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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아침의 나라
yeodongwon

 

 우리 한국인을 일러 빨리빨리 급행 문화민족이라 한다든가? 중동에 진출한 한국인의 일 해치우는 속도감에 감탄해서 현지인들이 붙여준 애칭 같은데 내겐 칭찬으로 들리지 않고 씁쓸한 느낌만 든다. 
 차분하고 침착하다 라는 말은 듣고 싶은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라, 덤비고 거칠다 라는 히죽거림으로 들린다. '시작이 반'이라며 삽질부터 해놓고 보자는 식의 민족이라는 말로 해석될 수도 있다.


 어쩌면 그런 민족으로 보일는지 모른다. 생각에 앞서 행위가 먼저 되고, 순리(順理)에 따르기보다 무리(無理)에 힘이 실리고, 과정을 무시한 채 목적에만 관심이 가 있어 순서의 절차 따윈 성공의 걸림돌이라 귀찮아한다.
 '티끌 모아 태산'은 흘러 듣고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라는 말에 귀가 밝다. 쳐다보기 보다는 내리 보기를 좋아하고 우러러 보기를 더디게 하며 깔보기를 쉽게 한다.


 그리고 우리는 냉철한 머리보다는 끓는 가슴을 가진 지극히 정적(情的)이라 쉬 흥분하다. 그래서 구름잡기 식에 능하며, 냉철한 사고에 서툴고, 화끈하고 담백한 가슴 충만 들뜬 열정에 넋을 잃는다. 천리 길을 한걸음부터는 못난 놈 몫으로 돌리고 붕 떠서 구름 타고 가야 성공이라며 박수 친다.


 꼬리 없는 멀리가 없는데도 꼬리 따윈 없는 것으로 간주해 버리며 꼴찌 없는 1등이 없는데도 1등만이 사람 취급이다. 1등이 둘이면 그건 벌써 1등이 아니다. 1등 3등 꼴찌가 있으니 1등이 있는 것, 2등도 꼴찌가 없는 경주는 저 혼자 뛰고 있는 달밤에 체조식인데 말이다.


 나는 너라는 이웃 없인 한순간도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임에도 나만이 일등, 일류, 최고, 성공이면 되는 성취욕을 즐기는 이기주의적 삶에 익숙해지기를 자초하고 있는 그런 사회는 어수선하고 불안함을 피할 수가 없다.
 일등도 꼴찌도 같은 사람인데 일등만이 사람취급의 사회라면 나머지는 일등의 시다바리(보조자라는 일본어)를 자초하지 않는 한 불만은 해소될 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불만지수가 세계에서 제일 높게 나온다는 통계는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남이, 이웃이 고려되지 않는 이기주의적 사회에서는 부패는 불 보듯 하고, 내 아이 일등, 일류 만들기에 온 신경이 가 있는 사회에 공교육은 사교육의 종노릇에 교육정책은 백계가 무책일 수밖에 없게 된다.
 임기 5년에 다 해치우겠다 성급히 서둘고, 안 된다 무리지어 길을 메워 날밤을 지새며 소리 높이니 무정부가 따로 없어 보인다. 
 민주선거로 당선시켜준 바로 그 손으로 돌아서서 곧바로 민심이 천심이라며 민주를 외치며 촛불 들고 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 꼭 그래야만 하는지? 선거는 왜 하는지? 멀리서 지켜보는 내 마음이 무겁고 안타깝다.


 선거는 왜 하며 임기는 왜 있는가? 50년 캐나다에서 배운 선거란 찬, 반, 중립, 표 권리행사 그 자체가 승복까지를 의미하며, 임기를 보장해주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태평천국을 만들 성군을 뽑을 수도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전제 하에 임기로 못을 박아 사법과 국회가 감시 감독을 하게 하는 것으로 나는 알고 있다.


 핀란드 스위스 캐나다처럼 반듯하게 살림을 살고 있는 소위 선진국이라 하는 나라들을 닮은 조용한 친정 조국이고 싶은데 들리는 소식들마다 어수선하기만 하니, 밝은 소식은 언제 오려나?


요란, 광란, 화끈함, 파이팅(영어권에서는 잘 안 쓰는)을 주먹 들고 연신 외치는 불같은 나라. 입에 가득 쑤셔 넣고 소주까지 곁들여 엄지를 치켜 올리며 "죽인다! 끝내준다!" 소리 지르며 먹는 모습.
 아무리 살펴봐도 '조용한 아침의 나라'는 아닌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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