무료한 날이지만 기다린다는 사실은 더욱 쉽게 신경을 피로하게 만든다. 무엇이든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미시스 ‘비숍’이 가져다 준 상자 속에서 커다란 침대보 같은걸 하나 꺼냈다. 


 어린아이 용이었는지 빨강 노랑 파랑의 커다란 물방울무늬들이 알록달록하게 섞여있는 넓은 천은 하얀 광목으로 안이 바쳐져 있고 가장자리는 빨간 헝겊으로 단을 둘러 대었다. 이 천으로 빛이 바랜 식당 의자카버를 만들어 ‘훈’을 기쁘게 해주리라 마음먹은 것이다. 


 한국에서 올 때 비상용으로 바늘하나와 검은색 흰색의 실패 두 개만을 가지고 온 형편이니 다른 것은 아무 것도 할 것이 없었다. 끝이 구부러진 작은 수술용 가위로 두껍고 큰 천을 재단해서 일일이 손으로 꿰매자니 시간이 많이 걸렸다. 꼬박 이틀 만에 네 개의 의자카버가 다 완성됐을 때 바늘을 쥐었던 오른쪽 인지와 장지의 첫마디는 빨갛게 부어 있고 왼쪽 장지 끝은 바늘에 얼마나 찔렸는지 허옇게 껍질이 짓물러 있었다.


 저녁 무렵 ‘훈’을 내려주느라 잠간 들린 ‘게일’과 ‘낸 시’는 입을 딱 벌리고 놀랐다. 어디서 이렇게 화려한 의자카버를 구했느냐면서 빨간 헝겊으로 단을 두른 의자등받이를 몇 번이고 쓰다듬었다. ‘훈’도 무척 놀란 듯 언제 닥터 ’황‘네하고 쇼핑이라도 갔었느냐고 물었다. 


 “내가 만들었어요. 이틀 걸려서.”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럴 테지요. 이런 걸 파는 거는 보지도 못 했는걸요.” ‘낸 시’가 다시 감탄하였다.


 “‘수지’는 이틀 동안 위대한 예술가가 되었었는데 당신은 날 따라와서 돈만 낭비했지.” 


 또 토닥거리기라도 할 모양인가 했더니 ‘낸 시’도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왼손 엄지 끝으로 부르튼 장지마디를 비비며 오가는 대화를 듣고 있던 ‘숙’은 묘한 서글픔에 젖어들고 있었다.

시간과 노동력을 돈으로 사는 사람들과 시간과 노동력을 몸으로 지불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자신은 후자에 속하리라는 서글픔이었다. 누군가 말하기를 미국인은 먹기 위해서 살고 한국인은 살기 위해서 먹는다고 한 것이 사실인 것처럼 여겨졌다.


 어느 정도의 한계를 지나면 결국 절약한다는 것은 자신의 육체를 갉아 먹으며 일생을 사는 어떤 미개생물과 흡사해 진다는 생각이 마음을 우울하게 짓눌렀다.


 8월이 가고 9월로 접어들면서 날씨는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졌다. 드높이 올라간 북국의 새파란 창공은 내 고국의 하늘보다 더 차갑고 맑은 듯 했다. 


 찻길 양 옆으로 무성하던 가로수 잎들이 조금씩 황갈색을 띄어갔다. 때로 바람이 몹시 부는 거리에는 미니스커트와 코트가 뒤범벅이 되어 흐르기도 하였다. 


 개학이 되면서 한 가지 다행한 일은 대학교 스쿨버스가 아파트동내 북쪽 끝까지 운행되는 일이었다. 물론 버스정류장까지 7분 정도는 걸어 나가야 했지만 그래도 학교구내에까지 데려다 주는 버스를 탈 수 있게 된 것이 여간 다행스럽지가 않았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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