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wanghyunsoo
마인즈프로덕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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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디바’ 나윤선이 온다
Hwanghyunsoo

 

 동네에 있는 <리치먼드 힐 퍼포먼스 아트 센터(Richmond Hill Centre for The Performing Arts)>가 지난주 문을 열었다. 그동안 공연을 못봐 근질거렸는데 마침 재즈 공연을 한다고 해서 친구 부부, 아내와 함께 갔다. ‘Canadian Jazz All- Stars’라는 공연인데, 훌륭한 연주 기량의 베테랑 뮤지션을 만날 수 있었다. 색소폰, 피아노, 콘트라베이스, 트럼펫, 드럼, 보컬리스트가 펼치는 연주는 우리에겐 다소 낯선 음악이었지만, 캐네디언 재즈를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나도 이렇게 글을 쓰지만, 사실 재즈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워낙 음악의 폭이 넓고 여러 장르를 스펀지처럼 품어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게 재즈야!’ 말하기 어렵지만, 어렴풋이 느끼는 것은 재즈에는 ‘자유’가 있는 것 같다.고국 방송사 근무 때 내가 속한 부서에서 미국의 유명 색소포니스트를 초청해 공연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재즈에 대해 너무 몰라 이것저것 자료도 보고 공부 삼아 이태원에 있던 ‘올댓 재즈’라는 재즈 클럽에 공연을 보러 가기도 했었다.

 고국에 재즈가 상륙한 것은 1920년대 중반이다. 당시 호남의 대부호였던 백명권이 조선축구단을 이끌고 영국 육군 축구팀과 원정경기를 하기 위해 중국 상하이로 떠난다. 1925년 1월 축구 경기를 위해 떠났지만 백만장자의 화려한 사치를 즐기던 백명권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다름아닌 ‘재즈’였다. 상하이의 조계 지역을 중심으로 재즈클럽이 크게 번성해 미국, 필리핀, 러시아 등 세계 각국에서 온 밴드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백명곤은 재즈 악보와 색소폰, 피아노 등 악기를 구입해 귀국한다. 이후 당대 최고의 음악가였던 피아니스트 홍난파, 트럼페터 한욱동, 드러머 이상준, 노래 이인선, 백명곤 색소폰 등으로 구성된 재즈 악단을 구성한다. 1926년 한국 최초의 재즈 밴드인 ‘코리아 재즈밴드’가 결성되어 공연을 시작했다.

 1930년대까지 재즈는 많은 인기를 누리지만 1941년 태평양전쟁 발발 이후 일본의 적군인 미국을 비롯한 서양음악을 금지하면서 명맥이 끊기고 잊힌 역사가 됐다. 1950년 6.25 전쟁 이후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기 시작하며 본격적인 재즈가 들어오기 시작한다. 미 8군 사령부를 비롯해 평택, 오산 등에 자리잡은 미군부대에는 자국의 병사를 위로하기 위한 클럽이 있었다. 이곳에서 재즈가 연주되었으며 여기서 영향받은 한국 연주자들도 함께 배출된다.

 

 

 1976년 서울 이태원에 중국계 미국인이 ‘올댓 재즈’라는 재즈클럽을 만든다. 미국에서 공수한 재즈 명반을 감상할 수 있었고 연주자들이 재즈공연을 할 수 있는 무대가 만들어졌다. 재즈가 일반 대중에게 사랑받기 시작한건 아이러니하게도 배우 차인표 때문이었다. 1994년 방영된 MBC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 안에’에서 차인표가 색소폰을 멋지게 연주하는 모습이 대중을 사로잡는다. 이후에 재즈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재즈를 듣는 대중들이 많아지게 된다.

 2000년대 이후 많은 음악 축제들이 생겨났고 그중에서도 야외 재즈 페스티벌이 관객들에게 사랑을 받는다. 현재 약 20여 개의 크고작은 재즈 축제가 열리고 재즈를 하는 연주자도 차츰 많아진다. 현재는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재즈 시장에서도 한국 뮤지션이 사랑받고 있다. 유럽의 보컬리스트 나윤선과 뉴욕의 첼리스트 이옥경과 작곡가 이지혜, 네덜란드의 드러머 홍선미, 프랑스의 피아니스트 허대욱 등이 해외무대에서 진가를 드러내고 있다.

 그중에서도 보컬리스트 나윤선은 한국보다 유럽에서 더 활발하게 활동하는 가수다. 그의 재즈는 폭이 넓다. 다양한 레퍼토리와 넓은 음역을 소화한다. 맑은 메조의 목소리를 가진 그녀는 ‘세밀한 말맛’을 찾아내 전달한다. 사람들의 숨을 멎게도 열정적으로도 만든다. 그렇다고 대단한 성량이나 기교를 가진 것도 아니지만, 마치 비눗방울이 터지기 바로 전의 빵빵함이 있다.

 나윤선의 재즈는 일반적인 패턴을 거부한다. 대신 지적이고 세련되며 맑고 깨끗하다. 그가 ‘디바디아~’ ‘슈비두와~’ 등의 의미없는 스캣 창법을 할 때면 신내림을 받은 무녀의 굿판을 보는 듯하다. 그런 나윤선의 음악을 두고 ‘이채롭다’, ‘생경하다’고 언론에서는 평한다.

 

 

 나윤선이 음악을 시작한건 1994년, 그러니까 나이 스물여섯 살 때다. 뒤늦게 음악을 시작했기에 다른 가수들의 창법을 모방하기보다 자기 목소리를 만들 수 있었다. 불문학을 전공한 그녀의 원래 꿈은 ‘불어선생님’이었다. 대학 졸업하고 대기업 홍보실에 취직해서 카피라이터를 했다. 그러다가 뮤지컬 <지하철 1호선> 오디션에 장난삼아 데모 테이프를 보냈다가 연출자 김민기에게 발탁된다. 이 뮤지컬에서 주인공 역을 훌륭히 소화해냈다.

 이듬해 “노래 좀 더 잘하고 싶다”며 프랑스 유학길에 오른다. 유럽 최초의 재즈 스쿨 CIM에 입학한 그녀는 무섭게 음악을 파고들었다. 모르는게 너무 많았던 그녀는 한국의 고시생처럼 공부했다. 재즈의 정의며 역사, 유명 뮤지션들의 음악 세계까지를 훑었다. 시간을 쪼개 프랑스 보베(Beauvais) 국립 국악원과 파리 나디아(Paris Nadia &LillBoulager) 콘서버토리를 함께 다녔다. 그런 집념으로 CIM 스쿨에서 4년째부터 장학금을 받았고, 프랑스 보베 국립음악원을 수석으로 졸업한다. CIM 스쿨 6년 차에는 동양인 최초로 교수 제안을 받는다.

 2년의 교수를 지내고 한국으로 귀국한다. 프랑스에서 만난 뮤지션들로부터 러브콜이 왔고 본격적인 무대활동이 시작된다. 그녀의 프랑스 순회공연은 세계 재즈 시장에 ‘나윤선’을 순식간 알리는 계기가 된다. 요즘 그녀에게는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가장 위대하고 훌륭한 재즈 싱어’라는 유럽 언론의 극찬이다. 또한 세계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프랑스 문화예술 공로훈장인 오피시에(Officier), 슈발리에(Chevalier)를 수훈했다. 방송에는 거의 출연하지 않아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고정 팬이 상당히 많아 공연마다 늘 매진된다.

 라이브 공연이 생명인 재즈 가수 나윤선도 팬데믹으로 2년간 공연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돌파구를 찾았다. 그동안 쉴 틈 없이 보내온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며 가사를 쓰고 직접 곡을 만들어 지난 1월에 11집 음반을 냈다. 그리고 다시 월드 투어를 시작했다.

 그 나윤선이 오는 4월 23일(토) 8시 토론토 코에너 홀(273 Bloor St. W.)에서 공연을 한다. 그녀는 도대체 어떤 색채일지 몹시 궁금했는데, 이렇게 토론토에서 만날 수 있다니 벌써부터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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