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 오늘 방문자 수: 44 전체: 98,827 )
반도의 눈물사(史)
yeodongwon


 아마존의 눈물, 아프리카의 눈물, 북극의 눈물, 남극의 눈물 등 MBC TV 눈물 시리즈를 관심있게 봤다. 이 자연환경 시리즈물과는 다른 의미의 역사적 한반도의 눈물사(史)는 100년 넘게 세계뉴스로 요동치고 있다. 이 끝이 보이지 않는 반도의 눈물사에 쓰린 내 마음은 천근 무게로 무겁다.


 일제 강점기로 시작된 반도의 눈물사(史)가 해방으로 끝나는가 했는데 엉뚱하게 느닷없이 그 허리가 잘리면서 70년을 넘기며 지금은 종주국도 망해버린 공산혁명이라는 바래버린 깃발로 인민을 굶기면서까지 한 손에 원자탄을 들고 연신 남쪽 불바다를 외치고 있는 섬뜩한 소리에 나는 울고 싶도록 슬프고 세계에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다.


 이 만화같은 실화 시리즈가 2천 년 전 청동기 시대도 아닌 21세기 오늘의 조국 반도땅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게 슬프고 분하고 억울하다. 그 원흉은 이웃나라 일본인데 그들은 미안해하기는커녕 되레 부추기는 듯하니 더 밉다. 전후 일본의 부흥은 우리의 6.25 비극의 덕이라 하니 참으로 아이러니다.


 남북이 갈라져야 할, 그래서 싸워야 할 이유를 나는 도대체 모른다. 종족이 다른가? 말이 다른가? 역사가 다른가? 음식, 풍속, 문화가 다른가? 더더욱 종교분쟁도 아닌, 분단의 이유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오순도순 살 일밖에 없는 우린데, 70년 동안 분단 인체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되는 민족의 부끄러움이다.


 세계 2차 대전 종전과 함께 당한 한국 분단과 독일 분단은 같은 결과이면서 그 원인은 다르다. 독일의 분단은 그들의 죗값이지만 우리는 도대체 뭐냐 말이다. 거기에다 6.25 동족상잔이라는 비극까지 말이다. 이게 다 이웃을 잘못 만난 화근이다. 아니다. 우리가 못나서다.


 세계지도를 펴놓고 보면 한반도는 지구 동쪽에 콩알만하게 붙어 있는데, 그마저 세계 유일 분단국인 채로 매일 만들어내고 있는 뉴스는 중동 다음으로 많다. 중동 쪽이야 그들 역사 이래 종교와 민족이 분쟁의 이유지만 그래 우리는 도대체 뭔가? 사상 이념은 당노선(黨路線)의 정치문제이지 나라를 쪼갤 이유는 유치원생에게 물어봐도 웃을 일이다.


 이제쯤은 동서독이 합치듯 후딱 합치면 되는 일, 그리고는 그들이 한대로만 따라 하면 되는, 너무도 쉬운 통일.


 나는 60년대 3년을 파독 광부로 일했다. 그때 독일인들의 입에서 통일이라는 말을 단 한 번도 거짓말처럼 들어본 일이 없다. 우리처럼 남의 나라에 나와서까지 좌우로 갈라 서로 비방하는 일도 그들 사회에서는 없었다. 그러하면서도 그들은 우리 앞서 통일을 후딱 멋지게 해치웠다. 그랬다. 그들은 통일 열기로가 아니라 차분한 이성으로 통일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구호가 아니라, 회담이 아니라, 합의문이 아니라, 공동성명이 아니라, 더더욱 6.25 같은 동족상잔이 아니라, 쉬운 편지 왕래부터, 일반인(60세 이상) 왕래부터, 종교 문화체육의 교류부터 하고 있었고, 무역은 물론 전기와 물을 서로 나눠 쓰고 있었다.

 

 지금은 어엿한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 된 임수경 의원의 북한제작 ‘임수경 양 방북기’ 비디오를 당시 우연히 북한을 다녀오신 분을 통해 볼 기회가 있었다. 그때 그 비디오를 보는 내 마음은 무거웠다. 비디오에서의 임수경 양(학생 신분)처럼 나도 자꾸만 눈물을 흘리고 싶어졌었다. 가냘픈 저 여학생의 통일 열기에 감동으로 흘리는 북한 인민의 눈물과는 다른, 목청을 돋우며 두 팔을 남쪽을 향해 미친 듯 휘젓는 북한 군중 속의 통일 열기가 내 가슴엔 슬픔으로 느껴져서다. 통일은 저런 열기로 와야 하는 건가? 차분함으로 와야 하리라는 내 믿음이 산산이 부서지는 아픔이었다.


 예쁘고 여린 작은 가슴으로 연일 그녀는 하루에도 수십만 북한군중의 통일 함성에 파묻혀 통일의 꽃이라며 꼭두각시 전사가 되고 있었다. 남한 백만 학도가 그녀와 함께 라는 역군으로 믿고 있었고, 그 나머지 모두는 통일 방해요인이 되어 있었다. 


 북한을 다녀온 분들의 말을 들어보면 북한사람들은 통일 말만 나오면 청산유수 통일전문가가 되어 있더라 말한다.


 불가(佛家)에서는 생로병사(生老病死)를 삶의 고통이라 말하나 내 보기로는 인간에게 가장 큰 슬픔은 먹을 것이 없어 생으로 굶어야 하는 고통이다. 생(生) 즉 탄생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며, 노(老) 즉 늙음은 추함이 아니라 순리이며, 병(病) 즉 아픔은 귀신(악마)의 장난이 아니라 삶의 일부이며, 사(死) 즉 죽음은 죗값 아니라 우주적 질서이다.


 이것들은 어떤 값으로도 결코 내려놓을 수도 없는 피할 수도 없는 삶의 짐인데, 고통이라고 생각하면 무거워 오 리도 못가서 쓰러질 것이다. 그보다는 진실로 못 견딜 고통은 오히려 다음 3가지 쪽이 아닐까. 즉 첫째, 삶의 기본인 먹이가 없을 때이고, 둘째는 삶을 삶답게 하는 정을 주고받을 관계가 끊어졌을 때이고, 셋째는 내 존재 이유가 무참히 짓밟히는 인권이 무시당했을 때라는 생각이 든다.


 슬프다. 슬프다 한들 어찌 배고픔의 슬픔에 견줄 것이며, 병의 아픔이 어찌 사랑을 못 받는 아픔에 견줄 것이며, 늙어 죽는 절망이 어찌 인권이 짓밟히는 분함에 견주랴. 먹이가 없어 속절없이 죽어가고, 이웃이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감시의 대상이 되고, 말할 거주할 선택의 자유가 없는 곳이 있다면 내겐 이보다 더한 지옥이 없다.
 독일이 우리에 앞서 통일을 해치웠을 때 나는 다음은 우리 차례라고 김칫국을 많이도 마셨었다. 그런데 그 후 들리는 소식마다 거꾸로 통일뉴스뿐이니 어이하노!


 임수경 양, 아니 지금은 어엿한 대한민국 국회의원 임수경 씨의 지금 심정은 어떠실까? 아사 직전에 목숨 걸고 탈북해 온 분들을 향해 “반역자”라 호통을 친 것으로 봐 여전히 통일의 꽃이라 착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임수경 양, 아니 지금의 국회의원처럼 변해지지 않는 반도의 눈물이여!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