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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을 찾아서-슬픔의 길,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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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마지막 5개의 지점은 성묘 교회(聖墓敎會: Church of the Holy Sepulchre)안에 있습니다.

개신교에서는 “성묘 교회”라고 하고, 천주교에서는 “주님 무덤 성당”이라고 하며, 정교회에서는 “부활 기념 성당”이라고 부르는 여러 이름이 말해 주듯이 “슬픔의 길”의 종착지인 5 지점이 다 모여 있는 이 교회는, 예수가 십자가형을 당하고 무덤에 매장되었다가 3일만에 부활했다는 믿음을 가진 “Roman Catholic”과 오리엔트 정교회인 “Greek Orthodox”와 “Armenians”, “Syrians”, “Copts”, “Ethiopians”를 아우르는 기독교 6분파의 공동 성지입니다.

이렇듯 각 기독교계가 서로 소유권을 주장하자, 1852년에 당시 예루살렘을 지배하던 오스만 제국에서 기독교 종파별로 성묘교회의 구역을 나누어 맡게 하여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개신교 교단은 여기서 구역을 배정받지 못했는데, 개신교 전체를 대표할 만한 교단도 없었고, 당시 예루살렘에 개신교인의 수가 적었기 때문에 고려대상에서 빠져버린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종파 문제 때문에 어느 부분이 낡아 고치려고 해도, 다른 종파 구역을 넘어서기에 제대로 고치지도 못하는 문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게 뭔 말인가 하면 카톨릭은 대문을 책임지고, 창문은 시리아 정교회가, 창문 난간은 그리스 정교회가, 이렇게 나뉘어서 관리하다 보니, 창문이 낡아서 고치려고 해도 난간에 시리아 정교회인들이 사다리를 두는 걸 그리스 정교회 측에서 거부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서기 325년경에 콘스탄티누스 1세의 모친 헬레나가 성지순례를 하다가 발견한 예수의 빈 무덤 자리에다 326년경 콘스탄티누스 1세가 교회를 지은 이후 파괴와 재건축을 거쳐 오늘날까지 1700여 년이 되도록 교파를 가리지 않고 세계 각지의 기독교인 순례자들이 끊이지 않는 성지순례의 백미가 되었으니 얼마나 낡았겠습니까?  

더구나 주변은 이슬람 시장과 모스크로 둘러싸여 부지도 협소한 상태입니다.

이는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예루살렘을 놓고 공방전을 반복하면서 예루살렘의 주인이 바뀔 때마다 성묘 교회의 운명도 바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십자군 전쟁 당시 기독교 세력에게 점령된 예루살렘을 1192년 아이유브 왕조의 술탄 살라흐 앗 딘이 다시 점령했을 때, 살라흐 앗 딘은 자신과 가까운 무슬림인 조우데흐 가문과 누쎄이베흐 가문에 각각 성묘 교회의 열쇠와 문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겨 교회를 보호했다고 합니다.

특히 누쎄이베흐 가문은 637년에 2대 정통 칼리파 우마르의 통치 때부터 성묘 교회의 관리인 보직을 맡고 있었던 가문으로, 지금도 이들 두 가문이 성묘 교회의 관리를 맡고 있으며, 매일 두 번, 조우데흐 가문의 일원이 열쇠를 문으로 가져오면 누쎄이베흐 가문의 일원이 문을 한 번은 잠그고 한 번은 연다고 합니다.

2017년, 우여곡절을 거쳐 성묘교회를 보수공사 하면서 예수의 빈 무덤(시신 안치대) 부분을 수 세기 만에 다시 열고 보수하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먼저 12세기 십자군 시대에 안치된 위 덮개 석판이 발견되었고, 그 아래의 석판은 연대측정 결과 서기 300년대 콘스탄티누스 1세 시절의 것임이 밝혀졌습니다. 이로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무덤을 발견해 성묘 교회의 시초를 놓았다”는 기록이 사실로 증명된 것이지요.

동굴을 깎아 만든 선반 형태와 장식은 1세기 예루살렘 유대인 부유층의 무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형태라고 합니다. 이는 4 복음서에 공히 나타나는 산헤드린 공의회원이자 부자였던 아리마대 요셉이 준비한 무덤이었음을 나타내는 것일 것입니다. 즉 복음서의 기록과 발굴 기록이 일치하는 것이지요.

또한 이 작업을 지휘한 아테네 국립 공과대학의 안토니아 모로폴루 박사에 따르면, 동굴 서쪽 벽면에서 채집한 가장 오래된 회 반죽 표본들은 서기 4세기의 것으로 측정되었는데, 이는 기독교화 직후의 로마시대에 성묘교회의 건설작업이 진행됐음을 보여주는 추가 증거라고 합니다.

한편 이 작업을 밀착 취재한 내셔널 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에서는 성묘 교회 무덤 보수작업 과정에서 전문가들이 장비를 동원해 성묘 내부를 스캔했는데, 예수의 무덤 부분, 즉 예수가 안치되어 3일간 누웠던 무덤 위쪽에서는, 다른 곳에서는 잘 작동되던 장비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멈춰버리는 신기한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후일, TV 방송 언급에 따르면 이는 과학자들도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현상이라고 합니다.

이런 일들이 있었던 교회이다 보니 지나는 길들이 다 미로요, 각 종파에서 장식하여 놓은 여러 성물들 사이로 인파에 밀려 오르내리다 보니 어느새 5곳의 지점을 다 거쳐 밖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마침 붉어 오는 석양 무렵의 하늘을 올려다보며 큰 숨을 쉬어야 하도록 곤한 마지막 지점들이었습니다.

제10지점은 예수님의 옷을 벗긴 곳이며(요 19:23~24), 제11지점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곳이며(눅 23:33), 제12지점은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운명하신 곳이며(마 27:45~51), 제13지점은 아리마대 요셉이 시신을 내린 후 바위에 뉘인 곳이고(마 27:59), 제14지점에서 그가 자기의 무덤에 예수님을 장사 지낸 곳입니다(마 27:60~61).

이 엄청난 일들이 한 교회 건물 안에 다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아무리 크다고 한들 이 모든 일들을 한 지붕아래 품고 있다니.....

십자가가 서있던 갈보리 산 언덕은 어디로 갔을까요?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막은 돌을 어찌 치울까?"고 걱정하며 향유를 들고 온 그 무덤은 어디로 갔을까요?

예루살렘 거룩한 성의 좁은 골목길, 그 양쪽으로 밀집하여 상점이 들어서고, 물건을 팔려고 떠드는 상인들의 호객소리 사이로 순례자들과 엉켜 밀고 밀리는 아수라장이 된 슬픔의 길.

 조용히 묵상하며 걸을 수가 없음은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만 같았습니다.

이 복잡하고도 혼란스러운 슬픔의 길, 비아 돌로로사는 바로 예수께서 구원하시려는 오늘의 세상 축소판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주었습니다.

만일 이 세상이 하늘나라처럼 깨끗하고, 모든 사람들이 원죄 이전의 아담과 이브 같다면 예수는 세상에 오실 필요가 없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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