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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환의 생활경제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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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합중국의 건국국부들(28)-제임스 먼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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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중견정치인

프랑스 외교(1794-1796)

1794년 미 대사로 프랑스에 파견된 먼로는 프랑스의회에서 프랑스대혁명 이후 채택된 공화정책을 찬양하는 연설을 하여 기립박수를 받았다. 그는 프랑스와 미국의 무역보호정책을 체결했다.

그러나 한 달도 못되어 미 대사로 런던에 파견된 잔 제이는 미국과 프랑스 양국간에 무역제한을 암시하는 제이 조약을 영국과 맺어 먼로를 황당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친불정책을 고수하는 먼로는 특출한 외교수단으로 프랑스로부터 미국이 미시시피강을 항해할 수 있는 특혜를 받았다.

워싱턴은 미국이 영국의 재침략을 버틸 수 있는 군사강국이 될 때까지 영국과 화친해야 된다는 긴 안목을 갖고 있었다. 반면 제퍼슨과 먼로는 미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끌게 도와준 프랑스의 도움을 저버릴 수 없다고 실리보다 감정적인 이유로 친불정책을 주장했다.

워싱턴의 정책을 감지 못하고 먼로는 제퍼슨과 함께 제이조약을 맺게 한 워싱턴을 비판했다가 1796년 경질되어 고향으로 돌아와 변호사업에 복귀했다.

 

루이지애너 매입(1802-1803)

1799년부터 1802년까지 버지니아 주지사로 당선된 먼로는 1800년 토마스 제퍼슨 대선후보를 지지하였고 버지니아주 선거인단의 득표를 얻어내어 제퍼슨을 대통령에 당선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1802년 제퍼슨은 플로리다 서쪽지역과 뉴오얼린스를 프랑스로부터 구입하기 위해 프랑스와 협상하는 라버트 리빙스턴 미대사를 지원하기위해 먼로를 파리에 파견하였다. 1803년초 먼로는 리빙스턴과 함께 1천만 달러의 오퍼를 내었다. 계약을 빨리 맺기 위해 나폴레온과 직접 담화를 신청한 먼로는 전비가 필요한 나폴레온으로부터 뉴오얼린스에서 북쪽 캐나다 접경까지 포함하는 거대한 루이지애너를 1500만 달러가격으로 카운터 오퍼를 받았다.

먼로의 예산은 900만 달러였으나 미국 영토의 2배 되는 땅을 매입할 수 있다는 기회를 잡아 카운터 오퍼를 수락했다. 플로리다 서부지역은 스페인의 관할지역으로 제외되었다.

먼로의 즉각적인 결정을 찬양한 제퍼슨은 미 상원을 설득하여 루이지애너 지역을 구입하게 되었다. 1805년 먼로는 스페인을 방문하여 플로리다 서쪽지역 양보를 요청했으나 스페인으로부터 거절당했다.

 

먼로 핑크니 조약(1896년)

1803년 영국주재 미 대사관직을 맡은 먼로는 1794년 맺은 제이조약의 10년 만기를 연장하는 먼로 핑크니 조약을 맺었다. 제퍼슨은 영국의 야욕을 수긍할 수 없다고 상원에 제출하지도 않고 묵살시켜 후에 1812년 전쟁을 야기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고위정치인

국무장관 및 국방장관(1811-1816)

먼로 핑크니조약을 수긍하지 않은 제퍼슨은 먼로와 사이가 껄껄해지면서 1808년 차기 대통령선거에 제임스 매디슨을 밀어주어 먼로는 1808년 대통령선거에 낙선의 패배를 감수하고 매디슨 행정부의 국무장관직을 맡았다.

나폴레온 전쟁이 영불간의 전쟁으로 심화되면서 양국은 상대국과 교역하는 미국상선을 대서양에서 나포하여 미국을 괴롭혔다. 먼로는 나폴레온을 설득시킬 수 있었으나 영국의 횡포를 전쟁 외에는 막을 길이 없었다.

먼로는 영국과 불가피한 전쟁을 매파 헨리 클레이 상원과 동조하여 매디슨이 1812년 전쟁 선전포고를 결정하게 되었다. 전쟁초기에 캐나다를 침공한 미군이 수세에 몰리자 매디슨은 영국과 화친을 맺으려 했으나 영국이 들어줄 이유가 없었다.

먼로는 매디슨에게 정박한 미 군함을 전투에 발진하는 전략을 제안했다. 1814년 매디슨은 미국의 수도 워싱턴을 지키지 못해 영군이 불바다를 만들게 한 잔 암스트롱 국방장관을 경질시키고 먼로를 국방장관에 임명하였다.

국무장관 후임자가 임명될 때까지 먼로는 국무장관직과 국방장관직을 겸직하였다. 먼로는 명장 앤드루 잭슨을 재정적으로 도와주고 뉴오얼린스 지역을 방위하게 하였다. 중앙은행을 통해 국채를 발행하여 군인봉급을 올리고 10만명의 대군을 징집하여 영군과 대적하게 만들어 1814년 말 영국은 미국과 겐트 평화조약을 맺게 되었다.

 

미 대선 출마(1816년)

혁혁한 공을 세워온 먼로는 1816년 대선출마로 민주공화당으로부터 큰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당내 중앙은행을 부정하는 남부 당원들은 윌리엄 크러포드를 지지하였다. 자신을 평가한 크러포드가 먼로를 지지하게 되어 먼로는 당의 대선후보가 되었다.

인기를 잃어가는 연방당은 루퍼스 킹을 내세웠지만 먼로는 217명의 선거인단 중 183의 다수 득표로 68.2% 지지를 받고 부통령 후보 대니얼 탐킨스와 함께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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