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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와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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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기독교를 대표한다는 복음주의자이자, 저술가인 존 스토트(John R. W. Stott)는 ‘기독교의 기본 진리’라는 책에서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이 “교회에는 적대적,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우호적”이라고 말한다. 세상은 예수님이 아니라 교회를 배척한다는 것이다. 존 스토트는 그 이유를 교회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충실하게 따르지 않는다는 데서 찾는다.

 

사실일까. 요한복음 15장18~19절에서 예수님은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고 말씀하신다. 또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고 덧붙이셨다.

존 스토트의 설명과 달리 예수님을 직접 눈으로 목격하고, 그분의 목소리를 귀로 들은 2천 년 전 유대인들조차 예수님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당시 여호와 하나님을 철저하게 믿는다고 자부하던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였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마태복음 13장12절).

 이 말씀은 ‘네 가지 땅에 떨어진 씨 비유’에 붙어 있다. 농부가 씨를 뿌리는데 더러는 길 가에, 또는 돌밭에, 때로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진다. 좋은 땅에 떨어진 씨만 열매를 맺는다는 비유다.

 

세상 상식의 기준으로 마태복음 13장12절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차라리 “부자의 소유를 가난한 자들에게 조금씩 나누자”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면 누구나 흔쾌히 동의했을 것이다. 그러나 명확하게 예수님은 정반대로 해석되는 이야기를 하셨다.

이유가 있다. 비유 이야기에 좀 더 들어가 보면, 예수께서 씨에 대한 이야기를 하신 이유는 ‘천국의 비밀’(11절)을 제자들에게 알려주시기 위해서다. 그저 보편적 세상살이에 대한 조언이 아니다. 사람들이 예수께 몰려나오자 그들을 향해 천국에 대한 이야기를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다. 친절하게 잘 알아듣도록 설명하기 위해서? 아니다. 정반대다.

 

예수님은 의아해 하는 제자들에게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라고 하셨다. 주변 사람들을 ‘너희’와 ‘그들’로 나눈 뒤, 결국 천국의 비밀을 제자들 외에 다른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게 하려고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다.

 

이런 억지스런 이야기는 한 발 더 나간다. 13절에서 예수께서는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라고 하셨다. 어차피 못 알아듣는다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것이 구약 선지자 이사야가 했던 예언의 성취이기 때문이다.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고 기록한다.

 이사야 6장9절~10절에서는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고 되어 있다. 놀랍게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지자 이사야를 당시 유대인들에게 파송한 이유는 사람들의 눈과 귀를 막기 위해서다. 그들이 깨닫지 못하게 하시려는 의도다. 이런 하나님, 예수를 세상이 좋아할 리 없다.

 

흔히 말씀을 듣고, 잘 실천해서 열매를 맺는 좋은 밭이 되자고 말한다. 실제로 그런 교회는 예수님의 예언이 무색하게, 세상의 칭찬을 받는다. 이것이 바로 존 스토트가 말한 “예수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려는” 시도다. 그러나 그것은 본질에서 벗어난 엉뚱한 길이다. 복음의 본질에는 관심이 없고, 여전히 자기 스스로를 실시간으로 눈 여겨 보면서 점수도 매기고 매일매일 평가도 한다. 그들이 바로 천국의 비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자, ‘그들’이다.

 

천국의 비밀은 에덴동산 이야기에서 비롯된다.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를 쫓아내시고, 천사들과 불 칼을 두어 동산 동쪽에서 지키게 하셨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생명나무로 들어가는 길을 막기 위해서다. 선지자 이사야에게 하셨던, 또 예수께서 직접 인용하신 말씀의 맥락이다. 여기서 인간이 스스로의 능력이나 노력으로 구원을 쟁취할 수 있는, 천국에 침노해 들어갈 방법은 영원히 사라졌다.

그런데 이 에피소드에는 세상의 본질에 관한 힌트가 숨어 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뱀을 저주하시면서 세상이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으로 나뉠 것을 말씀하신다. 똑같이 ‘너희와 그들’이다. 에덴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의 후손으로 살인자 가인과 희생자 아벨이 등장한다. 가인의 자손은 문명을 열심히 발전시키는데, 반대편에선 아벨의 ‘대타’ 셋의 후손은 그저 ‘죽었더라’로 끝난다. ‘여호와께 은혜를 입은 자’ 노아와 물에 빠져 죽는 세상 모든 사람의 분리 이야기가 계속되며, 아브라함의 아들들은 첩의 자식 이스마엘과 약속의 자녀, 이삭으로 갈라진다. 이삭의 아들은 에서와 야곱으로 나뉘어 정반대 편에 서 있다. 힘을 가진 애굽(이집트)에 재앙이 퍼부어지고, 온갖 핍박을 당하던 히브리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홍해를 건넌다. 이것이 역사 내내 되풀이되는 세상의 본질이다.

 

여호와께서 귀가 막히고 눈이 멀게 만들어버리신 ‘그들’은 결코 예수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다. 그것은 복음주의 신학자 존 스토트의 착각이자, ‘뇌피셜’이다. 마태복음 10장은 그 이야기를 더 상세히 다룬다. 예수께서는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반드시 ‘너희’를 미워해야 한다. 미워하게 되어 있다. ‘너희’는 세상에서 예수님의 택함을 받아, 뽑혀져 나온 이들이기 때문이다. 단지 그 이유다. 그래서 ‘너희’는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긴 세상 속에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눈과 귀가 열려 천국의 비밀을 알아듣는다. 예수님의 열심 때문에 길 가의 황무지, 가시덤불로 덮여 있던 쓸모 없는 광야가 기경을 당하고, 좋은 밭이 되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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