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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을 찾아서-가버나움(Capernaum) '나훔의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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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버나움, 나훔의 마을이라는 뜻입니다. 구약 시대, 소선지자 중의 한 사람으로, 불과 3장의 짧은 예언서를 기록한 예언자의 이름인 나훔서의 1장 1절에는 “니느웨에 대한 경고, 곧 엘고스 사람 나훔의 묵시의 글이라” 고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이 지역의 옛 이름이 엘고스 였던가 봅니다.

나사렛에서 환영받지 못한 예수님이 왜 이 곳을 전도의 중심지로 삼았는지는 나훔 묵시서에도 정확하게 나타나 있지 않고, 신약성경에서는 단지 나훔 1장 7절이 디모데 후서 2:19에 간접적으로 인용되었지만 이곳은 고대로부터 '해변의 길' (Via Maris, 사 9:1)이라고 부르는 남북을 연결하는 매우 중요한 통로에 위치하고 있어, 많은 이방인을 포함한 시민들과 군인, 상인, 여행자 등이 왕래하는 길목이기에 선교적 차원에서 중요한 곳이라 여기시었던 것이 아닌가도 싶습니다.

탄생 후 애굽으로 피신하였다가 나사렛에서 성장하신 예수님은 나사렛에서 가르침을 시작하시었으나 결국은 “선지자가 자기 집과 고향 외는 존경을 받지 못하는 곳이 없다”(마 13:57)고 하시며, 그 당시에는 제법 큰 도시인 가버나움을 전도의 중심지로 삼으셨으니까요.

12 제자들 중 어부였던 베드로 형제와 요한의 형제, 그리고 세리였던 마태까지 5명의 고향이자 생활 터전이었기에 갈릴리 호반의 여러 도시로 다니시며 사역하기 편할 수가 있었던 것도 한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요?

마가복음 1장 22절에는 안식일에 가버나움에 있는 한 회당으로 들어가 가르치시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는 것이 권위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라고요.

마침 그 때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이를 고쳐 주시니 예수의 소문이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더라고 28절에 기록되었지요.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말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다 통용되는 모양입니다.

그 때의 그 회당이 아직도 부서진 채로 유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예수님이 사역하신 거의 모든 곳에는 천주교회에서 기념 교회들을 지어 놓고 순례객들을 부르고 있는데 반하여 이 유대인들의 회당 터에는 아직 새로운 회당이 지어지지도 않았고, 또 새로운 교회가 들어서지도 않았습니다. 아마도 두 종교가 아직도 합일점을 찾지 못하였다는 반증이겠지요.

회당 터 앞에는 베드로의 집이었다는 유적 위에 지금은 “성.베드로 기념 교회”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 교회는 마치 공중 부양하는 UFO처럼, 위에서 보면 팔각형 지붕 아래, 본당의 중앙은 비워 놓아, 그 아래에 발굴된 옛 베드로의 집을 볼 수 있게 해 놓았습니다.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또 귀신들린 사람을 고쳐 준 후 바로 이 곳,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고쳐 주시었습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fever”라고 하였지만 이 대목을 읽으면서 속물인 저에게 피뜩 떠오른 생각은 혹시 우리 말의 “홧병이 아니었을까?” 였습니다.

갈릴리 호숫가에서 생선을 잡아 생활하던 베드로와 그 동생 안드레가 배를 묶어 두고 예수님을 따라나서니 갑작스레 막연해진 생활고 걱정에 장모가 머리를 싸매고 드러누운 것은 아니었을까요? (에그~속물!)

그러나 예수님께서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그들에게 수종을 들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사이 벌써 수많은 병자와 귀신들린 자들이 베드로 집 문 앞에 모였고 주님께서 이들을 고쳐 주신 후 한적한 곳으로 가시어 기도를 하시었지요.

이날 이후 이 근방에서 여러 날 가르치심과 수많은 기적들을 행하시었습니다.

게네사렛 호숫가에서 시몬 베드로에게 배 두 척에 가득 찰 정도의 고기를 잡게 하셨고, 중풍병자를 친구로 둔 네 명이 예수께서 사역하시던 집의 지붕을 뚫고 들어간 사건(막 2:1-12) 역시 가버나움에서 였습니다.

남의 집 지붕을 뚫고 들어갔다는 것이 한국이나 이 곳 캐나다에 사는 우리들에게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갈릴리 지방이 현무암 지대여서, 대부분 돌로 집 벽을 짓고, 갈대나 종려나무 가지로 지붕을 덮는 형태의 가옥을 가지고 있었던 이 지방의 가옥 형태를 알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문둥병자를 고치시고, 안식일에 손 마른 자를 고치심으로 유대인들과 안식일에 대한 논쟁으로 미움도 사시고, 유대인에게 회당을 지어 준 백 부장의 종도 고치셨습니다.

귀신 들려 눈멀고 벙어리 된 자를 고쳐 주시고,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물결이 배에 덮이게 되어 제자들이 두려워할 때, 큰 폭풍을 꾸짖어 잔잔하게 하신 것도 이 부근에서였습니다.

야이로 회당장의 죽은 딸을 살리심과 12년 동안 혈루병을 앓던 여자가 고침을 받음, 그리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 5,000명을 먹이신 일들이나, 배를 타고 가버나움으로 가던 제자들에게 바다 위를 걸어오셔서 만나신 것도 이 부근이었습니다.

이렇듯 많은 가르침, 병 고침, 그리고 여태 경험할 수 없었던 기적들을 보여주셨지만 가버나움은 하늘나라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예수님께서

탄식하시었지요.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 (마태복음 11:23)

그래서였을까요? 예수의 사역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가버나움, 고라신, 벳세다 등의 도시는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11세기까지 지속적으로 사람이 거주하였다가 제1차 십자군 전쟁 이전 어느 시점에서 더 이상 도시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며 폐허로 변해갔습니다.

1838년 미국의 탐험가 에드워드 로빈슨(Edward Robinson)이 폐허로 변한 이곳을 처음으로 확인한 이후 여러 차례 발굴을 통하여 현재까지 복원된 회당의 잔해들을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입니다.

5세기 초엽에 이미 베드로의 집터에 있던 경당이 갈릴리 지방 그리스도인들의 중심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경당은 614년 페르시아 군의 침입으로 폐허가 되었다가 오랜 세월이 흐른 후인 1894년 작은 형제회(프란체스코회)에서 발굴작업을 하던 중 베드로의 집터에서 '베드로'라는 희랍어로 쓰인 푯말과 어선의 그림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 집터 위에 최근에 UFO처럼 공중에 띄워진 채로, 가운데는 바닥이 비어 있어 그 아래 옛날 베드로의 집 터가 보이도록 “성.베드로 기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후 귀신들린 자를 고쳐 주신 회당의 남은 유적

 

복구를 기다리는 잔해들

 

베드로의 집 터 위에 지은 팔각형 교회. “성 베드로 기념 교회”라고도 합니다.

 

내부와 유리로 막은 가운데 빈 공간

 

밖에서 본 베드로의 집 터

 

가버나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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