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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환의 생활경제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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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합중국의 건국 국부들(21)-토마스 제퍼슨(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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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비명에 새긴 업적(1826 )

 편지로 오랜 친분을 맺었던 제퍼슨과 애덤스는 1826년 7월 4일 미독립 50주년기념일에 몇시간 차이로 세상을 달리했다. 신생 미합중국을 이끌어가며  상대방의 정책을 끊임없이 신랄하게 반대했던   그들은 14년간 가장 친밀한 우정을 쌓으며 정치철학을 논하고 서로를 존경하였다.

 제퍼슨은 그의 사망날짜를 미 독립 40주년까지 기다리며 7월 4일 오후 1시반 76세로 세상을 달리하며 마지막 한말은 “ 오늘이 독립기념일인가 “ 라는 애국심의 집착이었다. 몇시간후 애덤스가 오후 5시 90세의 생을 마감하며 마지막 한 말은 “ 제퍼슨은 살아있나“라는 질문이었다. 본인은 없어도 같이 독립선언서를 작성한 제퍼슨이라도 살기를 원한 애국심의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본부인  말싸  웨일스 스켈튼(1748-1782)과 1772년 결혼한지 10년만에  부인을 잃은  제퍼슨은 44년간 독신으로 살면서 부인의 머리카락을 목거리 장신구에 간직하고 있었다. 말싸의 조기사망은 원래  당뇨로 약질인 체구에 10년간  자녀를 여섯이나 낳아 지병이 악화된 이유였다.  

 제퍼슨의 시신은 부인과 같은 먼티첼로 제퍼슨 가족묘지에 안장되었다. 그의묘비에는 그의 유언대로  ‘ 독립선언서의 저자, 버지니아주민을 위한  종교의 자유 선구자, 버지니아주립대학 설립자 토마스 제퍼슨’이라고 새겼다.

 

제퍼슨 최대의 유산 루이지애너 토지(1826 )

 제퍼슨은 사망시 10만 달러의  큰 개인 빚을 가족에게 남겼다. 그러나 미국 국민들에게는 미국의 국토를 두배로 늘리는 유산을 남겼다.  

 

루이지애너 매입(Louisiana Purchase 1803)

 케블리에  프랑스 탐험가는 1682년 미시시피강 남부 뉴올리언스 항구를 기점으로  거대한 북쪽 지역을 식민지화하여 루이 14세의 이름을 따서 루이지에너로 명명하고 미 남부지역의 무역항구로 프랑스의 경제발전을 이르키는데  공헌하였다. 프랑스와 영국간에 벌어진 미 신대륙 점령전쟁에서 불리하게 된 프랑스는 1763년 루이지에너지역을 스페인에게 양보하고 인도점령을 위한  7년 전쟁으로 전장을 옮겨야 했다.

 

 

 1800년 프랑스 나폴레온은 스페인 왕궁과  비밀리에 루이지에너 지역을 프랑스로  환수하는  조약을 맺고 하이티에서 설탕과 커피를 생산하여 뉴올리언스 항구를 통해 미 신대륙에 수출하는 사업을 계획했다. 그러나 하이티 반란군과 황열병으로 무참히 패한 나폴레온군은 유럽에서 영국과의 전쟁에 총력을 기울여야 했다.

 이 사실을 분석 연구한 제퍼슨은  프랑스나 영국의 재침략을 우려하여 1802년 메디슨과 리빙스턴을 프랑스에 보내 친불정책을 강조하며 나폴레온과 루이지에너 지역 매입을 흥정하는  정책을 도모했다.

 1803년 초 그들은 10만 평방킬로미터의 뉴올리언스 근접 북쪽지역을 1천만 달러에 오퍼를 냈다.  전쟁 군비가 절박한 나폴레온은 동년 4월 북쪽 캐나다 일부까지 포함하여 214만 4,500 평방킬로미터(한반도약10배 )의 광대한 토지를 1,500만 달러에 카운터 오퍼를 냈다.

 제퍼슨은 7월3일 카운터 오퍼 소식을 받은 후 연방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10월 20일  미 연방상원을 설득하여 24대 7 표결로 나폴레온의 카운터 오퍼를 받아들였다.

 미국 토지만큼 큰 토지를 구입하려면  헌법을 고쳐야 한다는 탁상공론자들에게 침략전쟁이 아닌 정상적인 상업은 위헌이 아니라고 일축하고 영국과의 분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연방당에게는 영불 두 나라와 전쟁을 하는 것 보다는 영국 한 나라와 전쟁하는 것이 미국에 유리할 수 있다고 응수했다.

 11월 30일 프랑스는 스페인으로 부터 루이지에너 지역을 환수하는 계약을 끝냈고 12월 20일 뉴올리언스에서 미국은 프랑스로부터 매입계약을 마감했다. 실제로 나폴레온은  급하게  1,125만 달러를 받고 375만 달러를 덜 받았다. 이 토지는 529,911,680 에이커로 1에커당 2.1센트의 가격이었다.   

 제퍼슨은 등록된 토지를 구입한 것이 아니고 미개척지에 거주하는 아메리칸 인디안 부족들과 흥정을 하든지 무력으로 그들을 몰아내고 서부개척을 할 수 있는 권리를 구입한 것이었다. 즉  타유럽제국들의 신대륙 침공을 제어하는 계약이었다.

 제퍼슨의 루이지에너 매입은 유럽에서 이민온 정착민들에게 노력해서 얻은 토지소유권을 가질 수 있는 민주경제를 활성화시켰다. 서부개척은 신이 내린 우리의 운명(Manifest Destiny)이라는 개척정신을 일으켜 루이지에너 매입 45년 후 미 합중국은 1848년 캘리포니아를 접수하게 되었고   현재 세계를 이끌어나갈 수 있는 경제력을 키우게 하였다.

 제퍼슨은 워싱턴의 독립 과업을 방대한 토지매입으로 계승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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