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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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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토론토의 한 건설업체가 어느 교회건물을 인수하여 주거용 콘도로 개조하는 공사를 진행하면서 아주 기발한 마케팅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이 업체는 그 건물이 과거에 교회건물이었던 점에 착안하여 “주님을 찬미하라!”(Praise the Lord!)는 말에서 ‘Lord’를 복층구조의 주거용 콘도를 뜻하는 ‘Loft’로 살짝 바꿔서 “로프트를 찬미하라!”를 마케팅 슬로건으로 정했다. 또 그 업체 웹사이트에서는 “Prepare to be converted”라는 말도 쓰고 있는데, 영어 convert가 ‘건물따위를 개조하다’라는 뜻도 되고, 종교를 바꾸는 ‘개종(改宗)’의 뜻도 되는 점을 이용해 “개조 준비중”이 “개종 준비중”으로도 읽히게 함으로써, 약간의 말장난을 통한 해학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그런데, 지나다니면서 이 슬로건이 적힌 입간판을 본 주민이 이 입간판의 철거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 주민은 슬로건의 내용이 “신을 모독”하기 때문에 참고 봐 줄 수가 없다면서, 철거를 요구하는 청원서에 주민들의 서명을 받고 있다고 하니, 앞으로 이 일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어 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믿어지지 않는 사실이지만, 캐나다에서 ‘신성모독(Blasphemy)’은 엄연히 현행법 위반이며, 따라서 처벌이 가능하다. 캐나다 형법 296조에는 “누구든 신성모독적인 내용을 발표하는 자는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며,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1927년 토론토에 살았던 무신론자 유진 스테리씨는 그가 발행하는 잡지 ‘크리스챤 인콰이어러’를 통해 하느님을 “저주를 퍼붓고 다니는 늙은이”, “격앙된 과대망상광”이라고 비난했다가 기소되어 재판을 받았다. 결국 그는 60일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나중에 그의 출신국인 영국으로 추방되었다.


 1977년에는 게이 예수에 대한 시를 쓴 한 시인이 이 조항에 의해 기소된 적이 있으며, 1980년에는 온타리오 북부의 한 극장에서 예수를 조롱하는 내용을 담은 몬티 파이쏜영화 ‘브라이언의 생’(Life of Brian)을 상영한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다. 이 건은 결국 당시 보수당 정부의 선고유예결정으로 마무리되었다. 이 조항은 현재 사실상 사문화된 조항이지만, 형식적으로는 엄연히 살아 있는 현행법이다.

 

 얼마전 프랑스의 한 잡지사가 이슬람 과격분자들의 무차별공격을 받았다. 풍자만화를 다루는 이 잡지 ‘샤를리 엡도’는 그 동안 이슬람교 창시자 무하마드가 나체로 성행위를 하는 듯한 모습을 그리는 등 여러 차례에 걸쳐 이슬람교도들을 모독하는 만화를 실어왔다. 이슬람교에서는 무하마드를 우스꽝스레 그리는 것은 고사하고 그의 모습을 형상화하는 것 자체가 금기로 되어 있어서 이미 여러 차례 협박전화를 받았을 뿐 아니라, 2011년에는 폭탄테러도 있었다. 이런 위협에도 불구하고 편집장 샤르보니에는 “나는 가족이 없어 부담이 덜 하다”며, 위협에 굴복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었다. 이 번 테러로 편집장 등 직원 10명을 포함해 12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사건이 일어나자 전 세계 언론들은 일제히 이슬람과격분자들의 테러를 비난하면서, 어떤 무서운 테러 앞에서도 결코 굴복하지 않고 ‘표현의 자유’를 끝까지 사수할 것임을 소리 높여 외쳤다. 그런데, 아주 흥미로운 사실은 이렇게 전 세계적인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톱뉴스인 이 사건을 연일 대서특필 보도하면서도 정작 이 잡지가 지금까지 실어온 어떤 만화가 문제가 된 것인지 그 사진을 직접 보여준 매체는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 사건이 난 다음주 샤를리 엡도가 특별호를 평소부수 6만부의 무려 50배에 달하는 3백만부를 찍었을 때도 그 표지사진을 실은 매체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이 보다 더 뉴스가치가 높은 사진이 없다고 할 만큼 초특급뉴스가치를 지닌 사진을, 법으로 금지한 것도 아닌데, 자진해서 싣지 않았던 것이다. 평소 다른 뉴스였다면 아마도 설사 법으로 금지된 사항이었더라도 소송을 불사하고라도 보도를 하려고 했을 터인데, 이상하게도 이 번 건은 온갖 그럴 듯한 이유를 들어 피해 가는 모습을 보였다. 서구언론들이 언제부터 이처럼 남의 문화와 정서를 존중했던가? 나에게는 정말 감동스러울 정도로 놀라운 모습이었다. 내가 사는 토론토에서는 보수신문 토론토선이 유일하게 그 사진을 게재했다. 캐나다 최대부수 신문 토론토스타는 온갖 그럴 듯한 이유를 들어 사진을 싣지 않으면서도 대표 칼럼니스트의 칼럼에서는 게재를 찬성한다는 내용을 내보내는 아주 교활한 모습을 보였다.


 이보다 앞서 세계적인 화제를 모았던 또 하나의 테러사건이 있었다. 소니가 만든 영화 ‘인터뷰’의 개봉을 앞두고 북한이 계속 험악한 말로 언어테러를 하는 가운데, 여러 극장들이 이 영화의 상영을 포기한다고 발표했고, 소니본사 컴퓨터가 무차별 해킹을 당하자 소니와 미국정부는 어떤 테러에도 굴복하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결국 소니는 이 영화의 극장개봉을 포기했다. 

 

 ‘최고존엄’인 김정은과 무하마드를 조롱했다는 이유로 사이버테러와 총탄테러를 당한 서구사회가 이에 대처하는 모습을 보면서, 왠지 모르게 인간의 이중성과 나약함을 새삼 적나라하게 확인하는 듯 하여 당혹스럽고 씁쓸하다. 북한당국은 살아남기 위해 밖을 향해 온갖 험악한 말을 쏟아내고, 무슬림들은 어쩌다 그 땅에 태어나 눈에 보이지도 않는 알라를 위해 자신과 남들에게 온갖 만행을 저지르면서도 “저 높은 곳의 그 분이 알아주시겠지”하며 신앙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고… 서구의 언론들은 무수한 사설과 칼럼을 통해 입에 거품을 물고 ‘표현의 자유 사수’를 외쳐대면서도 정작 자기들 지면과 화면에서는 ‘자유로운 표현’을 보여주지 못 하고… 그런 무서운 인내력과 자재심이 가슴 저 밑바닥에 숨겨진 이기심과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진정으로 남의 문화와 정서를 존중하는 마음에서 발현되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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