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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을 찾아서(46)-마가의 다락방(Cenacle 혹은 Upper R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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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교회의 모체로 불리는 “마가의 다락방!”. 3년의 공생애 기간 중에 한번도 언급된 적이 없었던 “마가의 다락방”은 “무교절의 첫날, 곧 유월절 양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여짜오되 우리가 어디로 가서 선생님으로 유월절을 잡수시게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하는 물음에 “예수께서 제자 중에 둘을 보내시며 가라사대 성내로 들어가라 그리하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를 따라가서 어디든지 그의 들어가는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의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나의 객실이 어디 있느뇨 하시더라 하라 그리하면 자리를 베풀고 예비된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라” (막 14: 12~16) 하신 예수의 말씀에 처음 등장하게 됩니다.

아직 한번도 거론된 적이 없던 그 집, 주인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있을 때,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앞서 떠나는 두 제자는 아마도 어리둥절한 기분이었을 것입니다.

얼핏 아주 오래 전, 아브라함이 이삭의 아내를 구하려고 종을 메소포타미아에 있는 나홀의 성으로 보내었을 때, 그 종이 “내 주인 아브라함에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이제 이 성 사람들의 딸들이 물을 길으러 나오겠사오니, 제가 여기 우물 곁에 서 있다가 그 가운데 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컨대 물동이를 기울여서 물을 한 모금 마실 수 있게 하라’하고 말하겠사오니,(창 24:13~14)”라는 대목과 비슷한 느낌을 주지 않습니까? 아마도 “예비하시는 하나님”의 예표가 아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예비된 큰 다락방”을 가진 주인이 “마가 요한”이라는 청소년의 어머니로, 구브로 섬에서 온 마리아인 것은 한참 뒤에야 알게 되는 일입니다.

골로새서 4장 10절에 기록된 것을 보면 “마가 요한”이 “바나바의 생질”이라고 하였으니, 그 모친은 구브로 섬 출신의 자산가인 레위인, 바나바와 오누이 관계로, 예루살렘으로 이주한 상당한 재산가였기에 한꺼번에 어른 120명 이상이 들어가는 다락방이 있는 저택을 갖고 있을 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마가복음 14장 51~52절에 보면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오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는 좀

특이한 기록이 나옵니다. 복음서 가운데 마가복음 만이 이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런 특이한 경험은 당사자의 뇌리에는 평생 기억되는 일이겠지만, 만일 벗은 몸을 한 이 청년이 마가 자신이 아니었다면, 구지 이런 일을 복음서 가운데 삽입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베 홑이불은 세마포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당시 고가의 물품이었기에, 부유한 집이 아니고서는 구하기 힘든 물건이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제자들을 비롯 일반 서민들이 이것을 이불로 쓰기는 어려웠을 것이기에 당시 예루살렘에서 상당한 부를 누렸던 청소년, 마가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일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유대인들의 큰 명절인 유월절에, 처음 보는 사람들이 자기 집 다락방에 들어, 아주 이상스러운 방법으로 유월절 만찬을 하는 모습을, 아마도 신기한 마음으로 지켜보던 청소년이었을 것입니다.

만찬 후 겟세마네동산으로 간다는 그네들을 호기심으로 베 홑이불을 뒤집어쓰고 뒤따라 갔었겠지요. 그러다가 예수님이 잡혀 끌려가는 모습을 보고 놀란 나머지 홑이불을 던져 두고 뛰어 도망친 것이라고 유추할 수 있지 않을까요?

따라서 “마가 요한”은 예수님의 제자는 아니었지만 자기 집에서 예수님을 직접 목격할 수 있었던 인물이며, 그의 어머니 마리아는 그 후로 복음을 받아들여 예수님과 그 제자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던 인물이었을 것이라고 우리는 유추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여차여차하여 예수님은 돌아 가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었습니다. 예수의 부활(Resurrection of Jesus, 復活)은 안식일 전날(현재의 금요일)에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가 안식일 다음날(현재의 일요일)에 무덤에서 되살아 난 일을 말하는 것으로, 기독교의 가장 중심적인 신앙 내용을 형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한 인간이 죽음에서 되살아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을 이기고 되살아, 영생을 이루신 하느님이자 인간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나아가 그를 믿는 모든 자에게 영생의 구원이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인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예수님은 우리 모두의 죄를 십자가에서 담당하시고 곧바로 하늘로 승천하신 것이 아니라, 40일 동안 이 땅에 더 머물러 계시면서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행 1:3)

성경에는 이 기간 동안 11번 나타나신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후 감람산 정상에서 여러 제자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승천하시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 1:11)

이 후 10일만에 한 분이셨던 몸으로 온 세상에 나타나실 수가 없기에 성령으로 다시 나타나심을 보여주신 일이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마가의 다락방에서 일어났던 역사적인 일인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을 시온 문으로 빠져나가 약 100m 쯤 걸어가면 2층 석조 건물이 나오는데, 1층에 있는 다윗왕의 가묘를 지나 돌계단을 올라가면 “마가의 다락방”을 보게 됩니다.

다윗왕의 무덤은 어디에 있는지 알려지지가 않았기에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탈환한 후인, 1176년에 “다윗왕의 가묘(Tomb of King David)”를 아래층에 만들어 놓았다고 합니다. 이 묘는 기념 묘로서, 유태인의 상징인 '다윗의 별'이 문에 붙어있습니다.

AD 70년 로마의 티투스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될 때에도 이 건물은 피해를 입지 않았었다고 하는데, 614년에 페르시아군에 의해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으나 1176년, 십자군에 의해 복원된 후 1333년부터 1552년까지 프란체스칸 수도회에서 관리하다가 오스만 투르크제국이 통치할 시절에 건물 윗부분이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된 것이 오늘 우리가 볼 수 있는 마가의 다락방인 것입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후 다시 로마 카톨릭의 소유로 돌아갔습니다.

로마네스크식 건축물인 다락방 내부는 방 가운데 3개의 기둥들이 주위 벽에 서 있는 기둥들과 곡선으로 연결되어 아취를 이루며 천정을 받치고 있습니다.

이태리의 천재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밀라노의 “산타 마리아 델라 그라치에 성당(Santa Maria delle Grazie)” 식당 벽에 그린 명화 '최후의 만찬'은 이곳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마지막 만찬을 나누던 모습을 상상하여 그렸지만, 예수님 당시의 풍습을 고증할 만한 위치에 있을 수가 없었으니, 중세 시대의 식탁 모양대로 테이블을 놓고 모델을 배열하면서 그리게 된 것 같습니다.

(좀더 자세한 이야기는 서유럽 대가리 31번 할례 받지않은 다윗상을 참조하세요. https://blog.daum.net/chunchunhi-c/8544060?category=1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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