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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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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완 딸라’와 ‘오, 대니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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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섬 발리, 마지막 날

"완 딸라!" "완 딸라!"
 우리를 태운 버스가 킨타마니(Kintamani)산 골짜기의 한 마을에 닿자, 깊은 산속의 정적을 깨며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차창 밖엔 가무잡잡한 얼굴에 하얀 이가 반짝이는 숲 속의 요정들이, 어른 아이 할것 없이 손에 뭔가를 들고 흔들어 대며 외치는 소리였다.

 


 "완 딸라?"하고 머리를 갸웃하며 미스터 아궁을 쳐다보자 그는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설명한다. ‘완 딸라’는 말 그대로 미화 1불인데 그들이 손에 들고 있는 물건 값을 말하는 것이란다.
 그렇다면 어린 소년이 흔들어대는 그림엽서로부터 아낙네들이 머리에 이고 지고 온 저 바티크 옷감도 1불밖에 안 하느냐고 물었더니, 아궁은 또 한 번 깔깔거리고 웃더니 말했다.
 "완 딸라 라고 부를 만큼 값이 싼 물건이라고요" 한다. 우리말로는 "백 원이요, 백 원! 싸구료! 싸구려!"가 되겠구나 생각했다.

 


 이 장터는 사흘에 한 번 열린다고 한다. 목각으로 만든 토속품과 바티크 섬유로 짠 울긋불긋한 옷감과 식탁보가 여기저기 보인다.
 하얀 순면 바티크 위에 양초를 녹이며 여러 가지 도안을 그린 다음 염색을 한다. 그런 다음 촛농을 모두 떼어내면, 묘하고 아름다운 무늬가 든 한 폭의 그림이 완성된다. 세탁 후 다림질이 필요 없고, 한없이 질기다. 
식탁보를 반으로 접어 목을 내밀 만큼 원형을 오려내고 양팔이 빠져나올 길이를 남기고 박음질해버리면, 하와이의 무무 같이 길고 간편한 여성의 여름옷이 된다. 다른 옷감은 더워서 입을 수 없게 시원하고 아름다운 옷! 나도 두벌을 사서 딸의 무무도 만들어주어 시원하게 입고 있다.
 차창 밖의 아낙네들과 소녀들은 여러 개의 바티크를 조그맣게 접어 똬리처럼 머리에 얹고 다니거나 어깨 위에 길게 걸치고 있다가, 관광객이 지나가면 손님 어깨 위에 철석 걸쳐주며 “완 딸라!”를 외친다. 
밥 먹는 시간만 빼고 줄곧 쫓아다니는 그들이 귀찮기보다는 신기해서 사 주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산장 같이 큰 식당 벽돌 담 위에 어떤 남자가 걸터앉아 목각상을 말없이 내밀고 앉아 있고, 그 옆에 부인인 듯한 여인이 바티크를 들고 목청이 터져라 “완 딸라!”를 외치고 있다. 
이곳 아내들은 혀 빠지게 일하고, 남편들은 뽕 빠지게 닭쌈 구경을 다닌다고 아궁이 말했는데, 그런 남자들보다는 벽돌담 위에서 무사의 목각을 팔려고 앉아있는 조용한 남자가 훨씬 건전해보인다. 비록 입을 굳게 다물고, 아내가 옆에서 “완 딸라!” 소리쳐서 관객을 모으면, "내 것두 사려!"하고(그나마 속엣말로) 중얼거리며 해질녘까지 앉아 있을망정.

 


 남자 손님들은 엽서나 목걸이를 한 아름 사야 차에 오를 수 있었고, 여성들은 색색의 바티크를 목에 두르고서야 차에 올랐다. 값도 그리 비싸지 않았고 무엇보다 그들의 순박한 몸짓과 응석이 완 딸라 더 주어도 아깝지 않았다. 아마도 가짜 물건이 없다는 게 더 사주고 싶은 마음이 내켰는지도 모른다.
 어디를 가나 눈앞에 나타나는 푸른 그림자 같은 아궁산에 지는 해가 신전을 검게 물들일 즈음 우리는 산에서 내려왔다. 어머니의 젖내음 같은 짙은 향토의 내음이 가는 곳마다 풍겨나는 곳, 자연과 인간의 삶 자체가 예술로 승화된 동남아시아의 한 외딴 섬 발리. 그들은 이 아름다운 섬을 만든 신을 알고 있었고, 자연을 사랑할 줄 아는 예술인마을 사람들이었다.

 


 한 교회 울타리에서 자란 우리 일행 일곱 부부가 만든 첫 해외나들이! 언제쯤 마음의 고향 같은 이 섬에 또 와볼 수 있을까, 생각에 잠겨 있는데, 갑자기 "오, 대니 보오이?" 하는 노랫가락에 요란한 기타 튕기는 소리가 내 귀를 찢는 듯이 울려왔다. 우리는 바닷가의 오두막집 호텔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찻집에 앉아있었고, 그들은 그 찻집에서 노래하는 밴드 청년들이었다.
 나는 그들이 그리워 부르는 대니 보이는 아니었지만, 함께 흥얼거리며 노래를 따라하자 그들은 신이 나서 다섯 곡을 더 불렀다. 우리를 서울에서 이 먼 곳까지 안내해 준 뉴코리아관광의 이 사장님마저 넋을 잃고 합세하자, 남편은 내 카메라를 집어들고 일어나 즐거운 추억을 한 컷 만들어주었다. 밤은 깊어가고, 내일의 여정을 생각하며 우리는 방으로 돌아왔다. 
 까맣게 잠든 밤바다여 안녕! 신비스런 아궁산이여, 그리고 미스터 아궁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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