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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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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08
꽃을 보면 마음이 먼저 주저앉는다

 

오늘 새벽에 꾼, 꿈 이야기. 자동차에 타고 있던 나는 1차선에서 파란 불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마침내 옆 차선에는 경찰차가 있어 짐짓 긴장하며 있었는데, 반대편 차선에서 검은색 픽업트럭이 빨간 불을 무시하고 건너오는 거다. 옆에 있던 경찰은 바로 사이렌을 울렸고, 건너오던 차는 타이어에 흰 연기가 날 정도로 급 브레이크를 밟아, 내 자동차 옆을 스치며 멈춰 섰다.

다행히 큰 사고 없이 차의 왼쪽 꽁무니 쪽을 살짝 부딪쳤기에 ‘어~휴, 십년감수했네!’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신호등이 바뀌자 나는 차를 몰아 교차로를 건넜다. 뭐에 씌었는지 정신없이 한참을 가다가 “아, 차 사고가 났는데 그냥 왔네”하며 유턴해 다시 사고 현장으로 돌아갔다. 급하게 서둘러가다가, ‘아, 이거 꿈인데 다시 갈 필요가 있나?’하며 부산을 떨다가 얼떨결에 꿈을 깼다.

 밤새 ‘자다, 깨다’를 반복하더니 그만 개꿈을 꾼 것이다. 다음 주에 여행 가야 하는데 아직 준비도 못하고, 내일 모래가 칼럼 마감일인데 아직 주제도 못 정했으니 불안해서이지 싶다. ‘당분간 글을 못 쓸 것 같은데…’ 하는 걱정도 제대로 잠을 못 자는 이유다.

 몇 주 전에는 전 직장 후배한테서 이런 문자가 왔다. “형님, 요즘 꽃에 대해서 글 쓰시나 봐요?”라는 문자를 받고 쑥스럽고 부끄러웠다. ‘평소에 꽃에 대해 관심이 없던 사람이 이민 가서 변했나?’ 하는 말투가 숨어 있는 듯 해서다.

그리고 어느 모임에서는 처음 인사를 나눈 사람이 “꽃에 대해 글 쓰는 분이시죠?”라며 하길래, ‘아, 이거 너무 아는 체 하는 게 아닌데, 독자들은 무슨 <화초 도사> 쯤으로 알겠구나’하는 생각도 들게 되었다.

 사실 살면서 식물들은 항상 옆에 있었는데, 있는지도 모르고 없어도 없는지도 모르며 지낸 건 아닐까? 결혼하기 전에는 어머니가 키우던 화초들, 결혼 후에는 아내가 키웠던 화분이 집에 있었는데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회사 사무실에도 작은 화초들이 있었는데, 누가 가져다 놓은 화분이고 누가 물을 주는지 관심이 전혀 없었다.

 토론토로 이민 와서 부부가 함께 생계형 노동을 하다 보니, 화분에 물주는 시간조차 틈이 없어 그나마 아내가 키웠던 화초도 가꾸지 못했다. 그러다가 가게를 접고 동네 산책 다니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저 집 화초들은 어쩌면 저렇게 예쁠까, 무슨 시간에 물 주고 관리하나?”하며 부러워하였다.

 

 

 생각해보면 다른 집 화초가 부러웠던 것은 이 동네로 이사 오면서부터다. 16년 전에 이 집으로 이사 왔을 때, 옆집에 유태계 싱글 아줌마가 살고 있었는데 그녀의 취미가 화초 가꾸기였다. 시간 날 때마다 정원에 나와 각종 아름다운 꽃과 야생풀들을 키웠다.

작은 식물원 수준이라 할 정도로 다양한 꽃들이 피고 지고 했다. 리치먼드 힐(Richmond Hill) 시티에서 정원 예쁘게 가꾸면 주는 상을 매년 받았고, 그래서 동네를 산책하는 사람들은 옆 집 정원을 그냥 지나치는 일이 없을 정도로 훌륭한 정원이었다.

그러다가 그녀가 이사를 가고 중국 할머니가 이사를 오며 옆 집 화초들도 시름시름 해진다. 그러더니, 급기야 뒷마당으로 들어가는 길에 피어 있던 야생풀을 모두 뜯어내고 시멘트 타일을 까는 공사를 한다며 “우리가 하는 김에 너도 같이 하자”고 한다. 우린 사용하는 길도 아니고, 자연스레 풀밭이 있는 것이 좋을 듯해서 “우리는 이대로가 좋다”고 한 적이 있다.

당시 공사를 하면서 뜯어낸 야생화 풀들이 아까워, “이거 버릴 거면 우리가 가져다가 심어도 되냐?”고 했더니 “가져 가라”고 해서 우리 마당에 심었다. 옆집에서는 천대받던 야생풀이 우리집에 와서는 가장 명당(?)에 자리하게 된 거다.

벌써 10여 년이 된 일인데, 언젠가 생물 선생 출신인 아내의 친구가 보고 “어, 이거… 이질풀이네, 어디서 났어요?”해서 그때서야 풀이름이 이질풀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러다가 이번에 글을 쓰려고 인터넷을 찾아보니 이질풀도 수십 종류가 있는데, 우리 정원에 핀 것의 정확한 이름이 캐롤라이나 제라늄(Carolina geranium)이라고 한다.

캐롤라이나 제라늄은 추운 겨울에도 자생하는데, 일반적으로 척박한 토양과 건조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 줄기에 털이 빽빽하게 나 있으며 녹색과 분홍색을 띤다. 잎의 뒷면에 털이 있고 보통 5개의 손바닥 모양으로 갈라져 3~8cm까지 큰다.

5월부터 7월까지 꽃이 피는데, 5개의 옅은 분홍색 꽃이 모여 작은 덩어리를 만든다. 꽃 모양은 ‘황새 부리’ 비슷해, 길고 털이 많은 뾰족한 머리에 단단한 씨앗을 품고 있다. 씨앗은 긴 부리 모양의 구조를 가지고 있어 ‘두루미주둥이(Cranesbill)’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캐롤라이나 제라늄은 의약 및 미식 용도로 사용되지만 얕은 뿌리는 약초로 치료에도 사용된다. 타닌이 많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쓴맛이 나는데, 아메리카 원주민은 관절염, 인후염, 설사나 위장 문제, 상처 및 감염을 치료하는 데 사용했다고 한다.

사실 이 야생화를 심고 나서 제대로 관리를 안 했는데도 스스로 잘 자라 매년 꽃을 피우고 있으니, ‘효자’가 따로 없다. 이제 가을에 접어드니, 누런 잎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옛말에 나이 사십이 넘어야 길가에 풀꽃이 보인다는 말이 있다. 사십 이전에는 청춘 자체가 꽃이기 때문에 굳이 꽃을 찾지 않아도 그 열정만으로 꽃이라는 것이다.

육십이 지나고 보니 꽃을 대하는 태도도, 보는 방식도 달라진다. 예전에는 사진이나 찍기 위해서 쪼그려 앉았는데, 지금 꽃을 보면 마음이 먼저 주저앉는다. 잎과 꽃의 상처도 보이고 애틋한 마음도 생기는 것을 보면 확실히 황혼에 접어든 것이 틀림없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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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01
대단히 좋은 일이 있겠구나, ‘바라아제’

 

 우리 집 정원에서 기르고 있는 꽃들 중에 고국에서는 잘 보지 못했던 꽃이 있는데, 바로 만데빌라(Mandevilla)라는 꽃이다. 한국에 있을 때는 화초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정집 정원에서 키우는 만데빌라를 보지 못했던 것 같다.

 10여 년 전에 멕시코로 패키지 여행을 갔을 때였다. 호텔 로비를 화려한 만데빌라 꽃으로 인테리어를 해놓았는데 열대 지방 특유의 이국적인 느낌을 강하게 받았었다. 마치 립스틱을 짙게 바르고 당당히 자신의 외모를 뽐내는 서구적인 여인의 느낌이 들었다.

그 뒤에도 몇 번 이 꽃을 마주할 때마다, “저 꽃 이름이 뭐지?”하며 주위에 물어보곤 했는데, 워낙 외우는데 소질이 없어서 남아프리카 흑인 대통령인 ‘만델라’, 중국어 ‘만다린’ 등으로 기억하다가 작년 겨울에 화분을 직접 키우면서 정확한 이름을 알게 됐다.

 

 

겨울 내내 실내에서 키우다가 봄이 되어 정원에 화분을 내놓았더니, 덩굴만 무럭무럭 자라고 꽃은 피지 않았다. 7월이 되면서 꽃들이 하나, 둘 피어나더니 요즘에는 줄기마다 빽빽이 꽃을 피우고 있다. 만데빌라는 나팔꽃처럼 생겼지만, 나팔꽃보다는 크고 꽃잎이 비로드 옷감 느낌이 들 정도로 두껍다. 대개 꽃 색은 빨강과 연분홍이고 노란색도 있다는데, 나는 직접 본 적은 없다. 꽃을 피우기 전에 마치 긴 펜촉처럼 봉우리를 뽑아 올린다.

 ‘천사의 나팔 소리’라는 꽃말을 갖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3~5 송이가 피어나고 7송이까지 피면 ‘천사가 평화와 행운을 준다’고 할 정도로 의미를 둔다. 원산지는 붉은 꽃처럼 정열의 나라 브라질이다. 잎은 동백나무 잎을 닮았는데, 뜨거운 오후의 햇빛을 받으면 꽃들이 활짝 피고 윤기가 흐른다.

잎에서 나오는 수액은 약한 독성을 품고 있고 피부에 자극을 줄 수 있어 사람들은 괜찮지만, 반려 동물들은 옆에 가지 않도록 주의를 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대부분 곤충과 질병이 없이 잘 자라는 편이다.

나는 ‘만데빌라’ 꽃을 보면 엉뚱하게 ‘바라아제’가 떠오른다. ‘만나빌라’나 ‘바라아제’, 두 단어는 처음 들었을 때 영어도 아니고 힌디어 같았다. 사실 힌디어는 한마디도 모르지만, 그저 그런 비슷한 이미지를 느꼈다. ‘아제 아제 바라아제’(gate gate paragate)는 <반야심경>의 마지막 구절인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 승아제모지사바하’에서 따온 말로 일반적 문장이 아니라 진언이나 주문 같은 것이다.

아제(gate)를 직역하면 가버린 것을 의미하는데, 괴로움에서 해탈로 가버리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아제 아제’는 가버리고 또 가버린 것이다. ‘바라아제’는 아주 먼 저곳 끝, 파라다이스까지 가버린 것을 말한다. 다시 이것을 쉽게 풀이하면 ‘아제 아제 바라아제’는 “좋은 일이 있겠구나, 좋은 일이 있겠구나, 대단히 좋은 일이 있겠구나”라는 뜻이 된다.

<아제 아제 바라아제>는 1989년에 임권택 감독이 만든 영화다. 강수연이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1989년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세인트 조지 황금상’ 후보에 올랐고, 주연 여배우인 강수연은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요즘은 한국 영화가 해외에서 상을 받는 것이 드문 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당시만 해도 해외 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면 그것 자체로 큰 뉴스고 이슈였다. <모스크바 영화제>는 <칸>, <베니스>, 그리고 <베를린>와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큰 4대 국제영화제의 하나였다. 그러기에 24살 강수연의 여우주연상 수상은 굉장히 큰 이야깃거리였고, 그녀의 삭발 장면과 수줍어하는 인터뷰 장면 등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1966년생인 강수연은 아역 배우 출신으로 어렸을 때부터 <번개돌이>, <똘똘이의 모험> 등에 출연해 인기를 얻었다. 신드롬일 정도로 사랑을 독차지했던 것은 아니지만, 어른스럽고 착하고 심지 깊은 스타일이었다.

대개의 아역 배우 출신들이 나이가 들면서 정체성의 혼돈이랄까, 성인 배우로 정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녀는 로맨틱 청춘 스케치의 주연으로 톱을 찍는다. 1987년에는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로 국내 흥행 순위 1위를 기록한다. 하지만, 당시 청춘 스케치라는 영화가 별게 아니었다.

 


1980년대의 한국 영화계는 할리우드 영화에 밀려 비참할 정도로 관련 산업 전체가 궁색하고 보잘것없었는데, "방화를 돈 주고 보나?" "뭔가 허접하지만, 우리 영화를 우리가 봐줘야지" 또는 "나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좋은 장면 몇 개 보자는 생각으로 보자" 등의 분위기였다. 그런 중에서도 강수연이 출연한 청춘 멜로물은 그나마 인기가 있었다.

 한국 영화가 새로 탈바꿈하는 계기가 바로 강수연이 출연한 <씨받이>와 <아제 아제 바라아제>가 베니스국제영화제와 모스크바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타면 서다. 이 두 영화로 강수연은 국민 배우로 사랑이라기 보다 존경을 받았고, 카리스마와 대배우로서의 자존감 같은 것을 지니게 된다.

당시, 강수연의 국제 영화제 수상은 한국 문화 위상뿐 아니라, 국가 전체의 동력으로 이용되는 듯했다. 그전까지 "코리아가 어디 있는데, 저 배우 의외로 연기를 잘하네?"라는 분위기였다면, "코리아라는 나라가 올림픽을 개최하고 요즘 떠오른다지. 거기에서 영화를 만들었어, 어디 한번 볼까?" 이런 느낌으로 바뀐다.

1990년대에 들면서 영화계에는 제대로 공부한 감독들과 배우, 스텝들이 많이 등장한다. 강수연은 한창 일할 수 있는 젊은 나이였지만, 그들에게 원로 대접을 받게 되며 영원한 주연으로 남기를 원했다. 그렇게 1990년대를 보낸 후, 2001년에는 SBS 드라마 <여인천하>에 캐스팅되어 SBS 연기대상을 수상한다.

하지만, 그 이후 그녀의 모습을 스크린에서 볼 수 없게 된다. 대신 배우로서 보다, 다양한 활동으로 영화계를 지원했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지냈다. 그러다가 지난 5월 갑자기 향년 55세로 세상을 떠났다. 뇌출혈로 쓰러져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병원으로 후송된 후 뇌사 판정을 받은 거다.

강수연은 마치 립스틱을 짙게 바르고 당당히 자신의 외모를 뽐내는 서구적인 여인의 느낌을 지닌 <만데빌라> 같은 배우였다. 그녀를 기리며, “좋은 일이 있겠구나, 좋은 일이 있겠구나, 대단히 좋은 일이 있겠구나”를 빌어 본다. “아제 아제 바라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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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25
“입이 커서 상추쌈은 잘 먹겠다, 자장자장”

 

한국으로 시집간 딸에게서 카톡 전화가 왔다. “엄마! 나, 하엘이 학교 데려다 주는 동안에 다엘이 하고 영상 통화 좀 하고 있을 수 있어?” 아내가 “할 수는 있지만… 얼마나 걸리니?”라고 물으니 “한 10분 정도 걸려…”라고 하기에 “그러마”했다며, 지하실에서 야구 경기를 보고 있는 나를 부른다.

내가 염려가 되어 “10분 동안, 무슨 이야길 하지?”하며, “아니, 다엘이도 함께 데리고 가면 될 텐데…” 했더니, “다엘이가 열도 있고, 콧물도 흘려서 집에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서…”라고 했단다. 그렇게 다섯 살이 된 둘째 손녀와 통화가 시작됐다.

 “다엘아! 엄마가 하엘이 언니 학교에 데려다 주는 동안, 할머니하고 이야기해요.” 다섯 살, 다엘이가 또렷또렷하게, “네, 할머니! 엄마가 할머니 하고 이야기하고 있으라고 했어요. 옆에 할아버지도 있네요?” “그래, 할아버지도 같이 이야기하자”.

다엘이가 “그런데 할아버지는 왜 그렇게 늙었어요?” ‘엥, 내가 늙었다고… 할머니는 안 늙었나?’ 속으로는 섭섭했지만, “다엘이 공주님! 안녕하세요? 보고 싶었어요” “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아, 다엘이는 너무 예쁘네” 나는 손녀들과 영상 통화를 할 때면 무슨 말을 이어가야 할지 몰라, 매일 똑같은 말만 되풀이한다.

“아, 다엘이 예쁜 옷을 입었네”했더니, “네, 엄마가 어린이집 갈 때는 예쁜 옷을 입혀줘요” 아내가 “그래요, 다엘이 어린이집에 친구 많아요?” 이렇게 대화는 이어 갔고, 할머니의 물음에 손녀는 또박또박 대답을 한다.

한 5분 여가 지났을까, “할머니, 다엘이 오줌 마려워요” “아, 그래. 다엘아! 조금 있으면 엄마가 오니까, 그때까지 참을 수 있을까?” “네, 알았어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영 표정이 무척 급한 모양이다. 옆에서 보고 있던 내가 “저러다 오줌 싸면 어떻게… 그냥 가라고 하면 안 되나”라고 했더니, 아내도 걱정되었던지 “다엘아, 참기 어려우면 화장실 다녀 올래?”라고 말이 끝나자마자, 화면 앞을 떠나며 “네, 갔다가 올게요”.

잠시 후, “할머니, 화장실 불이 안 들어와요?” “왜, 불이 안 들어오지?” “내가 키가 작아서…”

아마 스위치까지 키가 안 닿는가 보다. “아, 그렇구나. 그러면 엄마가 올 때까지 참을 수 있겠어?” “네, 참을 수 있는데 옷을 많이 입어서…” “그러면 엄마가 올 때까지 참아 보자” 이런 대화가 이어지고 한 3분 정도가 지났을까, 딸이 현관문을 열려 들어오는지, 개들이 짖는 소리가 들린다.

“아, 엄마 왔다”하며 다엘이가 자리를 뜬다. 할머니의 지혜로운 물음에 답하느라, 다행히 다엘이가 생리 현상을 잊고 지나간 거다.

3년 전, 고국의 딸 집에 갔을 때다. “아빠, 하엘이 데리고 병원 갔다 올 동안 다엘이 좀 봐줄 수 있어? 하길래, 그깟 애 보는 일이야 하며, “그래, 빨리 다녀와”. 졸지에 손녀와 단둘이 됐다. 손녀는 그네에서 자고 있었는데, 엄마가 나가는 동시에 잠이 깼고 울음을 터뜨린다. ‘이런 난감한 일이 있나?’

그때부터 다엘이의 가슴을 토닥거리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자라, 자라, 자아~라, 자/ 자라, 자라, 자아~라, 자” 나름 자장가를 불렀지만, 손녀는 더욱 눈망울이 초롱초롱 해지며, 울음보가 커지며 눈물까지 쪼르르 흘린다. 나는 당황해서 “자라, 자라, 자아~라, 자”만 계속 읊어댔다.

계속 노래하다 보니, 멜로디가 찬송가 같기도 하고 상여 메고 나갈 때 소리 같기도 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간절한 주문이 통했는지, 다엘이는 울음을 그쳤고 잠시 후 다시 잠을 들었다.

 

 

아기가 태어나서 처음 듣는 소리가 엄마의 숨결과 목소리라고 한다. 그래서 아기는 엄마의 자장가를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긴장을 풀어 잠을 잔다고 한다. 자장가에는 어미의 다정한 손길과 숨결이 묻어 있다. 이런 자장가를 옛 선조들은 <아이 어르는 노래>라 했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노래를 접하기가 어렵다. 이런 전래 민요 같은 자장가는 특별한 사람들이 부르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엄마와 할머니들의 노래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잊힌 노래를 찾아 보전하는 사업을 30여 년 전 MBC에서 했다. 라디오국 최상일 피디는 전국을 다니며 잊혀가는 우리 민요를 찾아 녹음하고 직접 방송했고, 1995년에는 <한국 민요 대전>이라는 음반도 만들었다. 나도 이 음반을 이민 올 때 가지고 왔는데, 그 중 한 곡을 소개한다. 1989년에 전라남도 장흥군 장흥읍에서 찾은 <자장가>인데, 1917년생인 김정심 할머니가 부른 것이다.

 

“자장자장 자장자장 우리 아기 잘도 잔다/ 눈이 커서 잃어버린 것은 잘 찾겠다 자장자장/ 귀가 커서 말소리는 잘 듣겠다 자장자장/ 코가 커서 냄새는 잘 맡겠다 자장자장/ 입이 커서 상추쌈은 잘 먹겠다 자장자장/ 자장자장 자장자장 우리 아기 잘도 잔다”

 

이 노래는 시골의 할머니들이 부르던 노래를 조사해 채집한 것이지만, 과거의 노래로 묻어두지 말고 우리 자녀와 손주들을 위한 노래가 되었으면 싶다. 1960년대 만하더라도 아이 키우는 일은 전적으로 여성의 몫이었다. 여성은 가사 일뿐 아니라 밭일도 하고 바쁜 와중에 아이가 칭얼거리면 업어 주거나 안아 주면서 <자장가>를 들려주었다.

그래서 <자장가>는 여성들의 노동요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맞벌이 여성들도 많아지고 다양한 육아시설이 늘어나면서 여성의 부담도 줄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아이들에게 들려주던 <자장가>도 많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어느 자료를 보니 1970년대에 음악의 도시 오스트리아 빈에서 <세계 자장가 대회>를 열었다고 한다. 모차르트, 슈베르트, 브람스 등 이름만 대도 다 아는 거장 음악가들의 자장가가 성악가의 감미로운 목소리를 타고 울려 퍼졌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전문 성악가를 제치고 1등을 차지한 자장가는 다름 아닌 한국에서 온 60대 할머니의 나지막한 읊조림이었다.

자장자장 우리 아가 잘도 잔다/ 우리 아가 검둥개야 우지 마라 우리 아기 잘도 잔다…” 할머니의 웅얼웅얼 거리는 노래를 들은 아기들은 90초 만에 잠이 들었다고 한다. 할머니가 불러주던 자장가의 비밀은 무엇이었을까? 그 자장가는 뱃속에서부터 들어오던 엄마의 숨소리와 심박동 소리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가락과 노랫말이 단조로워 아기에게 편안한 잠을 안겨주었던 것이다.

우리 전래 자장가의 특징은 즉석에서 가사를 만들어 부를 수 있다는 점이다. 주변의 소소한 일상이 가사의 소재가 될 수 있다. 또한, 전래 자장가는 아기의 노래만은 아니다. 삶이 힘들고 지칠 때 위안을 주는 마음의 고향이자, 어머니 품속 같은 노래다. 자장가를 들으면 곤히 잠드는 아기의 모습이 상상되고, 심박수가 느려지며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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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8
‘성모 마리아의 금색꽃’, 매리골드(Marigold)

 

“저, …고인의 가족 되시죠? 지금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만, 이민애 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장기를 기증하셨습니다. 하지만, 가족분들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사실 우리에게는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고인은 장기 기증을 하셨지만, 그동안 암 투병을 하셔서 장기들이 거의 손상되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안구는 정상이어서 지금 필요로 하는 대기자들에게 이식할 수 있습니다. 안구는 6시간 내에 수술을 하여야만 재활이 가능합니다. 힘드시더라도 가족들이 서둘러 동의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병원에서 전화한 자원 봉사자가 말했다.

 

전화를 끊고 남편은 아이들과 엄마의 장기 기증에 대해 의논했다. 먼저 큰 딸이 “엄마 뜻에 따라야지”라며, 남동생에게 ‘네 생각도 그렇지?’라는 눈빛으로 동의를 구했다. 그렇게 고인은 안구를 기증하게 됐고, 5시간 후 병원으로부터 “기증하신 안구는 수혜자에게 성공적으로 이식을 마쳤습니다. 덕분에 수혜자가 밝은 세상을 볼 수 있게 됐습니다.”라는 연락을 받는다.

 

벌써 1년이 된 일이다. 고인은 나뿐 아니라, 아내와도 고국에서 같은 회사에 근무한, 30년 지기 친구다. 지난해, 고작 60세를 넘기고는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나 안타까웠는데 아내가 “민애 씨 1주기를 맞아 꽃이라도 전해주었으면 좋겠다”라고 해서 그녀의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그랬더니 “마침, 아내가 자주 다녔던 공원에 ‘메모리얼 벤치’를 하나 기증했다”고 한다.

“아, 그러면 그 위치를 알려 주세요” 해서 장소를 받았다. 그리고 사우회와 지인들에게 알렸더니, “그런 기념 벤치가 있으면 저도 가서 추모하고 싶어요”하는 분들이 있어서 함께 갔다. 그 벤치에 모여 고인을 위한 간단한 연도와 추모를 하고 주위의 트레일을 걸었다.

넓은 잔디밭과 호수가 보이는 곳에 메모리얼 벤치가 있어, 답답한 납골당이나 묘지를 방문하는 것보다 마음이 가볍고 기분도 좋았다. 고인은 평소에 항상 낮은 자세로 남에게 베풀며 살았는데, 마지막으로 안구까지 기증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눈을 받은 사람이 이제 밝은 세상을 볼 수 있다니 이 또한 얼마나 고귀한 일인가?

 올봄에 코스트코로 꽃모종을 사러 갔다가 ‘한 해 동안 꾸준하게 피는 가성비 좋은 꽃이 없을까’해서 이것저것 고르다가 노란 꽃이 피어 있는 <매리골드(Marigold)>를 샀다. 한판에 $12.99이고 모종이 12개, 한 개에 $1 정도 꼴이어서 얼른 구매해 화분 네 개에 나눠 심었다. 노란색 꽃이 너무 눈에 띄어서 다른 화분 사이사이에 두었더니 봄, 여름 내내 꽃봉오리를 다퉈 피며 뽐내고 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이 다른 정원을 보면, 화분에 진딧물이나 벌레가 끼어서 골치 아프다고들 하는데, 우리 정원에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인터넷으로 여러 이유를 찾다가 그 원인 비슷한 것을 찾을 수 있었다. 매리골드의 향은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냄새가 아닌, 강한 향이 난다. 이 향기는 곤충과 해충을 막아주는 기능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상징적인 꽃으로 행사장을 장식할 때 매리골드를 함께 장식해 해충의 접근을 막는다. 우연이었지만, 20여 개의 화분 사이에 이 매리골드를 둔 덕분에 정원의 침입 해충을 막은 셈이지 싶다.

매리골드는 고국에서 금잔화 또는 천수국, 만수국이라 불리는데, 국화과에 속하고 1년생 초다. 매리골드(Marigold)는 마리아(Marie)와 골드(gold)가 조합된 이름으로 ‘성모 마리아의 금색 꽃’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서양에서 마리아는 매리골드뿐만 아니라 여성들의 이름에도 많이 쓰인다. 성모 마리아를 모태로 한 여자 이름에는 Marry, Marina, Marie, Mariette, Marianne, Marianna 등이 있다.

매리골드의 원산지는 멕시코이다. 멕시코에서 매리골드는 죽은 자의 날(Dia de los Muertos)에 없어서는 안 되는 꽃이다. 멕시코의 전통에 의하면 매리골드 꽃의 강한 향기는 죽은 자의 영혼을 가족이나 친구에게로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는 믿음이 있다. 그리고 매리골드와 양초가 짝을 이룰 때 고인들의 영혼은 짧은 시간이지만 인생의 즐거움을 다시 누리게 된다고 한다.

따라서 매리골드는 멕시코에서 영혼과 같은 꽃으로 ‘헤어진 친구에게 보내는 마음’이라는 이별의 슬픔이 담겨 있다. 이 매리골드가 최근에 눈 건강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밝혀졌다.

매리골드에 눈에 좋은 루테인(Lutein)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눈 관리를 하는 사람들의 관심 대상이라 한다. 눈 노화로 점차 줄어드는 체내의 루테인 양을 회복해 준다고 하는데, 루테인은 빛을 받아들이는 중요한 부위인 황반에 보호막을 만들어 지키는 것이다.

 

나도 나이가 들며 눈이 침침 해지고 신문이나 책을 읽는 게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스마트폰을 거의 끼고 사는 요즘에는 눈이 쉽게 피곤하고 안구가 건조해져 걱정이던 참에 ‘눈에 매리골드가 좋다’는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매일 매리골드 꽃차 한잔을 마시면 좋다고 해서 “여보, 눈에 좋은 매리골드 차를 마셔 보려 한다”고 했더니, 선반에서 매리골드 차를 꺼내 보이며 “그동안 <팀 홀튼>에서 저녁 때 커피 대신에 마셨던 국화차가 매리골드였는데, 여태 모르고 있었냐?”며 핀잔을 준다.

구수한 매리골드 차를 마시며 눈을 감으니, ‘매리’, ‘마리아’, ‘골드’, ‘황금꽃’, ‘안구기증’, ‘메모리얼 벤치’, ‘죽은 자의 날’ 등의 낱말이 허공을 빙빙 돌며 뭉쳤다가 헤쳐 풀기를 반복한다. 칼럼 마감 때면 생기는 일종의 글쓰기 압박 같은 증상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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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1
제주 기생 ‘애랑’과 ‘배 비장’의 Love Story

 

전통예술공연협회가 주최하는 풍자극, ‘배비장전’이 10월 14일(금)에 토론토 Fairview public library theater에서 열린다. 배비장전의 줄거리는 제주 목사(牧使)를 따라 제주도에 가게 된 배 비장은 ‘외도를 않겠다’고 아내에게 한 약속을 지켜 여자를 멀리한다. 그러나 한번 그를 유혹해 보라는 목사의 명을 받고 그에게 접근해 온 기생 애랑에게 반해 배 비장은 깊은 사랑에 빠진다.

어느날 밤 둘이 함께 있는데, 갑자기 애랑의 남편이라는 남정네가 나타나 배 비장은 알몸으로 궤짝 속에 숨는다. 남편으로 가장한 하인이 궤짝을 바다에 버리겠다고 떠들고 목사는 관청 앞마당에 궤짝을 놓고 마치 바다에 집어던질 것 같이 쇼를 벌인다.

결국 배 비장은 알몸으로 관청 앞마당에 나와 웃음거리가 된다는 야유와 풍자가 넘치는 해학극이다. 배비장전의 주요 배역인 배비장, 애랑, 방자를 미리 만나 보았다.

 

배 비장/조성빈

배 비장 역을 맡은 조성빈은 현재 27살로 포항에서 살다가 중학교 1학년 때 이민 왔다. 2015년부터 한국일보에서 행정직으로 근무하고 있다. “연극은 평소에 하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는데, 마침 배비장전의 광고 때문에 회사에 찾아온 금국향 감독의 눈에 들어 참여하게 되었다”고 한다.

연기 경험은 없지만, ‘젊을 때 한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도전하고 있는데, “경력이 없기 때문에 제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자신 스스로도 궁금하다”며 의욕을 보이고 있다.

“평소 배우에 대한 동경은 있었지만, 여러 가지 다양한 배역으로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흥미로울 것 같다”며, “저는 원래 낯을 가리는 성격이지만, 배 비장의 캐릭터를 소화하기 위해 대본을 보고 연구하고 다른 자료들도 보고 있다”며 “좋은 웃음을 주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애랑/송보경

1995년에 중학생으로 토론토에 유학 왔다가 부모님들이 다음해에 이민 오셔서 정착했다. 2005년에 결혼해, 현재는 부동산 중개인과 에어로빅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연극 경험은 전혀 없지만, ‘애랑을 찾고 있다’고 해서 응모하게 되었다고 한다.

“누구나 한 번쯤 여주인공을 해보고 싶은 꿈을 꾸는 것 아닌가요?”하며, “대학 때 의상 전공을 했기 때문에 연극 스텝으로 도와주곤 했던 경험이 있다”고 한다. 같이 부동산 중개인을 하고 있는 남편이 육아도 도와주고 대본 연습 때 상대역을 해주는 등 적극적으로 밀어주고 있다고 자랑한다.

배비장전에 대해서는 어렸을 때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영어로 그 느낌을 전달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도 된다며, 하지만 연습을 하면서 자부심이 점점 생기고 주위에서도 많이 격려해 주셔서 용기를 내고 있다고 말한다.

“다만, 한국말이 가지고 있는 ‘찰진 맛’을 내가 표현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며 “한국 전통문화를 알리는 것 또한 나름 보람이고, 고국 문화의 위상이 점점 높아지는 것 같아 자부심을 느낀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엄마가 새로운 것을 열심히 하며 성취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도 나름 의미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며, 본인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나는 엄마다’라고 수줍게 말한다.

 

 

방자/백은미

영국에서 살다가 2020년에 토론토로 왔다. “코비드 시대여서 2년 전에 왔지만, 모든 것이 활성화되지 않아서 아직도 모두 낯선 편이다”고 한다. 원래 캐나다 영주권자이고, 영국에서는 한인 2세들을 대상으로 하는 한글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쳤다.

캐네디언인 남편은 토론토대에서 아시아 문화 관련 강의를 하고 있는데, 대만에서 서로 공부를 하다가 만났다. 24살 때 결혼했고, 아시아 문화를 좋아해서 중국, 대만, 마카오 등에서 살았다.

방자는 원래 남자 역인데 여자가 하게 되어서 흥미로웠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한다. “어떤 식으로 표현해야 할지, 남자 목소리를 내야 하나 등 고민을 많이 했는데, 차츰 캐릭터를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며, “연극은 해 본 적은 없고 한국에서 문예 창작과에서 희곡과 시를 전공했다”고 한다. 그래서 직접 연극을 하지 않았지만, 전체 돌아가는 시스템은 알고 있었기에 적응하기가 쉬웠다고 말한다.

처음에 배비장전을 들어는 봤지만,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했기에 이번을 계기로 공부를 했는데, ‘우리나라에 이런 휴먼스럽고 해학적인 문화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방자라는 캐릭터는 양반 같은 지배층도 아니고, 서민도 아닌 그런 중간 계층이어서 방자 역에 대한 고민을 하면 할수록 점점 무게를 느낀다며, “너무 양반스러워도 안되고 서민도 아닌 중간 신분이 주는 중간 역할을 적절히 보여주겠다”고 한다.

배비장전의 주요 출연자를 인터뷰하며 ‘이거 대박 나겠는데’하는 예감이 들었다. 연출을 한 금국향 감독은 “출연진의 연기뿐만 아니라, 다른 볼거리로 화려한 복장을 한 기녀들의 장구춤, 제주도의 색채를 살린 해녀 춤사위, 소리꾼의 흥타령 등이 관객들의 흥미를 더 할 것이다”며 “많이들 오셔서 봐주었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힌다.

오랜만에 한국 전통문화를 알리는 좋은 공연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벌써부터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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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4
나팔꽃 같은 내 인생

 

 고국에 있는 전 직장 동료들이 생일축하 카톡을 보내왔다. 벌써 회사를 떠난 지 10여 년이 됐고, 같이 근무할 때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다들 아시겠지만, <페이스북>을 하면 등록된 친구의 생일을 알려 준다. 이렇게 손가락 몇 번만 누르면 재미있는 캐릭터도 보내고 안부를 전할 수 있는 편한 세상이 되어 버렸다.

 “황 국장님! 어떻게 지내세요? 생일 축하합니다.” “아, 예, 잘 지내고 있습니다. 요즘은…” 여기까지 쓰고, 다음을 어떻게 써야 할까 망설여졌다. 그래도 사표 쓰고 캐나다로 이민 떠날 때는 다들 부러워했는데, ‘나 요즘 백수야! 할일 없이 아침 늦게 일어나 동네 산책하고, 집사람 눈치 보며 차려준 밥 먹고 있다’고 쓰는 건, 그나마 남아 있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 네. 요즘 취미 삼아 글도 쓰고 꽃밭,고추,깻잎 기르며 잘 지내고 있습니다”며 선비(?)노릇 하는 듯, 두루뭉실하게 썼다. 그리고 직장동료들이 안 믿을 것 같아서 키우고 있는 꽃밭 사진을 첨부로 몇 장 보냈다. 조금 있으니 “아, 나팔꽃도 있네요?” 하며 답장이 왔다. 보내준 사진을 확대해서 면밀히 살펴본 듯하다.

 지난해 지인이 준 씨앗을 봄에 모종화분에 넣어 키웠는데, 나팔꽃이 들어 있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시간이 지나 싹 모양이 제법 커지며 나팔모양이 나타나 그제야 나도 ‘나팔꽃도 있구나’ 했는데 똑같은 생각을 그 동료도 한 것이다. 7~8월이 제철인 나팔꽃은 아침 일찍 꽃이 피고 해가 들기 시작하면 시들기 시작해서 오후가 되면 꽃잎을 닫는다. 그래서 2~3일 정도 밖에 살지 못한다. 이 때문인지 나팔꽃의 꽃말은 ‘덧없는 사랑’이다.

 덩굴식물인 나팔꽃은 지지대가 있어야 자라기 때문에 가는 줄을 나무에 매달아 주었더니 잘도 타고 올라간다. 나팔꽃의 생은 비록 짧지만 슬프게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앞서 핀 꽃이 시들면 이어서 다른 꽃들이 피기 때문이다. 그렇게 피고 지고를 날씨가 추워질 때까지 하며 숨가쁘게 살아가니 매일이 새롭다.

 밤의 별과 바람과 달빛의 기운을 받아 새벽에 피는 나팔꽃은 아침의 소중함을 담아 ‘기쁜 소식’이라는 꽃말도 가지고 있는데 소낙비라도 내리면 꽃이 이내 짓물러 버린다. 그래서 물을 줄 때도 꽃에 닿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줄기도 약해서 잘 끊어져서 바람이 거세게 분 다음 날이면 여기저기 찢어져 있다. 그렇다고 그저 약하고 연약하지만은 않아서, 무엇이든 잡고 감으며 생존한다.

 지지대가 높으면 높게, 낮으면 낮은 대로 잡은 것만큼 올라가서 넉넉하게 자리를 잡는다. 그렇다고 올라갈 수 있다고 마냥 올라가지도 않는다. 바람을 이길 수 있는지, 꽃을 피울 수 있는지를 살피며 올라가서인지 오히려 땅을 향해 내려가는 줄기도 있다.

 

 

 나팔꽃 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지난 6월에 95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 국민 MC 송해 선생이다. 1927년에 태어나 코미디언으로 60여 년을 활동했다. 1988년부터 2022년까지 ’KBS 전국 노래자랑’을 34년간 진행해 온 송해는 자신의 삶을 ‘나팔꽃’에 비유하곤 했다. 아침이면 피고 저녁에는 지었다가 다시 피는 나팔꽃 같다고 생각해서다.

 그는 자신을 ‘딴따라’라 불렀다. 1955년 28세의 나이로 <창공악극단>에 들어가 단원이 됐고 1960년대 초에 방송계로 진출해 대중문화의 현장을 삶의 마지막까지 지켰다. KBS ‘가로수를 누비며’, MBC ‘웃으면 복이 와요’, ‘KBS 전국 노래자랑’ 등이 그의 대표작이다.

 송해는 1950년 12월 3일 황해도 재령에서 있었던 기억을 잊지 못한다. 그날 그곳에는 38년 만의 강추위가 몰아닥쳤고 눈발이 휘날렸으며, 어린 누이동생은 툇마루에 기대어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어머니는 눈발처럼 하얀 머릿수건을 두른 채 “얘야, 이번엔 더 조심히 해 가거라”며 당부했다. 며칠 전까지도 인민군이 징과 꽹과리 치며 내려오면 그들을 피해, 옆마을로 피해 있다가 오곤 했기에 “별 일 있겠어요, 하루이틀 있다가 올게요” 하며 집을 떠났다. 그 길이 어머니와의 영영 마지막이 되었다.

 인민군을 피해 간, 해주 바닷가에서 운좋게 미군의 보급선을 얻어 타고 연평도로 간다. 다시 해군 LST(상륙함)에서 3~4일 망망대해를 지내고 보니 부산항에 도착했다. 그때 배 위에서 ‘송해(宋海)’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그리고 무슨 줄인지도 모르고 따라갔다가 훈련소로 입대한다.

 통신병으로 육군본부에 배치받아 전쟁을 치르고 1953년 7월 27일 군사기밀 암호 전문을 예하 부대에 타전한다. “7월 27일 22시를 기해 모든 전투행위를 중단한다”라는 휴전 전문을 확인하며 동료들과 서로 부둥켜 안고 기뻐했다고 한다.

 

 

 집에 갈 수 있다고, 어머니의 동그란 얼굴을 다시 볼 수 있다고 기대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 6월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 한을 풀지 못했다. 실향민이던 그는 평생 통일과 고향을 그렸다.

 2014년 4월의 일이다. 경색된 남북관계로 인해 개성공단 잔류 인원이 귀환하는 날이었다. 마침 그날은 송해의 ‘나팔꽃 인생 60년 빅쇼’가 열리는 날이었다. 송해는 이날 공연을 취소했다. “관객 중 상당수가 실향민인데, 개성공단 철수로 남북 관계가 경색된 상황 속에서 노래하고 춤 출 수가 있겠냐”며 공연을 접은 것이다. 당시 그는 언론의 인터뷰를 피하고 침묵했다. 남북관계의 경색은 고향과 어머니로부터 더욱 멀어졌다는 상실감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2022년 1월 개최된 송해의 마지막 공연, ‘고맙습니다, 송해’ 콘서트에서 그가 직접 오프닝으로 부른 노래 ‘나팔꽃 인생’이라는 곡이 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일요일의 남자 송해 쏭/ 동서라 남북 없이 발길 닿은 대로/ 바람에 구름 가듯 떠도는/ 세월이 몇 해이던가/ 묻지 마라 내 가는 길을/ 구수한 사투리에 이 마음이 머물면/ 나팔꽃 같은 내 인생 풍악소리 드높이고/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우리 함께 노래 불러요”


 이 노래는 송해와 ‘전국 노래자랑’을 녹화하며 전국을 함께 돌아 다녔던 작곡가 신대성이 만들고 김병걸이 작사를 붙였다. 노랫말에서 보듯 그는 분단과 실향의 역사를 가슴 깊이 새기고 살았다.

 지금쯤 송해는 평생 그리워했던 어머니를 저승에서 만나, “어머니,보고 싶었어요.너무 늦게 찾아 뵈어 죄송합니다. 저도 지치고 어려울 때마다 나팔꽃을 보며 힘을 냈습니다”라고 말했을 성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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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21
백수들이 즐기는 백비탕

 

아내가 한 달째 소화도 안되고 기운이 없다. 입맛이 없다 보니 밥 먹는 것도 힘들어하고 끼니때가 되면 먹을 게 없다고 걱정이 많다. 그래도 아침에는 뜨거운 물에 밥을 말아서 신김치나 멸치볶음, 젓갈을 곁들여 조금씩 뜬다. 이 뜨거운 맹물탕을 좀 고급지게 말하면 ‘백비탕’이라 한다.

조선말 흥선 대원군이 세도가들에 밀려 지방을 떠돌았던 때다. 후일을 같이 일 할 인재를 만나기 위해 영남 지방을 지나던 중에 상주에 있는 류심춘을 만난다. 류심춘은 시골의 선비이지만, 대원군을 만나자 예의와 당당함을 잃지 않고 심오한 학문을 바탕으로 시대를 논했고, 점심때가 되어 소반에 음식을 내놓는다. 음식이란 게 보잘것없어 김치에 멀건 된장, 간장 한 종지 그리고 보리밥이 전부였다.

양반가에서는 상에 국이나 탕을 올려야 하는데, 가난한 살림에 국을 장만할 도리가 없자 맹물을 끓여 떠놓았다. 그것이 글자 그대로 그 유명한 '백비탕(白沸湯)'이다. 대원군은 류심춘의 당당함과 인간미에 반했고, 후일 그의 아들 류후조를 중용해 정승에까지 이르게 했다고 한다.

 

 

 

그 당시 대원군이나 류삼춘, 코비드로 일이 없는 나 또한 백수다. 하지만, 백수도 급수가 있다고 한다. 1급에 해당되는 백수를 <동백>이라 한다. 동네만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백수다. 2급에 해당하는 백수는 <가백>이다. 집에만 박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명 <불백>이라고도 한다. 누가 불러 줘야만 외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쌍한 백수라는 뜻으로 불백이다. 3급은 <마포불백>이다. 마누라도 포기한 불쌍한 백수다. 정말 앞이 안 보이는 백수다.

그런데 좀 나은 백수가 있다. 4급 백수인 <화백>이다. 말 그대로 화려한 백수다. 부모 덕이나, 젊었을 때 돈을 좀 챙겼기 때문에 한 주일에 두세 번 취미 활동하고 다니는 백수를 일컫는다. 그러나 그도 백수는 백수다. 이 백수들의 공통점은 별 반찬 없어도 먹을 수 있는 백비탕을 즐긴다는 것이다.

 

또 다른 백비탕 이야기다. 조선시대 명의, 허준은 신(神)과 같은 의원에게 비법을 전수받아 이름을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더욱 실력을 늘리기 위해 용한 의원을 찾아 배움을 청한다. 공부를 위해 약방은 보름 정도만 열고 보름은 닫았다. 빈 약방은 허준을 도와 약초를 써는 신참이 지키고 있었다.

나이 어린 신참 의원은 자신도 명의가 되고 싶어 했지만, 처방은 어렵고 귀동냥만 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다급하게 약방문을 두드린다. 문에 출타 중이라고 붙여 놓았음에도 너무나 시끄러워서 약초를 말리고 있던 신참 의원은 문을 연다.

“급한 일이네. 의원님은 어디 계신가?” “지금 출타 중이십니다. 내일 아침에야 돌아오십니다.” “그으래? 우리 집사람이 애를 낳으려는데 난산이네 그래. 어찌 방법이 없겠나?” 사색이 된 남자를 본 신참 의원은 고민했다. 의학이 발달하지 못한 조선조에는 산모가 애 낳다 죽는 경우도 많았다.

“알았습니다. 저도 의학을 배우니 약을 지어 드리죠.” 큰소리는 쳤지만, 신참 주제에 약을 짓는다는 것은 어림없었다. 그래도 허준의 방에 들어가 의서를 꺼냈다. 며칠 전 산통으로 찾아온 산모를 허준이 처방했는데 갈피를 끼우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찾아보니 백비탕이라는 글자가 들어온다.

‘으엥? 가미(*加味/본래의 약방문에 다른 약재를 더 넣는 것) 불수산(*佛手散/해산 전후에 쓰는 처방)이 아니었던가?’ 산통이 심한 산모에게 불수산을 처방한다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백비탕(白沸湯)이라고 하니 놀란다. 백비탕은 곽란(*식중독의 일종)이라고 부르는 급체에 좋은 약인데, 맑은 물을 여러 번 끓인 것이다. 그러나 신묘한 의술을 지닌 선생님이니 백비탕을 쓴 것으로 짐작하고 말한다.

“얼른 집에 가서 맑은 물을 끓여…” 여기까지 말하다가 ‘산모가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데 뜨거운 물 먹이라는 것이 의원답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 “냇가에 가면 모양이 둥근 차돌을 찾아 넣어 끓이세요. 우리 선생님도 그렇게 하십니다.”

산모의 남편은 그 말에 화살이 튀어 나가듯이 뛰쳐나갔다. 신참 의원은 말은 이렇게 했는데 어쩐지 찜찜하다. 그래서 다시 의서를 펴보니 가미 불수산 편에 또 한 장의 작은 쪽지가 끼어 있는 것이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어설픈 처방으로 산모와 태아를 죽게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밤새 고민하다가 아침에 산모의 집을 찾아 나서는데, 어제 왔던 남편이 커다란 굴비 한 마리를 새끼줄에 꿰어 가지고 오고 있었다. 신참 의원을 보자 남편이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정말 신통한 비법이요. 차돌을 넣어 끓인 물을 먹이니 금세 출산하지 않겠소?”하며 굴비를 건네주고 돌아갔다. 허준이 돌아오자 신참 의원은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미 불수산이 아니라 백비탕을 처방했는데 아기를 쑥 낳았다는 말이냐?” “네, 자갈을 넣은 백비탕입니다.” 신참의 말에 허준이 무릎을 쳤다. “맞다, 냇가의 자갈이라는 것이 흘러가는 물에 모서리가 깎인 돌이 아니겠느냐? 그러니 아기도 쑥 나온 것이지. 잘했다!” 이렇게 신참 의원의 엉뚱한 행동이 허준의 칭찬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백수 이야기다. 1996년에 개봉한 <정글 스토리>라는 영화가 있다. 가수 윤도현과 김창완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밴드 영화인데, 서울관객이 고작 6,621명에 그쳤다고 한다. 이 완전 망한 영화의 OST를 신해철이 불렀다. 그런데 영화는 망했는데, OST는 대박이 나서 50만장인지 팔렸다고 한다. 이 영화에 ‘백수가’라는 노래가 나온다. 1990년 중반의 백수들을 위한 노래다.

 

“방안에 앉아 혼자 불평해 봤자/물론 이 세상이 변하진 않겠지/하지만 차마 저 바깥 세상에/나 자신을 끼워 넣을 뻔뻔함이 없어/한 순간 순간마다 세상은 내게 말하지/지금 이 세상 속엔 너의 할 일은 없다고/지금 이 시간과 지금 이 공간과/지금 이 세상을 견딜 수 없어/이놈의 세상에 내가 있어야 할/내가 속해야 할 이유를 줘”

 

1996년 당시, 신해철은 세상에 대해 이것저것 잘난 체하며 중얼거렸다. “세상에서 버림받은 ‘백수’만큼이나 분명한 ‘개인’이 어디 있겠느냐”라며 사회적 책임을 부르짖는다. 청년 실업자들이 자신을 대변하는 가사에 호응한 듯하다. 벌써 30여 년이나 된 노래인데 아직도 청년들은 취직하기 어렵다.

아마, 신해철이 살아 있다면 “백수들이여, 뜨거운 백비탕 많이 드시고 바이러스 면역력을 높여 건강 유지하세요. 건강하면 좋은 기회가 꼭 옵니다.”라고 말해 주었을 텐데, 신해철의 잘난체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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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14
여보게, 무슨 근심 걱정이 그리 많나?

 

벌써 2주일 동안 비가 안 온다. 잔디들은 벌써부터 누렇게 변해가고 있고, 초조한 이웃들은 해가 지면 마당에 나와 물을 뿌려주기도 한다.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원의 야생화들은 서로 다투며 꽃을 피우려고 소리 없이 수선을 떨고 있다.

나는 가뭄 걱정보다는 비라도 오는 날이면 ‘하는 일없이 공으로 비를 받는 것’이 좋다. 이렇게 게으르고 흙 만지는 일에 취미가 없었던 나에게 아내의 친구가 “이거 한번 심어 보세요”하며 3년 전에 야생화 몇 모종을 주었다. 하지만, 정원 가꾸기가 그리 쉬운 게 아니어서, “어떤 꽃을 어디다 심을까?” 오랫동안 생각하고 심어도 식물들이 크고 나면 처음에 구상했던 그림처럼 잘 안되기 십상이다.

하물며 그렇게 주는 대로 빈자리에 꾸역꾸역 두서없이 심다 보니 여러 야생화가 뒤엉키고 부산해지고 말았다. 그나마 신기한 것은 자고 나면 싹이 나오고, 잎과 줄기가 올라오고 꽃봉오리가 생겼다 싶었는데, 꽃이 피고 서로 알아서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내가 꽃 가꾸는 일을 재미있어하는 것 같으니까, 그 다음 해에도 몇 번 모종을 뿌리 채 캐어 주었다. 야생화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는 좋은 종자가 있으면 서로 나누고 지식을 공유하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그 뒤, 다른 집에서도 꽃씨와 모종을 주었는데, 이제는 심을 곳이 없어 화분에다 꽃을 키웠다.

날씨가 점점 더워지자 야생화들이 나름대로 제각기 존재를 나타내고 서로 색깔과 향기를 뽐내며 벌과 나비를 유혹한다. 이렇게 교태를 부려 꽃가루를 내보내, 자신의 ‘후손’을 퍼트리려는 속내이지 싶다.

차츰, 정원의 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이웃집 꽃에도 자연스레 눈길이 가게 된다. 흔히 ‘옆집 잔디가 더 푸르게 보인다(The grass is greener on the other side)’는 말이 있듯이, 남의 정원은 ‘왜 이렇게 예쁜지’ 질투가 날 정도다.

길 건너 앞집에는 원추리 무리가 한창이다. 무엇인가를 기다리듯이 몸을 앞으로 구부린 채 서 있다. 원추리의 초대를 받아들인 벌들이 꽃 속으로 깊숙이 들어간다. 원추리는 백합과에 속해서 암술과 수술을 동시에 가지고 있지만, 자기 몸의 꽃가루를 다른 꽃에 주고 싶어 한다.

암술과 수술의 높낮이가 서로 다르고 교배 시기가 달라 ‘암수한몸’ 이지만 자가 수정은 원치 않는다. 사람들이 근친상간(近親相姦), 가족 사이에 성관계를 갖는 것을 멀리하듯 식물도 근친혼(inbreeding)을 피함으로써 종자의 열등화를 막는다고 한다.

그래서 벌들이 가냘픈 수술 다발을 떠밀고 나오면서 꽃가루를 흠뻑 뒤집어쓰고 나가길 원한다. 벌들은 이 꽃가루를 다른 원추리 속에 들어갈 때 수술 위에 털어놓아 수정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요놈들이 생물학에서 말하는 타화수분(他花受粉)이라는 걸 실천하는 거다.

다년생인 원추리는 넘나물이라고도 하는데, 높이는 약 1m까지 자라고 꽃은 7~8월에 핀다. 빛깔은 주황색과 붉은색, 노란색이 있다. 원추리의 중국 이름은 훤초(萱草)로 ‘근심을 잊게 하는 풀이다’라는 뜻이란다. 수필가 손광성은 “원추리는 한자어 ‘훤초’에서 발음하기 어려운 ‘ㅎ’이 변형되어 ‘원추’가 되었고, 나중에 ‘리’가 붙었다고 풀이한다.

 

원추리는 여인과 관계가 있다. 어머니가 거처하는 내당 뒤뜰에 주로 심는 꽃이다. 그래서 남의 어머니를 높여 부를 때 훤당(萱堂)이라 하는 것도 원추리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율곡의 어머니로 유명한 신사임당은 ‘조선의 어머니’를 대표한다. 남성 위주의 조선시대에 일곱 명의 자식을 두고 살면서 그림과 글을 짓고 살았으니 그녀의 삶이 녹록하지 않았을 것이라 짐작된다.

그녀는 어려서 아버지로부터 학문과 그림을 익혔다. 그의 산수화는 ‘몽유도원도’를 그린 안견의 그림을 보고 배웠다고 한다. 직접 가르침을 받을 수 없는 형편이었으니 그림을 구해 본으로 삼았다.

결혼 후, 대가족을 꾸리며 그림을 그리며 산다는 것은 고민과 번뇌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역경을 이겨낸 그녀는 조선시대 화가의 대열에 당당히 오른다. 특히 초충도(草忠圖)는 당대에 따를 자가 없었다.

율곡의 스승이기도 한 어숙권은 “신사임당은 포도 그림과 산수화가 뛰어나며, 특히 산수화는 안견에 버금갈 정도다”라고 극찬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전해지는 신사임당의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 그 가운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인 8폭 병풍의 초충도는 그녀의 대표작이다.

 

 

 4년 전에 고국에 갔을 때, 이 그림을 본 적이 있는데 꽃과 채소, 나비, 매미 등의 벌레를 정물 묘사하듯 생동감 있게 그린 것을 보고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특히 원추리를 그린 ‘원추리와 개구리’는 여성 특유의 세밀함과 서정성까지 담긴 작품이다.

세 송이의 붉은 원추리꽃 주변으로 여름에 볼 수 있는 벌레와 곤충들을 모두 초대했다. 개구리는 주위를 경계하며 튀어갈 듯한 자세이고 원추리 줄기에 붙어 있는 매미는 구성지게 노래하는 듯하다.

오른쪽에는 달팽이가 힘들게 기어 온 모습으로 숨을 고르고 있고, 왼쪽 하늘에선 붉은 나비가 벌과 함께 춤추고 있다. 오른쪽에는 흰나비가 이제 막 꽃 속으로 들어가 꽃가루를 묻히고 나올 것 같다.

찢어진 잎사귀와 꽃잎도 시들시들한 그대로다. 원추리 꽃은 하루를 넘기지 못하는 일일화여서 실제로 원추리를 자세히 보면 성한 꽃보다는 시든 꽃을 많이 보게 된다.

 당시 남존여비 시대에 신사임당은 율곡 같은 훌륭한 학자의 어머니라는 시선 속에 숨겨진 편견 같은 것이 따라다녔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이 주로 그렸던 ‘초충도’를 당당하게 조선시대 회화의 한 장르로 올려놓은 것은 여러 의미를 갖는다.

오래 전부터 신사임당은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으로 활동하고 있다. 오만 원권 지폐에서 그의 모습과 그가 그린 그림들이 사용되고 있고, 여성이 지폐 도안에 들어간 것도 처음 있는 일이라 더욱 뜻 깊다.

조선 초기 생육신의 한 사람인 김시습(1435~1493)의 원추리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천재 시인으로 5세 때 이미 <중용>과 <대학>을 익혔다고 해서 세종이 친히 그를 불러 시를 짓게 했을 정도로 어렸을 때부터 총명했다.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했다는 소식을 듣고 보던 책을 모두 불사른 뒤 방랑생활을 한다. 양녕대군이 그의 재주가 아까워 세조에게 천거했으나, 벼슬자리를 모두 거부했다. 전국을 유랑하며 많은 시를 남겼는데, 그 중에 훤화(萱花/원추리)라는 시가 있다.

“해 길어진 정원에 달리 할 일 없어/ 한 쌍의 고니 부리 인양 사람 향해 벌려 있네/ 저것이 분명 시름을 잊게 하는 것인 줄 알겠거니/ 봄바람에 복사꽃 오얏꽃 다투지 않는구나”

원추리가 피는 시기는 낮이 가장 긴 한여름이고, 아무리 하루밖에 피지 못하지만 그 시간은 길다면 길다. 고니 부리를 닮은 원추리 꽃은 사람을 향해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하다. 김시습은 보잘것없는 ‘원추리’를 보고도 세상을 읽었다.

“여보게, 무슨 근심 걱정이 그리 많나, 세상 걱정하지 말고 쉬엄쉬엄 살게나”라고 말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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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anghyuns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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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07
오크 리지(Oak Ridges) ‘비밀의 연못’에서 만난 수련

 

고국의 동네 뒷산에는 약수터 하나쯤은 으레 있었다. 그곳에 하얀 물통을 들고 운동 겸 휴식 삼아 산책하는 것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여가 활동이다. 어느 지역이든지 고개를 돌리면 주위에 산들이 있어 등산하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주말에 북한산이나 도봉산 등의 이름 있는 산 근처에 가면 형형색색으로 중무장한 등산객을 쉽게 볼 수 있다.

 

아무리 국토의 70%가 산이라지만, 등산을 이렇게 좋아하는 까닭이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2019년에 한국리서치에서 조사한 결과 성인 3~4명 중 한 명이 한 달에 1번 이상 산을 찾는다고 한다.

 

등산의 매력은 무엇보다 일상을 벗어나 자연을 온전히 만끽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함께 간 사람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기도 한다. 물론 혼자서 즐겨도 좋다. 요즘 같은 코비드 시대에는 다양한 활동이 제약되면서 야외에서 하는 안전한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이곳 토론토에는 한국에 비해 등산할 만한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등산할 산이 없지는 않다. 나이아가라 폭포부터 오언사운드(Owen Sound)를 지나 브루스반도(Bruce Peninsula)까지 800km 정도 이어진 산행 코스가 있다.

 

물론 한국 산처럼 정상에 올라 ‘야호’하고 외치며 멀리 산 아래를 굽어보거나 능선을 따라 장엄하게 펼쳐진 아스라한 풍경은 없지만 말이다. 일반적으로 브루스트레일(Bruce Trail)이라 불리는 이 코스는 잘 알려진 곳이 아니기 때문에 초보자는 산행 경험이 있는 리더들의 안내가 필요하다.

 

하지만, 나처럼 토론토 북쪽 리치먼드힐(Richmond Hill)에 살면서 산악회를 쫓아 브루스트레일까지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등산을 하고 싶을 때는 동네 북쪽에 있는 오크리지(Oak Ridges)라는 트레일을 자주 간다. 토론토 북부지역 경계인, 스틸스(Steeles Ave.)에서 베이뷰(Bayview Ave.) 길을 따라 북쪽으로 20여 킬로미터 올라가면 윌콕스(Wilcox) 호수가 나온다. 그 호수 남쪽으로 오크리지 트레일이 펼쳐있다.

 

일반적으로 베더스트그랜골프장(Bathurst Glan Golf Course)에서 동쪽으로 영스트리트(Yonge St.)과 스토우프빌(Stouffville Rd.) 지점을 거쳐, 레슬리(Leslie St.)까지 20km 거리를 말하는데 편도로 약 1시간 40분 정도 걸린다.

 

이 트레일은 175헥타르가 넘는 무성한 숲과 습지, 초원 그리고 호수로 이루어져 있다. 호수와 습지에는 도롱뇽, 두꺼비, 개구리와 거북이, 뱀, 각종 새들이 서식하고 여우, 다람쥐, 토끼 같은 포유동물도 볼 수 있다.

 

이 코스의 매력 중에 하나는 호수를 한 바퀴 도는 것이다. 그 중, 영스트리트 동쪽에 있는 본드레이크(Bond Lake) 산책로를 걷는 코스는 아름다운 풍경이 알려져 있어, 데이트하는 연인들과 가족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무더운 여름에는 수영도 할 수 있고 낚시를 하기도 하지만, 호수 물은 그리 깨끗하지 않다.

 

지난주에는 혼자 오크리지를 걷다가 날씨가 너무 더워서 정규 트레일을 벗어나 숲 속으로 들어갔다. 평소에 다니던 길이 아니었지만, ‘무조건 동쪽으로 가다 보면 주차해 놓은 레슬리(Lesiles St)가 나오겠지’하며 가다가 그만 길을 잃어버렸다.

 

‘이곳은 개인 소유지’라는 팻말을 보았지만, 돌아가면 더 헤맬 것 같아서 계속 갔다. 한 15분 정도를 들어갔을까, 갑자기 새소리도 커지고 뭔가 환한 느낌을 받았다. 자그마한 호수가 나타났고 그 건너편으로 주택이 보였다. ‘여차하면 저곳으로 가면 되겠지’하는 생각을 했다.

 

 

그 호수에는 아름다운 연꽃과 수련이 가득 피어 있었고, 백조가 한가롭게 노닐고 있었다. 마치 ‘비밀의 연못’에 혼자 초대된 느낌이었다. 왠지 낯설지 않은 풍경인데, ‘어디서 이런 풍경을 보았지’ 생각하던 중에 우연히 나가는 표지를 찾게 되었다. 주위가 습지여서인지 이름 모를 풀들도 무성했고, 모기와 벌레들이 많아 서둘러 돌아 나왔다.

다행히 주차장을 찾아 차 안에서 물 한잔을 마시며 조금 전 호수의 풍경을 떠올렸다. “아, 이제 생각났다. 모네의 그림 ‘수련’에서 본 풍경이다”. 7년 전에 여행사의 패키지 프로그램으로 워싱턴 관광을 갔을 때, 가이드가 <워싱턴국립미술관>에 내려 주면서 “지금부터 2시간 뒤에 이곳에 다시 모이세요”라고 했었다.

이 큰 미술관을 2시간에 보라니… 서둘러 미술관에 들어갔는데, 어떤 그림 앞에 유난히 많은 사람들이 있어서, ‘뭐지?’하며 호기심 있게 보았던 그림이 바로 모네의 ‘수련’이었다. 워싱턴까지 힘들게 왔는데 교과서에서나 보았던 그 유명한 ‘수련’을 보다니, ‘본전은 건진 셈이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화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는 수십 년간 빛의 흐름과 변화를 끈질기게 관찰한 후유증으로 72세 때, 심각한 백내장 진단을 받는다. 하지만 자칫 시력을 잃어 더는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될까 봐, 83세가 돼서야 수술을 받았을 정도로 창작을 향한 그의 열정은 초인적이었다.

 모네가 그린 ‘수련’ 작품들은 자연광선인 빛의 미묘한 변화에 따라 시시각각 색깔이 다르게 보이는 인상주의 그림의 특징을 완벽하게 구현한 걸작 중의 걸작으로 평가된다. ‘수련’ 연작 작업을 위해 손수 정원을 가꾸고 연못과 화초 관리에 모든 것을 바친 모네는 수련을 사랑한 화가이면서 일류 정원사였다.

 

 

 모네는 거의 30년을 ‘수련’ 연작에 매달렸다. 1897년 무렵부터 1926년 죽을 때까지 오직 ‘수련’을 주제로 신출귀몰한 빛의 실체를 관찰하고 분석하고 연구했다. 그가 평생 남긴 ‘수련’ 연작은 모두 250여 점으로 추정된다.

수련은 뿌리와 줄기는 물 밑에서 자라고, 잎은 물 위에 떠 있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특이한 것은 수련 꽃잎은 아침에 피었다가 해질 무렵에 진다는 점이다. 수련은 6월부터 7월 사이에 꽃이 피고, 연꽃은 7월부터 8월 사이가 절정인데, 이 둘을 구별하는 방법이 있다. 수련은 잎과 꽃이 물 위에 둥둥 뜬 것이고, 연꽃은 물 위에 줄기가 뻗어 잎과 꽃이 수면보다 높이 솟는다.

길을 잃은 덕분에 엉뚱한 곳, ‘비밀의 연못’에서 아름다운 수련을 보았다. 그 호수 이름이 뭘까 싶어 구글에 찾아보았더니, 그 옆 호수 이름만 스완 레이크(Swan Lake)라고 나왔다. 혹시 그 수련을 보고 싶어 다시 찾아 가더라도 그 곳은 개인 땅이니 들어가면 안 된다. 하지만, 굳이 그 연못이 아니더라도 토론토 근교의 작은 호수 등에서 수련을 만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니, 그리 아쉬워할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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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30
낙동강 강바람이 ‘양귀비’를 스치면…

 

아내가 친구 집에 갔다가 양귀비꽃 한 다발을 얻어 왔다. 꽃잎이 떨어지고 씨방이 생긴 것인데, 친구가 “아직 여물기전이니 잘 말려서 씨앗을 받아라”며, 잔털이 많은 꽃대는 씨를 받은 후에 끓여 먹으라고 했단다.

“끓여 먹으면 뭐에 좋은데?”하고 물으니 “나도 모르지”라고 한다. 하긴 양귀비는 그래도 아편을 만드는 건데, 끓인 물에 몽롱한 성분이라도 있겠지 싶어 기대된다. 혹시 이거 먹고 잡혀가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공짜라면 양잿물도 먹는다는데’ 일단 먹어 봐야지…

몇 년 전에도 양귀비 씨앗을 정원에 심은 적이 있는데, ‘예쁜 값’을 하는지 까탈스럽게 새싹만 피우다가 녹아 없어지고 말았다. 꽃 가꾸기도 사실 요령과 전문 지식이 필요한데 무작정 땅에다 심고 물만 주었으니 낭패를 본 것이다.

 양귀비 파종 시기를 찾아보니, 가을에 심어 이듬해 봄에 꽃을 보는 것이 안정적이라 한다. 추운 지역에서는 3월에 심는 것도 가능한데, 땅에 직접 심지 말고 화분에 키워 봄에 아주 심기를 하는 것을 권한다고 하니, 그동안 뻘짓만 한 셈이다.

며칠 전, 고국의 TV 프로그램에서 진풍경을 보았는데, 경상남도 함안군에 있는 <처녀 뱃사공 노을길>을 찍은 영상이다. 남강과 함안천이 합류하는 악양둑방길 이었는데, 2.7km 길이의 둔치와 둑길에 꽃양귀비를 심어 관광 코스로 개발했다. 새벽녘 물안개나 해질녘 노을이 더해지면 이채로운 풍경을 자아낸다.

이 악양의 양귀비꽃 길은 ‘함안 9경’에 속한다. 저렇게 양귀비를 심어도 되나 싶었는데, 아편 만들 때 쓰는 씨방은 생기지 않는 관상용 꽃양귀비라고 한단다. 5월부터 7월 초순까지 핀다고 하니, 요즘이 딱 제철이다.

함안천 건너편에 악양루라는 정자가 있고, 그 옆 고개 중턱에 <처녀 뱃사공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낙동강 강바람이 치마폭을 스치면/ 군인간 오라버니 소식이 오네/ 큰애기 사공이면 누가 뭐라나/ 늙으신 부모님을 내가 모시고/ 에 헤야 데 헤야 노를 저어라/ 삿대를 저어라”

 

이 ‘처녀 뱃사공’은 1959년에 윤부길이 노랫말을 쓰고 한복남이 곡을 붙였다. 처음 이 노래를 부른 가수는 황정자이지만, 배우 김자옥의 남편인 오승근이 불러 널리 알려지며 국민 애창가요가 된다. 작사가 윤부길은 충청남도 보령 출신으로 <부길부길 유랑극단>의 단장을 지냈다. 그는 가수 윤복희와 윤항기의 아버지다.

6.25 전쟁이 막 끝난 1953년 9월에 함안에서 공연을 끝내고 강 건너로 가던 중, 악양나루를 지나게 된다. 악양나루는 낙동강의 큰 지류인 남강과 함안천이 만나는 지점이다. 그곳에서 군에 입대한 후 소식이 끊긴 오빠를 기다리며 그를 대신해 노를 저어주던 20대의 처녀 뱃사공을 만난다. 그녀는 늙은 홀어머니와 어린 동생을 보살피며 뱃사공 일을 하고 있었다.

이 사연을 들은 윤부길은 ‘처녀 뱃사공’을 작사하게 된다. ‘처녀 뱃사공’과 ‘양귀비’를 짝지어 평범한 둑길을 관광 상품으로 개발한 것은 멋진 아이디어다.

 

고향이 함경북도 회령인 어머니는 일제 강점기에 부모님을 따라 연변 왕청현 하마탕이라는 곳에서 살았다. 왕청은 흑룡강성하고도 산으로 맞닿아 있다. 어린 시절, 왕청에는 항일 빨치산의 근거지가 있을 정도로 오지였는데, 하마탕은 왕청에서도 한참 더 들어간 곳이다.

수시로 나타나는 비적들 때문에 조선인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는 높은 담을 성처럼 쌓고 그 안에서 양귀비를 재배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당시 변변한 약도 없을 때이어서 양귀비에서 추출한 아편은 감기나 두통, 배탈이 나거나 할 때 먹었을 정도로 ‘만병 통치 상비약’ 이었다고 한다. 양귀비로 술도 담가 먹고 국수나 빵 같은 음식에도 씨를 넣어 먹었다는 기록도 있다.

어머니는 “양귀비는 한마디로 예쁘다”고 했다. “깊고 진한 빨강은 양귀비가 아니면 내기 어려운 검붉은 색이었다”고 한다. 지천에 양귀비가 깔려 있는데, 멍하니 쳐다보고 있으면 정신이 몽롱해졌다고 했다. 내 생각에는 아마 아편 성분 때문이 아니라 강렬한 색깔 때문인 듯하다. 양귀비는 붉은색, 자주색, 노란색, 흰색, 주홍색 등이 있는데, 주종은 역시 붉은색이다.

 

 

캐나다에서는 현충일(Remembrance Day)에 양귀비꽃을 가슴에 단다. 1921년부터 현충일을 기념하기 위해 양귀비꽃을 사용했으니 벌써 101년이나 됐다.

온타리오 구엘프 출신의 중령인 존 맥크래(John McCrae)는 1차 세계대전 중에 의무 장교로 복무했다. 그는 1915년 5월 동료 군인이 전사한 후, 한 편의 시를 썼다. ‘플랑드르 들판에서(In Flanders Fields)’라는 이 시는 캐나다에서 양귀비를 추모의 상징으로 사용하도록 영감을 주었다. 이 유명한 시에서 양귀비꽃이 언급된다. 시에서도 등장하듯 잔해 속의 석회는 양귀비의 비료 역할을 했다. 이 때문에 유럽, 특히 석회질이 풍부한 토양인 프랑스, 벨기에와 같은 국가에서 이 꽃은 널리 자란다.

 

“플랑드르 들판에 양귀비꽃 피었네/ 줄줄이 서있는 십자가들 사이에/ 그 십자가는 우리가 누운 곳 알려주기 위함/ 그리고 하늘에는 종달새 힘차게 노래하며 날아오르건만/ 밑에 요란한 총소리 있어 그 노래 잘 들리지는 않네.”

 

‘플랑드르 들판에서’라는 시에서 영감을 얻은 안나 게린(Anna Guerin)이라는 여성은 <캐나다왕립군단(Royal Canadian Legion)>의 전신인 <참전용사협회>를 설득해 양귀비를 추모의 상징으로 채택하게 했다.

그녀는 1차 세계 대전으로 파괴된 프랑스 일부를 재건하기 위해 자선 단체를 설립하는데, 천으로 양귀비를 만들어 재향 군인과 전쟁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돕기 위해 그것을 판매한다. 그 아이디어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양귀비 씨앗은 채송화 씨앗이나 모래알보다도 작은데, 그 속에 예쁜 생명이 숨어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도도하면서도 화려한, 선명하고 요염한 꽃잎은 바람이 불면 휘어지며, 그 색을 더욱 도드라지게 한다. 살랑살랑 유혹하니 시선을 녹이고 만다. “양귀비는 한마디로 예쁘다”는 어머니의 표현이 딱 맞는 말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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